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매춘' 까발린 김강자 서장의 '미아리 에세이'

  • 입력 2000년 7월 26일 16시 46분


'여자 포청천’으로 통하는 서울 종암경찰서 김강자(金康子·55) 서장이 경찰 생활 29년을 돌아보며 쓴 에세이집 <나는 대한민국 경찰이다>(푸른숲 刊)를 펴냈다.

지난 71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해 최초의 여성 방범과장, 최초의 여자 경찰서장 등 최초란 수식어를 죽 달고 다닌 김 서장이 매춘 퇴치 전문가가 되기까지 과정을 화끈하게 술회한 것이다.

김 서장은 이 책에서 치열하게 여경으로 살아온 자신의 일생과 함께 음습한 매매춘 현장, 고통스러운 매춘 여성의 삶, 악마 같은 섹스 사이코의 행패, 특공작전을 방불케하는 단속과정, 여자경찰에 대한 편견 등을 들춰내고 있다.

▼지옥같은 매춘 여성의 삶▼

매매춘 행위를 하고 6만원을 지불했다면 매춘녀에게 돌아가는 돈은 얼마나 될까? 이런저런 명목으로 뜯기고 나면 단돈 1만원이라는 게 김 서장의 설명이다. 섹스에 필요한 티슈와 물수건, 하다못해 매춘녀들이 맞춰 입는 드레스도 매춘녀들이 구입한다. 고용주가 유니폼 비용까지 매춘녀에게 떠 넘기는 셈이다. 월급을 받는 경우라도 한 달에 1백만원 미만을 받은 이가 허다하다. 의무적으로 장롱과 오디오 등을 80만원에 구입해야하다 보니 처음부터 빚을 안고 시작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업주에게 빚을 졌을 때는 한달 동안 하루에 10여명의 남자를 받아도 땡전 한 푼을 못 건지는 것이다.

영업이 잘 되는 업소의 경우 한 명이 벌어들이는 평균 월수입은 1천5백만원. 10명이 일하는 것으로 계산하면 1억5천만원이나 된다. 하지만 업주들은 야박하기만 하다. 이렇게 짜게 굴기 때문일까? 30년 이상 업소를 운영한 업주 가운데 1백억원 이상의 재산을 가진 재력가가 나오는 것은.

김 서장이 매춘 퇴치에 앞장 선 것은 무엇보다 그들이 인간 이하의 삶을 살기 때문이었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붓쇼 계란쇼 담배쇼 병쇼 등 별별 해괴한 짓을 해야하는 여성. CC TV의 감시로 2년째 가게 밖으로 못나갔던 여성. 하루에 7~8명을 받는 것도 모자라 주방아줌마가 강제로 놓아주는 영양제를 맞아가며 몸을 혹사하는 여성. 맹장수술을 했는데도 이튿날부터 남자를 받아야 했던 여성. 생리 중인데도 매출을 올리기 위해 솜으로 자궁을 틀어막아야 했던 여성. 그들 가운데는 김 서장의 딸보다 어린 여성도 수두룩했던 것이다.

▼돌격! '미아리 텍사스’ 앞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매춘 현장 '미아리 텍사스'. 그곳의 정식 지명은 성북구 월곡 1동 88~104번지 일대다. 약 3천평에 이르는 대지엔 자그마치 260여개 업소가 밀집해 있다. 김 서장의 단속 이전에는 업소마다 7~20개의 방을 만들어 놓고 5~30명에 이르는 매춘녀를 고용했는데 대략 2천명 이상의 매춘녀들이 손님을 받고 있었다.

'미아리 텍사스 프로젝트'를 세운 김 서장의 1차 목표는 그곳에서 몸을 팔고 있는 1천명 이상의 미성년 매매춘을 근절시키는 것이었다. 단속에 앞서 30m마다 방범등을 설치하고 미성년 매매춘 업소 신고 포상제도를 신설한 김 서장은 효과적인 단속을 위해 비밀통로를 제거키로 했다. 방범 순찰대 의경들이 손님으로 가장해 조사한 결과 70개 업소에 자그마치 5백여개의 비밀통로가 있었다는 걸 파악했다.

드디어 지난 2월7일 오후 2시 '작전 개시' 명령이 떨어졌다. 매춘녀 진열장을 방탄 유리로 만들어 놓은 곳도 있는 미아리 텍사스를 경찰은 갈고리와 해머를 들고 공략했다. 놀랍게도 4시간 단속한 결과 76개 업소에서 비밀통로 5백여개를 발견했다. 그것은 그야말로 미로였다.

A업소의 응접실 커튼 뒤 거울을 밀고 들어간 통로는 B업소로 통했다. 그 업소의 손님방 노란 장판을 뜯자 가로 세로 1m인 통로가 나왔고 바로 사다리로 이어졌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자 50cm 가량의 굴이 나왔고 그 속을 기어서 10여m 가자 높이 1m 되는 통로가 또 나타났다. 통로에서 쪽문을 찾아 밀자 이 번에는 C업소였다. 거기서 신발장으로 위장된 비상문을 열자 두세 명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밀실이 나타났고 그곳에 마련된 비밀통로를 따라가자 옆건물의 미용실이 나왔다. 그야말로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미래도시에서 지하 게릴라들이 사용하는 그 미로였던 것이다.

그날의 작전 이후 김 서장은 2단계 프로젝트로 성인 매춘녀의 인권 유린을 막는 작업에 들어갔다. 매춘녀 전원의 신상을 전산 입력해 관리하고 지문을 대조해 미성년자를 가려내는가 하면 전출입자를 신고케 하여 빚으로 인신매매되는 일을 방지했다. 매춘녀를 대상으로 가출인 조사를 벌이는 일도 병행했다.

매춘녀들이 자유로운 외출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정기휴일제도 실시했다. 일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모든 업소에 고용된 매춘녀에게 통장을 만들라고 권했다. 그렇게 되자 미아리 텍사스의 풍경은 변해갔다. 전국 각지의 매춘녀들이 스스로 찾아오고, 동정을 떼어버리려는 대학생이 부쩍 늘어난 것이다.

▼'여자 포청천'을 울린 사람들▼

1992년 11월 22세의 여대생이 당시 서울경찰청 민원실장이던 김 서장을 찾아왔다. 10개월이나 동거하다 성적으로 만족할 수 없다며 결혼하지 못하겠다는 목사를 신고하러 온 것이었다. D시의 꽤 큰 교회에서 봉직한 그 목사는 잘 생긴 외모 덕에 인기가 높았다. 김 서장은 성적 불만족이란 이유로 결혼약속을 파기한 것이 아무래도 걸려 조사에 들어갔다. 아니나다를까 김 서장은 목사관에서 성폭행 장면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발견했다. 포르노 뺨치는 수준으로 정교하게 찍은 화면 속의 여성들은 교회 신도였다. 한 사람은 유부녀, 한 사람은 미성년자. 그 미성년자를 조사한 결과 열다섯 먹은 소녀였고 강간을 당해 낙태까지 한 적이 있었다.

김 서장의 충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목사의 집에서 찾아낸 007 가방 때문이었다. 폐기된 세탁기의 밑바닥에 있던 그 가방 안에는 엽기적인 증거가 있었다. 성행위가 끝난 뒤 분비물을 닦은 티슈를 다시 흰 종이로 싸서 그 종이 위에 성행위를 한 날짜와 상대방의 이름을 적어놓은 종이가 가득 찼던 것이었다.

조사 결과 목사는 갖가지 방법으로 신도들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성폭행을 일삼았다. 성가대원에겐 성가연습을 하자고 했고, 유부녀 신도에겐 몸이 아프다며 미음을 쑤어 달라고 했고, 여학생 신도에게는 음악지도를 해주겠다고 유인한 것이다.

김 서장을 슬프게 만든 일화는 너무도 많았다. 초등학생 3학년 딸이 두살 위의 친오빠와 매일 섹스를 한다며 딸을 데려왔다가 결국 매질로 딸을 숨지게 한 정신질환자 내과 의사. 내연의 처로 만든 어린 여사원이 결혼하자 그녀를 협박해 성관계를 갖고 그것으로도 부족해 자살을 시도하게 만든 일류 그룹의 중년 남자. 고3 남학생을 유혹해 줄행랑 친, 20대처럼 보이는 34세의 과부 미용사. 일생동안 1만번의 섹스를 하겠다고 하고 다녀 ‘만순이’라 불렸던 여중생. 일그러진 성문화의 희생자들 앞에서 김 서장은 여러 번 울어야 했던 것이다.

▼성욕으로 충만한 코리아▼

신창원 검거를 위해 러브호텔에서 훈련을 실시하던 8월 어느 날이었다. 주변의 논에선 농부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던 때였다. 모텔의 방은 만원이었고 주차장은 대도시 번호판을 단 차량들로 차 댈 곳이 없었다. 가상의 신창원을 검거하는 작전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자 김 서장은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화재 경보기 울려!”

"네?~"

수갑을 찬 가상 신창원이 계단을 내려올 때쯤 김서장의 지시대로 경보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러자 모텔 주차장을 향해 난 창의 커튼이 일제히 걷혔다. 알몸의 남녀들이 창에 달라 붙어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살피는 것이었다. 투숙객들은 주차장에서 자신들을 향해 M16 소총을 겨누는 대원을 보자 기겁을 하고 커튼 뒤로 몸을 감추었다. 저자는 "내 생애에 그렇게 많은 남녀 커플의 알몸을 본 건 처음이었다"고 술회했다.

노인교실과 탑골 공원 뒤에서 40대의 뚱뚱한 아주머니들과 1만5000원을 주고 성행위를 하는 노인들, 전화방과 폰팅 채팅을 통해 성관계를 맺을 상대를 구하고 원조교제까지 하는 주부들, 이벤트 사무실과 무도장에서 공공연하게 섹스파트너를 찾는 사람들, 결혼날짜를 잡아두고 테크닉을 키우기 위해 예행연습을 하러 온 청년, 스무살만 넘으면 동정을 떼지 못해 안달하는 총각들. 정녕 이 나라는 성욕이 충만한 나라인 것일까?

▼한국에서 여자 경찰로 살아간다는 것은?▼

지난 71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한 김 서장은 서울 남부경찰서 방범과장이 된 97년에야 처음 외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만큼 한국에서 여자 경찰의 위치는 불안정하다.

경찰종합학교 졸업 1등, 첫번째 승진시험 수석 합격을 한 김 서장이었지만 가까스로 경위 기본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61년 이후 채용된 여경 중 경위 교육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과거의 채용과정을 보면 여경의 위상이 어떠했는지는 금세 알 수 있다. 모 내무장관 시절 여경을 뽑을 때 채용 제 1기준은 외모였다. 얼굴은 물론이고 치마를 걷어올리게 하거나 심지어는 런닝 팬티만 입힌 채 종아리 등 몸매를 보아 채용하기도 했다.

김 서장은 경찰 내부에서 여경이 받는 부당한 대우를 부지기수로 목격해야 했다. 한 번은 모 경찰서 정보과장이 4년제 대학 졸업자이면서 외모가 뛰어나고 타자를 잘 치는 여경을 찾은 적이 있었다. 김 서장은 정보형사 보직을 주려나 싶어 물었더니 타자수로 쓰려고 그런다는 말을 듣고 아연할 수 밖에 없었다. 좋은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어 실력이 우수한 여경이 같은 계급인 남자 교통경찰관의 교통 딱지 정리를 도와주는 업무를 맡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이보다 훨씬 험한 꼴을 당한 여경의 사례도 많았지만 편집 과정에서 삭제됐다는 게 출판사의 귀뜸이다.

총경을 달고 4년만에 경찰서장이 되는 관례를 깨고 1년6개월만에 서장이 되는 등 다방면으로 여성의 능력을 몸소 보여준 김 서장은 이제 말한다 "여경이 아닌 경찰관으로 대해주세요”물론 여경들에겐 경찰로서 남자 경찰관과 똑 같은 업무를 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는 호소를 덧붙이면서.

▼경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김서장은 이 책에서 몇 가지 사례를 들며 경찰의 사기를 올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례 하나. 지난 5월 14년 경력의 경사가 받은 한달 보수는 본봉과 수당을 합해 150여만원. 상여금이 있던 6월에는 180여만원이었다. 같은 기간 순경은 각각 75만원, 80만원을 받았다. 주 60시간 이상을 근무하는 순경의 기본급이 46만원에 불과한 반면 미국의 순경은 주 40시간 근무에 363만원을 받는다.

사례 둘. 지난 4월 시위에 나흘간 동원된 미국 경찰관은 1인당 300~500달러를 받았다. 하루 근무수당으로 33만~55만원을 받은 셈이다. 우리 경찰은 7월달 파업시위에 출동해 1인당 1만5천~1만9천원을 받았다.

이런 사례의 말미에 김서장은 70년대 싱가폴 리콴유 수상이 부패를 뿌리뽑기 위해 경찰 보수를 3배나 올려준 이후 부패가 사라졌다고 부기하고 있다.

김태수 <동아닷컴 기자>ts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