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슛 골인」에 열광하는 사람들
김도훈 헤딩패스… 이상윤 골키퍼 제치고 슛, 골인, 골∼인….
지난 12일 저녁 8시40분쯤 월드컵 축구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 한국과 우즈베크의 승부가 극적으로 갈리는 순간. 텔레비전 중계 카메라는 재빠르게 우즈베크 골대 오른쪽 뒤편 관중석으로 앵글을 돌렸다.
붉은 유니폼을 입은 5백여명의 응원단이 빨간 머플러나 손수건을 흔들면서 꽃종이 두루마리휴지를 하늘높이 내던지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휘날리는 대형 태극기, 운동장을 울리는 북소리와 함께 「대한민국」을 외치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붉은 악마 서포터스」(Red Devil Korea Supporters Club). PC통신의 축구동호회와 프로구단의 팬들이 합쳐 만든 응원단의 이름이다.
「붉은 악마」는 지난 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신연호 김종건 등의 「벌떼 공격」을 앞세워 4강 신화를 창조한 한국팀에 붙여졌던 별칭. 응원단의 이름에 멕시코 4강신화의 부활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염원이 담긴 것. 서포터스는 단순한 응원단이 아닌 동호인으로 구성된 응원단을 가리키는 말.
지난달 10일 축구 동호인들이 브라질 대표팀의 내한 경기때 단체로 빨간 유니폼을 입고 응원을 했고 같은달 30일 한중 대표팀간 2차 정기전에서 「붉은 악마」란 이름을 처음 사용했다. 이때 모인 회원은 3백여명. 이후 월드컵 최종 예선 카자흐와 우즈베크전을 치르면서 관중석의 회원 수는 5백여명으로 불어났다.
회원 가입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대표팀 경기가 있을 때 빨간 윗옷을 입고 오기만 하면 회원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정확한 회원 수는 알 수가 없다.
회원들은 1318과 대학생이 주축을 이루지만 축구에 대한 국민적 사랑을 반영하듯 초등학생과 40대 직장인들도 있다.
회원들은 경기가 끝나면 관중석 청소를 마친 뒤 「뒤풀이 시간」을 갖는다. 1318들과 40대가 자연스럽게 축구전용구장의 필요성, 응원방법의 개선점 등에 대해 토론을 벌인다. 평소에는 한달에 한두 차례 정도 만난다. PC통신의 동호인방에서 날마다 채팅을 하는 이들도 있다. 1318세대들은 따로 만나 축구경기를 갖기도 한다.
이들의 불만은 일부 어른들의 한심한 관전 태도. 관중석에서 마구 깡통이나 종이컵을 던지고 선수가 조금만 잘못해도 큰소리로 욕하는 것 등…. 이 때문에 짜증이 났고 결국 그게 「붉은 악마」의 출범을 유도했다.
이들의 바람은 역설적이게도 자신들의 존재가 경기장에서 사라지는 것. 관중 전체가 한마음으로 응원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날 「붉은 악마」는 아무 소리없이 자취를 감춘다는 것이다.
28일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한일전에는 60여명의 붉은 악마들이 원정 응원을 간다. 이들의 얼굴에는 선수 못지않은 「필승 한국」의 결의가 서려 있었다.
〈이 헌기자〉
▼ 회원 절반이상이 1318세대
『축구는 기다림의 스포츠라 했나요. 골이 쉽게 나지 않기 때문에 골인순간 감동이 더 큰가 봐요』(김기태·관악고1)
『응원에 한번 빠지다 보면 마치 국가 대표팀의 열두번째 선수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요』(홍기철·경신중1) 「붉은 악마」의 회원 중에는 1318이 절반 이상이다. 대부분 틈만 나면 하이텔 천리안 등의 축구동호회 방에 들른다. 매일 밤 10시엔 대화방에서 축구에 대해 얘기꽃을 피운다. 요즘 동호회의 화제는 전용구장 건설.
조형도군(신천중3)은 『전용구장이 있는 포항이나 광양의 팬들이 축구경기를 구경한 자랑을 하면 기가 팍 죽는다』고 부러워했다.
「붉은 악마」의 1318들은 통신으로 연락을 해 한달에 한두차례 대학로 등에서 모임을 갖는다. 밥을 먹으면서 보다 응원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놓고 열을 올린 뒤 헤어진다.
「붉은 악마」에는 여성 회원도 있다. 국가대표팀의 경기엔 매번 30여명의 여성이 열렬한 응원을 벌인다. 하이텔에는 「숲속의 섬」이란 여성 동호인의 전용 방도 있다.
방배중 3년의 쌍둥이 김보연 보경 자매는 「붉은 악마」의 마스코트. 다른 회원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는 이들은 『축구를 사랑하면서 나라사랑을 알았어요』(보연) 『관중들을 잠시도 한눈 팔지 않게 만드는 박진감 때문에 축구에 푹 빠졌다』(보경)고 말한다.
「붉은 악마」들은 축구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없이 그저 축구장에 구경온 어른들을 보면 답답하다. 선수들이 조금만 실수를 해도 『쟤 빼』 『저 ×× 다리가 삐었나』 등 욕을 할 때면 화가 나기도 한다.
이들은 수업 때문에 일본 원정 응원을 못가는 것이 아쉽다. 그러나 한일전 승리는 자신한다. 우리 선수들이 일본 골문을 흔들 그 날을 이들은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성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