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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5월 30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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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주전' 따로 없다 경쟁체제로 무장
‘2002월드컵 한국호’를 이끌 거스 히딩크 감독(55)의 항해 계획은 ‘약육강식’이란 네자로 요약된다. 한치의 허점도 용납되지 않는 냉엄한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이 단순한 ‘정글의 법칙’에 충실히 따라야만 한다는게 그의 생각. 선수 선발에서 대표팀 운영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법칙을 적용해 한국축구의 수준을 업그레이드시켜 ‘월드컵 16강숙원’을 이뤄낸다는 각오다.
먼저 선수선발 및 기용은 철저한 실력우선주의. 2001컨페더레이션스컵 대표팀 명단을 발표할 때 ‘벤치를 지키는 선수는 필요없다’라며 빅리그에서 뛰고 있는 안정환(이탈리아 페루자)과 이동국(독일 브레멘)을 제외시켰다. 빅리그가 아니더라도 매경기에 출전해 90분을 충분히 소화시키는 선수만이 필요하다는 게 이유. ‘속빈’ 스타플레이어보다 ‘꽉찬’ 일꾼을 찾겠다는 뜻.
주전자리도 미리 정하는 법이 없다. 훈련과 연습경기를 통해서 가장 컨디션을 좋게 유지하는 선수가 주전으로 나선다. 이 때문에 대표팀 훈련분위기는 항상 긴장의 연속이다. 또 어이없는 실수도 전혀 용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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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이 대표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2002월드컵때까지 치열한 ‘선의의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상황을 만들어 가고 있다.
대표팀 운영도 마찬가지. 국내에서는 최고의 선수로 팀을 구성했다지만 국제무대에선 한국은 여전히 약팀인게 현실. 히딩크 감독은 올초 한국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뒤 “한국팀은 강팀을 만나면 약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한 뒤 “세계의 강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선 강팀과 경기를 많이 하는 수 밖에 없다”고 말해왔다.
히딩크 감독이 앞으로 강팀들과 평가전을 많이 계획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맥락. 8월 유럽으로 전지훈련을 떠나는 대표팀이 체코와 평가전을 하고 10월엔 북미전지훈련에서 미국 멕시코와 평가전을 벌인다. 또 아르헨티나 네덜란드 포르투갈 독일 등 세계축구의 강호들을 국내로 불러들여 평가전을 계획하고 있다. 2002년 월드컵 직전까지 프랑스 등 세계최강과의 대전은 계속된다.
히딩크 감독은 “눈높이를 세계수준으로 맞춰야만 한계단 뛰어오를 수 있다. 우리보다 월등한 팀과 싸우다보면 자연히 강팀으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히딩크 감독의 ‘약육강식론’. 시나리오가 아닌 현실로 점차 다가오고 있다.
<양종구기자>yjongk@donga.com
▼일본-"공수균형 찾아라"…다양한 전술실험
스페인 세비야 공항 기내에서 프랑스 파리로의 이륙을 기다리던 중 일본 축구대표팀 필립 트루시에 감독이 펜을 집어들었다.그리고는 “어젯밤 스페인전 포메이션에 관한 얘긴데…”라며 기자에게 말을 꺼냈다.
탑승권 뒷면에 동그라미로 GK부터 포진도를 그려나갔다. 3-6-1포메이션(그림 2)이었다. 양 사이드 선수가 전날밤 스페인전(그림 1) 때보다는 앞으로 배치됐다. “이게 내 시스템이다. 이 세명이 공격의 핵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포워드(FW) 바로 뒤에 일렬로 늘어선 3개의 동그라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스페인전에서는 수비에 치중한 경기로 맞설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런 전술로는 선수들이 경험을 쌓을 수 없다. 다음 캐나다전은 공격적으로 나설 것이다. 이 포진(그림 2)이다. 설사 질 우려가 있다 할지라도….”
모든 것을 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앞서 대합실에서 벌어졌던 일 때문이다. 파리 생제르맹의 스카우트 담당자가 한가지 작전을 제안했다. 둘은 물론 아는 사이다.
예를 들어 왼쪽부터 공격할 때 왼쪽 수비가 앞으로 올라가고 나머지 수비수 전체는 왼쪽으로 이동한다. 수비 때는 5-4-1, 공격 때는 4-5-1로 나서는 변형 포메인션(그림 3)이다. 스페인전에서 극단적으로 수비 전술을 펼쳤던 일본팀을 보고 난후 공격을 보다 살릴 수 있는 방안으로 제시한 것이었다.
트루시에감독은 그 제안을 모두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일본 수비진의 현실을 하소연했다. “유럽팀은 양 사이드를 매섭게 활용해 공격한다. 양 사이드에 미리 한명씩 배치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다. 아울러 중앙 수비에도 3명이 필요하다.”
세계 톱 클래스를 상대할 때 일본이 버티기 위해서는 수비에 5명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그 스카우트 담당자의 제안은 일본에는 맞지 않다는 답변이었다.
공격이 자기 스타일이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두터운 수비를 강조하고 있다. 한 감독이 상반된 얘기를 하고 있다. 공격적으로 싸울 것인가, 수비 위주로 싸울 것인가. 그 사이의 어딘가에 있을 정답을 찾아내는 일이 감독에게 주어진 지극히어려운문제중의하나다.
문제의 본질은 역시 ‘공수 밸런스’. 해답을 찾아내면 세계 톱 20을 목표로 한다고 선언한 트루시에의 일본대표팀은 잰걸음을 걸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수렁에 빠질 위험도 있다. 정말 중요한 순간이다.
주바치 신이치/아사히신문 운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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