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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월 7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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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분위기가 들떠 있으면 자녀는 차분하게 공부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자 학부모들이 “맞아, 맞아”를 연발한다. 마치 TV에서 보는 김용옥교수의 강의처럼 뜨거운 교육현장. 최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중동고등학교에서 열린 ‘중동문화교실’ 수업 풍경이다.
이 학교 정창현 교장이 직접 강사로 나서 학부모들을 상대로 ‘미래사회와 가정교육’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겨울방학 동안 서울의 상당수 학교가 구청의 도움을 받아 외부강사를 초빙, 학부모들을 상대로 컴퓨터와 영어기초과정을 가르치지만 중동고는 자체적으로 ‘문화교실’을 운영하며 다양한 교양강좌에 열을 올린다.
중동중고교에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들은 물론 우성7차아파트 등 5분거리의 근처 아파트단지 학부모들까지 몰려들었다. 아파트게시판에 ‘문화교실엽니다’라는 공고를 붙였던 탓이다. 지역내 학부모들의 평균적 컴퓨터 숙련도가 일정수준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판단, ‘가정교육’이라는 포괄적 아이템을 선정한 것이 부모들의 관심을 끄는 데 주효했다. 수강료는 없다.
문화교실은 지난해말 일주일 일정으로 끝났지만 요즘도 강남 일대에는 정교장을 둘러싼 후일담이 무성하다. 정교장은 사이버 문명 속 부모들이 염두에 두어야할 가정교육을 얘기하던 중 ‘백지영양 비디오 사건’에 대해 “워싱턴포스트가 한국에서 연예인의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어 불쌍하다고 논평했다”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외국신문기사를 인터넷으로 미리 확인해 강의에 인용했기 때문.
학부모들은 다음날 한국 신문에 똑같은 내용이 보도되는 것을 보며 교장선생님의 ‘빠른 정보력’을 실감했단다.
그런가하면 ‘자녀를 질책하기 전 다시 한 번 생각하라’로 요약되는 ‘감정지수 다스리기’도 학부모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정교장은 지난해 3월 전국 중고교 중 최초로 학생회와 함께 ‘두발자율화 공청회’를 열어 교사와 학생이 합의하는 ‘가이드라인’을 정했을 정도로 ‘열린’ 사고를 지녔다는 평을 듣는다.
학부모 박향림씨(40·서울 강남구 일원동)는 “‘디지털 시대’일수록 자녀의 노트사용 빈도수를 높이라는 말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정보 홍수 속에 요약능력과 종합력을 키우지 않으면 경쟁력이 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화교실에는 학교장 상담실장 외부강사 등이 강사로 나선다. 이번에는 △21세기 자녀교육은 이렇게(김주백교사·박사) △2002학년도 새 대입제도 이렇게 바뀐다(김춘광상담실장) △훌륭한 어머니가 자녀교육을 바르게(정교장) △오늘의 학생과 학교교육(정교장) △효과적 학습방법과 진로지도(3명 공동 강의)로 구성됐다.
지난 5년 동안 수백명의 지역 학부모가 ‘문화교실’강좌를 수강했다. 학부모 정유경씨(43·서울 강남구 일원동)는 “사설 ‘문화센터’에 다니는 것 이상이다. 자녀가 중동고에 다니지 않는 주변지역 엄마들도 한번 문화교실 강의를 듣고 나면 이 학교 상담교사에게 자녀문제를 상담할 정도”라고 말했다.
<조인직기자>cij1999@donga.com
◇'교육 質 높이기' 주장 정창현 교장
중동고 정창현 교장은 ‘강남구의 왕따교장’임을 자처한다. 기존의 불합리한 평준화 교육의 틀을 깨보자는 의지의 표현이다.
정교장은 우선 ‘내신 부풀리기’에 반대한다. 암기과목은 ‘97점을 맞아도 20등’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인근 학교에서는 들리지만 중동고는 전과목 60∼75점대를 유지한다. 50여명에 달했던 서울대 합격생 수도 강남지역 학생 수 감소 등의 이유가 겹쳐 지난해 13명으로 줄었지만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당장은 대학입시의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언젠가는 대학측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알아주지 않겠느냐는 ‘소신’을 갖고 있다.
대신 당장 올 새학기부터 평준화 고교로는 최초로 ‘유급제도’를 도입할 작정이다. 대학처럼 ‘학사경고’를 통해 재교육 보충학습 시스템을 갖추고 그래도 학생의 학습능력이 개선되지 않으면 5∼10%선에서 유급을 권장할 방침.
‘학부모 교육’도 강화한다. 학기별로 20시간 정도를 정해 여건이 허락하는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자녀의 가정교육에 대한 특별연수를 실시할 계획. 일정시간 이상 이수하면 자녀의 생활기록부에 내용을 상세히 적어 이 역시 대학에서 평가자료로 삼도록 유도할 작정이다.
정교장은 교육당국에 대한 불만도 토로했다.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학급 수를 줄이겠다고 해도 반영되지 않았고 교사 수를 늘리자 ‘비효율적’이라며 되레 질책 당하기도 했다.
정교장은 서울 여의도고교사, 한국교원대 자연과학대학장 등을 역임했으며 삼성그룹이 중동고재단을 인수한 뒤인 95년 8월 중동고 교장으로 부임했다. “5년 동안 여건은 많이 성숙했습니다. 앞으로 2, 3년 안에 결실이 있을 겁니다.”
<조인직기자>cij19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