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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11월 9일 19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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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생끝에 대학 졸업, 27세에 H정유사 입사, 32세에 대리 진급 ▼승〓35세에 과장, 40세에 부장 진급 ▼전〓7년간 부장생활, 동기 두 명이 먼저 이사가 되자 번민. 끝내 기회는 오지 않았고 후배이사를 보자 주저없이 사표 ▼결〓이글 욕심에 무리한 티샷으로 인생이 해저드에 빠지기 쉬운 순간. 몇 달 간 방황. 옛 회사의 도움으로 주유소를 열었다. ‘이븐파는 했다’고 자위하며 공기 좋은 신도시에서 노후를 준비한다.
“우리시대에도 경쟁은 있었다. 그러나 부장까지는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잘리는 경우는 없었다. ‘누가 먼저 오르느냐’의 문제였지 ‘누가 살아 남느냐’의 문제는 아니었다.”
지속적 상승곡선을 타다 40대 후반에 갈림길을 맞았던 김씨와 같은 평균 직장인의 ‘경동지괴(傾動地塊)’형 인생그래프. 당연시되던 이 곡선이 IMF체제 ‘덕분에’ 기(起)와 전(轉)만이 반복되는 ‘기암절벽(奇岩絶壁)’형으로 바뀌고 있다. 나이에 관계없이 ‘마구 잘리는’시대. 직장인은 입사 직후부터 ‘퇴직→새직장→퇴직→새직장…’또는 ‘퇴출→창업→폐업→전업…’ 식으로 크고 작은 암벽 오르내리기를 계속해야 할 운명이다. 이전세대의 경우 40대 후반 이후가 인생곡선의 정점이었다면 지금의 30대 정도는 매 순간이 인생의 클라이맥스이자 내리막이 돼 버린 셈.
▼날 좀 바라봐
명문대를 나와 2년 전 D증권에 입사했다 최근 정리해고된 박모씨(29). 낮에는 주차관리, 밤에는 불법 ‘자가용택시’ 운전. ‘운 나쁘게 30% 감원 대상에 끼어’ 30년 공든탑이 무너진 허무함을 씹으며 다시 유학준비 중. 살아남은 자들은? 헤드헌팅업체 드림서치의 이기대사장. “이력서를 내는 사람 중 70%가 30대 초중반이고 이 중 50%가량이 직장이 있는 사람이다.”
S컴퓨터의 송대리(30). “동기 중 회사일에만 몰두하는 사람은 없다. 곁눈질을 하며 뛰쳐나갈 준비를 하는 사람, 회사에 자신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 복지부동도 없다.” A사의 김대리(30)는 짬짬이 ‘인터넷마케팅’에 대한 책을 쓴다. “책이 안 팔려도 좋다. 내가 ‘책을 쓸 만큼’ 전문가라는 사실을 회사에서 알아만 준다면.” 송대리의 입사동기인 정대리(31·기술팀)도 책을 쓰며 새벽에는 영어학원에 가고 밤에는 정보통신 관련 창업정보를 끌어 모은다. “인생을 ‘정리하고’ 새로 시작하고 싶다. 30대에 ‘정리’라는 말이 안 어울린다고? 끊임없이 새 삶을 찾아야 하는 지금 시대에 그런 질문이 더 안 어울린다.”
▼캔(can)세대
호황기에 학교를 다닌 X세대(65∼75년생). ‘투쟁’끝에 독재터널을 빠져나와 다시 IMF터널속에 갇힌 ‘386세대’와 함께 ‘이븐파’라도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한 계층을 형성하고 있다.
“젊어 고생, 순탄한 직장생활,말년의 한 순간 위기,걱정 없는 노후”를 말하는 김씨와 같은 ‘보스세대’(보릿고개에서 스테이크까지 맛을 본 세대). 이에 반해 스테이크를 먹고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으나 혹독한 겨울을 만나 스스로 불을 때지 않으면 얼어죽을 수 밖에 없는, 학력과 능력은 있으나 끊임없이 자신을 새로 채우지 않으면 언제든지 빈 깡통 차이듯 내팽개쳐질 수 있는 ‘캔(can)세대’. 그들의 미래는?
“IMF체제가 끝나도 ‘겨울’일 것이므로 내성을 기르는 시기로 삼겠다.”(송대리)“‘남’의 잘못으로 왜 내가 피해를 봐야 하는지, 억울할 때가 있다. 그러나 한눈을 파는 순간 바로 해저드에 빠진다. ‘보스세대’를 부러워할 시간이 없다.”(프리랜스컨설턴트 지모씨·30)
〈나성엽기자〉news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