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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10월 1일 19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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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클레인 기사는 가고 없었다. 연못은 폭격이라도 당한 것처럼 그저 푹 패어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무슨 재앙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나는 아직도 나에게 일어난 일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부정한 아내들이 어떻게 되는지. 그 남편들은 장차 어떻게 행동하게 되는지. 그 여파는 생의 어느 선까지 미치는지. 그들의 아이의 생은 어떻게 변하는지. 때로 남편들은 혼외정사를 한 아내들을 살해하기도 한다. 혹은 그 간부를 살해하기도 한다.
호경은 방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수가 잠들자 나는 수의 곁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자정이 되자 호경이 방문을 열더니 인질다루듯이 나를 끌어내 차에 태웠다.
그는 아무말 없이 달리기만 했다. 차는 너무나 빨리 달리는 것 같았다. 밖에는 바람이 불고 있었다. 마지막 나뭇잎을 떨어뜨리기 위해 부는 깊은 가을의 차갑고 거센 바람이었다. 그 시간에 시골길은 다가오는 차 한 대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금세라도 몸을 일으켜 달려들 듯한 검은 산과 검은 숲, 길가의 집들… 구름과 바람에 날리는 듯 빠르게 지나가는 별들. 별들이 너무 밝아 하늘은 밝은 잉크빛이었다. 달은 보이지 않았다. 달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일의 증인처럼. 나는 호경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싶었다. 상처를 입혀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길 위로 날듯이 빠르게 차를 몰았고 나는 공포에 질리고 있었다.
어촌 마을 앞 좁다란 해안길을 한참 동안 달리다가 고기잡이 배를 만드는 작은 조선소를 지나 작은 방파제 앞에서 호경은 차를 세웠다. 무심코 방파제쪽으로 눈을 돌린 나는 아, 하는 신음 소리를 냈다.
거기 방파제의 어둠 속에 일고여덟 마리쯤의 검은 염소 무리들이 두 눈에서 일제히 푸른 빛을 발하며 서거나 앉거나 옆으로 누워 있었다. 한결같이 다 자란 성숙한 염소였고 몸이 유난히 검고 커다랗고 표정이 태연한 염소들이었다. 그들은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듯 한결같이 나를 바라보았다.
초록의 발광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인광처럼 파르르 떨렸다. 나에게 무슨 비밀스러운 전언이라도 보내려는 것처럼… 그 발광체의 숫자만큼 손과 발과 가슴에 긴 못이 박히는 듯했다. 고통스러웠다. 호경에게 용서를 빌고 싶었다. 그러나 몸은 꼼짝도 할 수 없었고 나에게 음성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호경은 염소들을 보더니 다시 차를 뒤로 빼 내달렸다. 차가 곁을 지나가는 동안 염소들은 일제히 차의 헤드라이트가 비치는 방향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누구야?
―….
―어느 놈이야?
그는 다음 마을의 방파제에 차를 세우고 물었다. 그가 거친 동작으로 나를 차에서 끌어내 방파제로 데리고 가 바닥에 앉혔다. 그때 나는 알았다. 규에 대해 절대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순간 내 인생 전체가 흔하고 불결하고 우스꽝스러운 추문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글:전경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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