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황순원 사람들」 모였다…제자들 「옛사랑…」펴내

  • 입력 1997년 8월 28일 08시 48분


원로작가 황순원씨(82). 단편 「소나기」의 수채화처럼 명징한 이미지와 보신탕을 연결시키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는 열렬한 보신탕 애호가다. 언론은 물론이고 문단행사에도 좀체 얼굴을 내밀지 않을만큼 몸가짐이 엄격한 그지만 보신탕집 나들이는 왁자하다. 24년간 교수로 몸담았던 경희대 국문과의 몇몇 제자들이 80년대초부터 스승과 「보신탕모임」을 해왔다. 소설가 시인 국문과교수 등 모임에 참여하는 제자 대부분이 문학을 업으로 삼았지만 문학얘기는 오히려 「금기주제」였다. 자칫 「계파행동」으로 비쳐 스승을 욕되게 할까봐서였다. 그러나 2년전 어느날의 회동에서 누군가 제안을 했다. 『선생님을 중심으로 책을 한 번 내보자』고. 『선생님 연세가 많아지면서 저희들이 초조해진 거죠. 뭔가 우리 모임의 흔적을 남겨야 하지 않을까 하고…』 기획을 맡은 소설가 박덕규씨의 설명이다. 책의 방향은 「이제 막 문학공부를 시작한 사람들이 현대문학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작품과 해설을 함께 싣는 입문서」로 잡았다. 황씨의 작품중 「소리그림자」(65년작) 「잃어버린 사람들」(56년작)을 머리에 세웠고 제자소설가 전상국 김용성 조해일 조세희 이유범 고원정 이연철 유재주 박덕규 김형경 이혜경 서하진씨의 발표작에서 한편씩을 골라냈다. 문학평론가인 김종회 신덕룡 강웅식 문흥술 하응백 한원균씨는 해설을 맡았다. 책제목은 「옛사랑으로 돌아오라」(유니스타 간). 스승의 시 「옛사랑」에서 뽑은 이 제목은 「첫사랑의 두근거림을 갖고 문학 앞에 서자」는 모두의 바람을 담은 것이다. 한 스승에게 배운 제자라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조세희와 「최후의 계엄령」의 고원정의 거리만큼 각각의 작품세계는 멀어 보인다. 그러나 나이와 문학적 체취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스승을 중심으로 그들이 그리는 동심원은 있다. 산업화시대의 소외된 민중(조세희작 「클라인씨의 병(甁)」)이든 신분차이를 뛰어넘어 사랑을 이루려는 가련한 남녀(황순원작 「잃어버린 사람들」)든 「순결한 인간성을 지향하다 상처받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닮음꼴은 문체에서 더 두드러진다. 『간결해야 한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어야 한다』는 황씨의 가르침이 제자들 소설 곳곳에 배어있다. 그러나 책을 만든 제자들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조심스럽다. 『선생님은 늘 「작가는 작품으로만 말해야 한다」고 하셨죠. 책출간이 가르침을 거스르는 것이 될까 두렵습니다』 〈정은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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