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응백,여성작가작품 평론 곁들여 「그 살벌했던…」펴내

  • 입력 1997년 9월 23일 07시 54분


그날이 오면 사라지리라. 사라져 자신의 존재를 완성하는 이율배반적인 페미니즘문학. 이문열의 화제작 「선택」을 계기로 문단은 한때 페미니즘논쟁으로 달아올랐다. 결과는 아쉽게도 너저분한 인신공격으로 일관, 「한때」의 해프닝으로 끝나버린 감이 없지 않지만. 그러나 이 시대의 화두 페미니즘문학을 이대로 지나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한 젊은 문학평론가가 그 논의의 문을 활짝 열었다. 최근 페미니즘소설집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이레)을 엮어 펴낸 하응백 경희대교수(36·국문학). 박완서 오정희 은희경 전경린 신경숙 윤영수 차현숙 이혜경 이청해 김형경 조경란 등 내로라하는 여성작가 11인의 작품을 모성 가족 결혼 정체성 등 주제별로 나누어 수록했다. 수록작품의 탁월한 문학성도 문학성이지만 함께 실린 하교수의 페미니즘문학론과 구체적인 작품론도 이 소설집에 제격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좀 의아해할 것이다. 흔히 생각해왔던 「전투적 대결의 장」으로서 페미니즘의 냄새가 아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입니다.남녀를 대결구도에 놓는 작품들은 속류 페미니즘이 아닐까요』 그래서 하교수는 작품선정에서도 「문학성」을 최고의 기준으로 삼았다. 『페미니즘이라고 의식하지 말고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으로 읽다보면 「아, 이게 바로 페미니즘이구나」하고 느낄 겁니다』 하교수가 각별히 애정어린 눈길을 주는 작품은 표제작인 박완서의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 오정희의 「옛우물」, 은희경의 「빈처」, 김형경의 「민둥산에서의 하룻밤」 등.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여성의 모성적 가치, 남녀간의 화해와 사랑 등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속류가 아닌 참 페미니즘이라고 평가한다.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가란 질문에 『이 책을 준비하면서 「내가 가부장적」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다』며 웃는 하교수. 그리곤 최근 말발이 선 젊은 여성작가들에게 뼈있는 한마디를 내던졌다. 『사소한 일상이나 가정이야기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사회 역사와 같은 큰이야기에도 매달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남성, 여성작가라는 구분도 사라지게 되겠죠. 박경리선생을 두고 누가 여류작가라고 말하던가요』 〈이광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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