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여자의 사랑(37)

  • 입력 1997년 2월 9일 20시 13분


독립군 김운하 〈8〉 섰을 때에도 아슬아슬하게 보이던 치마는 자리에 앉자 더욱 위쪽으로 끌려 올라가 있었다. 그녀는 들었던 가방을 얼른 다리 위에 놓았다. 『못됐군요. 그런 말하려고…』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지도 않은데요, 뭘』 『그러니까 정말 빨개지잖아요』 『빨개지라고 한 얘깁니다. 잘 잡아요』 그녀는 한쪽 팔을 돌려 그의 허리를 잡았다. 『나는 독립군이라서 그렇다지만 그쪽은 독립군도 아닌데 왜 혼자 내려와요?』 그녀는 학과 사무실에 들렀다가 오는 길이라고 말했다. 『장학금이라도 받습니까?』 『아뇨』 『하기야 그건 학과 사무실에서 주는 게 아니니까. 등록금 고지서에서 미리 제하고 나오는 거지』 『그러니까 그쪽은 받는다는 얘기군요?』 『얘기가 그렇게 되는 거요?』 『그래서 일부러 한 얘기가 아닌가요?』 『사람 우습게 만드는 게 취밉니까?』 『그건 오히려 독립군 취미 같은데요?』 『지난번처럼 역까지 모시면 돼요?』 『아뇨』 그녀는 간단하게 말했다. 잠시 전 그의 오토바이를 타는 순간, 어디라고 정하지는 않았지만 역보다는 더 멀리 나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녀 마음 속에 이미 새로운 서랍이 준비되어 있다는 얘기였다. 『그럼 어디까지요?』 『모르겠어요. 태워주는 데까지 타고 갈 생각이에요』 『그렇게 말하면 어디든 멀리 가고 싶어진다는 것 몰라요?』 『어디까지요?』 『며칠 전부터 이러고 싶었던 것 알아요?』 『몰라요』 『이러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어요. 친구들과 같이 있어서…』 『그런 것도 가리나요? 독립군이』 『우린 인해전술엔 약하니까』 그 사이 독립군의 오토바이는 대학 입구 역을 돌아 오른쪽 큰길로 들어섰다. 이제는 그가 가는 데까지 갈 수밖에 없는 셈이었다. <글: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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