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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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경임 논설위원입니다.

woohaha@donga.com

취재분야

2024-03-27~2024-04-26
칼럼67%
보건13%
사회일반10%
건강10%
  • “마스크는 디테일에 있다” 한국과 대만의 정책 차이[광화문에서/우경임]

    마스크 5부제 시행 첫날인 9일. 약국마다 혼란은 여전했다. 마스크 공급 부족에 따른 고육지책이다 보니 마스크를 사기까지 여간 까다롭지 않다. 구매 요일을 착각하거나, 품절 안내를 보고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그 정책적 효과는 차차 검증되겠지만 마스크 대란이 쉽게 진정될 것 같진 않다. 마스크 배급제의 원조는 대만이다. 한국에 넘어오며 홀짝제가 5부제로 변형됐을 뿐. 우리의 사나운 민심과는 달리 대만 언론들은 ‘대만의 국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하고 있다. 꼭 닮은 제도인데 무엇이 달랐나. 대만은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1월 24일 마스크 해외 수출을 금지했고 1인당 구매 수량을 일주일에 성인 3장씩, 아동 5장씩으로 제한했다. 막상 정부가 나서자 마스크 생산량이 줄어든다. 결국 시행 열흘 만에 건강보험증 끝자리에 따라 홀수일, 짝수일을 나눠 일주일에 성인 2장씩, 아동 4장씩만 구매를 허용하는 추가 대책을 발표했다. 여기까지는 섣부른 정부 개입이 실패로 끝나는 뻔한 전개였다. 한 달 뒤 반전이 일어난다. 하루 390만 개였던 대만의 마스크 생산량이 820만 개로 뛰었다. 다음 달이면 1300만 개로 늘어나는데 대만 인구의 절반이 넘는 수준이다. 일주일 구매량을 1인당 5장으로 늘릴 것이라고 한다. 이는 마스크 증산을 유도한 정부의 인센티브 덕분이다. 정부는 2억 대만달러(약 80억 원)를 들여 마스크 제조업체에 생산설비 60대를 기증했다. 민간 설비업체 30곳, 정부 연구소 3곳이 협업해 한 달 만에 60대를 뚝딱 만들었다. 앞으로 예산 9000만 대만달러(약 36억 원)를 더 투입해 30대를 추가 지원한다. 군인을 마스크 제조업체에 파견해 인력 부족과 비용 부담도 덜어줬다. 우리 정부는 마스크 제조 인력이 아니라 감시 인력을 내려보냈다. 마스크 대란이 끝나면 빚더미가 될 생산설비는 자비로 사야 하고, 그마저도 구하기가 어렵다. 마스크 구매 단가를 올린다고 했으나 세계적인 마스크 대란 속에 원재료 값과 인건비가 상쇄될지 모르겠다. 디테일의 차이는 더 있다. 대만 정부는 마스크 생산량을 전부 사들여 구입가보다 판매가를 낮춰 팔았다. 개인은 장당 200원이면 살 수 있다. 반면 우리는 장당 1500원에 사야 한다. 한국 정부는 900∼1000원에 구입한다. 다시 도매업체→소매약국을 거치므로 폭리라고는 볼 수 없으나 뒤늦은 시행으로 이미 단가가 오를 대로 올랐다. 대만 정부는 전시 상황에 준해 긴박하게 움직이며 정책의 디테일을 솜씨 있게 다뤘다. 여기에 민간이 호응했다. 우리 정부는 ‘감염병과의 전쟁’을 선언하고도 전시 대응을 하지 않았다. 마스크 생산량 증대가 관건인데 후방 기지라던 마스크 제조업체에 지원군도, 보급품도 도착하지 않았다. 심지어 물자 배분도 민간 기관인 약국에 맡겼다. 공적판매라는데 이윤 없이 팔 수 있는 주민센터는 제외했다. 성난 민심을 피하고 보려는 비겁함으로 비친다. 마스크 5부제를 결정한 5일 국무회의. 노란색 민방위복을 입고 보건용 마스크를 낀 채 참석한 국무위원들을 보며 궁금해졌다. 단 한 명이라도 직접 마스크를 돈을 내고 사 본 적이 있을까. 그 대답에서 양국 마스크 정책의 디테일 차이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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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와 ‘로세토 효과’[횡설수설/우경임]

    ‘지금 동성로 상황입니다. 이곳에 계신 자영업자분들의 마음을 한번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21일 대구 맛집을 소개하는 페이스북 ‘대구 맛집일보’에는 텅 빈 대구 동성로 거리를 촬영한 동영상이 올라왔다. 페이스북 운영자는 식당들이 남은 식자재라도 처분할 수 있게 돕자고 호소했다. ‘유창동 고깃집에 고기 500인분 남았다’ ‘동성로 연어집에 연어 사시미 70접시가 남았다’는 식으로 손님이 끊긴 식당을 소개하고 평소보다 싼값에 팔도록 했다. 잠시 후 식당을 찾는 발길이 이어졌다. 매진 행렬 속에 제값보다 더 주고 사가는 손님도 많다고 한다. 따뜻한 위로를 받은 식당 주인들이 다시 용기를 내고 있다. ▷코로나19로 일상이 마비되면서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가중되자 대구 서문시장과 중구 서구 등 일부 건물주가 상가 임대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시작된 자발적인 임대료 인하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서울에서도 남대문시장 내 점포 33%(4000여 곳)가 임대료를 3개월간 20% 낮추기로 했다. 점포 4300곳이 자리한 동대문종합상가도 임대료와 관리비를 20% 인하한다. ▷우리는 사회적인 재난 때마다 환난상휼(患難相恤·어려운 일이 생기면 서로 돕는다)을 실천했던 DNA가 있다. 2007년 12월 충남 태안 만리포 앞바다에서 유조선과 바지선이 충돌해 기름이 바다를 뒤덮었다. 겨울바람을 맞으며 돌과 모래를 흡착포로 일일이 닦은 자원봉사자 123만 명이 기적을 만들었다. 바다가 제 빛깔을 되찾았다. 18일 17주기를 맞은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당시에도 전국에서 온정의 손길이 답지했다. ▷1960년대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정착한 펜실베이니아주 로세토 지역. 이 마을 사람들은 술, 담배를 즐기고, 소시지를 자주 먹는데도 유독 심장병 발병률이 평균보다 낮았다. 스튜어트 울프와 존 브룬 박사는 30년간 추적 조사를 통해 가족과의 이별, 경제적인 파산 등 개인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웃사람들이 따뜻한 도움을 주는 문화가 심장병 발병률을 낮춘 원인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공동체가 나를 지켜 주리란 신뢰가 있을 때 개인은 건강해진다는 것, 바로 ‘로세토 효과’다. ▷감염병과 같은 사회적인 재난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더욱 가혹하다. 취약계층은 감염도 걱정이지만 당장의 생계도 직접적 타격을 받는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먼저 쓰러진다. 동네 곳곳 자영업자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불안정한 일자리 종사자가 그러하다. 홀몸노인은 끼니조차 위태로워졌다. 함께 고통을 나눠 서로의 건강을 지켜내는 ‘로세토 효과’가 절실한 지금이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0-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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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기에 동맹은 없다”[횡설수설/우경임]

    2009년 6월 세계보건기구(WHO)는 멕시코에서 시작된 신종인플루엔자A(H1N1)에 대해 경보단계 최고 등급인 ‘대유행(Pandemic)’을 선언했다. 1년 2개월이 지나 WHO가 대유행 종식을 선언하기까지 214개국을 휩쓸고 1만8449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이렇듯 막강한 전염력을 가진 신종플루가 종식된 건 백신 덕분이었다. 그해 9월 신종플루 백신 대량 생산에 성공한 호주가 대대적인 예방접종을 처음 시작했고 미국, 유럽, 일본, 한국이 뒤를 이었다. ▷당시 미국이 호주에 신종플루 백신 3500만 도스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던 사실이 공개됐다. 피터 나바로 미국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이 23일 폭스뉴스에 출연해 “이런 (감염병) 위기 때에는 동맹이 없다”며 “신종플루 사태 당시 우방인 호주, 영국, 캐나다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건 사적 관계에서는 미덕일지라도 공적 관계, 더욱이 냉혹한 국제사회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마스크를 놓고도 미중 간에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나바로 국장은 “시급한 문제는 N95 마스크”라며 “중국이 마스크에 대한 수출을 규제하고 있고 중국 내 미국 마스크 공장을 국유화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코로나 치료에 필요한 물품뿐 아니라 필수 의약품까지 공급망을 해외로 지나치게 많이 이전했다”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 ▷중국의 우방인 북한, 러시아는 코로나19 사태 초기 국경을 닫아버렸다. 우리 정부는 중국에 마스크 보내기 운동을 지원하며 위로했고,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을 막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서 확진자가 급증하자 중국에서는 한국을 한심하게 여기는 듯한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관영매체 환추(環球)시보는 사설에서 “한국, 일본, 이란, 이탈리아의 방역 통제 조치가 부족하다”고 훈수를 뒀다. 한국의 방역이 후베이(湖北)성 외에 다른 중국 성(省) 가운데 감염 상황이 중간 정도인 곳의 방역 조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중국 공항들은 한국으로부터의 바이러스 ‘역(逆)유입’을 우려한다고 하고, 주한 중국대사관은 중국인 유학생에게 한국 입국 연기를 권고했다. ▷국제사회가 국익이 달린 치열한 전쟁터라는 점에서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 등 당청에서 쏟아지는 발언들이 너무 안이하게 들린다. 친한 친구라면 병문안도 가고, 병원비도 보태는 것이 선(善)한 행위이다. 하지만 국가 대 국가의 관계는 다른 가치가 앞선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절대 선(善)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0-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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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르스 학습 성적표… 국민은 A+, 과연 정부는?[광화문에서/우경임]

    “(메르스) 학습효과가 있기 때문에 훨씬 (대응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성동보건소를 찾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코로나19 대응을 물은 데 대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대답이다. 신종인플루엔자, 메르스 취재를 상기해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단, 주어가 바뀌었다. 정부가 아니라 민간이 잘하고 있다. 2015년 38명이 사망한 메르스 사태 이후 감염병 예방법이 개정됐다. 정부, 지방자치단체, 의료기관 각각의 역할이 정리됐다. 감염병 환자가 역학조사와 격리조치에 협력하도록 강제됐다. 환자 동선과 진료한 병의원도 공개해야 한다. 이번에 전국적인 방역체계가 즉각 가동됐던 이유다. 메르스 학습효과는 거기까지였다. 정부의 대응은 한 템포씩 늦었다. 확진 환자 11명이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 입국자다. 대부분 지난달 24∼27일 설 연휴 직전 입국했으나 정부는 4일에야 입국을 제한했다. 우한 교민 수송은 결정을 미루다 중국 눈치 보기 논란을 자초했고, 이들을 격리할 시설을 번복해 지역의 반발을 불렀다. 그럼에도 코로나19 방역이 선방하고 있다면 그건 민간의 힘이 크다. 태국 여행을 다녀온 16번 환자. 보건당국은 이 환자를 중국을 방문한 적이 없다며 검사 대상에서 제외해 확진 판정이 늦어졌다. 그동안 광주21세기병원은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된다는 소견서를 발급했고 환자를 이송받은 전남대병원은 음압병실에 격리하고 끈질기게 검사를 요구했다. 이후 보건당국은 의사 재량에 따른 검사를 허용했다. 덕분에 숨은 환자가 드러났다. 고려대안암병원 응급실 의사가 컴퓨터단층촬영(CT) 사진을 보고 해외에 간 적도, 환자와 접촉한 적도 없는 29번 환자를 찾아낸 것이다. 하마터면 지역사회 ‘슈퍼 전파자’가 될 뻔했다. 코로나19 환자 2명(3번, 17번)을 완치시킨 명지병원은 민간병원이다. 2013년 국가지정 입원격리병상이 됐다. 감염병 환자가 입원하면 외래환자가 줄기 마련이라 민간병원은 음압병상을 기피한다. 이왕준 이사장은 13일 통화에서 “누구라도 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맡았다”고 했다. 이제 감염병 치료 경쟁력을 갖게 됐고 직원들의 자부심도 크다. 전쟁터라면 야전병원인 선별진료소는 전국 548곳에 설치됐는데 절반 이상이 민간 의료기관이다. 병원 내 감염을 예방하려는 자구책일지라도 인프라와 실력이 없으면 차릴 수 없다. 감염을 무릅쓰고 야전을 누비는 의료진은 어떠한가. 우한 교민 곁에 남은 의사, 충남 아산 격리시설에 자원한 의사, 방역복을 입고 음압병상을 지키는 간호사를 보면 절로 숙연해진다. 정작 이 이사장은 시민들에게 공을 돌렸다. 명지병원이 코로나19 환자 입원을 공지했으나 입원 환자 모두가 남았다(내원 환자는 줄었다). 환자들의 신뢰에 울컥했다고 한다. 인근 주민들은 의료진을 응원하는 편지와 함께 간식을 보내왔다. 메르스 당시 병원이 텅텅 비고, 지역주민이 외면했던 것과 상반된다.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 같은 개인위생수칙 준수율도 크게 개선됐다. 아산·진천 주민과 우한 교민의 상처를 보듬은 것도 결국 성숙한 시민의식이었다. 국민 복(福)이 많은 정부라고 생각한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0-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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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떨고있는 아프리카[횡설수설/우경임]

    5일 세네갈 수도 다카르.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에서 공부하는 유학생 13명의 가족들이 “우리 아이들을 대피시키지 않으면 죽게 될 것”이라며 울먹였다. 세네갈 대통령이 “가난한 서아프리카 국가들이 큰 나라들과 비슷한 긴급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선언하자 가족들이 구출을 호소한 것이다. 우간다 잠비아 수단 등도 자국민 수송을 포기했다. ▷아프리카에서는 아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확진 환자가 나오지 않았다. 세계 시장에 편입이 더딘 아프리카는 자생적인 감염병이 아니면 그 유행을 용케 비켜가곤 했다. 2003년 사스(SARS) 확진 환자는 1명, 2015년 메르스(MERS) 확진 환자는 5명이었다. 하지만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추진하는 과정에 발생한 이번 우한 폐렴은 예전과는 그 위험 정도가 다르다. 중국 기업이 2005∼2018년 아프리카에 투자한 돈은 약 3000억 달러. 현재 아프리카에는 중국인 100만 명이 거주하고 있고, 중국에서 공부하는 아프리카 유학생은 8만여 명이다. ▷자국민을 어렵게 데려온다 한들 진단할 능력도 부실하다. 지난달 코트디부아르에서 우한 폐렴 의심 환자가 발생했을 때 의료진은 약 7000km 떨어진 프랑스 파리로 바이러스 검체를 보냈다. 아프리카 내 우한 폐렴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기관은 단 6곳. 격리·치료시설 등 보건의료 인프라도 열악하다. 의료진이 말라리아 홍역 등 다른 감염병과 총력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방역망이 뚫리면 우한 폐렴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 있다.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들도 떨고 있긴 마찬가지다. 아시아의 확진 환자는 싱가포르(43명) 태국(32명) 말레이시아(18명) 베트남(14명) 등에서 나왔다. 반면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등 상대적으로 더 가난한 나라들은 중국 접경국임에도 확진자가 없다. 진단 및 검역체계가 미흡해 드러나지 않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인천에는 날마다 20명의 사망자가 생겨 발인 없는 날이 없고, 각 절에는 불시에 대번망(大繁忙)을 이룬다….’(매일신보·1918년 11월). 스페인독감이 한국에 상륙했던 1918년 인구의 38%인 288만 명이 감염돼 14만 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2020년 한국, 우한 폐렴이 상륙했다. 미국 일본 프랑스처럼 전세기를 띄워 자국민을 실어올 수 있는 나라가 됐고, ‘PCR 기법’ 시약을 다른 나라보다 앞서 개발해 감염 여부를 신속히 진단하는 등 첨단 방역 시스템으로 대응하고 있다. 국력에 따라 그 국민은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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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한 폐렴 영웅 리원량[횡설수설/우경임]

    ‘마침내 진단받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의 출현을 처음 세상에 알린 34세 안과 의사 리원량(李文亮) 씨는 지난달 30일 자신의 우한 폐렴 감염 사실을 웨이보에 공개했다. 중국 우한(武漢)의 중심병원에서 일하는 그는 한 달 전 폐렴 환자 7명에게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유사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보고서를 봤다. 감염병이 우려됐던 그는 의과대학 동창들과의 위챗 대화방에 이를 공유하고 주의를 당부했다. ▷7일 결국 리 씨가 세상을 떠났다. 5세 아들과 임신한 아내를 남겨둔 채. 중국 정부가 발병 사실을 은폐하기 급급할 때 홀로 진실을 알린 영웅의 죽음에 중국민은 슬픔에 잠겼다. 그가 ‘제2 사스’를 경고한 뒤 공안이 들이닥쳤다. 사실이 아닌 얘기를 퍼뜨렸다는 잘못을 인정하는 훈계서에 서명을 하고서야 풀려났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서 의사 리외가 페스트 가능성을 제기하자 “이 병이 페스트인 것처럼 대응하는 데 책임을 져야 한다”며 추궁당하는 장면과 겹친다. ▷바이러스와의 전쟁, 그 최전방에서 싸우는 건 의료진이다. 시에라리온에서 첫 에볼라 환자가 발생하고 4개월 만인 2014년 9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에볼라바이러스의 염기서열을 분석한 논문이 실렸다. 그 덕분에 에볼라를 무찌를 무기가 신속하게 개발됐고, 대유행을 막아냈다. ‘우리는 그들의 넋을 기린다.’ 이 논문 말미에는 셰이크 후마르 칸 박사를 비롯한 시에라리온 연구팀 5명에 대한 추모사가 실렸다. 의사와 간호사인 이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환자 78명의 혈액 샘플을 모았고, 이 과정에서 에볼라에 감염돼 논문 출판을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 ▷중국 정부는 리 씨가 경고하기 전에 우한 폐렴 발생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최전방에 선 의료진에게 침묵을 강요해 초기 방역에 실패했고 이는 더 큰 재앙으로 돌아왔다. 리 씨의 죽음에 공명한 슬픔과 분노가 이제 ‘시진핑 체제’를 향하고 있다. 영국 BBC는 중국 정부가 ‘정부가 사과해야 한다’ ‘언론의 자유를 원한다’는 등 해시태그(#)가 달린 SNS 글을 삭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리 씨는 격리치료 중에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진실이 중요하다. 건강한 사회는 하나의 목소리만 있으면 안 된다”고 했다. 바이러스와 맞닥뜨린 우리 몸의 면역세포는 이 바이러스와 싸울 항체, 즉 지원군을 긴급하게 늘려 방어한다. 사회로 치면 최전방에 선 의사들이 바이러스 침입을 알리면 정부는 공중보건 시스템을 가동해 지원해야 한다. 우한 폐렴이 강한 것이 아니라 중국 사회가 건강하지 않았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0-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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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궤적과 어긋난 인권위원장의 침묵[광화문에서/우경임]

    현 정부에서 법령으로 설치돼 장관급 위원장을 가진 위원회는 5곳. 이 중 공정거래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3곳의 수장이 여성이다. 공교롭게도 최근 뉴스의 중심에 세 명이 차례차례 소환됐다. 아무래도 여성 리더십을 유심히 관찰하게 된다. 실력으로 승부하기를, 위기에 맞서 ‘우리가 남이가’ 같은 관행과 타협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길 기대하면서.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은 석 달 전 이 칼럼에서 다룬 적이 있다. 박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가 검찰 수사를 받는 것과 관련해 “이해 충돌로 볼 수 있으며 직무 배제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법대로 유권해석을 내린 권익위만이 상식의 힘을 보여주며 국민을 위로했다고 썼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타다 금지법’을 두고 정부 내에서 유일하게 소비자 편에 섰다. 렌터카의 운전자 알선을 막아 타다를 콕 집어 금지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에 대해 “경쟁 촉진 및 소비자 후생 측면에서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당정청의 전방위 압박에 “경쟁 당국의 의견일 뿐 법안 반대가 아니다”라며 바로 물러서긴 했다. 설령 빈말일지라도 택시업계의 위력에 밀린 소비자의 편익을 상기시킨 것은 공정위뿐이었다. 두 위원장의 발언은 학자로서의 소신, 삶의 궤적과 일치했다고 본다. 가장 최근에는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소환됐다. 청와대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검찰 수사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 침해를 조사해달라’는 국민청원을 두 차례 공문으로 보내면서 뒤늦게 인권위가 조국 사태에 휘말렸다. 당초 인권위는 청와대의 공문을 받자마자 바로 반송했다. 인권위법은 익명·가명으로 제출된 진정은 각하하도록 되어 있는데 국민청원이 이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진정 요건을 문제 삼아 반송하는 형식을 취했으나 사실상 완곡한 거절이었다. 그런데 청와대가 9일 다시 국민청원을 이첩하면서 파장이 커졌다. 청와대가 직접 이를 공개하자 ‘내 편’이라 여겼을 인권단체가 인권위의 독립성을 침해했다고 반발했다. 청와대는 “착오로 송부돼 폐기 요청을 했다”고 수습했으나 인권위의 독립성은 이미 훼손됐다. 약자의 권리 보호를 위한 인권위 진정이 검찰 압박 수단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최 위원장은 줄곧 침묵을 지켰다. 뜻밖이었다. 그는 평생 차별과 싸운 인권운동가이자 여성운동가이다. 1991년 한국성폭력상담소를 설립하고 여자친구를 성폭행한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김보은-김진관 사건 등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했다. 진보진영이 외면한 탈북자 인권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정무적인 판단이 개입된 의도적인 침묵은 그가 그려온 삶의 궤적과는 거리가 있다. 조국 진정은 제3자를 통해 결국 접수됐다. 최 위원장의 인권위는 이번 진정을 각하 또는 기각해야 한다. 대다수 국민은 조 전 장관을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마음의 빚’을 진 사람이고, 그와 가족이 받게 될 수사의 공보준칙을 바꾼 사람이다. 최 위원장은 2018년 9월 취임 당시 “인권위의 독립성을 확보하려면 우리 스스로 그 필요성을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스스로 증명해야 할 때가 지금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0-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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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고 김정은[횡설수설/우경임]

    21일 서울중앙지법 558호 법정. 원고석에는 한모 씨(85)가 ‘6·25 국가유공자’라고 적힌 모자를 눌러쓰고 손을 가늘게 떨며 앉아 있었다. 6·25전쟁 당시 북한군에 포로로 잡힌 한 씨는 1953년 정전이 됐지만 돌아올 수 없었다. 평안남도 탄광에서 북한 내무성 건설대 소속으로 33개월간 강제노역을 했다. 50년간 국군포로라고 감시를 당하며 광부로 비참하게 살던 한 씨는 2001년 탈북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2016년 10월 다른 국군포로 노모 씨(90)와 함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체불임금과 위자료를 포함해 1인당 2100만 원씩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날 법정 피고석은 텅 비어 있었다. ▷이는 김정은을 상대로 한 국내 첫 손해배상 청구소송이다. 한 씨는 “돈 몇 푼 받자고 소송을 한 게 아니다. 국군포로 몇만 명이 북한에 존재한다”며 남도, 북도 외면한 국군포로 송환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했다. 김현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을 비롯한 변호인단은 승소한다면 국내에 있는 북한 재산을 배상금으로 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다. 한국 법원에는 북한 영상을 사용하고 낸 저작권료가 20억 원 정도 공탁돼 있다. ▷북한의 인권범죄에 대한 형사처벌은 현재로선 사실상 집행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개인이 피해 구제를 위한 민사소송에 나서면서 북한에 상당한 압박이 되고 있다. 북한에 여행을 갔다가 1년 넘게 억류됐던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2017년 6월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으나 곧바로 숨졌다. 이듬해 그의 가족은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해 5억 달러(약 5800억 원)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아 냈다. ▷물론 북한은 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웜비어 가족은 미국 정부가 압류한 북한 선박(와이즈 어니스트)의 소유권을 주장해 이를 매각했다. 스위스 계좌, 독일의 호스텔 등 세계 곳곳 북한의 재산을 찾아내 응징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앞서 2015년에도 미국 법원은 북한 인권범죄에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물린 적이 있다. 탈북자를 돕다 북한에 납치돼 사망한 김동식 목사의 유족이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3억3000만 달러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미국 법정에서 웜비어의 어머니는 “우리는 이제 무서울 것이 없다. 북한이 한 짓에 대해 절대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납북자 가족들이 가족을 되찾으려는 절박한 싸움을 시작하면서 오히려 북한이 두려움을 느끼고 침묵하는 것 같다.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생명과 권리를 소중히 여기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잠시 퇴보하는 듯해도, 어떤 독재자도 그 흐름을 거스르진 못했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0-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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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대 열풍[횡설수설/우경임]

    사교육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고, 가장 비싼 상품은 상위권 학생을 대상으로 한 의대 진학 코스다. 최근 A기숙학원이 경기 이천시에 재수생을 위한 기숙학원 의대관을 신설했는데 매달 330만 원이라는 비용에도 정원(784명)이 조기 마감됐다. 2020학년도 정시 전형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오로지 의대를 목표로 일찌감치 재수를 선택한 것이다. 의학전문대학원이 속속 의대로 전환하면서 2021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이 2977명으로 역대 최대로 늘어나게 되자 의대 열풍이 과열되는 양상이다. ▷상위권 학생의 의대 쏠림 현상은 2000년대 들어 유별나게 심해졌다. 의사처럼 보수, 안정성을 고루 갖춘 직업이 드물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임상 의사 수는 한의사를 제외하고 1.9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3.3명의 57% 수준이다. 진료수가는 낮지만 1인당 진료 횟수가 많아 적정 수익이 보장되는 셈이다.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라 사회적 존경도 따라 온다. ▷수능 공부 일년 더해서 평생 직업을 얻을 수 있다면 개인으로선 합리적 선택일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선택이 모여 사회적으로는 인적 자원의 배분을 왜곡하는 것이 문제다. 똑똑한 인재들이 기초과학·공학자가 아닌 의사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닥터헬기를 타고 중증외상환자를 치료하거나 응급실을 지키려는 이는 많지 않다. 돈 되는 전공, 수도권에 의사가 몰리면서 응급의학과·외과 등 필수의료 분야와 지방의 의사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 바이오·뇌과학 등 신산업에 진출하는 의사도 턱없이 적다. ▷‘남편에겐 생명을 살리는 일이 자신의 모든 소중한 것들을 희생해서라도 해낼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됐어요.’ 설 연휴기간 과로로 순직한 고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부인 민영주 씨가 지난해 동아일보에 보내온 편지다. 고 윤 센터장의 가족이 내내 겪었을 내적 고통이 엿보인다. 의사가 헌신적인 영웅이 되기를 요구하는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고 생명을 살리는 본업과 멀어진 의사를 더 자주 만나는 현실이 정상은 아니다. ▷지난해 미국 갤럽이 가장 신뢰받는 직업을 조사한 결과, 간호사 의사 약사 순이었다. 이 순위는 17년간 거의 변동이 없다. 2016년 인하대가 직업의 가치를 존경도·신뢰도 등 척도로 평가했더니 한국에선 소방관이 1위, 환경미화원이 2위였다. 의사는 그 다음이었다. 20년 전인 1996년에는 의사가 1위였다. 의대 진학 열풍은 뜨거운데 사회적인 존경은 식어가고 있다. 업(業)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의사를 만나기 힘든 것이 그 이유일 것 같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0-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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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편향 교사 첫 징계… 高3 선거, 교실은 준비됐나[광화문에서/우경임]

    만 18세의 약 10%, 고3 학생 5만 명이 4월 총선에서 처음 투표권을 행사한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는 선거운동도 할 수 있다. 만 18세 선거권, 언젠가 가야 할 길이라고 본다. 문제는 아무런 준비 없는 교실에 정치가 덜컥 들어왔다는 점이다. 척박한 시민교육의 풍토 속에서 교실이 겪을 후유증을 예고한 사건이 지난해 있었다. 지난해 10월 부산 A고교 교사는 조국 가족 의혹을 수사하던 검찰을 비판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글을 인용한 중간고사 문제를 출제했다. ‘보아라 파국이다… 바꾸라 정치검찰’이란 지문을 제시하고 이와 관련된 인물을 고르도록 했다. 정답은 조국과 윤석열. 이보다 한 달 앞서 B고교 교사는 수업 중 정치적인 발언이 문제가 됐다. “문재인 정부가 선전 효과를 노리고 대법원 판결에서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 손을 들어줬다” 등의 발언이 녹취돼 공개된 것이다. 특별감사에 나섰던 부산시교육청은 최근 두 교사를 징계하기로 결정했다. ‘수업과 평가’라는 교사 본연의 업무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않아 징계를 받는 첫 사례라고 한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전국 시도교육청이 정치 편향 교육을 한 교사를 징계한 선례를 찾을 수 없었다”며 “법률 자문 등 철저한 법적 검토를 거쳐 징계를 결정했다”고 했다. 이번 결정은 만 18세 선거권으로 고3 교실의 정치화, 이념화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나와 주목된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우리 사회가 갈수록 교사의 정치적 발언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좌우를 넘어 학교 내 갈등을 불러올 이런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면 징계가 불가피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고 했다. A고교 교사 징계의 근거는 공교육 정상화 및 선행학습금지법이다. 이 법은 지필평가, 수행평가 등 학교 시험에서 학생이 배운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내용을 출제·평가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수업에서 물의를 빚은 B고교 교사는 ‘교육은 정치적 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는 방편으로 이용돼선 안 된다’는 교육기본법을 위반한 것으로 봤다. 4월 총선을 앞둔 교육계에 경종을 울린 셈이다. 그러나 교사의 정치적 편향성이 학생의 후보자 선택과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후 징계보다는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 2015년 일본은 선거 연령을 만 18세 이하로 내리면서 1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그동안 문부과학성은 선거교육 교재를 배포하고 학생 정치활동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교내 수업이나 동아리 활동을 이용한 정치활동은 금지했고 방과 후나 휴일에 학교 밖에서 실시하는 정치활동은 허용했다. 선거법처럼 연령 제한이 있는 국적법, 아동복지법 등 법령 212개와 상충하는지도 검토했다.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는 선거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사의 중립성 훼손에 대한 제재는 필요한지, 학교 내 선거운동이 허용되는 것인지, 만 19세가 성년인 민법과의 충돌은 어떻게 할 것인지…. 여당과 군소 정당은 이번 선거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며 득표 계산기만 두드렸을 뿐 이를 보완할 그 어떤 논의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차차 보완하면 된다고 한다. 입시를 앞둔 고3 교실을 실험실로 만들겠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0-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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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진 남매의 亂[횡설수설/우경임]

    “베트남에서 휴가를 나오는 장병들이 외국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장병들 사기도 문제려니와 외화가 낭비되고 있다.” 1968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을 청와대로 따로 불러 빚더미에 오른 공기업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해 달라고 부탁했다. 앞서 공매에서 응찰자가 없을 정도로 부실기업이었다. 조 회장은 사실상 강제로 떠안은 공사를 ‘대한항공’으로 이름을 바꾸고 과감한 투자에 나섰다. 민간항공사가 ‘大韓’항공을 운영하게 된 데에는 이런 사연이 있다. ▷대한항공을 거느린 한진(韓進)그룹은 1945년 조중훈 회장이 트럭 한 대로 시작한 운수회사에서 태동했다. ‘한진’의 뜻 자체가 나라의 발전을 위한다는 ‘한민족의 전진’이다. 그 이름대로 한진해운(지금은 파산했지만)은 바닷길을, 대한항공은 하늘길을 개척해 왔다. 아들인 고 조양호 회장은 대한항공을 세계적인 항공사로 키워냈고 평창올림픽 유치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한국 기업이 압축 성장하면서 공(功)만큼 과(過)도 있기 마련일 테지만, 한진이 수송보국(輸送報國)을 이뤄낸 것은 사실이다. 이런 기업이 3세에 이르러 ‘국민 밉상’이 됐다.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땅콩 회항’, 차녀 조현민 한진칼 전무는 ‘물컵 갑질’, 어머니 이명희 씨는 ‘사택 갑질’로 연일 뉴스를 장식했다. 장남 조원태 한진그룹 현 회장 역시 폭행 사건에 연루된 적이 있다. 한동안 조용했던 한진 일가가 다시 소란하다. 이번에는 누나와 동생이 경영권 다툼을 벌일 모양이다. 4월 조양호 전 회장 별세 이후 취임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상대로 누나 조 전 부사장이 ‘공동 경영하라는 유훈과 다르다’며 공식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조 전 부사장은 경영 복귀가 무산되면서 600억 원에 달하는 상속세 납부까지 막막해졌다. 그러면서 남매간 갈등을 숨길 수 없는 지경이 됐다.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은 3남매와 어머니가 6% 안팎씩 고루 나눠 갖고 있다. 이들이 뜻을 같이하면 최대 주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사모펀드 KCGI(17.29%), 델타항공(10%)보다 적어 경영권이 위협받는다. 우리 기업사에서 경영권 다툼이 낯선 장면은 아니다. 이미 여러 기업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형제의 난이 벌어졌다. 그런데 국민들의 시선은 한진 남매의 다툼에 유독 싸늘하다. 항공업계 불황에다 한진 일가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대한항공은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수년간 갑질 논란으로 조부와 부친이 힘들게 키워온 회사를 만신창이로 만들고 그 와중에 부친이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도 정신을 못 차린 듯하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19-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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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왕국’ 핀란드 새 총리, 여성 아닌 청년 성공신화[광화문에서/우경임]

    ‘세계 최연소(34세) 여성 총리.’ 지난주 선출된 핀란드 산나 마린 신임 총리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그는 장관 19명 중 12명이 여성인 내각을 꾸렸다. 마린 총리와 교육 내무 재무부 등 30대 여성 장관이 나란히 선 사진을 본 순간, 영화 ‘겨울왕국 2’가 떠올랐다. 그만큼 비현실적으로 느껴진 탓이다. 겨울왕국(=핀란드)에서 할아버지(=전임 총리)의 과오를 바로잡고 왕관을 받아든 엘사와 안나 자매(=여성 각료) 아닌가. “당연한 일이 일어났을 뿐이다.” 유리천장을 깬 여성 총리에 대한 국제사회의 환호에 대해 정작 핀란드는 ‘왜 저래’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이원집정부제를 택한 핀란드는 대통령은 선거로, 총리는 의회 투표로 뽑는다. 4월 국회의원 선거로 구성된 핀란드 의회는 의석수(200석)의 47%가 여성이다. 연립정부를 구성한 5개 정당 중 4개 정당 대표가 여성이다. 이런 의회에서 13년 동안 정치 경력을 탄탄히 쌓아 온 제1당(사회민주당)의 마린 부대표가 총리가 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김수권 전 주핀란드 대사는 “여성보다는 청년이라는 점이 이례적”이라고 했다. 밀레니얼 세대의 정치적 성공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핀란드는 이미 여성 총리 2명, 여성 대통령 1명을 배출했다. 그런데 30대 총리는 통상 있던 일이 아니다. 핀란드는 뭐가 달랐나. 마린 총리는 이혼한 엄마가 동성가정을 꾸리는 바람에 두 엄마 사이에서 자랐다. 그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을 졸업했고 시의원, 국회의원을 거쳐 총리에 올랐다. 그는 “복지국가에서 자란 나는 어려울 때 사회가 어떤 지지를 주었는지를 기억하고 감사한다”고 했다. 빈곤 청년 여성 동성 등 약자를 상징하는 그가 총리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가 핀란드의 복지제도가 어떻게 사회 역동성에 기여하는지를 보여준다. 남다른 출신을 배척하기는커녕 다원화된 사회를 이끌 정치인으로 보는 포용적인 문화도 인상적이다. 김 전 대사는 “핀란드인은 그의 배경과 상관없이 적임자라는 실용적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했다. 핀란드에는 청년할당제, 여성할당제가 없다. 그런데도 의회의 인적 구성이 다양하다. 핀란드 탐페레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서현수 서울대 분배정의연구센터 연구원은 “핀란드 정당 내 청년조직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마린 총리는 21세부터 사민당 청년조직에서 활동했고 실력을 검증받은 정치인”이라고 했다. 핀란드는 만 18세면 선거권은 물론 피선거권이 주어진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될 수 있다. 학제가 다르니 선거권은 차치하더라도 우리나라 피선거권은 대통령은 만 40세, 국회의원은 만 25세에 부여된다. 비례대표제도 역시 돈 없고 ‘빽’ 없는 청년의 정치 진입 문턱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 핀란드도 사람 사는 곳인데 이상적인 시민만 살겠는가. 극우정당은 마린 총리의 등장으로 반(反)페미니즘, 블루칼라 지지가 확대될 것이라며 몰래 웃는다고 한다. 그가 이끌 연립정부의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다. 인구 550만 명의 작은 국가 시스템을 한국에 그대로 이식할 수도 없다. 그래도 가난해진 청년세대를 줄기차게 제도권 밖으로 밀어내는 우리 사회, 청년을 꽃 장식으로나 소비하는 우리 정치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마린은 영영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1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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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망직업[횡설수설/우경임]

    초등생들의 장래희망에는 그 시대의 영웅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가까이서 보고 듣는 성공을 동경하고 모방하며 꿈을 찾아간다. 올해 우리나라 초등생들은 가장 선호하는 희망직업으로 운동선수를 꼽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운동선수가 1위를 차지한 것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눈부신 활약을 벌인 손흥민 선수의 영향으로 보인다. 2007년부터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표하는 진로교육 현황조사 결과에서 운동선수가 희망직업 1위에 올랐던 해가 딱 한 해 더 있다. 류현진 선수가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했던 2012년이다. ▷유튜버가 의사를 제치고 3위에 오른 것도 눈길이 간다. 또래 유튜버들이 성공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들으면서 유튜버가 어엿한 희망직업이 됐다. 올해 95억 원의 강남 빌딩을 매입해 화제가 된 ‘보람튜브’의 보람이는 여섯 살, 먹방으로 구독자 87만 명을 넘긴 띠예는 열한 살이다. 유튜브 제작하는 법을 가르치는 학원은 이미 꼬마 수강생으로 성황을 이룬다고 한다. 인터넷 발달과 함께 새롭게 등장한 프로게이머(6위) 만화가·웹툰작가(11위) 등도 수위에 올랐다. 1970년대 대통령이나 장군, 1980∼90년대 과학자 등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초등생들은 희망직업을 선택한 이유로 ‘좋아하는 일이라서’를 꼽은 비율(55.4%)이 가장 높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직업 선택의 이유를 ‘돈을 벌 수 있어서’ ‘오래 일할 수 있어서’라고 꼽는 비율이 늘어난다. 중고교생의 희망직업은 12년째 교사가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유튜버는 중고교생 희망직업 명단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 경찰관 군인 공무원 등 공공 부문 직업이 상위 순위를 겨룬다. ▷요즘 세상에 ‘Boys, be ambitious!’라고 하면 꼰대 취급을 받을까. 중고교생 희망직업 10개 중 4개가 공공 부문이고, 1개는 의료인이다. 모두 안정성이 높은 직업이다. 교육부는 올해 보도자료 앞단에 ‘10년 전에 비해 중고교생이 교사를 희망하는 비율이 감소하고 있다’고 굳이 홍보했으나 사실 감소된 자리는 공무원 경찰관 군인 등이 대체했다. 살기가 각박해진 탓도 클 것이고, 그만큼 진로교육이 부실하다는 뜻도 된다. 진로교육이 충실하다면 대다수 청소년의 꿈이 ‘안 잘리는 직업’에 몰리는 현상이 조금이라도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다양한 직업을 접할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생계가 아닌 직업의 가치도 가르쳤으면 한다. 행복한 직업인이 되려면 적성이나 보람 같은 내적 보상, 연봉 같은 외적 보상이 균형을 찾아갈 수 있어야 한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1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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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공의대 무산되면 의대 정원 늘려라[광화문에서/우경임]

    ‘우리나라에 의사 수가 많다는 걸 의사 말고 누가 동의할까.’ 2월 설 연휴 응급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밤샘 근무를 하다 순직한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 그가 생전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우리나라 의사 수가 공급 과잉이라고 주장한 대한의사협회 홍보물을 띄우고는 이렇게 개탄했다. 의협은 그 근거로 면적당 의사 밀도를 댔다. 10km²당 10.44명으로 의사 접근성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 이는 의사 수를 줄여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런 논리라면 땅덩이 작은 우리나라는 대통령이나 방탄소년단(BTS) 접근성도 세계 최고일 거다. 윤 센터장은 순직하기 직전 일주일 동안 129시간 30분을 근무했다. 의사 부족에 허덕이는 응급의료, 바로 그 현장에서. 고인의 글이라 망설이다 이를 인용한 것은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원의 운명이 곧 결정돼서다. 공공의대 설립 법안은 22일 공청회를 거쳤고 27, 28일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소위 심사가 예정돼 있다. 4년제 의학전문대학원인 공공의대는 학비를 국가가 전액 부담해 의사를 길러내 10년간 의료 취약지역에서 근무하도록 한다. 의료계는 결사반대한다. 지역 간, 전공 간 의료 격차를 통계로 보면 공공의료 인력 양성에 반대할 명분이 없다. 인구 10만 명당 치료 가능한 사망자 수는 서울이 40.4명, 충북은 53.6명이다. 제대로 의료서비스를 받으면 살 수 있었던 환자의 수다. 응급, 외상, 분만 등 기피 전공에선 격차가 더 심각하다. 환자가 어디에 사느냐, 어디가 아프냐에 따라 수명이 달라질 수 있단 얘기다. 그래서 의료계는 의료취약지 인프라 개선 없이 의사가 가지 않는다는 논리를 편다. 속내는 공공의대가 의사 공급 확대의 단초가 될까 걱정스러운 것이지만. 지역 간 격차는 의사의 수급 불균형만으로 설명이 안 된다. 의사 총량 부족이 이런 격차를 빨리, 크게 벌어지게 했다.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는 1.89명(한의사 제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56% 수준이다. 그런데 의대 정원은 2007년부터 3058명으로 동결이다. 그동안 의사가 과로사를 하고 지방 병·의원이 사라지고 간호사가 진료보조인력(PA)으로 수술 및 처치를 대신하는 상황까지 왔다. 정부는 공공의대라는 궁여지책을 내놓고는 의대 증원은 언급조차 꺼려한다. 의사 수가 늘면 없던 의료 수요가 창출돼 건보재정에 부담이 될까 봐 우려해서다. 의료계 눈치도 보인다.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건강보험이라는 공공 재원과 병·의원이라는 민간 인프라가 부부가 돼 탄생했다. 낮은 보험료로 설계된 건강보험은 낮은 수가(酬價)로 귀결된다. 정부는 의사 수를 통제해 박리다매를 허용했고 이로써 의료계의 반발을 달래 왔다. 의사 수는 세계 최저인데 국민 1인당 외래진료 횟수(16.6회)는 세계 최고인 비법이 여기 있다. 부부가 국민건강이라는 자식을 낳고 억지로 사는데 괜히 이혼 사유를 만들고 싶지 않다. 이번 국회서 공공의대가 좌초된다면 정부는 의사 정원 확대를 공론화해야 한다. 직역 논리가 국민 건강을 해칠 정도가 됐는데도 방관해선 안 된다. 전문가들은 고령화라는 사회적 요인과 바이오, 인공지능(AI) 등 산업적 요인으로 의사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한다. 의사 양성에는 10년 이상 소요된다. 이미 늦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19-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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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래티넘 동아마라톤[횡설수설/우경임]

    ‘42.195km를 달리는 동안 많은 고통이 왔다 가는 것이 인생살이와 비슷하다.’ 서울국제마라톤을 완주한 아마추어 마라토너 31명이 2002년 쓴 ‘당신이 마라톤을 알아’의 한 구절. 이처럼 마지막 희열을 위해 극한의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마라톤이 국민 스포츠가 된 데에는 88년 역사의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대회의 기여가 크다. 한국 마라톤 영웅의 산실인 동시에 마라톤의 저변을 넓혀 온 서울국제마라톤대회가 ‘플래티넘 라벨’을 달았다. 전 세계 마라토너라면 누구나 꼭 뛰고 싶은 명품 대회로 인정받은 것이다. ▷세계육상연맹은 2008년부터 일정 기준을 충족한 국제마라톤대회에 골드, 실버, 브론즈 3개 등급을 부여해 왔다. 세계 400여 개 대회 중 골드 대회가 올해 64개까지 늘어나자 플래티넘이라는 최고 등급을 새로 도입했다. 세계 랭킹 30위 이내 선수 가운데 남녀 각 3명 이상이 출전하고, 1만5000명 이상이 풀코스를 완주해야 하는 등 승격 조건이 여간 까다롭지 않다. 그래서 남녀노소 모두 참여하는 풀코스 플래티넘 마라톤대회는 보스턴 뉴욕 베를린 시카고 런던 도쿄와 이번에 승격된 서울국제마라톤 7개뿐이다. ▷먼저 플래티넘 라벨을 단 6개 대회는 심사 문턱을 한껏 높이며 텃세를 부렸다. 세계 주요 도시에서 개최되는 이들 대회는 경제적 파급효과가 크다. 수만 명의 마라토너가 머물며 쓰고 가는 돈이 막대한 대박 관광상품이다. 경쟁 도시인 서울을 그 대열에 끼워주고 싶지 않았을 터. 서울국제마라톤은 보스턴마라톤 다음으로 역사가 긴데도 참가자가 다른 대회에 비해 적다는 이유를 댔다고 한다. 이런 견제에도 플래티넘으로 전격 승격된 것은 4월 세계육상문화유산(World Athletics Heritage) 선정에 이은 한국 마라톤 역사의 경사다. ▷세계육상문화유산에 선정된 마라톤대회는 122년 역사를 가진 보스턴마라톤대회와 고대 그리스 병사의 원조 코스를 되살린 아테네마라톤대회, 그리고 서울국제마라톤대회 등 단 3개. 1931년 3월 21일 광화문과 영등포를 왕복하는 22.530km를 14명의 선수가 달리며 스타트를 끊은 88년의 역사, 그 역사성을 공히 인정받은 것이다. ▷2001년 보스턴마라톤 우승자인 이봉주 선수는 서울국제마라톤이 플래티넘 대회가 됐다는 소식에 “보스턴 런던 베를린 도쿄 마라톤 등에 출전했을 때 대회 규모는 물론이고, 시민들의 뜨거운 관심에 놀랐다”며 기뻐했다. 플래티넘 대회는 단지 마라토너의 축제가 아닌 시민의 축제로 치러진다는 것이다. 플래티넘 대회의 마지막 자격은 이를 즐기는 시민인 셈이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1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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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조란 무엇인가’ 서울대 교수들이 던진 질문[광화문에서/우경임]

    서울대 교수노동조합이 곧 출범한다. 서울대의 교육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교수들의 교권 확보와 임금·근로조건 개선에 힘쓸 것이라고 한다. 전임교원(교수, 부교수, 조교수) 2200여 명 전원이 회원인 서울대 교수협의회가 주축이다. 교수협의회가 8월, 10월 노조 설립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물었더니 서울대 전임교원의 4분의 1이 찬성했다(응답률 38.9%, 찬성률 63.9%). 대학교수들의 노조 설립이 허용된 건 최근이다.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가 초중고교 교사에게만 노조 설립 자격을 부여한 교원노동조합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부터다. 대학교수만 노조 설립을 허용하지 않을 합당한 이유가 없어 단결권을 침해한다고 봤다. 대학 구조조정 압박이 거세고 단기계약직 교수(비정년 트랙), 강의전담 교수가 늘어 근로조건이 악화될 가능성도 고려됐다. 지방대나 전문대 또는 비전임교수들의 사정을 염두에 둔 결정이다. 서울대 교수도 노조를 조직할 권리가 있다. 당연하다. 그런데 서울대 교수란 어떤 자리인가. 정년 65세까지 신분을 보장하고, 대략 1억 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다. 배부르고 등 따스우니 노조를 하지 말란 뜻이 아니다. 그들의 권익은 국민의 교육권과 직결되므로 법으로 보장하는 것이고, 공동체를 수호하는 지성의 보루라는 사회적 기대가 있어 용인되는 것이다. 서울대 교수는 노조 할 권리도 있지만 그 자리에 부합하는 책임도 부여받고 있다. 지난달 교육부는 교수 부모 논문의 중고교생 자녀 공저자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서울대 수의대 A 교수 논문에 이름을 올린 고교생 아들은 해외 대학에서 국내 대학으로 편입할 때 이 스펙으로 합격했다. 서울대 의대 B 교수는 3편의 논문에 고교생 아들을 공저자로 올렸고 역시 이를 대입에 활용했다. 앞서 세 차례 중고교생 자녀 논문 공저자 실태조사에서도 서울대의 적발 건수가 많았다고 한다. 지식인의 양심은 그 사회의 도덕성의 척도인데 서울대에서 들리는 뉴스는 늘 이런 식이다. 아직까지는 시간강사를 배제한 교수노조라는 점에서도 노조 설립의 명분이 약해진다. 서울대 교수의 처우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례로 미루어 볼 수 있다. 그는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그만두고 복직한 뒤 40일 만에 휴직, 다시 36일 만에 복직을 반복하며 강의 한 번 하지 않고 월급을 챙겼다. 학생들의 수업권을 무시한 휴·복직을 해도 교수는 자리가 보장된다. 반면 강사법이 시행된 올해 1학기 시간강사의 20%(7834명)가 강제로 강단을 떠났다. 교수와 시간강사의 임금 격차는 따로 말할 것도 없다. 지금 같은 교수사회 이중구조에선 교수의 임금이 오를수록, 고용이 안정될수록 강사들의 처우는 열악해질 것이 자명하다. 대학교수는 초중고교 교사와 달리 정당 가입이 가능하다. 공직 진출도 흔하다. 더욱이 서울대 교수라면 정무직 공직자 임명, 위원회 참여나 정책연구 등을 통해 정부 정책에 깊숙이 개입한다. 굳이 노조가 아니더라도 대등한 교섭력이 있다는 뜻이다. 서울대 교수들은 이번에 ‘노조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셈이 됐다. 지식인이 공적인 책임은 다하지 않으면서 사적인 권익만 주장하는 사회의 미래는 참 암울하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19-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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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항공 회항과 보잉기[횡설수설/우경임]

    지난달 25일 김해공항을 이륙해 김포공항으로 향하던 제주항공 비행기 안. “비상탈출 가능성이 있으니 잘되게 기도해 달라” “우왕좌왕하면 안 되고 모든 짐을 버려야 한다” 이륙 9분 만에 다급한 기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승객 184명은 회항하기까지 기체가 위아래로 요동치는 극심한 공포 속에서 43분을 보냈다. 기내 곳곳에서 숨죽인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문제를 일으킨 제주항공 비행기는 최근 미 보잉사 본사가 정밀검사 중 손톱 길이만 한 균열이 발견됐다고 발표해 세계 항공업계를 혼돈에 빠뜨린 B737NG와 같은 기종이다. 이번 회항은 고도, 속도 등을 설정하는 핵심 소프트웨어가 오류를 일으킨 탓이다. 기체 균열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하지만 항공사마다 B737NG의 안전성을 묻는 전화가 폭주하는 등 이용객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보잉사는 B737NG 노후 비행기를 여객기가 아닌 화물기로 바꾸려고 정밀검사를 하던 중에 항공기 동체와 날개를 연결하는 부분인 ‘피클포크’에서 1cm 이하의 균열을 발견했다. 이달 초 보잉사는 이를 미국 연방항공청(FAA)에 보고했고 FAA는 각국에 긴급 점검을 요청했다. 전 세계적으로 운항 중인 1133대 중 53대에서 결함이 발견됐다. ▷B737NG는 최근 잇단 추락사고로 운항 중지된 B737맥스의 전신이다. 1993년 공식 출시된 중·단거리용 항공기로 저가항공사들이 주로 구매했다. 국내에는 150대가 도입됐는데 제주항공(46대)이 보유 대수가 가장 많다. 이어 대한항공, 티웨이항공, 이스타항공 순이다. 국토교통부가 운항횟수가 많았던 42대를 긴급 점검했더니 9대에서 균열이 발견됐다. B737NG의 균열은 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 올해 3월 에티오피아 비행기 추락 사고를 일으킨 B737맥스처럼 치명적인 결함은 아니라고 한다. 정비만 잘하면 크게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사실 비행기는 인간이 발명한 이동수단 중 가장 안전하다고 한다. 그러나 만에 하나 사고가 나면 수백 명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로 이어진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하는 이유다. 더욱이 국내에 항공사가 늘어나며 하늘길 경쟁이 극심한 터라 안전이 비용에 희생되고 있는 것 아닌지 불안해진다. 경쟁사인 에어버스의 추격에 초조하던 보잉사가 B737맥스 출시를 서두르다가 기체 결함을 간과했던 것처럼. 최근 제주항공 회항 외에도 티웨이항공 이륙 중단, 아시아나항공 A380 시운전 중 화재 등 안전사고가 잇달았다. 여느 사고처럼 비행기 사고도 늘 인재(人災)였다. 차제에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1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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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액상형 전자담배[횡설수설/우경임]

    전자담배는 담뱃잎을 쪄서 피우는 궐련형 전자담배와 니코틴을 기화시켜 흡입하는 액상형 전자담배로 나뉜다. 이 중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해 정부가 사용 중단을 강력히 권고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사용 자제를 권고한 데 이어 국내에서도 액상형 전자담배와 연관성이 의심되는 폐질환 환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액상형 전자담배를 2, 3개월 동안 꾸준히 피웠던 30대 남성이 폐질환으로 입원했다가 금연 이후 호전돼 퇴원했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감염이 없는데도 폐가 염증을 일으켰다. ▷2003년 개발된 액상형 전자담배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지난해 115억 달러까지 성장했다. 특히 2015년 휴대용 저장장치(USB메모리)와 구별이 어려운 쥴(JUUL)이 출시되면서 부모나 교사의 감시를 피하려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렸다. 미국에선 액상형 전자담배와 관련한 폐질환 사망자가 33명, 중증 폐 손상 사례가 1479건으로 집계됐는데 79%가 35세 미만이었다(10월 15일 기준). 18세 미만만 보면 15%였다. 액상형 전자담배를 청소년이 많이 피우기 때문인지, 어린 폐에 더 위험한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액상형 전자담배의 독성물질로는 대마 유래 성분(THC)과 이를 기화시키는 데 필요한 비타민E 아세테이트, 그리고 계피 버터 바나나맛 등 가향물질이 의심받고 있다. 먹으면 안전한 가향물질도 흡입하면 초미세입자로 폐에 깊숙이 침투해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재발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미 미국을 비롯해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에서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자제를 권고했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보통 담배에 비해 간접흡연 폐해가 덜하다는 인식이 있어 실내 흡연을 하는 경우가 늘었다. 이런 전자담배 에티켓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액체를 기화시켜 나오는 연기(에어로졸)에는 유해 화학물질이 다수 포함돼 있다. 에어로졸처럼 입자가 작을수록 폐에는 치명적이다. 아직 유해 성분과 그 유해성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니 조심하는 것이 상책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적으로 흡연으로 인한 연간 사망자를 700만 명으로 추정한다. 이에 비하면 액상형 전자담배 사망 사례가 적은 것 아니냐는 반박도 있다. 그러나 흡연이 장기적으로 누적돼 폐질환을 일으키는 반면 액상형 전자담배는 짧은 기간 사용으로도 폐질환이 중증으로 진행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우려스럽다. 아무리 담배가 그 외형을 이리저리 바꾸어 봐도 해롭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심리적으로 담배의 효용이 있을지 모르나 건강에는 백해무익한 것이 분명하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1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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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샘터’ 휴간[횡설수설/우경임]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살금살금 걷는다면 좋은 운명도 깨우지 못할 것 아닌가. 난 나쁜 운명, 좋은 운명 모조리 다 깨워가며 저벅저벅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걸으며 살 것이다.’ 장애를 안고 희망을 노래하던 수필가인 고 장영희 서강대 교수가 2008년 6월 월간 ‘샘터’에 마지막으로 쓴 글이다. 아름다운 수필문학의 둥지가 됐던, 이웃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커뮤니티 같았던 샘터가 올해 12월호를 마지막으로 휴간에 들어간다. 고 김재순 전 국회의장이 첫 호를 발간한 것이 1970년 4월. 내년 창간 50주년을 앞둔 시점이다. ▷최인호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인 연재소설 가족은 1975년부터 무려 34년간 감동을 선물했다. “삶이 다하는 날까지 ‘가족’을 계속 써 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던 대로였다. 법정 스님은 산방한담(山房閑談)을 1980년부터 16년간 연재했다. 피천득 선생을 비롯해 장영희 교수와 이해인 수녀도 ‘샘터’가 키워낸 수필가들이다. 시인 강은교 정호승, 소설가 김승옥 윤후명, 동화작가 정채봉 등이 여기서 일했고 소설가 한강도 기자로 일하며 필력을 닦았다. ▷샘터는 유명 작가뿐 아니라 범인(凡人)들이 독자들을 웃고 울리는 잡지였다. 마지막 호가 될지 모를 12월호의 독자 참여 특집 주제는 ‘올해 가장 잘한 일, 못한 일’이다. 지금처럼 글을 쓸 공간이 없던 시절에는 이민 간 교포, 파독 광부나 간호사들이 그들의 애환을 전해왔다. 그러면서 인연의 징검다리가 되기도 했다. 샘터를 구하기 힘든 사람들에게 다른 독자들이 샘터를 선물해주던 코너를 통해 책을 주고받다 커플이 되고 결혼을 했다. ▷지하철 가판대마다 꽂혀 있던 샘터를 찾기 힘들어진 요즘이다. 한때 월 50만 부까지 팔렸지만 최근에는 월 2만 부도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창간 당시 책값은 100원. “담배 한 갑보다 싸야 한다”는 고 김 전 의장의 뜻에 따라 지금도 3500원이다. 2017년에는 대학로 붉은 벽돌집 사옥을 팔고 이사했으나 매년 3억 원씩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샘터’가 창간된 그해 9월 동아일보에는 ‘활력 솟는 잡지계’라는 기사가 실렸다. ‘샘터’를 필두로 잡지들이 부담 없이 읽고 들고 다니기 편한 ‘경장(輕裝)화’ 경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종합지·여성지의 중압을 회피하면서 주간지로 익혀진 핸디블한 책을 좋아하게 된 독자들의 구미를 맞추게 된 것이다.’ 바쁜 도시인의 손을 독차지했던 샘터는 스마트폰에 자리를 내주었다. 50년간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속삭이던 샘터가 많이 그리울 것만 같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19-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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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닥터헬기[횡설수설/우경임]

    ‘수술을 하고 외래를 보고, 항공 출동을 세 차례나 했다. 그중 두 번은 야간 출동이었다.’ 이국종 아주대 권역외상센터장은 자전적인 기록인 ‘골든아워’에서 그날을 ‘지옥’이었다고 회고했다. 일이 고돼서가 전혀 아니었다. 그를 힘들게 한 것은 막 날아오른 닥터헬기 안에서 받아든 ‘지금 민원이 빗발치고 있으니 소음에 각별히 유의하라’는 메시지였다. ‘이 새벽에 민원을 넣는 사람이나, 책상 앞에 앉아서 목숨 걸고 출동하는 우리에게 민원을 전달해 사기를 꺾는 자들이나 모두 경악스러웠다.’ ▷18일 열린 ‘닥터헬기 소리는 생명입니다’(소생) 캠페인 행사에서 닥터헬기 4대가 서울시청과 덕수궁 하늘을 날아올랐다. 원래 청와대 주변 상공은 민간 항공기가 비행할 수 없으나 ‘닥터헬기 소리는 이웃을 살리는 생명의 소리’라는 취지에 청와대 등이 공감해 성사된 일이다. ▷‘Sorry Sorry 소리/내가 빨리 날아올라 구해줄게/소음공해 용서해줘.’ 동아일보의 소생 캠페인은 5월 슈퍼주니어의 ‘쏘리 쏘리’를 개사한 노래 ‘소리(Sorry) 소리’와 함께 닥터헬기의 현실을 담은 동영상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채널A ‘나는 몸신이다’에 출연했던 이 교수가 “소음 민원이 많아 닥터헬기 이착륙이 어렵다. 사람 살리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본보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에게 호소한 것이 계기였다. 이 홍보 동영상은 101만 뷰를 기록하며 닥터헬기에 대한 인식 개선에 기여했다. 생명을 살리는 소음을 감수하자는 뜻으로 풍선을 터뜨리는 동영상을 올리는 캠페인에 1만 명이 넘게 참여했다. ▷닥터헬기는 의료진이 탑승한 날아다니는 응급실이다. 2011년 처음 도입돼 권역별로 7대가 중증응급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그동안 약 9100번을 날아올라 8500명의 생명을 구했다. 9월에는 올 설 연휴 밤새 병원을 지키다 세상을 떠난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이름을 새긴 7번째 닥터헬기가 도입됐다. 산도 많고, 섬도 많은 한국에서 닥터헬기는 더 자주, 더 멀리 날아야만 한다. ▷영국은 닥터헬기가 활성화된 나라다. 유튜브에서 심근경색이 온 남자를 이송하기 위해 풋볼 경기장에 닥터헬기가 출동한 모습을 촬영한 동영상을 봤다. 경기장에 닥터헬기가 착륙하는 순간, 관중석은 박수 소리로 가득 찬다. 닥터헬기를 다룬 영국 BBC 다큐멘터리는 “힘들지만 보람된 일”이라는 구조대원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단 몇 분의 소음에 민원을 제기하는 건 그 힘든 일을 감내할 보람마저 빼앗는다.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는 업(業)을 감당하는 이들이 마치 죄인처럼 일해서는 안 된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19-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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