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석

강경석 기자

동아일보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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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입사해 사회부 사건팀, 시청팀, 법조팀과 정치부 정당팀을 출입했습니다. 정치 개혁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coolup@donga.com

취재분야

2024-04-21~2024-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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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구 1200명 산촌에 年 1만명 발길… “DMZ 숲길이 지역 살려”

    “인구 1200명 남짓 사는 작은 마을에 매년 숲을 보겠다고 1만 명씩 오니 ‘효자 숲’이죠.” 지난달 30일 강원 양구군 해안면 ‘비무장지대(DMZ) 펀치볼 숲길’ 근처에서 만난 이 지역 토박이 주민이자 숲밥 운영자 중 한 명인 박옥근 대표(63)는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국내 최북단 민간인통제선 내 유일한 숲길이다. DMZ와 백두대간 생태축이 교차하는 분지 형태의 특수 지형이다. 화채그릇(Punch Bowl·펀치볼)을 닮았다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역사적, 생태적으로 관광 가치가 높은 숲길로 입소문이 나면서 탐방객이 몰리기 시작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연평균 방문객이 1만 명에 이른다. 2022년 기준 양구군 일대와 같은 국내 산촌의 89.5%는 인구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양구군은 DMZ 숲길로 인구소멸 위기의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DMZ 숲길은 강원도 지역경제에 연간 약 63억 원의 직간접적 파급효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운영 관리비와 숲길 등산지도사 인건비 등에 필요한 예산 3억3700만 원 대비 19배가량의 경제적 효과를 내는 셈이다.● ‘숲밥’으로 연간 매출 5800만 원 올려 DMZ 펀치볼 숲길에는 길목마다 발길을 멈추고 꽃을 유심히 바라보는 탐방객이 많았다. 탐방객 원명옥 씨(68)는 “발길이 뜸해서 그런지 다른 곳에서 못 본 야생화가 많이 피었다”고 했다. 이날 오전 원 씨를 비롯한 탐방객 38명은 숲 해설가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연둣빛 봄옷으로 갈아입은 숲을 만끽했다. 이곳은 지금도 미확인 지뢰가 남아 있어 숲길 등산지도사가 동행해야만 탐방할 수 있다. 하루 탐방객도 200명으로 제한된다. 그 대신 금강초롱 등 희귀식물과 산양, 삵 같은 야생동물을 볼 수 있다. 숲길은 DMZ 인근 민간인통제구역이라는 한계 탓에 개발이 제한됐던 이곳 주민들에게 알짜배기 관광 수입원이 됐다. 특히 탐방 코스 중간에 출장 뷔페 형식으로 제공되는 ‘13찬 숲밥’은 DMZ 숲길의 대표 먹거리이자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숲밥은 사단법인 DMZ 펀치볼 숲길이 해안면 2, 3개 농가와 계약을 맺고 판매한다. 연평균 5800만 원에 달하는 전체 매출액의 5%는 법인에 가고 나머지는 숲밥을 제공한 주민 수익으로 돌아간다. 판매 가격은 1만 원에 불과하지만 이를 기회로 농수산물 택배 판매 활로를 확보했다고 한다. 박 대표는 “숲밥 먹으러 1년에 5번 찾아온 손님도 있을 정도라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다”고 했다. 산림청은 DMZ 숲길처럼 경관이 아름답고 생태적 가치가 우수한 숲 가운데 지역사회의 발전 자산으로 육성 가능성이 있는 숲을 ‘100대 명품 숲’으로 지난해 지정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산촌 지역에 있는 강원 인제군 자작나무숲, 전남 장성군 편백숲은 매년 각각 336억 원, 274억 원의 지역경제 파급효과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 인구소멸 지역이 매년 30만 명 찾는 관광지로 강원 인제군 자작나무숲은 지역 인구 3만여 명의 10배가 넘는 32만 명이 연평균 방문할 정도로 관광객이 몰린다. 자작나무숲은 줄기와 잎이 하얗게 반짝이는 모습이 마치 눈이 내린 것처럼 보여 이국적인 풍취를 자아낸다. 관련 프로그램도 풍성하다. 자작나무숲 작은 음악회, 숲속 음악회에는 매년 1000여 명이 참여한다. 어린이가 있는 가족 단위 방문객은 유아 숲 체험원에서 숲속 교실, 인디언집 등 자연을 주제로 다양한 체험 활동을 즐길 수 있다. 사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기 위해 재방문율이 높고 주말에는 평균 1690명 넘게 찾는 명소다. 자작나무숲이 지역의 대표 관광자원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방문객 대부분 숲 한 곳만 방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춘천, 양구 등 인근에 있는 다른 지역을 찾는 것도 지역경제에 청신호다. 다만 전문가들은 관광 숲 수목 보호를 위한 휴식 시간을 적절히 확보해야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인제 자작나무숲은 국립공원 및 산림청 국유림 중에서도 면적(6ha) 대비 방문객 밀도가 높은 수준이다. 방문객이 집중되는 구역을 중심으로 토양 답압(踏壓·밟는 압력) 피해나 자작나무 껍질 훼손 등이 발생하고 있다. 김준순 강원대 산림경영학과 교수는 “자연의 활용과 보전은 균형을 이뤄야 한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관리하지 않으면 ‘명품 숲’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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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유 체험-트레킹… ‘킬러 콘텐츠’ 만난 숲, 관광명소로

    강원 평창군 ‘봉평 잣나무숲’은 고로쇠나무 수액 채취, 잣송이 줍기 등 다양한 체험 활동과 숲속 야영장으로 이름났다. 2012년 한국관광공사에서 ‘잣나무와 트레킹 코스가 어울리는 가볼 만한 장소’로 선정되기도 했다. 제주 서귀포시 호근동 ‘치유의 숲’은 60년 이상 된 삼나무와 편백 숲길을 따라 한라산의 다양한 식생을 관찰할 수 있다. 차룽치유밥상 등 지역 상생 사업으로 일자리 창출과 소득 증대 효과도 거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각 지역의 특색을 살린 ‘킬러 콘텐츠’가 숲과 함께 어우러져야 침체한 지역사회를 되살린다고 입을 모았다. 그 숲에 가야만 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는 핵심 콘텐츠가 있어야 두고두고 찾는 명소가 된다는 설명이다. 경남 거창군 ‘거창 북상 잣나무숲’은 1973년부터 산림녹화에 힘쓴 모범 독림가(篤林家)가 육성한 숲이다. 임업 노하우와 경험담을 산림 분야 대학생 등에게 전파하는 현장 학습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남 장흥군은 편백숲에 치유의 숲과 숙박 및 체험시설을 조성한 덕에 장흥군 인구 3만6000명의 18배가 넘는 연간 방문객 67만 명을 유치하고 있다. 박병배 충남대 산림환경자원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숲을 잘 찾아갈 수 있도록 ‘100대 명품 숲’ 각각의 특색을 잘 큐레이션해야 하고, 지금의 아름다운 숲이 되기까지 과정을 이야기로 잘 풀어내면 ‘이것 때문에 여기 와야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사업가들이 귀농·귀촌해서 산림관광 활성화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파격적으로 지원해줘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예를 들어 국내 숲 관광지 중에는 강원 인제군 곰배령 야생화 단지처럼 왕복으로 오가는 교통이 불편한 경우가 많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을 원래 머물던 지역으로 운송해주는 서비스 등을 도입해 일자리 등을 새로 만들자는 취지다. 김준순 강원대 산림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숲 해설가, 숲 유치원, 숲 초등학교, 탐방객에 대한 도시락 제공 등 숲을 매개로 하는 사업 아이템이 무궁무진하게 많아졌다”며 “지역 주민들이 숲 공간을 경제 활동과 연계된 하나의 활동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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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강경석]저출산 재탕 공약 대신 이미 낸 법안이나 처리하라

    “한쪽에서 신공항 만들겠다고 하면, 다른 쪽에서 해저터널 뚫겠다고 하는 게 우리 정치의 현주소다.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 재원 계산해 가면서 따지고 있다간 타이밍만 놓칠 뿐이다.” 한 정치권 인사는 2021년 부산시장 보궐선거 국면에서 여야가 경쟁적으로 내놨던 부산 가덕도 신공항 건설 공약과 가덕도와 일본 규슈 간 한일 해저터널 건설 공약에 대해 최근 이렇게 말했다. 가덕도 신공항은 2029년 개항을 목표로 건립이 진행 중이지만 한일 해저터널은 아마 저런 공약을 내걸었는지 기억조차 못 하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에게 한일 해저터널 진척 상황에 대해 묻자 “아직 구체화된 건 없다”는 하나 마나 한 답만 돌아왔다. 한일 해저터널 공약은 결국 조용히 사그라질 게 뻔하다. 3년이나 지난 공약을 기억에서 소환할 것도 없다. 불과 한 달여 전 4·10총선에 출마한 후보자들과 정당들은 피 토하는 심정으로 열변을 토하며 각종 공약을 내걸었다. 특히 여야는 인구소멸 위기를 돌파하겠다며 올해 1월 같은 날 저출산 공약을 발표했다. 유급 ‘아빠 휴가’를 의무화하거나, 신혼부부에게 1억 원을 대출해 주고 셋째까지 낳으면 전액 탕감하겠다는 장밋빛 공약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왔다. 여야 모두 내놨던 공약 중엔 당사자 신청만으로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이 자동으로 시작될 수 있게 하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런데 사실 이 내용은 이미 지난해 2월 21대 국회에서 남녀 고용 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으로 올라왔다. 근로자가 육아휴직을 신청했는데 사업주가 14일 이내에 명확한 의사표시를 하지 않으면 이를 허용한 것으로 간주하기로 정하는 법률 개정안이다. 이 법안은 어떻게 됐을까. 지난해 4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됐지만 오전 10시 36분부터 오후 5시 45분까지 국회의원 14명과 고용노동부 장차관과 실국장 18명이 참석한 상임위에서 단 한 글자도 상의되지 않은 채 잠들어 있다. 오찬을 위해 정회한 2시간 25분을 제외하더라도 온종일 단 한마디 언급조차 되지 않은 법안을 총선 공약으로 들고나온 건 사실상 기만에 가깝다. 다른 법안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모자보건법에 따라 난임부부를 지원하는 대신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별도로 난임 치료를 지원하는 법률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이 법안은 2021년 4월 상임위에 상정된 이후 제대로 된 논의 한 번 못 하고 21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사라질 운명을 앞두고 있다. 국민이 더 이상 정치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를 멀리서 찾을 게 아니다. 말로는 민생을 외치고, 선거철에는 그럴듯한 공약을 내놓지만 정작 일해야 할 때 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 대계가 걸려 있는 저출산 문제마저 이미 발의된 법안조차 처리하지 않은 채 선거를 앞두고 공약이랍시고 재탕하는 국회에 과연 국민이 무슨 기대를 할 수 있을까. 최근 한 시민단체는 21대 국회에서 저출산 대책 관련 법안 220개 중 단 7개만 처리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럴 거면 저출산을 해결하겠다고 이런저런 약속만 할 게 아니라 이미 발의된 법안이나 제대로 논의하고 처리하는 게 더 생산적이다.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

    • 2024-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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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불 덮친 금강송… 숲길이 지켜냈다

    “숲에서 가장 오래된 수령(樹齡) 500년짜리 이 소나무도 2년 전 울진 산불 때 간신히 지켜냈죠.” 지난달 25일 경북 울진군 금강송 군락지에 만든 숲길인 임도(林道)를 오르던 임국환 남부지방산림청 울진국유림관리소 주무관이 보호수인 금강송 앞에 멈춰 서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울퉁불퉁한 소나무 껍질 위에 오른손을 얹으며 2022년 3월 4일부터 213시간 동안 이어졌던 산불과의 사투를 떠올렸다. 산불 발생 당시 1년 차 직원이었던 임 씨는 “밤낮으로 금강송 군락지를 등진 채 능선을 타고 넘어오는 불을 껐다. 시뻘건 불꽃이 파도처럼 능선을 삼키며 사방에서 들이닥쳤다”고 했다. 산불진화대는 금강송 군락지로부터 직선거리로 150m 떨어져 있는 소광리 임도에 진을 치고 넘어오는 불길을 막았다고 한다.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된 금강송 군락지에는 200년 이상 된 소나무만 8만5000그루가 있다. 2년 전 산불로 이곳 인근 응봉산은 전체 3130ha(헥타르) 중에서 85%에 달하는 2646ha가 타버렸다. 하지만 소광리 임도가 있는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은 전체 3705ha 중에서 225ha만 소실됐다. 94%에 달하는 산림을 지켜낸 것이다. 임 씨는 “총길이 41.6km에 이르는 소광리 임도에 평소에도 인력과 장비를 투입해 산불 대응 준비를 해온 덕분”이라며 “바닥에 쌓인 낙엽과 폐목을 긁어냈고, 나무를 솎아내는 작업을 꾸준히 벌였던 게 큰 피해를 막은 것 같다”고 말했다.산불 진화용 ‘숲길’ 미리 낸 소광리 숲, 화마에 6%만 불탔다 2부 〈1〉 산불에 강한 숲을 찾아서 사람-車 드나드는 숲길, 진화에 필수… 임도 빈약한 응봉산은 85% 타버려나무 솎아내기-‘땔감’ 제거도 예방법산불 56% 몰린 봄철 특히 주의해야 지난해 국내에서는 산불 596건이 발생해 4992ha(헥타르)가 불에 탔다. 서울 여의도(290ha)를 17개 합친 것보다 넓은 숲이 잿더미가 된 것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산불을 끄려고 동원된 인력만 총 9만7255명으로, 웬만한 지방자치단체 인구보다 많은 인원이 동원됐다. 최근 10년간 산불 피해 면적은 몇 건의 대형 산불을 제외하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로 집계됐다. 실제로 최근 10년 평균과 비교할 때 지난해 산불 발생 건수는 5%, 피해 면적은 25% 늘었다.● 산불에 강한 숲의 조건 전문가들은 산불은 예방하는게 최선이지만 발생하면 빠르고 정확한 진화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국내 숲은 지형이 험준해 산불 등 위급상황이 생기면 사람이나 장비가 접근하기 쉽지 않다. 지병윤 산림기술경영연구소 연구관은 “숲을 오래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곳곳에 닿을 수 있는 길이 나야 한다”며 “산불을 진화할 때도, 방제 작업을 할 때도 사람과 장비가 투입돼 움직이려면 결국 길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산림청에 따르면 2022년 울진 산불 당시 소광리 권역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전체 3705ha 가운데 6% 수준인 225ha만 불에 탔다. 반면 소광리 숲과 인접한 응봉산 권역은 같은 산불에도 피해가 컸다. 전체 3130ha 중 85%에 달하는 2646ha를 화마가 휩쓸었다. 소광리 숲에선 2020년부터 3년간 약 1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숲길인 임도를 조성하고 평소 산불 예방 활동을 벌여왔다. 인력과 차량, 장비 등을 임도에 투입해 5년, 10년 단위로 나무를 솎아냈고, 산림 하단부에 있는 낙엽과 폐목 등을 정리했다. 숲 안에서 ‘땔감’이 될 만한 것들을 미리 치워 산불이 나더라도 규모를 줄인 것이다. 나무를 솎아내는 일은 경영적 측면에서도 우량목을 육성하기 위해 주변에 불필요한 나무를 없애는 기능도 한다. 소광리 숲 임도 주변에는 진화 헬기가 물을 뜰 수 있는 댐과 펌프로 물을 뿌릴 수 있는 취수장 등도 마련돼 있다. 임도 폭도 최대 5m에 달해 진화 차량 2대가 나란히 달릴 수 있을 만큼 넓다. 백영규 특수진화대원은 “화염과 연기가 뒤섞인 산불 현장에서 사람과 장비가 빠르고 효과적으로 도달하는 방법은 임도”라고 했다.● ‘도(道)맥경화’ 시달리는 숲 이와 달리 피해가 컸던 응봉산 권역에는 제대로 된 임도가 없었다. 1ha당 임도 길이는 소광리 숲은 11.2m에 달했지만, 응봉산은 0.1m에 불과했다. 능선을 타고 산불이 번지면 헬기 외에 지상에서 빠른 시간 내에 불이 난 현장으로 출동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 진화 작업도 더딜 수밖에 없었다. 평소 산림을 유지하고 관리할 인력이나 장비를 투입하기도 제한적이라 산불 예방 활동 등의 효과가 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산림청은 2027년까지 대형 산불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동해안 지역 700km를 포함해 전국에 산불 진화 임도를 3332km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해까지 전국에 개설된 산불 진화 임도는 총 562km이다. 남성현 산림청장은 “임도는 사람으로 비유하면 동맥과 같은 역할을 한다”며 “산불이 대형화할수록 초기 발화 지점에 빠르게 접근하고 야간에도 불을 끌 수 있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다만 임도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임도가 자연을 훼손하고, 비가 올 때 산사태 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이에 대해 산림청은 임도를 닦기 전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 등이 모여 훼손을 최소화하는 방법 등을 따져보는 사전 타당성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산을 깎을 때 나오는 흙은 주변에 쌓는 대신 산 아래로 옮겨 사태의 위험성을 최소화한다.● 마르고 바람 부는 봄철에 취약 산림청에 따르면 올해 3월 전국 산불 발생 건수는 74건, 4월은 66건이었다. 지난해의 경우 3월에 발생한 산불은 229건으로 1년 중 가장 많았다. 이어 2월 114건, 4월 108건 순으로 전체 산불의 56%가 봄철에 몰렸다. 봄철 산불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해 4월 3일에는 산림청 관측 사상 처음으로 경북 영주시 박달산 등에서 대형 산불 5건이 동시에 발생했다. 대형 산불은 산림의 피해 면적이 100ha 이상으로 번지거나, 24시간 이상 계속되는 산불이다. 산불로 지난해 3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고, 피해액은 2854억 원으로 집계됐다. 산불 원인으로는 입산자 실화가 29%로 가장 많았고, 쓰레기 소각 12%, 논·밭두렁 소각 10%, 담뱃불 9% 순으로 나타났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낙엽이나 폐목을 쌓아두지 않는 등 산불에 강한 숲 환경을 확산시켜야 한다”고 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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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분에 250L 물쏘는 ‘산불킬러’ 소방차, 달리면서 15m 높이 불길도 잡아

    이상기후로 산불이 잦아지고 규모도 커지면서 산불을 끄는 장비도 진화하고 있다. ‘산불 킬러’라고 불리는 고성능 진화 차량과 로봇, 드론 등이 현장에 투입돼, 주로 헬기에 의존했던 진화 방식을 다각화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임도에는 2022년 대형 산불을 겪은 이후 지난해부터 도입된 고성능 산불 진화 차량이 등장했다. 이날 대원 6명이 진화 차량에 직경 25mm 호스를 연결하고 길게 늘어섰다. 맨 앞에 선 대원이 호스를 열자 하얀 물기둥이 뿜어져 나왔다. 이 차량에는 물 3000L를 담을 수 있다. 화물차를 개조해 만든 기존의 산불 진화차 담수량의 3배 수준이다. 고성능 산불 진화차가 이른바 ‘산불 킬러’라고 불리는 이유는 분당 250L에 달하는 물을 뿜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산불 진화 차량이 분당 60L를 쏠 수 있는 것과 비교하면 4배 이상 강력하다. 차량이 달리면서 물을 뿜을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운전석 지붕에 직경 65mm 캡 방수포를 장착해 원하는 방향으로 살수할 수 있다. 진화 대원이 방수포 손잡이를 당기자 굵은 물줄기가 솟구쳤다. 15m가 넘는 소나무 위부터 아래까지 끊임없이 물벼락이 쏟아졌다. 남대지 울진국유림관리소 특수진화대원은 “산불 진화는 바닥에 탈 것을 남기지 않고 긁어내는 게 중요한데, 고성능 산불 진화차는 물줄기가 세서 불도 끄고 바닥에 남은 잔해물도 날릴 수 있다”고 했다. 1대당 7억5000만 원에 달하는 이 차량은 전국에 18대가 투입됐다. 이 밖에도 빠르고 안전한 진화를 위해 새롭게 개발된 제품들이 지난달 24일 세종시 금강자연휴양림 일대에서 열린 시연회에서 선보여졌다. 이날 시연회에선 진화 요원이 작은 힘으로 무거운 것을 들거나 움직일 때 힘을 보태주는 로봇이 소개됐다. 조끼처럼 생겨 입을 수 있는 이 로봇은 허리와 허벅지 근력에 힘을 보태주는 역할을 한다. 20kg짜리 장비를 들고 움직일 때 근육 피로도를 입지 않을 때보다 43.8%나 낮춰준다. 구급차와 펌프차를 합친 다목적 중형 산불 진화차도 개발됐다. 산소통과 들것, 자동심장충격기(AED) 등을 갖춰 현장에서 기본적인 응급처치를 할 수 있다. 물탱크 용량은 2000L다. 진화 용수를 최대 1km 거리까지 전달할 수 있어 좁은 임도에서 멀리까지 물을 보낼 수 있다. 모두 국산 제품이기 때문에 유지·보수가 쉽다는 게 특징이다. 소화액 25kg을 매달고 20분 동안 하늘을 날 수 있는 드론도 나왔다. 캄캄한 밤에 진화 인력이 갈 수 없는 지역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산림청 관계자는 “기상에 영향을 받는 헬기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진화 장비의 다각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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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獨, 수량 많고 값싼 ‘목재 연료’ 각광… EU도 “재생 에너지” 보조금

    “최악의 에너지난이 닥치면 ‘장작’이 대안이다.” 독일 인터넷매체 ‘복스’는 원자재 가격 급등과 수급 차질로 에너지난이 불거졌던 2022년 ‘독일에서 갑자기 장작 수요가 급증한 이유’란 제목의 기사에서 이같이 밝혔다. 당시 독일은 유럽 여러 국가 중에서도 유독 에너지 위기가 극심했다. 그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유럽 국가들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2021년 기준 60%로, 유럽 국가 중 유독 높아 ‘가스 부족’ 사태가 심각했다. 이에 외국에서 수입하지 않아도 독일에 워낙 풍부하고 가격도 저렴한 목재가 대체 에너지원으로 떠올랐다. 실제 독일 대형마트에서는 가정용 연료로 쓰이는 장작들이 대용량으로 판매된다. 독일 산림연구소에 따르면 러시아발(發) 가스 위기가 닥치기 전인 2020년에도 독일에선 전체 가구의 약 13%인 550만 가구가 난방용 장작을 사용했다. 독일 가정에서 연료용 목재는 연평균 200만 m³가량씩 소비되고 있다. 목재 연료는 가스의 ‘대체 에너지원’이자 ‘친환경적’이란 점에서 선호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원의 경우 보통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목재도 바이오매스 연료로 분류된다. 식물, 유기물질 등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바이오매스 연료는 EU 신재생에너지의 60%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독일 정부는 건축 자재로 시멘트나 철근보다 목재를 권장하고 있다. 다만 2022년 가스 수급난으로 장작 수요가 급증하면서 가격도 이례적으로 올랐다. 독일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8월 장작과 목재 펠릿 가격이 전년 대비 86% 상승했다. 주변에 흔히 보이던 나무가 ‘금(金)나무’가 돼 버린 셈이다. 목재 연료는 EU에서 논쟁의 화두로 떠오르기도 했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에 따르면 EU 집행위는 신재생 전력 관련 법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장작의 미래’를 두고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장작은 EU 관련법에 따라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인정받아 보조금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 장작 공급을 위해 나무를 잘라내도 그 자리에서 다른 나무가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목재 생산 단체들은 이러한 이유를 들며 목재가 EU의 탄소저감 정책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산림보호 단체들은 장작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문제 삼고 있다. 장작 생산을 위해 나무를 마구잡이로 잘라내면 기후변화와 생물 다양성 위기가 심각해진다는 이유에서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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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자리 100만개, 숲에서 미래 찾는 청년들

    “산림관리 전문 자격증을 준비 중이에요. 숲 전문가가 되고 싶습니다.” 지난달 25일(현지 시간)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뮌헨시 외곽 지역에 있는 프라이징 숲에서 만난 20대 루카 카파운 씨는 “산림 자격증을 따면 산림 대기업에서도 일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체코와 인접한 국경도시 노인부르크포름발트의 산림 직업학교에 다니면서 틈틈이 숲에서 3년간의 실습 과정을 밟고 있다. 하루 8시간씩 통나무의 잔가지를 쳐내고 병충해나 강풍으로 파손된 나무를 정리하는 등 숲을 관리한다. 카파운 씨 등 10, 20대 세 명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하게 들어선 울창한 나무 2, 3m 높이에 각각 로빈후드처럼 매달려 있었다. 안전 장비를 찬 채 팔뚝만 한 칼로 나무의 잔가지를 잘라내면 잔가지들이 비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1주간의 직업탐색 실습 과정에 참여하고 있던 15세 마르쿠스 마이어 군은 “숲은 항상 꼭 필요하고 기후변화가 중시되니 숲 전문가는 전망 있는 직업”이라고 했다. 이들에게 숲은 광활한 ‘미래 일터’다. 독일 연방식품농업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임업 일자리는 100만 개를 넘었다. 관련 기업은 11만5000곳, 기업들의 매출은 1830억 유로(약 267조 원)다. 독일은 산림 관리를 위해 2021년 ‘숲 전략 2050’ 정책을 마련해 일자리뿐 아니라 다양한 목재 등 임산물을 생산하는 등 ‘숲 이코노미’를 키우고 있다.獨, 온난화에 나무 79% 훼손… 2050년 ‘기후 스마트숲’으로 전환 ‘그린스완’ 시대, 숲이 경쟁력이다〈5〉독일의 ‘숲 이코노미’獨영토 32%가 숲, 식물 2892종 서식… 각종 임산물에 수출용 통나무 생산가공-제지 등 관련 일자리 100만개고온-가뭄 등에 나무 고사비율 최고… ‘숲 전략 2050’ 세워 수종 세대교체 “올해 봄이 유독 일찍 시작됐어요. 기후변화로 봄이 더 더워졌습니다.” 지난달 25일(현지 시간)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뮌헨시에서 약 40km 떨어진 곳에 있는 프라이징 숲. 친구들과 산책하던 슈테판 츠바크 씨는 3월 말인데도 더워진 날씨에 그늘에서 잠시 휴식하며 이같이 말했다. 방문객들은 두꺼운 점퍼 대신 얇은 외투만 입은 채 숲속을 거닐었다. 따사로워진 햇볕을 피해 주차장 차량이나 안내소 그늘에 멈춘 방문객들이 보였다. 츠바크 씨는 “숲은 탄소를 빨아들이고 그늘을 만들어 기후변화 문제를 완화해주는데, 요즘 온난화와 가뭄 등으로 많이 훼손돼서 더욱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거의 매일 이 숲을 찾는 요제프 마이어 씨는 벌써부터 올여름 무더위를 걱정하며 “날씨가 아주 더울 때도 숲은 시원하고 공기의 질이 좋다”며 “요즘 온난화로 벌레가 늘어 나무가 피해를 보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숲에서 만난 대부분의 시민은 기후변화 시대에 숲의 소중함을 체감하고 있었다. 숲 덕에 공기의 질이 개선되고 더위를 덜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바이에른주는 전체 면적의 37%인 260만 ha가 숲이다. 독일 16개 주 가운데 산림 면적이 가장 넓어 ‘독일의 허파’ 역할을 한다. ● 숲은 탄소 흡수망이자 자원 독일 영토에서 약 32%를 차지하는 숲에는 다양한 식물 2892종이 서식한다. 숲에 뿌리내린 다양한 식물들은 대기의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는 ‘탄소 흡수망’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 연방식품농업부 산하 신재생연료전문기관에 따르면 숲은 이산화탄소를 연평균 5200만 t씩 흡수하고 있다. 프라이징 숲을 관리하고 있는 헤르베르트 보어헤르트 바이에른주 산림연구소(LWF) 박사는 “숲은 홍수를 방지하고 이상고온을 완화해주는 등 기후변화 시대에 역할이 크다”고 설명했다. 독일에서 숲은 탄소 저감뿐 아니라 임산물 생산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독일 연방식품농업부 통계를 보면 독일 목재 재고량은 2017년에 ha당 358m³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다. 독일에서 숲은 자원의 보고인 셈이다. 특히 건축 및 가구 자재 등에 쓰이는 통나무는 독일의 주요 자원이다. 이날 프라이징 숲속 곳곳엔 단면이 대형 트럭 바퀴만 한 통나무들이 잘린 채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독일 연방정부에 따르면 2022년 독일이 수출한 통나무는 수입량보다 400만 m³ 더 많았다. 통나무 대부분은 중국으로 수출된다. 공공 기관인 LWF는 물론이고 민간 주거 지역에서도 목재 건축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목재 산업은 친환경 산업으로 분류돼 정부의 지원 속에 성장하고 있다. 건물 자재로 쓰이는 시멘트나 철강은 제작 과정에서 탄소가 많이 배출된다. 반면 목재는 자연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데다, 탄소를 30년가량 저장한다. 바이에른주 주택의 21%가 목재로 건설된다. 독일 연방정부는 “가공, 제지, 인쇄 및 출판을 포함한 산림 및 목재 산업 일자리는 100만 개를 넘는다”고 밝혔다. 숲에서 직접 일하는 직업(4%)을 포함해 인쇄 및 출판(30%), 목재 건설(24%) 등 다양한 관련 산업을 창출하고 있다. 임업 관련 기업 매출만 1830억 유로(약 267조 원)에 달할 정도로 ‘숲 이코노미’가 뿌리내렸다.● 기후변화 위기, ‘숲 전략 2050’으로 대응 다만 독일의 숲도 최근 기후변화에 따른 고온과 가뭄, 병충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독일 연방정부 조사 결과 2022년 기준 독일 전역의 나무 79%가 손상되거나 죽고 있다. 환경 전문 저널인 ‘글로벌 변화생물학’은 1953∼2020년 68년간 독일 숲을 연구해 보니 나무의 고사 비율이 140년 만에 최고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 저널은 “건조하고 더운 기후가 광합성, 호흡 등 나무의 생리적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곤충, 곰팡이와 서리 및 가뭄 등 외부 요인에 더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독일 연방정부는 2011년 산림을 관리하기 위한 ‘숲 전략 2020’을 세웠다. 기후변화 대응, 숲과 생물다양성 보호, 목재 활용, 스포츠 및 여가 장소 활용 방안 등을 총망라한 대책이다. 10년 뒤인 2021년엔 이를 발전시킨 ‘숲 전략 2050’을 마련했다. 비영리단체 괴테연구소에 따르면 정부는 이 정책을 바탕으로 전국 산림 중 270만 ha를 기후변화에 강한 나무로 바꿔 심고 관리하는 ‘기후 스마트 숲’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 정책에 참여하는 산림 관리자들에게는 15억 유로(약 2조2000억 원)를 지급한다. 전문가들은 숲의 수종 교체에 더 속도를 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보어헤르트 박사는 “정부는 기후변화에 맞춰 숲을 세대교체해야 한다”며 “나무 종을 요즘 환경에 맞도록 서둘러 바꾸지 않으면 숲이 위험해 처한다”고 조언했다. 이런 숲의 위기는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유럽연합(EU) 공동연구센터와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분석 결과 세계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 1년 치를 줄이려면 독일, 프랑스, 스페인 영토를 합한 면적 이상의 숲을 재건해야 한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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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의 미래, ‘숲 학교’에서 자란다

    “안전을 위한 규칙만 잘 지키면 아이들은 이곳에서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9일(현지 시간) 영국 중동부 링컨셔주 링컨시에 있는 한 숲속. 아들을 이곳에 있는 ‘숲 학교’에 6년째 보내고 있는 타미 돌링 씨는 “숲 학교의 장점은 자유로운 교육”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돌링 씨의 아들 이든 군(12)은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나무를 타고 있었다. 교사 캣 수터 씨가 “나무를 오를 때 어떻게 해야 안전하다고 했는지 기억하느냐”고 묻자, 이든은 “나뭇가지가 팔목보다 굵은지 확인하면 된다”며 “양손과 양발 4개 중 3개는 나무에 딛고 있으면 안전하다”고 답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나무를 타고 얼굴엔 진흙을 묻히며 노는 이곳은 영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숲 학교 풍경이다. 1950년대 북유럽 등에서 시작된 숲 학교는 자연에서 직접 체험하면서 배우는 데 방점을 두고 있는 교육 방식이다. 영국에선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이 주로 참여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엔 16세 학생까지 대상이 확대됐다. 런던에서 숲 학교를 운영하는 엘라나 노세다 씨는 “숲 교육은 건강뿐 아니라 감정 표현과 소통 능력, 나아가 상상력을 길러준다”고 했다.나무-흙과 교감하며 ADHD 떨쳐… 英 ‘숲학교’서 삶의 지혜 배워 ‘그린스완’ 시대, 숲이 경쟁력이다〈4〉숲, 상상력 펼치는 치유의 캔버스어린이 교육 목적으로 1994년 시작방과후 수업 형식, 英전역에 수백곳장작으로 악기 만들고 진흙 부엌도… “자연과 교감속 공동체 의식 키워” 영국 링컨셔주 링컨시에서 차량으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올드 우드 오가닉’ 숲. 9일(현지 시간) 찾은 이곳에서는 축구장 2개 크기만 한 약 1만2140m²에 달하는 부지 곳곳에 숲 학교 ‘랜드 앤드 리프 컬렉티브’ 학생들이 만들어 놓은 놀이기구가 눈에 띄었다. 숲 학교 교사 캣 수터 씨가 나무 장작으로 만든 악기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도끼로 나무 자르는 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쳤을 뿐인데 이런 악기가 만들어질 거라곤 아무도 상상을 못했어요.” 나무와 나무 사이에 가로로 줄을 걸어 길이와 두께가 다른 장작 7개를 매달아 놓은 이 ‘천연 장작 악기’를 나무 막대기로 두드리니 마치 실로폰 소리와 같은 나무음이 울려퍼졌다. 수터 씨는 “한 학생이 장작을 패서 바구니에 던져넣다가 서로 다른 소리가 난다는 사실에 착안해 만든 악기”라며 “학생의 관심을 따라갔을 뿐인데 생각지도 못한 결과물이 나왔다”고 말했다. 숲 학교 곳곳에는 ‘진흙 부엌’ ‘나뭇가지 동굴’ ‘물길’ 등 학생들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놀잇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 대인기피증 떨쳐낸 숲 학교 아이들 영상 10도의 숲속은 한국의 초겨울 날씨처럼 쌀쌀했다. 전날 비가 내려 진흙탕이 된 바닥은 갯벌처럼 발이 푹푹 빠졌지만 아이들은 개의치 않고 놀았다. 한 아이는 얼굴에 숯검정을 칠하고 모닥불 위에서 빵을 굽는 데 한창이었다. 또 다른 아이는 대형 고무 타이어 위를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균형잡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영국 내 첫 번째 숲 학교는 1994년 브리지워터대에 설립됐다. 교육 전공자들이 자연과의 교감, 친구 간 소통, 상상력 증대 등을 통해 어린이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서 시작했다. 2000년대부터는 영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대학과 연계해 관할 내 숲 학교를 적극 도입했다. 현재 영국 내 숲 학교는 종류와 방식이 다양하지만 주로 방과후 수업 같은 개념으로, 일주일에 주기적으로 참여하는 보조 수업 형태가 많다. 영국에서 가장 큰 숲 학교 교사 민간단체인 숲학교협회(FSA)가 공인한 숲 교육 제공기관은 66곳이다. 등록된 교사 수만 지난해 기준 1400여 명에 달한다. 숲 학교 관계자들은 부분적으로 숲 교육을 제공하는 곳까지 포함하면 영국 전역에 숲 학교가 수백 곳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숲 학교에서 만난 영국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기존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3년 전 숲 학교에 처음 온 덩컨 레이시 군(16)은 대인기피가 심해 후드티 모자를 뒤집어쓰고 마스크와 장갑을 낀 채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숲 학교에 온 뒤로 달라졌다. 그는 각종 도구에 관심을 가지더니 나무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닭 횃대, 새 모이함, 의자까지. 스스로 만든 작품이 쌓일수록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었다. 지금은 숲 학교의 모든 구성원과 대화하고 다른 아이들을 도울 정도로 성장했다. 농부가 되겠다는 장래 희망도 생겼다. 덩컨의 어머니 멜리사 레이시 씨는 “숲 학교에서 배운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곳 학생 중에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치료한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 영국에 녹아든 숲의 ‘소프트웨어’숲 학교의 효능은 도심 지역에서 더 주목받고 있다. 최근 런던에선 5세 이하 아이들에게 전일 야외 교육을 실시하는 숲 학교도 생기기 시작했다. 런던에서 주 5일, 풀타임으로 숲 학교 ‘포리스트 그로브 해크니’를 운영하는 리지 해세이 씨는 “아이들이 자연과 교감하고 자연을 이해하길 원하는 부모가 늘고 있어 도시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숲 학교 ‘킨다 에듀케이션’을 운영하는 멜 해리슨 씨는 “숲 학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지역사회와 자연과의 재연결”이라며 “소속감과 공동체 의식을 키우는 출발점이 숲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산림위원회 산하 포리스트 리서치의 설문조사(2023년)에 따르면 영국인의 74%가 “최근 몇 년간 숲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중 51%는 “숲에 있을 때 느끼는 행복감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보다 늘었다”고 답변했다. 응답자의 22%는 지난 1년 새 숲 방문 빈도가 더 늘었다고 답했다. 영국건강보험(NHS)은 정신적, 육체적 처방의 하나로 숲 교육, 원예 등을 포함한 각종 녹색활동을 장려하고 있다. 녹색활동의 경제적 혜택을 분석한 결과 참가자 82명이 1년 동안 의료비용을 3만8646파운드(약 6673만 원) 절감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보고서에 따르면 조경 원예 등 녹색산업이 영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30년 418억 파운드(약 71조5820억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관련된 일자리 수는 76만3400개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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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런던 20%가 공용녹지… “年1.6조 건강비용 절감”

    “동네 거리마다 모두 신비한 공동 정원을 품고 있어요.”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한 1999년 영화 ‘노팅힐’에서 주인공 휴 그랜트와 줄리아 로버츠가 저녁식사를 마치고 담장을 넘어 들어간 정원. 런던에는 이 같은 ‘도심 속 숲’인 공용 녹지 공간이 전체 도시 면적의 20%에 달한다. 이곳에서 시민들은 운동하고 사교하며 휴식을 취한다. 나아가 지역사회의 일부가 된다. 런던시에 따르면 공용 녹지 덕분에 시민들이 매년 9억5000만 파운드(약 1조6406억 원)의 건강 비용을 절약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신체 건강에 5억8000만 파운드(약 1조16억 원), 정신 건강에 3억7000만 파운드(약 6389억 원)의 비용이 절감된 것으로 추산했다. 지역사회가 주도하는 ‘녹색 활동’도 다양하다. 런던시는 2020년부터 2023년 사이 135개 지역사회 프로젝트에 400만 파운드(약 69억 원)를 지원해 테니스 코트 1250개 면적에 달하는 33ha(헥타르)에 새로운 녹지 공간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2050년까지 공용 녹지 면적을 전체 면적의 50%까지 넓힌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공용 녹지 조성에 1파운드를 투자하면 런던 시민에게 27파운드(약 4만6627원) 가치의 경제적 효과가 돌아간다고 보고 있다. 영국에서 원예는 명실상부한 산업 분야로 자리 잡았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에는 전문 및 아마추어 원예가가 3000만 명이 있다고 추산한다. 영국 인구(6697만 명)의 절반 가까이 원예가로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교과 외 활동으로 원예를 가르치는 초등학교 비율도 75%에 달한다. 원예·조경 산업 관련 현황을 보면 영국의 국내총생산(GDP)에 기여한 비중은 2019년 48조2820억 원으로, 2030년에는 71조5820억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대학에서도 원예 활동을 장려한다. 영국 요크셔주에 있는 리즈대는 캠퍼스 중심부에 ‘지속가능한 정원’을 조성해 교직원과 학생, 방문자들이 조용한 명상을 즐기며 함께 가꾸는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씨앗과 식물, 농산물을 교환할 수 있는 ‘채소 도서관’도 정원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영국 엑서터대는 식량 재배 방식을 가르치는 ‘가드닝, 웰빙과 지역사회’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직접 영국 남서부의 재배 현장을 방문하도록 한다. 정원을 가꾸는 활동 역시 일상 속에 자리잡고 있다. 특히 노년층을 중심으로 정원 돌봄 봉사를 하는 ‘가든 볼런티어’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영국 왕립원예협회(RHS)가 직접 운영하는 정원에서 봉사자들은 가지를 잘라내거나, 식물을 심고 기르는 모든 일을 맡아서 한다. 연간 24만 명이 방문하는 로즈모어 정원에선 봉사자들이 방문자의 안내를 돕고 있다. 로스 캐머런 셰필드대 조경건축학과 교수는 “지속가능한 정원을 가꾸는 가정에 대해서는 지방세, 수도요금을 감면해 주는 파격적인 지원도 고려해 볼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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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벼처럼 키우고 수확하고 다시 심고 ‘숲의 선순환’

    “건강한 나무를 얻으려면 곡식을 키우는 것처럼 좋은 묘목을 길러내는 게 중요하죠.”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뉴질랜드 북섬에 있는 로토루아시 양묘장에서 만난 직원 로런 앤더슨 씨(34)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논밭처럼 평지에 펼쳐진 양묘장에는 라디에타 소나무 묘목 1800만 그루가 자라고 있다. 마치 벼 모내기를 위해 모판을 짜듯, 나무를 숲에 옮겨 심기 위한 ‘묘목판’이 25ha(헥타르) 넓이의 양묘장에 빽빽하게 심어져 있었다. 톱날 장비가 달린 트랙터가 축구장(0.714ha) 35개에 달하는 양묘장 일대를 누볐다. 고르게 키우기 위해 일정한 크기로 묘목을 자르고 있었다. 지난해 10월에 심은 묘목은 반년 만에 40cm 가까이 자랐다. 양묘장에서 나온 묘목은 조림지에서 두 번째 목생(木生)을 시작한다. 조림지는 나무를 수확하기 위해 만든 숲이다. 이날 일부 묘목은 양묘장에서 4.7km 떨어진 레드우드숲으로 옮겨졌다. 이 숲은 보존해야 할 천연림과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조림지가 공존하는 곳으로, 영화 ‘반지의 제왕’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뉴질랜드 산림 면적은 전 국토(2670만 ha)의 36% 수준인 950만 ha. 이 중에서 조림지는 180만 ha(2022년 기준)다. 뉴질랜드는 연간 목재를 4조9000억 원 가량 수출하는 등 국내총생산(GDP)의 약 5%가 숲에서 나오는 ‘임업 강국’이다. 뉴질랜드 산림과학원(SCION) 팀 페인 수석연구원은 “숲은 보호와 이용이라는 양쪽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잘 심는 만큼 잘 활용해야 지속 가능한 자연이 유지된다”고 말했다.28년 주기로 나무 年 200만그루 수확… GDP 5%가 숲에서 나와 [창간 104주년]‘그린스완’ 시대, 숲이 경쟁력이다〈3〉 ‘木맥경화’ 뚫은 뉴질랜드상품성 좋은 품종 주력으로 키워… 숲 기능 포함 안정적 목재 공급 역할조림지내 자전거길 年 60만명 찾아‘숲환생’ 벌채, 연간 5조 원대 수출… “환경-자원 넘어 안보영역으로 확장” “숲 한가운데 길게 비어 있는 공간이 ‘완전한 순환’이 이뤄지는 경계선입니다.” 뉴질랜드 산림과학원 팀 페인 수석연구원은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로토루아시 인근 레드우드숲 산등성이 중간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그가 집어낸 공간은 빽빽한 초록 숲 사이에 난 빈틈이다. 이곳에는 양묘장에서 키운 라디에타 소나무 묘목이 심어져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텅 빈 곳처럼 보이는 묘목 식재 공간은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이 경계선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처럼 레드우드숲 곳곳에선 15년 넘게 자란 나무들로 이뤄진 조림지와 나무를 베어낸 곳에 새로 묘목을 심은 공간이 맞닿아 있는 경계선이 얽히고설켜 있었다. 심고 가꾸고 수확하는 과정이 수십 년에 걸쳐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이른바 ‘목(木)맥경화’를 뚫어냈다. 조림지엔 1ha(헥타르)당 묘목 약 1000그루를 심는다고 한다. 평평한 땅에 바로 심지 않고 약간의 흙을 쌓아 올린 뒤 심는다. 밤에 기온이 떨어지면 묘목이 상할 수 있어 흙을 보온재처럼 쓰는 것이다.● ‘보호와 이용’ 선순환 만드는 숲 뉴질랜드 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조림지에 심은 나무는 평균 28년 키워내 상품성이 가장 좋은 시기에 수확한다. 조림지 조성 초기엔 다양한 수종을 키웠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 캘리포니아산인 라디에타 소나무가 뉴질랜드 기후와 잘 맞아 본토보다 빨리 자라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최근엔 조림지의 91%를 채우고 있다. 페인 수석연구원은 “천연림에서는 다양한 나무가 어울릴 수 있도록 보존하고, 활용해야 할 조림지에는 다양한 수종보다는 상품성 좋은 품종을 주력으로 키운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솔송나무가 조림지의 약 5%를 차지하는데 수확하려면 평균 40년을 키워야 한다. 조림지는 천연림처럼 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하는 환경적 측면뿐만 아니라, 안정적으로 목재를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숲을 활용한 각종 레저산업을 파생시켜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기도 한다. 페인 수석연구원은 “숲은 자라면서 물과 공기를 정화하고 탄소를 저장한다”며 “시간이 지나 울창해지면 이런 공익적 가치 외에도 숲을 활용한 여가 생활이나 스포츠 등 다른 부가가치도 창출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레드우드숲은 산악자전거의 성지로 불릴 정도로 활용 가치가 높다. 조림지 사이로 자전거길 160km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국제산악자전거협회(IMBA)는 2015년 이 길을 3등급 중 가장 높은 골드 등급으로 지정했다. 협회로부터 최고 등급을 받은 곳은 세계에서 6곳뿐이다. 뉴질랜드 전역에 있는 자전거길은 매년 60만 명이 방문해 약 3.9일간 머물며 하루 평균 292뉴질랜드달러(약 23만 원)를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레드우드숲 자전거길에서 만난 니콜 테일러 씨(32)는 “아들 네 명과 숲에 자주 온다. 광활한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숲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자연 살리려 나무 벤다” 환생 위한 벌채 뉴질랜드에선 숲을 키우고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계획적인 벌채로 선순환 고리를 이어간다. 벌채된 나무는 숲에서의 목생을 마치고 가공돼 다양한 목재로 환생한다. 레드우드숲에서 33km 떨어진 텍트 공원 주변 벌채지. 30ha에 달하는 광활한 벌판에선 최근 나무를 수확한 후 땅을 헤집어 놔 흙냄새가 가득했다. 벌채를 끝낸 민둥산 너머에는 푸른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조림지가 있어 경계선이 뚜렷하게 갈렸다. 뉴질랜드 산림과학원 더글러스 건트 책임연구원은 “이곳은 자연을 파괴하는 공간이 아니라 자연을 다시 살리는 공간”이라며 “나무를 벤 자리는 20년 뒤에 다시 풍성한 숲이 될 것”이라고 했다. 뉴질랜드는 연간 4000∼4500ha 규모의 숲을 벌채한다. 28년 주기로 벌채해 1ha당 약 500그루를 거둬들인다. 매년 200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베어내는 셈이다. 수확한 나무의 40%는 자국에서 쓰고 나머지 60%는 수출한다. 산림과학원 통계를 보면 2022년 기준 뉴질랜드에서 수출한 원목, 펄프, 합판 등 목재는 60억7300만 뉴질랜드달러(약 4조8937억 원)가 넘는다. 올해는 5조원 이상으로 예상된다. 뉴질랜드산 목재 수입 상위 5개국은 중국 36억2400만 뉴질랜드달러(약 2조9202억 원), 호주 6억3800만 뉴질랜드달러(약 5141억 원)에 이어 한국 5억700만 뉴질랜드달러(약 4085억 원), 일본 4억7000만 뉴질랜드달러(약 3787억 원), 미국 3억8600만 뉴질랜드달러(약 3110억 원) 순으로 집계됐다. 산림 안보에도 숲의 활용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재난, 전쟁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 대비해 국가가 식량을 확보해야 하는 것처럼 목재 역시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일정량을 스스로 생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트 책임연구원은 “그린스완 시대가 시작되면서 산림과 목재 사용 자립도는 환경이나 자원의 문제를 넘어 안보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며 “나무를 어떻게 가꾸고 쓸 것인가에 대한 전략이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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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진 잦은 뉴질랜드, 유연한 ‘목재건축’ 선호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뉴질랜드 로토루아시에 있는 산림과학원(SCION)에 들어서자 10m에 달하는 높은 층고가 한눈에 들어오는 1층 로비에선 알싸한 숲 향이 느껴졌다. 뉴질랜드 정부 국가조사연구소인 산림과학원 건물은 목재로 지어졌다. 건물 뼈대와 바닥, 계단 등 눈길이 닿는 곳곳 모두 나무로 만들어졌다. 로토루아 지역 산봉우리 모양을 따 삼각형으로 만든 입구 문을 열자마자 건물 안에서 참새 두 마리가 날아들었다. 새들도 자유롭게 드나드는 이곳은 로토루아에서 심고 키워서 수확한 나무(550㎥)를 이용해 2020년 12월 건립됐다. 약 2000m² 넓이의 3층짜리 건물에는 350여 명이 일하고 있다. 산림과학원 관계자는 “이 건물의 탄소저장 효과는 418t”이라며 “승객 160명을 태운 비행기가 뉴질랜드 오클랜드와 영국 런던을 왕복하며 배출하는 탄소량과 같다”고 했다. 건물 내부에 사용한 목재는 나무 성질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화학약품 처리를 최소화했다. 목재가 비나 바람에 노출되면 쉽게 부식될 수 있기 때문에 건물 외관은 유리 등으로 마감했다. 유리에는 나무 이파리 색과 비슷하게 녹색과 노란색 등 마름모 문양을 채워 넣었다. 이처럼 뉴질랜드 땅에서 키우고 수확한 나무는 건축 재료로 많이 쓰인다. 탄소 중립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철근, 콘크리트보다 지진에 유연하게 반응한다. 과학원 관계자는 건물 중앙 마름모 모양의 나무 기둥을 가리키며 “뉴질랜드는 지진이 잦은데, 건물이 뒤틀려도 목재는 유연하게 대응해 붕괴를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로토루아시 곳곳에선 나무로 집을 짓는 공사 현장을 쉽게 볼 수 있었다. 2층 주택을 새로 만드는 공사 현장에선 인부들이 작업하려고 설치한 임시가설물(비계)만 철제를 사용했고 주재료는 촘촘하게 끼워 맞춘 목재였다. 주민 아라타키 펜더 씨(25)는 “햇빛이 들면 나무 기둥에서 ‘쩍’ 하는 소리가 나는데, 주민들은 ‘건물이 숨을 쉬는 소리’라고 부른다”며 “나무로 된 건물은 자연의 숲처럼 살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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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강경석]선거 관리의 모든 책임은 선관위의 몫이다

    “솔직히 투표소로 지정된 주민센터에서 폭발물 검색하듯이 일일이 찾아볼 순 없잖아요.” 선거 역사상 유례없는 사전투표소 불법 카메라 설치 사건이 불거진 뒤 익명을 요구한 선거관리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3일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제한된 인력으로 선거를 관리하다 보니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주민센터 등에 불법 카메라가 설치된 걸 선관위가 막을 순 없는 노릇 아니냐”고도 했다. 지자체는 선관위에 화살을 돌렸다. 서울의 한 자치구 관계자는 “솔직히 지자체가 선거를 관리하는 건 아니잖아요. 항상 이런 일이 생기면 선관위는 지자체 탓을 한다”고 했다. 선관위 관계자도, 지자체 관계자도 약속이라도 한 듯 ‘솔직히’라는 표현을 몇 차례나 써가면서 하소연했다. 쓴웃음이 나왔다. 평소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해 왔던 극우 성향 유튜버 한모 씨(49)는 4·10총선 사전투표를 앞두고 서울과 부산, 대구, 인천, 경기 김포 고양, 경남 양산 등 전국 41곳의 사전투표소에 불법 카메라를 설치한 혐의로 1일 구속됐다. 한 씨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며 “사전투표 인원을 점검해 보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범죄자는 엄벌해야 한다. 이와 별개로 여전히 부정선거 의혹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이유가 뭔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2020년 21대 총선 이후 일부 보수 성향 지지자는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선거 무효 소송을 냈다. 이를 대법원이 기각했음에도 여전히 일부 유권자는 한 씨처럼 의구심을 제기한다. 2년 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격리자를 대상으로 사전투표를 실시할 당시 투표용지를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아 옮기면서 불거진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도 이 같은 의혹을 증폭시켰다. 결국 선관위는 1995년 투표지 계수기를 도입한 지 약 30년 만에 개표 사무원이 일일이 투표지를 직접 확인하고 손으로 세서 확인하는 수검표 절차를 이번 총선에서 다시 도입하기로 했다. 사전투표함을 보관하는 장소를 24시간 누구든지 온라인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폐쇄회로(CC)TV 화면도 공개한다.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사전투표소 불법 카메라 사건을 대하는 선관위의 태도를 보면 불안감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4년 전 총선에서도, 2년 전 대선에서도 결국 문제가 불거진 뒤에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대책을 내놓은 것도 미덥지 않은 판국에 투표소 부실 관리 책임을 지자체 탓으로 돌리고 있어서다. 선관위는 지난달 31일 “투표소 점검 체크리스트에 불법 카메라도 점검 사항에 포함하겠다”고 했다. 불법 카메라 설치 사실이 드러난 지 3일 뒤에 나온 조치다. 선거와 관련된 모든 사무는 선관위가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인원이 부족하다고 탓할 게 아니라 누구든지 정해진 대로 사전에 점검하고 관리할 수 있는 디테일한 매뉴얼을 제대로 만드는 게 우선이다. 전국 4425만 명의 유권자가 안심하고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도록 선관위는 이제라도 빈틈없이 선거 관리에 임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주인이 유권자인 국민이라면, 선거 관리의 주체는 선관위라는 걸 잊어선 안 된다.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

    • 2024-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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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녹슨 제철소, 숲으로 재탄생… 도시가 다시 푸른 숨을 쉰다

    “제철소 용광로를 구석구석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신기하네요.”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독일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뒤스부르크시의 란트샤프트 공원. 중앙에 우뚝 선 7m 높이 용광로 꼭대기에서 만난 주민 클라우스 페테르존 씨는 40여 년 전인 어렸을 때부터 제철소를 보고 자랐다며 이같이 말했다. 당시 제철소는 안전 조명만 드리워진 어두컴컴한 ‘접근금지 구역’이었다. 보안 직원들이 막고 있는 데다 너무 위험해 근처에 다가갈 상상도 못 했던 이곳이 가동을 멈춘 뒤 이제 전망대로 변했다. 이날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축구장 약 250개 크기(180ha·헥타르)의 터엔 용광로, 파이프 등 녹슨 제철소 시설과 푸른 녹음이 한데 어우러진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울타리 없이 개방된 공간에 방문객들이 유모차를 끌고 카메라를 멘 채 모여들었다. 이들은 푸드트럭에서 음식을 사 먹거나 곳곳에 설치된 벤치에서 여유롭게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라인강 지류 엠셔강 유역에 있는 뒤스부르크 란트샤프트 공원은 1985년 가동을 멈춘 티센그룹의 마이데리히 제철소가 ‘도시숲’으로 재탄생한 공간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서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낸 제철소를 살아있는 역사로 보존하면서 시민들에게 삭막한 도시의 쉼터를 제공했다. 거대한 흉물로 남을 뻔한 제철소에 숲이 생명을 불어넣어 준 셈이다.숲이 된 ‘녹색 제철소’ 年100만명 발길… 줄던 인구도 다시 늘어[‘그린스완’ 시대, 숲이 경쟁력이다] 〈2〉 獨 뒤스부르크 ‘도시숲’ 제철소 폐쇄 9년만에 공원 탈바꿈자전거 씽씽, 암벽등반… 콘서트까지SNS ‘핫플’로 인기, 해외서도 찾아와… 정류장 신설 등 도시 인프라 확대 ‘녹슬고 거대한 제철소를 어찌할 것인가.’ 1985년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뒤스부르크시의 마이데리히 제철소가 경영 악화로 가동을 멈추자 지방 정부와 주민들은 이를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정치인들은 시설을 유지하면 재정에 부담이 된다며 “철거하자”고 주장했다. 반면 주민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때부터 가족의 일터였던 85년 역사의 랜드마크를 없앨 수 없다”며 반발했다. 주민들의 일자리를 책임지던 지역 경제의 중심이 사라지자 도시가 소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생겨났다.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던 시민들은 ‘독일 산업유산협회’를 조직했다.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낸 제철소 보존의 필요성을 알리는 보고서를 작성해 정부를 설득했고, 정부가 결국 이를 받아들였다. 정부는 국제건축전시회(IBA)를 열어 제철소와 주변 황무지를 개발할 아이디어를 공모했다. 이때 선정된 페터 라츠 건축가의 사업안으로 제철소 본연의 모습을 보존하되 숲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1994년 도시숲으로 재탄생한 뒤스부르크시의 란트샤프트 공원을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찾았다. 옛 광석 저장고 외벽에선 시민들이 암벽 등반을 하고 있었다. 석탄 수송용 기차가 달리던 철로에선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대형 탱크는 여름철 다이빙장으로 활용된다. 수시로 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행사와 전통시장도 열린다. ● 소셜미디어 시대 ‘이색 관광지’로 독일은 국토의 약 33%가 산림으로 뒤덮여 도시마다 숲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도시에서 시민들의 건강과 휴양을 위해 조성되는 도시숲은 수도 베를린, 유럽 금융허브 프랑크푸르트 등에도 조성돼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쉼터로 자리 잡고 있다. 뒤스부르크시 란트샤프트 공원은 독일에서 유일하게 산업시설을 공원으로 탈바꿈시켜 주목받았다. 독일 산업화의 역사를 품은 ‘살아 있는 박물관’으로 만든 셈이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들은 “이런 이색적인 공원을 보기 힘들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학생 10여 명을 인솔해 견학을 온 사회복지사 조피 알더 씨는 “아이들에게 이 도시가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인지 직접 보여주러 왔다”며 “도시의 역사가 고스란히 보존돼 소중한 장소”라고 말했다. 이색적인 경관은 소셜미디어 시대를 맞아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독일 남부 슈투트가르트에서 딸과 함께 방문한 메시카 씨는 “소셜미디어에서 사진을 보고 독특한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고 싶어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 공원은 최근 8년간 방문객이 연평균 100만 명이나 된다. 도시숲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나온 창의적 아이디어가 해외 방문객도 불러 모으고 있다. 공원의 물 관리 노하우가 대표적이다. 공장 지붕이나 건물 표면 굴곡진 부분에서 모은 빗물은 공원 곳곳에 설치된 작은 수로를 따라 나무와 꽃으로 흐르고 있었다. 공원 개장 이후 30년간 이곳에 뿌리 내린 식물은 700종을 넘는다. 이 공원 홍보 담당 레나 시엘러 씨는 “제철소 대형 탱크는 이제 저수조로 쓰이며 가뭄 때 공원 곳곳에 물을 공급한다”며 “네덜란드 등 수자원에 관심이 많은 국가에서 찾아와 어떻게 빗물 공급 시설을 운영하는지 묻는다”고 소개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015년 이 공원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오아시스’ 10곳 중 하나로 선정한 바 있다. 개방된 도심숲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운영 노하우도 주목받고 있다.● 낙후 지역에 인구 늘고 경제 활력 공원 개발로 뒤스부르크시는 활력을 되찾았다. 지역 방문객이 늘자 지방 정부도 도시 인프라에 투자하며 거주 여건이 개선되고 있다. 공원 옆에 있는 ‘란트샤프트 공원 북부’ 정류장은 지난해 말 확장 공사를 완료했다. 내년에는 인근에 약 600만 유로(약 87억 원)를 투입해 신규 정류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인근 낙후됐던 마르스로 지역은 공원으로 수혜를 입은 곳으로 꼽힌다. 마르스로는 1990년대 이민자들이 급격히 늘며 현재 주민 중 이민자 비율이 60%를 넘어섰다. 지역 경제가 침체돼 실업과 범죄가 늘었고, 경찰이 주시하는 지역이 됐다. 하지만 가까운 도시숲이 관광지로 발전하고 주기적으로 콘서트, 맥주 페스티벌 등 행사가 열리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일자리와 휴식을 얻었다. 제철소 폐쇄 뒤 인구가 급격히 줄었던 뒤스부르크시는 이민자 유입과 함께 란트샤프트 공원 조성 등 다양한 도심 재생 노력을 기울인 덕에 인구가 늘고 있다. 뒤스부르크시에 따르면 제철소가 가동을 멈추기 전인 1983년 54만1000명이었던 인구는 계속 내리막을 걸으며 2014년엔 48만6000명까지 줄어 최저점을 찍었다. 이후 인구가 점차 늘면서 지난해 52만5000명까지 회복됐고 올해는 5000명 더 늘 것으로 추산된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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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때 방문객 급증, 숲은 보건 인프라”… 獨, 숲길 걸으며 명상 ‘마음챙김’ 앱 개발도

    “숲은 국가 공중보건의 중요한 인프라입니다.” 유럽 30개국으로 구성된 국제기구 유럽산림연구소(EFI)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봉쇄 기간 독일의 숲 이용객을 연구한 결과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코로나19 확산 시기에 개방된 장소인 숲은 전염 우려가 적고, 고립된 사람들이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는 공간으로 주목받으며 공중보건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는 설명이다. EFI에 따르면 2020년 3월 정부의 코로나19 대책이 시행되기 전 독일 서부의 본 주변 도시지역 숲 방문객은 하루 평균 290명이었다. 하지만 같은 해 3월 22일∼4월 28일 방역 대책 시행 중에는 방문객이 하루 평균 690명으로 늘었다. 코로나19 봉쇄 기간에 방문객이 약 140%가 증가한 것. 방문객 최고치는 봉쇄가 풀린 직후인 같은 해 6월 4일 1275명이었다. 숲을 찾는 사람들의 유형도 달라졌다. 기존에 보기 힘들었던 20, 30대 젊은층,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지역 외부에서 온 관광객들이 많아졌다. EFI는 “새로운 방문객들이 늘어나 숲이 사회 전반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게 됐다”며 “도시 지역의 산림 정책이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제 숲은 마음먹고 찾아야 하는 특별한 공간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다양한 시간대에 수시로 숲을 찾게 됐다. 코로나19 봉쇄 전엔 방문객들이 주로 평일 출퇴근 직전이나 직후에 숲을 방문했다. 하지만 봉쇄 기간엔 재택근무로 인해 대낮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특히 토요일은 숲이 가장 한산했던 날에서 가장 붐비는 날로 바뀌었다. 주로 쇼핑하던 인구가 숲으로 향한 것으로 분석됐다. 독일에선 전통적으로 숲이 ‘정서적 치유 공간’으로 여겨진다. 독일어에 ‘숲속에서 느끼는 편안한 고독감’을 뜻하는 발타인잠카이트(Waldeinsamkeit)란 고유한 단어가 있을 정도다. 이런 숲의 정서적 가치가 코로나19를 계기로 재조명되고 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잔 라자야 루 EFI연구원은 “방문객들이 숲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평온함 찾기’로 조사됐다”며 “숲의 영적 가치가 재평가되는 르네상스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 산림보호협회는 이런 수요를 고려해 ‘마음챙김’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했다. 방문객이 스스로 숲길을 걸으며 호흡하고 명상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앱이다. 이 앱은 구체적으로 몇 초간 걷다가 몇 초간 호흡할지, 나무 향을 어떻게 맡을지 소개하고 있다. 마음챙김 앱이 나온 뒤 독일 전역에는 ‘마음챙김 숲길’ 9곳이 추가로 조성됐다. 이 숲길에선 방문객들이 표지판에서 QR코드를 스캔해 숲과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이 서비스의 프로젝트 매니저인 토르스텐 뮐러 씨는 BBC 인터뷰에서 “앱은 숲 방문객이 호흡에 집중하도록 돕거나 숲의 색상 구조 질감 등 세부적인 모습을 관찰하도록 유도한다”며 “독일뿐 아니라 세계 어느 숲에서든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고 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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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늙은 나무’ 77%… 한국, 숲도 고령화

    “무조건 심고 키우기만 한다고 좋은 숲이 아닙니다.” 지난달 27일 강원 춘천시 가리산. 잣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숲은 멀리서 봤을 땐 풍성해 보였다. 하지만 숲속으로 들어가자 키 큰 나무들 사이에 갇혀 썩은 나무들이 보였다. 김아름 국립산림과학원 임업연구사는 “다닥다닥 붙어서 자라는 탓에 햇빛을 못 봐 광합성도 못 하고 말라 죽은 것”이라며 “나무들도 전반적으로 고령화돼 탄소 흡수율이 떨어진다”고 했다. 가리산뿐만이 아니다. 국내 숲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대한민국 국토에서 산림이 차지하는 면적은 세계 평균(31%)의 2배에 달할 정도로 양적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산림 선진국에 비해 숲을 활용하지 못해 무늬만 ‘숲의 나라’라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기후변화로 경제적 충격과 재난 위기가 일상화된 ‘그린스완(Green Swan)’ 시대에 숲 활용도를 높이는 과정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동아일보가 지난달 26∼28일 해외 산림 선진국을 취재한 결과 일본은 ‘명품 숲’을 만들어 인구 유입과 지역 소득 향상의 계기로 삼았고, 지역소멸 위기를 막을 수 있었다. 독일은 멈춰버린 제철소 위에 도시숲을 조성해 생명을 불어넣거나 숲에서 나온 목재 부산물 등 바이오매스(생물자원)로 새로운 산업을 창출했다. 뉴질랜드는 나무를 심고 가꾸고 쓰는 선순환으로 이른바 ‘목(木)맥경화’를 뚫어냈다. 한국은 1960년대부터 반세기 넘게 약 115억 그루의 나무를 심어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황폐화된 숲이 다시 푸르러졌다. 국토 대비 산림 비율(63%)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선 네 번째로 높다. 동시에 한국은 열대 목재 수입량 세계 4위로, 자급률은 15%에 그친다. 영국 프랑스 등은 자급률이 50∼80%에 달한다. 국내 숲은 탄소 저감 효과도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나무 중 77.2%가 30년생 이상이기 때문이다. 주요 수종은 심은 후 평균 25년이 지나면 탄소 흡수량이 줄어든다. 박병배 충남대 산림환경자원학과 교수는 “이제는 단순히 나무를 많이 심는 양적 성장을 넘어 탄소 저감, 산림안보, 지역경제와의 연계 등 숲을 제대로 활용하는 질적 성장을 꾀할 때”라고 강조했다. 31일 산림청 분석 결과 숲 활용도를 높일 경우 산림산업뿐만 아니라 관광 등 부가가치를 더한 전체 매출액은 현재 161조 원(2021년 기준)에서 2030년 206조 원, 2073년 606조 원까지 커진다. 지난해 현대자동차 매출액 162조 원의 4배 수준이다. 산림산업 일자리도 현재 61만 명에서 2073년 204만 명까지 증가한다.그린스완(Green Swan)기후변화가 초래할 사회 경제적 충격과 극단적 재난 위기 등을 일컫는 용어. 예기치 못한 경제 위기를 뜻하는 블랙스완을 변형한 것으로, 2020년 국제결제은행(BIS)이 제시했다. 韓 ‘목맥경화’… 115억그루 심었지만 늙은 나무 방치, 선순환 안돼[‘그린스완’ 시대, 숲이 경쟁력이다] 〈1〉 韓日 ‘숲 정책’ 살펴보니 나무 다닥다닥… 어린 나무까지 ‘골골’필요 목재 85% 수입… 年 7조 달해선진국, 청년-중년나무 고루 분포… “숲, 양적성장 넘어 이젠 질적 성장을” 성인 1명이 쉽게 지나다니기 힘들 정도로 잣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숲. 나무 직경은 평균 30cm에 불과했다. 양팔로 나무를 안고도 두 손이 포개질 만큼 얇았다. 다닥다닥 붙어 자란 탓에 생장이 억제돼서다. 나뭇가지도 뿌리에 가까운 아래쪽부터 많이 나 있었다. 나무는 가지가 뻗어 나간 자리에 생기는 옹이가 많을수록 목재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 지난달 27일 찾은 강원 춘천시 가리산의 풍경이다.● 아직까진 ‘무늬만’ 숲의 나라 반면 같은 잣나무인데도 관리를 해준 숲의 풍경은 달랐다. 산림청이 ‘숲가꾸기 시범림’으로 관리하고 있는 공간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굵고 곧게 뻗은 나무가 많았다. 2년생 묘목을 심은 뒤 건강한 나무만 남기는 솎아베기 과정을 거쳤다. 우량한 나무 주변에 있는 병든 나무, 굽은 나무, 노쇠한 나무는 잘라줬다. 그 결과 방치된 숲의 잣나무는 직경이 30cm 안팎에 불과했지만, 관리된 숲에선 잣나무 직경이 50cm 안팎까지 자랐다. 굵을 뿐만 아니라 길고 반듯하게 자라 목재로서 쓰임새도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관리를 받은 나무는 뿌리가 깊이 들어가 산사태 발생 시 말뚝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윤석범 춘천국유림관리소장은 “국내 대부분의 산이 나무를 심기만 하고 가꿔 주지 않아 적정 밀도보다 과밀한 상태”라며 “나무도 농작물처럼 제때 ‘수확’한다는 개념이 자리 잡아야 자연이 선순환한다”고 말했다. 국내엔 전국 어디에나 푸른 숲이 있고 나무도 빼곡하게 심어져 있지만, 상대적으로 숲 관리는 빈약하다는 의미다. 국내 목재 수요량의 85%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수입하는 열대 목재만 매년 7조 원 규모로 세계 4위다. 수입량이 많다 보니 인도네시아에서 원목 수출을 제한하면 국내 목재 가격이 요동치기도 한다. 윤 소장은 “목재를 해외에서 벌크선으로 수입해 오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양의 탄소가 배출된다”며 “자국에서 생산한 목재를 자국에서 소비하는 게 탄소 중립 면에서 가장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숲에는 30년생이 넘어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줄기 시작한 나무가 10그루 중 7그루(77.2%)가 넘는다. 중부지방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연간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30년생일 때는 1ha(헥타르)당 12.1t 이지만 60년생이 되면 1.8t으로 7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한다. 국내 산림면적에서 탄소 흡수량이 비교적 높은 ‘어린 나무’가 차지하는 비율은 1∼10년생 4%, 11∼20년생 3%, 21∼30년생 11%에 불과하다. ● ‘목(木)맥경화’ 뚫어 미래 성장기반으로 산림 선진국은 나이 든 나무를 수확해 목재로 활용하고 새 나무를 심는 ‘산림 선순환’이 자리 잡았다. 어린 나무, 청년 나무, 중년 나무를 고루 분포시켜 탄소를 계속 흡수하는 효과를 거두는 것. 철근, 콘크리트, 플라스틱은 한 번 사용하면 끝이지만 목재는 수확한 자리에 다시 나무를 심으면 20, 30년 뒤에 다시 목재로 쓰인다. 사실상 지속가능하게 쓸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인 셈이다. 일본 독일 등은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며 인구 유입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국내 숲은 녹화사업 이후 숲을 활용해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발전시킨 사례가 많지 않아 이른바 ‘목(木)맥경화’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2022년 기준 국내 산촌의 89.5%가 인구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된다. 65세 이상 인구 대비 2030세대 가임여성 인구 비율이 0.2 미만인 지역을 뜻한다. 전문가들은 전남 장흥군 등의 사례처럼 ‘명품 숲’을 발굴해 관광 자원화하고 산촌 주민 공동체와 연계한 소득 사업을 발굴하면 인구 절벽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장흥군은 편백숲에 치유의 숲, 숙박 및 체험시설을 조성해 연간 67만 명이 방문하는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장흥군 인구 3만6000명의 18배가 넘는 방문객을 유치하고 연계소득 1240억 원을 창출했다. 경북 울진군도 금강소나무 지역에 숲길을 조성해 인구 4만7000명의 3배가 넘는 15만 명이 매년 방문하는 관광자원으로 자리매김했다. 박병배 충남대 산림환경자원학과 교수는 “산림 선진국은 숲을 산업과 문화관광 자원이자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양적 성장을 넘어 이젠 질적 성장으로 넘어가야 할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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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업 30곳 손잡은 日시골 “숲속 오피스로 지역소멸 위기 대응”

    “나무를 올려다보시겠어요? 소리가 다르죠?” 지난달 28일 일본 가고시마(鹿兒島)현 기리시마(霧島)시 기리시마 긴코완 숲에서 만난 산림 세러피 가이드 우스자키 노키(臼崎のき·70) 씨가 웃으며 권했다. 삼나무, 붉가시나무, 후박나무 등 사전을 찾아봐도 생소한 이름의 나무들이 하늘로 쭉쭉 뻗어 있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새 소리와 어우러졌다. 고층빌딩으로 가득한 대도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다. 인구가 약 12만 명에 불과한 기리시마시는 숲을 주요 관광자원으로 내세우면서 연간 560만 명(2022년 기준)의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구 감소 위기를 겪는 지방으로서는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된다. 한국과 비슷하게 국토의 75%가량이 산인 일본은 숲을 단순히 ‘보호의 대상’이 아닌 인구 감소를 막고 지역 경제를 살리는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2000년대 이전에는 나무를 심고 보호하는 데 주력한 반면, 이후에는 숲을 활용해 경제 효과를 극대화하고 지역 활성화를 꾀하는 쪽으로 적극 나서고 있다. ● 관리 대상에서 체험 공간으로 탈바꿈 기리시마시는 2007년 4곳의 ‘산림 세러피 로드’를 지정했다. 표고 500∼700m 높이에 길이 900m∼2.5km로 체력이 약한 사람도 천천히 1∼2시간가량 걸으면서 숲을 즐길 수 있다. 4곳 모두 지역 전통 관광 명소인 천연온천 인근에 있어 ‘산책 후 온천’을 매력으로 내세운다. 이곳에서는 4∼12월 9차례의 정기 산림 세러피 투어를 운영하며 관광객들에게 숲을 체험할 기회를 준다. 지역에서 운영하는 ‘가이드 클럽’에 신청하면 개별 투어도 가능하다. 관광객 누구나 가볍게 산책하며 숲을 즐길 수 있다. 이날 숲 인근 호텔에서는 관광버스 2대로 온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밤에는 온천을 즐기고 낮에는 숲을 산책하며 자연을 즐겼다. 하마다 겐 기리시마시 관광PR과 주무관은 “숲은 온천과 더불어 지역의 가장 소중한 자원”이라며 오사카 등 대도시 고교 수학여행 팀도 찾는다고 귀띔했다. 숲을 활용한 관광 자원과 소니 등 지역 내 대기업 공장 등의 영향으로 이 지역 인구는 2000년 12만7900명에서 지난해 12만3135명으로 20년 넘게 12만 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최근 숲과 산을 활용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산림 서비스 산업이 각광받고 있다. 일본 임야청 측은 “관광, 건강,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산림을 활용해 체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이용객에게는 새로운 숲 체험 기회를 주고 해당 지역에서는 새로운 고용과 소득을 창출할 수 있다”고 밝혔다. ● 기업 제휴 맺으며 인구절벽 해결책 활용1998년 나가노 겨울올림픽으로 한국에도 익숙한 일본 나가노(長野)의 시골 마을 시나노(信濃)정은 지역의 유일한 자원인 산, 숲을 적극 활용해 지역 위기 돌파에 나서고 있다. 이곳은 1960년 1만3700명에서 최근 8000명대로 인구가 줄며 인구절벽에 직면한 곳이다. 과거 여느 다른 지역처럼 도로 확장, 쇼핑센터 유치 등에 주력했던 이곳은 2000년대 들어 발상 전환에 나섰다. 우리 지역에 ‘없는 것’을 만들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우리 지역에만 ‘있는 것’을 찾아 가꾸자는 데 지역민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렇게 시작된 사업이 2004년 ‘에코 메디컬 힐링 빌리지 사업’이었다. 이 사업을 통해 ‘치유의 숲’ 프로그램 조성에 나섰다. 적설량이 많아 겨울 스키장으로 유명한 ‘구로히메 고원’에 1.2∼7km의 숲길을 조성하고 산림욕, 맨발 진흙체험 등을 할 수 있게 했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산림 메디컬 트레이너’는 방문객에게 산림 치유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최근에는 일본 주요 기업들이 ‘치유의 숲’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30곳 넘는 기업이 이곳과 제휴를 맺어 연간 5000여 명의 각 기업 직원이 숲을 이용한다. 제휴 기업 직원들이 숲을 이용하면서 이 지역 숙박시설, 식당 수익 증가 등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고향 기부금’도 납부해 옥수수, 블루베리 등 지역 특산물 구입에도 앞장서는 ‘1석 3조’ 효과를 거둔다. 제휴 기업에 화답하기 위해 시나노정은 2019년 ‘노마드 워크 센터’라는 원격 근무 시설을 만들었다. 40명 수용이 가능한 이곳에서는 기업 단위로 사용 신청을 받아 5일간 30만 엔(약 270만 원)을 받는다. 주중에 일하면서 오후에는 카약, 등산, 요가 등을 즐길 수 있다. 기업 만족도는 높다. 일본 전기부품 업체 TDK람다는 시나노정과 협정을 맺고 2008년부터 매년 신입사원 연수를 이곳 숲에서 진행한다. 그 전까지는 3년 차 미만 직원 퇴직률이 12%에 달했지만 숲 연수를 실시하면서 1%로 떨어졌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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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은 ‘숲타디움’

    산림 면적이 2508만 ha로 국토의 68%에 달하는 일본은 고도 경제 성장기에 적극적인 산림 육성책을 펼쳤다. 이로 인해 전체 숲의 40%가 인공림이며, 일본 내 어느 산이든 키를 훌쩍 넘는 나무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일본 정부는 과거의 ‘숲 보호’에서 벗어나 다양한 활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본 임야청에 따르면 휴양림 등 정부가 지정한 숲을 이용한 인구는 자국 인구보다 많은 연간 1억4000만 명에 달했다. 숲을 쉽게 접하고 즐기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기업들의 관심도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임야청 설문조사 결과 응답 기업 392곳 중 60%가 숲, 임업, 목재와 관련한 활동을 현재 하고 있거나 실시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단순한 사회 공헌 차원을 넘어 다양한 비즈니스를 통해 숲, 임업에 기여하려는 기업들의 의지가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전체 숲의 1.5% 정도인 26만7000ha에 597곳을 ‘레크리에이션 숲’으로 지정하고 있다. 자연 휴양림, 실외 스포츠 등 목적에 따라 지정해 이런 활동을 정부가 보유한 국유림에서 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한다. 활용 방식은 다양하다. 일본 중부 야마나시현에는 ‘포레스트 어드벤처’라는 곳이 있다. 공중 걷기 등 숲 즐기기가 가능한 시설을 숲을 해치지 않고 마련했다. 이른바 ‘자연 공생 아웃도어 파크’라는 개념으로 정비한 숲 체험 시설이다. 인기를 끌면서 전국 35개 시설로 늘어났고 연간 50만 명이 이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즐기고 있다. 일본 유명 리조트 기업인 호시노그룹은 투숙객에게 산림 산책, 승마, 산악자전거, 야간 곤충 관찰 등 다양한 숲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전통 목조건축 강국인 일본은 나무를 활용한 건축도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2020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인 도쿄 국립경기장은 ‘산림 스타디움’이라는 콘셉트로 전국 47개 광역단체의 삼나무로 경기장 처마를 꾸미는 등 철골과 나무를 조합한 하이브리드 건축물을 지었다. 멀리서 보면 숲으로 덮여 있는 느낌이 나고 경기장 안에 들어가면 곳곳에서 목재를 활용한 것을 볼 수 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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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불 할퀴고 간 울진… 2년 지났지만 아직도 ‘탄내’

    지난달 28일 오후 2시. 경북 울진군 북면 한 야산의 정상. 김영훈 울진국유림관리소장이 새까맣게 그을린 소나무의 몸통을 어루만졌다. “비가 올 때면 항상 흙냄새가 향기롭게 풍기던 곳인데 아직도 희미한 탄내가 콧속을 파고드네요.” 손에는 거무튀튀한 잿물이 그대로 묻어 나왔다. 선 채로 죽어 있는 나무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시선을 돌리자 벌거숭이처럼 변한 휑한 산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린스완(Green Swan)’에 대비해 국내 숲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대형 화재 등 재난 후 신속한 복원과 사전예방이 필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가 2년 전 대형 화재를 겪은 울진-삼척의 숲이다. 2022년 3월 4일 울진에서 시작돼 강원 삼척까지 번졌던 초대형 산불은 무려 213시간 동안 서울 면적의 약 35%에 이르는 2만923ha(헥타르)를 태웠다. 동아일보 취재 결과 당시 산불 피해를 입었던 곳들에선 죽은 나무가 뿌리째 뽑인 후 경사면을 타고 흘러내렸다. 김 소장은 “죽은 나무는 벌채해야 하고, 일대는 민둥산이 된다”며 “대형 산사태 피해가 일어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집을 잃었던 주민 181가구 가운데 30가구는 아직도 임시 컨테이너 주택에 머물고 있었다. 산불이 나기 전까지만 해도 울진 인구의 약 22%인 1만여 명은 송이 등 임산물 채취로 생계를 이어왔지만 최근엔 수확을 못 하고 있다. 대를 이어 송이 농가를 운영해 온 이운영 씨(51)는 “죽어서 눈감을 때까지 울진에서 송이를 볼 수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산불 피해 범위가 워낙 방대한 탓에 복구는 여전히 더디다. 울진군에 따르면 군 전체 피해 면적 1만4140ha 중 현재까지 벌채 면적은 1800ha에 불과하다. 자연복구 지역을 제외한 인공복구 범위 6900ha를 기준으로 보면 약 26%만 벌채가 진행됐다. 울진군 관계자는 “벌채 작업이 끝난 구역도 묘목 식재가 완전히 이뤄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평균 기온이 올라 산불이 일상화되고 있어 사후 대응보다 사전 예방을 위한 대책 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립산림과학원 권춘근 연구원은 “산불 발생 시 진화 작업에 사용할 수 있는 인공 담수지를 산불 위험 지역마다 조성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며 “산불이 나면 진화 차량 등 장비가 진입할 수 있는 임도(林道)를 계획적으로 설치하는 것도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원전 주변이나 군부대 탄약고 주변처럼 초대형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것도 대비책으로 제시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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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이형주 동아일보 광주호남취재본부 부장 모친상

    ◇강영자 씨 별세·이형문 KT부장 형주 동아일보 사회부 광주호남취재본부 부장 모친상· 박인규 전 근로복지공단 광주본부장 장모상=20일 광주 천지장례식장, 발인 22일 오전 10시 30분 062-527-1000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 20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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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수 저출산 지원 정책은 소득기준 폐지해야[광화문에서/강경석]

    “저출산을 복지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는 이미 한참 전에 넘어섰다.” 최근 한 중앙 부처 공무원은 저출산 문제와 관련한 각종 대책에 대해 “소득 기준으로 지원 대상을 정하던 것도 이젠 다른 관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최근 온라인에서 신생아 특례대출을 소득 기준에 따라 다르게 지급하는 정책을 놓고 갑론을박이 일었다. 지원 대상 소득 요건을 연간 1억3000만 원 이하로 한정하면서 혼인신고를 하지 않거나 출생신고에 남편 이름을 올리지 않는 편법을 공유하는 이들까지 나타났다. 소득 기준의 경계선에서 지원 여부가 엇갈린 부부들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복지 정책에 대해선 모두에게 지급하는 무차별적 현금 살포성 정책 대신 꼭 필요한 대상자에게 지원하는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이미 저출산 문제가 복지의 영역을 넘어선 지 오래라는 게 문제다.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에 대해선 소득 기준을 폐지한 것처럼 필수 분야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지원 대상자를 늘려야 한다. 소득 기준을 운운하며 행정적인 잣대로만 접근하는 건 안이한 발상이다. 서울에 사는 한 맞벌이 30대 가장은 “소득 기준으로 부모들을 갈라치기 하는 것 아니냐”며 “주택자금대출 같은 주거 정책까진 아니더라도 육아 돌봄 정책은 소득 기준을 따질 게 아니라 누구든 적극적으로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13년 전 정치적 명운을 걸고 선택적 복지를 주장했던 오세훈 서울시장마저 저출산 위기 앞에선 각종 지원 정책에 대해 소득 기준은 물론이고 6개월 이상 거주해야 한다는 조건마저 하나둘씩 폐지하는 판이다.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도 신년 간담회에서 “모든 저출산 정책에서 소득 기준을 폐지하자”며 정책 대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저출산 문제처럼 지독하게 해법을 찾지 못하는 분야도 없다. 결혼부터 임신, 출산, 육아, 보육, 교육, 입시, 취업, 그리고 다시 자녀의 결혼으로 이어지는 도돌이표가 반복되는 반세기 동안 이런 삶의 궤적 곳곳에 산적해 있는 문제를 방치한 대가를 이제야 치르는 게 아닐까 싶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선 저출산 공약을 대대적으로 내놨고, 자녀 1명을 출산할 때마다 1억 원을 내놓겠다는 기업까지 나타났다. 그럼에도 지난해 10∼12월 합계출산율은 0.65명,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저출산 정책은 대대적으로 예산을 투입하더라도 당장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지진 않는다. 전문가들은 최소 5년, 길게는 10년은 지나야 정책 효과가 드러날 것으로 예상한다. 소득 기준 폐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의대 입학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의사들의 병원 이탈이 장기화하면서 의료 공백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고, 총선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저출산 문제는 잠시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선출직 공무원은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책임감으로 저출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을 흔들림 없이 끌고 가야 한다. 수년 뒤에 있을 선거만 염두에 두고 유권자의 눈앞에 당장 성과를 내놓을 수 있는 표퓰리즘 정책만 남발해선 나라의 미래가 없다.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

    • 202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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