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양일모/'전쟁과 지식인을 읽고서'

  • 입력 1999년 11월 5일 20시 14분


▼'전쟁과 지식인을 읽고서' 가토 슈이치 지음 시민의 모임 엮음/아오키서점▼

최근 일본 서점의 진열대에서는 전쟁을 주제로 한 책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지난해 군복을 입은 앳된 청년이 총을 겨누고 있는 모습이 표지에 실린 ‘전쟁론’이 출간된 이래, 줄곧 전쟁이란 유령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일본 열도를 휩쓸고 있다. 젊은 세대의 ‘전쟁론’ 열기에 놀란 지식인들이 전쟁미화를 경고하고 젊은이를 훈계하는 내용의 책을 출간함으로써 찬반양론의 전쟁 책 붐이 조성된 것이다.

이런 사회적 풍토 속에서 시민 독서동아리가 만들어낸 책 한권이 돋보인다. 이 동아리를 만든 사람들은 도쿄올림픽 이후 고도경제성장기에 태어난 30세 전후 시민들. 이들은 한권의 책을 선정해 읽고, 저자를 초청하여 강연을 들은 뒤, 강연회가 열린 하루를 기록해 책을 만들었다.

이들이 선정해 읽은 글은 40년 전에 간행된 가토 슈이치의 ‘전쟁과 지식인’. 가토는 의학박사 문예평론가 작가 시인 대학교수 등 여러개의 직함을 가질 정도로 박학다식한 지식인이며, 80세의 고령에도 신문과 잡지에 시사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일본학계의 거장이다.

이 책 ‘전쟁과 지식인을 읽고서’의 구성은 동아리가 읽은 가토의 논문, 가토가 그날 강연한 원고, 시민 모임이 3개월 동안 준비해 온 독서 노트, 그리고 강연 후의 질의와 토론으로 구성돼 있다.

가토의 글은 패전 후 일본이 더 이상 군국주의적 팽창의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인식 아래, 전쟁 중에 쓰여진 지식인들의 일기와 저술을 분석하면서, 지식인의 정신적 내면을 밝혀낸 것이다. 그는 일본의 지식인들이 서양사상 수입을 통해 근대국가를 형성하고자 했지만 결국 천황제와 군국주의를 초월하는 새로운 가치 형성에 실패했으며, 이 점에서 대다수 지식인이 직간접적으로 전쟁에 협력하고 만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일본 지식인의 서양사상에 대한 소화불량이 결국은 면면히 이어져온 일본의 토착적 정신구조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패전 후 50년이 지난 지금 전후의 일본 지식인이 확립하고자 노력한 출발점이 또다시 흔들리고 있다. 시민의 모임은 전후 지식인들의 원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일본 민주주의의 행방을 묻는다. 가토가 인용한 전쟁 중의 일기와 저작들을 다시 찾아보면서 기록해 놓은 시민들의 참신한 독서 노트가 가토의 옛 글을 한층 더 빛내준다.

양일모(일본 도쿄대 상근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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