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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경임 논설위원입니다.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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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7~20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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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10%
건강10%
  • [횡설수설/우경임]남남끼리 가족

    결혼과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았더라도 함께 산다면 가족일까, 아닐까. 남남이지만 함께 주거를 하면서 경제 단위로 기능하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 친족이 아닌 가족을 꾸린 인구가 지난해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1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러한 새로운 가족의 형태가 늘어나면서 전통적인 가족의 정의가 도전받고 있다. ▷1인 가구는 지난해 전체 가구의 33%를 돌파해 20년 만에 두 배가 넘게 증가했다. 비(非)친족 가족은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봐야 한다. 우리나라 1인 가구는 학업과 직장, 이혼과 사별 등 선택의 여지없이 혼자 살게 된 비율이 높다. ‘혼자 살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1인 가구를 택한 비율은 1인 가구가 된 전체 원인 중 16.2%에 불과하다(통계청, 2021 통계로 보는 1인 가구). 외로움도 덜 수 있고, 규모의 경제도 가능하니 1인 가구로서는 동거가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비혼 남녀나 동성 친구끼리 같이 살거나, 어르신끼리 서로 돌보며 노후를 보낸다. 공유주택같이 공간만 합쳐 사는 경우도 있다. ▷동거인이 결혼한 배우자보다 만족도가 높다는 실태조사 결과도 있다. 2020년 기준으로 동거인에게 만족한다는 비율은 63%였는데, 이는 배우자 만족도(57%)보다 6%포인트 높은 것이다. ‘남보다 못한 가족’이 현실이란 얘기다. 아무래도 가족 관계에서 오는 책임이나 의무에서 비켜나 있고, 남남이다 보니 개인을 보다 존중하게 돼 갈등이 덜하다고 한다. ▷우리 사회 인식도 빠르게 바뀌고 있는 것 같다. 국민 10명 중 7명은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니어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라는 데 동의했다(여성가족부, 2020년 가족다양성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 그러나 법으로 정한 가족의 정의가 협소하다 보니 비친족 가족은 청년대출, 신혼부부청약, 아동수당 등 각종 제도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1인 가구가 소득은 낮고 의료비 지출은 많은데도 소외돼 있는 것이다. 누구를 가족으로 볼 것인가를 합의하는 데 진통이 따르겠지만 언제까지 이들을 제도권 밖에 둘 수는 없다. ▷40대 들어 친구와 동거를 시작한 경험담을 쓴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작가 김하나, 황선우 씨.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보통의 가족과 별반 다르지 않다. 빨래 개기 같은 가사 분담으로 티격태격하고, 집값 대출을 갚기 위해 고민한다. 이들은 결혼은 아름다운 일이라는 전제 아래 ‘그렇지 않더라도 어떤 시절을 서로 보살피며 의지가 된다면 또한 충분히 따뜻한 일 아닌가’라고 묻는다. 그러고는 ‘개인이 서로에게 기꺼이 그런 복지가 되려 한다면 법과 제도가 거들어주어야 한다’고 했다. 결혼과 출산을 하고 싶어도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는 세태를 생각하면 더욱 귀담아들을 말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2-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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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제안 톱10’ 논란 [횡설수설/우경임]

    ‘가요 톱10도 아니고….’ 국민의 소리를 적극적으로 정책에 반영하겠다며 대통령실이 공개한 국민제안 톱10. 그런데 열흘간 투표가 끝나기도 전에 국민투표를 당장 중단하라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국민제안 톱10은 대통령실이 지난달 신설한 소통 창구인 국민제안에 올라온 약 1만2000건의 청원 중에 10개를 추려 온라인 국민투표에 부친 것이다. 현재 ‘대형마트 의무 휴업 폐지’가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고 있다. 이어 ‘9900원 K-교통패스 도입’ ‘휴대전화 모바일 데이터 잔량 이월 허용’ 등의 순서다. ▷문제는 국민제안 톱10이 이른바 숙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인기투표라는 데 있다. ‘최저임금 차등적용’ 배너를 예로 들면, ‘현재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최저임금을 지역·업종별로 차등 적용’, 달랑 이 한 줄의 설명과 함께 ‘본 제안이 마음에 드시면 하단의 ‘좋아요’를 눌러 주세요’라고 되어 있다. 최저임금이 얼마인지, 지역과 업종은 어떻게 분류되는지 같은 기본적인 판단의 근거는 제공되지 않는다. 물론 ‘싫어요’를 선택할 수도 없다. 댓글 같은 공론의 장도 열려 있지 않다. ▷대통령실은 지난 정부의 국민청원이 오히려 세대·이념·젠더 갈등을 촉발했다는 문제의식 아래 국민제안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청원 내용과 청원자를 공개하면 국민청원이고, 이를 비공개하면 국민제안이라는 설명이다. 사실상 같은 제도다. 국민청원 당시에도 정부와 국회의 갈등 조정 과정이 생략된 역기능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한 줄짜리 설명과 인기투표로 진행되는 국민제안도 이런 우려를 피해 갈 수 없다. ▷‘최저임금 차등적용 관련 국민제안 온라인 투표 참여합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던 소상공인들이 모인 카페마다 국민제안 순위를 올리자는 독려 글이 올라오고 있다. 소상공인들의 집단행동에 맞서 아르바이트생들은 “지금도 최저임금과 주휴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국민제안이 오히려 양측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인기투표로 정책을 결정하면 갈등이 조정되기보다 증폭되기 쉽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계가 달리거나 건강이 달린, 누군가에게는 삶이 송두리째 바뀔지도 모를 정책들을 온라인 인기투표로 결정한다는 그 발상에도 한숨이 나오지만, 온라인 투표 과정 자체도 허술하다. 이해관계로 뭉친 단체들이 조작 투표를 해도, 한 사람이 기기를 바꿔 여러 차례 투표를 해도 걸러낼 방법이 없다. 이렇게 수렴된 국민 의견이 어떤 대표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바로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하니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는 비판이 나온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2-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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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Z세대의 불매운동[횡설수설/우경임]

    X세대, 밀레니얼(Millennial)세대, Z세대…. 인위적으로 나누는 세대론이 허구라는 반박도 많지만 동시대를 살며 경험한 역사적 사건이 그 세대의 사고방식을 결정하기 마련이다. 요즘 세대론의 중심에는 MZ세대가 있다. 30대인 밀레니얼세대와 20대인 Z세대를 묶어 부르는 말로 디지털 플랫폼이라는 시공간적 혁명을 태어나면서부터 경험한 세대다. 정보기술(IT) 및 모바일 기기에 익숙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MZ세대가 그들의 놀이터 중 하나였던 페이스북을 떠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 대해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도 시작된다”고 쓴 글을 페이스북이 트위터와 달리 방치했다는 이유다. MZ세대의 눈치를 보던 코카콜라와 유니레버 등 대형 광고주들이 페이스북 유료 광고 중단을 발표했고 그 직후인 26일 페이스북 주가가 8.3% 하락해 하루 만에 시가총액 560억 달러(약 67조4000억 원)가 날아갔다. 결국 페이스북은 자사 규범을 위반한 정치적 게시물에 경고 딱지를 붙이겠다며 항복을 선언했다. ▷미국 스타벅스는 직원들의 ‘BLM’(Black lives matter·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티셔츠 착용을 금지했다가 불매운동의 역풍을 맞았다. 페이스북과 스타벅스는 SNS를 통해 순식간에 모였다가 흩어지며 행동에 나서는 MZ세대의 힘을 간과한 것 같다. 반면 정치사회적 이슈에 침묵했던 구찌 루이비통 등 명품 브랜드가 이번에는 인종차별 반대 의지를 분명히 했고, 나이키 아디다스 등은 이를 활용해 마케팅에 나섰다. ▷보통 합리적 소비라면 가격 대비 성능이 좋아야 했다. 그런데 Z세대는 착한 기업에 지갑을 열고 나쁜 기업에 지갑을 닫는 ‘미닝 아웃’ 소비를 한다. 미닝(meaning)과 커밍아웃(coming out)의 합성어로 내 돈을 가치 있는 데 쓰겠다는 뜻이다.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로 반일 불매운동이 한창이던 지난해 7월 당시 Z세대는 ‘일본인에게 호감이 간다’는 응답이 51%로 모든 세대를 통틀어 가장 많았음에도 불매운동 참여율은 76%에 달했다.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이 고착되면서 청년세대는 인종, 계급, 지역적 요인보다 그 세대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겪는 불평등이 더 심각한 세상을 경험해왔다. 이들은 물리적 거리나 인종적 차이에 상관없이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처지를 공감하고 연대한다. 이번 ‘#BLM’ 운동으로 결집했고 소비를 통해 기업을 압박하는 영리함을 보였다. 다음 시대의 주인공, MZ세대가 움직이고 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0-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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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쁜 부모 방치하는 더 나쁜 정부[광화문에서/우경임]

    23kg 아홉 살 아이가 컴컴한 여행가방 안에 갇히던 순간 얼마나 무서웠을까. 뜨거운 지붕 위를 맨발로 걸어 집을 나온 아이는 얼마나 겁이 났을까. 한 아이는 죽고 한 아이는 살았다. 심장이 벌렁거려 읽기조차 힘든 뉴스들이었다. 읽기도 힘든 뉴스를 쓰기로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엉엉’ 우는 소리나 띄엄띄엄한 언어로밖에 고통을 호소할 수 없는 아이들이 또 잊혀질까 봐. 아무런 힘이 없어 언로가 막힌 아이들의 인권은 쉽게 무시된다. 우리는 평소 ‘살려 달라’는 아이들의 비명을 외면하다가 죽음으로 증명하고 나서야 분노한다. 2013년 여덟 살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경북 칠곡군 사건 이후 아동학대특례법이 제정됐다. 가해 부모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다. 2016년에는 추운 겨울 화장실에서 찬물 학대를 받다가 일곱 살 신원영 군이 숨졌고, 2017년에는 다섯 살 고준희 양이 친부에게 살해당해 암매장됐다. 그로부터 1년 뒤 위기 아동을 찾아내기 위해 공적 정보를 통합한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이 도입됐다. 그런데도 비극이 재발했다. 정부는 부산을 떨며 민법상 친권자의 징계권 삭제, 어린이집과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동 전수조사 등 뒷북 대책을 내놓았다. 최근 두 건의 아동학대 사건 모두 사전에 경고음이 울렸다. 충남 천안 여행가방 학대 사건의 경우 한 달 전 병원의 학대 의심 신고가 있었다.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경남 창녕 맨발 소녀 역시 학대의심 아동으로 등록돼 있었으나 행정력은 딱 전산망까지만 닿았다. 아이를 구한 건 목숨 건 탈출이었다. 이쯤에서 경찰과 지방자치단체, 아동보호전문기관을 비난하기는 쉽다. 하지만 아동학대가 발견됐는데도 왜 아동을 보호할 수 없었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학대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다 치자. 시퍼렇게 멍든 아이가 부모의 위협에 “넘어져서 다쳤다”고 한다. 경찰이 증거 수집 없이 “내 자식 내가 가르친다”는 부모로부터 아이를 데리고 나온다면, 그 경찰은 어떤 책임을 지게 될지 모른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나서 피해 아이를 가해 부모와 분리시켰다고 한다면, 아마 그 아이는 피해가 더 심각한 아이에게 밀려 갈 곳이 마땅치 않을 것이다. 전국에 72곳뿐인 학대피해 아동쉼터는 늘 포화 상태다. 올해 아동학대 방지 예산은 285억 원으로 사실상 표(票)를 가진 부모의 수당인 아동수당 예산(2조2883억 원)의 1.2% 수준이다. 학대받은 아동을 구출할 수단과 시설이 마땅치 않다면 당연히 예방적인 개입이 어려워진다. 아동학대가 드러나면 부모는 악마가 되고 엄벌하라는 공분이 인다. 관련 부처 장관들이 모여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이를 약속한다. 부모의 잔혹한 행위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예산과 인력을 들여 아동보호 시스템을 구축할 책임이 있는 정부는 그 뒤에 숨어버린다. 엄벌을 한들 아이는 살아 돌아오지 않고, 부모가 감옥에 간 동안 남은 아이들의 삶이 망가진다. 매년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3만 건이 넘는다. 올해 예상되는 출생아 수(27만 명)의 10%가 넘는 아이들이 학대에 노출돼 있다는 얘기다. 이 아이들을 보호하지 않으면서 아이는 낳으라는 정부, 나쁘다고 생각한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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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룸살롱은 열고 감성주점은 닫고… 원칙 잃은 서울시 방역

    서울시가 룸살롱 등 일반유흥업소 집합금지명령을 집합제한명령으로 완화한 첫날인 그제 서울 강남구 역삼동 D가라오케(룸살롱) 직원인 20대 여성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해당 가라오케 동료 등 접촉자 53명을 자가 격리했고 진단검사가 진행 중이다. 이 여성은 방문판매업체 ‘리치웨이’ 관련 감염인 것으로 확인됐지만 단 하루만 늦게 확진 판정을 받았어도 D가라오케가 집단 감염의 불씨가 될 수 있었을 아찔한 상황이었다. 서울시는 룸살롱 등 일반유흥업소는 방역수칙 준수를 전제로 영업 재개를 허용한 반면 클럽 콜라텍 감성주점 등 무도(舞蹈)유흥업소와 코인노래방은 영업 금지를 유지했다. 기준을 알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오자 서울시는 “그동안 룸살롱을 통한 코로나 전파 사례가 없었고, 이용자들의 밀집·밀접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룸살롱 같은 일반유흥업소는 1m 거리 두기나 잦은 환기 등 방역수칙이 준수되기 어렵고 은밀한 이용이 많아 감염 추적이 어렵다는 점에서 영업 재개 허용에서 다른 업종보다 우선시해야 할 이유가 없다. 방문판매업체 노인요양시설 지하철 등에서 산발적인 집단 감염이 계속 발생하면서 수도권 확진자는 최근 2주간 전체 확진자(657명)의 81%를 차지했다.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깜깜이 환자 비율도 10%를 넘어섰다. 수도권에서 확진자 수가 폭증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가운데 서울시의 일관성 없는 방역이 이를 부추길까 우려된다. 방역당국은 수도권 환자 폭증 가능성에 대비해 중증환자 병상 및 생활치료시설 확보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런데 정작 서울시가 앞장서서 방역수칙을 완화한 것은 국민들의 경각심을 낮추고 의료 시스템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민 안전 앞에서는 늑장대응보다 과잉대응이 낫다”고 강조했다.}

    • 2020-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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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라인 시험 커닝[횡설수설/우경임]

    과목마다 방대한 분량을 외워야 하는 의대 시험은 단기 암기력의 싸움이라고들 한다. 인기 전공은 성적순으로 배정되므로 시험 스트레스도 엄청나다. 인하대 의대 1, 2학년 109명 중 91명이 3, 4월 시험에서 집단 커닝으로 0점 처리되는 일이 벌어졌다. 온라인 시험을 끼리끼리 한곳에 모여 치르거나 전화나 메신저로 정답을 공유한 사실이 적발된 것이다. 코로나19로 대부분 대학이 온라인 중간고사를 치른 상황에서 ‘터질 게 터진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단 한 번의 시험이 인생을 바꾼다면…. 부정행위의 비용보다 그로 인한 효용이 커 보일 때 커닝의 유혹이 강해진다. 조선시대 과거시험부터 근래 대입과 공무원시험까지 부정행위는 늘 있었다. 커닝 기법은 기술 발달에 따라 교묘해졌다. 1993년 광주대 입시에선 시험장을 먼저 나온 수험생이 남은 수험생에게 정답을 삐삐로 전송했다 적발됐다. 2004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선 이른바 공부 잘하는 ‘선수’가 시험장에 휴대전화를 숨기고 들어가 ‘도우미’ 후배들에게 답을 보냈고 이들이 응시생에게 다시 답을 전송해주는 부정행위가 있었다. 2013년 연세대 법학대학원에서는 교수 컴퓨터에 해킹 프로그램을 설치해 시험지를 빼낸 사건이 있었고, 2014년 토익 시험에선 무선 영상 송수신 장비로 촬영한 정답을 외부에 대기하던 중개인이 무전기로 응시자에게 전달했다. ▷온라인 시험처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면 악마의 속삭임은 더욱 커질 것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 대졸 공채 필기시험인 삼성직무적성검사(GSAT)를 온라인으로 치렀다. 응시자는 컴퓨터로 시험을 치르되 스마트폰으로 응시생의 얼굴과 손, 모니터, 마우스가 나오도록 촬영해 실시간 전송토록 했다. 감독관은 이 화면을 원격으로 모니터링했다. 만약 부정행위가 적발되면 5년간 삼성 공채에는 응시할 수 없도록 했다. 반면 인하대 의대를 포함해 대부분의 대학 시험은 온라인 화면에서 정답을 고르는 식일 뿐 모니터링은 이뤄지지 않았다. ▷인하대 의대에는 불이익을 예상하면서도 부정행위에 참여하지 않은 소수의 학생이 있었다. 부정행위에 동조하지 않으면 성적이 낮을 수 있거니와 소속 집단에서 따돌림을 당할 수 있는데도 이를 거부했다. 부정행위를 근본적으로 예방하는 것은 내재된 도덕성이다. 그럼에도 원격교육의 발전을 위해선 시험의 공정성을 담보할 제도적 보완이 필수적이다. 부정행위 시도가 어렵도록 시험을 설계하고 기술적인 장치도 보완해야 한다. 어렵게 한발 내디딘 온라인 교육이 도덕적 해이를 막지 못해 후퇴해서는 안 될 것이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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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의연 사태서 드러난 정부와 NGO의 공생관계[광화문에서/우경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내부고발로 시작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사태에서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을 봤다. 정부와 정부를 감시해야 할 비정부기구(NGO)의 끈끈한 공생관계 말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지워진 역사가 될 뻔했던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했고 이를 외면하던 한일 정부의 행동을 이끌어냈다. 한국 시민사회의 척박한 토양 속에서 정대협이 거둔 성과는 여성운동으로서, 시민운동으로서 독보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 할머니가 “30년간 이용당했다”며 피해자 중심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던 활동을 폭로하기 전까지는. 정의연은 1990년 설립된 정대협과 한일 위안부 합의에 반발해 2016년 설립된 정의기억재단이 2년 전 통합해 출범했다. 이번 정부 들어 정의연에 대한 국고보조금은 연간 5억∼6억 원으로 수배가 뛰었다. 정의연이 진보 정부와 협력적 공생관계라면 보수 정부와는 적대적 공생관계를 맺으며 피해자보다 스스로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를 복기해 보자. 당시 외교부 당국자들은 할머니들을 일일이 설득하기보다 정대협과 타협하는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 뒤늦은 고백대로 정대협의 ‘친일 프레임’에 찍힐까 두려워서라기보다 시민단체를 포섭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손쉽게 통제하려는 관료적 속성의 발현이라고 본다. 윤 의원 역시 합의안에 대한 사전 설명을 들은 것은 인정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당사자인 할머니들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정부와 정의연의 결탁 사이에서 배제된 할머니들은 TV를 보고 위안부 합의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 타결 이튿날인 12월 29일.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을 만난 이 할머니는 “당신 뭣 하는 사람이에요? … 이렇게 한다고 알려줘야 할 것 아녜요. 나이 많아서 모른다고 무시하는 거예요?”라고 분개했다. 이후 정의연은 위안부 합의 파기를 주장했고 정부는 합의 후속 절차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가 정부를 좌지우지할 힘을 갖는다면 시민운동은 성공한 것인가. 2000년 초반 시민운동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출신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곳곳을 장악했다. 그 결과는 시민 없는 시민단체였다. 권력을 감시하는 시민단체가 권력이 되면 시민운동은 존재의 본질적인 이유가 없어진다. 학계에서는 2000년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 시행을 시민단체와 정부의 결탁이 시작된 계기로 본다. 재정적 자립이 어려운 NGO를 활성화한다는 취지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시민운동에 독이 됐다. 국고보조금을 선택적으로 주거나 뺏고, 활동가들을 각종 자문단에 참여시키면서 시민사회의 자율성이 크게 훼손됐다. 정권 코드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도는 갈수록 추락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절규에도 국회에 입성한 윤미향 의원은 여성·시민운동가로서 대표성을 상실했다. 코로나 이후 큰 정부의 탄생이 예상되는 가운데 이를 견제할 시민사회가 정의연 사태로 위축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시민운동의 순수성을 의심하게 만든 과오만으로도 윤 의원은 사퇴해야 한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0-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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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대 정원[횡설수설/우경임]

    아이가 콧물을 훌쩍거려도, 눈이 간지럽다고 비벼도, 피부 발진이 생겨도 쪼르르 병원에 달려갔다. 동네 병원이 상가 건물마다 들어서 있으니 평소 의사 부족을 실감하지 못했다. 그런데 개구쟁이인 아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피가 줄줄 흐르는데 병원을 찾지 못해 크게 당황한 적이 있다. 흉터 제거를 하는 성형외과는 보였지만 봉합 수술을 하는 외과는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상급병원 응급실로 가서 꿰맸다. ▷일은 고되고 의료사고 위험이 큰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 부족 현상은 심각하다. 응급의료·중증외상센터는 만성 구인난에 시달린다. 지방 산모들은 산부인과를 찾아 원정 출산을 간다. 의료계는 의사 수는 충분하나 낮은 수가로 배분이 왜곡된 수급 불균형의 문제라고 본다. 하지만 건강보험 적용 확대 및 고령화에 따른 의료 수요를 의사 수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당청은 2006년부터 3058명으로 동결된 의대 정원을 공공의료 중심으로 500명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의대 졸업자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1.9명)보다 적은 7.9명,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OECD 평균(3.3명)보다 적은 2.3명(한의사 제외하면 1.9명)이었다. 반면 의료계는 연평균 의사 증가율이 3.1%로 OECD 평균(1.2%)보다 2.6배 높다는 것을 근거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데 반대한다. 이런 속도면 의사 수가 곧 OECD 평균을 웃돌 것이라는 주장이다. ▷의대 정원 확대는 정부와 의사, 국민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린다. 의료계 내에서도 입장이 조금씩 다른데 특히 낮은 수가를 박리다매로 보충하던 개원의들은 반발할 것이다. 전문의가 되기까지 10년 동안 투입한 비용과 노력을 생각하면 납득 못 할 일도 아니다. 우수 학생들의 의대 편중이 심화되고 사교육 시장도 들썩거릴 수 있다. 이렇게 복잡한 함수다 보니 어느 정부도 의대 정원을 공론화하지 못했다. ▷코로나19는 우리 보건의료 시스템의 관성을 깨는 충격을 가했고 그 방향을 틀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임상의사뿐 아니라 기초의학과 제약이나 의료기기 산업 분야에서 연구의사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월드 스타’가 된 우리 진단키트 업체들의 기술력 뒤에는 의사가 있었다. 우리는 코로나19 사태에서 우수한 인재들이 모인 의료계의 실력을 봤다. 의료계가 의대 정원 문제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갈 것으로 본다. 정원이 늘더라도 의사로 배출되기까지는 10년이 걸릴 테니 그럴 시간은 충분하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0-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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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의 공직윤리[횡설수설/우경임]

    ‘사랑이 넘치고 늘 사랑을 속삭였던 사람’ ‘소고기 스튜로 가족들에게 이름을 날렸던 사람’.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가 10만 명에 근접한 24일 뉴욕타임스(NYT)는 1면을 비롯한 4개 면에 사망자 1000명의 이름과 각각 설명을 단 부고 기사를 게재했다. ‘헤아릴 수 없는 손실’이라는 제목처럼 이들은 사망자 1, 2, 3…이 아니라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과 친구들이었다. NYT가 긴긴 부고 기사를 작성 중이었던 22, 23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 소유 골프장인 버지니아주 ‘트럼프 내셔널’에서 골프를 치고 있었다. ▷코로나19로 골프를 중단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76일 만에 필드에 나간 것은 경제 재개 의지를 보여주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2014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에볼라 사태 당시 골프를 쳤던 것을 비판한 그의 트윗 글이 회자되고 있다. 이런 ‘내로남불’ 행태가 없다. ▷문제는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트럼프식 정의가 미국 공직사회를 지탱하는 가치인 정직과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세금으로 인맥 관리용 만찬을 즐기고, 보좌관에게는 반려견 산책과 세탁물 수거 등 사적인 심부름을 시켜 ‘갑질’ 논란으로 도마에 올랐다. 윌리엄 바 법무장관은 ‘러시아 스캔들’ 위증으로 유죄가 인정된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기소를 취소해 사법 정의를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부동산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는 취임 이후 외국 정상과의 회담을 본인 소유 플로리다 리조트에서 열고, 그 호텔·리조트에 연방공무원을 1600박 이상 묵게 하는 등 공사 구분이 없다. 딸과 사위가 버젓이 국정을 휘젓는다. 그의 눈높이에선 ‘부하 직원에게 개 산책시킨 게 뭐가 문제냐’ 싶었을 것 같다. 트럼프는 국무장관의 갑질 논란에 대해 “그는 (보좌관에게) ‘내 개를 산책시켜 줄 수 있느냐. 나는 김정은과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을 것”이라고 감쌌다. ▷트럼프와 골프를 쳤던 이들을 인터뷰해 ‘커맨더 인 치트(Commander in Cheat·속임수 사령관)’란 책을 쓴 스포츠 기자 릭 라일리는 “트럼프가 골프를 치듯, 그러니까 규칙은 마치 다른 이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처럼 대통령직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한다”고 했다. 골프에서 속임수를 써서라도 그저 이기는 데만 몰두하는 것처럼 국정을 운영한다는 것이다. 국민의 안전은 안중에 없고 가족을 잃은 슬픔에는 공감하지 못하는 그의 행보가 곱게 보이지 않는다. 공직자로서 책임과 윤리, 헌신이 없는 대통령 한 명이 공직사회 전체를 오염시킨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0-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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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괴질’[횡설수설/우경임]

    주로 5세 미만 영유아들이 걸리는 가와사키병은 혈관에 염증이 생기는 급성 질환이다. 1967년 이를 처음 발견한 일본 소아과 의사의 이름을 따왔다. 해열제가 듣지 않는 고열이 5일 이상 계속된다. 눈이 충혈되고 입술이 붉게 변한다. 혀가 붓고 빨갛게 변해 마치 딸기처럼 된다. 피부 발진도 나타난다.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주로 일본 한국 등에서 나타나는데 한국의 경우 2014∼2016년 연간 5000명가량이 발병했다. ▷서구사회에선 생소한 이 질병을 코로나19가 소환했다. 유럽과 미국에서 가와사키병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어린이 괴질(怪疾)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 이탈리아 베르가모, 미국 뉴욕처럼 코로나19가 창궐했던 지역에서 환자가 속출했다. 다만 가와사키병과 달리 10대에서도 발병하고 혈관뿐 아니라 심장 신장 등 장기에도 염증을 일으킨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14일 이를 ‘소아 다기관 염증 증후군(MIS-C)’으로 명명했다. 미국 뉴욕 110명 등 15개 주에서 환자가 보고됐고 유럽에서도 영국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등에서 환자가 발생했다. ▷영국 미국 이탈리아 의료진은 코로나바이러스가 그 원인이라고 사실상 결론을 내렸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13일 “어린이 MIS-C 환자들의 60%는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으며 나머지 40%는 항체를 갖고 있었다”고 했다. 코로나19는 고령 환자의 치명률이 높아 ‘부머 킬러(Boomer Killer)’로 불리는 반면 어린이와 청소년은 비교적 가볍게 앓는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어린이들에게 이런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한다면 전적으로 다른 이야기가 된다. ▷우리 보건당국은 “현재까지 (MIS-C 환자가) 국내에서 확인되거나 알려진 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신종 인플루엔자A(H1N1)가 유행했던 2010년에도 가와사키병 환자가 늘었었다. 가와사키병은 유전적 요인을 갖고 있거나 바이러스 침투 시 면역체계가 이상 반응해 발병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감염병 사태 속에서 마냥 안심할 일은 아니다. ▷‘어린이 괴질’이라는 용어가 공포심을 야기하지만 코로나19에 감염된 어린이와 청소년에서 MIS-C의 발병 비율이 높지는 않은 데다 조기 발견하면 치료가 가능하다고 한다. 코로나19는 무증상 감염자가 숨은 전파자가 되고, 증상이 발현하기 직전에 전파력이 왕성하다. 바이러스가 온몸 이곳저곳을 공격해 합병증을 일으키고 사이토카인 폭풍이나 염증 증후군처럼 면역체계의 빈틈을 파고든다. 인류가 만나보지 못한 아주 고약하고 끈질긴 바이러스임에는 분명하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0-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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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교 선택권이 바꿀 코로나 이후의 학교[광화문에서/우경임]

    “왜 학교에 다니니.” 아이에게 물어본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엄마가 가라고 하니까’ ‘꼭 다녀야 한다면서’ 같은 답을 하거나 아니면 뚱한 표정으로 쳐다볼 것이 분명하다. ‘미래를 위해서’ 같은 정답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 대다수 아이들은 법으로 강제된 의무교육이라서 학교에 다닌다. 대학입시를 치르기까지 초중고교 12년 시간표는 배워야 할 과목과 내용, 수업시수 등이 빈틈없이 짜여 있다. 아이들은 그에 따라 똑같은 수학 문제를 풀거나 영어 단어를 외운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 그런데 코로나19가 공교육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공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가 수업 및 등교를 선택하는 전례 없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온라인 개학을 하고 원격 수업을 하는 동안 학생들은 재미있는 수업을 먼저 듣거나, 재미없는 수업을 1.5배속, 2배속으로 빠르게 돌려 들었다. 틀어만 두기도 한다. 공부에 의욕이 있다면 같은 내용을 다룬 인터넷 강의를 찾아 들었다. 반드시 이수해야 할 수업이 정해져 있어도 교실에 꼼짝없이 앉아 있는 것에 비하면 상당한 자율성을 갖는다. 온라인 수업을 학교 밖 강의와 비교할 수 있다는 점도 교육 수요자인 학생에게 힘을 실어준다. 여기에 더해 학생과 학부모는 등교 개학 이후 학교를 갈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가정학습을 하면 연간 2주 내외는 등교하지 않아도 출석으로 인정해 준다. 사실상 등교 선택권이 주어진 셈이다. 이태원발(發) 집단 감염으로 코로나19의 지역사회 확산 우려가 큰 상황에서 입시가 임박한 고3과 중3을 제외하고는 가정학습을 선택하는 비율이 꽤 높을 것이다. 애초에 학교에 왜 가야 하는지 몰랐던 학생들과 이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학부모의 이해가 일치할 가능성이 크다. ‘학교의 미래, 미래의 학교’의 저자 김재춘 영남대 교수(전 교육부 차관)는 “학교가 자생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나. 강제로 다니게 하고 그래야 상급 학교 진학 자격을 주므로 유지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200년 전 탄생한 근대 학교의 유효기간이 코로나19 사태로 더 짧아질 것 같다”고 했다. 등교가 미뤄진 두 달여 동안 학교는 온라인 개학을 했고 교사는 원격 수업을 제공했다. 누구도 총대를 메지 않으려던 미래 교육이 최소한 5년은 앞당겨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수업·등교 선택권이 원격 수업만큼이나 학교를 바꿀 것이라 생각한다. 지난해 학업을 중단한 초중고교생은 5만2539명. 이미 탈(脫)학교 흐름이 거센데 코로나19로 ‘꼭 학교에 가야 하나’는 의문이 커지기 시작했다. 수업과 등교의 선택권을 경험한 학생들은 획일적인 공교육에 코로나 이전처럼 순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혁신이 두려운 교육 공급자도, 입시 경쟁으로 앞만 보던 수요자도 코로나19 사태로 깨달았다. 네모난 교실에 모여 책상 줄을 맞춰 앉아 똑같은 교과서를 배우는 것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지식이라면 학교 밖에도 배울 곳이 널려 있다. 코로나 이후, 학교의 기능과 역할이 재정립되지 않는다면 학생들은 영영 학교로 돌아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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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시대의 효도[횡설수설/우경임]

    포항의료원에 두 달 넘게 입원 중인 104세 최모 할머니는 국내 최고령 코로나19 확진 환자다. 어제 최 할머니의 가슴에는 붉은색 카네이션이 곱게 달렸다. 가족들과 만날 수 없어 쓸쓸히 어버이날을 보낼 할머니를 위해 의료진이 달아드렸다. 혹시라도 외로움과 상심이 깊어져 최 할머니의 병세가 악화될까 준비한 것이다. “고맙습니다.” 다행히 최 할머니는 두 손을 모아 인사하며 연신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전국의 요양병원·요양시설에서 오매불망 자식들 보기만을 기다리는 어르신이 많다. 6일부터 생활방역 체제로 전환됐음에도 고위험군인 어르신과 기저질환자가 밀집한 생활을 하는 요양병원·요양시설은 아직 외부인에게 문을 열지 않았다. 방역당국은 “올해는 면회를 자제하고 영상통화로 안부를 살피는 게 좋겠다”고 권고하고 있다. 자식들은 속이 타들어간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요양병원·요양시설을 중심으로 집단감염이 다수 발생했고, 고령일수록 치명률이 높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면회를 허용하기가 조심스럽다. 최 할머니 역시 요양시설 내 집단감염으로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일부 시설은 유리벽을 사이에 두거나, 야외에 비닐 천막을 설치해 면회를 하도록 한다. 동영상을 찍어 가족들에게 보내주거나 어버이날 당일 예약시간을 정해두고 화상통화를 연결해 주는 곳도 있다. ▷자식들이 두려워하는 최악의 상황은 코로나로 격리되거나 면회가 금지돼 임종을 지키지 못할 경우다. 특히 확진 환자는 감염 우려가 있어 화장이 끝나고 한 줌의 재로 만나게 된다. 작별 인사를 나눌 기회도 없이 허망하게 떠나보낸다면 그 상실감이야 이루 말하기 어려울 터다. 이에 대구가톨릭대병원은 음압병실을 임종실로 만들어 가족 중 1명이 레벨D 방호복을 입고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도록 했다. 화장 순서가 밀려 있거나 드라이브스루 장례식을 치르는 해외에 비하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엄격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던 지난달 주말, 옆집 노부부 댁에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낀 아들이 ‘딩동’ 벨을 누르고는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발길을 돌리는 모습을 봤다. 버선발로 뛰어나온 할머니는 아파트 복도 창밖을 내다보며 장성한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주위에선 ‘대구에 계신 부모님께 매일 새벽배송 업체를 통해 음식 재료를 배달시켰다’ ‘요구르트를 정기 배달시키고 안부를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등 코로나 효도법이 공유된다. ‘거리는 멀어도 마음은 가까이’. 어느 시대든 효도는 충분치 못하고 자식들의 가슴은 후회로 차오르기 마련인데, 코로나 시대는 효도의 법칙마저 바꿔버렸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0-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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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간지풍[횡설수설/우경임]

    2005년 4월 5일 ‘천년고찰’ 낙산사가 시뻘건 불길에 휩싸였다. 전날 강원 양양군 임야를 태우고 남은 불씨가 낙산사 주변 소나무 숲으로 날아든 것이다. 원통보전(圓通寶殿)을 비롯해 경내 목조건물이 대부분 전소됐고 조선 예종이 아버지 세조를 기려 만들었다는 동종(보물 479호)이 녹아내렸다. 소방차마저 불타버렸다. 초속 32m의 양간지풍(襄杆之風)을 타고 번진 불길은 미처 손쓸 틈도 없이 낙산사를 삼켜버렸다. ▷양간지풍은 봄철인 3∼5월 양양과 고성(간성) 사이에 부는 국지적 강풍을 일컫는다. 양양과 강릉을 따서 양강(襄江)지풍이라고도 한다. 남고북저(南高北低) 기압 배치로 부는 서풍이 태백산맥을 넘으며 고온건조해지고, 산과 산 사이 좁은 지형을 지나며 속도가 빨라지고 사나워진다. 그 바람의 세기가 초속 20∼30m로 작은 태풍에 버금가고 여기 올라탄 불티는 2km 떨어진 곳까지 날아간다. ▷자고로 양간지풍을 화풍(火風)이라고 불렀다. 낙산사 화재에 앞서 1996년 4월 사흘 동안 강원 고성군 일대 3763ha를 태운 산불이 있었다. 바람의 세기는 초속 27m. 2000년 4월에는 고성군 군부대 소각장에서 발화한 불길이 9일 동안 강원 삼척 강릉 동해와 경북 울진까지 내려가며 동해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더 거슬러 조선왕조실록 1804년(순조 4년) 3월 21일자에는 ‘강원 감사 신헌조가 이달 3일 사나운 바람이 일어나 산불이 크게 번졌는데, 삼척 강릉 양양 간성 고성에서 통천에 이르는 바닷가 여섯 고을에서 민가 2600여 호가 불에 타고 타 죽은 사람이 61명이었다고 보고하니 순조가 놀라 백성들을 구휼하라고 명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1일 발생한 고성 산불은 다행히 인명 피해 없이 12시간 만에 진화됐다. 지난해 4월 산불이 났던 곳에서 약 4km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이번 불은 야산 인근 주택 보일러가 과열돼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밤새 불이 번질 것으로 예상되는 길목마다 바리케이드를 치고 예비 살수를 했고 동이 트자 소방헬기 39대, 소방차 500대를 투입해 하늘과 땅에서 동시에 진화를 했다. 지난해 고성 산불의 학습효과였다. ▷발화 지점 가까이 저수지가 있어 물을 쉽게 끌어오고 수분을 머금은 수풀이 무성해 불길 잡기가 수월했던 것도 행운이다. 바람도 지난해 초속 30m보다 약한 초속 20m를 기록했다. 불씨를 키우는 건 강풍이지만 사람의 실수가 발화의 원인인 경우가 많았다. 평소 화재를 감시하고 초기 진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비용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재난이 반복되는데 바람 탓만 할 수는 없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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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체검사와 면역여권[횡설수설/우경임]

    최근 미국 스탠퍼드대와 서던캘리포니아대(USC) 등은 미 전역에 분포한 메이저리그 27개 구단 선수와 직원 1만여 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항체 검사를 시행했다. 손가락 끝을 콕 찔러 나온 피로 10분 안에 항체 생성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미국 내 코로나19가 얼마나 퍼져 있는지를 파악하는 전국 단위의 연구다.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활약 중인 추신수 선수도 참여했다. ▷항체 검사는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알려주는 진단 검사와는 다르다. 증상 없이 또는 가볍게 앓고 지나가 항체가 생겼는지 알 수 있어 실제 감염자를 추정할 수 있다. ‘자유 아니면 코로나를 달라’며 봉쇄 해제를 요구하는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지는 미국은 항체 검사에 적극적이다. 지난달 미 식품의약국(FDA)은 90개가 넘는 항체 검사 도구를 왕창 허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항체 검사는 누가 훌륭하고 아름다운 면역력을 확보했는지 보여줘 미국인들을 일터로 돌아가게 할 것”이라고 했다. ▷유럽도 길어지는 코로나19 사태의 출구전략으로 광범위한 항체 검사를 선택했다. 항체를 가진 사람에게 ‘면역 여권(immunity passports)’을 발급하고 이동제한령에서 예외로 두겠다는 것. 이탈리아는 다음 달 15만 명, 영국은 연내 30만 명의 항체 검사를 하기로 했다. 이 결과가 경제 재개 범위와 속도를 결정할 것이다. ▷항체 검사 결과는 코로나19가 얼마나 무증상 또는 경증 감염이 많은지를 짐작하게 한다. 네덜란드에서는 헌혈된 혈액을 분석했더니 항체를 가진 사람 비율이 3%로 나타났다. 확진자 비율에 비해 17배나 높은 것이다. 미국 뉴욕주의 경우는 확진자 비율보다 10배나 많은 13.9%의 항체 생성률을 보였다. 즉, 확진자보다 10배나 많은 사람이 코로나19에 감염됐던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면역 여권’ 발급에 거듭 부정적이다. 현재로선 완치 판정을 받았거나 항체가 생긴 사람들이 반드시 재감염되지 않는다는 증거가 없다. 국내에서도 완치 뒤 양성 판정을 받은 사례가 263명이다(25일 기준). 항체가 생겼더라도 변이가 일어난 바이러스에는 무력해 일회성 검사가 면역력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면역 여권이 경계심을 낮춰 재확산이 될까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우리 정부도 조만간 항체 검사를 시작할 계획이다. 방역당국은 초기부터 왕성하게 환자를 찾아냈기 때문에 기존 확진자와 실제 감염자 수 차이가 크지 않을 것이라 본다. 항체 검사가 꼭 필요한지는 논란이 있지만 조용히 전파되는 코로나19의 정체를 밝히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0-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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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빌 게이츠의 펀드가 한국에 투자한 이유[광화문에서/우경임]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빌 게이츠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 이사장이 코로나19 대응을 논의한 통화 가운데 생소한 이름이 언급됐다. 바로 글로벌헬스기술연구기금(Research Investment for Global Health Technology)의 머리글자를 딴 ‘라이트(RIGHT)펀드’. 저개발국 감염병 해결책을 찾기 위해 한국 보건복지부(250억 원)와 바이오기업(125억 원), 빌앤드멀린다재단(125억 원)이 공동 투자한 민관 협력 기금으로 2018년 7월 출범했다. 현재 국내 5개 기업이 이 펀드의 지원으로 연구 중이다. 왜 라이트펀드는 글로벌 제약사를 가진 바이오 강국이 아닌 한국을 선택했을까. 김윤빈 라이트펀드 대표는 한국 기업의 약점으로 평가됐던 추격자(Fast follower) 모델이 오히려 강점으로 통했다고 설명했다. 바이오산업은 추격자 모델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원천 기술과 거대 자본이 필요한 신약 개발 대신 제네릭(복제약)과 제형 및 용법을 달리한 개량 신약에 집중했다. 김 대표는 “한국 기업이 후발 주자로서 개발한 기술이 저개발국 백신 지원에 경쟁력이 있다”고 했다. 저개발국은 백신을 구매할 경제력이 없다. 의료진은 부족하고 유통시설도 갖춰지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 바이오기업은 효율적인 생산 공정으로 약의 단가를 낮추거나 간단한 투약이 가능하도록 개선한 약, 유통 기한을 늘린 약을 만드는 데 경쟁력이 있다. 저개발국에 보급할 백신에 꼭 필요한 기술이다. 김 대표는 “이미 개발된 약이 있어도 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접근성을 보장하는 기술도 신약 개발만큼 혁신적”이라고 평가했다. 선도자(First mover)를 따라가는 과정에서도 혁신은 생겨나는 것이었다. 한국의 정보통신기술(ICT)도 그 이유였다. 코로나19 사태에서 ICT와 결합한 진단검사는 정확하고 신속했다. ICT는 슈퍼 전파자를 찾아내는 등 역학조사에도 활용됐다. 라이트펀드는 한국 ICT와 의료기술이 접목되면 저개발국의 감염병 환자 발생 추이를 예측하고, 맞춤형 약을 추천하는 등 효과적인 공중보건 플랫폼이 나올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한국의 사회 시스템은 대부분 민관 협력으로 움직인다. 가난한 나라는 공공과 민간의 자본을 모아 될성부른 떡잎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경제 개발을 했는데 아예 사회 시스템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빛과 그늘이 있는 방식이지만 감염병 연구에는 정석이라고 한다. 이번에도 한국은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지원하는 민관 합동 범정부 지원단을 구성했다. 김 대표는 “감염병 연구에 대한 투자는 보험 들기와 같아 정부와 민간 기업의 협업이 중요하다”고 했다. 민간은 감염병 유행이 끝나면 물거품이 될 백신 개발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기 망설인다. 차 사고가 나지 않아도 보험료를 붓는 것처럼 혹시 모를 막대한 피해를 대비해 정부가 보험료를 내줘야 기업의 리스크가 줄어든다. 김 대표가 언급한 추격자의 빠른 적응력, ICT 경쟁력, 민관 협력 시스템 등은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에서도 통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똑같은 성공 법칙이 통할지, 뉴노멀 위기에서 변칙이 통한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이런 성공을 경험하기 이전과 이후 우리 사회가 달라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0-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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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감염병 사태 속 소중한 한 표 행사, 빈틈없는 방역에 달렸다

    정부가 코로나19 생활치료센터 안에 오늘, 내일 사전투표소를 설치하는 데 이어 15일 선거 당일 자가 격리자가 일반 유권자와 시간과 동선을 달리해 투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4·15총선에서 코로나19 확진 환자와 의료·지원인력 900여 명, 자가 격리자 5만1836명(8일 기준)의 투표권이 실종될 위기였는데 뒤늦게나마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이번 총선은 대규모 감염병 사태 속에서 치르는 첫 선거다. 정부는 유권자들이 감염을 두려워해 소중한 한 표를 포기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역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특히 사전투표, 본투표, 개표에 이르는 과정에 사람이 몰릴 수밖에 없다. 자칫 이번 총선이 집단 감염의 온상이 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선거에서 발열이나 기침 증상이 있는 투표자나 자가 격리자는 일반 기표소와 거리를 두고 별도로 설치한 임시 기표소에서 투표를 한다. 특히 자가 격리자의 경우 투표소를 오가는 동안 밀접 접촉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동선을 통제하고, 투표 대기 시간 동안 거리 두기 간격도 충분하게 해야 한다. 투표자 간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는 한편 투표소 및 개표소 방역도 빈틈이 없어야 할 것이다. 선거일 내내 투·개표를 돕는 투·개표 사무원과 투·개표 참관인의 안전 관리에도 결코 소홀해서는 안 된다. 비례정당이 난립해 길어진 투표용지 탓에 밤새워 일일이 손으로 개표해야 할 개표 사무원과 참관인만 8만5000여 명이다. 밀폐된 공간에서 오랜 시간 작업이 이뤄지는 만큼 면밀한 대비가 필요하다. 방역당국뿐만 아니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도 방역의 둑을 지킨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 20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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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의료 경쟁력, 어떻게 최고가 됐나[광화문에서/우경임]

    우리가 의료비 부담 없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누리는 줄은 알았다. 그런데 이 정도였나. 코로나19 사태는 한국 의료시스템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새삼 깨닫게 해줬다. 위기에서 진짜 실력이 드러나듯, 바이러스가 각국 의료시스템에 등수를 매기고 있다. 한국 코로나19 방역의 핵심은 신속한 대량 진단을 통한 환자 치료와 접촉자 격리다. 어제까지 누적 검사 수는 무려 39만5194건. 이런 대량 진단은 신종인플루엔자, 메르스를 거치며 유전자 증폭(PCR) 진단산업이 발달한 덕분에 가능했다. 검체 채취-검사-폐기에 이르는 표준화된 기술이 보급됐고 훈련된 인력도 양성됐다. 이런 뛰어난 진단 능력이 없었다면 국경 폐쇄도, 도시 봉쇄도 않는 ‘민주주의 방역’은 실패했을 것이다. 진단 능력이 환자 폭증을 막아냈다면, 우수한 의료 인프라와 의료진이 코로나19 치사율을 1%대에 묶어뒀다. 지금까지 감염병 사태에는 수익을 따지지 않고 즉각 동원이 가능한 공공의료시스템이 효과적일 것으로 봤다. 이번에 한국이 그 상식을 깼다. 한국의 의료 인프라는 전적으로 민간에 의존한다. 전체 병의원 중 95%를 차지하는 민간 병의원은 시설 및 서비스 경쟁을 벌여 왔다. 의사는 실력으로 선택받는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의료진이 국가적인 보건 위기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반면 공공의료의 모범이었던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에선 사망자가 속출했다. 민간 바이오기업, 병의원과 의료진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토양은 역설적으로 건강보험이라는 공공 재원이었다. 만약 건강보험이 코로나19 진단검사비를 부담하지 않는다면 그 비싼 검사를 누가 선뜻 받겠는가. 수요가 창출되지 않으면 이를 개발한 회사는 막대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건강보험은 민간 기업이 ‘안전한 도전’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마찬가지로 병원비가 비싸면 환자들은 아파도 가급적 병원을 가지 않는다. 건강보험이 진료비를 통제하니 환자들이 쉽게 병원을 찾고, 의사는 많은 임상 경험을 축적할 기회를 얻었다. 낮은 수가를 보전하기 위해 ‘3분 진료’ 같은 부작용이 나타났지만 덩달아 한국의 의료 경쟁력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결국 한국의 의료 경쟁력은 민관 협력, 곧 공공성과 효율성이 조화를 이뤄 낳은 결과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에 급습당한 대구의 경우 민간 의료가 공공 의료로 순식간에 전환됐다. 민간 병원인데 코로나19 전문병원을 자청한 대구동산병원. 계명대 캠퍼스 내로 이전하면서 마침 비어 있던 원래 병원의 수백 병상을 통째로 내놓았다. 이곳으로 각지에서 의료진이 달려왔다. 이성구 대구시의사회장은 “관군이 밀리니 의병이 모인 것”이라며 “공공은 공공성이 있고, 민간은 이윤만 추구한다는 이분법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위기에서 민간 바이오기업은 혁신의 씨앗을 심었고, 드라이브스루 검사 같은 의료진의 창발성이 발현됐다. 정부가 그 덕을 봤다. 이 위기가 지나더라도 민간 기업을 옥죄는 좀스러운 규제도 풀어주고, 목숨을 걸고 감염병과 싸운 의료진이 자부심을 갖도록 대우했으면 한다. 그래야 다음 감염병이 창궐해도 국민 건강을 지켜낼 수 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0-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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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아남은 자의 눈물[횡설수설/우경임]

    “‘모두 각자 위치에서 번호!’ ‘하나, 둘, 셋…57, 58 번호 끝!’ 모두 100명이 넘어야 하는데 거기까지였다…. 나는 보이지 않는 동기와 후임병들의 이름을 미친 듯이 불러대기 시작했다.” 천안함 생존 장병인 전준영 씨(33)의 기억 속에 박제된 2010년 3월 26일 폭침 직후 순간이다. 그날 이후 전 씨는 예전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천안함 10주년인 올해 1월부터 그는 같은 아픔을 겪는 천안함 생존 장병 58명을 찾아다녔다. 이 가운데 17명을 인터뷰해 그들의 삶을 추적한 책 ‘살아남은 자의 눈물’을 썼다. 다음 달 초 출간된다. ▷천안함 생존 장병들은 지난 10년간 몸과 마음에 새겨진 상처가 덧나고 곪았다고 증언했다. 국가로부터 치료와 재활을 제대로 받지 못해 장애를 얻었고, 전우를 잃은 끔찍한 고통 속에서 밤마다 흐느꼈다. 천안함 생존 장병 중 33명이 전역했는데 이들 중 10명만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한 달 전상 수당은 2만3000원. 나머지는 덜 다쳤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해 그조차도 받지 못한다. ▷특히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심각했다. 2년 전 발표된 김승섭 고려대 교수팀의 ‘천안함 생존자 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생존 장병 24명 중 절반이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했고, 21명이 PTSD를 진단받거나 치료를 받았다. 이로 인해 정상적인 일상을 유지하기 어려웠고 취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이런 숨어 있는 질병은 각종 지원에서 배제된다. ▷천안함 폭침을 두고 두 동강 난 우리 사회에 이들을 냉소로 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김정원 씨(31)는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전우를 버리고 살아 돌아온 놈”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김윤일 씨(32)는 “패잔병이니 사형시켜야 한다는 댓글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대부분 천안함 생존 장병이란 사실을 가급적 숨기고 산다고 한다. “진실을 숨기려 말 맞추기를 했다” “군에서 거짓말하라고 지시받았다”는 끈질긴 의혹의 눈초리도 견디기 힘들었다. ▷천안함 폭침이라는 국가적인 재난의 피해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실력이 형편없었다. 그 이후라고 달라졌을까. 전 씨는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천안함 생존 장병들이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서”라고 말했다. 짐작하다시피 책 제목 ‘살아남은 자의 눈물’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빗댄 것이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미움 받고 아프지 않으려면 우리가 따뜻하게 품어줘야 한다. 우리는 이들의 스러진 젊음과 희생에 빚을 지고 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0-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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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단 면역[횡설수설/우경임]

    “국민 60%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집단 면역이 형성될 수 있다.” 패트릭 밸런스 영국 수석과학보좌관은 최근 코로나19 환자 상당수가 가볍게 앓고 지나가므로 서서히 유행하도록 해 ‘집단 면역’을 만들자는 충격적인 방역 전략을 주장했다. 그 후 영국 임피리얼칼리지 연구진은 이런 논리의 위험성을 경고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방치한다면 영국에서 51만 명이 사망한다는 것. “강력한 통제를 하면 사람들의 삶이 혼란스러워진다”던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입장을 바꿔 23일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제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면역이란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완쾌돼 항체를 갖게 됐다는 뜻이다. 집단 면역은 면역을 획득한 개인이 늘어나면 바이러스가 옮겨 다닐 숙주를 잃어버려 사라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 용어는 1930년대 홍역이 자연적으로 감소한 현상을 두고 처음 사용됐다. 홍역을 앓고 면역을 획득한 어린이들이 늘어나자 발병률이 급감한 것이다. 예방접종은 인위적으로 집단 면역을 만드는 방법이다. 1963년 예방접종이 도입된 홍역은 거의 사라졌다가 근래 들어 세계적으로 다시 유행했다. 2000년대 들어 홍역 백신에 대한 가짜뉴스가 퍼지면서 예방접종률이 현저히 떨어진 탓이다. ▷국내서도 코로나19 집단 면역이 처음 거론됐다. 민관 전문가로 구성된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는 23일 기자회견에서 “인구 60%가 면역을 가졌을 때 코로나19 확산을 멈출 수 있다”(오명돈 위원장·서울대 교수), “기저질환이 없는 30대 이하 젊은이들은 치명률이 낮다. 일단 (이들에게) 집단 면역이 형성되면 고령자 등이 안전해질 수 있다”(신형식 국립중앙의료원 교수)고 밝혔다. 중앙임상위가 그동안 정부 정책에 미친 영향 때문에 정부가 방역 완화로 선회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됐다. 부랴부랴 정부는 24일 “우리 인구 70%가 감염되고 치명률 1%라 치면 35만 명이 사망한다”며 선을 그었다. ▷중앙임상위가 그런 견해를 밝힌 것은 확진자를 찾아내 격리시키는 데 총력을 투입하는 현 방식으로는 궁극적인 사태 종식은 요원하며, 집단 면역 생성은 더 늦어질 수밖에 없는 의학적인 딜레마를 설명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일상과 방역의 균형에 대한 질문을 던진 셈이다. 하지만 백신이 없는 상태에서의 집단 면역론은 자칫 ‘더 많은 사람을 빨리 감염시켜야 사태가 종식된다’는 위험한 논리로 해석될 수 있다. 코로나19는 변이를 거듭하는 바이러스다. 섣부른 방역 정책 수정은 환자 폭증을 불러올 것이다. 무엇보다 집단 면역을 위해 먼저 아파도 되는 생명이 있을 수 없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0-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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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월 학기제[횡설수설/우경임]

    한국 학생이 외국 학교로 전학하거나 진학하면 한 학년을 건너뛰거나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한다. 외국 학생이 한국에 와도 마찬가지다. 한국만 3월에 새 학년을 시작하는 독특한 학기제를 운영하는 까닭이다. 미국 중국 유럽 등 북반구 나라들은 긴 여름방학을 보내고 보통 9월 새 학년을 시작한다. 호주는 2월 개학이지만 남반구에 위치하므로 가을학기제다. 그나마 일본이 봄학기제인데 3월이 아닌 4월에 시작한다.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교의 개학일이 4월 6일로 다시 미뤄진 가운데 9월 신학기제 도입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쉽게 물러날 기세가 아니라 4월 개학도 장담할 수 없다. 이참에 국제 표준에 맞춰 9월에 새 학년을 시작하는 가을학기제 도입을 검토해 보자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여럿 올라왔다. ▷갑오개혁 시기인 1895년 발표된 교육법령 ‘한성사범학교규칙’에 따르면 새 학년은 원래 7월부터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을 따라 4월, 미군정기에는 미국을 따라 9월에 새 학년을 시작했다가 1950년 다시 4월 학기제로 돌아왔다. 1962년 4월에서 한 달 앞당긴 현재의 3월 학기제가 도입됐다. 겨울방학이 가장 추운 12∼2월로 앞당겨지면 난방비 예산이 절약된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역대 정부는 1997년, 2007년, 2015년 세 차례 9월 학기제 시행을 검토했지만 58년 동안 굳게 뿌리를 내린 학기제를 바꾸려니 사회적 비용이 커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났다. 학사 및 입시 일정을 조정하면 애꿎게 피해를 보는 학생이 발생한다. 시행 첫해에는 초등 신입생이 두 배 가까이 는다. 이에 따른 시설과 교사 확충, 입시 조정 등에 비용이 드는데 12년간 최대 10조 원이라는 연구도 있다. 기업 채용 및 공무원 시험 등 고용에도 파장을 미친다. 2007년 교육인적자원부 차관이던 이종서 대전대 총장은 “난제 중의 난제라 교육부 안에서 초안을 만드는 데 이르지 못했다”고 했다. ▷장기화된 코로나19 사태가 학기제 변경의 난제를 풀 실마리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 모든 학년, 모든 학생이 한 학기를 쉬게 되면 3월과 9월 각각 신학기를 시작한 학생들이 섞여 공부하는 일이 없게 된다. 초등 신입생이 폭증하거나, 어느 해 고3만 수능 일정이 바뀌는 혼란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모든 청소년이 6개월 늦게 사회에 진출하는 등 사회적 시계가 한꺼번에 조정되므로 혼란과 반발이 따를 것이다. 효과와 비용을 차분히 따져봐야 할 일이지만 전례 없는 감염병 사태가 학기제 변경 논의의 수문을 연 것은 사실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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