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DNA검사 가정파탄 불렀다

  • 입력 2001년 12월 19일 17시 49분


유전자(DNA) 검사와 관련된 손해배상 소송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제기됐다.

서울 성동구 금호동에 사는 안모씨(38)와 아들(11), 딸(9)은 19일 잘못된 유전자 검사로 가정이 파탄났다며 사설 유전자검사회사인 ㈜아이디진을 상대로 3억여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지법 동부지원에 냈다.

평소 딸이 자신을 닮지 않았다고 여겨 온 안씨는 지난해 3월 친자확인 전문업체 ㈜아이디진을 찾아가 두 자녀의 유전자 검사를 의뢰했다. 의대 법의학연구소보다 검사기간이 짧고 비용이 50만원이나 싸며 두 가지 샘플(머리카락과 손바닥 지문)을 검사하기 때문에 정확도가 높다는 시사잡지의 광고를 보고 찾아간 것이다.

지난해 3월29일 나온 검사결과는 충격이었다. 아이 둘 다 엄마의 자식인 것은 틀림없지만 아빠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정성껏 키워온 두 아이의 진짜 아빠는 누구란 말인가?’

허탈해진 안씨는 이후 아내에게 직접 묻지는 못하고 손찌검을 해댔고 가정불화 끝에 두 사람은 결국 별거에 들어갔다.

안씨는 “혹 검사결과가 틀릴 가능성은 없느냐”고 ㈜아이디진에 재확인을 요구했으나 “아무 오류가 없으며 검사결과는 정확하다”는 말만 들었다.

이혼을 결심한 안씨는 올해 8월 검사결과를 아내에게 이야기했으나 아내는 결백을 주장했다. 안씨 부부는 9월 고려대 의대 법의학연구소에 재검사를 맡겼다.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왔다. 틀림없이 두 사람의 아이들이라는 것.

안씨는 이후 ㈜아이디진이 엉뚱한 사람의 머리카락을 검사했다는 사실과 실시한다고 설명했던 두 가지 검사 중 손바닥 지문 검사는 생략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특히 이 회사가 문제가 되자 안씨와 관련된 검사기록을 모두 파기한 사실도 드러났다.

현재 안씨는 아내와 아이들을 의심하고 학대했던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으며 아내는 남편한테 다시 마음을 두기 어렵게 됐고 두 아이는 대인기피증에 걸렸다.

소송대리인인 신현호(申鉉昊) 변호사는 “한 가정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유전자 검사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신중해야 하는데도 샘플이 바뀌었는지도 모를 만큼 소홀히 다룬 ㈜아이디진 측의 잘못이 크다”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이어 “전문 지식이 없는 개인이 마음대로 유전자검사 회사를 만들어도 규제할 길이 없는 현실 때문에 이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덧붙였다.

98년 국내에 등장한 친자감식 업체는 현재 20여개가 있으며 한 해 1000여건의 유전자 검사가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회사마다 유전자 감식방법이 다르고 결과를 해석하는 방법도 달라 결론에서 많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

고려대의대 법의학연구소 황적준(黃迪駿) 소장은 “미국은 연방수사국(FBI)과 혈액은행이 유전자 검사업체의 숙련도와 검사방법 등에 대한 인증제도를 도입해 엉터리 검사를 막고 있다”면서 한국에도 유전자 감식을 규제할 수 있는 법이나 가이드라인이 빨리 만들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아이디진 정연보 대표는 “검사원이 샘플을 바꿔 검사하는 실수를 해 잘못된 결과가 나온 만큼 법이 지우는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이호갑기자>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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