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보험아줌마들의 슬픔을 아시나요?

  • 입력 2000년 6월 12일 13시 49분


"우리들은 말품, 다리품 팔면서 개처럼 지내도 퇴직할 때 아무것도 받지 못합니다…”

전국 비정규직·여성노동자대회가 열린 지난3일. 한 아줌마가 연단에 올랐다. 마이크를 잡은 지 10분. 그의 울분은 그칠 줄 몰랐다. 그는 누구이길래 '개처럼 일해도' 퇴직금조차 받지 못할까. 그의 이름은 보험설계사. 사람들은 통상 그를 '보험아줌마'라고 부른다.

▼보험설계사는 개인사업자?▼

보험설계사는 법적으로 노동자 신분이 아니다. 따라서 노동자로서의 기본적인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 기본급도 없다. 보험혜택이 없다. 또 출산휴가, 생리휴가 등은 꿈도 꾸지도 못한다. 대부분 여성인 보험설계사들은 그동안 고객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모든 경제적인 손해는 개인에게 돌아간다.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보험설계사는 말 그대로 개인사업자인가?

우선 이들은 개인사업자이지만 회사측으로부터 출·퇴근을 통제받고 있다.

이주연 서울지역여성노동조합 교육상담부장은 “여타 회사와 같이 출근일 수에 따라 유무형의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보험설계사를 개인사업자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영업소 내에서 회사간부의 지휘와 명령을 따르지 않아도 불이익을 당하기는 마찬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같은 직종의 다른 보험사로 옮기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 전직동의제도 때문이다. 보험설계사가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로 옮길 때 전 직장에서 동의를 얻어야 한다. 보험설계사가 관리하는 고객이탈과 회사정보가 새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보험회사들은 ‘공정경쟁질서 유지를 위한 협정’으로 전직동의제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보험설계사들은 전직동의제도를 현대판 ‘노비문서’라고 평한다.

현실적으로 따져볼 때, 보험설계사들은 개인사업자도, 노동자도 아니면서 피해만 보고 있는 셈.

▼설계사 60%는 월소득 100만원도 안된다▼

보험설계사들은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능력만큼 벌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험설계사들이 최소한의 계약실적을 충당하기 위해 본인, 가족, 친척, 친구 등을 보험가입시키는 것은 이미 상식이 됐다. 이주연 교육상담부장은 “회사측이 보험모집수당을 유지관리수당으로 분할지급하면서 원래 모집인이 받던 금액의 6분의 1만 지급하거나 아예 주지 않는 회사도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조사에 따른면 실제 월 100만원 미만인 소득자는 전체 보험설계사 중 59.3%, 100~200만원 소득자가 24.6%에 달하고 있다. 억대의 연봉을 받는 보험설계사들은 전체의 0.5%도 되지 않고 열악한 근로조건이지만, 많은 이들이 억대 연봉을 꿈꾸며 ‘여성부업전선’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보험설계사들 권리찾기 나섰다▼

지난달 16일 전국여성노동조합연맹 서울지역여성노동조합 산하에 보험설계사 몇몇이 강동지부를 결성했다. 비정규직, 보다 정확하게는 개인사업자로 규정되어 있는 보험설계사들이 권리찾기에 나선 것. 이후 조합원은 하루하루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11일 강동지부 조합원만 200여명에 달하고 있다. 16일에는 교보생명과 첫 교섭을 가질 예정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보험설계사들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 △미지급수당 지급 △퇴직금과 근속년수에 따른 기본급 지급 △수당체계 개선 등.

이에 대해 여성노조 한 관계자는 “개인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는 미명하에 착취당하던 노동자들이 이제 거리로 나서고 있다. 자신의 처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 비정규직들이 많지 않겠는가”라고 덧붙였다.

신은/동아닷컴기자 nsilv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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