공유하기
입력 2001년 6월 14일 18시 53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판결문에는 기존의 획일적인 잣대로 작품의 음란성과 잔인성 여부를 따지기보다는 만화라는 특수한 장르와 청소년이라는 구독 대상층을 고려한 새로운 기준을 담고 있다.
재판부가 적용한 음란성과 잔인성의 개념은 기존 대법원 판례 그대로여서 1심 재판부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만화의 특성 및 음란성 잔인성 판단의 특이성 △만화의 시대적 배경 및 구독 대상에 따른 판단이라는 두 기준을 통해 재판부는 “만화는 영화나 소설 등 다른 장르와는 다르게, 청소년물은 성인물과 다르게 판단돼야 한다”고 선언했다.
우선 “만화를 보는 사람들은 내용을 찬찬히 읽기보다는 대충 보면서 책장을 넘기는 것이 보통이고 그 내용이 현실에서 그대로 일어난다고 믿지 않는다. 또 흑백으로 돼 있는 특성상 총천연색으로 보여지는 TV나 컴퓨터 게임보다 자극성이 덜하다”는 것이다.
또 독자층에 있어서도 다소 나이가 많은 청소년이 주 독자층인지 아니면 연령이 낮은 청소년이 독자층인지에 따라서도 판단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 재판부가 설정한 기준의 하나다.
이 같은 기준에 따라 ‘천국의 신화’를 들여다보면 “집단 강간을 표현하는 한 장면만을 제외하고는 전혀 음란한 표현이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잔인성에 대해서도 “만화라는 특성상, 또 이 만화를 신화나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나 관심이 있는 15세 이상의 미성년자들이 주로 볼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잔인성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번에 재판부가 제시한 기준은 유사한 사례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으로 법조계는 보고 있다. 또 일부에서는 이번 판결을 법원과 검찰의 ‘음란물 처벌 완화’ 경향을 보여주는 사례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청소년 만화의 음란성과 잔인성 판단 기준을 새롭게 구성해 적용한 것일 뿐이며 음란물을 지금보다 더 허용해야 한다는 취지는 전혀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재판부가 이날 적시한 4가지 기준 중의 하나에는 “청소년 음란물의 경우 ‘예술’과 ‘사상’을 핑계로 무죄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도 있는데 이는 청소년 음란물의 처벌 범위를 더욱 확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