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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사진)이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강단에 설 것으로 전망된다. 문 전 권한대행은 14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서울시립대 임용 공모 절차에 응할지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공모 절차가 아직 진행이 안 된 상태”라고 말을 아끼면서도 “다른 대학교에 갈 생각은 없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 지명으로 2019년 4월 취임한 문 전 권한대행은 이종석 전 헌재소장이 지난해 10월 퇴임한 뒤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맡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의 재판장을 맡아 재판관 8명의 전원 일치 의견으로 파면을 선고한 뒤 지난달 18일 6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현재 서울시립대 내부에서도 문 전 권한대행을 로스쿨 초빙교수로 임용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시립대 관계자는 “문 (전) 권한대행과 어느 정도 (임용에 대해) 얘기는 된 상황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아직 교원 모집공고 일정도 확정되지 않아서, (임용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문 전 권한대행이 서울시립대 초빙교수로 임용되면 올해 2학기부터 헌법 관련 강의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립대 로스쿨은 국내 유일의 공립 로스쿨로 한 학년 정원은 50명이다. 서울시립대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 참여했던 박한철 전 헌재소장을 2019년 초빙교수로 임용하기도 했다. 박 전 소장은 탄핵심판 심리 도중 퇴임해 선고엔 참여하지 않았다.손준영 기자 hand@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강단에 설 전망이다.문 전 권한대행은 14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서울시립대 임용 공모 절차에 응할지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공모 절차가 아직 진행이 안 된 상태”라고 말을 아끼면서도 “다른 대학교에 갈 생각은 없다”고 덧붙였다.문재인 전 대통령 지명으로 2019년 4월 취임한 문 전 권한대행은 이종석 전 헌재소장이 지난해 10월 퇴임한 뒤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맡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의 재판장을 맡아 재판관 8명의 전원일치 의견으로 파면을 선고한 뒤 지난달 18일 6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현재 서울시립대 내부에서도 문 전 권한대행을 로스쿨 초빙교수로 임용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시립대 관계자는 “문 (전) 권한대행과 어느 정도 (임용에 대해) 얘기는 된 상황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아직 교원 모집공고 일정도 확정되지 않아서, (임용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문 전 권한대행이 서울시립대 초빙교수로 임용되면 올해 2학기부터 헌법 관련 강의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서울시립대 로스쿨은 국내 유일의 공립 로스쿨로 한 학년 정원은 50명이다. 서울시립대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 참여했던 박한철 전 헌재소장을 2019년 초빙교수로 임용하기도 했다. 박 전 소장은 탄핵심판 심리 도중 퇴임해 선고엔 참여하지 않았다.손준영 기자 hand@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6·3 조기 대선이 다가오는 가운데 주요 후보들의 딥페이크(인공지능 합성 이미지) 영상이 온라인에 퍼지고 있다. 그중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마치 욕설, 폭언, 읍소를 하는 것처럼 조작된 영상들도 있었다. 자칫 유권자의 판단을 흐릴 수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명 김문수 이준석 겨냥 합성 영상 퍼져13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유튜브, 틱톡, X(엑스·옛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물을 살펴본 결과, 대선 후보의 음성이나 표정, 발언을 악의적으로 조작한 영상을 여러 개 발견할 수 있었다. 한 유튜브 영상에는 이재명 후보가 “나도 국회에서 나에 대해 반대하거나 하면 바로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의원들을 체포할 것”이라고 말하는 모습이 담겼다. 그는 실제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인공지능(AI) 기술로 이미지를 합성한 가짜 영상을 만들어 올린 것이다. 이재명 후보가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마치 코를 붙잡힌 것처럼 보이는 조작 영상도 있었다.김문수 후보의 모습을 합성한 딥페이크 영상들도 있었다. 한 영상에서는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오늘부로 한덕수가 후보야. 너 꺼져”라고 말하자, 김 후보가 “뭔 개가 짖냐. 개가 여기 있네”라며 고함을 지르는 장면이 담겼다. 이 역시 사실이 아니라 악의적으로 합성된 가짜 영상이다. 또 다른 조작 영상에서는 김 후보가 인상을 쓰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과 ‘당비 땡전 한 푼 안 낸 한덕수와 단일화해야 하는 게 억울하다고 떼쓰는 모습’이라는 자막과 내레이션이 달렸다. 이준석 후보를 겨냥한 한 딥페이크 영상에는 이 후보가 정치브로커 명태균 씨에게 이른바 ‘황금폰’ 비밀번호를 알려 달라며 읍소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 역시 가짜였다.● 유포 속도 빨라 단속 못 쫓아가 이 같은 가짜 합성 영상들은 유권자의 올바른 투표권 행사를 방해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개정된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 90일 전부터 선거운동 관련 딥페이크 영상은 일절 금지된다.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후보자의 명예가 훼손됐다면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처벌된다. 음란물에 합성한 경우 성폭력처벌법 위반으로 7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현재 선거관리위원회와 경찰 등은 전담 모니터링 팀을 구성해 단속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딥페이크 영상 확산이 너무 빨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영상을 단순 유포만 한 사람도 있고, 직접 제작해서 게시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양상이 다양해서 경우에 따라 수사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네이버 등 국내 플랫폼은 이틀이면 삭제 조치가 이뤄지지만 엑스나 유튜브 등 해외 플랫폼은 2주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 전문가 “정부 기관 공동 대응 필요” 전문가들은 경찰, 선관위, 방송통신위원회 등 단속 주체가 여러 기관으로 나뉜 탓에 신속한 대응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선관위는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는 게시물에 대해서만 삭제를 요청할 수 있다. 그 외의 다른 경우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삭제 조치를 해야 한다. 경찰은 수사만 할 뿐 별도의 삭제 조치는 안 한다. 정수환 숭실대 전자정보공학부 교수는 “딥페이크 영상물의 경우 초반에 삭제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2차, 3차 유포가 발생한다”며 “유관 기관이 합심해서 공동대응센터 등을 마련해 원활히 소통하고 빠르게 삭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SK텔레콤의 유심(USIM) 정보 유출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주요 임원들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수사 중이다. 해킹을 시도한 세력은 아직 특정되지 않았다. 12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사에서 열린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경찰 관계자는 “SK텔레콤 피해 서버와 악성코드 등 디지털 증거를 확보해 침입 경로를 분석하고 있다. IP 추적도 진행 중”이라며 “해킹을 시도한 세력은 아직 특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해킹 외에 SK그룹 및 SK텔레콤 고위 관계자들에 대해 업무상 배임 혐의 적용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최 회장과 유영상 대표를 포함한 관계자들을 상대로 한 고발장이 접수됐고, 5월 1일에도 SK텔레콤 관계자를 상대로 한 업무상 배임 고소·고발장이 추가로 접수됐다. 두 사건 모두 현재 서울 남대문경찰서에서 수사 중이다.SK텔레콤은 지난달 18일 오후 11시 26분경 유심 정보 유출 사실을 내부적으로 인지했지만, 실제로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이를 신고한 것은 약 40시간이 지난 이후였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은 해킹 등 침해사고 발생 시 24시간 이내 신고를 의무화하고 있다. 경찰은 SK텔레콤이 이 같은 규정을 어기고 신고를 지연해 금전적·사회적 손해를 입혔다면 배임 혐의가 성립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SK텔레콤 측은 “신고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소요됐을 뿐, 고의적인 지연은 아니다”라고 해명한 바 있다.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괴물 같은 화력, 원터치로 손쉬운 사용.’ 5일 주요 인터넷 포털 사이트와 온라인 쇼핑몰에 ‘화염방사기’를 검색하자 수백 개의 제품이 곧바로 쏟아져 나왔다. 캠핑할 때 쓰는 저화력의 가스 토치부터 도로 공사, 주차선 시공 등에 사용되는 공업용 고화력 화염방사기까지 다양한 제품이 판매되고 있었다. 지난달 2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방화 사건의 범행 도구가 화염방사기처럼 개조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실제 화염을 방사할 수 있는 고화력 가스 토치 등이 ‘화염방사기’라는 이름으로 별다른 규제 없이 무분별하게 판매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층간소음을 이유로 범행을 저지른 피의자를 ‘정의 구현 열사’ 등으로 떠받드는 등 모방범죄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화염방사기가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화염방사기’ 검색하자 수백 개 줄줄이현재 각종 온라인 쇼핑몰에선 가스 토치, 가스 점화기 등의 기기를 화염방사기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하고 있다. 대부분의 제품은 일반인도 구할 수 있는 휴대용 부탄가스를 연료로 사용한다. 화염방사기의 ‘화력’은 발열량이나 화염 온도 등으로 결정된다. 온라인 쇼핑몰에선 캠핑이나 요리 등에 사용되는 시간당 발열량 1200cal가량의 소형 토치뿐만 아니라 시간당 발열량이 1만3000∼2만2000cal에 달하는 고화력 기기까지 구매가 가능하다. 대부분 2만∼3만 원대로 구매가 가능하고, 고화력 제품은 10만 원 안팎의 가격으로 살 수 있다. 고화력 기기는 주로 잡초를 제거할 때나 공업용으로 쓰인다. 금속성 탄알이나 가스 등을 쏠 수 있는 총포 및 화약류 등은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제조·판매·소지 등에 엄격한 허가가 필요하고 제조 방법을 게시하거나 유포하는 것도 금지된다. 하지만 가스나 기름을 연료로 화염을 발생시키는 화염방사기는 별다른 규제가 없다. 어느 정도의 화력이 고위험군인지 등을 규정하는 기준 등도 뚜렷하게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일정 이상 화력을 가지는 화염방사기는 철저한 규제나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캘리포니아주는 화염방사기를 소지하려면 허가증이 필요하고, 메릴랜드주에선 일반인의 소지를 아예 금지하고 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객관적 실험이나 전문가 자문 등을 통해 화력별 위험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의 제품들은 구매 시 명부 등을 작성토록 하거나 관서에 등록하는 등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조법 영상도 버젓이… 모방범죄 우려도화염방사기는 봉천동 방화 사건 피의자처럼 농약살포기 등을 간단히 개조하는 식으로도 만들 수 있어 모방범죄 우려도 커지고 있다. 현재 유튜브에 ‘화염방사기 제작’을 입력하면 ‘초간단 라이터로 화염방사기 만드는 법’ ‘부탄가스로 화염방사기 만드는 법’ 등의 영상이 잇달아 검색된다. 화염방사기를 제작하거나 발사하는 영상은 수천에서 수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층간소음 피해 등을 주제로 하는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봉천동 방화 사건 피의자를 ‘열사’ ‘정의 구현’ ‘의인’ 등으로 떠받드는 글이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 일부 이용자는 ‘수천 번이고 아파트에 방화하고 나도 죽고 싶다’ ‘농약살포기 굿아이디어, 윗집에 배송해줘야겠다’ 등 모방범죄를 암시하는 글도 게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화염방사기를 이용한 방화 사건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2022년 3월 강원 강릉시 옥계면에서 한 60대 남성이 가스 토치 등으로 자택과 집 및 산림에 불을 질러 산림 약 4190ha(헥타르)를 태웠고 393억 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를 발생시켰다. 이 남성의 모친은 불을 피해 도망치다 숨졌고, 징역 12년이 대법원에서 확정돼 복역 중이다. 2023년 6월엔 전남 화순군의 한 마을 주민이 250년 된 왕버들나무를 토치로 불태워 집행유예를 선고받기도 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화염방사기의 경우 제조법 영상이 돌고, 구매도 용이하기 때문에 모방범죄 등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관련 영상을 규제하면서 (구매하는) 사람들의 용도를 확인할 수 있는 제도적인 절차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재야 같은 국회의원’을 하기로 작심을 한 것이다.”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의 15대 국회의원 동기인 이재오 민주화기념사업회 이사장은 1996년 12월 26일 신한국당의 ‘노동법 날치기’ 통과 이후 김 후보와 자신은 국회의원의 상징인 금배지를 달지 않았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신한국당은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연내에 처리하겠다는 당론 아래 야당 의원 없이 단독으로 새벽 본회의를 소집해 파견근로제와 파트타임제 등으로 노동유연성을 확대하는 노동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금배지’를 떼버렸다는 얘기다. 이 이사장은 “이 일이 김 후보에게 국회의원으로서 전환점이 됐을 것”이라며 “소속 당이 옳지 못한 것, 바르지 못한 일을 할 때에도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그때 가진 것”이라고 했다. 비난의 화살은 노동운동계 출신이자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 동참했던 김 후보를 향했다. 그는 석 달 뒤인 1997년 3월 28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의회 민주주의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단독 처리에 동참한 이후 많은 눈물을 흘렸고 회한 속에서 우리 국민이 어제의 국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 대해 사죄했다. 하지만 소장파의 대표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2012년 대선 경선 이후 정치적 내리막길을 걸을 당시 강성 보수층을 대표하는 ‘아스팔트 우파’로 변모하면서 극과 극을 오간 정치인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김결식’ ‘뇌가 발에 달린 사람’ 별명 붙어이후 김 후보는 홍준표 이재오 안상수 등 초선 의원들과 함께 당내 소장파로 활동하며 “국민 입장에서 당을 운영하라”며 당에 쓴소리를 냈다. 약자의 편이 되고자 했던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늘어난 결식아동 문제를 지나칠 수 없어 결식아동을 위한 예산 확보에 앞장서다 ‘김결식’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보스에게 정치자금을 받는 계파정치에서 벗어나 소신정치를 하기 위해선 부정부패에서 자유로워야 했고 대신 허리띠를 졸라매고 현장을 찾아 주민들과 만나며 지역구를 다졌다. 허숭 안산도시공사 사장은 김 후보에 대해 “‘뇌가 발에 달린 사람’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현장주의자”라며 “궤변적, 사변적이지 않고 현장과 사람을 중시하고 내 생각과 달라지더라도 현장을 보고 나를 적응시켜 가기 때문에 현실주의적이고 유연하다”고 평가했다. 재선 시절인 2003년 12월 최병렬 당시 대표로부터 공천심사위원장을 제안받았다. 검찰의 대선 자금 수사로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쓴 상황에서 부정부패와 거리가 먼 소장파 김 후보에게 혁신 공천을 맡긴 것이었다. 김 후보는 최 대표를 포함해 중진 37명을 불출마시켰고 결국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에 따른 역풍으로 총선은 패배했지만 공천 혁신 사례로 남았다.● ‘도지사인데’ 논란… “꼰대스러움에 벌어진 일”김 후보는 3선 의원 시절인 2006년 지방선거 때 경기도지사에 도전해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민주당 진대제 후보에게 승리했다. 그는 경기도지사로 재직하며 대중교통 환승할인제, GTX 정책 등 도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교통 정책을 펼쳐서 호평을 받았다. 주말엔 택시 운전을 직접 하면서 경기도 곳곳을 뛰었다. 재선 도지사 시절인 2011년 12월에는 남양주소방서 119 상황실에 전화를 걸어 “나는 도지사 김문수입니다”라고 관등성명을 요구했다가 장난전화로 오인한 직원이 되묻자 “도지사가 누구냐고 이름을 묻는데 답을 안 해?”라고 되묻는 녹취록이 공개되며 ‘갑질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김 후보의 한 측근은 “규율상 관등성명을 대도록 돼 있다”면서도 “김 후보의 꼰대스러움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도지사 이후 김 후보의 정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2012년엔 대선 경선에 출마했으나 박근혜 후보에게 크게 밀렸다. 2014년 3선 경기도지사 불출마를 선언한 뒤 당의 ‘험지 출마’ 요구에 2016년 대구 수성갑에 출마했으나 민주당 김부겸 후보에게 24.6%포인트 차로 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 후보로 나섰지만 패배했다. 김 후보가 점차 강성 보수로 변모한 것은 박 전 대통령 탄핵 국면부터다. 2017년부터 이른바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며 ‘아스팔트 우파’로 활동했고 2020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함께 기독자유통일당을 창당했다. 인명진 목사는 “김 후보가 순진하게 전광훈한테 가서 빠졌다. 만날 전 목사를 따라다니고 볼품사납더라. 그때 ‘저 사람 저러면 안 되는데’ 생각했다”고 말했다. ● ‘막말’ 보수 유튜버에서 노동장관 거쳐 대선 주자로김 후보는 ‘김문수TV’를 개설해 유튜버로 활동하며 문재인 전 대통령을 향해 “총살감”이라고 막말을 해 거센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22년엔 ‘불법 파업에 손배 폭탄이 특효약’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려 “노동자들이 손배소를 가장 두려워한다”며 “민사소송을 오래 끌수록 굉장히 신경 쓰이고 가정이 파탄 나게 된다”고 말해 빈축을 샀다. 다만 김 후보의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인 차명진 전 의원은 “좌파들의 속성을 잘 알아서 타협에 능하다”고 말했다. 김 후보가 다시 제도권으로 들어온 건 윤석열 정부에서 2022년 경제사회노동위원장과 2024년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다. 그러던 김 후보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지난해 12월 11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의 사과 요구에 혼자 자리를 지키는 모습으로 ‘반탄(탄핵 반대)’ 진영의 주목을 받았고 결국 3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김 후보의 스승이자 뉴라이트 성향의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김 후보는 전반부 25년은 사회주의 운동을, 후반부 25년은 자유주의 운동을 하며 한 50년간 사회운동을 한 셈”이라고 말했다.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괴물 같은 화력, 원터치로 손쉬운 사용’5일 주요 인터넷 포털 사이트와 온라인 쇼핑몰에 ‘화염방사기’를 검색하자 수백 개의 제품이 곧바로 쏟아져나왔다. 캠핑, 요리용의 비교적 저화력 가스토치부터 도로공사나 주차선 시공 등에 쓰이는 공업용 고화력 제품까지 다양한 제품들이 포착됐다.지난달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발생한 방화 사건에 사용된 범행 도구가 농약 살포기로 추정되는 기기를 화염방사기로 개조한 것으로 알려져 인근 주민들과 시민들 사이에 충격을 준 가운데,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누구나 손쉽게 큰 화력의 화염방사기를 구매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봉천동 방화범을 ‘열사’ 등으로 떠받들며 모방범죄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대형 화염방사기에 대한 법적 규제나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화염방사기’ 검색하자 수백개 제품 줄줄이 가스토치, 가스점화기 등 인터넷 등에서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화염방사기들은 대부분 시중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휴대용 부탄가스를 연료로 사용한다. 화염방사기의 성능을 결정짓는 ‘화력’은 발열량이나 화염온도 등으로 결정되데, 캠핑이나 요리 등에 사용되는 시간당 발열량 1200킬로칼로리(kcal) 가량의 소형뿐 아니라, 1만 3000kcal~2만 2000kcal에 달하는 고화력 공업용 및 잡초제거용까지 손쉽게 구매가 가능하다. 문제는 금속성 탄알이나 가스 등을 쏠 수 있는 총포나 화약류 등은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제조·판매·소지 등에 엄격한 허가가 필요하고 제조방법을 게시하거나 유포하는 것도 금지되지만, 가스나 기름을 연료로 화염을 발생시키는 화염방사기는 별도 규제가 없다는 점이다. 또 어느 정도의 화력이 ‘고위험’군인지 등을 규정하는 기준 등도 뚜렷하게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요리용이나 캠핑용처럼 소형 토치까지 규제할 수는 없겠지만, 일정 이상 화력을 가지는 화염방사기는 관련 규제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객관적 실험이나 전문가 자문 등 통해서 화력별 위험도를 만들고, 생명을 위협할 수있는 수준의 제품들은 구매시 명부 등 작성하게 한다거나. 총포 및 도검처럼 관서에 등록하게 하는 등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제조법’ 영상도 버젓이…‘모방범죄’ 우려도누구나 손쉽게 화염방사기를 구매하거나 제작할 수 있어 모방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유튜브 등지에서 ‘화염방사기 제작’를 입력하자 ‘초간단 라이터로 화염방사기 만드는법’ ‘부탄가스로 화염방사기 만드는 법’ 등 영상이 쏟아져나왔고, 이를 제작하거나 발사하는 영상은 수천~수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실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 등에선 관악구 봉천동 화재가 발생한 직후 방화범 A 씨를 ‘열사’, ‘정의구현’, ‘의인’ 등으로 떠받드는 한편, ‘수천번이고 아파트에 방화하고 나도 죽고싶다’, ‘농약살포기 굿아이디어, 윗집에 배송해줘야겠다’ 등 모방범죄를 암시하는 글도 잇따라 올라왔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제조법 영상이 돌고, 구매도 용이하기 때문에 (화염방사기를 이용한 모방범죄가)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관련 영상을 규제하고, 실제 사람들의 용도를 확인할 수 있는 제도적인 절차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화염방사기가 대형 화재를 발생시킨 사례도 있다. 2022년 3월 60대 이 모씨는 강원 강릉시 옥계면에서 가스토치 등으로 자택과 집 및 산림에 불을 질러 강원 강릉시와 동해시 산림 약 4190ha(헥타르)을 태웠고 394억원에 달하는 재산피해를 발생시켰다. 이 씨의 모친도 화마를 피해 도망치다 결국 숨졌다. 이 씨는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초지일관해야 한다.”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와 1970년대 한일산업(현 도루코)에서 함께 노동운동을 한 도진곤 씨(78)는 김 후보가 당시 이 같은 말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김 후보는 당시 이 회사 노조위원장을 맡아 회사와의 임금 및 처우 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노동운동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도 씨는 “김 후보는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면 변함이 없고 옆도 뒤도 안 돌아본다”며 “편하게 표현하면 약간 꼴통인 것 같다. 독하게 끝까지 밀어붙이면서도 사적으로 만나면 아주 부드럽고 인간미가 철철 넘쳤다”고 회상했다. 동아일보가 만난 김 후보의 지인들은 김 후보에 대해 “정직하고 평생 기득권 편에 서지 않았다”는 평가부터 “지나치게 강성이고 고집이 너무 세다”는 주장까지 엇갈린 지적을 내놨다. ● 대학 시절 두 차례 제적 당해 김 후보는 1951년 경주 김씨 집성촌이 모여 살던 경북 영천군 황강동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김 후보는 비교적 부족함 없이 자랐으나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친척 보증을 잘못 서서 읍내에서 판잣집 생활을 하게 됐다. 김 후보는 “열등감에 빠지게 만드는 큰 요인이었다”고 회고했다. 김 후보는 그 와중에도 성적이 우수해 1964년 영천군에서 영남 지역 명문학교인 경북중학교에 진학한 세 명 안에 들었다. 김 후보는 중학교 시절부터 정의감을 보였다고 한다. 김 후보의 중·고·대학 동창인 이원덕 전 노무현 정부 대통령사회정책수석은 “김 후보는 덩치 큰 친구들이 힘이 약한 친구를 괴롭힐 때 주저하지 않고 책상에서 딱 일어나서 ‘하지 마라’고 나섰다”고 했다. 김 후보는 경북고에 진학해서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3선 개헌 반대 시위에 나섰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대구 명덕로터리에 있는 2·28 기념탑까지 뛰어가 ‘3선 개헌에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읽은 것. 이 전 수석은 “김 후보가 직접 성명서를 쓰고 반마다 돌면서 ‘우리 가서 낭독하자’고 하나하나 다 모았다”고 했다. 김 후보는 이 일로 무기정학을 당했다가 2주일 뒤 복학했다.김 후보는 1970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친구 아버지와 사촌형으로부터 경영학이 ‘신식 학문’이란 권유를 받아서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운동권에 발을 들이는 계기를 맞았다. 학교 선배였던 심재권 전 의원으로부터 “대학에 출세나 하려고 왔느냐”란 얘기를 듣고 ‘후진국사회연구회’에 가입한 것. 김 후보는 연구회를 통해 용두동 청계천변 판자촌에 가서 살고, 고 김근태 전 의원의 권유로 대학생 신분을 숨기고 구로공단의 드레스 미싱 공장에 취업한 위장취업 1세대였다. 김 후보는 전국 학생 시위 관련으로 1차 제적을 당했다. 제적 시기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만났고 동대문시장 봉제공장 재단보조로 일했다. 1973년 제적이 풀려 학교에 돌아갔다가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재차 제적을 당했다. ● 노동운동 이끌다 2년 6개월 옥살이 김 후보는 결국 노동운동 외길을 가기로 결심하고 보일러 기술을 배워 1976년 한일산업에 입사했다. 한동안 착실하게 일하면서 동료들의 신뢰를 쌓은 뒤 1978년 노조 교육선전부장을 거쳐 위원장 직무대리를 맡았다. 도 씨는 “김 후보가 아주 조리 있게 또박또박 정확하게 얘기하는데 보통 똑똑한 사람이 아니었다”며 “저는 나무를 보고 얘기하면 이 친구는 숲을 보고 얘기하더라”고 말했다. 김 후보는 당시 임금 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김 후보는 1980년 신군부가 들어선 뒤 남영동 치안본부대공분실에 끌려갔다.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과 관련해 서울대 선후배들과 조사를 받다가 49일 만에 풀려났다. 이때 김 후보가 서울대 출신인 게 노동계에 처음 알려지면서 오히려 명성이 높아졌다. 이후 김 후보는 한국노총 금속노조 남서울지역지부에서 청년부장을 맡아 산하 노조 지원을 하는 등 활동 범위를 넓혔다. 그러다가 1980년 5월 비상계엄 뒤 삼청교육대 정화 대상자로 지목됐고 결국 회사에서 해고됐다. 금속노조 남서울지부 활동 중 세진전자 노조위원장이었던 설난영 씨를 만났다.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순천에서 자란 설 씨와 말투, 문화가 달랐지만 마음이 끌렸다. 김 후보가 설 씨가 동생과 함께 살던 자취방에서 도피 생활을 하면서 결국 1981년 결혼했다. 설 씨와의 슬하에 딸 동주 씨를 뒀다. 당초 아들이면 ‘동지’로 이름을 지으려 했다고 한다. 그는 1984년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를 설립해 부위원장을 맡았고, 1985년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도 맡았다. 이소선 여사는 생전에 김 후보를 “내 아들”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당시 함께 생활한 김준용 국민노조위원장은 “공장 일 후 야학을 하던 시절에 우리가 일 끝나고 자취방으로 모여서 밥 먹고 공부하고 곯아떨어지면 문수 형님이 방을 다 청소하고 동지들 양말 전부 빨아 개고 밥도 미리 해놨다”며 “우리를 진심으로 대한 형님”이라고 말했다. 김 후보는 1985년 8월 군사독재반대투쟁을 내건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 창립에 참여해 지도위원을 맡았다. 이후 공안당국의 감시가 심해져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숨어 지냈다. 1986년에는 5·3 인천항쟁에 참여했다. 인천에서 열린 신민당의 개헌추진위원회 현판식에 학생, 노동자, 재야인사 등 민주화운동 세력이 총집결해 벌인 시위였다. 김 후보의 보좌관을 지낸 차명진 전 의원은 “그날 집회에서 김 후보를 처음 봤다”며 “머리에 긴 가발을 쓰고 여장을 한 채 집회를 지도했다”고 전했다. 김 후보는 인천항쟁 사흘 만인 1986년 5월 6일 서울 잠실의 한 가정집에서 검거됐다. 김 후보는 보안사령부로부터 갖은 고문을 당했지만 서노련에서 함께 활동한 심상정 전 의원의 위치 등을 불지 않고 버텼다. 김 후보는 1심에서 징역 4년,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이 확정됐다. 이후 2년 6개월 동안 옥살이를 하다가 1988년 개천절 특사로 출소했다. ● 민중당 선거 참패 2년 뒤 민자당 입당 김 후보는 1990년 고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과 제도권 정치에 도전하기로 하고 민중당을 창당했다. 김 후보는 노동위원장,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대변인을 맡았다. 김 후보는 “나는 울산 현대자동차, 거제 대우조선 등 대규모 공장에 민중당의 지지자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많이 바쳤다”고 했다. 그러나 민중당은 1992년 14대 총선에서 후보를 낸 51개 지역구에서 전패했고 정당의 존립에 필요한 득표율 2%도 못 받아 해산됐다. 이 이사장은 “선거에서 참패한 뒤 계룡산 동학사 밑에서 마지막 총회를 열고 향후 진로에 대해 2박 3일 동안 밤샘 토론을 했다”며 “재창당이냐 해산이냐를 두고 결론은 ‘재창당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각자 정치적 진로는 알아서 결정하자’였다”고 전했다.김 후보는 2년 뒤인 1994년 3월 “지금 여당이 개혁을 잘하고 있고 가장 개혁적인 정치인이 김영삼 대통령”이라며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에 전격 입당한다. 김 후보의 서울대 은사인 안병직 명예교수는 “우리가 운동할 때 가졌던 휴머니즘을 현실에 제대로 접목해 실현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며 입당에 찬성했다고 한다. 운동권의 전설이었던 김 후보가 야당도 아닌 여당에 입당한 것을 두고 과거 동료들로부터 변절자, 배신자 등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당시 이해찬 전 의원은 “말로는 개혁을 내세우지만 노선의 포기이자 일종의 변절”이라고 했다. 2011년 이소선 여사가 별세했을 때 장례식장을 찾은 김 후보에게 “변절자가 왜 왔느냐”고 쏘아붙이는 소동이 일기도 했다. 제도권에 들어간 김 후보는 1996년 부천 소사에서 세 차례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경기도지사 재선을 거치면서 강성 우파로 변신했다. 사회주의국가의 몰락과 북한 인권의 실상 등을 지켜보면서 변화가 생긴 것이다. 차 전 의원은 “김 후보는 동지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고통을 바깥으로 표현하진 않았다”며 “김 후보에겐 지적인 고집이 있어서 자유민주주의자가 되는 데 오래 걸렸다. 뼈를 깎는 전향의 과정이었다”고 전했다. 김 후보를 한일산업 노조위원장 시절부터 지켜본 인명진 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목사)은 “(김 후보는) 올곧은 게 장점이자 단점”이라며 “좌우를 다 겪은 사람이다. 다 겪었기 때문에 중도”라며 웃었다.조권형 기자 buzz@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주차장을 없애고 나무를 심자.” 독일 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슈투트가르트시에서 2년 전 한 비영리 단체가 시작한 ‘카투트리(Car2Tree)’ 캠페인의 구호다. 이 캠페인은 말 그대로 차량을 줄이고 그 자리에 나무를 심자는 뜻이다. 주차장을 줄여 도심 한복판에 녹지를 늘리자는 취지로, 대기 오염이 심각한 슈투트가르트시의 환경을 개선하고 도시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려는 의미도 담고 있다. 단체는 주차장을 없앤 자리에 12㎡ 크기의 녹지 휴식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차량이 빽빽하게 주차된 공간을 줄이고, 그 자리에 수풀과 나무 벤치를 설치해 쾌적한 환경을 조성한다. 이 공간은 주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 휴식처가 됐다. 개인적인 주차 공간이 공동체 교류의 장으로 탈바꿈한 셈이다. 이 단체는 올해 ‘카투트리’ 공간 10곳을 마련했으며, 내년에는 20개를 추가로 신설할 계획이다. 이러한 도심 녹지화 프로젝트는 슈투트가르트시의 기후 혁신 정책 덕분에 더욱 힘을 얻고 있다. 2023년 11월부터 이 프로젝트는 시의 ‘기후 혁신 기금’ 지원을 받고 있다. 1300만 유로(약 211억 원)에 이르는 이 기금은 유럽 지방자치단체의 관련 기금 중 최대 규모로 꼽힌다. 기후 변화 대응 프로젝트는 지원이 결정되면 최대 100만 유로(약 16억 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시와 시민단체가 협업한 카투트리 캠페인은 ‘녹색지붕’ 사업, ‘나무 입양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시민 참여형 녹지화 사업이다. 시가 이런 시민 참여형 녹지화 사업을 독려하는 이유는 그간 시 당국의 기후변화 극복 노력에도 불구하고 빠른 기후변화로 인해 시의 열섬 현상 등이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기상청에 따르면 슈투트가르트시는 독일 내에서 가장 더운 도시가 될 것으로 예측됐다. 2016년 한 연구도 ‘일일 최고 기온이 섭씨 32도 이상인 일수’가 2031∼2060년에는 1971∼2000년의 두 배가 될 것으로 추정했다.특별취재팀▽팀장 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황인찬 임우선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이소정 임재혁 기자(이상 사회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터에서 일합니다.” 독일 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슈투트가르트시 남부 발다우 공원 근처 숲 교육기관 ‘숲의 집’에서 3월 21일(현지 시간) 만난 막시밀리안 크로프 소장(35)이 말했다. 산림 관련 정부 부처에서 장관 자문관, 기획조정관 등을 지낸 그는 5년 전부터 이곳에서 산림 교육을 맡고 있다. 크로프 소장은 “점심시간이면 구내식당 대신 숲에서 산책하며 식사할 수 있다”며 미소 지었다. 슈투트가르트는 메르세데스벤츠, 포르셰 등 세계적인 명품 자동차 기업의 본사가 있는 ‘자동차의 도시’지만, 숲과 공원 등 녹지가 도시 전체의 60%를 차지하는 ‘숲의 도시’이기도 하다. 슈투트가르트 도심숲은 ‘바람길’이 되어 도시 공기를 정화할 뿐 아니라 열섬 현상을 완화한다. 어릴 때부터 가까이서 숲을 접한 젊은이들은 숲의 이점을 알리기 위해 ‘숲 전문가’ 일자리에 몰리고 있다.● 자동차 도시에서 숲 일자리 인기 1989년 설립된 ‘숲의 집’은 유치원생부터 성인까지를 대상으로 숲 교육을 담당하는 공공기관이다. 지역 학교 및 유치원과 협력해 숲 체험 수업을 운영하며, 숲 해설사·산림교육가 등 전문가 양성 과정도 함께 진행한다. 국가 공인 산림 자격증 취득을 위한 프로그램도 이곳에서 운영된다. 고요하고 정적인 숲엔 은퇴 세대들이 주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이날 방문한 숲의 집에선 20, 30대 청년 직원 10여 명이 바쁘게 업무를 보고 있었다. 슈투트가르트 남부 튀빙겐에서 온 리사 빌레 씨(20)는 “지난해 8월 고교 졸업 직후 여기에서 1년 인턴 과정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숲을 돌아보며 안정을 찾은 사람들은 표정이 행복하다”며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어 숲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임업과 목재 산업은 경기 둔화로 일자리가 줄고 있지만, 숲 교육은 젊은층의 주목을 받고 있다. 숲 교육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어서다. 독일 연방 자연 및 산림 유치원 협회에 따르면 독일 전역에는 이른바 ‘숲 유치원’이 4000곳 넘게 운영 중이며, 그 수는 계속 늘고 있다. 숲의 집이 있는 슈투트가르트는 독일 내 대표적인 ‘숲 전문가 인큐베이터’로 꼽힌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인구 1134만 명)에는 현재 60여 명의 숲 교육가가 활동 중이며, 이들은 주 내 4개 숲 학교, 12개 산림교육센터, 33개 청소년 캠프 등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날 숲의 집을 찾은 학부모들도 숲을 통한 교육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올가 안드레이 씨는 유치원생 딸과 방문한 숲의 집 정원에서 “숲에는 아이들이 직접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자연 활동이 많아 아이 교육에 좋다”며 “아이의 유치원도 이곳과 협업해 숲 교육을 한다”고 말했다.● 도시 두른 8km 숲이 환경도 개선숲 교육이 활발한 데는 어릴 때부터 자연과 가까이할 수 있는 도시 환경이 바탕에 있다. 독일 전체 면적 중 산림 비율은 약 32.3%(2022년 기준)로 한국(63%)보다 낮지만, 잘 정비된 도심숲 덕분에 시민들은 숲을 생활권 안에서 접한다. 유럽연합(EU) 통계에 따르면 슈투트가르트시는 숲과 공원이 전체 면적의 약 40%를 차지하며, 통행 불가 녹지를 포함한 전체 녹지율은 6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자연기금(WWF)은 슈투트가르트의 도심 숲 면적이 약 5000ha로, 축구장 7000개 이상 크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공원에는 약 6만5000그루, 거리에는 3만5000그루의 나무가 있다. 빌레 씨는 “어렸을 때부터 자주 숲에서 뛰어 놀았기 때문에 숲에서 일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슈투트가르트시 근처에서 사는 ‘숲의 집’ 인턴 야코프 하젝 씨(20)도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숲을 많이 보고 정원 가꾸는 일을 도와 숲이 친숙하다”고 했다. 이렇게 넓은 도심숲은 슈투트가르트시가 인근 공장들이 내뿜는 매연과 열섬 효과를 해결하기 위해 녹지를 늘리려고 안간힘을 쓴 결과다. 당초 이 지역은 대기 오염이 심각했다. 많은 공장에서 매연을 내뿜는데 주변 3면이 모두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라 이 매연이 쉬이 빠져나가지 못했다. 연평균 풍속도 초속 1.0m가량으로 독일 북부 도시인 함부르크(초속 5.6m)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않아 공기가 정체됐다. 이에 시는 전체 녹지를 가꾸는 것과 동시에 1970년대부터 녹지를 U자 형태로 연결하는 ‘그린 U(Green U)’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도심을 둘러 약 8km에 걸쳐 조성된 이 숲길은 주변 산과 계곡에서 흘러든 찬 공기를 도심으로 유입시켜 대기 질을 개선하고 열섬 현상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시내 어디서든 도보 10분이면 숲에 닿을 수 있다. 시민 건강 증진, 에너지 비용 절감, 삶의 질 향상이라는 다층적 효과를 통해 숲은 도시의 경제적 가치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또 다른 숲 ‘녹색 지붕’ 30만 ㎡ 조성 슈투트가르트시의 녹지는 시뿐만 아니라 시민과 함께 만들어진다. 당국은 1986년부터 지붕을 녹화하는 건물에 보조금을 지급해 지금까지 ‘녹색 지붕’이 30만 ㎡ 이상 조성됐다. ‘나무 입양 프로그램’을 통해 주민들에게 나무를 심고 가꾸는 참여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2008년에는 ‘기후 지도’를 발간해 도시계획의 환경 기준을 제시했다. 차가운 공기 이동 경로, 오염 물질 농도, 열섬 현상 위험 지역 등을 분석해 건물 주변에 충분한 개방 공간 확보, 계곡·언덕·비탈면의 건축 제한, 산업시설의 오염 배출 금지 등을 권고한다. 이 기후 지도는 수도 베를린, 일본 고베시 등 여러 도시가 벤치마킹할 정도로 주목받았다.특별취재팀▽팀장 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황인찬 임우선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이소정 임재혁 기자(이상 사회부)}
“초지일관해야 한다.”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와 1970년대 한일산업(현 도루코)에서 함께 노동운동을 한 도진곤 씨(78)는 김 후보가 당시 이 같은 말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김 후보는 당시 이 회사 노조위원장을 맡아 회사와의 임금 및 처우 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노동운동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도 씨는 “김 후보는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면 변함이 없고 옆도 뒤도 안 돌아본다”며 “편하게 표현하면 약간 꼴통인 것 같다. 독하게 끝까지 밀어붙이면서도 사적으로 만나면 아주 부드럽고 인간미가 철철 넘쳤다”고 회상했다. 동아일보가 만난 김 후보의 지인들은 김 후보에 대해 “정직하고 평생 기득권 편에 서지 않았다”는 평가부터 “지나치게 강성이고 고집이 너무 세다”는 주장까지 엇갈린 지적을 내놨다. ● 대학 시절 두 차례 제적 당해김 후보는 1951년 경주 김씨 집성촌이 모여 살던 경북 영천군 황강동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김 후보는 비교적 부족함 없이 자랐으나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친척 보증을 잘못 서서 읍내에서 판잣집 생활을 하게 됐다. 김 후보는 “열등감에 빠지게 만드는 큰 요인이었다”고 회고했다. 김 후보는 그 와중에도 성적이 우수해 1964년 영천군에서 영남 지역 명문학교인 경북중학교에 진학한 세 명 안에 들었다.김 후보는 중학교 시절부터 정의감을 보였다고 한다. 김 후보의 중·고·대학 동창인 이원덕 전 노무현 정부 대통령사회정책수석은 “김 후보는 덩치 큰 친구들이 힘이 약한 친구를 괴롭힐 때 주저하지 않고 책상에서 딱 일어나서 ‘하지 마라’고 나섰다”고 했다.김 후보는 경북고에 진학해서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3선 개헌 반대 시위에 나섰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대구 명덕로터리에 있는 2·28 기념탑까지 뛰어가 ‘3선 개헌에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읽은 것. 이 전 수석은 “김 후보가 직접 성명서를 쓰고 반마다 돌면서 ‘우리 가서 낭독하자’고 하나하나 다 모았다”고 했다. 김 후보는 이 일로 무기정학을 당했다가 이주일 뒤 복학했다.김 후보는 1970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친구 아버지와 사촌형으로부터 경영학이 ‘신식 학문’이란 권유를 받아서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운동권에 발을 들이는 계기를 맞았다. 학교 선배였던 심재권 전 의원으로부터 “대학에 출세나 하려고 왔느냐”란 얘기를 듣고 ‘후진국사회연구회’에 가입한 것. 김 후보는 연구회를 통해 용두동 청계천변 판자촌에 가서 살고, 고 김근태 전 의원의 권유로 대학생 신분을 숨기고 구로공단의 드레스 미싱 공장에 취업한 위장취업 1세대였다.김 후보는 전국 학생 시위 관련으로 1차 제적을 당했다. 제적 시기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만났고 동대문시장 봉제공장 재단보조로 일했다. 1973년 제적이 풀려 학교에 돌아갔다가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재차 제적을 당했다. ● 노동운동 이끌다 2년 6개월 징역형김 후보는 결국 노동운동 외길을 가기로 결심하고 보일러 기술을 배워 1976년 한일산업에 입사했다. 한동안 착실하게 일하면서 동료들의 신뢰를 쌓은 뒤 1978년 노조 교육선전부장을 거쳐 위원장 직무대리를 맡았다. 도 씨는 “김 후보가 아주 조리 있게 또박또박 정확하게 얘기하는데 보통 똑똑한 사람이 아니었다”며 “저는 나무를 보고 얘기하면 이 친구는 숲을 보고 얘기하더라”고 말했다. 김 후보는 당시 임금 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김 후보는 1980년 신군부가 들어선 뒤 남영동 치안본부대공분실에 끌려갔다.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과 관련해 서울대 선후배들과 조사를 받다가 49일 만에 풀려났다. 이때 김 후보가 서울대 출신인 게 노동계에 처음 알려지면서 오히려 명성이 높아졌다. 이후 김 후보는 한국노총 금속노조 남서울지역지부에서 청년부장을 맡아 산하 노조 지원을 하는 등 활동 범위를 넓혔다. 그러다가 1980년 5월 비상계엄 뒤 삼청교육대 정화 대상자로 지목됐고 결국 회사에서 해고됐다.금속노조 남서울지부 활동 중 세진전자 노조위원장이었던 설난영 씨를 만났다.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순천에서 자란 설 씨와 말투, 문화가 달랐지만 마음이 끌렸다. 김 후보가 설 씨가 동생과 함께 살던 자취방에서 도피 생활을 하면서 결국 1981년 결혼했다. 설 씨와의 슬하에 딸 동주 씨를 뒀다. 당초 아들이면 ‘동지’로 이름을 지으려 했다고 한다. 그는 1984년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를 설립해 부위원장을 맡았고, 1985년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도 맡았다. 이소선 여사는 생전에 김 후보를 “내 아들”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당시 함께 생활한 김준용 국민노조위원장은 “공장 일 후 야학을 하던 시절에 우리가 일 끝나고 자취방으로 모여서 밥 먹고 공부하고 곯아떨어지면 문수 형님이 방을 다 청소하고 동지들 양말 전부 빨아 개고 밥도 미리 해놨다”며 “우리를 진심으로 대한 형님”이라고 말했다.김 후보는 1985년 8월 군사독재반대투쟁을 내건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 창립에 참여해 지도위원을 맡았다. 이후 공안당국의 감시가 심해져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숨어 지냈다. 1986년에는 5·3 인천항쟁에 참여했다. 인천에서 열린 신민당의 개헌추진위원회 현판식에 학생, 노동자, 재야인사 등 민주화운동 세력이 총집결해 벌인 시위였다. 김 후보의 보좌관을 지낸 차명진 전 의원은 “그날 집회에서 김 후보를 처음 봤다”며 “머리에 긴 가발을 쓰고 여장을 한 채 집회를 지도했다”고 전했다.김 후보는 인천항쟁 사흘 만인 1986년 5월 6일 서울 잠실의 한 가정집에서 검거됐다. 김 후보는 보안사령부로부터 갖은 고문을 당했지만 서노련에서 함께 활동한 심상정 전 의원의 위치 등을 불지 않고 버텼다. 김 후보는 1심에서 징역 4년,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받고 확정됐다. 이후 2년 6개월 동안 옥살이를 하다가 1988년 개천절 특사로 출소했다. ● 민중당 선거 참패 2년 뒤 민자당 입당김 후보는 1990년 고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과 제도권 정치에 도전하기로 하고 민중당을 창당했다. 김 후보는 노동위원장,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대변인을 맡았다. 김 후보는 “나는 울산 현대자동차, 거제 대우조선 등 대규모 공장에 민중당의 지지자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많이 바쳤다”고 했다. 그러나 민중당은 1992년 14대 총선에서 후보를 낸 51개 지역구에서 전패했고 정당의 존립에 필요한 득표율 2%도 못 받아 해산됐다. 이 이사장은 “선거에서 참패한 뒤 계룡산 동학사 밑에서 마지막 총회를 열고 향후 진로에 대해 2박 3일 동안 밤샘 토론을 했다”며 “재창당이냐 해산이냐를 두고 결론은 ‘재창당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각자 정치적 진로는 알아서 결정하자’였다”고 전했다.김 후보는 2년 뒤인 1994년 3월 “지금 여당이 개혁을 잘하고 있고 가장 개혁적인 정치인이 김영삼 대통령”이라며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에 전격 입당한다. 김 후보의 서울대 은사인 안병직 명예교수는 “우리가 운동할 때 가졌던 휴머니즘을 현실에 제대로 접목해 실현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며 입당에 찬성했다고 한다. 운동권의 전설이었던 김 후보가 야당도 아닌 여당에 입당한 것을 두고 과거 동료들로부터 변절자, 배신자 등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당시 이해찬 전 의원은 “말로는 개혁을 내세우지만 노선의 포기이자 일종의 변절”이라고 했다. 2011년 이소선 여사가 별세했을 때 장례식장을 찾은 김 후보에게 “변절자가 왜 왔느냐”고 쏘아붙이는 소동이 일기도 했다. 제도권에 들어간 김 후보는 1996년 부천 소사에서 세 차례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경기도지사 재선을 거치면서 강성 우파로 변신했다. 사회주의국가의 몰락과 북한 인권의 실상 등을 지켜보면서 변화가 생긴 것이다. 차 전 의원은 “김 후보는 동지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고통을 바깥으로 표현하진 않았다”며 “김 후보에겐 지적인 고집이 있어서 자유민주주의자가 되는 데 오래 걸렸다. 뼈를 깎는 전향의 과정이었다”고 전했다. 김 후보를 한일산업 노조위원장 시절부터 지켜본 인명진 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목사)은 “(김 후보는) 올곧은 게 장점이자 단점”이라며 “좌우를 다 겪은 사람이다. 다 겪었기 때문에 중도”라며 웃었다. 조권형 기자 buzz@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유영상 SK텔레콤 대표가 3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번 유심 정보 유출 사고가 통신 역사상 최악의 해킹 사고라는 지적에 대해 “동의한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최악의 경우 2500만 명 고객 정보가 모두 유출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유심 복제 가능성과 대응 지연, 보상 대책 등을 둘러싸고 각 당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복제 유심이 금융 사기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유 대표는 “유심 복제는 기술적으로 가능하나, 당사는 비정상 인증 차단 시스템(FDS)으로 이를 방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 대표는 해킹 사태 귀책 사유를 묻는 질문에는 “SK텔레콤에 있다”고 답변했다. 다만 이번 해킹 사고로 가입자가 계약을 해지할 경우 위약금 납부 면제를 검토해야 한다는 의원들의 지적에 대해선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즉답을 피했다. 유 대표는 이 자리에서 디지털 취약계층을 위해 유심보호서비스 가입과 유심 교체 예약 신청을 사측이 임의로 하도록 방식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유심보호서비스를 가입하지 않은 고객이더라도 유심 해킹으로 인한 피해는 전면 보상하겠다고 약속했다. 과방위는 이날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추가 증인으로 채택했으나 끝내 불출석했다. 이번 사태로 SK텔레콤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사고 발생 후 이틀 만에 가입자 약 7만 명이 이탈했다. SK텔레콤은 이용자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심보호서비스 가입을 늘리는 한편 6월까지 유심 1000만 개 추가 확보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전체 가입자의 유심 교체 완료까지는 최소 3개월가량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SKT, 해지 위약금 면제 즉답 피해… “두달내 유심 1000만개 추가”[SKT 유심 대란]과방위 ‘SKT 청문회’ 해킹 질타“무지-무능-무책임이 빚은 사태… 늑장 공개에 소비자 피해” 비판SKT “최태원-최창원 유심 교체안해”… 경찰 “전담팀 편성해 해킹배후 수사”“유심 해킹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경우 유심보호서비스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이용자에 대한 보상을 책임지겠습니다.” SK텔레콤 유심 해킹 사태와 관련해 3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 분야 청문회에 출석한 유영상 SK텔레콤 대표는 이같이 밝혔다. 이날 국회에서 ‘통신 역사상 최악의 해킹’ ‘2500만 전체 가입자 정보 유출 가능성’ 등의 질타가 쏟아진 가운데 유 대표는 “최악의 경우 전 가입자 정보 유출을 가정해 (대응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위약금 면제 넘어 피해 보상해야” 이날 과방위에서 가장 쟁점이 된 부분은 SK텔레콤 고객이 다른 통신사로 번호이동을 할 시 발생하는 위약금 문제였다. 유 대표는 보안에 대한 우려로 가입자가 계약을 해지할 경우 위약금 납부 면제를 검토해야 한다는 위원들의 지적에 “종합적으로 검토를 해서 확인해 드리겠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이에 대해 조국혁신당 이해민 의원은 “가입자가 통신사를 옮기는 행위의 귀책 사유는 사업자에게 있고 번호이동 등 과정에서 고객들이 불편을 겪는다”며 “위약금 면제 정책에 대한 종합적 판단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피해 보상을 해야 하는 문제”라고 비판했다. SK텔레콤 이용약관 제44조에 따르면 사측의 귀책 사유로 가입자가 해지할 경우 위약금 납부 의무가 면제된다. 이 같은 지적에도 유 대표는 “제가 최고경영자(CEO)지만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 종합적인 법률적 검토를 통해 해야 할 것 같다”며 즉답을 피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법무법인 세 곳에 법률 검토를 요청했다. 검토 결과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된 집중 질의를 위해 과방위는 이날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증인으로 불렀으나 치과 치료를 이유로 불출석 의사를 밝혔다. 과방위는 5월 8일 SK텔레콤 단독 청문회를 열기로 하고 최 회장을 증인으로 다시 채택했다.● “고지 지연 등 안일한 대응이 소비자 피해 키웠다” SK텔레콤이 안일하게 대응한 탓에 피해가 더 커졌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이정헌 의원은 “SK텔레콤의 무지와 무능, 무책임의 ‘3무’가 빚어낸 초유의 사태”라며 “해킹 발생 나흘이 지나 고객들에게 사실을 공개하는 등 무책임하고 안이하게 대응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힘 김장겸 의원도 “첫날 28만 명이 유심을 교체하고 지금 온라인을 통한 교체 예약자가 430만 명이 넘는다”면서 “유심 공급 상황을 미리 소비자들에게 알려주고 줄 서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유 대표는 “특정 고객의 정보 유출이 확인되지 않아 개별 문자 고지를 하지 못했다”며 사과했다. 턱없이 부족한 유심 재고와 관련해 “5월 중 500만 개, 6월 중 500만 개를 추가로 확보하고,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확보해 나갈 예정”이라며 “유심 개통은 전산 처리가 필수적인데 하루 처리 수량이 20만∼25만 개에 불과해 모든 고객이 유심을 교체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찰, 전담 수사팀 편성 “해킹 배후 수사 중”SK텔레콤은 유심 교체 없이도 유심보호서비스와 비정상 인증 시도 차단 시스템(FDS)을 통해 해킹 피해를 사실상 차단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유 대표는 SK그룹 고위 임원들의 유심 교체 여부를 묻는 질문에 “저는 교체하지 않았다. 유심보호서비스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최태원 회장과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도 보호서비스에 가입하고 유심 교체는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날 유 대표는 SK그룹 전사 게시판에 유심 교체보다 유심보호서비스에 우선 가입할 것을 요청하는 내용의 글을 게시했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법 제도를 정비하고 범정부 차원의 보안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강도현 과기정통부 2차관은 “전문 인력을 보강하고 법 제도를 정비하는 등 보안 문제에 대해 재검토를 하겠다”고 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전담 수사팀을 편성한 뒤 정식 수사에 착수한 서울경찰청은 “관련 디지털 증거를 신속히 확보하고 해킹의 경위와 배후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를 진행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이날 기업, 기관 등에서 대규모 개인정보를 다루는 ‘개인정보취급자’들에게 유심보호서비스에 가입하고 추후 유심을 교체할 것을 권고했다.남혜정 기자 namduck2@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내가 무슨 시장이에요. 차라리 이장을 하고 말지.” 2004년 3월 경기 성남시 수정구 주민교회 지하 기도실. 바닥에 앉아 있던 40세의 이재명 변호사(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노동조합 활동가 정해선 씨의 “이 변호사가 시장으로 나와 보라”는 말에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성남의료원 설립 운동을 했던 이 후보는 당시 성남시의회에서 병원 설립 운영 조례안 심의가 일방적으로 보류되자 시의원들에게 욕설을 하거나 잡아끈 혐의(특수공무집행 방해)로 고발돼 수배되자 은신하던 중이었다. 병원 설립 운동을 함께 했던 정 씨는 “이 후보는 당시 수배 중이라 어둡고 습한 지하실에 숨어 씻지도 못한 모습이었다”며 “울면서 ‘선거에 나와 달라’고 했는데 고민을 많이 했는지 이후 2006년 성남시장 선거에 출마했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이 후보는 자서전에서 정 씨의 제안에 대해 “정치로의 길에 들어서는 순간이었다”며 “내 자리는 늘 가장 치열한 전선이었다”고 밝혔다.● 분당 파크뷰 특혜 분양 의혹 제기 앞장서이 후보는 인권 변호사로서 수임한 노동 및 시국사건 외에도 해고무효 소송이나 뺑소니, 대여금 소송 등 민사 사건도 많이 수임했다. 그가 이름을 알린 건 성남시민모임 집행위원장으로서 2000년 분당 파크뷰 특혜 분양 의혹을 제기했을 때다. 이 후보와 함께 활동했던 인사는 “김대중 정부였고 유죄 판결을 받은 김병량 당시 시장도 원래 우리가 밀던 분”이라며 “그럼에도 부당한 일에 반대하는 이 후보를 보면서 패기 넘치는 변호사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2002년 5월 기자회견을 열고 최철호 전 KBS PD와 김병량 당시 시장의 통화 내용을 폭로했고 이른바 ‘검사 사칭’으로 벌금 150만 원 형을 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후보가 최 전 PD에게 “추가 질문사항을 적어주거나, 답변을 듣다가 손가락을 동그랗게 만들어 사인을 보냈다”고 했다. 이 후보는 2005년 이후 폭력, 살인, 강간 사건도 변호했다. 이종조카의 절도 혐의와 친조카의 살인 혐의를 변호한 것도 이때였다. 이 후보는 2007년 8월엔 성남 조직폭력배였던 국제마피아파 김찬종 씨가 반대파를 습격한 사건을 변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와 함께 일했던 변호사는 “시민이 사무실에 와서 사건을 맡긴 것이고, 수임 당시 이 후보가 상담하지 않았다”고 했다. 반면 이민석 변호사는 “파크뷰 사건은 정권 실세들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를 드러낸 일을 한 것이지만 살해범인 조카나 동거녀 살해범 등을 변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 실용주의자 vs 포퓰리스트2010년 제19대 성남시장으로 당선된 이 후보는 “전임 시장이 진 빚 5200억 원을 단기간에 갚을 수 없다”며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해 이목을 끌었다. 이 후보는 이후 3년 6개월간 예산 삭감, 긴축 재정 등을 통해 모든 빚을 갚아 모라토리엄을 졸업했고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벤치마킹 사례가 되기도 했다. 모라토리엄 선언을 옆에서 지켜봤던 당시 성남시 공무원 오모 씨는 “2010년 진보계 시장이 당선되자 성남시에선 복지 욕구가 분출했다. 하지만 이런 요구를 들어줄 돈이 없다는 것을 미리 알리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며 “행정가로서 똑똑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반면 함께 성남에서 활동했던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 정모 씨는 “당시 국토교통부가 성남시에 돈을 갚으라고도 안 했는데 불필요한 모라토리엄 선언을 하며 정치적 쇼를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성남시 개고기 유통시설 철거와 무상복지 정책 등도 이 후보가 성남시장 시절 이룬 대표적인 성과로 꼽힌다. 이 후보는 2016년 국내 최대 규모 개고기 거래 시장인 성남 모란시장에서 개 보관·도살시설을 유혈사태 없이 철거시켰다. 당시 철거 사업에 반대했던 김용북 현 모란시장상인회장(69)은 “시장 철거 반대 시위를 하다가 한 날은 다쳐서 누워 있는데 이 후보가 직접 찾아왔다”며 “손을 잡으면서 ‘고생이 너무 많다. 타 업종 전환 지원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위로해 마음이 녹았다”고 회상했다. 성남시 공무원으로서 철거를 담당했던 임진 전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장은 “이 후보의 센 이미지 때문에 마치 무지막지하게 시장을 밀어버렸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며 “그러나 이 후보는 2년 넘게 상인들을 설득해 자진 철거하게 만들었다. 일이 되게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후보의 3대 무상복지 사업(청년배당, 무상산후조리지원, 무상교복)에 대해선 ‘포퓰리즘성 사업’이라는 지적도 있다. 당시 성남시의원이었던 A 씨는 “이 후보가 이미 조례가 완성돼 있는 무상급식은 적극 확대하지 않으면서 무상교복 조례만 계속 성남시의회에 올렸다. 상대 정당 소속 시의원들이 이를 부결시킬수록 자신의 몸값이 올라간다는 걸 알았던 것”이라고 했다.● ‘변방의 장수’에서 대선 유력 주자로변방의 장수였던 이 후보가 중앙 정치권의 주목을 받은 건 2016년 지방자치단체 예산권을 둘러싼 박근혜 정부와의 갈등으로 11일간 단식 농성을 하면서다. 그해 10월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자 이 후보는 제도권 정치인 중 처음으로 박 대통령 하야를 공개 주장했다. 이후 이 후보는 2017년 대선 경선 출마와 2018년 경기도지사를 거쳐 유력 대선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이 후보는 거침없는 ‘사이다 발언’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설화도 잦았다. 지난해 3월 민주당 대표였던 이 후보는 충남 당진 전통시장을 찾아 “왜 중국을 집적거리냐. 그냥 셰셰(고맙다),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된다”며 “양안 문제에 우리가 왜 개입하냐”고 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안규영 기자 kyu0@donga.com고도예 기자 yea@donga.com성남=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성남=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내가 무슨 시장이에요. 차라리 이장을 하고 말지.”2004년 3월 경기 성남시 수정구 주민교회 지하 기도실. 바닥에 앉아 있던 40세의 이재명 변호사(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노동조합 활동가 정해선 씨의 “이 변호사가 시장으로 나와 보라”는 말에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성남의료원 설립 운동을 했던 이 후보는 당시 성남시의회에서 병원 설립 운영 조례안 심의가 일방적으로 보류되자 시의원들에게 욕설을 하거나 잡아끈 혐의(특수공무집행 방해)로 고발돼 수배되자 은신하던 중이었다. 병원 설립 운동을 함께 했던 정 씨는 “이 후보는 당시 수배 중이라 어둡고 습한 지하실에 숨어 씻지도 못한 모습이었다”며 “울면서 ‘선거에 나와 달라’고 했는데 고민을 많이 했는지 이후 2006년 성남시장 선거에 출마했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이 후보는 자서전에서 정 씨의 제안에 대해 “정치로의 길에 들어서는 순간이었다”며 “내 자리는 늘 가장 치열한 전선이었다”고 밝혔다.● 분당 파크뷰 특혜 분양 의혹 제기 앞장서이 후보는 인권 변호사로서 수임한 노동 및 시국사건 외에도 해고무효 소송이나 뺑소니, 대여금 소송 등 민사 사건도 많이 수임했다. 그가 이름을 알린 건 성남시민모임 집행위원장으로서 2000년 분당 파크뷰 특혜 분양 의혹을 제기했을 때다. 이 후보와 함께 활동했던 인사는 “김대중 정부였고 유죄 판결을 받은 김병량 당시 시장도 원래 우리가 밀던 분”이라며 “그럼에도 부당한 일에 반대하는 이 후보를 보면서 패기 넘치는 변호사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이 과정에서 그는 2002년 5월 기자회견을 열고 최철호 전 KBS PD와 김병량 당시 시장의 통화 내용을 폭로했고 이른바 ‘검사 사칭’으로 벌금 150만 원 형을 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후보가 최 전 PD에게 “추가 질문사항을 적어주거나, 답변을 듣다가 손가락을 동그랗게 만들어 사인을 보냈다”고 했다.이 후보는 2005년 이후 폭력, 살인, 강간 사건도 변호했다. 이종조카의 절도 혐의와 친조카의 살인 혐의를 변호한 것도 이때였다. 이 후보는 2007년 8월엔 성남 조직폭력배였던 국제마피아파 김찬종 씨가 반대파를 습격한 사건을 변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와 함께 일했던 변호사는 “시민이 사무실에 와서 사건을 맡긴 것이고, 수임 당시 이 후보가 상담하지 않았다”고 했다. 반면 이민석 변호사는 “파크뷰 사건은 정권 실세들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를 드러낸 일을 한 것이지만 살해범인 조카나 동거녀 살해범 등을 변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용주의자 vs 포퓰리스트2010년 제19대 성남시장으로 당선된 이 후보는 “전임 시장이 진 빚 5200억 원을 단기간에 갚을 수 없다”며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해 이목을 끌었다. 이 후보는 이후 3년 6개월간 예산 삭감, 긴축 재정 등을 통해 모든 빚을 갚아 모라토리엄을 졸업했고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벤치마킹 사례가 되기도 했다. 모라토리엄 선언을 옆에서 지켜봤던 당시 성남시 공무원 오모 씨는 “2010년 진보계 시장이 당선되자 성남시에선 복지 욕구가 분출했다. 하지만 이런 요구를 들어줄 돈이 없다는 것을 미리 알리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며 “행정가로서 똑똑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반면 함께 성남에서 활동했던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 정모 씨는 “당시 국토교통부가 성남시에 돈을 갚으라고도 안 했는데 불필요한 모라토리엄 선언을 하며 정치적 쇼를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성남시 개고기 유통시설 철거와 무상복지 정책 등도 이 후보가 성남시장 시절 이룬 대표적인 성과로 꼽힌다. 이 후보는 2016년 국내 최대 규모 개고기 거래 시장인 성남 모란시장에서 개 보관·도살시설을 유혈사태 없이 철거시켰다. 당시 철거 사업에 반대했던 김용북 현 모란시장상인회장(69)은 “시장 철거 반대 시위를 하다가 한 날은 다쳐서 누워 있는데 이 후보가 직접 찾아왔다”며 “손을 잡으면서 ‘고생이 너무 많다. 타 업종 전환 지원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위로해 마음이 녹았다”고 회상했다. 성남시 공무원으로서 철거를 담당했던 임진 전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장은 “이 후보의 센 이미지 때문에 마치 무지막지하게 시장을 밀어버렸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며 “그러나 이 후보는 2년 넘게 상인들을 설득해 자진 철거하게 만들었다. 일이 되게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하지만 이 후보의 3대 무상복지 사업(청년배당, 무상산후조리지원, 무상교복)에 대해선 ‘포퓰리즘성 사업’이라는 지적도 있다. 당시 성남시의원이었던 A 씨는 “이 후보가 이미 조례가 완성돼 있는 무상급식은 적극 확대하지 않으면서 무상교복 조례만 계속 성남시의회에 올렸다. 상대 정당 소속 시의원들이 이를 부결시킬수록 자신의 몸값이 올라간다는 걸 알았던 것”이라고 했다.● ‘변방의 장수’에서 대선 유력 주자로변방의 장수였던 이 후보가 중앙 정치권의 주목을 받은 건 2016년 지방자치단체 예산권을 둘러싼 박근혜 정부와의 갈등으로 11일간 단식 농성을 하면서다. 그해 10월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자 이 후보는 제도권 정치인 중 처음으로 박 대통령 하야를 공개 주장했다. 이후 이 후보는 2017년 대선 경선 출마와 2018년 경기도지사를 거쳐 유력 대선 주자로 자리매김했다.이 후보는 거침없는 ‘사이다 발언’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설화도 잦았다. 지난해 3월 민주당 대표였던 이 후보는 충남 당진 전통시장을 찾아 “왜 중국을 집적거리냐. 그냥 셰셰(고맙다),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된다”며 “양안 문제에 우리가 왜 개입하냐”고 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안규영 기자 kyu0@donga.com고도예 기자 yea@donga.com성남=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성남=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부정하게 살아오거나 남의 돈을 노력하지 않고 얻으려는 사람은 그 마음을 쉽게 못 고친다. 벌 받을 땐 벌 받아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988년 안동지청에서 검사 시보를 하던 시절부터 알게 된 김창규 씨(77)는 당시 이 후보가 이같이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화투 치다가 교도소 간 친구를 좀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었는데 딱 잘라서 거절하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곧 “그때는 섭섭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더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에게 이 후보의 면면을 전달하기 위해 성장 과정과 삶의 궤적을 따라 그를 기억하는 지인 20여 명을 찾아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이들은 이 후보에 대해 “정의롭고 마음 먹은 것은 꼭 해내는 사람”부터 “위험한 사람”이라는 주장까지 엇갈린 평가를 내놨다. ● 초교 졸업 후 6년간 소년공 생활 이 후보는 1963년(호적상 1964년) 화전민이 살던 경북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 지통마을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크레파스나 도화지 같은 준비물을 학교에 챙겨 간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과 화투 노름을 하다가 밭을 날리고 집을 나가 3년간 돌아오지 않았다. 이 후보 뒷집에 살았던 삼계초 3년 후배 김홍락 씨(59)는 “동네가 다 초가집이었고, 내가 초교 2학년 때쯤에야 도로가 뚫려서 버스가 다니고, 전기가 들어왔다. 집에서 삼계초까지 4∼5km 되는 거리였고, 가방이 없어서 보자기를 둘러메고 다니던 시절”이라며 “어린 시절 기억이지만 (이 후보는) 유달리 씩씩하고 어렸을 때부터 지도자 기질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후보의 초등학교 성적표에는 ‘동무들과 사귐이 좋고 매사 의욕이 있으나 덤비는 성질이 있음’이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선생님에게 따귀를 27대나 맞고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똑바로 쳐다봤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A 씨는 “정의로운 면이 있고 괜찮은 사람이었지만 집안이 어려워서인지 좀 거칠었다”고 했다. 1976년 초교를 졸업한 직후 아버지가 정착한 경기 성남시 상대원동 꼭대기 월셋집으로 온 가족이 상경했다. 이후 이 후보는 6년간 목걸이 공장을 거쳐 고무부품 공장, 냉장고 공장 등을 전전했다. 아버지는 동네 쓰레기를 치웠고 어머니는 상대원시장 화장실 입구에서 소변 10원, 대변 20원의 이용료를 받고 청소를 했다. 아버지는 자식 공부보다 번듯한 집 한 채 마련이 우선인 사람이었다. 소년공 선배들은 아이스크림 ‘브라보콘’ 내기로 신참들에게 권투 경기를 시켰는데 지면 돈까지 잃었다. 이 후보는 “일당 600원을 받던 시절로 브라보콘이 100원가량 했는데 주로 많이 맞고 지고 (그래서 돈을) 뜯겼다”고 했다. 이 후보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나보다 한 살 어린 꼬맹이 여자애가 나이를 두 살이나 속여 나로 하여금 ‘누나’라고 부르게 해 머리끄덩이를 잡아 버르장머리를 가르쳐 주고,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건방지게 놀던 힘 약해 보이는 동료에게 식판을 집어던지는 만행을 저지름으로써 공장 내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쓰기도 했다. 소년공 출신 B 씨는 “키는 조그맣고 삐쩍 말라가지고 나이를 속여 공장에 들어와 네 살 많은 형들과 친구를 먹다가 들켜서 맞기도 했다”며 “독종이라 그렇게 맞아도 잘못했다는 말을 안 해서 더 맞았다”고 전했다. ● 2차례 ‘자살 시도’ 이기고 장학생 된 李스키 장갑과 야구 글러브를 만드는 대양실업을 다니던 중 공장에서 맞지 않고, 돈 뜯기지 않고, 점심시간에 자유롭게 공장 밖을 다닐 수 있는 고졸 출신 대리처럼 되고 싶었다.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고 3개월 만에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당시에도 직원이 2000명 넘는 오리엔트로 공장을 옮겨 도금실과 래커실에서 소년공 생활을 하면서도 단과학원에 다녔다. 공장에서 책을 보고 있으면 “공돌이 주제에 맞게 놀아!”라며 구박을 받았다. 오리엔트시계 관계자는 “1980년대 성남의 경제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에, 한 푼이 아쉬운 소년공들이 바글바글했다”고 말했다.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지만 아버지는 학원에 보내주지 않았다. 단칸방에서 한밤중에 불을 켜고 공부하는 그에게 “그깟 공부 따위 해서 뭐 해? 잠 좀 자자, 잠 좀!”이라고 고함을 치는 아버지였다. B 씨는 “그때는 검정고시 하고 나오면 직장에서 주임 정도를 해줬다”며 “그런 주임 같은 거 달려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암기력이 좋으니까 다른 애들보다 일찍 붙어서 중앙대 가고 사법시험 패스한 것”이라고 말했다. 작업 도중 왼쪽 손목이 프레스기에 눌렸지만 수술도 받지 못했다. 이 후보는 이때 후유증으로 왼팔이 굽었고 장애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가난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한 팔을 못 쓰게 될 것이라는 절망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다락에 연탄불을 피우고 수면제 스무 알을 먹었지만 연탄불은 꺼져 있었고 멀쩡하게 눈을 뜨고 일어났다. 수면제를 찾는 소년을 보고 상황을 짐작한 약사는 수면제 대신 소화제 같은 것을 잔뜩 줬던 것이다. 1981년 사립대학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특별장학생 제도가 도입되자 마음을 다잡고 이를 목표로 대입을 준비했다. 3학년까지 등록금 전액을 면제받고 매월 20만 원의 생활비를 받는 중앙대 법대에 합격했다. 20만 원은 공장에서 받던 월급의 3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어머니는 “재맹아, 내는 인자 죽어도 한이 없대이”라고 했다. 이 후보가 20대일 때부터 알고 지낸 효림 스님은 “(이 후보는) 어머니 이야기할 때 보면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일반적으로 옛날에 고생한 게 부끄럽기도 하고 가난한 시절에 고생한 걸 숨기고 싶고 이야기 안 하고 싶은데도 (이 후보는)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이 후보는 1986년 겨울 스물셋 나이에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아버지는 그해 3월 위암 재발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고 합격 사실을 전하자 아버지 눈가에 눈물이 흘렀다. 며칠 뒤 아버지는 세상을 떴고 공부를 지원해주지 않았던 아버지와도 화해하게 됐다.● 연수원 시절 대법원장 임명 반대 성명 초안 써사법연수원 생활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은근히 지연과 학연, 집안을 자랑하는 연수생들이 많았고 몇몇은 노골적으로 연줄 없는 연수생을 무시했다. 그 대신 그는 운동권의 지하서클 조직인 비공개 기수 모임에서 활동했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과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 민주당 정성호 의원, 최원식 문병호 전 의원 등이 참여하는 모임이었다. 이들은 1988년 노태우 정부에서 지명된 정기승 대법원장 임명에 반대하는 연수원생 성명을 주도했다. 한 지인은 당시 성명의 초안은 이 후보가 작성했고 문형배 전 재판관이 성명서 사본을 복사해오는 역할을 맡았다고 회상했다. 이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에게 감명을 받아 인권변호사의 길을 마음속에 굳혔다. 사법연수원 18기 동기인 C 씨는 “소년공 시절 등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안 했지만 당시에도 부자나 기득권 있는 사람에 대한 꽤 깊은 적개심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정상적으로 학교 생활을 한 게 아니다 보니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며 “(이 후보는) 딱 사람을 조지는 스타일이었다. 원래 검찰에 가고 싶어 했지만 아무래도 기수 모임 활동한 게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이 후보는 연수원 2년 차 때 인권변호사 조영래 변호사 사무실에서 변호사 실습을 했고 성남지원에서 판사 시보로, 고향인 안동지청에서 검사 시보를 했다. 이 후보는 연수원 성적이 중상위권이어서 판검사 임용이 가능했지만 성남시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고 성남공단의 노동 사건과 외국인 노동자의 산업재해 사건, 경원대와 한국외국어대 등 구속된 학생들의 변호는 물론이고 시국사건 양심수들의 사건도 무료로 맡았다. 일주일에 2번은 이천노동상담소로 가 노동운동을 지원하고 노동법률 상담을 했다. 1990년 8월 같은 교회에 다녔던 이 후보의 셋째 형수와 김혜경 씨의 어머니가 만남을 주선하면서 이 후보와 김 씨는 가정을 꾸렸다. 이 후보는 만난 지 일주일 만에 김 씨에게 청혼했고 답이 없자 소년공 때부터 10년간 써온 일기장을 줬다. 두 사람은 1991년 3월 결혼해 슬하에 두 아들을 뒀다. 직장인인 장남 동호 씨(33)는 올 6월 결혼을 앞두고 있으며 차남 윤호 씨(32)도 대학 졸업 후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성남=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성남=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성남=최미송 기자 cms@donga.com}
“부정하게 살아오거나 남의 돈을 노력하지 않고 얻으려는 사람은 그 마음을 쉽게 못 고친다. 벌 받을 땐 벌 받아야 한다.”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988년 안동지청에서 검사 시보를 하던 시절부터 알게 된 김창규 씨(77)는 당시 이 후보가 이같이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화투 치다가 교도소 간 친구를 좀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었는데 딱 잘라서 거절하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곧 “그때는 섭섭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더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에게 이 후보의 면면을 전달하기 위해 성장 과정과 삶의 궤적을 따라 그를 기억하는 지인 20여 명을 찾아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이들은 이 후보에 대해 “정의롭고 마음 먹은 것은 꼭 해내는 사람”부터 “위험한 사람”이라는 주장까지 엇갈린 평가를 내놨다. ● 초교 졸업 후 6년간 소년공 생활 이 후보는 1963년(호적상 1964년) 화전민이 살던 경북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 지통마을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크레파스나 도화지 같은 준비물을 학교에 챙겨 간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과 화투 노름을 하다가 밭을 날리고 집을 나가 3년간 돌아오지 않았다. 이 후보 뒷집에 살았던 삼계초 3년 후배 김홍락 씨(59)는 “동네가 다 초가집이었고, 내가 초교 2학년 때쯤에야 도로가 뚫려서 버스가 다니고, 전기가 들어왔다. 집에서 삼계초까지 4~5km 되는 거리였고, 가방이 없어서 보자기를 둘러메고 다니던 시절”이라며 “어린 시절 기억이지만 (이 후보는) 유달리 씩씩하고 어렸을 때부터 지도자 기질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이 후보의 초등학교 성적표에는 ‘동무들과 사귐이 좋고 매사 의욕이 있으나 덤비는 성질이 있음’이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선생님에게 따귀를 27대나 맞고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똑바로 쳐다봤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A 씨는 “정의로운 면이 있고 괜찮은 사람이었지만 집안이 어려워서인지 좀 거칠었다”고 했다.1976년 초교를 졸업한 직후 아버지가 정착한 경기 성남시 상대원동 꼭대기 월셋집으로 온 가족이 상경했다. 이후 이 후보는 6년간 목걸이 공장을 거쳐 고무부품 공장, 냉장고 공장 등을 전전했다. 아버지는 동네 쓰레기를 치웠고 어머니는 상대원시장 화장실 입구에서 소변 10원, 대변 20원의 이용료를 받고 청소를 했다. 아버지는 자식 공부보다 번듯한 집 한 채 마련이 우선인 사람이었다. 소년공 선배들은 아이스크림 ‘브라보콘’ 내기로 신참들에게 권투 경기를 시켰는데 지면 돈까지 잃었다. 이 후보는 “일당 600원을 받던 시절로 브라보콘이 100원가량 했는데 주로 많이 맞고 지고 (그래서 돈을) 뜯겼다”고 했다. 이 후보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나보다 한 살 어린 꼬맹이 여자애가 나이를 두 살이나 속여 나로 하여금 ‘누나’라고 부르게 해 머리끄덩이를 잡아 버르장머리를 가르쳐 주고,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건방지게 놀던 힘 약해 보이는 동료에게 식판을 집어 던지는 만행을 저지름으로써 공장 내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쓰기도 했다. 소년공 출신 B 씨는 “키는 조그맣고 삐쩍 말라가지고 나이를 속여 공장에 들어와 네 살 많은 형들과 친구를 먹다가 들켜서 맞기도 했다”며 “독종이라 그렇게 맞아도 잘못했다는 말을 안 해서 더 맞았다”고 전했다. ● 2차례 ‘자살 시도’ 이기고 장학생 된 李스키 장갑과 야구 글러브를 만드는 대양실업을 다니던 중 공장에서 맞지 않고, 돈 뜯기지 않고, 점심시간에 자유롭게 공장 밖을 다닐 수 있는 고졸 출신 대리처럼 되고 싶었다.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고 3개월 만에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당시에도 직원이 2000명 넘는 오리엔트로 공장을 옮겨 도금실과 래커실에서 소년공 생활을 하면서도 단과학원에 다녔다. 공장에서 책을 보고 있으면 “공돌이 주제에 맞게 놀아!”라며 구박을 받았다. 오리엔트시계 관계자는 “1980년대 성남의 경제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에, 한 푼이 아쉬운 소년공들이 바글바글했다”고 말했다.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지만 아버지는 학원에 보내주지 않았다. 단칸방에서 한밤중에 불을 켜고 공부하는 그에게 “그깟 공부 따위 해서 뭐 해? 잠 좀 자자, 잠 좀!”이라고 고함을 치는 아버지였다. B 씨는 “그때는 검정고시 하고 나오면 직장에서 주임 정도를 해줬다”며 “그런 주임 같은 거 달려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암기력이 좋으니까 다른 애들보다 일찍 붙어서 중앙대 가고 사법고시 패스한 것”이라고 말했다.프레스기에 눌린 손목 통증은 심해졌지만 수술도 받지 못했다. 이 후보는 이때 후유증으로 왼팔이 굽었고 장애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가난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한 팔을 못 쓰게 될 것이라는 절망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다락에 연탄불을 피우고 수면제 스무 알을 먹었지만 연탄불은 꺼져 있었고 멀쩡하게 눈을 뜨고 일어났다. 수면제를 찾는 소년을 보고 상황을 짐작한 약사는 수면제 대신 소화제 같은 것을 잔뜩 줬던 것이다. 1981년 사립대학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특별장학생 제도가 도입되자 마음을 다잡고 이를 목표로 대입을 준비했다. 3학년까지 등록금 전액을 면제받고 매월 20만 원의 생활비를 받는 중앙대 법대에 합격했다. 20만 원은 공장에서 받던 월급의 3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어머니는 “재맹아, 내는 인자 죽어도 한이 없대이”라고 했다. 이 후보가 20대일 때부터 알고 지낸 효림 스님은 “(이 후보는) 어머니 이야기할 때 보면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일반적으로 옛날에 고생한 게 부끄럽기도 하고 가난한 시절에 고생한 걸 숨기고 싶고 이야기 안 하고 싶은데도 (이 후보는)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이 후보는 1986년 겨울 스물셋 나이에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아버지는 그해 3월 위암 재발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고 합격 사실을 전하자 아버지 눈가에 눈물이 흘렀다. 며칠 뒤 아버지는 세상을 떴고 공부를 지원해주지 않았던 아버지와도 화해하게 됐다.● 연수원 시절 대법원장 임명 반대 성명 초안 써사법연수원 생활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은근히 지연과 학연, 집안을 자랑하는 연수생들이 많았고 몇몇은 노골적으로 연줄 없는 연수생을 무시했다. 그 대신 그는 운동권의 지하서클 조직인 비공개 기수 모임에서 활동했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과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 민주당 정성호 의원, 최원식 문병호 전 의원 등이 참여하는 모임이었다. 이들은 1988년 노태우 정부에서 지명된 정기승 대법원장 임명에 반대하는 연수원생 성명을 주도했다. 한 지인은 당시 성명의 초안은 이 후보가 작성했고 문형배 전 재판관이 성명서 사본을 복사해오는 역할을 맡았다고 회상했다. 이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에게 감명을 받아 인권변호사의 길을 마음속에 굳혔다. 사법연수원 18기 동기인 C 씨는 “소년공 시절 등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안 했지만 당시에도 부자나 기득권 있는 사람에 대한 꽤 깊은 적개심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정상적으로 학교 생활을 한 게 아니다 보니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며 “(이 후보는) 딱 사람을 조지는 스타일이었다. 원래 검찰에 가고 싶어 했지만 아무래도 기수 모임 활동한 게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이 후보는 연수원 2년 차 때 인권변호사 조영래 변호사 사무실에서 변호사 실습을 했고 성남지원에서 판사 시보로, 고향인 안동지청에서 검사 시보를 했다. 이 후보는 연수원 성적이 중상위권이어서 판검사 임용이 가능했지만 성남시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고 성남공단의 노동 사건과 외국인 노동자의 산업재해 사건, 경원대와 한국외국어대 등 구속된 학생들의 변호는 물론이고 시국사건 양심수들의 사건도 무료로 맡았다. 일주일에 2번은 이천노동상담소로 가 노동운동을 지원하고 노동법률 상담을 했다. 이 후보는 1990년 8월 같은 교회에 다녔던 이 후보의 형수와 김혜경 씨의 어머니가 만남을 주선하면서 두 사람은 가정을 꾸렸다. 이 후보는 만난 지 일주일 만에 김 씨에게 청혼했고 답이 없자 소년공 때부터 10년간 써온 일기장을 줬다. 두 사람은 1991년 3월 결혼해 슬하에 두 아들을 뒀다. 직장인인 장남 동호 씨(33)는 올 6월 결혼을 앞두고 있으며 차남 윤호 씨(32)도 대학 졸업 후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성남=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성남=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숲은 다른 어떤 농사와도 다릅니다. 씨앗을 사지도, 비료를 주지도, 농약을 치지도 않지만 언제나 최고의 선물을 주지요.” 지난달 22일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시에서 남동쪽으로 80km 떨어진 브로몽의 파인 마운틴 숲을 찾았다. 퀘벡 지역은 세계 메이플 시럽의 72%, 캐나다 메이플 시럽의 90%를 생산하는 전 세계 메이플 시럽의 핵심 생산지다. 이곳에서 만난 메이플 시럽 생산자 데이비드 홀 씨(65)는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울창한 단풍나무들을 쓰다듬으며 “숲에서 태어나고 숲에서 자란 우리에게 숲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수액 흘러넘치는 봄의 단풍나무 숲홀 씨의 단풍나무 숲은 얼핏 보기엔 잎사귀 없는 나무들로 가득한 겨울 산의 모습이었다. 군데군데 여전히 녹지 않은 눈들이 덮여 있었다. 하지만 수액 채취를 위해 단풍나무마다 1, 2개씩 꽂아놓은 관을 가만히 살펴보니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수액이 흘러나와 튜브를 통해 산 아래쪽 수액 탱크로 내려가고 있었다. 홀 씨는 “지금처럼 낮과 밤의 일교차가 커 수액 흐름이 왕성한 3월이 단풍나무 수액을 채취할 수 있는 유일한 시기”라며 “많게는 하루에 한 그루당 3갤런(11.4L)을 채취하는데, 이런 나무가 이 숲에 2만3000그루”라고 설명했다.메이플 생산자들은 봄이 오기 전 미리 나무에 드릴로 구멍 1, 2개를 뚫고 수액 채취 관을 연결한다. 20여 일 뒤 채취를 끝내고 관을 제거하면 1년 뒤 나무는 스스로 재생을 통해 그 구멍을 메운다. 나무에서 막 흘러나온 단풍나무 수액은 달콤한 생수 같은 맛이 난다. 이를 수액 탱크에 싣고 단풍나무 숲 근처 일종의 처리 시설인 ‘슈거섁(Sugar Shack·설탕 오두막)’으로 가져간다. 수액을 끓이자 마침내 갈색빛이 나는 메이플 시럽이 됐다. 홀 씨는 “1L의 메이플 시럽을 만드는 데 평균 40L의 수액이 필요하다”며 “메이플 시럽의 브릭스와 농도는 생산 설비 내 컴퓨터 센서를 통해 균질하게 관리된다”고 설명했다.● 대 이어 청년 농가 만드는 ‘액체 황금’ 홀 씨의 집안은 1860년부터 6대째 메이플 시럽을 생산하고 있다. 그는 “아버지의 아버지 이전에도 우리는 늘 이 숲에 있었다”며 “어린 시절 아버지를 도와 일하던 때와 달라진 점이라면 그때는 채취한 수액을 마차에 실어 산 아래로 가지고 내려왔다는 것뿐”이라며 웃었다. 홀 씨는 “오직 자연과 호흡하며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게 일터로서의 숲의 매력”이라며 “맥길대 졸업 후 스스로 이 숲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홀 씨의 아들 앤드루 씨(31)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처럼 맥길대에서 자연과학을 전공한 뒤 숲으로 돌아와 메이플 시럽을 함께 생산하고 있다. 실제 퀘벡 지역에는 귀농한 청년층 등 젊은 메이플 시럽 생산자가 꾸준히 유입되며 그 수가 늘고 있다. 캐나다 정부 통계와 퀘벡 메이플 시럽 생산자협회(QMSP)에 따르면 2016년 이후 생산 농가 수는 20% 가까이 늘어 현재 1만3500가구에 달한다. 이렇게 창출된 정규직 일자리도 1만2600개에 이른다. QMSP는 “메이플 시럽 산업은 퀘벡주 국내총생산(GDP)에 11억 캐나다달러(약 1조1300억 원) 이상을 기여한다”며 “벌목에 비해 GDP는 9배, 고용은 16배 더 높다”고 분석했다. 홀 씨 역시 “메이플 시럽 생산을 통해 매년 40만 캐나다달러(약 4억1170만 원)의 수익을 얻는다”고 말했다.● 숲푸드로 지역경제 활성화 세계 3대 산림국 중 하나인 캐나다는 숲에서 얻는 임산물이 이처럼 국가 경제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캐나다의 임산물은 목재와 펄프부터 시작해 블루베리, 크랜베리 등 숲 열매와 단풍나무 수액 등 비(非)목재 임산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산림 전문가들은 “버섯, 산나물, 감, 대추, 밤 등 먹는 임산물, 일명 ‘숲푸드’는 자연산 무공해 식품인 데다 탄소 배출, 토양 오염 등도 줄여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며 “지역의 숲푸드를 잘 살리면 지역 경제도 좋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캐나다의 숲을 지키고 지역을 살리려 노력하는 일부 청년들은 캐나다 숲의 오랜 주인이었던 원주민 부족들과 함께 직접 숲으로 나가 버섯과 허브, 약초 등을 채취하고 이를 판매하는 지역 기반 사업체를 세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들은 ‘야생 바구니(The Wild Basket)’라는 이니셔티브를 통해 지역과 땅을 연결하고 주민들과 인근 식당에 신선한 임산물을 공급해 주목받았다. 다만 최근 캐나다 숲 농가들은 기후변화 위기와 맞서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극한기후 속 산불 재해 위험성 등이 커졌기 때문이다. 홀 씨는 “모든 숲을 지금처럼 유지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메이플 시럽 산업의 미래와 다음 세대를 위해 필요한 숲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새로운 단풍나무를 심어 메이플 시럽을 생산하려면 최소 50년 이상이 걸린다”고 말했다. 최근 퀘벡 지역의 메이플 시럽 생산 농가들은 ‘숲이 없으면 시럽도 없다’ 캠페인을 시작했다. 메이플 시럽 패키지에 캠페인 문구가 새겨진 10만 개의 스티커를 붙여 국내외 메이플 시럽 소비자들에게도 숲의 중요성을 알리자는 취지다.특별취재팀▽팀장 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황인찬 임우선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이소정 임재혁 기자(이상 사회부)}
캐나다 퀘벡주(州) 일대의 메이플 시럽 생산 농가들은 시럽 생산에서 더 나아가 메이플 시럽을 지역의 요리 및 문화 유산과 결합시킨 체험형 사업을 통해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바로 퀘벡 지역의 독특한 전통 문화인 ‘슈거섁(설탕 오두막)’을 통해서다. 1850년대부터 등장한 것으로 알려진 설탕 오두막은 메이플 시럽 생산이 절정에 달하는 이른 봄, 온 가족이 눈 덮인 숲에서 종일 일하다가 저녁에 모여 함께 술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휴식을 취하던 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도 퀘벡주의 단풍나무 숲 일대에는 100여 개의 설탕 오두막이 존재하는데, 대부분 단풍나무 수액 채취가 이뤄지는 3월에 집중적으로 운영된다. 이 시기에 설탕 오두막을 방문하면 갓 끓여낸 메이플 시럽을 눈 위에 붓고 나무 막대에 돌돌 말아 막대 사탕처럼 굳혀 먹는 ‘메이플 태피’를 경험할 수 있다. 메이플 시럽을 이용한 팬케이크나 크레이프 등 다양한 퀘벡 전통 요리도 제공된다. 설탕 오두막 옆 단풍나무 숲에서 방문객들은 직접 단풍나무 수액 채취 과정을 관찰하고 생산자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일부 설탕 오두막은 무쇠 솥에 단풍나무 수액을 붓고 장작을 피워 메이플 시럽을 만드는 전통 방식을 시연하는가 하면, 단풍나무 숲 산책이나 마차 체험 등 다양한 활동을 제공하다 보니 이 시기 슈거섁에는 가족 단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퀘벡주는 2020년 메이플 시럽 생산 100주년을 기념한 데 이어 2021년 단풍나무 수액 채취 시즌을 문화유산법에 따라 퀘벡의 공식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또 메이플 시럽의 역사와 생산을 초등학교 교육 과정에서 다뤄 지역의 숲 자원이 산업을 넘어 교육과 공유 유산으로 이어지도록 하고 있다. 지역의 기술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메이플 시럽 생산 자격증도 딸 수 있다. 퀘벡주는 지난해 단풍나무를 퀘벡 문화와 정체성의 상징으로 공식화하기 위해 10월 셋째 주 일요일을 ‘국립 단풍나무의 날’로 선포하는 법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날은 단풍나무와 단풍 시럽 생산, 단풍나무 제품과 관련된 모든 것을 기념한다. 퀘벡의 문화, 사회, 요리, 역사에서 단풍나무 숲이 가지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다.특별취재팀▽팀장 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황인찬 임우선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이소정 임재혁 기자(이상 사회부)}
《日 인구소멸지역 되살린 숲오카야마현 마니와시는 산림 면적이 80%에 달하는 일본의 대표적 산촌이다. 목재 생산으로 지역 경제를 이끌어 왔지만, 주택 경기 침체로 목재 수요가 줄며 젊은층이 떠나고 인구도 급감해 인구소멸 지역으로 전락했다. 반전의 계기를 만든 것은 다시 ‘숲’이었다. 버려지던 폐목재를 원료로 바이오매스 발전소를 세워 전기를 생산하고 그 전기로 다시 목재를 가공하며 친환경 순환 경제를 이뤄냈다. 지속가능한 산촌 모델로 주목받자 도시 청년들까지 하나둘 정착했다. 숲을 잘 활용해 지역 경제를 살리고 결과적으로 숲도 사는 ‘그린시프트’를 이뤄낸 것이다.》“친환경 산림 관련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산촌 생활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1일 일본 중부 오카야마현 마니와시(市)에서 만난 나카야마 나오키 씨(35)에게 산촌 생활을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나카야마 씨는 돗토리현 소재 대학의 전기전자공업과를 졸업한 뒤 2014년 마니와시 목재 및 발전 기업인 메이켄(銘建)공업에 입사해 이곳에 정착했다. 일본 또한 젊은 사람들은 대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가지만, 역으로 산촌으로 들어와 12년째 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현재 회사의 바이오매스 발전소 관리 및 기계 운용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 나카야마 씨는 “바이오매스 발전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며 이곳을 택한 이유를 말했다.● 인구소멸지역에 日 최대 폐목재 발전소 나카야마 씨가 정착한 마니와시는 2005년 3월 인구가 줄어든 9개 마을을 합해 새로 탄생한 시다. 관할 내 산림 면적이 80%에 달해 임업과 목재 생산이 지역 경제 생산의 약 30%를 차지했다. 하지만 저출산 고령화가 지속되며 주택 경기가 침체됐고 목재 수요도 줄었다. 다른 산촌처럼 젊은이들이 지역을 떠났고 고령화가 심해졌다. ‘3K’(위험하고 고되고 불결한 일·3D의 일본식 표현)로 인식되는 임업과 목재 산업의 종사자는 갈수록 줄었다. 이런 지역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이 목재 가공 과정에서 버려지는 가지, 톱밥 등 폐목재를 연료로 전기를 생산하는 바이오매스 발전소다. 폐기물 감량은 물론 나무가 흡수한 탄소를 발전 과정에서 다시 배출하는 것이라 탄소 중립 효과도 있다. 매연저감설비를 통해 대기오염물질 발생도 최소화했다. 메이켄공업은 1984년 발전능력 175kW짜리 바이오매스 발전소를 지역에 처음 만들었다. 이어 1998년 1950kW짜리를 추가했다.2015년엔 마니와시와 메이켄공업을 비롯한 10개 지역 기업들이 함께 출자해 ‘마니와 바이오매스 발전소’를 건립했다. 마니와시 관계자는 “‘폐목재를 버리느니 한번 회사에서 필요한 전기를 직접 만들어 보자’란 생각이었는데 예상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생산됐다”며 “침체된 지역 경제의 활로를 찾으려던 다른 기업들까지 뛰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총자본금 2억5000만 엔(약 25억 원) 중 마니와시도 3000만 엔을 출자했다. 이곳은 일본 최대 목재 바이오매스 발전소가 됐다. 연간 8만7500MWh의 전력을 생산해 약 20억 엔의 매출을 올린다. 버리는 목재를 재활용하면서 연간 1억 엔이 들었던 폐기 처분 비용도 절감했다.● ‘산촌의 기적’ 보러 연 4만 명 관광폐목재로 만든 전기는 지역 기업, 관광서, 학교, 주택에 공급된다. 마니와시의 에너지 자급률은 72%에 달한다. 목재 재활용으로 목재도 살고, 지역도 사는 ‘친환경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일본 내에서도 ‘산촌 경제’의 새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산촌의 기적’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마을 사람들은 2006년 투어 상품도 만들었다. 도쿄에서 신칸센을 타고 출발해도 반나절 넘게 걸리는 이곳 벽지를 다녀간 사람이 연 4만 명이 넘는다. 나카야마 씨도 이런 지역의 가능성을 믿고 정착했다. 6년 전 회사에서 차로 5분 거리인 곳에 새집을 짓고 세 아이를 낳았다. 그는 “더 공부하고 노력해 친환경 발전 전문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마니와시에서 미래를 그리는 것은 나카야마 씨뿐만은 아니다. 메이켄공업에는 도시에서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찾아오고 있다. 1923년 창업한 메이켄공업은 기존 집성판보다 강도가 높은 CLT(합판을 직각 교차해 압축시켜 강도를 높인 집성판)를 생산한다. 목재로 지어진 2020년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뿐 아니라 2025 오사카 간사이 엑스포 시설에도 마니와시에서 생산된 CLT가 사용됐다. 메이켄공업 인사과 관계자는 “우리는 100년 넘게 목재를 다룬 회사다. 바이오매스 발전뿐 아니라 목재를 가공하는 기술과 노하우가 축적돼 있어 이를 배우러 도쿄나 오사카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하는 젊은이도 적지 않다”며 “도시에서 온 젊은이들이 15명 정도”라고 했다. 마니와시 본사와 공장에는 약 300명이 근무 중인데 20∼40대 직원이 전체 직원의 60%다. 평균 연령은 39.8세다. 일본의 제조업 근로자 평균 연령이 43.1세(2021년 기준)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비교적 젊은 회사인 것이다.● “산림 경제의 새로운 성공 모델” 사람들은 삶의 터전인 숲을 더 가꾸고 있다. 전체 산림 중 인공적으로 조성한 숲이 57%가 넘는다. 보존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가꾸고 활용하면서 숲도 되레 더 커졌다. 시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이곳 목재 기업은 벌목부터 목재 가공까지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했다. 정부 지원을 받아 지난해부터 연간 1500t의 음식물쓰레기와 배설물 등을 수거한 뒤 발효시키고, 이 과정에서 나온 바이오가스로 발전을 한다. 액체 비료도 생산된다.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든다’는 게 마니와시의 목표다. 2018년에는 일본 정부가 정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시범 도시로 선정되기도 했다. 미야자키대 산림환경학과의 사쿠라이 린 부교수는 “마니와시의 시민, 기업가, 공무원들은 ‘숲을 통해 우리가 함께 지속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공통된 의식을 확실히 공유하고 있다. 그런 믿음이 산림 경제의 새로운 성공 모델을 만들어 가는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특별취재팀▽팀장 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황인찬 임우선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이소정 임재혁 기자(이상 사회부)}
일본의 산림 면적은 약 2500ha로 국토의 68.4%를 차지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핀란드(73.7%), 스웨덴(68.7%) 다음으로 많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황폐화된 산림 복구 산업이 결실을 거둬 지난 50년 사이 산림 면적이 2.6배로 늘었다. 산림 자원이 풍족해진 만큼 단순히 목재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산림이 갖고 있는 다양한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시도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의 산림청 역할을 하는 일본 임야청은 2018년 ‘산림서비스산업 검토위원회’를 마련했다. 크게 건강, 교육, 관광,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등 4개 분야로 나눠 산림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국토녹화추진기구’ ‘숲만들기전국추진회’ 등 민간 단체들과의 의견 교류도 활발하다. ‘관광 대국’ 일본은 특히 도쿄, 오사카, 교토 등 일부 대도시에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것을 분산시키고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최근 산림 관광 활성화에 힘을 쏟고 있다. 2017년 전국 국유림 83곳을 ‘일본 아름다운 숲, 추천 국유림’으로 선정하고 알리기에 나섰다. 지역의 표지판과 안내문 설치 등 외국어 정보 서비스를 늘리고 있으며, 노후한 숙박과 교통 시설 정비에도 나서고 있다. 산림욕, 온천욕 등과 결합시킨 ‘헬스 투어’도 인기다. 나가노현 이이야마(飯山)시 모리노이에(森の家)와 같은 산촌생태시설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산림 치료를 중심으로 요가, 카누, 소바 만들기, 산나물 캐기 등 200여 가지 체험 코스를 만들어 사업 초기인 2007년에 최고 200만 명이 다녀갔다. 지금도 연간 수만 명이 찾는다. 기업들도 산림 활용에 적극적이다. 정보기술(IT) 기업 세일스포스닷컴은 직원 46명이 1년간 와카야마현 산림에서 재택업무와 지역 봉사를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 결과 이전보다 매출(계약 금액)이 24% 증가하는 등 생산성이 오르는 효과를 봤다. 일본 정부는 2019년 ‘산림환경양여세’, 2024년 ‘산림환경세’ 등을 신설해 마련한 예산을 산림 지역에 투입해 산촌 경제 활성화를 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대형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산림 강국의 이미지도 강조하고 있다. 2020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 건물은 목재로 지어졌다. 이달 13일 개막하는 2025 오사카 간사이 엑스포의 상징물 또한 목재로 만들어진 ‘그랜드 링’이다. 폭 30m, 최대 높이 20m에 둘레가 무려 2km에 달하는 원형의 목조 건축물을 못을 쓰지 않고 목재들을 끼워 넣는 일본 전통 기법으로 만들었다. 지난달 4일 세계 최대 목조 건축물로 기네스 인증도 받았다.특별취재팀▽팀장 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황인찬 임우선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이소정 임재혁 기자(이상 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