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원 기자] 종로2가 서울역 영등포 청량리 등 서울 도심의 새벽 풍경은 한바탕 난리를 치른 모습이다. 지하철역 주변에는 담배꽁초며 휴지가 널려있고 유리가 박살났거나 송수화기가 떨어져 나간 공중전화부스도 눈에 띈다. 도로는 씹다 버린 껌으로 얼룩져 있고 지하통로 벽에는 찢어지거나 모델의 눈을 도려낸 대형광고물이 다가선다.
한국통신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공중전화 파손건수는 16만5백31건, 보수비는 9억3천4백만원에 이른다. 유리파손이 15만3천6백9건으로 가장 많고 전화기 파손이 5천6백33건, 전화기 도난이 1천2백89건.
탑골공원 사직공원 용산가족공원 등 서울 주요 공원의 수도꼭지나 벤치는 멀쩡한 것이 거의 없다. 공원 화장실의 벽이나 문에는 지워도 지워도 되살아나는 것이 낙서다. 문의 손잡이나 걸쇠가 망가진 것은 셀 수도 없어 공중화장실을 이용하기가 겁난다.
하루 7만여명이 이용하는 지하철 5호선 천호역의 朴奇雨(박기우·46)역장은 『지하철 화장실의 이용실태만 본다면 시민의식은 영점』이라고 단언한다. 손을 씻으라고 만든 세면대에 발을 씻고 머리를 감거나 구토를 하는 일은 다반사다. 갈아입고 버린 속옷이나 생리대도 널려 있다. 『내집 화장실이라면 그렇게 하겠느냐』는 박역장의 반문이다.
땅속의 「허파」역할을 하는 지하철 환기구가 쓰레기통으로 변한지는 오래다. 지난해 서울의 9백49개 지하철 환기구에 버려진 담배꽁초 등 쓰레기는 2백t. 환기구 1개당 80㎏짜리 가마니 2.7개꼴의 쓰레기가 버려졌다.
지하철공사는 지난해 3월부터 55개 역에 우산을 비치, 지하철 이용객들에게 빌려준다. 빌려줄 때 신분증을 확인하는 역들의 회수율은 100%에 가깝지만 이름과 전화번호만 적고 빌려준 역들의 회수율은 20∼40%.
4호선 미아삼거리역에서 근무하는 李今僖(이금희·39)씨는 『우산을 빌려간 시민들에게 독촉전화를 여러번 해야 겨우 되돌아오는데 시민들이 적어놓은 전화번호가 결번일 땐 서글픔을 느낀다』고 말한다.
지하철공사는 3,4호선 개통에 맞춰 85년부터 전동차 안에 미니서가를 마련했으나 승객들이 그대로 들고 가는 바람에 한 달도 못돼 없애버렸다. 부산의 역사 대합실 서가 운영 역시 실패로 끝났다. 다투어 집어가는데야 대책이 없었다.
몇해전 전남 목포시는 대불공단 신시가지에 48억원을 들여 공원과 보행자전용도로를 만들고 가로수 공원수 등 22만그루를 심었다.그러나 한달새 그루당 3만원하는 동백나무 1백50그루를 비롯해 값나가는 나무 수백그루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전국의 공공시설물 훼손과 오염으로 인한 손실이 연간 7조원에 이른다는 한국개발연구원의 보고도 있다.
소설가 崔仁浩(최인호)씨는 『공공시설물이 수난을 당하는 이유는 내집, 내 가족만을 소중히 여기는 가족이기주의가 뿌리깊은 나머지 공유개념이나 공동선에 대한 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내 것과 내 가족을 챙기는 마음을 우리 동네와 사회 전체를 아끼는 자세로 발전시킨다면 일본 못지 않은 쾌적하고 청결한 사회환경을 누릴 수 있다』고 덧붙인다.
내 가족, 내 집의 경계를 허물고 「우리」를 향해 나아가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보이기 시작한 것은 희망적이다. 구파발역에서 일산 방향으로 통일로를 따라가다보면 오른쪽에 서울시 은평구 진관내동 한양주택단지가 나타난다. 단층 단독주택 1백95가구로 이루어진 이 마을의 특징은 담이 없다는 것. 담 대신 쥐똥나무 향나무 등을 단정하게 손질한 나지막한 생울타리로 경계를 삼고 있다.
이곳 토박이인 梁慶燮(양경섭·58)씨는 『지금까지 도둑이 들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며 『서로를 가로막는 담이 없어서 그런지 이웃간에 마음의 벽도 허물어진 것같다』고 말한다.
24일 시민 정원사제 첫 모임에 다녀온 주부 金賢子(김현자·50·서울 강동구 명일2동)씨는 거리에 나가 가로수를 손질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강동구가 올해 처음 도입한 시민 정원사 공모에 응한 사람은 40명. 이들은 구청에서 가로수 관리요령을 배운 뒤 플라타너스 포플러 은행나무 등 동네 가로수의 가지치기 거름주기 물주기 등을 맡게 된다.
한옥보존지구인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65의 12가구는 92년부터 골목길에 쓰레기를 치우고 등나무 덩굴장미 수세미 조롱박 등을 심어 길이 40m의 자연터널을 만들었다. 집집마다 분꽃 과꽃 등을 심은 화분도 내놓아 함께 즐긴다. 이 골목은 한여름이면 주민들이 평상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마을 사랑방이 된다.
전국을 내 집처럼 아끼고 돌본다면 우리가 사는 이 땅을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사진엽서나 카드속의 외국 풍경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