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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3월 13일 19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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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새로운 천년의 초입. 게다가 최첨단 디지털시대란다. 나라 안을 살펴보니 국회의원 선거가 눈앞에 닥쳐 사방이 시끌벅적.
'한국 최초의 디자인 문화 비평지'임을 내세우며 작년 9월 선을 뵌 '디자인문화비평'도 이 때다 싶어 입이 근질근질 한마디 안할 수 없을 터.
"새천년은 왔건만 디자인문화 새천년은 아직도 멀었구나"
새천년을 맞는 감흥치고 실로 박정(薄情)하다. 그러나 날카로운 현실인식을 어찌 덮을 수 있을소냐. 이렇게 '디자인문화비평 2호'는 포문을 여는데….
창간호를 통해 '우상과 허상으로 가득찬 한국 디자인문화의 몰상식을 까발기고자' 했던 그들이 반 년만에 들고 나온 화두는 또 무엇인고. 발간사를 빌자면 "특수 고해상 카메라를 장착하고 디자인문화의 보다 깊숙한 곳들을 조명해"볼 참이란다.
그렇게 묶인 주제가 '정치·디자인·권력'. "인간 삶이 정치적 행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듯이 디자인 문화의 핵심에는 언제나 정치와 권력이 자리잡고 있다"는 아이러니한 명제.
옷로비 의혹사건에서 드러난 패션과 권력의 상징성을 파헤치고('모피·히피·철면피:패션과 정치' 김성복) 건축의 형태와 공간의 형상 속에서 지배적 권력관계의 표상을 읽는다('현대 건축의 담론과 공간의 정치학' 이상헌).
한편 표어와 슬로건으로 가득 찬 '대한구호민국'에서 사는 시민의 고충을 이론화하는가 하면('공익광고로 본 구호민국론' 유지나) 예술 민주화의 허상과 모순을 밝혀낸다('허공 속의 한국적 예술 민주화' 김민수). 얼쑤!
'21세기 삶과 디자인 문화'라는 주제로 채워진 기획좌담도 눈길을 붙잡는다. 정기용(기용건축소장) 이정우(철학자) 신영길(서울대 전산과학과 교수) 김민수(디자인문화비평 편집인) 등 네 명이 '디지털 문화 속의 아날로그적 삶과 디자인을 둘러싼 인식론적·사회문화적 현실'에 대해 벌이는 불꽃튀는 토론이 그것. 철학과 과학, 예술과 일상문화 등 장르와 영역을 넘나들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의 흐름을 좇는 것만도 즐겁다.
그밖에 고대 중국의 '서유기'와 영화 '매트릭스'를 비교분석한 글('서유기에서 매트릭스까지:고대 중국인이 본 가상공간' 나선희), 철학과 문학이 어떻게 시각예술과 그래픽을 가로지르고 있는지를 보여준 <가로지르기>의 두 글('눈과 마음 사이:인식론적 회귀' 이정우, '나의 한글 구체시' 고원) 등이 다채롭게 흥미를 돋운다.
유쾌하게 한바탕 웃고 싶다면 <창작과 불평> '나는 콩사탕이 싫어요'와 <그림 이야기> '엉망진창 세상 만세'를 놓치지 말 일이다. 이상, 볼만한 잡지 서평이었습니다!!
김경희<동아닷컴 기자>kik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