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일의 책]무라카미 하루키 作 '빵가게 재습격'

  • 입력 2000년 3월 21일 19시 34분


▼'빵가게 재습격'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권남희 옮김/창해 펴냄/200쪽 7000원▼

여전하다. 서점가의 무라카미氏 열풍. 다름 아닌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의 책들. 정말 끝도 없이 나온다.

한편으론 출판계의 지나친 무라카미氏 의존도와 장삿속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읽는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을 정도로 열심히들 읽는다는….

한국에 먼저 소개된 무라카미 하루키는 번역 출판된 책의 수나 독자층에 있어서 분명 무라카미 류보다 한 수 위다(물론 작품의 수준이나 작가의 역량과는 별개의 문제지만). 1989년에 나온 '상실의 시대(원제:노르웨이의 숲)'는 10년 넘게 스테디셀러이고 그간 60여 권의 책들이 쉼없이 한국 독자를 찾았다. 그리고 여기 또 한권 더.

이 책은 제목부터 유쾌하다. '빵가게 재습격'. 은행도 아니고 '빵가게'를, 한번도 아니고 '재'습격한단다. 왜? 배가 고파서. 공복감을 견딜 수 없어서.

그렇게 표제작은 공허를 얘기한다. 텅 비어버린 위(胃)를 통해 현대인의 실존적 공허를 드러내고, 습격이라도 해서 빈곳을 채우려는 생존 차원의 발악에 손을 들어준다. 늘 그렇듯 너무나 태연하고 너무나 일상적인 언어로.

표제작 외 5편의 단편들도 재미있다. 집채만한 코끼리가 어느날 갑자기 '소멸'되는가 하면(코끼리의 소멸) 갑작스럽게 강풍이 몰아친 어느 하루의 일기가 '로마제국의 붕괴, 1881년의 인디언 봉기, 히틀러의 폴란드 침입'으로 정리되기도 한다(로마제국의 붕괴…).

만약 하루키의 4부작 장편소설 '태엽감는 새'를 읽은 독자라면 재미는 더한다. '태엽감는 새'의 등장인물 이름이 그대로 사용되는가 하면(와타나베 노보루, 가사하라 메이 등) '태엽감는 새'의 일화가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심지어 마지막에 실린 '태엽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은 장편 '태엽감는 새'의 첫 장과 단어 하나 틀리지 않는다.

물론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이 장편 '태엽감는 새' 보다 훨씬 앞서 쓰여졌다. 말하자면 '태엽감는 새'를 위한 습작이자 초석들인 셈.

마지막으로 혹시나 책 제목을 보고 의아해 할 독자들을 위해 한마디. '재습격'이라면 '빵가게 습격'은 없어요? 물론 있다. 단지 이 책에 실리지 않았을 뿐. 참고로 '빵가게 습격'은 조금 덜 파격적이고 조금 더 관념적인 이야기라고.

김경희<동아닷컴 기자>kik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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