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문화의 변화]"분만실 침대서 수술받기 싫어요"

  • 입력 2000년 5월 21일 20시 37분


두달전 집에서 출산한 이차선씨(29·경기 성남시 분당구 효자동)는 ‘재래식’ 방법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이라고 말한다.

“병원에선 조금만 문제가 있어도 제왕절개를 권하고, 자연분만을 해도 ‘비인간적인 고통’만 기억되잖아요. 집에선 남편의 도움을 받으며 아기를 낳는 과정을 온몸으로 느끼기 때문에 감동적이지요.”

출산문화가 바뀌고 있다. ‘아기는 순리대로, 엄마는 감동적으로.’ 가족과 고립돼 불편한 병원 침대에서 ‘표본실의 청개구리’처럼 누워 수술받기를 거부하는 예비엄마들이 늘고 있다.

올초 SBS TV 다큐멘터리 ‘생명의 기적’방영과 뮤지컬 스타 최정원씨의 수중분만 경험이 책과 방송을 통해 소개되면서 예비부모들이 의료진 편의의 출산행태를 거부하고 아기와 엄마를 위한 ‘재래식’출산방법을 찾고 있는 것.

올초부터 인터넷 홈페이지(www.ausung.or.kr)를 통해 회원들의 출산경험담을 공개하고 있는 ‘청소년을 위한 내일여성센터’ 부설 임산부 기체조교실(02-338-2845)을 보면 ‘변화’를 실감한다. 이곳에서 체조를 배운 이들은 아기를 낳으면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분만한 산부인과 및 조산원의 성적도 매겨놓았다.

“아기가 3.7㎏이나 될 걸로 예상되는데도 병원에선 자연분만할 수 있다고 격려해줬어요. 남편이 분만실에 들어와 탯줄도 자를 수 있게 해줬고 모유수유할 수 있게 도와주는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한성민씨(27·경기 일산구 마두동)는 이렇게 설명하며 서울 강남구 신사동 산부인과 ‘미래와 희망’(02-3446-0011)을 적극 추천했다.

또 이혜정씨(29·서울 송파구 신천동)는 “아기가 골반에 진입한 위치가 회전하기 힘든 자리여서 웬만한 병원이었으면 수술했을 텐데도 자연분만을 유도했다. 남편이 분만실까지 함께 들어와 산모를 돕도록 권장했다”며 동대문구 답십리동 일신조산원(02-2242-2841)을 추천했다. 이같은 경험담은 지금까지 77건이나 접수됐고 그 가운데 이 두 곳은 내일여성센터의 ‘검증’을 거쳐 ‘아기와 산모를 위한 병원’으로 선정됐다.

산부인과 전문의들이 중심이 돼 발족한 태교연구회도 분만환경개선운동에 나서 “탯줄을 자를 권리를 남편한테 돌려주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또 실제로 출산과정에서 아내를 도우려는 남편들도 크게 늘고 있다. 임산부 기체조교실의 경우 분만과정참여를 위해 교육에 참가하는 수강생 남편이 지난해에는 한달 수강생 1000명 중 20∼30%에 불과했으나 요즘에는 70∼80%로 크게 늘었다는 것.

기체조교실 권현정실장은 “산모들은 대부분 진통이 시작되면 고통을 참지 못해 수술해 달라고 요구한다”며 “남편이 옆에서 정신적으로 출산의 고통을 이길 수 있도록 돕는다면 정상출산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경기자>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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