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송평인 칼럼니스트

동아일보

구독 174

추천

안녕하세요. 송평인 칼럼니스트입니다.

pisong@donga.com

취재분야

2025-11-07~2025-12-07
칼럼97%
사설/칼럼3%
  • [횡설수설/송평인]모래시계 검사들의 流轉

    “모래시계 검사는 없다. 오직 슬롯머신 사건 수사 검사가 있을 뿐이다.”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모래시계 검사’란 말에 보인 반응이다. ‘모래시계’는 1995년 초 방영된 SBS의 인기 드라마이다. 박상원이 강우석 검사, 최민수가 조직폭력배 박태수, 고현정이 재벌 딸 윤혜린으로 나와 열연했다. 강우석 검사의 실제 모델이 1993년 슬롯머신 사건의 주임검사였던 홍준표 의원이다. 김종학 SBS PD와 송지나 작가는 “검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만들겠다”며 홍 검사에게 조언을 부탁했고 홍 검사는 제작팀에 자신의 성장 과정과 수사 에피소드를 소개해줬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사정태풍이 몰아쳤다.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의 홍준표 검사 등은 슬롯머신 업계의 대부 정덕일 씨와 그를 비호한 조직폭력배, 정치인, 검찰의 커넥션을 파헤쳤다. 6공(노태우 정부)의 황태자였던 박철언 전 의원, 엄삼탁 전 안기부 기획조정실장, L 전 대전고검장 등이 구속됐다. 이런 수사를 평검사들 몇몇이 해치웠다고 볼 수는 없고 검찰 고위층의 지원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서울지검 강력부에는 당시 조직폭력팀과 마약팀이 있었다. 홍 검사(사시 24회)는 같은 조직폭력팀의 김홍일 검사(사시 24회)와 함께 사건 수사를 주도했다. 정선태 검사(사시 23회)는 마약팀이었으나 조직폭력팀에 가세해 수사기록 정리를 도왔다. 이 세 사람은 요즘도 가끔 만나 술잔을 기울인다.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사시 30회)도 막내로 이 모임에 더러 끼었다. 그는 강력부 소속은 아니었지만 공인회계사 자격을 갖고 있어 계좌추적을 돕기 위해 수사팀에 가세했다. ▷홍 검사는 이후 수사로 얻은 명성을 살려 1996년 국회에 입성했다. 김 검사는 대검 중수부장 자리에 올랐다. 정 검사는 2006년 서울고검 검사로 밀려나 끝인가 했으나 이명박 정부에서 법제처장으로 임용됐다. 은 검사는 2004년 검찰을 나와 총선에 출마했다 낙선했으나 이명박 정부에서 감사위원이 됐다. 저축은행 비리로 모래시계 검사들의 인생 유전(流轉)이 시작됐다. 김 중수부장은 부산저축은행 브로커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은 전 감사위원을 구속했고 정 처장도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다. 거악(巨惡)과 싸웠던 검사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기가 민망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06-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송평인]원전, 獨佛의 엇갈린 길

    프랑스와 독일은 이웃 나라이면서도 다른 점이 많다. 프랑스는 벌판의 나라, 독일은 숲의 나라다. 프랑스는 수학을 중시하는 합리주의, 독일은 신비적 요소를 중시한 낭만주의가 성했던 나라다. 프랑스는 가톨릭 우위에도 불구하고 세속주의가 지배하는 나라지만 독일은 종교세(稅)를 걷는 개신교 국가다. 원전에 대한 태도에서도 극명하게 갈린다. 프랑스는 전력의 75%를 원전으로 생산하는 나라인 반면 독일은 전기를 프랑스에서 사 쓸지언정 원전을 기피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독일은 원전 폐쇄의 길을 택했다. 독일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이끈 좌파 연정 당시 2021년까지 원전을 모두 폐쇄하기로 했다. 뒤이어 집권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지난해 원전 가동시한을 12년 연장한다고 발표했다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 폐쇄 방침으로 돌아갔다. 반면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ERP라는 안전성이 강화된 신형 원전을 무기로 세계 원전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전략이다. 위기가 기회인 셈이다. 프랑스는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에서 한국에 패한 이후 ERP 원전에 대해 ‘안전하기 때문에 비싸다’는 홍보를 강화했다.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 직후에도 세계 각국이 원전 정책을 조정했다. 원전 산업의 압도적 선두였던 미국이 이 사고로 주춤한 사이에 프랑스 일본 한국이 뛰어들어 선두그룹에 진입했다. 세 국가 중 후쿠시마 원전의 피해 당사자인 일본이 한발을 뺄 조짐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프랑스와 한국이 앞으로 원전 시장의 양강(兩强)으로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프랑스와 한국은 독일이나 일본과는 처지가 다르다. 일본은 지진과 쓰나미가 빈번히 발생하는 지대에 있다. 독일인의 환경관은 숲에 대한 경외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극우파인 나치당원도, 극좌파인 녹색당원도 원자력이라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독일 우파 정당이 후쿠시마 사고 이후 다시 중단으로 돌아선 것은 무엇보다 정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프랑스의 합리주의에는 인간이 원자력도 통제할 수 있다는 사고가 강하다. 각국의 원전 정책도 그 나라의 자연환경, 과학기술의 발전 정도, 국민의 수용성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06-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송평인]스페인 온실농업의 재앙

    오늘날 유럽인의 식탁에 올라가는 값싼 농산물은 대부분 스페인에서 온 것이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맨 동쪽에 위치한 알메리아는 구글 항공사진으로 보면 비닐하우스로 덮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닐하우스 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1986년 스페인이 유럽연합(EU)에 가입하면서 무역자유화의 덕을 톡톡히 본 것이 겨울철에 여름 채소를 재배하는 하우스 농업이다. 현재 알메리아의 농산물 가운데 70%가 유럽으로 수출된다. ▷3주일 전 독일 북부 함부르크에서 시작된 ‘슈퍼 박테리아’ 공포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감염으로 숨진 사람만 11명이다. 약 1200건의 감염 사례가 보고됐다. 영국 덴마크 네덜란드 스웨덴에서도 15건의 감염 사례가 있었다. 이들 환자는 북독일을 방문한 사람들이다. 감염된 사람은 모두 북독일에서 구입한 오이 토마토 상추 등을 날것으로 먹었다. EU 집행위원회는 알메리아 등에서 출하된 농산물이 오염원이라고 지목했다. ▷알메리아는 본래 스페인 50개 주 가운데 가장 빈곤한 지역이었다. 같은 안달루시아 지방이라고 해도 그라나다는 비도 오고 날씨도 서늘하지만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사이에 두고 바다 쪽에 위치한 알메리아는 건조하고 더운 날씨 때문에 사람이 살기 힘든 곳이었다. 또 그라나다 코르도바 세비야 등은 이슬람 유적이 많아 세계 각지의 관광객이 찾는 곳이지만 알메리아까지 오는 외국 관광객은 드물었다. 그런 알메리아가 1970년대부터 살아남기 위해 시작한 것이 하우스 농업이다. ▷하우스 농업은 물 공급이 관건이다. 면적이 약 320km²에 이르는 알메리아 비닐하우스에 물을 공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지하 암반수를 이용해 왔으나 사용량이 유입량을 훨씬 지나쳐 염분이 증가하고 있다. 농가에서는 채소를 세척할 물이 없어 집에서 쓴 하수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2005년 하수로 세척한 스페인 채소를 먹은 북유럽 사람들이 감염된 적이 있다. 이번에도 오염된 물을 사용하면서 대장균과 유사한 박테리아가 살아남아 문제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환경을 오염시킨 인간에게 재앙이 역습하는 두려운 세상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05-3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송평인]유혹의 나라 프랑스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에 하나 더해 유혹의 나라다. 미국 뉴욕타임스의 파리 특파원을 지낸 일레인 사이올리노 기자는 ‘유혹, 프랑스인이 삶의 게임을 하는 방식’이라는 책에서 유혹을 프랑스의 ‘비공식적 이데올로기’라고 불렀다. 프랑스 여성은 집 앞에 바게트를 사러 갈 때도 옷을 차려입고 나선다. 미국 여성인 사이올리노 기자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 중 하나였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2008년 부하 여직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을 때 그의 부인은 “정치인은 유혹할 줄도 알아야 한다”며 넘어갔다.▷사이올리노 기자가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을 만났을 때 일이다. 그녀가 책의 집필 계획을 설명하자 대통령은 말리면서 “프랑스 사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하는 미국인을 한 명도 만나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이올리노 기자는 눈앞에서 대통령이 여자 보좌관의 등 아래 부분을 두 번이나 쓰다듬는 것을 보면서 눈을 비볐다. 프랑스 여자는 남자가 사람들 앞에서 예쁘다는 찬사를 늘어놓거나 휘파람을 불어대도 기분 나빠 하지 않는다. 미국식 페미니즘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유혹은 감질나게 하는 노출이다. 프랑스 여성 속옷 디자이너 샹탈 토마는 “미니스커트든 가슴이 파인 블라우스든 하나만 입어야지 둘 다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미국 여성의 감각은 정반대여서 드러낼수록 좋다는 주의다. 학교 체육관의 여학생 탈의실에 가보면 누드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미국과 프랑스 사이에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미국 여학생은 벗고 떠들지만 프랑스 여학생은 그렇지 않다. 철학자 베르나르앙리 레비의 부인인 영화배우 아리엘 동발은 “아내는 남편 앞에 옷을 다 벗고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관절염이 걸리기 전까지는 배우자 외에 애인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프랑스인이다. 욕망이 큰 만큼 충족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그래서 유혹의 기술이 발달한다. 미국의 남녀 관계는 효율적인 정복이다. 유혹의 복잡한 게임을 하지 않는다. 스트로스칸이 호텔 여직원을 성폭행하려고 했다면 유혹에 실패한 것이다. 자유를 존중하는 프랑스인이라면 유혹에 실패했을 때 물러날 줄도 안다. 성폭행은 유혹하지 않고 정복하려는 데서 나온다. 스트로스칸은 프랑스인답지 않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05-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오늘과 내일/송평인]역사 뒤집기

    세계적 명성을 가진 극좌파 지식인들이 2009년 5월 영국 런던에서 ‘공산주의 이념’을 주제로 회의를 열었다. 알랭 바디우, 슬로보예 지젝, 테리 이글턴, 토니 네그리, 장뤽 낭시, 자크 랑시에르, 왕후이(汪暉) 등 우리나라 잡지 ‘창작과 비평’에 자주 언급되는 철학자와 문학평론가가 모였다. 회의에서 발표된 글은 주제와 같은 제목으로 지난해 프랑스에서 출간됐다. 미국 월가발(發) 금융위기로 세계 자본주의가 타격을 받자 그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듯 보였던 공산주의를 들고 나왔다. 당시 한국의 좌파 지식인들은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선언하고 케인즈주의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게 고작이었지만 그들은 신자유주의건 케인즈주의건 ‘자본-의회주의(자본주의와 의회주의의 합성어)’일 뿐이고 거기서 벗어나려면 이념으로서의 공산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바디우와 지젝은 회의를 이끈 두 주인공인데 바디우의 ‘세계사 뒤집기’가 인상 깊었다. 그는 공산주의 운동이 후퇴하기 시작한 것은 후루시초프의 스탈린 격하운동부터라고 썼다. 상식적으로는 스탈린의 개인숭배가 공산주의 일탈이고, 후루시초프가 그걸 수정하려 한 것으로 보는데 바디우는 오히려 후루시초프를 일탈로 봤다. 그에게는 후루시초프적 일탈의 끝이 고르바초프였고 소련과 동구 현실 공산주의의 붕괴였다. 역설적인 얘기지만 ‘역사 뒤집기를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 되는 게 아닌가’라고 한국의 이른바 진보를 표방하는 ‘소심한’ 역사가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바디우는 푸코·데리다·알뛰세르 세대와 끈이 닿는 프랑스 후기구조주의의 마지막 철학자다. 그는 혁명정치학에서 고유명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혁명은 익명의 대중이 일으키는 것이지만 그 이름없는 대중은 스스로 동일시하는 하나의 이름을 갖는다. 그 고유명사가 스파르타쿠스요 로베스피에르요 레닌이요 마오쩌둥(毛澤東)인 것이다. 후루시초프는 스탈린이라는 고유명사의 중요성을 깎아내려 공산 진영의 힘을 약화시켰다는 게 바디우의 비판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공산주의를, 의회주의의 대안으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제시했다. 애초에는 의미가 다소 애매모호했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가 인민민주주의라는 허울 속의 수령(首領)독재라는 것이 스탈린에 이르러 명확해졌다. 바디우의 고유명사는 다른 말로 하면 ‘수령’이다. 수령은 북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북한의 특수성은 단지 그 수령이 세습되고 있다는 점이다. 수령을 인정하는 사람에게 세습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종북(從北)주의를 취하는 한국의 민주노동당이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하지 않는 배경도 거기에 있다. 그러나 민노당은 최소한 논리적이긴 하다. 북한에 내재적으로 접근하면 결국 수령론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당과 대학과 언론과 전교조 안에 있는 비논리적이거나 솔직하지 못한 좌파들이다. 한국 현대사를 이해하려고 할 때 한 가지 선택해야 할 전제가 있다. 수령론을 받아들이고 그 수령이 저지른 잘못까지 불가피한 것으로 인정함으로써 북한을 긍정할 것인가 아니면 북한은 소련과 동구의 공산정권처럼 역사에서 사라질, 애초부터 등장하지 말았어야 할 정권으로 볼 것인가. 후자라면 남한에서나마 ‘자본-의회주의’를 세우려 했던 노력, 북한의 침략을 가까스로 막아낸 한미동맹, 이런 것들을 인정해야 한다. 수령론과 같은 궤변을 전제로 깔아야만 가능한 역사 뒤집기는 세계사에서도 한국사에서도 인정할 수 없다.송평인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05-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송평인]반세기 맞은 5·16

    오늘은 5·16이 일어난 지 꼭 50년이 되는 날이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기인 3공화국과 4공화국 헌법에는 5·16을 혁명으로 규정했다. 그 이후 5공화국 헌법부터는 5·16 언급이 빠졌다. 그 삭제 자체가 상징하는 바가 크다. 분명 5·16은 후진국에서 흔히 보는, 합법정부를 무너뜨리는 군사쿠데타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집트 나세르의 쿠데타처럼 혁명이라 부를 만한 요소도 없지 않았다. 50년 전 실제 그렇게 느낀 사람이 적지 않았다. ▷당시 미국 방첩대(CIC)가 지나가는 시민을 붙잡고 쿠데타에 대한 여론조사를 해봤더니 10명 중 4명은 찬성, 2명은 찬성하지만 시기가 이르다, 4명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면 총리는 회고록에서 사임을 결정하게 된 직접적 동기는 쿠데타를 지지하는 윤보선 대통령의 태도를 알았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당시 새뮤얼 버거 미국대사는 “4·19로 이승만을 몰아낸 학생들은 장면 정부에 압력을 가할 목적으로 매일같이 시위를 벌였고 장면 정부는 전국적으로 질서를 유지하는 데 실패해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이 급속히 사라졌다”고 군사쿠데타의 배경을 분석했다. ▷대중 사이에서 역대 대통령 중 부동의 인기 1위는 박 대통령이다. 봄철 보릿고개를 아는 세대에는 단군 이래 최초로 먹는 문제를 해결해 준 박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있다. 4·19 이후 학계에 민족경제론이 유행할 때 수출지향 산업화로 세계 자유무역 확대 흐름에 올라탄 것은 박 대통령의 혜안이다. 사회 전체로 보면 박정희의 공(功)은 경제개발이요, 과(過)는 민주주의 억압이라는 절충론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후진국에서 경제개발과 민주주의 억압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인가. 한편에서는 산업화는 박정희의 리더십에 기인하는 바가 크지만 그것이 권위주의 지도자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독일 일본 등 전후 부흥을 일으킨 국가는 의회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그렇게 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근대화의 기초가 닦여지지 않은 후진국에서 권위주의 체제가 아니었다면 산업화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어느 쪽이든 민주화와 산업화를 함께 놓고 5·16을 평가하는 것은 민주화로만 5·16을 평가하는 종전보다 진일보한 태도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05-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사설]정치인 초대하지 않은 부처님오신날

    대한불교 조계종은 오늘 서울 조계사에서 개최하는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 이례적으로 정치인을 초청하지 않았다. 해마다 이 법요식에는 여야 정당 대표 등 주요 정치인이 참석했다. 초청 대상에는 정치인 대신 다문화가정, 이주노동자가정 등 소외계층과 개신교 천주교 이슬람교 원불교를 대표하는 종교인이 들어 있다. 정치인이 스스로 찾아오는 것을 막지는 않겠지만 단상에는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겠다는 게 조계종의 방침이다. 불교는 지난해 말 이후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에 불만을 표시하며 한나라당 정치인의 사찰 출입을 금지하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특정 정당을 지목해 출입을 금지하는 것은 불교와 어울리지 않는다. 조계종은 앞으로 정치인이 절을 찾아와서 하는 개인적인 활동은 막지 않겠지만 축사 기회를 주는 것 같은 별도 의전은 베풀지 않기로 했다. 이 다짐이 정권이 바뀐 뒤에도 계속 이어지면 좋을 것 같다. 종교와 정치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계종에서 신망이 높은 도법(道法) 스님은 한나라당 불자회 회원과의 만남에서 “서로가 불편해진 것은 각자 가야 할 길을 가지 않고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부처는 왕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정치를 마다하고 출가 사문(沙門)이 됐다. 예수는 “가이샤(카이사르)의 것은 가이샤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고 말했다. 부처는 가족으로부터, 예수는 제자로부터 집요하게 정치의 유혹을 받았지만 거부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종교와 정치의 갈등이 어느 정권 때보다 심했다. 천주교계는 주교회의 이름으로 4대강 사업을 비판했다. 개신교계는 이슬람채권(수쿠크)법안에 반대해 입법을 유보시켰다. 종교인도 사회적 발언을 할 수 있지만 4대강이나 이슬람채권은 종교인이 개입해야 할 분야라고 보기 어렵다. 종교가 사회의 목탁으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물신화하는 세속을 꾸짖는 것은 본연의 일이다. 그런 경우가 아닌 한 종교는 종교의 길을, 정치는 정치의 길을 가는 게 마땅하다. 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 대표를 지낸 혜국(慧國) 스님은 본보 인터뷰에서 “종교까지 정치화하면 큰 손실”이라며 “서로 본분을 지켜야 갈등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종교인과 정치인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종교가 화합과 치유의 역할에 충실할 때 우리 사회의 갈등과 충돌이 줄어들 수 있다.}

    • 2011-05-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사설]강용석 의원만 제명감인가

    성희롱 발언을 했다가 명예훼손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강용석 의원의 ‘제명 징계안’이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징계심사 소위를 통과했다. 강 의원은 발언 후 한나라당에서 출당 조치를 당한 뒤 현재는 무소속이다. 그가 제명되면 김영삼 전 대통령이 신민당 총재 시절 정치탄압으로 제명된 이후 42년 만의 첫 제명이자 윤리문제로 제명되는 희귀한 사례가 된다. 강 의원 징계는 윤리특위 전체회의가 남아있고 본회의까지 가더라도 제명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강 의원의 징계절차가 시작됐다고 해서 국회가 비로소 정치윤리 회복에 나섰다고 믿기는 어렵다. 국회에는 의원의 품위를 심하게 떨어뜨려 사법적 처벌까지 받고도 여전히 금배지를 달고 있는 의원이 수두룩하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국회 사무총장실 탁자에 올라가 ‘공중부양 활극’을 벌이며 국회의장실 문을 발로 차고 경위의 멱살을 붙잡고 폭행해 3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민주당 문학진,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국회 외교통상위 회의장 출입문을 망치로 부수고 의원 명패를 깨는 폭력을 행사해 각각 200만 원과 5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이런 의원들이 강 의원보다 먼저 징계를 받아야 한다는 견해에 일리가 있다. 1966년 김두한 의원은 한국비료 밀수 사건과 관련해 국회에 출석한 정일권 국회의장 등을 향해 인분을 뿌렸다가 제명을 당했다. 망치와 전기톱을 휘두르고, 공중부양을 하는 의원들이 그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1991년 설치된 국회 윤리위에는 14대 국회부터 이번 18대 국회까지 의원으로서의 품위 손상, 부적절한 언행 등으로 150여 건이 제소됐지만 단 한 건도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았다. 의원들은 평소에는 여야로 갈려 원수처럼 싸우다가도 윤리위 제소 건이 터지면 형제처럼 서로 감싼다. 강 의원이 초선이 아니고, 여야당에 든든한 울타리를 둔 의원이었더라도 나 홀로 징계의 대상이 됐을까. 선진국에서는 의원의 폭력 행위를 제명 감봉 등 중징계로 엄격히 다루고 있다. 우리 국회는 의원의 폭력행위는 명시적인 징계사유가 아니라는 핑계로 이번 회기에도 징계 처리를 하지 않았다. 국회법은 회의장의 질서문란 행위를 징계사유로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 국회가 권위를 세우고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의원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위에 대해 강력한 징계권을 행사해야 한다.}

    • 2011-05-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송평인]작전 암호 제로니모

    “그들은 체로키 땅 전부를 가져갔네. 우리를 이 보호구역에 처박아 두고…우리의 언어를 빼앗고 우리의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네….” 미국 팝송 ‘인디언 보호구역’에 나오는 가사다. 체로키어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에게는 대단히 쓸모가 있었다. 미군은 체로키족을 동원해 체로키어로 비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이때 동원된 인디언을 ‘코드 토커(code talker)’라고 한다. 독일군은 체로키어를 아는 사람을 구할 수 없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히틀러는 제2차 세계대전을 준비하면서 인디언 언어를 배워오도록 인류학자 30여 명을 미국에 보냈다. ▷인디언이 코드 토커로 동원된 다른 사례는 2차 세계대전 때 나바호족이다. 나바호족의 언어는 매우 복잡해 배우기가 어려웠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나바호어를 구사하는 비(非)나바호족은 30명도 채 되지 않았고 특히 일본인 중에는 없었다. 미군은 나바호족을 일본과의 태평양전쟁에 동원했다. 일본에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준 이오지마 전투에서 6명의 나바호족 코드 토커가 약 800개의 메시지를 착오 없이 주고받아 미군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코드 토커는 적군에게 체포될 위험에 놓이게 되면 암호 노출을 막기 위해 미군이 사살할 수 있었다. ▷최근 9·11테러의 배후조종자 오사마 빈라덴 사살 작전의 암호로 ‘제로니모’가 사용됐다. 제로니모(1829∼1909)는 미군과 멕시코군을 공포로 몰아넣은 전설적인 아파치족 전사다. 제로니모가 빈라덴을 가리키는 것으로 알려지자 인디언 사회에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제로니모의 증손자 할린 제로니모는 “모든 정부기록에서 작전 암호 제로니모를 삭제해 달라”고 요구했다. ▷할리우드 영화는 악인을 필요로 한다. 그 악인이 오늘날은 이슬람 테러리스트이고 냉전 종식 전에는 소련 스파이였으며 초창기 서부 영화에서는 인디언이었다. 하지만 빈라덴과 제로니모는 다르다. 제로니모에 대해서는 미국인도 외경(畏敬)의 양가(兩價) 감정을 지니고 있다. 미군 공수부대원은 낙하훈련을 할 때 ‘제로니모’를 외치는 전통이 있었다. 그만큼 제로니모는 용감함의 상징이다. 미군 501공수대대와 509연대 1대대는 제로니모를 부대의 별명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앞으로 세월이 흐르더라도 미군이 부대의 별명으로 빈라덴을 사용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05-0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송평인]어린이날 단상(斷想)

    한국에서 1900년 무렵만 해도 ‘어린이’라는 말은 널리 사용되지 않았다. 아동기(兒童期)가 인생의 특별한 시기로 취급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에 들어와서다. 근대 이전만 해도 인간은 태어나서 그저 귀여움의 대상이었다가 어느 순간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는 존재였다. 유교사회에서는 소학(小學)의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란 말에서 보듯 아이는 7세 이후 갑자기 성인에게 적용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윤리의 세계로 들어갔다. ▷역사적으로 보면 어른에게서 젊은이가 떨어져 나오고 다시 젊은이에게서 어린이가 떨어져 나왔다. 소파 방정환(小波 方定煥)은 1920년대에 일찍이 “젊은 사람은 젊은이라고 하듯이 나이가 어린 사람은 어린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해 젊은이와 어린이를 구별했다. 어린이란 말은 17세기 ‘가례언해(家禮諺解)’ 등에서 간혹 보이긴 하지만 이를 널리 보급한 것은 소파의 공(功)이다. 소파는 1923년 ‘어린이’란 이름의 월간지를 만들었고 일본 도쿄에서 어린이 문제를 연구하는 색동회를 창립했다. ▷국제 어린이날은 6월 1일이다. 1926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아동복지를 위한 세계회의’가 제정한 날이다. 옛 공산권 국가가 대체로 이날을 어린이날로 기념한다. 중국에서도 6월 1일이 어린이날이다. 한국과 일본은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삼았다. 어린이를 각별히 대우하는 대부분의 서유럽국가와 미국에는 따로 정해진 어린이날이 없다. 그 나라 부모들에게는 모든 날이 어린이날이다. 한국 일본 중국은 어린이날을 단순히 기념일이 아니라 국가적 휴일로 삼은 몇 안 되는 나라에 속한다. 유교사회에서 ‘어린 것’이라고 부당하게 취급했던 어린이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한 것인지 모른다. ▷어린이는 대체로 7∼13세를 말하며 7세 미만의 유아와 구별한다. 형법상 미성년자는 14세 미만이다. 정보통신법도 14세 미만의 개인정보를 수집하려면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도록 했다. 부모들은 대개 자식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청소년으로 대우해 어린이날 선물을 주지 않는다. 아동학자들은 중학교 1학년 혹은 2학년까지는 어린이로 대하면서 청소년기로 서서히 넘어가도록 하는 것이 정서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05-0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사설]근현대사 교과서 바로잡기, 국사편찬委 책무다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검정 권한이 국사편찬위원회(국편위)로 환원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국 근현대사는 2002년 국사 과목에서 독립해 국편위의 손을 떠나 교육과정평가원의 검정 체제로 들어갔다. 사회적 논란이 분분한 교과서 파동에서 드러났듯이 교육과정평가원의 검정은 친북 좌(左)편향 역사 기술을 거의 걸러내지 못했다. 이 기관이 워낙 다양한 과목의 교과서를 검정하다 보니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라 한국사 검정이 모두 국편위의 손으로 넘어간다.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은 그제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역사 교과서가 남북 정권을 같은 비율로 다루면서 편향성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이 위원장은 “현행 고교 한국사가 지나치게 근현대사 중심으로 기술된 것도 편향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라고 말했다. 근현대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근접해 객관적으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국사 교과서가 친북 좌편향으로 흐른 근본적인 이유는 집필진에 전교조 교사를 비롯해 한국 근현대사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에 전문성이 깊은 국편위이니만큼 검정위원을 선정하는 데서부터 균형감을 갖추기를 기대한다. 한국사가 중학교에서 전(前)근대사를, 고등학교에서 근현대사를 가르치는 체제로 변한 것은 노무현 정권 말기다. 당시 고등학생들은 한국 근현대사의 좌편향이 심한데도 필수 과목이어서 반드시 배워야 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고교 한국사를 선택 과목으로 바꿨으나 내년부터 다시 고교 필수 과목으로 지정한다. 이와 함께 중고교 구별 없이 한국사 전체를 가르치되 중학교에서는 정치사 문화사 중심으로 가르치고, 고등학교에서는 사회경제사와 대외관계사를 추가해 가르치는 식으로 변화한다. 내년 필수화 시기에 맞춰 새 교과서가 나오지 못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새로운 집필 기준에 따른 교과서는 빨라도 2013년에나 나온다. 고교에서의 한국사 필수화를 서두르지 말고 연기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현 교과서가 좌편향으로 기술돼 있는 마당에 성급한 필수화는 잘못된 역사인식을 확산시킬 뿐이다. 한국사의 편제와 내용을 바로잡은 뒤로 필수화를 늦추는 게 옳다. 집필 기준을 만들 때도 한국사 전공 이외 다른 전공 학자들을 참여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기 바란다. 국사학계는 필수화를 너무 서두르지 말고, 국편위는 교과서 바로잡기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 2011-05-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사설]손학규에 기회 준 민심…웰빙保守 희망 없다

    경기 성남 분당을(乙)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대표인 손학규 후보가 한나라당 강재섭 후보를 이겼다. 한나라당의 전통적 강세지역이었던 곳에서 예상 밖 결과가 나와 민심(民心)이 손 대표에게 새로운 정치적 기회를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강원도지사 보궐선거에서도 민주당 최문순 후보가 한나라당 엄기영 후보를 꺾었다. 경남 김해을(乙)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김태호 후보가 야권 단일의 국민참여당 이봉수 후보를 이겨 체면을 살리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한나라당의 참패다. 손 대표는 이번 승리로 향후 정치적 행보에 상당한 탄력이 붙게 됐다. 제1 야당의 대표로서 당내는 물론이고 야권 내 입지를 굳혔다. 무엇보다 원외(院外) 대표의 한계를 극복하고 당 장악력을 높여 나가면서 내년 대통령선거의 야권후보 단일화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됐다. 반면에 참여당과 유시민 대표의 기세는 추락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는 심각한 경고등이 켜졌다. 국정운영에 실망한 수도권과 강원도 민심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수도권과 강원도의 민심 역전은 작년 6·2지방선거 때부터 나타났다. 수도권 유권자는 전체의 49%, 강원도는 약 3%로 두 곳을 합치면 50%를 넘는다. 수도권과 강원도의 민심이 전국 선거의 향방을 좌우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한나라당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재·보선에서도 김해을을 제외하고는 야권연대가 위력을 발휘했다. 여권은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안상수 대표는 잦은 말실수와 리더십 부족으로 적지 않은 실망을 줬다. 조기 전당대회로 변화와 쇄신을 이끌 새 지도부를 선출해야 회생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청와대와 정부도 과감한 인적 개편을 망설일 이유가 없다. 여권의 고질적인 웰빙 보수(保守)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한나라당 의원 중에는 스스로를 희생해 당을 살리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보이지 않고 나만 살고보자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이 판을 친다. 친이(親李)-친박(親朴)은 물론이고 친이 진영 내부에서도 계파 간 신경전이 계속 불거져 국민이 눈살을 찌푸린다. 집안에서 자중지란(自中之亂)이 빚어지는데 민심이 모아질 리 없다. 집권 4년차에 접어든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 방식도 일대 전환이 요구된다. 동남권 신공항 공약 파기에 이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선정을 둘러싼 갈등으로 도처에서 민심의 이반이 심각하다. 치솟는 생활 물가와 전세 대란을 수습하지 못해 경제만은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국민의 기대감도 허물어졌다. 재·보선 참패로 이 대통령의 레임덕이 조기에 나타날 수도 있다. 국정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해서도 이 대통령은 광폭의 소통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민심이라는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뒤집기도 한다. 한쪽으로 쏠리면 언제든지 균형추를 잡는 게 민심이다. 여권(與圈)이 의도적으로 재·보선 결과를 폄훼하거나 야권(野圈)이 작은 승리에 도취돼 일방통행으로 나간다면 여론의 역풍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 2011-04-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송평인]이지아-서태지 재산분할 소송

    이혼소송에는 보통 위자료, 재산분할, 양육비 등 금전적 분쟁이 따른다. 위자료는 불륜 등으로 이혼 원인을 제공한 남편이나 아내가 배우자의 정신적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주는 돈이다. 재산분할은 부부가 혼인 기간에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을 나눠 갖는 것으로 위자료와는 달리 잘못한 사람이라도 청구할 수 있다. 자녀가 있다면 양육권자를 결정하고 양육하지 않는 사람이 양육비를 지불해야 한다. 이 중 액수가 가장 큰 것이 대체로 재산분할이다. ▷단독으로 집을 소유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결혼 후 구입한 집을 공동명의로 해둘 필요는 없다. 상속 등의 사유가 없으면 남편이나 아내 단독 명의로 돼 있어도 공동재산으로 추정된다. 부부가 따로 통장을 써도 결혼 후 불어난 돈은 공동재산이다. 다만 결혼 전까지 저축한 돈은 결혼 후에도 각자 재산이다. 공동재산은 그 형성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나눈다. 기여도 산정에는 혼인기간, 나이, 경제활동 여부 등이 고려된다. 직장인 남편과 전업주부라면 결혼 3년차보다는 결혼 10년차가 주부의 기여도가 크다. 가사노동의 경우 평균 30% 정도의 기여도를 인정받는다. ▷탤런트 이지아 씨가 1월 가수 서태지 씨를 상대로 5억 원의 위자료와 50억 원의 재산분할 청구소송을 낸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양육에 관한 청구는 없었다. 이혼에 따른 금전 청구는 이혼 청구와 동시에 하는 게 보통이다. 두 사람은 이미 이혼했으나 재산 나누기에는 합의에 이르지 못해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위자료는 이혼 후 3년 내에, 재산분할은 2년 내에 청구해야 한다. 이 씨는 2009년 이혼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서 씨는 2006년 이혼해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맞서 법원의 판단이 주목된다. ▷유명인은 이목을 끄는 것을 싫어해 대체로 판결까지 가지 않고 합의하거나 조정을 받아들인다. 조정에서는 위자료 재산분할 구별 없이 합의금으로 일괄 처리하고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지난해 가수 박진영 씨는 전부인 서모 씨에게 약 30억 원에 월 2000만 원씩 주기로 해 법원 내에서 “달라는 대로 다 줬다”는 평을 들었다. 지난해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은 장은영 전 KBS 아나운서와 이혼하면서 “역시 남자답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거금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랑이 식으면 재산 분쟁만 남는 것이 남녀의 만남이런가.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04-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오늘과 내일/송평인]도산서원과 KAIST

    조선시대 퇴계 이황(退溪 李滉) 하면 서원(書院)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사립학교인 서당에 국가 보조를 끌어와 서원으로발전시킨 교육 개혁가였다. 경북 풍기(현 영주)의 백운동서당을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으로 격상시키는 데 공헌한 이가 바로퇴계다. 자신의 고향인 경북 예안(현 안동)에 계상서당과 도산서당을 지었다. 도산서당은 퇴계 사후 나라의 지원을 받아 도산서원이됐다. 성균관이 국립대라면 서원은 국가 보조의 사립대다. 퇴계는 국립학교는 나라의 법령에 얽매여 서원만큼교육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봤다. 그 자신 젊은 시절 성균관에 공부하러 올라갔다가 실망이 커 곧 낙향했다. 서원은 교과목과학칙을 스스로 정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서원 진흥 운동이었다. 오늘날 KAIST는 옛 성균관처럼전액 장학금을 지원하는 국립대다. 전액 장학금으로 우수한 학생을 끌어모을 수 있는 것은 강점이다. 문제는 입학 이후의 경쟁력을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있다. 교수 정년 심사 강화, 학점과 장학금의 연계 등 ‘서남표 총장식 개혁’은 이런 문제의식에서나왔다. 퇴계와 서 총장은 출발점은 달랐지만 관학(官學)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다는 점에서는 시대를 뛰어넘어 일맥상통하는 면이있다. 도산서원이나 KAIST나 모두 한 시대의 최고 명문학교다. 평가와 그에 따른 상벌 없이는 경쟁력도없다는 것은 고금(古今)의 진리다. 서원에도 성적표가 있고 성적이 나빠 퇴출당하는 학생이 있었다. 과목마다 시험을 봐서 합격을하면 순(純)이라는 평가를 얻었고 불합격하면 불(不)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한번 불합격은 일불(一不), 두 번 불합격은이불(二不)이었다. 보통 서원에서는 팔불(八不), 명문 서원에서는 오불(五不)이면 퇴출시켰다. 올해 KAIST에서4명의 학생이 자살했고 그중 1명은 학점 미달로 인한 장학금 삭감에 고민했던 경우다. 경쟁력 제고는 멈출 수 없다. 다만 경쟁의강화는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어떻게 완화할 것인가에 대한 배려와 함께 가야 한다. KAIST는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주로 하는학교지만 어릴 때부터 영재 소리를 들으며 경쟁에만 내몰려온 학생들이 많은 만큼 인성(人性)교육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든다. 옛 도산서원은 수신(修身)을 주로 하는 학교였다. 그제 마침 ‘신(新)도산서원’이라고 할 만한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이 옛 도산서원 뒷산 너머 퇴계 종택 인근에 현대적 시설을 갖추고 새로 문을 열었다. 이참에 KAIST 학생들에게며칠간이라도 수련원 입원(入院)을 권해보고 싶다. 멘터니 뭐니 해서 상담을 강화하는 것도 좋겠지만 공부하는 자세 역시 퇴계에게배울 게 많다. 무엇보다 성적에 실망하고 있는 학생이 있다면 퇴계가 아들 준에게 쓴 편지에 나오는 말을 들려주고싶다. “나의 재능이 우월함에도 남의 밑에 놓이는 대우를 받는 것은 해로울 게 없다. 그러나 만에 하나 나의 재능이보잘것없음에도 불구하고 요행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이는 기뻐할 일이 아니다.” “옛 사람은 비록 자신을 꾸짖는 것을 귀하게 여겼지만 그렇다고 너무 심각하거나 절박하게 하지는 않았다”는 인간성 넘치는 퇴계의 말도 귀 기울여 봄 직하다.―안동 도산서원에서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04-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사설]도쿄大 1곳보다 네이처 논문 적은 나라의 교육

    지난해 국내 연구기관이 세계적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낸 논문을 모두 합해도 일본 도쿄대 한 곳에 못 미친다. 아시아권에서는 도쿄대가 1위에 올랐고 서울대는 10위, KAIST 11위였다. 개별 저자의 부분적 참여도까지 감안한 점수는 도쿄대가 34.33점, 서울대 4.87점, KAIST는 4.59점이었다. 한국의 대학, 공공연구기관, 기업연구소 등 모든 연구기관을 합친 점수도 24.57점으로 도쿄대 하나에 못 미쳤다. 도쿄대는 세계 전체에선 6위였다. 72.72점으로 1위인 미국 하버드대와 비교하면 절반 이하다. 한국 과학교육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짐작할 만하다. KAIST의 서남표 총장이 경쟁 상대로 정한 미국 MIT는 5위로 도쿄대보다 한 단계 앞서 있다. KAIST가 MIT를 따라잡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교수와 학생의 분발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한국은 국토가 작고 자연자원도 별로 없다. 내세울 만한 것은 인적자원뿐이다. 한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빈국에서 경제규모 13위의 국가로 성장한 것은 뜨거운 교육열과 과학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10년 후 이 나라를 먹여 살릴 힘이 교육과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인적 경쟁력 말고 다른 데서 나오리라고 상상하기 어렵다. 지난해 가까스로 1인당 국민총소득(GNI) 2만 달러에 턱걸이한 한국이 3만 달러를 달성하는 것도 과학기술 강국이 돼야 가능하다. 서 총장은 2006년 취임 이후 교수 정년보장 심사 강화, 학부 전 과목 100% 영어 강의, 학점 부진 학생 장학금 삭감 같은 개혁을 추진했다. 최근 학생 4명이 자살했다고 하지만 학점 부진과 관련된 자살은 1명밖에 없다. 이번 위기가 개혁의 후퇴로 이어진다면 과학적이어야 할 KAIST가 가장 비과학적인 대응을 하는 셈이 된다. 정치사회 일각에서 KAIST의 개혁 후퇴를 부추기는 것은 국가사회의 장래를 도외시한 인기영합이다. 학생들은 최근 총회에서 ‘서남표식 개혁’을 실패로 규정한 안건을 부결시켰다. 한국 최고의 과학도들다운 성숙한 대응이다. 어제 열린 이사회도 서 총장의 거취와 그의 개혁조치에 대한 결정을 유보했다. 개혁의 부작용을 줄일 지혜는 필요하지만 개혁 자체를 포기하면 ‘세계적인 대학’으로 가는 길에서 멀어질 뿐이다. KAIST는 거의 100% 국민 세금과 기부금으로 유지되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형태의 대학이다. 이런 KAIST조차 세계 유수 대학들과 어깨를 겨룰 수 없다면 우리 과학기술의 장래와 국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서울대 등 다른 대학들도 한국의 네이처 논문 실적을 보면서 각성하기 바란다.}

    • 2011-04-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사설]고객정보 흘리는 나라는 금융 후진국이다

    선진국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척도 가운데 하나는 개인의 신용 관련 정보가 얼마나 잘 관리되느냐를 보는 것이다. 소비자 금융이 발달한 서유럽 국가에서 인터넷뱅킹 비밀번호는 우편으로 1차 번호가 고지되고 고객이 이를 입력한 뒤 수정하는 방법으로 발급된다. 은행 직원이 고객의 비밀번호를 원천적으로 알 수 없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다. 현대캐피탈의 전산시스템이 해킹을 당해 42만 명의 고객정보가 유출됐다. 고객 4명 중 1명꼴이다. 유출된 정보에는 고객 이름 주민번호 e메일주소 휴대전화번호가 포함돼 있다. 고객 1만3000명은 비밀번호까지 유출됐다. 회사 측은 나머지 고객에게도 유출 가능성에 대비해 비밀번호를 바꿔 달라고 부랴부랴 부탁했다. 현대캐피탈 측은 금융사고는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이중 삼중의 보안망이 가동되는 금융회사의 전산시스템이 대량으로 해킹당한 사실 자체가 심각한 사태다. 게다가 이 회사는 두 달간이나 해킹됐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캐피털 업계에서 시장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는 1위 업체가 해커에게 협박을 받은 뒤에야 해킹 사실을 알았다니 그 무신경이 놀랍다. 신용사회에서 계좌번호 비밀번호 등 신용 관련 정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개인정보 유출사고는 가끔 있었지만 금융권의 정보 유출은 그냥 넘길 수 없다. 2008년에도 일부 저축은행의 고객정보가 유출되는 해킹 사고가 있었다. 당시 제2금융권이 보안시스템 미비, 정보기술(IT) 전문인력 부족 등으로 보안에 취약한 것으로 지적됐는데 다시 문제가 터졌으니 금융당국의 책임이 작지 않다.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비교할 때 금융회사의 보안이 전반적으로 취약하다. 외부로부터의 해킹은 아니더라도 금융회사 내부 직원에 의한 고객정보 유출 사건도 가끔 있었다. 금융회사는 내부 직원이라도 비밀번호 등 고객의 정보를 알아내 외부로 빼돌릴 수 없도록 계좌를 여는 단계에서부터 다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금융감독원은 비슷한 금융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한 근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 2011-04-1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송평인]민주화 운동과 보상

    남미 아르헨티나 군사정권 시절 실종자들의 가족 모임인 ‘5월 어머니회’는 강령으로 금전적 보상을 거부한다. 생명은 생명 그 자체로 가치가 있지 금전으로 대체할 수 없으며, 금전적 보상은 인간 생명을 금전으로 격하시키는 일이라는 이유다. 이들은 기념물 건립도 거부한다. 기념물이 민주화 투쟁 정신을 돌 속에 가둬 희석시키는 것을 우려해서다. 이들은 자식의 희생정신이 현재의 투쟁을 통해 기념되기를 원한다. ‘5월 어머니회’의 높은 기준이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일각에서 통하지 않았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교육부 장관이던 1998년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한 피해를 인정받아 억대의 보상금을 받았다. 이 전 총리가 나중에 이 돈을 자신이 만든 ‘오월정의상’을 위한 기금으로 내놓기는 했지만 민주화운동 경력으로 국회의원을 거쳐 장관까지 된 사람이 보상금까지 신청해 받았다고 해서 말이 많았다. 비단 이 전 총리의 일만은 아니다. 당시 정치인 35명이 비슷한 보상을 받았다. ▷정성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어제 “국민은 민주화운동에 대해 보상해줄 만큼 다 해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떤 보상을 가리키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권력 장악과 명예회복, 그리고 어떤 이들에게는 금전적 보상도 있었다”고 답했다. 가톨릭농민회에서 활동하고 ‘우리 밀 살리기 운동’을 주도하며 평생 운동권으로 살아온 그의 말이어서 관심을 끌었다. 그의 눈에는 끊임없이 민주화 경력을 들먹이며 뭔가 요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시대착오적으로 보이는 것 같다. ▷2000년 8월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가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민주화운동 관련 사망 혹은 부상자 752명에게 400억 원의 보상이 이뤄졌고 4012명에게 생활지원금 명목으로 682억 원이 지원됐다. 민주화보상심의위는 내년쯤 활동을 종료할 계획이다. 민주화운동으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을 위한 금전적 보상은 필요하다. 그러나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한국 민주화운동과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글에서 “광주항쟁 등의 덕으로 최고 권력의 자리까지 오른 사람들이 거액의 보상까지 받아낸 것은 민주화운동 세력을 ‘경력을 팔아 돈을 챙기려는 탐욕의 화신’으로 보이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04-0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송평인]일본산 생태

    생태는 얼리지 않은 명태를 말한다. 명태는 먹는 방법에 따라 이름이 다양하다. 얼린 명태는 동태, 말린 명태는 건태로 부른다. 건태도 계절에 상관없이 말린 것은 북어라고 하지만 특히 동해안에서 겨울철에 얼리고 녹이기를 반복해서 말린 것은 색깔이 누르스름하다고 해서 황태라고 부른다. 코다리는 내장을 제거하고 반쯤 건조한 명태를 말하고 노가리는 2, 3년 된 새끼 명태를 이르는데 주로 말려서 먹는다. 명란은 명태의 알, 창난은 명태의 창자인데 각각 명란젓 창난젓 등 젓갈로 담가 먹는다. ▷명태는 세계에서 유독 한국 사람이 좋아하고 많이 먹는 생선이다. 명태의 한자 明太는 중국에서 온 말이 아니고 우리말이다. 일본은 명태를 ‘스케토다라’ 또는 ‘스케소다라’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한국의 명태를 외래어로 받아들여 ‘멘타이’라고 많이 부른다. 일본에는 생태탕도 동태전도 북엇국도 없다. 명태를 어묵 등의 원료로 쓸 정도다. 서양에서도 명태를 대구과로 분류하긴 하지만 알래스카 폴럭(Alaska Pollack)이라고 해서 대구(Cod)와 구별하고 잘 먹지는 않는다. 영국의 전통 음식 ‘피시 앤드 칩스’에는 대구가 주로 쓰이고 명태는 값싼 대안으로나 쓰인다. 프랑스에서도 대구 요리는 많지만 명태 요리는 없다. ▷명태는 과거 동해에서도 많이 잡혔지만 지금은 해양환경 변화로 국내 연근해에서 모습을 감춘 지 오래다. 오늘날 명태는 주로 일본 홋카이도 인근 바다, 러시아 인근 오호츠크 해와 베링 해 등에서 잡힌다. 국내에서 소비하는 명태는 거의가 러시아와 일본에서 수입한다. 대부분 러시아산인 동태는 원양에서 잡아 냉동한 상태로 운반된다. 짧은 수송기간이 생명인 생태는 연근해에서 잡아 냉장상태로 운반하기 때문에 100% 일본에서 들여온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따른 방사능 오염 우려 때문에 서울 가락동과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일본산 생태를 찾는 손님이 사라졌다고 한다. 일본산 갈치나 고등어도 마찬가지지만 갈치나 고등어와 달리 생태는 일본 말고는 수입해올 수 있는 나라도 없다. 이대로라면 생태탕을 전문으로 파는 식당도 줄줄이 문을 닫을 판이다. 언제부턴가 한국산 생태가 사라져 아쉽더니 수입 생태도 구경하기 어려운 날이 오는 건가.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03-3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송평인]온라인 축약어

    “I heard you slept with Alex. Did you really?(알렉스랑 잤다면서, 정말?)” “lol no(웃기네, 아니야)” LOL은 (I'm) laughing out loud의 축약어. ‘(나는) 크게 소리 내 웃다’는 말로 ‘정말 웃긴다’는 뜻으로 쓰인다. 놀랄 때 OMG란 말도 자주 쓴다. oh! my god의 준말이다.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옥스퍼드 영어사전(OED)에 최근 휴대전화 메시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터넷 채팅에서 많이 쓰이는 온라인 축약어가 다수 포함됐다. FYI(for your information·참고해)도 들어갔다. ▷오늘날 어느 언어권에서나 온라인에서 이런 축약어가 널리 쓰인다. 프랑스에서는 ‘안녕 잘 지내?(bonjour, ¤a va?)’는 ‘bjr, sava?’로 줄여 쓴다. 독일에서는 bgwd라고 하면 ‘(Ich) bin gleich wieder da’를 줄인 말로 ‘금방 돌아올게’라는 뜻이다. 스페인에서는 고마워(gracias)를 acias로 축약한다. 한국도 이 분야에서 최고 수준이다. ‘급질’은 급한 질문의 약자다. ㅋㅋ(키득키득)처럼 글자의 첫 음소만 따서 쓴 말이나 넘(너무)처럼 소리를 줄여 쓴 말도 있다. ▷미국의 회사 보고서에 FYI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10, 20년 전만 하더라도 회사원이 이런 말을 쓰면 상사에게 비속하다는 느낌을 줘 혼이 났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사실 FYI는 1941년부터 메모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OMG는 1912년부터 편지에 등장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고 옥스퍼드 측은 밝혔다. 옥스퍼드가 이번에 받아들인 인터넷 축약어는 모두 머리글자를 딴 약자다. 다른 종류의 축약어, 즉 b4(before, 전에), U(You, 너), thx(thanks, 고마워) 같은 영어의 조어(造語) 구조를 파괴하는 용어는 포함되지 않았다. ▷온라인 축약어는 쓰는 사람에게 시간을 절약해주는 장점이 있다. 그렇다고 꼭 빠른 의사소통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오늘날 많은 부모가 청소년 자녀가 쓴 메시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게다가 한글은 머리글자를 딴 약자가 발전하기 힘든 구조다. 많은 온라인 축약어가 국어의 조어 구조를 훼손한다. 국어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세대에 통용되는 보편성을 가진 축약어가 다수 출현하길 기대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03-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송평인]신정아 정운찬 진실공방

    2007년 미국 예일대 박사학위 위조 사건으로 세상을 소란하게 했던 신정아 씨가 출간한 자전에세이 ‘4001’에는 실명이 다수 등장해 진실공방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신 씨와 뜨거운 관계에 있던 변양균 전 대통령정책실장은 재임 시절 정운찬 당시 서울대 총장을 싫어하는 티를 냈다. 정 총장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일도 있었다. 변 실장은 신 씨에게서 정 총장이 치근거린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던 모양이다. 신 씨가 그제 출간한 자전에세이 ‘4001’에서 폭로한 내용이다. ▷‘4001’에는 정 전 총리가 서울대 총장 재임 시 서울대 미술관 운영에 대해 신 씨에게 수시로 연락해 자문하고, 미술관 운영에 젊고 추진력 있는 신 씨가 적격자라고 치켜세우면서 교수로 임용하겠다는 제의를 한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박사학위 위조 사건이 터진 직후 정 전 총리는 검찰에서 서울대 교수직을 제의한 적도, 미술관장직을 제의한 적도 없다고 진술했다. 신 씨는 검찰 조사를 받던 중 그 얘기를 듣고 “실소가 나왔다”고 책에 썼다. ▷신 씨는 “정 총장이 나를 단순히 일 때문에 만나는 것 같지 않았다”며 “나를 만나자는 때는 늘 밤 10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고 썼다. 그는 또 “한번 팔래스 호텔에서 만났을 때는 자주 만나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여자라는 얘기까지 했다”며 “그날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정 총장은 차마 표현하기 어려운 돌발 행동을 보여줬다”고 썼다. 이에 대해 정 전 총리는 “거짓말이기 때문에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다. 가짜박사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신 씨와 정 총장이 만나는 자리에 동석한 이들도 여럿이다. ▷검찰은 신 씨와 정 총장 간의 통화 기록을 조사했다. 신 씨는 “그중에는 정 총장이 잇달아 여러 통의 전화를 했는데 내가 전혀 받지 않은 기록들도 나왔다”고 썼다. 신 씨는 “나를 조사하던 검사들은 통화 기록에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그 다음부터 서울대와 관련된 이야기는 묻지도 듣지도 않고 그냥 덮으려고만 했다”고 회고했다. 통화 기록이 교수나 미술관장직 제의에 관한 진실을 밝혀주지는 못하겠지만 밤 10시 전후의 통화가 있었다면 둘 사이의 정황을 추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03-2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