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북 "있다" "없다" 논란

  • 입력 2000년 5월 28일 19시 50분


《대표적 ‘아날로그 작가’인 이문열씨가 28일 유명출판사들과 e북 출판계약을 했다. 출판업계에는 e북이 미래출판의 대세로 자리잡는듯한 분위기마저 감돌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42)은 신간 ‘디지털과 종이책의 행복한 만남’(창해)을 통해 “e 북은 없다”는 도발적 메시지를 던지고 나왔다. 》

▼소설가 이문열 "e북은 있다"▼

전자책을 내기로 민음사 등 6개 출판사와 에릭양 에이전시가 공동출자한 에버북닷컴(www.everbook.com)과 계약한 이문열씨. 7월7일 정식 서비스를 실시할 예정인 에버북닷컴 사이트에 ‘하늘길’(가제)라는 중편소설을 싣기로 했다. 5년전 계간지 ‘상상’에 실었던 성인용 우화 형식의 작품을 대폭 손 본 뒤 내놓을 예정이다.

이씨는 전자책을 출간 결심의 배경으로 ‘편리성’을 꼽았다. “단순히 글을 읽는 수단으로서의 전자책은 미래가 밝다. 컴퓨터의 일상화로 사람들이 점점 편리한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수천년 이어온 책이라도 이런 대세를 거스를 수 없을 것이라 봤다.”

이씨는 전자책 기술이 계속 개발되고 있으므로 조만간 종이책의 상당 부분을 대체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에서 나온 PDA 형태의 전자책 단말기를 보니까 외양도 크지 않고 사용에도 불편하지 않더라. 앞으로는 작은 단말기 하나만 들고 다니면서 수 백, 수 천권의 책을 볼 수 있게 된다. 적어도 5년 이내에 전자책이 적어도 60∼70%는 차지하리라고 본다.”

하지만 이씨는 전자책이 작가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자가 전자책을 사서 보면 종이책은 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e북으로 낼 때는 금액면에서 종이책의 로열티 확보는 필수적이다. 종이책은 인세를 10% 정도 받는데 전자책은 30∼40%는 되어야 한다.” 이씨는 이번 신작에 대한 계약금조로 1000만원을 받았고 책값의 30%를 인세로 받기로 했다.

대표적인 ‘아날로그 작가’답지 않게 이씨는 뉴미디어에 대한 적응에 남다른 의지를 피력했다.

“이번 작품은 시간이 촉박해 평소에 종이책 소설을 쓰는 스타일로 내놓겠지만 앞으로 인터넷을 통해 소설을 연재하면 매체 특성에 맞는 새로운 글쓰기도 개발하겠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출판마케팅硏 한기호소장 "e북은 없다"▼

신간과 업계지 ‘송인소식’의 기고문으로 구체화된 한기호씨의 주장은 ‘e북시장 선점’을 향해 달려가던 출판인들을 멈칫거리게 한다.

-“e북이 없다”니 아직 열리지도 않은 시장이 괴멸할 것이라는 예언인가?

“이런 식의 준비로는 e북이 성공할 수 없다는 의미다. 종이책이냐 e북이냐, 아날로그냐 디지털이냐 죽기살기의 양자택일을 넘어 상생(相生)을 모색해야 한다. 디지털은 디지털에 맞는 콘텐츠를, 아날로그는 새로운 아날로그로 탈바꿈하는 것이지 전자책이 일시에 종이책의 자리를 대체할 수는 없다. 반대로 아날로그의 콘텐츠를 디지털로 장소이동만 하면 된다는 생각 역시 디지털에 대한 모독이다.”

-새로운 아날로그란 뭔가?

“분명히 말하지만지금까지의 종이책 제작방식을 고수하면 e북이 아니더라도 출판은 망한다. 사람들은 TV모니터에 익숙해져 있는데 책 판형은 신국판 하나로 고정되다시피 했다. 출판인 책 만드는 사람들조차 동영상이 무조건 책의 정지된 화면보다 낫다는 고정관념으로 아날로그(종이책)에 움직임을 주는 시도를 등한히 했다. 새로운 상상력을 담보한 책으로 90%가 물갈이 돼야 한다.”

한소장은 ‘백면서생’이 아니다. 그는 창작과비평사 영업담당 시절 밀리언셀러 ‘동의보감’을 만든드는 등 출판마케팅의 귀재다.

-e북의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하는가?

“수년내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근본적으로는 e북의 수익 모델 자체가 e북의 발전을 막는다고 생각한다. 최근 출판협회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서 한 e북업체 사장이 40만 카피를 팔았다고 밝혔는데 그 중 90%이상이 무협지 등의 오락물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업체에서 내놓은는 중견작가의 소설은 1년에 20카피도 못 팔았다. 결국 오락쪽으로 e북이 치우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게임등 인터넷시장의 무수한 무료상품들과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의미다.”

한소장은 최근 일본출판시장의 불황내용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단샤(講談社)등의 매출 감소 중 가장 큰 부분이 인터넷과 경쟁하는 만화 잡지쪽이었고 단행본 매출은 오히려 늘고 있다는 것이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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