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제자 조희룡 "감각적 기교로 떨친 中人의 예술"

  • 입력 1999년 11월 2일 20시 15분


가슴 속의 정신인가, 손 끝의 기교인가.

조선 후기의 대표적 예술가인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1786∼1856)와 호산 조희룡(壺山 趙熙龍·1789∼1866).

사제지간이면서도 정신과 기교 사이에서 뚜렷한 대조를 보였던 두 인물. 추사의 자리가 ‘정신’이라면 호산의 자리는 ‘기교’다.

▼한길사 6권전집 출간▼

19세기 조선의 화가이자 미학이론가였던 호산 조희룡.

그러나 추사의 그늘에 가려 일반인에겐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

최근 한길사에서 조희룡 전집 6권이 나온 것을 계기로 그의 면모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호산은 시서화(詩書畵)에 두루 능했던 당시 최고의 미학이론가이자 빼어난 화가. 중인 출신 신지식인의 면모를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를 이해하려면 추사와의 관계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당시는 추사풍의 예술과 정신이 풍미할 때. 추사와 문하의 중인층 예술가들이 전통예술의 향취를 피울 때였다.

호산 역시 추사의 문하생이었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그는 우선 중인이란 자신의 출신성분을 직시했다.

중인의 시각으로 무장한 그는 예술을 여기(餘技) 정도로 생각하는 상류층의 예술관을 비판했다. 이 대목에 추사와 차이가 있다.

추사는 예술에 있어 ‘서권기 문자향(書券氣 文字香)’을 강조했다. 반면 호산은 ‘예술은 모두 솜씨에 속하는 것으로 솜씨가 없으면 아무리 총명한 사람도 서화에 능할 수 없다’는 이론을 펼쳤다.

▼붉은 매화 즐겨 그려▼

정신적 이념에 매몰되지 않고 감각적 표현미를 중시해야 한다는 미학이다.

그가 감각적이고 통속적인 예술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실제로 당시 대중이 좋아하던 붉은 매화를 즐겨 그렸다.

조선후기 건강한 세속성을 예술로 끌어들인 조희룡. 그러나 추사는 조희룡의 그림에 대해 감각과 세속에 너무 치우쳐 문자의 향기가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번 조희룡 전집 발간은 관련 학계의 조선 후기 중인 및 중인예술 연구 붐을 반영한 것이다. 그 한복판에 위치한 조희룡을 빼놓고 중인예술을 논할 수는 없다. 여기에 이 책의 의미가 있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