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학자 주강현 지음)
초여름밤, 수초 우거진 창녕 우포늪.
늪은 달빛이 무너져내려 희끄무레한 청색으로 빛나고 어둠 속의 수초더미는 웅크린 포유동물처럼 숨을 죽인다. 마지막까지 인간의 손길을 거부하며 회갈색의 음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무섬」의 진흙탕….
그러나 늪은 생명의 시원. 「어머니의 자궁」 깊숙이 수생식물이 자라고 온갖 새들이 보금자리를 틀고 곤충들이 애벌레를 키우는, 생산과 번식의 축제로 웅성거리는 곳.
여기까지가 우리가 늪에 대해 알고 느끼는 거의 전부. 늪의 「인문학적 얼굴」은 빠져 있다.
「늪에는 토속신이 살았다. 백제의 익산 미륵사지, 신라의 황룡사지가 모두 토속신인 이무기가 살던 늪이었다. 왜 하필 늪을 메워 불사를 이루고자 했을까. 토속신앙의 터전이었던 늪과 당시 외래종교였던 불교와의 대결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는지…」.
민속학자 주강현씨(42). 「금줄 없이」 「도깨비 없이」 자라난 세대에 우리네 「된장의 썩은 냄새」를 현재의 언어와 느낌으로 되살려온 그가 책을 냈다.
「주강현의 우리문화기행」(해냄간). 봄 여름으로 나누어 가볼 만한 명소와 유적지를 인문학적 상상력에 품었다.
그는 백제의 고도, 부여의 폐허에서 莊子(장자)의 말을 떠올린다. 「고요히 있으면 성자(聖子)가 되고 움직이면 왕(王)이 되나니…」.
백제가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는 분명 왕국이었으나 멸망후 세인의 무관심과 오랜 정적(靜寂), 그리고 역사에서 가려짐은 백제를 성자의 경지로 이끌었다는 것.
그래서 그는 성주사를 늘 먼저 찾는다. 인적조차 드문 폐사지(廢寺址)의 황량함에서 「잘 간직된」 멸망의 순간을 읽는다.
「가슴 시리도록 휑한 벌판에 탑들만 남아 있어 마지막 순간까지 당대(當代)를 증언하리라는 처연한 결의를 보는 듯하다」.
「서풍(西風)」에 주눅들어온 우리들에게 「동풍(東風)」의 자부심과 긍지를 일깨워온 그. 이번 답사에서도 한때는 「그 흔하디 흔했던 보릿짚모자」에 대한 진한 향수를 드러낸다.
그는 섬진강변의 이름난 옛살림집 운조루에서, 마루밑에서 잠자고 있는 바퀴를 보고 흥분한다. 몇백년된 생활용품이 「골동품」이 아니라 원래 있던 자리에 고스란히 있음으로써 오랜 기갈이 채워짐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나아가 살림살이 너머에 숨쉬고 있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본다. 장손이 죽으면 사랑방에 묻어놓았던 태반의 재를 꺼내어 다시 관에 넣어주는 집안의 내력을 꼼꼼히 살피는 연유다.
「태는 장손과 더불어 집안에서 평생을 살다가 죽음과 함께 합쳐진다. 태와 더불어 무덤으로 되돌아감은 그네들 운명의 바퀴가 쉼없이 윤회하고 있음이 아닌가」.
유형의 문화에서 이를 잉태시킨 무형의 문화를 성찰하는 그는 그러나, 지식의 늪에 빠져 느낌을 놓치는 것을 경계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듯, 모든 것을 잊어라. 느껴라. 그래야만 우리 문화의 진정한 화두를 깨달을 수 있을지니…」.
〈이기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