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잠깐만]이윤옥/제사음식 배달주문 할까 말까

  • 입력 1998년 4월 30일 08시 05분


오전 1시. 막 제사가 끝나고 다시 설거지를 하는데 꼬박 2시간이 걸렸다. 설거지할 때만 해도 얼른 해놓고 쉬어야지 했는데 막상 자리에 누우니 잠이 오지 않았다.

뒤척이다 조간신문을 펼쳐 들었는데 광고전단들이 떨어진다. ‘16만8천원에 제사를 지내세요’라는 광고지에 눈이 갔다. ‘제례음식 이제 택배로 주문하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잘 차려진 제사상 사진까지 곁들여 있었다.

와, 이거였구나. 며칠전 나보다 제사가 두어번 많은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었다. 그 친구 역시 나처럼 바빠서 쩔쩔매는 직장인. 좋은 것을 가르쳐준다며 주문형 제사상 차림회사를 소개했다. “아무리 바빠도 제사상을 배달해서야…”는 게 그때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제는 사정이 좀 달랐다. 시장도 미처 못 봤는데 퇴근이 늦어졌다. 음력 제사이고 보면 해마다 제삿날이 주말에 걸리는 것이 아니다. 저녁8시가 넘어서야 녹초가 된 몸으로 돌아와 서너시간 음식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년부턴 원하는 날 원하는 시간에 배달해 준다는 택배형 상차림을 이용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싼 조기까지 얹어놓은 상이 십여만원이면 그 값이 그 값일 테고…. 머지않아 돌잔치나 환갑잔치처럼 제사상을 배달하는 것도 예삿일이 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은 제사상을 주문해서 제사를 지내는 게 낯설었다. 어른들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도란도란 가족들이 모여 음식을 만드는 것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가족의 화목을 다지는 기회일 수도 있지 않을까.

“살기 바쁘니 어쩔 수 없잖아”라는 친구의 너스레가 들려온다. 하지만 내자신에게 빌어 본다. “A타입 한상 배달해 주세요”하지 않게 되길….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까.

이윤옥(경기 고양시 일산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