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건축/부석사 무량수전]건축가가 본 관점

  • 입력 1996년 12월 21일 19시 52분


한국문명에 끼친 중국의 영향은 어디까지인가. 같은 한자문명권이나 중국과 한국과 일본은 서로 다른 문명의 길을 걸어왔다. 그것은 도시와 건축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일본이 중국의 도시를 거의 그대로 따른데 비해 삼국시대부터 우리는 스스로의 것을 만드는 노력을 거듭하였다. 삼국통일 후 당나라의 압도적인 영향하에서도 경주는 장안과 다른 특유의 도시형식을 이루었다. 절이 별처럼 가득하고 탑이 기러기떼 같이 가득하던 원경주는 다섯 산과 형산강 사이에서 시작하여 건천을 통해 내륙으로, 울산을 통해 바다로 이어진 형이상학적 미학의 도시였다. 유가의 논리로 계획된 6백년 전 서울도 주례의 고공기를 규범으로 하였으나 북경과 다른, 자연과 어우러진 유기적 형상의 도시였다. 한국의 도시와 건축은 중국으로부터 문법을 전수하였으나 최종적 완성에 있어서는 우리고유의 것을 이루었다. 건축에 있어서도 삼국시대이후 한국건축은 중국의 흐름에 상관하지 않은 독자의 세계를 구축해왔다. 건축과 도시의 문법은 중국 일본 한국이 같으나 각기 다른 건축과 도시를 이루고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삼국시대에 완성된 한국건축의 논리와 미학이 최고의 완성된 모습을 실현한 한국의 천년건축이다. 먼산의 흐름까지를 하나로 한 석축기단으로 산기슭에 인공의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집을 자리하게 하였다. 자유자재로운 기단의 형성과 건물의 배치는 자연과의 깊은 교감으로부터 이루어진 것이다. 어디에서건 그 자리가 자연과 가람의 중심이 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아름다운 건축이 천년의 시간을 갖게 한 것은 극도로 절제된 구조형식에 있다. 무량수전은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는 구조 그 자체이다. 기단과 건물의 배치가 자연의 원리와 하나가 되었듯이 구조형식 그 자체가 바로 건축의 공간형식이고 건축미학의 기초였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감동케 하는 것은 직선의 목재만으로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곡선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점이다. 직선의 목재가 모여 이룬 곡선의 미학은 한국예술의 정수인 기하학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이다. 한국건축의 아름다움은 자연과 교감하는 배치, 절제된 구조형식, 그리고 직선의 부재가 모여 이루는 유기적 질서의 미학에 있다. 이런 한국건축 최고의 것이 바로 무량수전이다. 무량수전을 보고 가슴깊은 곳이 열리지 않으면 한국인이 아니다. 무량수전은 중국과 다르고 일본과 다른 한국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우리의 천년건축이다. 무량수전을 깊이 알 수 있으면 한국의 건축, 한국의 미술을 아는 것이다. 김 석 철〈아키반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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