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후견인

  • 입력 2001년 4월 29일 18시 51분


지난해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로 ‘파인딩 포레스터(Finding Forres―ter)’가 있다. 문학과 농구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흑인 소년과 한때 퓰리처상까지 받았던 은둔 노(老)작가 사이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다. 소년은 작가에게 글쓰기 수업을 받으면서 흑인이라는 굴레를 극복하고 삶을 헤쳐갈 힘을 얻고, 작가는 소년을 통해서 수십 년간의 은둔생활을 떨쳐버리고 세상에 다시 나설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다. 작가로 분(扮)한 숀 코너리의 카리스마가 인상적이었던 이 영화에서 작가는 소년에게 일종의 ‘멘터(mentor)’였다

▷서구사회에는 멘터가 일종의 사회적 문화적 장치로서 정착돼 있다. 우리말로는 ‘후견인’쯤으로 번역될 수 있는 이 멘터는, 인생의 중요한 국면에서 방황하는 젊은이에게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흔히 평생 지속된다는 멘터―제자 관계는 개인적으로는 일종의 ‘정신적 입양’이라고 할 만하고, 크게는 건강한 가치를 후대에게 전수해주는 일종의 사회적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다.

▷엊그제 일본의 오히라 미쓰요(大平光代·36)변호사가 잠깐 방한해 경기 의왕시 고봉정보통신중고교(옛 서울소년원)에서 강연을 했다. 그녀는 자살미수에다 불량소녀, 야쿠자의 아내, 호스티스 등 젊은 나이에 이미 온갖 세상풍파를 다 겪고서 변호사가 된 입지전적인 여성이다. 그녀의 책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를 보면, 호스티스 시절의 그녀를 바른 길로 이끌어준 인물인 오히라 히로사부로(大平浩三郞) 얘기가 나온다. 이를테면 히로사부로씨는 그녀의 인생을 멋진 역전 승리극으로 만들어준 멘터였던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그런 멘터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 학창시절 문학서적 한 권 여유 있게 접하지 못하는 청소년들, 한도 끝도 없는 무한경쟁에 내몰리는 어른들,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문화…. 이런 한국적 토양에선 서로 다른 세대가 인간 대(對) 인간으로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어른들이 멘터 되기를 포기해선 안 된다. 우리 사회에도 훌륭한 멘터가 많아질수록 세상은 그만큼 나아질 테니까.

<송문홍논설위원>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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