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명절 스트레스]부엌서 발동동 벌써 머리『지끈』

  • 입력 1997년 9월 13일 08시 22분


『차라리 명절이 없었으면…』 해마다 찾아오는 추석이지만 자질구레한 뒤치다꺼리를 도맡아야 하는 주부들은 마냥 즐거울 수 없다. 집집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명절 스트레스」로 인한 마음고생이 크기 때문. 무엇보다 「시댁만의 명절」이 주부를 숨막히게 한다. 가족들이 그 노고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도 서글프다. 세대에 따라, 처한 입장에 따라 스트레스의 원인도 천차만별. 주부 자신이나 남편 또는 다른 가족이 명절 때 주부가 괴로운 이유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그 해결방법의 실마리는 찾는 셈이다. ▼명절하면 부엌밖에 생각이 안난다〓대부분 주부들은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음식 장만하느라 숨 돌릴 새조차 없다. 방바닥에 몸 붙일 새 없이 상차리고 치우는 일을 반복한다. 평등부부상을 수상한 김모씨(32·경기 고양시)는 『명절 보내는데는 평등이 안통한다』며 『명절 3일전부터 나는 시댁에 가서 일만 하는데 남편은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으면 화가 난다』고 말했다. 『나와 상관없었던 조상 귀신을 위해 명절을 기름냄새 속에 지내다보면 처량하다. 남자들이 물린 상에서 여자들끼리 식사할 땐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이은영·27·서울 목동) ▼친정에 가려면 눈치가 보인다〓딸은 자식아닌가. 딸만 있는 집의 경우 명절을 외롭게 보낼 친정부모 생각에 눈물짓는 경우가 많다. 시댁은 서울, 친정은 지방에 있는 이상희씨(43·서울 역삼동)는 한번도 친정 부모를 명절에 뵙지 못했다. 맏딸인 그는 『명절마다 두분 생각을 하면 가슴아프다』고 말했다. ▼동서간 갈등이 더 괴롭다〓같은 며느리로서 서로에 대한 배려가 없으면 더욱 괘씸하다. 『어린 애들 때문에 일찍 내려오기 힘들다며 늘 느지막이 나타나는 막내 동서는 아기를 돌봐야 한다는 이유로 일하는 시늉만 한다』(박미선·35·서울 명일동) 『직장에 나가는 막내 동서는 돈만 갖다주면 자기 몫은 다 한줄 안다. 지난해에는 특근이 걸렸다며 아예 명절 당일에 나타나서 봉투만 내민 뒤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어 서운했다』 (홍수연·50·경기 이천시) ▼나몰라라 하는 남편〓집에서는 가사를 돕는 남편도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에는 꿈쩍하지 않는다. 『시골까지 열시간을 나혼자 운전해 내려갔기 때문에 힘들어 죽겠는데도 남편은 도착하자마자 부인과 자식을 옷벗어 놓듯이 훌훌 털어버리고 혼자만 즐겁다. 친구들과 전화로 수다를 늘어놓고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화투치느라 정신이 없다』(문선숙·42·서울 일원동) ▼얄미운 시누이〓친정와서 올케만 부려먹는 시누이가 예쁠 수는 없다. 시누이만 손님처럼 싸고 도는 시어머니한테도 섭섭하기는 마찬가지. 『막내 시누이는 일찌감치 내려와 종일 놀면서 올케들이 음식 만드는데 손하나 까딱 안하다 추석이나 바로 전날 송편과 전 등을 한아름 싸들고 시집으로 가버린다』(김미현·39·서울 봉천동) ▼맏며느리는 서럽다〓그래도 잠깐씩 머물다가 가는 사람은 낫다. 며칠씩 친척들로 북적대는 큰 집의 안주인은 괴롭다. 『명절 며칠 전부터 손님맞을 준비를 위해 집안 대청소를 하고 동서들이 가버린 뒤에도 혼자 뒷정리를 한다. 연휴내내 머리가 아프다』(정민희·48·서울 상도동) ▼시어머니는 손님같은 며느리가 밉다〓제 것만 챙기는 신세대 며느리를 대하는 시어머니들도 불만이 많다. 『맞벌이부부인 아들 내외는 육아때문에 내 집에 함께 산다. 평소에는 시간이 없어 그렇다치고 명절 때도 모든 일을 내가 도맡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친척들 보기도 그렇고…. 명절 후 한동안 집안 분위기가 서먹하고 침울해진다』(강인숙·68·대구 송현동) 『지방서 올라오는 며느리는 매번 떠날 때쯤 「생색내듯이」 봉투를 내밀어 자존심이 상한다. 교통난을 핑계로 당일 새벽에 와서는 차례지내기 바쁘게 집에 돌아갈 생각만 하면서도 머무는 동안 한번도 환한 얼굴을 하지 않는다』 (지순희·64·서울 잠실동) ▼밥값도 안하는 친척들〓최소한의 인사치레도 안하는 친척도 속을 뒤집어 놓는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고기 한칼이라도 제대로 된 선물을 가져오지 않고 적당히 「때우려는」 태도가 밉다』(박진숙·50·서울 역삼동) 〈고미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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