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효림

손효림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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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손효림 기자입니다.

aryssong@donga.com

취재분야

2026-02-26~2026-03-28
문화 일반51%
문학/출판23%
연극7%
학술7%
여행3%
칼럼3%
교육3%
경제일반3%
  • 쪽빛 바다 파고드는 소용돌이 향연[손효림 기자의 아트로드]

    멀리 가지 않고도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다. 조용하게 자연을 느끼며 문화도 즐기고 싶다. 일본 소도시 도쿠시마(德島)는 이런 이들에게 매력적인 곳이다. 짙푸른 바다에 휘몰아치는 거대한 소용돌이,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를 비롯해 각국 명화를 실물과 똑같이 재현한 미술관이 있다.● 최대 지름 20m 소용돌이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니 도쿠시마현까지 1시간 20분 정도 걸렸다. 이스타항공이 인천∼도쿠시마 노선을 주 3회(화·목·토요일) 운항한다. 도쿠시마 아와오도리 공항에 도착하니 반갑게 인사하며 귤 두 알을 건네는 이들이 있었다. 도쿠시마 지역별 공무원들이 2주에 한 번꼴로 공항에 나와 딸기 고구마 같은 제철 특산물을 선물하며 입국자들을 맞이한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환대가 정겨웠다.도쿠시마가 있는 시코쿠(四國)는 혼슈, 홋카이도, 규슈와 함께 일본의 4개 주요 섬 중 하나다. 도쿠시마는 오사카 서남쪽에 있으며 오사카에서 차로 2시간 정도 걸린다. 도쿠시마 인구는 68만여 명으로 제주와 비슷하며 면적(4147㎢)은 제주의 2.2배다.이곳 명물은 나루토 해협 소용돌이. 조수 간만의 차 때문에 각기 다른 방향으로 거세게 흐르는 조류가 맞부딪쳐 회오리친다. 세계 3대 소용돌이에 든다. 소용돌이는 춘분과 추분에 가장 커져 지름이 최대 20m에 이른다고 한다. 하루 중 소용돌이가 크게 생기는 시간대가 있으므로 확인하는 게 좋다. 관조선(觀潮船)을 탔다. 때마침 춘분 사흘 뒤여서 거대한 소용돌이를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소용돌이가 쪽빛 바다 여기저기를 파고들며 또렷한 무늬를 새겼다. 거대한 소용돌이에 사람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소용돌이는 우즈노미치 전망대에서도 볼 수 있다. 도쿠시마와 아와지섬을 잇는 다리인 오나루토교(橋) 하단에 있다. 해수면에서 45m 높이에 만들어져 유리 바닥을 통해 소용돌이를 내려다볼 수 있다. 인근 요모미 전망대에 오르니 잔잔한 바다 위에 네모난 고깃배들이 점점이 떠 있는 광경이 펼쳐졌다. 마음이 고요해졌다.오츠카국제미술관도 가깝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성당 천장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리자’, 클로드 모네 ‘수련’ 연작, 산드로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명화를 도자기판에 인쇄해 구워 실물과 똑같은 크기로 만들었다. 26개국 190여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 1000여 점을 세밀하게 재현했다. 고흐의 ‘해바라기’ 7점 모두 볼 수 있다. 각국 명화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어 매력적이었다. 타일이어서 작품을 만질 수 있다. 이런 발상도, 뛰어난 기술력으로 구현한 것도 놀라웠다. 포카리스웨트로 유명한 오츠카제약그룹이 만들어 1998년 개관했다. 미술관은 총 5개 층이다. 연면적 2만9412㎡(약 8900평)로 감상 코스는 총연장 4km에 이른다. 제대로 감상하려면 최소한 반나절은 필요할 것 같다. 입장료(성인 3300엔, 약 3만1000원)가 전혀 비싸게 느껴지지 않았다.● 신선한 재료가 선사하는 풍미비잔산(해발 290m) 전망대에 오르면 도쿠시마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로프웨이를 타면 6분 정도 걸린다. 전망대는 전통 춤 아와오도리(阿波踊り)를 관람할 수 있는 아와오도리회관에 있다. ‘아와’는 도쿠시마의 옛 지명이며 ‘오도리’는 춤을 뜻한다. 공연 시간은 40분으로 배우들이 춤을 보여준 뒤 기본 동작을 알려준다. 두 손을 위로 올린 후 오른발과 오른손을 같이 앞으로 내밀고 왼발과 왼손을 함께 내미는 동작을 반복하면 된다. 흥겨운 리듬에 곧바로 적응됐다.배우가 “얏또사”하면 다같이 “얏또얏또”라고 외친다. 얏또사는 ‘오랜만입니다’를 뜻하는 방언이며 얏또얏또는 이에 호응하는 말이라고 한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을 접대하는 춤에서 비롯됐단다. 일본 최대 명절 오봉 기간인 8월 15일을 기점으로 매년 나흘가량 아와오도리 축제가 열린다. 신선한 재료로 만든 음식도 즐거움을 더했다. ‘도쿠시마 라멘’은 돼지뼈 육수에 간장을 섞고 짭짤하게 졸인 돼지고기를 얹었다. 날계란을 풀어 스키야키처럼 고기를 찍어 먹으니 고소하다. 다진 마늘을 넣으니 개운함이 더해졌다.‘다라이 우동’도 맛 봤다. 목수들이 일한 후 대야(다라이)에 우동을 삶아 각자 떠먹은 것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나무로 만든 둥근 통에 면이 담겨 나왔다. 면을 먼저 맛본 뒤 간장에 찍어 먹었다. 소스에 따라 여러 맛을 즐길 수 있었다. 스시와 튀김, 계란찜도 같이 나왔는데 1인분이 우리 돈으로 1만5000원 정도였다. 찌기만 했는데도 달달한 고구마 양파 당근 양배추는 이곳 농산물의 품질을 확인시켜줬다. 또 다른 얼굴의 일본을 만났다.따뜻한 주민 응원 받으며 요시노강 따라 달리다제19회 도쿠시마 마라톤 대회 개최8300여 명 참가… 한국인 74명도“간바레! 간바레!”(힘내라!)22일 일본 도쿠시마현 요시노강 변. 주민들이 반짝이는 응원 수술을 흔들며 도쿠시마 마라톤 대회 참가자들을 응원했다. 도쿠시마 전통 춤인 아와오도리 복장을 하고 응원하는 고등학생들,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이들이 곳곳에 있었다. ‘한다 소면’ ‘아마자케(감주)’ 등 지역 특산품을 종이컵에 담아 러너들에게 건네기도 했다.올해 19회를 맞은 도쿠시마 마라톤 대회는 도쿠시마현청 앞에서 출발해 요시노강을 따라 달리는 코스로 구성됐다. 참가자 8307명 가운데 407명이 외국인이었다. 대만(97명) 홍콩(92명)에 이어 한국(74명)이 세 번째로 많았다. 대회는 선수 부문과 일반 부문, 시각장애인 부문으로 나눠 열렸다. 1.5km, 3km를 각각 달리는 챌린지 런도 진행됐다. 마라톤 진행 시간은 7시간(오전 9시∼오후 4시)으로 여유로웠다.시원하게 펼쳐진 요시노강 주변에는 유채꽃과 벚꽃이 피어 있었다. 교복 입은 학생들이 쓰레기를 줍고 주민들이 완주한 참가자들에게 즉석 라멘을 건네는 등 축제 분위기였다.일반 부문 남성 1위는 조영옥 씨(43·충남 당진)가 차지했다. 조 씨는 “주민들이 응원을 많이 해줘 놀랐고 힘이 났다”며 “내년 대회에도 참가하겠다”고 말했다. 문이경미 씨(44·제주)는 “평지가 많아 뛰기 좋으면서도 응원하는 분들이 많아 지루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들은 지난해 제주국제관광마라톤대회 남녀 우승자로, 도쿠시마현 초청을 받아 참가했다.대회 참가자와 그 가족은 이날 골인 지점인 도쿠시마시 육상경기장 인근에서 출발해 먹거리 부스 등이 마련된 아이바하마 공원까지 요시노강을 운행하는 크루즈를 무료로 탈 수 있었다. 크루즈로 10분 정도 걸렸다.자그마한 아이바하마 공원에는 유자를 넣은 간이 족욕탕,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침상을 마련해 참가자들이 달린 뒤 피로를 풀 수 있게 했다. 지역 특산품 딸기와 고구마로 만든 과자 등도 판매했다. 대회 수상자들이 참가한 토크쇼도 열렸다.고토다 마사즈미(後藤田正純·57) 도쿠시마현 지사는 “내년에는 나루토시와 협의해 마라톤 코스를 바꿀 예정”이라고 했다. 고토다 지사는 “자연 문화 음식 등이 풍성한 도쿠시마는 아직 만나지 못한 또 하나의 일본”이라며 “많은 분이 도쿠시마를 방문해 숨겨진 진주를 캐듯 새로운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글·사진 도쿠시마=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13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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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손효림]사람 온기 확인시켜 준 샘터 휴간의 역설

    월간 잡지 샘터가 경영난에 시달리다 올해 1월호를 낸 후 무기한 휴간에 들어갔다. 1970년 4월 창간된 후 처음 멈춰 선 것이다. 한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정기구독자 가운데 수십 명이 환불을 정중히 거절한 것. 연간 구독료는 4만8000원으로, 10년 치를 미리 낸 사람도 많았다. 구독자별로 몇만 원에서 많게는 30만 원이 넘는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이들은 “남은 구독료는 돌려주지 않으셔도 된다. 출판사 운영에 써 달라”고 당부했다. 샘터는 그동안 발행된 잡지에 실린 글 중 100개를 추려 지난달 출간한 필사책 ‘56년 샘터 잊지 못할 명문장’을 이들 독자에게 선물로 보냈다. 책에는 피천득, 박완서, 이어령, 법정 스님, 장영희, 이해인, 나태주, 한강을 비롯해 주부, 학생, 식당 주인 등의 글이 고루 담겼다.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를 표방하며 명사와 일반인의 글을 나란히 실은 샘터의 정체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평범한 이들이 건네는 다정함 휴간 사실이 알려지자 독자들은 샘터에 대한 추억을 떠올렸다. 한 독자는 “군 복무 시절 친구가 매달 샘터를 보내줘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또 다른 독자는 “중학생 때 빠듯한 용돈을 모아 샘터가 나오길 기다렸다 사서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필사책을 통해 다시 만난 글도 반겼다. ‘아이들 학교로 우산을 들고 갈 일이 있을 때엔 하나라도 우산을 더 챙겨서 갑니다. 우산이 없어 비를 맞는 것이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를 하나라도 줄이고 싶어서.’ 김미라 씨의 ‘우산 세 개’에 “마음이 촉촉해진다”는 반응이 많았다. 샘터에는 다른 출판사에서 보기 힘든 풍경이 펼쳐진다. 예전에 발간된 샘터를 보고 싶다며 독자들이 종종 찾아오는 것. 본인 글이 실린 샘터를 보려는 어르신, 돌아가신 부모님의 흔적을 찾으려는 중년 등 다양하다. 글이 디지털로 저장돼 있지 않아 직원들은 엑셀 파일로 이름과 제목 등을 검색해 손수 해당 잡지를 찾아준다. 원고 마감으로 정신없을 때 오는 사람도 그냥 돌려보내지 않는다. 직원들은 “샘터 이미지를 생각하면 매정하게 거절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이는 샘터의 창간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고 김재순 전 국회의장(1923∼2016)은 국제기능올림픽 한국위원회 회장을 맡아 기능인들을 만났는데 “집이 가난해 공부하지 못한 게 한이 된다”는 하소연을 들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자긍심을 갖게 할 방법을 고민하다 샘터를 창간했다. 진솔한 글에 대한 목마름 여전 샘터는 2019년에도 경영난으로 휴간하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었지만 독자 기부와 기업 후원으로 발행 중단 없이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더 버티기는 힘들었다. 월간지를 운영하려면 최소한 5만 권은 발행해야 하는데 최근엔 1만 권 정도로 줄었다. 국방부에 납품하는 물량까지 포함된 수치다. 샘터가 한창 인기 있을 땐 50만 권까지 발행했다. 기자가 어릴 땐 은행 병원 동사무소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샘터가 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샘터를 볼 수 있는 곳은 서점, 도서관으로 급격히 줄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휴간은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샘터 휴간 후 구독자들이 보낸 정중한 격려는 사람 냄새 나는 글을 아끼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걸 확인시켜 줬다. 투박하지만 진솔한 글에서 위안을 얻었다는 독자들의 잇따른 고백 역시 사람들이 온기에 목말라 있음을 보여준다. 김 전 의장의 아들인 김성구 샘터사 대표(66)는 “단행본으로 실력을 키우고 에너지를 충전해서 돌아오겠다”고 했다. 돌아올 샘터가 어떤 모습일진 모르겠다. 분명한 건 온기를 머금은 글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은은하게 오래도록. 손효림 콘텐츠기획본부 기자·부장급 aryssong@donga.com}

    • 15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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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외대-일본 도쿠시마현 교육·문화 교류 추진

    한국외국어대와 일본 도쿠시마현이 교육·문화 교류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25일 체결했다. 강기훈 한국외대 총장은 고토다 마사즈미 도쿠시마현 지사를 만나 학생들이 도쿠시마를 방문해 문화 체험을 한 후 이를 콘텐츠로 만들어 알리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했다. 고토다 지사는 이날 한국외대에서 지역이 고유의 특색을 살려 여러 나라와 교류하며 성장하는 방안에 대해 강의했다. 고토다 지사는 “도쿠시마를 방문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도쿠시마만의 매력을 알려 사람들이 도쿠시마에 가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찾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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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은 돈 안 받을게요”…‘휴간’ 샘터 구독자들, 환불거절 후 생긴 일 [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

    [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많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 창작자들은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베스트셀러가 되길 꿈꾸지만,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 희귀한 확률을 뚫고 베스트셀러가 된 콘텐츠가 탄생한 과정을 들여다본다. 창작자의 노하우를 비롯해 이 시대 사람들의 욕망, 사회 트렌드 등을 확인할 수 있다.“남은 구독료는 돌려주지 않으셔도 돼요. 출판사 운영에 써 주세요.”월간 잡지 샘터가 경영난으로 올해 1월호(통권 671호)를 낸 후 무기한 휴간에 들어갔지만 정기 구독자 중 남은 구독료를 받지 않겠다는 이가 수십 명이나 됐다. 정기 구독료는 1년에 4만8000원. 10년 치를 미리 낸 구독자는 30만 원 넘는 돈을 환불받길 고사했다.(샘터는 부담 없이 살 수 있게 짜장면값보다 싸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1970년 4월 창간 당시 한 권에 100원이었다. 최근까진 4800원이었다.)출판사는 이들에게 선물을 건넸다. 지난달 출간한 ‘56년 샘터 잊지 못할 명문장’(샘터)이다. 창간 후 56년간 샘터에 실린 글 중 100편을 추린 필사책이다. 책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독자들은 “휴간으로 오랜 친구를 잃는 것 같아 아쉬웠는데 책이 나와 기쁘다”, “추억을 일깨워줘서 고맙다”며 반겼다. 책을 만든 한재원(41) 김윤미(40) 샘터 차장을 서울 송파구의 한 카페에서 12일 만났다. 이들은 월간 샘터에서 10년간 기자로 일했다. 한 차장은 편집장이었다. 이들은 샘터가 휴간에 들어간 후 단행본을 만드는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고(故) 김재순 전 국회의장(1923~2016)이 창간한 샘터는 한창 인기를 끌 때 50만 권 이상 발행됐다. 정채봉 최인호 피천득 법정 스님 등이 기고했고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는 샘터 기자로 근무했다. 표지에는 김기창 장욱진 천경자 등의 작품이 실렸다. 월간지를 유지하려면 최소 5만 권은 나가야 하는데 최근 샘터의 발행 부수는 1만 권 정도였다. 지난해 10월 샘터 휴간이 결정되자 한 차장과 김 차장은 샘터에 실린 글을 모아 책을 만들자는 생각을 했다. 김성구 샘터사 대표·샘터 발행인(66)에게 얘기하니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김 전 의장의 아들이다. 이들은 올해 1월호 제작을 마친 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책 만들기에 들어갔다. 한 차장이 짝수년도 샘터를, 김 차장은 홀수년도 샘터를 읽었다. 퇴근 후는 물론 주말까지 하루 10시간 이상 검토하는 작업을 2주간 이어갔다. “정보성 글은 빼고 수필이나 독자 사연 위주로 봐서 예상보다 빨리 1차 검토를 할 수 있었어요. 가방에 3, 4권씩 넣고 지하철로 이동할 때도 봤죠.”(한 차장)한 권은 평균 150페이지다. 1년은 1800페이지로, 56년이면 대략 10만 페이지에 달한다. 옛 책은 세로쓰기에 한자도 많아 시간이 더 걸렸다. 이들은 “10년간 샘터를 만들었지만 이렇게 열심히 본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웃었다. “1970, 80년대 글은 투박하더라도 거침없고 솔직한 게 눈에 띄었어요. 정감이 있고요. 유명한 문인 뿐 아니라 일반 독자 글도 그랬어요.”(한 차장)“문인은 좀 더 능숙하게 쓰고 독자들은 꾸밈없이 참신하게 쓴 게 많았어요.”(김 차장)각자 후보를 추려보니 400개 가까이 뽑혔다. 두 사람 모두의 마음에 드는 글로 압축했다. 기준은 ‘진솔한 경험과 사유를 담아 오늘날 독자에게도 청정한 숨을 불어넣고 시간이 흐를수록 생각나는 문장’일 것. “좋은 글이 많아 빼는 게 아까웠어요. 1차 검토보다 줄이는 과정이 더 오래 걸렸습니다.”(김 차장) 최종 100개를 추렸다. 정채봉 피천득 최인호 박완서 이어령 장영희 법정 스님 등 명사는 물론 학생, 주부, 식당 사장 등의 글이 실렸다.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를 추구하는 샘터의 기조가 담긴 것. 100개 글 중 20개는 해당 내용이 담긴 글 전체를 실었다.“발췌문을 읽으면 앞뒤 정황이 궁금해지는 글이 있어요. 발췌문만으로도 의미가 충분히 전달되게 했는데, 이 구절이 담긴 글을 모두 보면 더 좋겠다는 생각에 20편은 전체 글을 실었어요.”(한 차장) 각 글에는 독자에게 건네는 질문을 실었다. ‘세모에 지난 한 해 동안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은 삶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은 용기입니다.’(신영복·‘한 평 방 속의 우주’) 이 글에는 ‘올해는 무엇을 잊고 무엇을 간직하며 살고 싶나요’라는 질문을 적었다.“문장을 읽고 쓰는데서 끝나지 않으면 좋겠더라고요. 나의 언어로 내 상황을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질문을 넣었습니다.”(한 차장)출간 시기는 2월을 넘기지 않기로 했다. 휴간으로 샘터에 관심이 있을 때 내야했기 때문이다. 샘터와 인연이 깊은 문인 가운데 이해인 수녀와 나태주 시인에게 추천사를 부탁했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말씀을 안 드렸는데도 두 분 모두 마음을 다해 쓰신 글을 이틀 내에 보내주셨어요. 저희 상황을 다 이해하신 것 같아 정말 감사했습니다.”(김 차장)제목은 김 대표와 두 차장이 함께 만들었다. 부제로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 필사’를 뽑았다. 두 차장은 “샘터 휴간을 아쉬워하는 독자들에게 선물을 드린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했다.이들은 책이 나온 후에야 휴간됐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책을 만드느라 헛헛함을 느낄 틈이 없었어요. 눈으로 책을 보니 ‘진짜 휴간했구나’ 실감되면서 허전함이 밀려왔어요.”(한 차장)샘터 휴간 결정은 이들에게도 충격이었다. 샘터는 경영난으로 2019년 휴간하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지만 독자들의 기부와 우리은행의 후원으로 쉼 없이 출간하며 고비를 넘겼다. “지난해 여름부터 휴간 얘기가 나왔어요. 이번에도 2019년처럼 넘어가겠구나 생각했죠. 아니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아요.”(김 차장)“10월 회의에서 휴간이 확정되자 가슴이 쿵 내려앉았어요. 샘터가 없어지는 것도, 기자 업무를 더 할 수 없다는 사실도 슬펐어요.”(한 차장)이들은 ‘당연히’ 퇴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뜻밖에 김 대표가 단행본을 만드는 편집자로 일하는 게 어떤지 제안했다. 샘터는 잡지를 만드는 부서와 단행본을 만드는 부서로 구성된다. 기자 3명 중 막내 기자는 기자 업무를 계속 하고 싶어 떠났고 둘은 남았다.이들은 샘터를 통해 사람과 세상을 배웠다고 말한다.“독자들이 ‘삶이 변했다.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았어요. 제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보탬이 된다는 사실이 뿌듯했습니다.”(김 차장)“독자 사연을 보며 다양한 삶을 접했어요. 속사정을 들어보면 이해 못 할 사람은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한 차장)예전에 발간된 샘터를 보기 위해 종종 찾아오는 독자들을 맞는 것도 일상이었다. 독자 서비스를 전담하는 직원이 없기 때문이다. “본인 글이 실린 샘터를 찾아달라는 어르신들이 꾸준히 오세요. 부모님이 쓴 글을 모아 책을 내려는 자녀들도 있고요. 돌아가신 부모님의 흔적을 찾는 분도 있습니다.”(김 차장)샘터는 전체 글이 디지털로 저장돼 있지 않다. 제목, 저자, 페이지, 발간 연도와 월, 주제어 등을 정리한 엑셀 파일로 검색한 뒤 해당 책을 직접 찾아야 한다. “여유 있을 때는 괜찮은데 마감으로 정신없을 때 독자가 오시면 솔직히 난감해요. ‘너무 바쁜데 나중에 연락드리면 안 될까요?’라는 말이 목까지 차오르지만 그래도 찾아드립니다. 샘터 이미지를 지켜야 하니까요.(웃음)”(한 차장)“샘터에서 일하며 인격 수양이 많이 됐어요.(웃음) 심성이 고운 독자들이 많거든요.”(김 차장) 김 대표는 샘터 휴간을 밝히며 “단행본으로 실력을 키우고 에너지를 충전해서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다. 두 사람도 이를 고대했다. “짧은 기간 내에 실현되긴 어렵겠지만 샘터가 복간되면 우리가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단행본을 통해서도 온기를 계속 전하고 싶어요.”(김 차장)“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복간되면 정말 좋겠어요. 독자에게 밝은 기운을 드리는 콘텐츠를 만들겠습니다.”(한 차장)■‘56년 샘터 잊지 못한 명문장’(2026년·샘터)은….1970년 4월 창간호부터 올해 1월호까지, 56년간 발행된 월간 잡지 샘터에서 오늘날에도 울림을 주는 글 100개를 추려 엮은 필사책이다. 100개 글 가운데 20개는 해당 구절이 포함된 전체 글도 실었다. 정채봉 피천득 박완서 이어령 법정 스님 장영희 이해인 나태주 한강 등 명사를 비롯해 주부 학생 식당 사장 등 일반인의 글도 고루 담았다. ‘아이들 학교로 우산을 들고 갈 일이 있을 때엔 하나라도 우산을 더 챙겨서 갑니다. 우산이 없어 비를 맞는 것이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를 하나라도 줄이고 싶어서.’(김미라· ‘우산 세 개’)개그맨 전유성은 ‘지금 당장 튀지 않아도 돼. 난 평생 할거니까’에서 이렇게 말한다. ‘다른 인기 개그맨만큼 내가 대사가 많았던 것도 아닌데 지금까지 버틴 이유가 뭘까. ‘나는 이것밖에 할 것 없다. 나는 평생 할 거니까 지금 당장 튀지 않아도 돼’ 하는 마음이 있었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각 글에는 독자들에게 건네는 질문도 담았다. ‘당장 필요한 것만 가지려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필요하리라 상상되는 것까지 미리 장만하려고 하기 때문에 욕망이 한없이 커지고 그 한없이 커진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한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글(손봉호·‘어려운 길을 택할 때’) 아래에는 이런 질문을 썼다. ‘앞선 욕심으로 인해 현재의 일을 그르친 적은 없나요.’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아침 중의 아침을 위해’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삶은 일직선으로 뻗어가는 운하가 아니라 돌에 부딪치면 돌아가는 여울이 되고, 산을 만나면 잠시 고였다가 흐르는 호수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폭포, 때로는 소용돌이가 되어 흐르는 강과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마음을 다독이고 비우게 하며 지혜를 전하는 글이 여운을 남긴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6-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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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불란서 금고’ 욕망이란 거울에서 만난 나 外

    《포근해지는 나날, 공연 보기 딱 좋다. 유쾌하게 웃고 싶거나 묵직하게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을 때, 잔잔하게 사랑의 감정을 곱씹어보고 싶을 때 보기 좋은 작품들이 공연되고 있다.》>> 연극 ‘불란서 금고’, 욕망이란 거울에서 만난 나 은행 지하의 비밀 금고에 모인 다섯 명. 자정에 모든 전기가 나가면 금고를 열기로 한다. 맹인 교수 밀수꾼 건달 은행원은 서로가 누군지 모른다. 각자 원하는 것도 다르다. 서로를 의심하면서도 공조해야만 하는 상황. 긴장 속에 갈등은 점점 높아지고 상황은 예측할 수 없이 흘러가는데….장진이 10년 만에 새로 선보이는 코미디 연극이다.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장진은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균열이 발생하며 웃음을 자아내는 특유의 장기를 보여준다. 이전 작품들에 비해 절제하며 인간 내면의 욕망을 깊숙이 비춘다. 세상사의 순리를 멀찍이서 조망하듯 그려낸다. 장 연출가는 지난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 출연한 신구 배우를 보고 “자신의 작품에 모시고 싶어” 이 작품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신구가 연기하는 맹인은 놀라운 청력으로 금고를 여는 재주를 지녔다. 청진기로 다이얼의 톱니바퀴 소리를 들으며 금고를 여는 과정을 하나의 예술로 여긴다.맹인이 내내 읊조리는 북벽 우화는 극을 관통하는 메시지에 대한 은유로 다가온다. “깎아내린 듯 가파른 돌 절벽, 가장 높은 봉우리가 북벽이었고 그 위에 오른 자가 상좌를 틀어 모든 걸 가져갔다. 북벽에 오르면 아래 세상이 훤히 보였고, 구름도 발 아래 있으니 두려울 것이 없었지.” 연극 부제가 ‘북벽에 오를 자 누구더냐’다. 90세 신구는 모든 것에 초탈한 듯 하다가도 다른 이들을 능청스레 쥐락펴락하는 맹인 캐릭터 그 자체다. 성지루도 맹인 역에 함께 발탁됐다. 논리를 앞세우지만 뭔가를 숨기는 교수, 물질을 통해 맛보는 쾌감은 시들해져 더 높은 차원의 만족감을 갈망하는 밀수꾼, 소심해 보이지만 반전 면모를 지닌 은행원, 일단 저지르고 보는 건달. 색깔 또렷한 캐릭터를 맛깔나게 소화한 배우들은 극의 밀도를 높인다. 교수는 장현성 김한결, 밀수꾼은 정영주 장영남이 연기한다. 건달 역에는 최영준 주종혁, 은행원 역에는 김슬기 금새록이 발탁됐다. 조달환 안두호가 뜻밖의 인물로 등장해 웃음을 더한다. 5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놀(NOL) 서경스퀘어 스콘1관. 중학생 이상 관람 가능. 5만5000∼7만7000원.>> 뮤지컬 ‘홍련’, 짓밟힌 이들을 위한 진혼제아버지를 죽이고 남동생을 해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홍련. 이를 모두 인정하지만 재판은 쉬이 끝나지 않는다. 천도정의 주인으로 홍련의 재판을 이끄는 바리는 구체적인 사실을 하나하나 집요하게 캐묻는다. 저승차사 강림, 천도정의 호위무사 월직차사와 일직차사도 함께 한다. 한국 전통 설화 ‘장화홍련’과 ‘바리데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아버지와 새어머니, 남동생에게 잔인하게 짓밟히고, 딸이라는 이유로 버림받았지만 병든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저승까지 다녀온 서사를 신선하면서도 아프게 이었다. 2024년 초연된 창작 뮤지컬로 이번이 두 번째 공연이다.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 홍련, 그런 홍련을 다독이고 때로 압박하는 바리 간 신경전이 팽팽하게 이어진다. 열기는 점점 달아오르고 마침내 진실이 드러나며 에너지가 폭발한다. “죽어야만 목소리가 들리는 사회”라는 외침은 오늘날도 다르지 않기에 가슴이 저릿하다.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하다 차츰 무너지고 끝내 절규하는 홍련, 자신의 상처를 직시하게 한 홍련을 품어주는 바리는 무대에 빠져들게 한다. 한을 씻어내는 의례는 보는 이의 마음도 달래준다. 록 음악과 씻김굿 선율이 강렬함을 더한다.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남김없이 토해내는 배우들의 연기가 깊은 여진을 던지는 수작이다. 홍련 역은 이지혜 강혜인 김이후 홍나현이 맡았다. 바리는 이아름솔 김경민 이지연이 연기한다. 강림 역은 이정수 신창주 이종영이 맡았다. 월직차사 역에는 김대현 백종민, 일직차사 역에는 신윤철 정백선이 발탁됐다. 5월 17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14세 이상 관람 가능. 6만5000∼7만5000원. >> 연극 ‘슈만’, 사랑의 빛깔들 우아한 선율로 자아내다 스승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사랑한 브람스. 잘 알려진 이야기를 각기 다른 빛깔의 사랑으로 섬세하게 그렸다. 1853년 독일 뒤셀도르프. 거장 음악가 부부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이 사는 집에 젊은 음악가 요하네스 브람스가 방문한다. 브람스의 재능을 단번에 알아본 로베르트는 그를 제자로 받아들이고 모든 걸 쏟아 붓는다. 브람스는 천재 피아니스트인 클라라에게 빠져든다. 스승의 아내로 열네 살 많지만 터져 나오는 감정을 막을 순 없다. 음악을 통해 교감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세 사람을 입체적으로 비춘다. 창작극으로 2023년 초연됐다. 박상민은 클라라의 천재성을 질투해 더 높이 날아오르지 못하길 바라면서도 죄스러워하는 로베르트를 흡입력 있게 표현한다. 아내에 대한 브람스의 감정을 외면하며 애쓴다. 마비되는 육체, 흐려지는 정신에도 음악을 놓지 않는 모습을 실감하게 연기해 음악은 그의 전부임을 온 몸으로 호소한다. 브람스에게 흔들리지만 남편에게 마지막까지 헌신하는 클라라. 그에게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은 책임이었다. 남편의 음악 세계는 물론 일상을 지탱하게 해주는 게 그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브람스는 동경하던 감정이 사랑으로 바뀌지만 결국 클라라의 뜻을 존중한다. 로베트르가 세상을 떠난 후 클라라와 그 자녀들을 위해 생활비를 지원하고, 평생 결혼하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이 순간의 흔들림이 아니었음을 증명한 것.클라라 역은 김정화 정애연이 맡았다. 브람스는 김이담과 오승윤이 연기한다.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로 감정이 잔잔하게 쌓아올려지며 아련한 여운을 남긴다. 슈만과 브람스의 익숙한 음악은 우아함을 더한다. 브람스가 홀로 피아노로 치다 클라라와 함께 연주하는 ‘헝가리 무곡’. 이 곡이 이토록 설레고 낭만적이었던가.4월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더굿씨어터. 12세 이상 관람 가능. 5만5000∼7만7000원.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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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이 들면 깜빡, 당연한 것 아냐… 평생 또렷한 정신으로 살 수 있어”

    동료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휴대전화, 자동차 열쇠를 챙기는 걸 깜빡한다. 집을 나섰는데 어디에 가려고 했는지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다.나이가 들면 이런 현상을 겪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정면으로 반박하는 이가 있다. 퇴행성 신경질환 전문가 데일 브레드슨(74)이다. 그는 지난해 국내 출간된 ‘늙지 않는 뇌’(원제 ‘The Ageless Brain’·심심)에서 “치매는 예방이 가능하고 발병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듀크대 의대 의학박사인 브레드슨은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학(UCSF) 신경학과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다. UCSF,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학에서 교수를 지냈다. 스탠퍼드 번햄연구소에서 발달·노화·재생 연구 사업을 총괄했고, 현재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인지 연구분과의 의료 부문 총책임자다. >>“뇌 검사 35세부터 정기적으로 해야” 브레드슨은 치매는 치료할 수 없으며 약물로 진행 속도를 늦추는 정도만 가능하다는 주장에 반대한다.“뇌를 건강하게 관리하면 나이가 들어도 또렷한 인지 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증상을 빨리 발견해 치료하면 발병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것도 가능합니다. 제가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한 결과 이를 확인했습니다. 말기 치매 환자를 온전하게 되돌리는 건 어렵지만 초기 치매나 경도 인지 장애 환자의 경우 치료가 가능했습니다.” 치매는 갑자기 발생하는 게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된다. 초기 신호를 인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억력이 떨어지면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고 읽는데 어려움을 겪거나 집중력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뭔가를 해 내는 집행 능력이 떨어지고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도 하죠. 머리가 안개 낀 것처럼 멍한 ‘브레인 포그’를 겪기도 합니다.”그는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나이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했다. “알츠하이머 환자 가운데 35∼50세가 늘고 있습니다. 20대에 인지 기능 저하가 나타나는 이들도 있고요. 의료 기술이 발달해 증상을 빨리 포착하게 된 것도 있지만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른 영향이 큽니다. 뇌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오염된 공기, 미세 플라스틱 등 독소가 늘어나고 비만 고혈압 고혈당 고지혈증 등 대사 기능 이상이 증가하고 있어요. 스마트폰 사용으로 인한 전자기장 노출도 영향이 있다고 보지만 이에 대해선 추가 연구가 필요합니다.”그는 뇌 건강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혈액 검사, 호르몬 검사 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뇌 건강 검진은 35세부터 시작해 5년마다 하고, 60세 이후에는 2년마다 하라고 권했다. “혈액 검사를 하면 뇌 상태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타우 단백질의 217번째 아미노산에 인산화가 일어났는지 확인하는 방법(p-tau217)이 있습니다. 인산화된 타우 단백질 농도가 높으면 알츠하이머병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도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또 알츠하이머병의 증상이 나타나기 앞서 혈중 신경아교원섬유 산성 단백질(GFAP) 농도가 치솟기 시작한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두 검사는 상호보완적이어서 둘을 주기적으로 받아보면 됩니다.”인지 저하를 일으키는 원인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한다.“대사 이상이나 독소로 인한 경우도 있고 염증이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보다 포괄적으로 검사해야 합니다. 위, 대장 내시경 검사를 정기적으로 하듯이 뇌 역시 주기적으로 검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라” 뇌 건강을 위해선 낯선 자극이 필요하다. 가 본 적 없는 카페에 가서 한 번도 마셔보지 않은 음료를 주문하는 방법이 있다. 평소와 다른 시각에 일을 시작하고 끝낸다. 잘 읽지 않던 장르의 책을 읽거나 새로운 게임이나 운동을 해 볼 수 있다. 생소한 문화권의 음식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다. “이탈리아어 배우기처럼 훨씬 더 큰 노력이 드는 일을 일 년에 한 번쯤 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매일, 매달, 매년 단위로 낯선 걸 하면 뇌의 영역별 기능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능력이 커집니다. 핵심은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뇌가 새로운 연결을 만들 기회를 주는 겁니다.” 그는 약물 치료와 함께 생활 방식 전반을 개선해야 치매를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식단, 수면, 운동, 스트레스 등이 모두 뇌 건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중금속에 오염되지 않고 가공되지 않은 신선한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섭취하라고 강조했다. 운동은 필수다. “유산소 운동을 하면 뇌로 가는 혈류가 증가해 산소 공급이 늘어납니다. 뇌 수명을 보존하고 새로운 신경 세포가 생기려면 산소가 꼭 필요하죠. 일주일에 최소 세 시간은 유산소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근력 운동과 함께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을 하면 더 좋아요. 달리기, 자전거 타기, 축구 등 어떤 운동이든 좋습니다. 자신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운동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꾸준히 할 수 있으니까요.” 잠은 뇌에 쌓인 노폐물을 처리하는 기능을 활성화시킨다. “매일 최소 7시간은 자야 합니다. 다만 8시간 반은 넘기지 않는 게 좋아요. 9시간 이상 자면 치매 위험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렘 수면 시간은 1.5시간 이상이어야 하고요. 기기를 이용해 총 수면 시간, 렘 수면 시간, 심박변이도, 혈중 산소포화도 등을 측정해 관리하면 효과적입니다.”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까지 모두 장수하고 인지 기능이 또렷했다면 후손은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될까.“아닙니다.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독소에 노출되고 더 많은 가공 식품을 섭취하는 등 환경이 크게 변했습니다. 유전자만 믿고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그는 자신이 제안한 방법을 통해 74세인 지금도 또렷한 정신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치매는 지금처럼 흔한 질환이 아니라 드문 질환이 돼야 합니다. 소아마비처럼 치매도 ‘과거의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치매 예방과 치료법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실천한다면 개인과 그 가족의 고통을 줄일 수 있습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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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스트라 유럽 17개국 진출, 세포라 680개 매장 입점

    아모레퍼시픽의 에스트라가 화장품 편집숍 세포라를 통해 유럽 시장에 진출한다. 올해 2월 세포라 유럽 온라인몰에 제품을 선보인데 이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17개국 내 약 680개 세포라 오프라인 매장에 차례로 입점한다. 에스트라는 대표 라인인 아토베리어365 라인을 중심으로 아토베리어365 크림을 비롯해 세럼과 하이드로 수딩 크림 등 민감 피부를 위한 주요 제품을 소개한다. 아토베리어365 크림은 지난해 2월 에스트라가 미국에 진출한 후 미국 세포라에서 톱5 모이스처라이저에 포함됐다. 에스트라는 “유럽 17개국 세포라 진출은 세포라의 대규모 캠페인 ‘스킨케어 트렌드 스토리’와 함께 진행된다”며 “40여 년의 피부 연구를 통해 만든 제품의 뛰어난 품질을 유럽에 알리겠다”고 밝혔다.에스트라는 일본 동남아 북미 오세아니아에 이어 유럽까지, 세계 시장에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품질로 승부에스트라는 2018년 대표 제품인 아토베리어를 ‘아토베리어365’라는 이름으로 올리브영에 출시했다. 에스트라 제품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에스트라는 2023년 일본 멀티 브랜드 숍인 앳코스메 12개 매장에 에이시카365라인 4종을 입점하며 일본 시장에 진출했다. 현재는 앳코스메를 비롯해 로프트, 약국 브랜드인 마츠모토키요시 등 약 800개 오프라인 매장과 큐텐 라쿠텐 아마존 등 온라인몰에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2024년에는 베트남 온라인 쇼핑 플랫폼 쇼피와 베트남 현지 오프라인 멀티 브랜드숍 뷰티박스의 모든 매장에 입점했다. 아토베리어365를 중심으로 에이시카365, 테라크네365, 더마UV365 라인을 출시했다. 같은 해 태국 온라인 쇼핑 플랫폼 라자다 브랜드관 입점한데 이어 오프라인 멀티 브랜드숍 뷰트리움과 왓슨에 입점했다. 에이시카365 라인을 중심으로 아토베리어365, 리제덤365, 더마UV365라인 등 14개 제품을 선보인다. 미국에서는 지난해부터 400여 개 이상 세포라 매장과 온라인몰 세포라닷컴에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아토베리어365 라인을 먼저 선보였다. 크림을 비롯해 버블 클렌저, 하이드로 에센스, 로션, 수딩크림, 미스트 등 56개 제품을 출시했다. 캐나다와 호주에도 지난해 진출해 아토베리어365 라인을 중심으로 선보였다. 중국에도 주요 이커머스 플랫폼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민감 피부도 사계절 사용”아토베리어365 크림은 올해 1월 누적 판매량 1000만 개를 돌파했다. 아토베리어365 크림은 2018년 올리브영에서 선보인 후 빠른 속도로 매출이 늘었다. 에스트라는 “아토베리어365 크림은 보습력이 오래 지속되고 피부 장벽 개선 능력이 뛰어나 소비자들 사이에서 빠르게 입소문이 났다. 자극이 적어 민감한 피부를 가진 사람을 포함해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사계절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에스트라는 아토베리어365 크림 판매 1000만 개 돌파를 기념해 ‘진심은 피부로 느낀다’는 주제로 새 캠페인을 전개한다. 에스트라는 “고객의 피부 고민에 귀 기울여온 브랜드 철학을 두 편의 영상에 담아 선보인다. 영상은 1994년 아모레퍼시픽 의약연구소 설립 시기를 배경으로, 병원 전용 화장품에서 출발한 에스트라의 성장 서사를 조명한다”고 했다.병원 전용 화장품에서 시작에스트라 브랜드 이름은 삼각주의 어원 에스트어리(ESTUARY)에서 유래했다. 에스트라는 “서로 다른 물이 만나 탄생하는 삼각주의 비옥함처럼 태평양제약으로부터 시작된 피부 연구 역사와 아모레퍼시픽의 연구 전문성을 기반으로 피부 고민을 개선하고 건강한 아름다움을 구현한다는 소명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1982년 태평양제약으로 시작한 에스트라는 병·의원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피부과학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 결과 2008년 병원 전용 화장품인 아토베리어 크림을 만들었다.에스트라는 “국내 47개 상급종합병원 중 44개 병원의 피부과 주임급 전문의 및 개인 피부과 병원 전문의 61명으로 구성된 총 8개의 자문연구회를 구성하고 있다”며 “여러 피부 질환을 주제로 최근 연구 동향을 파악하고 토의하는 자리를 마련해 소비자들의 피부 고민을 해결하는 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아모레퍼시픽의 민감성 피부 연구센터 ‘아모레퍼시픽 더마랩’의 논문 470여 건과 특허 240여 건을 바탕으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에스트라는 2017년 피부 장벽이 손상된 부위의 피부 보호를 위한 창상 피복재로 의료기기(MD) 승인을 받은 아토베리어 크림 MD를 출시했다. 에스트라는 “현재 상급종합병원들이 에스트라의 더마 솔루션을 채택하고 있으며 4500여 개 병·의원에 입점해 있다”고 밝혔다. 협력 병원 실무자에게 화장품과 피부 임상, 환자와의 소통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메디컬 카운셀링’, 전문의와 협업해 고객에게 피부 관리 정보를 전달하는 ‘더마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 에스트라는 “제품 제조 환경과 설비, 관리 인력을 의약품 관리 수준의 환경으로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6-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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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증권 ‘운용사 ETF 순매수 이벤트’ 진행

    삼성증권은 중개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및 연금저축계좌 고객을 대상으로 국내 주요 자산운용사와 협업하여 상장지수펀드(ETF) 순매수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오는 5월 29일까지 열리는 이번 행사는 절세 계좌를 활용한 ETF 투자를 통해 고객의 안정적인 장기 자산 형성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되었다.우선 중개형 ISA 계좌 보유 고객을 대상으로 ‘중개형 ISA 운용사 ETF 순매수 이벤트’를 개최한다. 이번 행사에는 삼성자산운용, 한화자산운용, 키움투자자산운용, 삼성액티브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 등 총 5개 운용사가 참여한다. 참여를 원하는 고객은 중개형 ISA 계좌 내에서 각 운용사별로 선정된 5개의 ETF 종목을 순매수하면 된다.혜택은 순매수 금액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 운용사별 순매수 금액이 100만 원 이상 300만 원 미만이면 아메리카노 쿠폰(선착순 500명)을, 300만 원 이상 500만 원 미만은 커피 상품권 1만 원권(선착순 400명)을 제공한다. 500만 원 이상일 경우 커피 상품권 3만 원권(선착순 400명)을 지급한다. 특히 운용사별 중복 참여가 가능해 5개 운용사 조건을 모두 충족하면 최대 15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받을 수 있다.연금저축계좌 고객을 위한 이벤트도 함께 진행된다. 여기에는 삼성, KB, 한화, 삼성액티브, 한국투자신탁운용 등 5개사가 참여하며, 순매수 금액이 300만 원 이상 500만 원 미만이면 상품권 1만 원권을, 500만 원 이상이면 2만 원권을 운용사별 선착순 500명에게 지급한다. 또한 ISA 만기 자금을 연금저축계좌로 이전한 고객이 대상 ETF를 500만 원 이상 순매수할 경우 추가로 모바일 커피 쿠폰 1장을 받을 수 있다.삼성증권 관계자는 “중개형 ISA와 연금저축계좌는 절세 혜택과 장기 자산 관리를 동시에 누릴 수 있는 대표적인 계좌”라며, “이번 행사를 통해 고객들이 효율적으로 자산을 관리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상세 내용은 삼성증권 홈페이지나 모바일 앱 엠팝(mPOP)에서 확인 가능하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6-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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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근해지는 나날, 욕망·진혼제·사랑 담은 공연 3선

    포근해지는 나날, 공연 보기 딱 좋다. 유쾌하게 웃고 싶거나 묵직하게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을 때, 잔잔하게 사랑의 감정을 곱씹어보고 싶을 때 보기 좋은 작품들이 공연되고 있다.  ●연극 ‘불란서 금고’욕망이란 거울에서 만난 나 은행 지하의 비밀 금고에 모인 다섯 명. 자정에 모든 전기가 나가면 금고를 열기로 한다. 맹인 교수 밀수꾼 건달 은행원은 서로가 누군지 모른다. 각자 원하는 것도 다르다. 서로를 의심하면서도 공조해야만 하는 상황. 긴장 속에 갈등은 점점 높아지고 상황은 예측할 수 없이 흘러가는데….장진이 10년 만에 새로 선보이는 코미디 연극이다.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장진은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균열이 발생하며 웃음을 자아내는 특유의 장기를 보여준다. 이전 작품들에 비해 절제하며 인간 내면의 욕망을 깊숙이 비춘다. 세상사의 순리를 멀찍이서 조망하듯 그려낸다.  장 연출가는 지난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 출연한 신구 배우를 보고 “자신의 작품에 모시고 싶어” 이 작품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신구가 연기하는 맹인은 놀라운 청력으로 금고를 여는 재주를 지녔다. 청진기로 다이얼의 톱니바퀴 소리를 들으며 금고를 여는 과정을 하나의 예술로 여긴다.맹인이 내내 읊조리는 북벽 우화는 극을 관통하는 메시지에 대한 은유로 다가온다. “깎아내린 듯 가파른 돌 절벽, 가장 높은 봉우리가 북벽이었고 그 위에 오른 자가 상좌를 틀어 모든 걸 가져갔다. 북벽에 오르면 아래 세상이 훤히 보였고, 구름도 발 아래 있으니 두려울 것이 없었지.” 연극 부제가 ‘북벽에 오를 자 누구더냐’다. 90세 신구는 모든 것에 초탈한 듯 하다가도 다른 이들을 능청스레 쥐락펴락하는 맹인 캐릭터 그 자체다. 성지루도 맹인 역에 함께 발탁됐다. 논리를 앞세우지만 뭔가를 숨기는 교수, 물질을 통해 맛보는 쾌감은 시들해져 더 높은 차원의 만족감을 갈망하는 밀수꾼, 소심해 보이지만 반전 면모를 지닌 은행원, 일단 저지르고 보는 건달. 색깔 또렷한 캐릭터를 맛깔나게 소화한 배우들은 극의 밀도를 높인다.       교수는 장현성 김한결, 밀수꾼은 정영주 장영남이 연기한다. 건달 역에는 최영준 주종혁, 은행원 역에는 김슬기 금새록이 발탁됐다. 조달환 안두호가 뜻밖의 인물로 등장해 웃음을 더한다.  5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놀(NOL) 서경스퀘어 스콘1관. 중학생 이상 관람 가능. ●뮤지컬 ‘홍련’짓밟힌 이들을 위한 진혼제아버지를 죽이고 남동생을 해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홍련. 이를 모두 인정하지만 재판은 쉬이 끝나지 않는다. 천도정의 주인으로 홍련의 재판을 이끄는 바리는 구체적인 사실을 하나하나 집요하게 캐묻는다. 저승차사 강림, 천도정의 호위무사 월직차사와 일직차사도 함께 한다.   한국 전통 설화 ‘장화홍련’과 ‘바리데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아버지와 새어머니, 남동생에게 잔인하게 짓밟히고, 딸이라는 이유로 버림받았지만 병든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저승까지 다녀온 서사를 신선하면서도 아프게 이었다. 2024년 초연된 창작 뮤지컬로 이번이 두 번째 공연이다.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 홍련, 그런 홍련을 다독이고 때로 압박하는 바리 간 신경전이 팽팽하게 이어진다. 열기는 점점 달아오르고 마침내 진실이 드러나며 에너지가 폭발한다. “죽어야만 목소리가 들리는 사회”라는 외침은 오늘날도 다르지 않기에 가슴이 저릿하다.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하다 차츰 무너지고 끝내 절규하는 홍련, 기어이 자신의 상처를 끄집어내게 만든 홍련을 품어주는 바리는 무대에 빠져들게 한다. 한을 씻어내는 의례는 보는 이의 마음도 달래준다. 록 음악과 씻김굿 선율이 강렬함을 더한다.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남김없이 토해내는 배우들의 연기가 깊은 여진을 던지는 수작이다. 홍련 역은 이지혜 강혜인 김이후 홍나현이 맡았다. 바리는 이아름솔 김경민 이지연이 연기한다. 강림 역은 이정수 신창주 이종영이 맡았다. 월직차사 역에는 김대현 백종민, 일직차사 역에는 신윤철 정백선이 발탁됐다. 5월 17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14세 이상 관람 가능. ●연극 ‘슈만’사랑의 빛깔들 우아한 선율로 자아내다 스승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사랑한 브람스. 잘 알려진 이야기를 각기 다른 빛깔의 사랑으로 섬세하게 그렸다.   1853년 독일 뒤셀도르프. 거장 음악가 부부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이 사는 집에 젊은 음악가 요하네스 브람스가 방문한다. 브람스의 재능을 단번에 알아본 로베르트는 그를 제자로 받아들이고 모든 걸 쏟아 붓는다. 브람스는 천재 피아니스트인 클라라에게 빠져든다. 스승의 아내로 열네 살 많지만 터져 나오는 감정을 막을 순 없다.   음악을 통해 교감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세 사람을 입체적으로 비춘다. 창작극으로 2023년 초연됐다.  박상민은 클라라의 천재성을 질투해 더 높이 날아오르지 못하길 바라면서도 죄스러워하는 로베르트를 흡입력 있게 표현한다. 아내에 대한 브람스의 감정을 외면하며 애쓴다. 마비되는 육체, 흐려지는 정신에도 음악을 놓지 않는 모습을 실감하게 연기해 음악은 그의 전부임을 온 몸으로 호소한다.   브람스에게 흔들리지만 남편에게 마지막까지 헌신하는 클라라. 그에게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은 책임이었다. 남편의 음악 세계는 물론 일상을 지탱하게 해주는 게 그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브람스는 동경하던 감정이 사랑으로 바뀌지만 결국 클라라의 뜻을 존중한다. 로베트르가 세상을 떠난 후 클라라와 그 자녀들을 위해 생활비를 지원하고, 평생 결혼하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이 순간의 흔들림이 아니었음을 증명한 것.클라라 역은 김정화 정애연이 맡았다. 브람스는 김이담과 오승윤이 연기한다.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로 감정이 잔잔하게 쌓아올려지며 아련한 여운을 남긴다.  슈만과 브람스의 익숙한 음악은 우아함을 더한다. 브람스가 홀로 피아노로 치다 클라라와 함께 연주하는 ‘헝가리 무곡’. 이 곡이 이토록 설레고 낭만적이었던가.4월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더굿씨어터. 12세 이상 관람 가능.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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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이 들면 깜빡, 당연한 것 아냐”…평생 또렷한 인지능력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은?

    동료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휴대전화, 자동차 열쇠를 챙기는 걸 깜빡한다. 집을 나섰는데 어디에 가려고 했는지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다.나이가 들면 이런 현상을 겪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정면으로 반박하는 이가 있다. 퇴행성 신경질환 전문가 데일 브레드슨(74)이다. 그는 지난해 국내 출간된 ‘늙지 않는 뇌’(원제 ‘The Ageless Brain‘·심심)에서 “치매는 예방이 가능하고 발병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듀크대 의대 의학박사인 브레드슨은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학(UCSF) 신경학과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다. UCSF,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학에서 교수를 지냈다. 스탠퍼드 번햄연구소에서 발달·노화·재생 연구 사업을 총괄했고, 현재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인지 연구분과의 의료 부문 총책임자다. ●“뇌 검사 35세부터 정기적으로 해야” 브레드슨은 치매는 치료할 수 없으며 약물로 진행 속도를 늦추는 정도만 가능하다는 주장에 반대한다.“뇌를 건강하게 관리하면 나이가 들어도 또렷한 인지 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증상을 빨리 발견해 치료하면 발병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것도 가능합니다. 제가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한 결과 이를 확인했습니다. 말기 치매 환자를 온전하게 되돌리는 건 어렵지만 초기 치매나 경도 인지 장애 환자의 경우 치료가 가능했습니다.”치매는 갑자기 발생하는 게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된다. 초기 신호를 인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억력이 떨어지면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고 읽는데 어려움을 겪거나 집중력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뭔가를 해 내는 집행 능력이 떨어지고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도 하죠. 머리가 안개 낀 것처럼 멍한 ‘브레인 포그’를 겪기도 합니다.”그는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나이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했다. “알츠하이머 환자 가운데 35~50세가 늘고 있습니다. 20대에 인지 기능 저하가 나타나는 이들도 있고요. 의료 기술이 발달해 증상을 빨리 포착하게 된 것도 있지만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른 영향이 큽니다. 뇌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오염된 공기, 미세 플라스틱 등 독소가 늘어나고 비만 고혈압 고혈당 고지혈증 등 대사 기능 이상이 증가하고 있어요. 스마트폰 사용으로 인한 전자기장 노출도 영향이 있다고 보지만 이에 대해선 추가 연구가 필요합니다.”그는 뇌 건강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혈액 검사, 호르몬 검사 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뇌 건강 검진은 35세부터 시작해 5년마다 하고, 60세 이후에는 2년마다 하라고 권했다.  “혈액 검사를 하면 뇌 상태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타우 단백질의 217번째 아미노산에 인산화가 일어났는지 확인하는 방법(p-tau217)이 있습니다. 인산화된 타우 단백질 농도가 높으면 알츠하이머병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도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또 알츠하이머병의 증상이 나타나기 앞서 혈중 신경아교원섬유 산성 단백질(GFAP) 농도가 치솟기 시작한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두 검사는 상호보완적이어서 둘을 주기적으로 받아보면 됩니다.”인지 저하를 일으키는 원인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한다.“대사 이상이나 독소로 인한 경우도 있고 염증이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보다 포괄적으로 검사해야 합니다. 위, 대장 내시경 검사를 정기적으로 하듯이 뇌 역시 주기적으로 검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라” 뇌 건강을 위해선 낯선 자극이 필요하다. 가 본 적 없는 카페에 가서 한 번도 마셔보지 않은 음료를 주문하는 방법이 있다. 평소와 다른 시각에 일을 시작하고 끝낸다. 잘 읽지 않던 장르의 책을 읽거나 새로운 게임이나 운동을 해 볼 수 있다. 생소한 문화권의 음식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다. “이탈리아어 배우기처럼 훨씬 더 큰 노력이 드는 일을 일 년에 한 번쯤 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매일, 매달, 매년 단위로 낯선 걸 하면 뇌의 영역별 기능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능력이 커집니다. 핵심은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뇌가 새로운 연결을 만들 기회를 주는 겁니다.”그는 약물 치료와 함께 생활 방식 전반을 개선해야 치매를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식단, 수면, 운동, 스트레스 등이 모두 뇌 건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중금속에 오염되지 않고 가공되지 않은 신선한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섭취하라고 강조했다. 운동은 필수다. “유산소 운동을 하면 뇌로 가는 혈류가 증가해 산소 공급이 늘어납니다. 뇌 수명을 보존하고 새로운 신경 세포가 생기려면 산소가 꼭 필요하죠. 일주일에 최소 세 시간은 유산소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근력 운동과 함께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을 하면 더 좋아요. 달리기, 자전거 타기, 축구 등 어떤 운동이든 좋습니다. 자신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운동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꾸준히 할 수 있으니까요.” 잠은 뇌에 쌓인 노폐물을 처리하는 기능을 활성화시킨다. “매일 최소 7시간은 자야 합니다. 다만 8시간 반은 넘기지 않는 게 좋아요. 9시간 이상 자면 치매 위험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렘 수면 시간은 1.5시간 이상이어야 하고요. 기기를 이용해 총 수면 시간, 렘 수면 시간, 심박변이도, 혈중 산소포화도 등을 측정해 관리하면 효과적입니다.”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까지 모두 장수하고 인지 기능이 또렷했다면 후손은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될까.“아닙니다.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독소에 노출되고 더 많은 가공 식품을 섭취하는 등 환경이 크게 변했습니다. 유전자만 믿고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그는 자신이 제안한 방법을 통해 74세인 지금도 또렷한 정신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치매는 지금처럼 흔한 질환이 아니라 드문 질환이 돼야 합니다. 소아마비처럼 치매도 ‘과거의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치매 예방과 치료법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실천한다면 개인과 그 가족의 고통을 줄일 수 있습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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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훈 대전대 교수 ‘우리는 어떤 경찰을 가질 것인가’ 출간

    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가 민주주의를 위한 경찰의 역할에 대해 쓴 ‘우리는 어떤 경찰을 가질 것인가’(진영사)를 9일 출간했다. 저자가 17년 간 기고한 신문 칼럼 중 68편을 추렸다.저자는 “사회가 흔들릴 때마다, 민주주의가 시험대에 오를 때마다 경찰은 언제나 그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래서 경찰을 말한다는 것은 곧 국가와 공권력을 말하는 일이고 민주주의를 말하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검거율이나 단속 건수 등 치안 성과 지표로만 경찰을 평가하는 관행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숫자는 쉽게 보이지만 시민의 자유를 지키고 권력의 폭주를 제어하는 기능은 지표로 환산하기 어렵다는 것. 이 간극이 커질수록 경찰은 권력의 도구로 변질되고 민주주의의 토대가 잠식된다고 경고한다.경찰과 관련된 문제의 본질은 ‘얼마나 강한 경찰인가’가 아니라 ‘누구에게 충성하는 경찰인가’이다. 저자는 경찰 서비스 생산 과정에 시민이 실질적으로 참여해야 시민의 주권이 확보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경찰을 ‘관리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시민과의 ‘공동 설계자’로 전환하는 제도적 장치를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저자는 “우리가 어떤 경찰을 선택하느냐는 결국 우리가 어떤 사회를 살아가고 싶은지를 묻는 일과 다르지 않다. 헌법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국민의 선택에 책임지는 경찰만이 자유와 안전을 함께 지켜낼 수 있다”고 말한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6-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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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업 300곳 떨어진 후 글 썼다”…하루키도 매료된 세계적 거장으로 우뚝[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

    [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많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 창작자들은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베스트셀러가 되길 꿈꾸지만,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 희귀한 확률을 뚫고 베스트셀러가 된 콘텐츠가 탄생한 과정을 들여다본다. 창작자의 노하우를 비롯해 이 시대 사람들의 욕망, 사회 트렌드 등을 확인할 수 있다.대학에서 영문학과 정치학을 공부한 후 일자리를 구하려 300곳에 지원했다. 헤어드라이기 조립 업체, 소시지 제조사, 호텔, 꽃집, 청소업체…. 모조리 떨어졌다. 고민하다 문예창작 석사 학위를 받고 글쓰기를 가르치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20여 년 전 그의 글에 매료됐다. 번역가로도 활동하는 하루키는 자신이 엮은 영미문학선집에 그의 단편 ‘물가 가까이’를 실었다. 하루키는 “꾸밈없는 단어와 문장들의 조합으로 만들어내는 단순한, 그러나 따뜻하고 심오한 장면들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쓴 중편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맡겨진 소녀’는 영화로 제작됐다. 아일랜드 소설가 클레어 키건(58)이다. 키건의 데뷔작인 단편 소설집 ‘남극’(허진 옮김·다산북스)이 지난해 12월 국내 출간됐다. 이로써 소설집 ‘푸른 들판을 걷다’, ‘너무 늦은 시간’까지, 1999년 데뷔해 27년간 단 5권을 낸 키건의 작품이 국내에 모두 소개됐다. 다섯 책의 누적 판매량은 30만 권 가까이 된다. ‘남극’도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국내에 키건 열풍을 불러일으킨 이승환 다산북스 콘텐츠사업3팀장(41)을 지난달 26일 경기 파주시 다산북스에서 만났다. 인문·에세이를 담당하는 콘텐츠사업3팀을 맡은 그는 2021년 현지 출간돼 영미권에서 큰 호평을 받은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 마음을 뺏겼다. “작품성은 있지만 대중성이 없다”는 주위 평가에도 이상하게 포기가 안 돼 혼자 끙끙 앓다 출간을 시도했다. 결과는 대성공. 키건 작품을 모두 내는 여정이 4년 만에 마무리됐다. “일단락이 돼 뿌듯해요. 하지만 마침표는 아니길 바랍니다. 키건이 농장을 배경으로 한 여성이 나오는 장편 소설을 쓰고 있거든요. 키건은 1년에 평균 10페이지를 쓰는 작가(최종 원고 기준으로, 불필요한 내용을 덜어내고 글을 정교하게 배치하는데 오랜 시간 공을 들인다)라서 언제 완성될진 모르겠지만 그 책도 꼭 내고 싶어요.”이 팀장이 편집자로 일하며 만든 책 중 키건의 작품들은 예스24, 알라딘을 비롯해 각 서점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는 등 사회적 반향은 물론 매출에서도 단연 최고의 성과를 냈다. 이 팀장은 “문학 전문 출판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어서 문학책을 내고 싶은 욕구가 있었는데 이를 다 채웠다”며 웃었다. ‘남극’에는 남편 몰래 낯선 남자와 육체적 관계를 맺는 여성(‘남극’), 평범한 이웃이 연쇄살인범이었음을 알게 된 자매(‘노래하는 계산원’), 동생에게 늘 희생해 온 언니(‘자매’), 엿새 간의 유희로 인해 임신한 여성과 이를 외면하는 남성(‘남자애한테는 이상한 이름’), 딸을 잃어버린 부부(‘여권 수프’) 등 15개 단편이 실렸다. 예리한 시선, 정교한 묘사, 군더더기 없는 문장, 뜻밖의 반전 등 날 것 그대로 서늘한 키건 특유의 색채가 담겼다. 다섯 딸을 둔 펄롱이 막강한 권력을 가진 수녀원에서 학대당하는 소녀로부터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고뇌하는 내용을 담은 ‘이처럼 사소한 것들’, 형제가 많아 방치된 소녀 코오트가 엄마의 출산으로 여름 동안 먼 친척 부부의 집에서 지내며 처음으로 따뜻한 보살핌을 받는 ‘맡겨진 소녀’가 피어난 씨앗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데뷔작을 맨 마지막에 낸 이유가 있을까. “우연입니다.(웃음) ‘이처럼 사소한 것들’, ‘맡겨진 소녀’가 히트를 친 후 여러 출판사들이 ‘푸른 들판을 걷다’를 구매하기 위해 나섰다고 해요. 에이전시에서 저희 출판사에 ‘키건의 책을 먼저 냈으므로 판권 매입 우선권이 있다’고 해서 바로 계약했습니다. 그 뒤에도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져 남은 두 책의 판권을 샀죠. 다행히 그리 비싸진 않았습니다.” 몇 년 전만에도 “문학은 끝난다”는 이른바 ‘문학 패배주의’가 강했다. 하지만 최근 2, 3년 들어 문학은 출판사의 매출을 올려주는 효자 장르로 탈바꿈했다. 문학의 부상에는 키건의 작품들도 큰 역할을 했다. “허진 번역가님이 ‘키건은 세상에 존재하는 불협화음을 잘 포착하는 작가다. 하지만 그 시선이 나약하지 않다. 강하다’고 했어요. 키건이 이미 20대에 그런 면모를 갖고 있었다는 걸 ‘남극’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남극’에서 드러난, 잘 벼린 차가운 칼날 같은 키건의 시선은 시간이 지나며 예리함은 유지하되 점점 온기가 더해지는 걸 ‘이처럼 사소한 것들’, ‘맡겨진 소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키건은 보살핌을 중요한 가치라고 말한다. 그는 호주 공영방송 ABC와의 인터뷰에서 “누군가의 보살핌과 관심을 받는 건 어린 시절 뿐만 아니라 아내 혹은 남편이 되어서도,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노인이 되어서도 늘 필요하다. 가족처럼 가까이에서 지내는 사이가 아니어도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키건의 작품 세계는 삶의 궤적과도 맞물린다. 키건은 가난한 집의 6남매 중 막내였다. 집에는 수도 시설도, 책도 없었다. 키건은 조랑말을 타고 들판에서 뛰어놀며 자신을 인디언이라고 상상했다. 키건은 고등학생 때 아일랜드에 여행 온 부부의 아이를 돌봤는데, 그를 눈여겨 본 부부가 미국으로 가 아이를 봐주고 집안일을 해주면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키건은 미국 로욜라대학에서 영문학과 정치학을 공부할 수 있었고 도서관에서 책에 빠져 지냈다. 키건 자신이 ‘맡겨진 소녀’였던 셈이다. 대학을 마친 후 아일랜드로 돌아왔지만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지원한 300곳에서 모두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웨일스대학에서 문예창작 석사 학위를 받고 글쓰기를 가르쳤다. 그는 “무언가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르치는 것”이라며 수업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 글에 대해 키건은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데 관심 없다. 문단을 수정하고 배치하는데 집중한다. 핵심은 글의 구조다.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말한다. ‘남극’은 하얀 털에 파란 눈을 가진 고양이 사진을 표지로 썼다. 강렬하다. 키건이 직접 고른 사진이다. 이 팀장은 “키건은 이미지에 강한 작가”라고 말한다. “작품을 읽다보면 머릿속에 선명한 그림이 그려지죠. 키건은 책 표지에 대해서도 기준이 분명하다고 해요. ‘이처럼 사소한 것들’과 ‘너무 늦은 시간’ 표지도 키건이 직접 고른 회화 작품을 썼고요.” 그는 ‘푸른 들판을 걷다’가 단편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어서 영화가 개봉하면 키건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길 기대했다. 또 다른 아일랜드 작가의 작품도 소개할 예정이다.“아일랜드는 문학적 토양이 풍부하고 그 뿌리도 깊은 나라입니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위대한 작가가 많아요. 떠오르는 신인 작가의 작품도 발굴하고 싶어요. ‘넥스트 키건’을 찾고 있습니다. ‘아일랜드 문학은 다산이 제일 잘하지’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웃음)” ■ ‘남극’(다산북스·2025년)은….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58)의 15개 단편을 담은 소설집이다. 첫 책으로 1999년에 냈다. 부부, 자매, 남녀를 비롯해 이웃 간에 벌어지는 균열을 포착한다. 부조리한 상황엔 단호하게 단절을 표한다. 표제작 ‘남극’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일탈을 시도하는 이야기다. 혼자 다른 도시로 여행 온 여자는 술집에서 만난 남자의 집으로 가 욕망을 채운다. 남편이 아닌 남자와의 잠자리에 대한 호기심을 해소한 여자는 집으로 돌아가려하지만 다시 그의 집에 가게 되고 뜻밖의 상황이 벌어진다.위험은 평범한 일상 옆에 똬리를 틀고 있다. 우체부와 즐길 시간을 갖기 위해 동생을 심부름 보내는 언니. 같은 마을에 사는 남자가 연쇄살인범이었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린다. 아버지는 벽돌공인 그를 집으로 데려와 저녁 식사를 하기도 했다. 유희를 위해 동생을 위험했던 거리로 내몰았던 언니는 우체부와 바로 헤어진다.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언니에게 동생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건다.(‘노래하는 계산원’) 아내와 딸에게만 늘 허드렛일을 시키고, 온 가족이 참석한 마을 파티에서 젊은 여자와 어울리는 남자. 꾹꾹 참기만 하던 아내는 더 이상 남자의 말을 따르지 않겠다는 선언을 행동으로 표한다.(‘남자와 여자’) 항상 희생해 오던 언니는 선을 넘는 동생을 단호하게 응징하고(‘자매’), 오래 살던 집을 철거하고 개발을 진행하려는 시에 맞서던 할머니는 자기만의 방법으로 집을 처리하는(‘불타는 야자수’) 등 주저앉지 않고 현실에 맞서는 이들도 있다. 도저히 되돌릴 수도, 용서를 바랄 수도 없는 불행이 존재하는 상황도 직시한다.(‘여권 수프’) 새 엄마와 서먹한 세 아이, 그리고 남자는 시골집에서 쏟아져 나오는 바퀴벌레를 맹렬하게 잡으며 하나가 된다.(‘화상’) 짧은 이야기들은 삶의 각 단면을 잘 벼린 칼로 망설임 없이 베어낸 듯하다. 킬리언 머피가 주연한 영화로 만들어진 ‘이처럼 사소한 것들’, 역시 영화로 제작된 ‘맡겨진 소녀’(영화 제목은 ‘말없는 소녀’)를 읽은 이라면 이들 작품이 태어난 원류를 발견하는 기분이 들 것 같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6-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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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굿파트너’, 기억 삭제될 정도로 힘들때 살기위해 쓴 결과물” [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

    [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많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 창작자들은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베스트셀러가 되길 꿈꾸지만,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 희귀한 확률을 뚫고 베스트셀러가 된 콘텐츠가 탄생한 과정을 들여다본다. 창작자의 노하우를 비롯해 이 시대 사람들의 욕망, 사회 트렌드 등을 확인할 수 있다.2016년 첫 아들을 낳고 3개월 쉰 후 변호사 업무에 복귀했다. 상담을 하루 7~9건 했다. 사무실이 서울과 인천에 각각 있어서 어떤 날은 하루 두 번 왕복하기도 했다. 직원들 월급을 줄 수 있을지 걱정돼 가슴이 조여 왔다. 새벽까지 안 자는 아기를 달래느라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체력이 약해 수시로 고열이 나고 몸은 바닥으로 파고드는 것 같았다. 변호사 5년차. 일을 잘하고 싶었지만 계속 뒤처지는 것 같았다. ‘살기 위해’ 2018년부터 틈틈이 글을 썼다. 6년간 A4 용지 3000장 넘게 쓴 글로 이혼 소송을 다룬 화제의 드라마 ‘굿 파트너’(2024년)가 탄생했다.‘굿 파트너’ 극본을 쓴 최유나 변호사(41) 이야기다. 현재 그는 올해 11월 방송 예정인 ‘굿 파트너2’ 극본을 쓰고 있다. 이혼전문변호사(직원이 90명 넘는 법무법인 태성 대표변호사다), 작가, 유튜버, 두 아들(10살, 5살)의 엄마인 그는 이 많은 일을 어떻게 해 낼까. 그는 말했다.“글 쓰는 게 제겐 힐링이에요. 2016년과 2017년은 생각이 거의 안 나요. 너무 힘들어서 기억이 지워진 것 같아요. 글쓰기는 숨을 쉴 수 있게 해준 통로였어요. 업무, 육아를 하기 위해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갔습니다.”그가 시간 활용법을 담은 ‘마일리지 아워’(북로망스)는 지난해 11월 출간된 지 2개월 만에 2만 권 넘게 판매됐다.(국내 출판계의 베스트셀러 기준은 책 판매량 1만 권이다.) 최 변호사를 10일 전화 인터뷰하고 양예주 편집자(41)를 13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최 변호사는 수년 전부터 여러 출판사로부터 시간 관리법을 담은 책을 내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고사했다. 책 한 권을 채울 내용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시간 관리법을 찾아 활용하고 자신의 생활을 살펴보면서 책을 쓸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이번엔 그가 출판사 문을 두드렸다. 전승환 ‘책 읽어주는 남자’ 대표와 아는 사이였고(북로망스는 책 읽어주는 남자의 출판 브랜드다) 출판사에 대한 호감이 컸다고 한다. “책을 한 권씩 집중해서 만드는 점에 끌렸어요. 제가 좋아하는 책을 여럿 낸 출판사이기도 하고요.” 지난해 4월부터 원고를 쓰기 시작해 6월에 초고를 완성했다. 아이들을 재운 뒤 오후 10시부터 매일 글쓰는 방식의 ‘100일 프로젝트’를 가동한 것. 양 편집자는 “원고를 보자마자 마음이 움직였다. 책에 나온 대로 친구가 추천하는 책은 바로 사는 등 미루지 말고 실천했다”고 말했다. 양 편집자는 추가로 필요한 꼭지를 더 써달라고 요청하는 등 최 변호사와 수시로 연락하면서 빠른 답장에 놀랐다. “변호사님은 메일을 보내면 2~3시간 안에 답장하세요. 보내드린 내용은 당연히 다 읽으시고요. 15년째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데 이렇게 빠르게 작업한 건 손에 꼽을 정도예요. 책 구성과 문장 수정도 전적으로 믿고 맡겨주셨습니다.”한국외대 영어통번역학과를 나와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최 변호사는 자신이 꾸준히 뭔가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책을 더 쓰고 싶었다고 했다.“대학생 때 제2외국어 공부, 기타 배우기, 독서 등 마음먹은 걸 한 달 이상 한 적이 없었어요. 그런 제게 화가 났어요. 로스쿨에선 1학년 1학기 때 전교 꼴등 가까이 했어요. 그만두고 싶었지만 뭘 하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더라고요. 그래서 3년간 독서실에서 가장 늦게까지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되더라고요. 꾸준함도 애쓰면 가능했습니다.” 그의 평소 일과는 이렇다. 오전 9시에 두 아들을 등교·등원시킨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회사 업무를 한 후 한 시간 정도 쉬거나 저녁을 먹는다.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아이들을 돌보고 10시부터 자정까지 글을 쓴다. 주중에는 8시간, 주말에는 10시간 정도 잔다.(아이들이 어렸던 2023년까지는 이 정도로 잠자기는 어려웠다고 했다.) 변호사인 남편은 평일 저녁과 주말에도 일해 아이들 돌보기는 주로 그의 몫이다. 최 변호사는 “처음엔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남편 업무의 특성상 어쩔 수 없기에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먼저 마감을 정한다. 일의 규모에 따라 30분, 3일, 3주일 등 마감을 정하면 집중도가 높아진다. 모든 일은 착수시기를 일정에 적는다. 강연 요청이 들어오면 미리 불안해하지 말고 강연 자료를 만들기로 정한 날부터 작업한다. 메일 확인, 병원 예약 등 자잘한 일은 지하철이나 택시로 이동하는 시간에 처리한다. 틈틈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충전하는 것도 중요하다. 미술관을 좋아해서 상담이 취소되면 가까운 미술관을 찾는다. 재판 전이나 상담 전, 시간이 나면 글을 쓴다. “글을 쓰면 불안감이 낮아지고 스트레스가 풀려요. 변호사 업무에도 도움이 되고요.”양 편집자는 책의 각 장 뒤에 ‘언제까지 안 되는 이유만 찾을 건가요. 마주하고 실패하고 보완하세요’, ‘다 잘하려는 노력, 꼼꼼하게 모든 것을 챙기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세 가지 정도만 추려보면 어떨까요’ 등 핵심 내용을 정리해 독자들이 한 번 더 되새기게 했다.제목 ‘마일리지 아워’는 최 변호사의 아이디어다. 비행기 마일리지를 적립하면 항공권을 살 수 있는 것처럼 무언가를 위해 매일 20분 혹은 그 이상 애쓰는 건 시간을 적립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양 편집자는 ‘마일리지 아워’를 최우선으로 두고 다른 제목도 검토했다.“‘마일리지 라이프’, ‘나는 나를 믿는다’ 등 후보도 뽑았어요. 여러 번 살펴보고 변호사님의 로펌 단톡방에서 투표도 했는데 ‘마일리지 아워’가 가장 좋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독자들은 “바로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작가님의 리얼한 현실을 가감 없이 알려줘 의지를 불러일으킨다”고 썼다. 출판사로도 독자 메일이 많이 온다.“‘워킹맘인데 큰 힘을 얻었다’는 분들이 많아요. 최 변호사님이 자신의 노하우를 있는 그대로 다 공개하셨는데요, 그 점이 독자들에게 가 닿은 것 같아요.” 여러 역할을 해내는 최 변호사도 자녀 교육에 대한 불안은 있다고 했다.“대치동 근처에 사는데요, 주위 엄마들이 아이들을 밀착해서 돌보는 걸 보면 ‘나는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해요. 하지만 교육에 대해서는 많이 내려놓으려고 해요. 엄마가 애쓰는 걸 보여주면서 아이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생각하게 만들어주고 싶어요.”그는 항공사 마일리지를 쌓아 꿈꾸던 뉴욕 여행을 다녀왔다. 그 다음엔 뭘 할까. “마일리지를 또 쌓아야죠.(웃음) 많은 분들이 ‘이룬 걸 즐겨’라고 하지만 저는 ‘아직’이라고 생각해요. 즐길 줄 모르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게 많아서 그래요.” 지금은 ‘굿파트너2’ 촬영을 앞두고 있어서 주말과 주중 하루는 대본 쓰기에 매달리고 있다.“시간이 촉박해서 초안을 쓴 다음 계속 수정하고 있어요. 고시생처럼 살고 있습니다.(웃음) 많은 분들이 ‘굿 파트너’를 좋아해주셔서 책임감을 더 느껴요. 아이들은 부모님이 봐주세요.” 최 변호사는 다음 책은 글쓰기 책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굿 파트너’ 시청자 댓글을 모두 읽은 그는 ‘마일리지 아워’ 독자 댓글도 다 볼 예정이다.“악플까지 모두 봅니다. 그래야 독자들이 뭘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있어 다음 책을 쓰는데 도움이 되니까요.(웃음)” ■‘마일리지 아워’(북로망스·2025년)는….이혼전문변호사이자 드라마 ‘굿 파트너’(2024년)의 극본을 쓴 작가, 유튜버, 두 아들의 엄마인 최유나 씨(41)가 자신의 시간 관리법을 정리했다.저자는 진득하게 뭔가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한다. 한국외대 영어통번역학과에 진학한 그는 독서, 달리기 등 결심을 해도 한 달 이상 한 게 없었다. 매일 도서관에 가고 영어 단어를 외우는 친구들을 대단하게 여겼다. 아버지의 권유로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에 간 그는 법대를 나오거나 사법고시를 준비하다 온 사람들 사이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1학년 1학기 성적은 전교 꼴등에 가까웠다. “망했다”며 아버지에게 원망을 쏟아냈다. 아버지는 “휴학을 하든 그만두든 네 선택”이라고 했다. 막막해진 그는 꾸준하게 뭔가를 해야 커리어를 갖고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실에서 가장 늦게 남아 공부하기로 했다. 3년을 버텼고 상위권으로 로스쿨을 졸업했다.저자는 하루 24시간 중 수면 시간과 업무 시간을 빼고 남은 7시간 중 절반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절반은 5년 후, 10년 후 미래를 위해 투자하라고 말한다.완벽한 준비란 있을 수 없으므로 일단 실행부터 하며 보완하라고 권한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조금만 시간을 들여 100일만 계속 해보라고 말한다. 저자 역시 책을 쓸 때 하루에 A4 한 장씩 100일만 쓰자고 결심했다. ‘마일리지 아워’ 역시 이렇게 썼다. 중요한 역할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대충 하자는 마음도 필요하다. 저자는 치마 블라우스 원피스 하이힐을 좋아했지만 매일 맞춰 입고 관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들었다. 이에 검은색 슬랙스를 여러 개 사서 바꿔 입고 구김 가지 않는 소재의 셔츠를 돌려 입는다. 신발은 통굽 구두, 운동화를 신는다. 친절하게 거절하는 것도 시간을 지키는 방법이다. 그는 “거절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를 존중하는 것이며 내 한계를 미리 알려줌으로써 관계를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맛집에서 혼자 밥을 먹는 등 틈틈이 좋아하는 것을 하며 에너지를 채우는 것도 일상을 이어가는데 꼭 필요하다. 원하는 것을 향해 지치지 않고 나아가는 법과 이를 위한 마음 가짐을 세심하게 알려준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6-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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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찬 바람 속 피어나는 봄기운, 당신의 피부는 ‘안녕’한가요?

    찬 바람이 매섭지만 때때로 포근함을 느낄 수 있다. 봄이 오고 있다. 차갑고 건조한 공기로 메마르고 거칠어진 피부에 생기를 불어넣을 때다. 이에 도움이 되는 제품들을 소개한다. >> 탄력 있게 빛나다설화수는 ‘진설 인퓨전 트리트먼트’를 선보였다. 인삼 성분을 활용한 피부관리 라인 ‘진설’의 신제품이다. 설화수는 “정화-활성-집중-강화의 4단계 프로그램을 통해 피부 본연의 생명력을 되살려준다. 안티에이징 성분인 ‘진생베리SR’이 피부를 젊게 가꿔준다”고 설명했다. 총 4주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진설 인퓨전 트리트먼트는 피부 재생 주기에 맞춰 설계했다.1주차에는 피부 정화를 위해 ‘백삼 엔자임’이 함유된 세럼으로 각질층을 부드럽게 관리하고 피부 수분 통로를 활성화한다. 비타민도 더해 피부를 환하게 가꿔준다. 활성 단계인 2주차에는 ‘인퓨전 듀얼 캡슐’이 함유된 세럼을 사용한다. ‘피부 유사 콜라겐’ 성분을 통해 탄력을 준다.3주차 집중 단계에서는 ‘진생베리SR-인텐소좀’을 통해 탄력 저하를 개선한다. 4주차에는 ‘진생 올레오좀’의 콜라겐 에너지로 3주 동안 다져온 리프팅 효과를 강화한다. 진생 올레오좀은 흡수율이 높아 피부층을 강화하는데 도움을 준다.설화수는 “진설 인퓨전 트리트먼트는 사용을 중단한 후에도 볼과 모공 탄력이 개선되고 리프팅 각도 개선 효과가 지속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라네즈가 새로 내놓은 ‘워터뱅크 아쿠아 페이셜 세럼’은 피부 장벽 보습을 강화한 제품이다. ‘매일 바르는 물광 부스터 샷’을 주제로 만들었다. 바쁜 일상에서 간편하게 피부를 관리할 수 있다. 라네즈는 “각질 및 피부결 관리에 도움을 주고 촉촉하게 빛나는 피부를 만들어준다. 보습, 장벽 강화, 붉은기 개선에도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질감이 산뜻하고 제형이 부드러워 매일 사용하기 좋다. 워터뱅크 블루 히알루로닉 모이스춰 크림과 함께 사용하면 피부 수분과 광채를 더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영양과 생기 더하다에스트라는 ‘아토베리어365 클렌징 밀크’를 새로 출시했다. 에스트라는 “세안할 때 피부 장벽 손상은 줄이고 세정력을 높였다. 판테놀 베타인 더마온까지 3종 장벽 보호 성분을 함유해 사용할수록 피부 장벽을 강화한다”고 설명했다. 민감한 눈가 피부에도 자극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세안 후에는 미끈거림 없이 산뜻한 느낌을 준다. 에스트라는 ‘아토베리어365 클렌징 폼’을 새롭게 선보였고 ‘아토베리어365 포밍 클렌저’도 기능을 강화해 내놓았다. 프리메라는 ‘PDRN-나이아 립세럼 토닝 글로우 샷’을 선보였다. 올해 1월 ‘PDRN-나이아10 토닝 글로우 세럼’과 ‘PDRN-나이아10 메가 샷 겔 마스크’를 출시한 후 입술 관리까지 제품 범위를 확장한 것이다.프리메라는 “칙칙해 보이는 보랏빛 입술색과 생기가 부족해 보이는 입술 때문에 고민하는 소비자들을 고려해 만들었다. 색소를 더하지 않고도 입술 본연의 혈색을 빠르게 살려주는 한편 생기 있고 건강해 보이는 입술로 가꾸는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또 “입술 피부 치밀도가 개선되고 입술 속과 겉의 보습도 좋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색상은 투명한 ‘클리어’, 은은한 핑크빛 펄을 더한 ‘샤인’으로 두 가지다. 아이오페는 남성용 PDRN 올인원 ‘XMD 클리니컬 리커버리 올인원 포맨’을 내놓았다. 2016년 ‘맨 올데이 퍼펙트 올인원’을 선보인 후 다양한 제품을 출시해 지난해까지 올인원 전 제품 누적 판매량은 460만 병이 넘는다. 신제품은 아이오페 XMD 라인의 첫 남성 제품이다. 아이오페는 “남성 피부에 맞게 수분 및 탄력, 피부색 관리를 한 번에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남성들은 끈적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 점을 고려해 산뜻한 제형으로 만들어 매일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다. 피부 속까지 영양을 전달하면서도 끈적임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6-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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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식 먼저 받고 성과 따라 보상 확정한다

    삼성증권은 주식보상 전용 플랫폼 ‘삼성증권 AT WORK’를 통해 선지급형 성과조건부주식(RSA·Restricted Stock Award) 지급 및 관리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를 도입한 건 업계에서 처음이다.RSA는 회사가 임직원에게 주식을 먼저 지급한 후 성과와 책임 이행 여부에 따라 보상의 가치를 확정하는 성과보상 제도다. 현금 보너스와 달리 임직원이 회사의 중장기 성장과 성과에 직접 참여하도록 설계된 주식 기반 보상 방식으로, 미국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보편화돼 있다.RSA는 일정 기간 재직하거나 성과를 달성한 후에 주식을 지급하는 RSU(Restricted Stock Unit)와 달리, 주식을 먼저 지급한 뒤 성과에 따라 보상을 확정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RSA는 주식 지급 시점부터 임직원이 회사의 성과와 가치를 공유하도록 설계된 보상 방식이라는 점이 특징이다.삼성증권은 “국내에서는 주식 선지급에 따른 의무보유 기간, 매도 제한, 성과 조건 관리 등 복합적인 요건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금융 인프라가 부족해 RSA 도입과 실행에 제약이 있었다”며 “이런 한계를 해소하기 위해 삼성증권 AT WORK에 RSA 전용 관리계좌 기능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해당 계좌는 선지급 주식에 대해 의무보유 기간과 매도 제한 조건을 직접 반영해, 지급 이후 관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조건 변화를 적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임원 공시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관리 체계도 함께 제공한다.삼성증권은 올해 1월 3만 명 규모의 자사주 기반 RSA 성과보상을 집행했고, 해당 임원들의 공시 지원 모니터링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RSA 제도를 설계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실제 지급과 사후 관리까지 가능하게 한 것이다. 박경희 삼성증권 WM부문장은 “삼성증권 AT WORK는 임직원 계좌 관리 서비스를 넘어 기업의 성과보상 체계를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며 “국내 최초로 RSA 지급과 관리가 가능한 구조를 완성했다”고 말했다. 이어 “RSA 서비스를 시작한 것을 계기로 기업 고객의 성과보상 및 임직원 자산관리 수요를 반영한 맞춤형 플랫폼 기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6-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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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우스오브신세계 청담’ 식품 패션 리빙 다이닝 한 곳에서

    신세계백화점이 지난해 12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문을 연 ‘하우스오브신세계 청담’의 누적 방문객이 7주 만에 25만 명을 넘었다. 하우스오브신세계 청담은 기존 SSG푸드마켓 청담점 지하 1층과 지상 1층을 재구성해 4960㎡(약 1500평) 규모로 조성된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 공간이다. 매출에서 20, 3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42%로 나타나 젊은 세대의 호응이 컸다. 하우스오브신세계 청담은 식품 패션 리빙 다이닝을 하나의 동선에 담아냈다. 단순한 장보기를 넘어 ‘머물며 취향을 발견하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신세계백화점은 “하우스오브신세계 청담은 지난해 강남점에서 선보인 ‘하우스오브신세계’의 모델을 상권 특성에 맞게 재해석해 백화점 외부 독립 공간으로 확장한 첫 사례”라며 “전통적인 식품관의 역할을 넘어 체류형·경험형 소비 공간을 구현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라고 밝혔다. 패션숍 거닐듯 장 본다 지하 1층에는 식품관 ‘트웰브’가 들어섰다. 트웰브는 ‘패션 매거진 콘셉트의 식품관’을 표방하며 의류 매장의 진열 방식을 식품 매장에 적용했다. 대표 상품을 한 점씩 강조하는 쇼케이스 진열, 색감과 질감을 살린 연출, 제철 식재료의 큐레이션 배치 등을 통해 고객이 패션 편집숍을 거니는 듯한 경험을 하도록 구성했다. 집기는 목재의 결을 살려 마감하고 금속 소재를 조합했다. 트웰브 입구에는 ‘아고라’라는 이름을 붙인 약 100석 규모의 광장을 조성했다. 공용 테이블과 좌석을 배치해 라운지처럼 머물 수 있도록 설계했다. 동선은 인접한 델리와 스무디바로 이어진다. 식품관 내부에는 자연 채광이 드는 중정(썬큰 가든)도 마련해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이 공간에는 원형 테이블과 좌석을 배치해 쉴 수 있도록 했다. 동선도 기존 일방향 구조에서 벗어나 양방향으로 재설계했다. 전 고객 대상으로 무료 주차 서비스도 제공한다.40여종 착즙 주스-900여 개 맞춤형 메뉴트웰브에는 건강에 중점을 둔 상품을 배치했다. ‘트웰브 원더바’에서는 인삼 케일 햄프시드 등을 활용한 착즙 주스 및 스무디 40여 종을 즉석에서 만들어 준다. 델리 매장에서는 한식 기반의 ‘발효:곳간’과 세계 음식을 재해석한 ‘트웰브 키친’을 통해 900여 가지 조합의 맞춤형 메뉴를 만든다.6000여 종의 식료품을 갖춘 팬트리에서는 ‘균형과 순환’, ‘지구의 가벼운 발걸음’ 등 12가지 기준에 맞춘 큐레이션을 제공한다. 영국 스낵 브랜드 ‘미스터 프리드’, 고단백 시리얼 브랜드 ‘홀리’ 제품도 판매한다. 지상 1층은 패션 주류 식사 공간을 연결해 취향을 제안하는 공간으로 구성했다. 남성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맨온더분’, 여성복 브랜드 ‘자아’, 주류 매장 ‘클리어’, 7석 규모 식당 ‘모노로그’, 일식당 ‘호무랑’ 등이 입점했다. 최원준 신세계백화점 식품생활담당 상무는 “하우스오브신세계 청담은 삶과 취향, 일상을 연결하는 새로운 실험”이라며 “고객이 더 편안하게 머물며 풍요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6-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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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노인의 꿈’-꿈을 향한 다정하고 유쾌한 여정 外

    《한 번 뿐인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해 봐야 후회가 남지 않는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완전히 다른 결의 방향으로 삶을 튼 이들을 그린 작품을 소개한다.》 >> 연극 ‘노인의 꿈’ - 꿈을 향한 다정하고 유쾌한 여정 오래된 미술 학원을 운영하는 봄희. 화가를 꿈꿨지만 자기 작품을 그리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한다. 월세 내기도 빠듯한데 인근에 대형 입시미술학원까지 들어섰다. 어린이 대상 수업에서 입시미술로 방향을 틀어야 할지 고민하던 어느 날, 발랄할 할머니 춘애가 학원 문을 두드린다. 자신의 영정사진을 직접 그리고 싶다며. 카메라 앞에서는 표정이 굳어버려 사진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단다. 봄희는 어르신 대상 수업을 하는 문화센터를 소개하지만 말로는 춘애를 이길 수 없다. 그렇게 수업이 시작되는데….중년과 노년에 접어든 이들이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잔잔하고 따뜻하게 그렸다. 백원달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만든 연극으로 초연이다. 가족 간 관계도 다층적으로 비춘다. 봄희는 늦은 나이에 채운을 만나 결혼했다. 채운에게는 사춘기 딸 꽃님이 있다. 엄마를 하늘로 떠나보낸 꽃님은 새엄마 봄희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다. 갱년기를 겪는 봄희는 몸도 마음도 축축 처지는데다 꽃님과의 어색한 관계에 어쩔 줄 모른다. 게다가 아버지 상길은 봄희의 속을 뒤집어 놓는다. 봄희는 엄마가 세상을 떠난 게 가부장적이고 자기 밖에 모르는 아빠 때문에 평생 스트레스를 받고 속앓이를 했기 때문이라 여긴다. 잘 지내는 듯 보이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사연 없는 집이 없는 법. 극은 이런 현실을 세밀하고 유쾌하게 그려낸다. 가족일수록 속에 간직한 말을 하기 어렵다. 크고 작은 소동이 벌어지고 감정이 폭발하다 결국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매끄럽게 담아냈다.관록 있는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무대를 풍성하게 채운다. 춘애 역은 김영옥 김용림 손숙이 맡았다. 세 배우의 연기 경력은 도합 196년이다. 봄희는 하희라 이일화 신은정이 연기한다. 상길 역은 남경읍 박지일 김승욱, 채운 역은 강성진 이필모 윤희석이 각각 맡았다. 꽃님은 진지희 윤봄 최서윤이 연기한다. 어린 춘애·봄희·꽃님으로는 임로하 박채린 손지유가 무대에 선다.객석에는 부모님과 함께 온 관객들이 많다. 크고 작은 웃음이 자주 터져 나온다. 극이 중반부를 넘어서면 여기저기서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공연장을 나오며 “우리 딸 덕에 좋은 시간 보냈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3월 22일까지.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서울 U+스테이지. 초등학생 이상 관람 가능. 5만5000∼7만7000원. >>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 욕망을 향한 거침없는 질주대공황으로 하루하루 힘겹게 버텨가던 1930년대 미국. 웨이트리스 보니와 가난에서 벗어나 악명 높은 영웅이 되고 싶은 클라이드는 서로에게 빠져든다. 일자리를 잃는 건 순식간이고, 조금이라도 돈을 주면 감사한 마음으로 일해야 하는 나날들. 가슴이 이글거리는 청춘들은 그저 떠나고 싶다. 저 너머엔 뭔가 반짝이는 것들이 가득할 것만 같다. 보니와 클라이드는 고급 차량을 훔치고 상점, 은행을 털며 도주를 이어간다. 탈옥도 빠질 수 없다. 대중은 멋지게 차려입고 점점 더 대담하게 범죄를 저지르는 커플에게 큰 호기심을 보인다. 신문에는 이들의 행보가 연일 대서특필된다.실존 인물인 보니와 클라이드의 실화를 뮤지컬로 만들었다. 메마른 공기에 먼지만 풀풀 날리는 일상에 지친 보니와 클라이드가 돌파구를 찾아 일탈을 감행하는 과정을 짜릿하고 감각적으로 그렸다.2011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재즈 블루스 등 프랭크 와일드혼이 작곡한 음악이 이야기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국내에서는 2013, 2014년 공연됐고 이번에 새로운 무대로 돌아왔다. 김태형 연출가, 김문정 음악감독이 손을 잡았다. 범죄의 수위가 높아질수록 보니와 클라이드는 갈등에 빠진다. 가족의 간청도 외면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감옥에서 평생을 보내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 그저 직진할 뿐. 배우들은 자유를 갈망하며 짧지만 강렬한 자취를 남긴 보니와 클라이드를 설득력 있게 소화한다. 클라이드 역은 조형균 윤현민 배나라, 보니 역은 옥주현 이봄소리 홍금비가 각각 맡았다. 클라이드의 형 벅은 김찬호 조성윤이 연기한다. 벅의 아내 블랜치 역에는 배수정 윤지인이 발탁됐다. 텍사스, 오클라호마, 미주리 등 여러 주를 넘나들던 보니와 클라이드는 1934년 루이지애나에서 경찰에게 사살되면서 거침없는 질주의 마침표를 찍는다. 강렬하게 끝나는 절정의 순간이 이들의 삶과 퍽 닮았다. 보니와 클라이드의 장례식에는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고 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영화 ‘보니 앤 클라이드’로 만들어졌고(국내 개봉 영화 제목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투팍, 에미넴, 비욘세 등 유명 가수들의 곡에도 인용됐다. 3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14세 이상 관람 가능. 7만∼13만 원.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6-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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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꿈을 향한 다정한 여정 연극 ‘노인의 꿈’-욕망을 향한 거침없는 질주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

    《한 번 뿐인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해 봐야 후회가 남지 않는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완전히 다른 결의 방향으로 삶을 튼 이들을 그린 작품을 소개한다.》●연극 ‘노인의 꿈’ 오래된 미술 학원을 운영하는 봄희. 화가를 꿈꿨지만 자기 작품을 그리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한다. 월세 내기도 빠듯한데 인근에 대형 입시미술학원까지 들어섰다. 어린이 대상 수업에서 입시미술로 방향을 틀어야 할지 고민하던 어느 날, 발랄할 할머니 춘애가 학원 문을 두드린다. 자신의 영정사진 대신 쓸 자화상을 그리고 싶다며. 카메라 앞에서는 표정이 굳어버려 사진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단다. 봄희는 어르신 대상 수업을 하는 문화센터를 소개하지만 말로는 춘애를 이길 수 없다. 그렇게 수업이 시작되는데….중년과 노년에 접어든 이들이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잔잔하고 따뜻하게 그렸다. 백원달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만든 연극으로 초연이다.가족 간 관계도 다층적으로 비춘다. 봄희는 늦은 나이에 채운을 만나 결혼했다. 채운에게는 사춘기 딸 꽃님이 있다. 엄마를 하늘로 떠나보낸 꽃님은 새엄마 봄희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다. 갱년기를 겪는 봄희는 몸도 마음도 축축 처지는데다 꽃님과의 어색한 관계에 어쩔 줄 모른다. 게다가 아버지 상길은 봄희의 속을 뒤집어 놓는다. 봄희는 엄마가 세상을 떠난 게 가부장적이고 자기 밖에 모르는 아빠 때문에 평생 스트레스를 받고 속앓이를 했기 때문이라 여긴다. 잘 지내는 듯 보이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사연 없는 집이 없는 법. 극은 이런 현실을 세밀하고 유쾌하게 그려낸다. 가족일수록 속에 간직한 말을 하기 어렵다. 크고 작은 소동이 벌어지고 감정이 폭발하다 결국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매끄럽게 담아냈다.관록 있는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무대를 풍성하게 채운다. 춘애 역은 김영옥 김용림 손숙이 맡았다. 세 배우의 연기 경력은 도합 196년이다. 봄희는 하희라 이일화 신은정이 연기한다. 상길 역은 남경읍 박지일 김승욱, 채운 역은 강성진 이필모 윤희석이 각각 맡았다. 꽃님은 진지희 윤봄 최서윤이 연기한다. 어린 춘애·봄희·꽃님으로는 임로하 박채린 손지유가 무대에 선다.객석에는 부모님과 함께 온 관객들이 많다. 크고 작은 웃음이 자주 터져 나온다. 극이 중반부를 넘어서면 여기저기서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공연장을 나오며 “우리 딸 덕에 좋은 시간 보냈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3월 22일까지.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서울 U+스테이지.초등학생 이상 관람 가능.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대공황으로 하루하루 힘겹게 버텨가던 1930년대 미국. 웨이트리스 보니와 가난에서 벗어나 악명 높은 영웅이 되고 싶은 클라이드는 서로에게 빠져든다. 일자리를 잃는 건 순식간이고, 조금이라도 돈을 주면 감사한 마음으로 일해야 하는 나날들. 가슴이 이글거리는 청춘들은 그저 떠나고 싶다. 저 너머엔 뭔가 반짝이는 것들이 가득할 것만 같다. 보니와 클라이드는 고급 차량을 훔치고 상점, 은행을 털며 도주를 이어간다. 탈옥도 빠질 수 없다. 대중은 멋지게 차려입고 점점 더 대담하게 범죄를 저지르는 커플에게 큰 호기심을 보인다. 신문에는 이들의 행보가 연일 대서특필된다.실존 인물인 보니와 클라이드의 실화를 뮤지컬로 만들었다. 메마른 공기에 먼지만 풀풀 날리는 일상에 지친 보니와 클라이드가 돌파구를 찾아 일탈을 감행하는 과정을 짜릿하고 감각적으로 그렸다.2011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재즈 블루스 등 프랭크 와일드혼이 작곡한 음악이 이야기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국내에서는 2013, 2014년 공연됐고 이번에 새로운 무대로 돌아왔다. 김태형 연출가, 김문정 음악감독이 손을 잡았다. 범죄의 수위가 높아질수록 보니와 클라이드는 갈등에 빠진다. 가족의 간청도 외면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감옥에서 평생을 보내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 그저 직진할 뿐. 배우들은 자유를 갈망하며 짧지만 강렬한 자취를 남긴 보니와 클라이드를 설득력 있게 소화한다. 클라이드 역은 조형균 윤현민 배나라, 보니 역은 옥주현 이봄소리 홍금비가 각각 맡았다. 클라이드의 형 벅은 김찬호 조성윤이 연기한다. 벅의 아내 블랜치 역에는 배수정 윤지인이 발탁됐다. 텍사스, 오클라호마, 미주리 등 여러 주를 넘나들던 보니와 클라이드는 1934년 루이지애나에서 경찰에게 사살되면서 거침없는 질주의 마침표를 찍는다. 강렬하게 끝나는 절정의 순간이 이들의 삶과 퍽 닮았다. 보니와 클라이드의 장례식에는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고 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영화 ‘보니 앤 클라이드’로 만들어졌고(국내 개봉 영화 제목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투팍, 에미넴, 비욘세 등 유명 가수들의 곡에도 인용됐다. 3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14세 이상 관람 가능.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6-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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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BB, 가르시니아 구미로 이너뷰티 시장 첫발

    엘비비(LBB)가 이너뷰티 브랜드 스킨앤스키니를 선보이며 첫 제품 ‘스킨앤스키니 체지방 컷 가르시니아 구미’(사진)를 출시했다. 열대식물인 가르시니아 캄보지아를 활용한 가르시니아 캄보지아 추출물(HCA)을 하루 섭취 기준에 맞춰 만든 제품이다. 엘비비는 “HCA는 탄수화물이 지방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억제해 체지방을 감소시키고 식후 혈당 상승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스킨앤스키니 체지방 컷 가르시니아 구미는 쫀득한 구미 제형이어서 물 없이 바로 먹을 수 있다. 단맛은 프락토올리고당으로 냈다. 파인애플을 발효해 만든 파인애플 사이다 비니거를 더해 상큼함을 느낄 수 있다. 먹는 제품인 만큼 성분 선정부터 배합, 제조 공정 전반에 걸쳐 기준을 세우고 불필요한 요소를 덜어내는 방식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엘비비는 “피부 표면을 가꾸는 데 머무르지 않고 몸 안의 균형까지 함께 관리하도록 했다. 집에서도 쉽고 빠르게 피부 관리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엘비비는 스킨앤스키니에 대해 “피부 과학 연구개발 성과 및 스파를 통한 관리법을 바탕으로 피부 관리 방법을 바르는 것에서 섭취하는 것으로 확장한 브랜드”라며 “피부 상태와 몸 전체의 균형이 연결되는 것을 지향한다는 뜻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수진 엘비비 대표는 “일상에서 손쉽고 빠르게 피부와 건강을 관리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며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생활 방식의 변화에 맞춰 꾸준히 제품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엘비비는 스파 전문 기업에서 만든 화장품 브랜드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6-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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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안이 덮칠 땐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손효림의 글로벌 책터뷰]

    ‘불안을 알면 흔들리지 않는다’키렌 슈나크‘은퇴가 코앞인데 아이들은 아직 학생이야. 앞으로 어떻게 살지.’ ‘원하는 직장에 입사하지 못하면 어쩌지’…. 많은 사람이 크고 작은 불안에 시달린다. 사회가 빠르게 변하면서 불안감이 커진다고 호소하는 이도 적지 않다. 영국 임상심리학자 키렌 슈나크는 “불안은 다스릴 수 있다”고 말한다. 옥스퍼드대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슈나크는 정신 질환을 겪는 이들을 20년 넘게 치료하고 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와 연계해 성인과 아동의 정신 건강을 관리해 왔다. 그는 지난해 국내에서 출간된 ‘불안을 알면 흔들리지 않는다’(원제 ‘Ten Times Calmer’·오픈도어북스)에서 공황장애, 질병불안장애 같은 여러 유형의 불안 사례와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그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불안 억누르면 번아웃 올 수 있어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질병에 대한 경계심과 건강에 대한 불안이 크게 증가했다고 진단한다. 불안에 어느 정도로 시달리면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물었다. “명확한 기준은 없습니다. 불안으로 일시적인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는 걸 넘어서 해야 하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지속되면 치료받을 필요가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계속 무언가를 회피하거나 미루고, 마비된 느낌을 받거나 반복적으로 위축된다면 전문가와 상담할 시점일 수 있습니다.” 불안을 회피하는 사람과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 중 누가 더 치료가 필요할까. 그는 이 역시 불안이 일상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불안을 억누르는 사람은 다른 감정들 역시 회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높죠. 불안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불안이 계속 커지다가 번아웃 혹은 다른 건강 문제를 겪을 수 있습니다. 불편하더라도 불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불안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한국은 입시 경쟁이 치열하고 양질의 일자리가 줄면서 취업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승진 압박과 해고 두려움도 크다. 이런 구조에서 개인은 불안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고 6개월 전의 나, 혹은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는 식으로 자기에게 중심을 둬야 합니다. 일자리 감소 같은 외부적 요인은 내가 통제할 수 없지만 자신은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으니까요. 또 사회의 잣대가 아니라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게 뭔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재미, 모험을 비롯해 아주 작은 것이라도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걸 하는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매일 뭐든 해 보세요.” 불안을 많이 느끼는 사람 중에는 “이런 기질을 타고났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기질적으로 불안에 더 취약한 사람이 있는지, 이런 사람도 불안을 줄이는 게 가능한지 물었다. “예민한 기질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생물학적 특성이 평생 바뀌지 않는 운명은 아닙니다. 기질은 악기에 비유할 수 있어요. 더 높고 큰 소리를 내도록 만들어진 악기라도 연주자가 차분하고 안정적으로 연주하는 법을 배우면 그런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불안의 60∼70%는 환경, 습관, 사고방식, 우리가 하는 행동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래서 개인의 노력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태어났든지 간에 뇌에는 근육처럼 변할 수 있는 ‘신경가소성’이 있습니다. 특정한 사고방식과 태도, 자기 관리 방식을 반복적으로 연습하면 뇌의 경로 자체가 바뀔 수 있습니다.”● 부모가 실수 인정하면 아이 회복력 커져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는 자녀를 둔 부모 중에서는 자신이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며 자책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부모들에게는 ‘내가 충분히 좋은 부모인지’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아이를 아끼고 세심하게 돌보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라는 말을 먼저 해주고 싶습니다. 경쟁이 심한 사회에서는 자녀 성공이 부모 노력의 결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부모에게 숨 막히는 여러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죠. 하지만 아이가 힘들어하는 게 부모로서의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는 부모가 완전히 막아줄 수 없는 사회라는 거친 폭풍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다만 아이가 비를 맞고 돌아왔을 때 부모는 언제나 따뜻하게 쉴 수 있는 ‘집’이 되어 줄 수는 있습니다.” 모든 것을 예측하고 처리할 수 있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세상에 나갔을 때 좌절, 불안, 불완전함을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부모가 실수했을 때 사과하고 설명하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보면서 아이는 회복력이 있는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운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트라우마가 어린 시절 겪은 일이나 부모와 관련된 것은 아니며, 같은 경험을 해도 사람마다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부모 간 갈등이나 가정폭력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 중에는 성인이 돼서도 부모를 원망하는 경우가 많다. “분노와 원망은 보호받지 못한 ‘과거의 나’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세운 보호벽과 같습니다. 이런 감정은 어린 시절에 대한 애도의 일부이자 겪어서는 안 될 일을 겪었다는 부당함에 대한 항의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학대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아이에게 해를 끼치는 환경에 대해서도 변명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제가 상담한 많은 성인의 경우 그들의 부모 역시 트라우마, 압박 같은 어려움을 안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건 상황을 명확히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부모 역시 자신의 과거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고, 동시에 그들이 가한 상처에 대해선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 행동을 정당화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상처가 다른 사람에게 피를 흘리게 하는 면허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불확실성 견디기 훈련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은 업무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으면서도 불안해한다. “완벽이란 건 결코 온전히 달성될 수 없는 가치입니다. 언제나 ‘좀 더 잘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죠. 저는 이런 분들에게 ‘전략적 불완전함’을 연습해 보라고 합니다. 주간 혹은 일간 단위로 부담이 적은 과제를 하나 정해 일부러 ‘충분히 괜찮은 수준’에서 마무리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감각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하는 거죠. 특정 과제를 하는데 시간제한을 두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더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끝없이 에너지를 쏟아붓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죠.” 그는 불안을 느낄 때는 불안한 감정과 객관적인 사실을 분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를 자세하게 글로 써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사실과 불안한 감정을 분리해서 바라보고,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 보면 불안을 줄일 수 있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은 내려놓고, 통제 가능한 영역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혼이나 실직으로 인해 경제적인 측면에서나 아이를 키우는 데 실제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불안을 느끼는 분들에게도 이 방법을 시도해 보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상황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지만 자신이 통제 가능한 영역에 집중하다 보면 삶을 조금씩 나아지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어디에 있는지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는 불안을 야기하는 불확실성 자체는 제거할 수 없지만 불확실성을 견디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불확실성을 견디는 능력은 근육과 같아서 훈련으로 키울 수 있습니다. ‘만약 특정한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지?’라고 묻는 대신 ‘설령 그 일이 일어난다 해도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불안을 부정적으로만 여길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불안은 ‘레이더’처럼 잠재적 위험을 감지하게 합니다. 위험 상황에서 빠르게 반응하도록 하기에 인간 생존에 필요한 요소입니다. 적절한 수준의 불안은 수행 능력을 높이고 도전에 대비하게 하죠. 불안이 문제가 되는 건 레이더가 오작동하기 시작할 때입니다. 실제로는 위험하지 않은데도 계속 위험 신호를 보내는 경우죠.” 불안한 감정을 없애려고 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흘려보내라고 강조했다.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그는 당부했다. “불안은 길을 잃은 전령과 같아서 침묵시키려 할수록 더 큰 소리를 냅니다.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불안은 하늘을 지나가는 구름과 같습니다. 하늘은 구름을 없애려 하지 않고 그저 구름이 움직이고 결국 지나가도록 공간을 내어줄 뿐입니다. 구름이 있다고 해서 하늘의 본질이 바뀌지 않듯, 불안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이 당신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건 아닙니다.”키렌 슈나크영국 임상심리학자. 옥스퍼드대 심리학 박사. 정신 질환 겪는 수천 명을 20년 넘게 치료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를 비롯해 법정과 민간 부문에서 성인과 아동의 정신 건강을 관리해 왔다. 이용자의 정신 건강 증진 및 잘못된 정보 근절을 목적으로 한 세계보건기구(WHO)의 피데스 네트워크와 틱톡의 파트너십 프로젝트에 콘텐츠 제작자로 참여하고 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6-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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