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07)

  • 입력 1997년 9월 26일 07시 35분


제9화 악처에게 쫓기는 남편 〈33〉 『편지를 가지고 들어온 내시장은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부마 나리, 지금 밖에는 열 명의 백인노예들이 찾아와 저에게 이 편지를 나리께 전해드리라고 합니다. 그들은 마루프님의 짐을 가지고 온 백인노예들인 바, 주인께서 공주님과 결혼하셨다는 소문을 듣고 이리로 찾아왔다고 합니다」하고 말입니다』 공주가 이렇게 말하자 듣고 있던 왕과 대신은 깜짝 놀라는 표정들이 되었다. 공주는 거침없이 계속했다. 『그래서 제가 그 편지를 받아 읽어보았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오백 명의 우리 백인노예들의 상전이신 마루프님께. 급히 아뢰올 말씀은 다름이 아니라, 주인님과 작별한 뒤, 저희 일행은 흉악한 아라비아인들의 습격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놈들은 이천 기나 되고 저희들은 고작 오백 기밖에 되지 않았습니다만, 저희들은 온 힘을 다하여 놈들과 대항하였습니다. 이 혈투로 길이 막혀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으므로 삼십 일 동안이나 예정 날짜보다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전투를 치르는 동안 저희들은 피륙 이백 짝을 빼앗기고, 백인노예 오십 명의 목숨을 잃었습니다」』 듣고 있던 왕이 소리쳤다. 『그러니까 짐이 있기는 있었구만?』 그러나 공주는 왕의 이 말에는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이 기별을 받은 남편은 외쳤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미련한 놈들이 또 있을까? 그까짓 이백 짝의 상품 때문에, 그래, 아라비아인들과 싸움을 하다니? 이백 짝이라고 해봐야 단지 칠천디나르에 불과하잖아. 그것 때문에 이렇게 지체하다니? 그리고 그것 때문에 오십 명의 인명피해를 내다니? 안되겠다. 이렇게 된 바에야 내가 가서 일행을 서두르게 해야지. 아라비아인들에게 빼앗긴 물건 따위는 아까울 것도 분할 것도 없어. 사막을 여행하다 보면 흔히 있는 일이지. 놈들도 먹고 살아야 할 테니 희사한 셈 치지」』 듣고 있던 왕은 희색이 만면했다. 그러나 대신은 파랗게 질린 얼굴이 되었다. 공주는 계속해서 말했다. 『재물을 잃고 노예가 살해당했는데도 남편은 아주 침착하게 옷을 입고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남편이 나간 뒤 저는 곧 창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창 밖에는 편지를 가지고 왔던 남편의 백인노예 열 명이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달같이 맵시가 있고, 이천 디나르는 족히 나갈 옷들을 입고 있어서 아버님께서 소유하고 있는 노예들 중에는 그자들을 따를 만한 노예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남편은 어젯밤, 짐을 가지러 떠났습니다. 어제 저녁 때 아버님께서 저에게 하신 분부를 한마디도 남편 앞에 지껄이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만약 입 밖에 내어 말했다면 남편은 저와 아버님을 비웃었을 것이고, 마음속으로 저를 경멸하면서 저한테 정이 떨어지고 말았을 거예요. 이 모든 것이 저 의심 많은 대신 탓입니다. 터무니없는 말로 제 남편을 헐뜯었으니까요』 공주가 이렇게 말하자 대신은 완전히 기가 죽어 아무말 하지 못했다. 공주의 꾀에 넘어간 왕은 연방 공주를 달래면서 한편으로는 대신에게 화풀이를 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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