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 교수 '486' 비평]주역이 될것인가 '낀세대'될것인가

  • 입력 2002년 4월 1일 18시 45분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 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요절한 시인 기형도가 남긴 ‘대학 시절’이다. ‘486 세대’라면 누구에게나 1980년대 초반 우울했던 대학 생활을 떠올리게 하는 시다.

386 세대에서 어느새 486 세대로 변한 이들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걸까. 인생의 반(半)고비인 마흔을 넘었다고 해서 이들이 자신의 색깔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특히 정치권과 문화계에서 활동하는 486 세대를 보면 여전히 위풍당당하다. ‘운동권 세대’답게 진보와 개혁에 대한 열망이 이들 삶을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다.

이런 특징은 서구의 ‘68 세대’와 유사하다. 68 세대는 앞선 세대와는 달리 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개성을 끝까지 간직해 나간 세대다. 그러기에 486 세대는 아직도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 이제 다시 일어서는” 희망을 꿈꾸는 정태춘의 노래를 즐겨 부른다.

하지만 동시에 486 세대 대다수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조직의 중간간부로 기성 세대에 급속히 편입되고 있기도 하다. 젊은 세대의 랩 뮤직과 물들인 머리가 내심 낯설어지고, 자신도 모르게 변화가 서서히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징표다.

흐르는 세월 속에 변하지 않는 게 어디 있으랴마는 중요한 것은 그 방향이다. 삶의 방향이 상실될 때 인간의 정체성은 작지 않은 혼란을 겪는 법이다. 분노와 저항의 세대였던 만큼 마흔을 훌쩍 넘긴 486 세대의 내면 풍경은 실로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런 상반된 경향이 공존하는 것이 오늘날 486 세대의 자화상이다. 모름지기 40대는 그 사회의 중심 세대다. 486 세대는 과연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는 세대가 될 것인가. 아니면 구 세대와 신세대 사이의 ‘낀 세대’로 ‘잃어버린 세대’가 될 것인가. 이들의 또 다른 우상이었던 들국화가 노래하듯 ‘후회 없는 그것만이 내 세상’을 갈망해 온 이들의 꿈과 현실에 새삼 관심을 두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kimhok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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