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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술에 취해 일면식도 없는 현직 서울시의원을 폭행한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13일 서울 강남경찰서는 40대 남성 A 씨를 상해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다고 밝혔다. A 씨는 11일 오후 11시 반경 강남구 압구정동 거리에서 술에 취한 채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인 40대 여성 B 씨의 목을 조르는 등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당시 A 씨는 만취 상태였으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B 씨가 마약을 했다”며 횡설수설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조사에서 A 씨는 “술에 취해 특별한 이유 없이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알고 보니 A 씨와 B 씨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으며, A 씨는 경찰 조사에서도 “(B 씨가) 국민의힘 시의원인 것을 몰랐다”는 취지로 진술했다.이후 경찰이 진행한 마약 간이 시약 검사에서 A 씨는 음성 반응이 나왔고, B 씨는 혐의점이 없어 마약 검사를 따로 하지는 않았다. 피해자인 B 씨는 타박상과 찰과상을 입고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은 A 씨를 상대로 자세한 사건 경위를 수사하고 있다.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캄보디아로 납치돼 감금·착취를 당하는 한국 청년이 급증하는 가운데, 피해자와 국제기구는 그 배경으로 캄보디아 정부의 부패를 지목하고 있다. 일부 고위 관료가 범죄조직과 결탁해 ‘뒷배’ 역할을 하면서 범죄조직이 근절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해외 체류 한국인의 귀국을 지원하는 단체인 한인구조단에 따르면, 이 단체는 2022년 하반기부터 캄보디아 한인회 등과 협력해 취업 사기를 당한 뒤 현지에 감금된 20, 30대 청년층을 구출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한인구조단 관계자는 “월 최대 20~30건의 구조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고 밝혔다.납치·고문·살인으로 이어지는 중범죄에 현지 정부 대신 민간단체가 나서야 하는 배경 역시 캄보디아 정부의 부패 때문이라는 게 이들 단체의 분석이다.지난해 캄보디아 범죄조직에 감금된 뒤 탈출한 한 30대 남성은 “현지 경찰은 (범행이 발각되면) 조직에 ‘이사 가라’고 흘리기도 한다”며 “웬치(범죄단지)도 주인이 대부분 정부 고위공무원이라 경찰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들어가더라도 (조직이) 사전에 다 알 수 있다. 조직은 매달 치 수익을 수만 달러씩 주인에게 상납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부패인식지수에서 캄보디아는 180개국 중 158위에 머물렀다. 실제로 캄보디아 현지에서 120억 원 규모의 피싱 범죄를 저질러 2월 현지 경찰에 체포된 한국인 강모(31) 씨 부부는 6월께 현지 경찰에 6000만~7000만 원의 뇌물을 건네고 풀려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한국 법무부가 수사관을 급파해 재검거를 요청했고, 이들은 7월 다시 체포됐다.미국 국무부는 올해 초 발표한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고위 정부 관료와 자문위원들이 사기 행위가 이루어지는 시설과 부동산을 사유화해 재정적 이득을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사기시설 운영자나 소유주를 단 한 명도 체포하거나 기소하지 않았다. 검사와 판사들은 기소기각·무죄판결·감형을 조건으로 뇌물을 받았다”고 밝혔다.국제앰네스티도 7월 보고서에서 “확인된 사기시설의 3분의 2 이상이 경찰 급습 이후에도 운영을 지속했다”고 비판했다. 한 생존자는 보고서에서 “경찰이 조직의 부역자 역할을 하기 때문에 도움을 요청해도 결국 우두머리에게 전달된다”고 증언했다.캄보디아 범죄조직의 급증세는 중국발 ‘일대일로(一帶一路)’ 투자 이후 형성된 범죄 인프라와 맞물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국제앰네스티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대 후반부터 중국의 대규모 자본이 캄보디아로 유입되며, 시아누크빌 등 특별경제구역(SEZ)에 카지노·호텔·리조트가 속속 건설됐다. 이 과정에서 중국인 범죄 네트워크가 경제특구에 유입돼 온라인 도박 산업을 장악했다.그러나 2019년 중국 정부의 압력으로 캄보디아 내 온라인 도박이 금지되자, 사용되지 않던 카지노와 호텔이 ‘온라인 사기’ 시설로 전환됐다. 보고서는 “약한 법 집행과 만연한 부패가 겹치면서 캄보디아가 온라인 사기의 온상이 됐다”고 지적했다.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경찰이 공직선거법과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가 풀려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에게 “3차 조사가 필요하다”며 출석을 요구했다.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이 전 위원장 측에 3차 조사가 필요하다고 13일 통보했다. 구체적인 조사 일정은 경찰과 이 전 위원장 측 협의에 따라 결정될 예정이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해 8월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좌파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집단” “다수의 독재로 흐르면 민주주의가 아닌 최악의 정치 형태가 된다” 등의 발언을 했다. 경찰은 이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이자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여당은 올 4월 30일 이 전 위원장을 경찰에 고발했다.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출범과 함께 방송통신위원회가 자동 폐지되면서 이달 1일 0시부로 자동 면직된 후 이튿날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은 고발장을 접수한 뒤 이 전 위원장에게 6차례 출석을 요구했으나 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법원은 이 전 위원장을 석방하며 “사실관계에 대한 다툼이 없어 추가 조사 필요성도 크지 않다”고 밝힌 상태다. 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

“실적이 안 나오면 ‘중국 조직에 팔아버린다’는 협박이 날아왔어요. 아무리 일해도 빚이 늘기만 하는 구조라서 탈출이 사실상 불가능했어요.”‘고수익 아르바이트’라는 홍보에 낚여 캄보디아의 범죄조직에 감금됐다가 가까스로 탈출한 30대 남성 정민수(가명) 씨는 12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최근 대학생 박모 씨(22)가 캄보디아에서 납치·살해되는 등 한국 청년들이 현지에서 변을 당하는 사례가 잇따르는 가운데, 정 씨처럼 다수의 피해자는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유혹에 휩쓸려 범죄에 휘말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밭’에 갇혀 노예처럼 일해” 지난해 6월 동남아 여행 도중 여행 경비가 바닥난 정 씨는 ‘캄보디아에서 월 7000달러(약 1000만 원) 이상 고수익 아르바이트’가 가능하다는 텔레그램 글을 접했다. 정 씨는 지원 메시지를 보냈다. 이후 3개월간의 ‘노예 감금 생활’이 시작됐다. 안내에 따라 정 씨가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은 수도 프놈펜 인근의 한 도시였다. 3m가 넘는 담장 위에는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고 무장 경비원 수십 명이 순찰을 돌았다. 이곳이 캄보디아의 ‘웬치’라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웬치는 동남아 보이스피싱 조직 사이에서 쓰는 은어로 범죄 단지를 뜻한다. ‘단지’를 뜻하는 중국어 위안취(园區)에서 유래했다. 도착하자마자 여권과 휴대폰을 빼앗긴 정 씨는 ‘로맨스 스캠’ 업무에 동원됐다. 여성인 척하며 남성을 유혹해 돈을 빼냈다. 채팅과 음성·영상통화를 직접 맡거나 도왔고, 영상통화에는 딥페이크 기술까지 동원됐다.조직원들은 웬치를 ‘개밭’이라고도 불렀다. ‘사람이 아니라 개처럼 일하고 맞는 곳’이라는 뜻이었다. 웬치에는 식당과 식료품점은 물론이고 카지노까지 있었지만 복지를 위한 시설은 아니었다. 콜라 한 잔이 5000원에 이를 정도로 물가가 비싸 빚만 늘어나는 구조였다. 식단은 기름기 많은 중국식 반찬뿐이었다. 3.3㎡(약 1평) 남짓한 방에 3명이 몸을 구겨 넣고 잠을 청했다. 숙식비도 모두 빚으로 계산됐다. “나가고 싶으면 나가라. 다만 개밭 비용(숙식비)을 내고 가라”는 협박이 이어졌다. 정 씨가 있던 조직 총책은 한국인이었다. 하지만 실적이 나쁘고 빚이 쌓인 피해자들은 폭력과 마약 투약 등 착취 수준이 더 심했던 중국 조직으로 넘겨졌다. 정 씨는 지난해 9월 주말 외출 기회를 틈타 탈출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여권에 나온 신상정보를 알고 있으니 한마디라도 뱉으면 찾아가 해코지하겠다”는 협박 메시지가 한동안 이어졌다.● ‘해외 고수익 알바’ 글 넘쳐나… ‘인권은 없다’ 극심한 협박과 납치, 감금은 정 씨만의 경험이 아니다.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 감금됐다가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의 도움으로 풀려난 한 남성은 “정보기술(IT) 관련 업무를 하면 월 800만∼1500만 원의 고수익을 준다. 1인 1실 호텔 숙소와 식사를 제공한다”는 구인 글을 보고 캄보디아로 향했다. 실상의 업무는 보이스피싱이었고, 업무를 거부하자 쇠파이프와 전기충격기를 동원한 구타가 이어졌다. 박 의원 측은 제보를 접하고 외교부 등에 긴급 구조 요청을 했다. 캄보디아 내 한국인 납치 신고 건수는 올해 1∼8월 330건에 달한다. 고수익 알바를 보장한다는 ‘위험한 초대’는 국내 포털 사이트 등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취재팀이 ‘해외 고수익 알바’를 검색해 한 사이트에 들어가자 수많은 구인 글이 나왔다. 한 게시글에선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일을 하면 기본급 290만 원에 인센티브를 포함하면 월평균 1000만∼2500만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 게시글 작성자와 텔레그램으로 직접 연락을 해보니, “보이스피싱 업무를 하면 되고, 한 주당 200만 원은 기본으로 벌 수 있고 열심히 일하는 만큼 돈은 더 벌 수 있다”고 밝혔다. 정 씨는 “최근 사망한 대학생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라며 “맞아 죽고, 마약 하다 죽는 사람이 상상 이상으로 많다. 웬치 안에 인권은 없다”고 지적했다.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캄보디아에서 한국 청년이 취업 사기나 감금 등 범죄에 연루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지만 한국 외교·치안 당국의 대응 체계는 현장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뒤늦게 캄보디아에 ‘코리안 데스크’(한인 범죄 전담 경찰)를 설치하는 방안을 현지 당국과 협의하기로 했다. 12일 현지 교민과 경찰 등에 따르면 2023년 11월 미얀마·라오스·태국 접경의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이 여행 금지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이 지역에 있던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이동하는 ‘풍선 효과’가 나타났다고 한다. 반면 캄보디아 경찰은 미온적으로 대응했다. 범죄조직의 위치나 내부 정보를 신고해도 별다른 조치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초 캄보디아의 한 웬치(범죄 단지)에 갇혔다가 탈출한 30대 남성은 “조직 관계자가 ‘우리는 경찰·고위 공무원과 깊게 연관돼 있어 적발로부터 안전하다’며 가담을 권유했다”며 “사실상 현지 경찰이 범죄 조직의 뒷배인 셈”이라고 주장했다. 보이스피싱 전문가인 오영훈 부산서부경찰서 수사과장은 “자국민 피해가 없고 조직의 소비 활동이 현지 경제에 일정 부분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캄보디아 정부가 단속에 소극적이었던 측면이 있다”고 했다. 한국 수사기관의 국제 공조 역량이 취약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 직원 15명 가운데 사건·사고를 담당하는 경찰 인력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3명에 불과하다. 지난달에야 1명을 추가 파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대사관에 신고했더니 ‘번역기를 돌려 현지 경찰에 신고하라’는 안내만 받았다”는 불만도 나왔다. 공권력의 공백 속에 범죄조직을 스스로 추적하는 ‘자경단’까지 등장했다. 한국인 대상 범죄에 연루된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얼굴과 여권 사본, 주거지 등을 공개하는 익명 채널이 텔레그램에서 활동하고 있다. 올 8월 캄보디아 보코산 지역에서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 박모 씨(22)가 범죄조직의 강요로 마약을 투약하는 영상도 이런 채널을 통해 처음 공개됐다. 자경단 채널 운영자 천마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현지 피의자 검거까지 수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신상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뒤늦게 총력 대응에 나섰다. 경찰청은 “이달 중 국가수사본부장을 캄보디아에 파견해 현지 상황을 점검하고 합동 수사 방안을 협의하겠다”고 밝혔다.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

캄보디아에서 한국 청년이 취업 사기나 감금 등 범죄에 연루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지만, 한국 외교·치안 당국의 대응 체계는 현장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뒤늦게 캄보디아에 ‘코리안 데스크’(한인 범죄 전담 경찰)를 설치하는 방안을 현지 당국과 협의하기로 했다.12일 현지 교민과 경찰 등에 따르면 2023년 11월 미얀마·라오스·태국 접경의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이 여행 금지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이 지역에 있던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이동하는 ‘풍선 효과’가 나타났다고 한다.반면 캄보디아 경찰은 미온적으로 대응했다. 범죄조직의 위치나 내부 정보를 신고해도 별다른 조치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초 캄보디아의 한 웬치(범죄 단지)에 갇혔다가 탈출한 30대 남성은 “조직 관계자가 ‘우리는 경찰·고위 공무원과 깊게 연관돼 있어 적발로부터 안전하다’며 가담을 권유했다”며 “사실상 현지 경찰이 범죄 조직의 뒷배인 셈”이라고 주장했다.보이스피싱 대응 전문가인 오영훈 부산서부경찰서 수사과장은 “자국민 피해가 없고 조직의 소비 활동이 현지 경제에 일정 부분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캄보디아 정부가 단속에 소극적이었던 측면이 있다”고 했다.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대상 범죄가 속출하는 건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한국 수사기관의 국제 공조 역량이 취약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 직원 15명 가운데 사건·사고를 담당하는 경찰 인력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3명에 불과하다. 지난달에야 1명을 추가 파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대사관에 신고했더니 ‘번역기를 돌려 현지 경찰에 신고하라’는 안내만 받았다”는 불만도 나왔다.공권력의 공백 속에 범죄조직을 스스로 추적하는 ‘자경단’까지 등장했다. 한국인 대상 범죄에 연루된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얼굴과 여권 사본, 주거지 등을 공개하는 익명 채널이 텔레그램에서 활동 중이다. 올 8월 캄보디아 보코산 지역에서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 박모 씨(22)가 범죄조직의 강요로 마약을 투약하는 영상도 이런 채널을 통해 처음 공개됐다. 자경단 채널 운영자 천마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현지 피의자 검거까지 수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신상을 공개한다”고 밝혔다.정부는 뒤늦게 총력 대응에 나섰다. 경찰청은 “이달 중 국가수사본부장을 캄보디아에 파견해 현지 상황을 점검하고 합동 수사 방안을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캄보디아 정부에 현지 경찰 조직에 파견돼 직접 수사에 나설 수 있는 코리안 데스크 설치도 공식 요청하기로 했다. 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부산=김화영}

“실적이 안 나오면 ‘중국 조직에 팔아버린다’는 협박이 날아왔어요. 아무리 일해도 빚이 늘기만 하는 구조라서 탈출이 거의 불가능했어요.”지난해 ‘고수익 알바(아르바이트)’라는 홍보에 낚여 캄보디아의 범죄조직에 감금됐다가 가까스로 탈출한 30대 남성 정민수(가명) 씨는 12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년 전 일인데도 수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최근 대학생 박모 씨(22)가 캄보디아에서 납치·살해되는 등 한국 청년들이 현지에서 변을 당하는 사례가 잇따르는 가운데, 정 씨처럼 대다수의 피해자는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유혹에 휩쓸려 범죄에 휘말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감금, 협박은 일상, 탈출 뒤에도 해코지 경고“고수익 텔레마케터 아르바이트. 기본급 월 2000달러, 성과급으로 7000달러 이상도 가능.”지난해 동남아 여행 도중 여행 경비가 바닥난 30대 남성 정 씨는 발을 동동 구르던 중 ‘고수익 아르바이트’가 가능하다는 텔레그램 게시글을 접했다. 정 씨는 지원 메시지를 보냈다. 직후 3개월간의 사실상 ‘노예 감금생활’이 시작됐다.텔레그램 게시자의 안내에 따라 정 씨가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은 프놈펜 인근의 한 도시. 마치 교도소처럼 3m가 넘는 담장 위에는 철조망과 무장 경비원 수십 명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곳이 캄보디아의 ‘웬치’라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웬치는 동남아 보이스피싱 조직 사이에서 쓰는 음어로, ‘단지’를 뜻하는 중국어 위엔취(园区)에서 유래했다. 정 씨가 도착하자 ‘인사과장’이라고 소개한 인물이 철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도착하자마자 ‘비자 대행 업무를 해야 한다’며 자연스레 여권을 걷어갔고, ‘보안을 위해’라며 휴대전화도 빼앗았다.정 씨는 ‘로맨스 스캠’ 업무에 동원됐다. 30~40대 여성인 척하며 40~60대 남성을 유혹해 돈을 빼냈다. 정 씨는 많게는 100명을 대상으로 채팅했고, 여성들은 음성 또는 영상 통화 업무에 동원됐다. 정 씨가 ‘대본’을 써주면 여성들이 넘겨받아 남성들을 유혹 후 투자금을 뜯어냈다. 영상통화에는 딥페이크 기술까지 동원됐다. 소규모 범죄생활단체였던 웬치는 식당, 카지노, 식료품점, 심지어 카지노까지 있었다. 이곳의 물가는 상상을 뛰어넘었다. 인센티브를 포함해 7000달러를 준다는 말은 허위였다. 2000달러의 기본급을 줬지만, 콜라 한 잔이 5000원 수준으로 모든 재화의 값이 시세를 뛰어넘었다. 정 씨는 “한 달을 살면 주는 월급이 남아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사실상의 감금생활이 이어졌다. 조직원들은 이곳을 ‘개밭’이라고 불렀다. 사람이 아니라 개처럼 일하고 맞는 곳이라는 뜻이었다. 식단은 기름기 많은 중국식 반찬뿐이었다. 3.3㎡(약 1평)가 조금 넘는 숙소에 3명이 몸을 구겨 넣고 잠을 청했다. 웬치에서 제공하는 숙식은 모두 피해자들의 ‘빚’이었다. “나가고 싶으면 나가라, 다만 개밭 비용(숙식비) 포함해 돈을 뱉어놓고 가라”는 협박이 이어졌다.정 씨가 있던 조직 총책은 한국인이었지만, ‘빚이 많은’ 피해자들은 중국 조직으로 넘겨졌다. 중국 조직은 극심한 폭력과 강제 마약 투약 등 한국 조직보다 착취의 수준이 심한 것으로 악평이 자자했다. “일을 제대로 못 하면 중국 조직으로 팔린다”는 공포와 압박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텼다.감금 생활의 압박과 범죄에 동참했다는 죄책감으로 버티던 정 씨는 주말 외출을 빌려 필사의 탈출을 감행했다. 탈출 후에도 협박은 이어졌다. 탈출 후 조직은 “여권에 나온 신상정보를 알고 있으니 한 마디라도 뱉으면 찾아가 해코지하겠다”고 협박했다. 실제 정 씨는 “여권 사진이 캄보디아 커뮤니티에 모두 뿌려졌다”고 했다.●‘해외 고수익 알바’ 글 넘쳐나… ‘인권은 없다’극심한 협박과 납치, 감금은 정 씨만의 경험이 아니다.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 감금됐다가 풀려난 한 남성은 ‘IT 관련 업무를 하면 월 800만~1500만원의 고수익을 준다. 1인 1실 호텔 숙소와 식사를 제공한다“는 구인 글을 보고 캄보디아로 향했다. 실상의 업무는 보이스피싱이었고, 업무를 거부하자 조직은 전기충격기를 들고 와 협박했다. 또 다른 웬치에선 쇠파이프와 전기충격기를 동원한 구타가 이어졌다. 기절하면 얼굴에 물을 뿌리고 폭행이 이어졌다고 한다.고수익 알바를 보장한다는 ‘위험한 초대’는 국내 포털 사이트 등을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10~12일 취재팀이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 ‘해외 고수익 알바’를 검색해 한 사이트에 들어가자 수많은 구인 구직 글이 나왔다. “감금 폭행이 전혀 없다”고 시작한 한 게시글에선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일을 하면 기본급 290만 원에 인센티브를 포함하면 월평균 1000만~2500만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초보자도 누구나 일을 시작하기 쉽고 난이도가 쉬운 채팅업무에 투입한다고 했다. 또 다른 글은 “해외에서 진행되는 텔레마케팅 업무에 남녀 무관, 나이 20~40세, 커플 친구 동반 지원 가능, 주급은 500만~1000만원”이라며 고수익과 쉬운 업무를 강조했다. 이중 ‘동남아지사에서 텔레마케팅(TM) 업무를 할 인재를 찾는다’는 한 게시글 작성자와 텔레그램으로 직접 연락을 해보니, “보이스피싱 업무를 하면 되고, 한 주당 200만 원은 기본으로 벌 수 있고 열심히 일하는 만큼 돈은 더 벌 수 있다”고 밝혔다. 출국을 빨리하고 싶은데 언제 할 수 있냐는 질문엔 “추석 연휴가 끝난 후 팀장 전화만 끝나면 바로 출국할 수 있다”고 답했다.“범죄에 연루돼 죄책감이 컸다”는 정 씨는 “이번에 사망한 대학생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라며 “맞아죽고, 마약하다 죽는 사람이 상상 이상으로 많다. 웬치 안에 인권은 없다”고 지적했다.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최근 서울 명동 등에서 극우단체 주도로 중국인을 겨냥한 ‘혐중(嫌中) 시위’가 잇따르는 가운데, 정부가 국내 체류 외국인과 관광객의 불안을 해소하고 외교적 파장을 막기 위해 혐오 집회·시위에 대한 강력 대응 방침을 밝혔다. 10일 행정안전부는 특정 국가나 국민을 겨냥한 혐오 시위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경찰위원회에 ‘경찰의 적극적인 법 집행 방안’ 안건을 부의했다. 해당 안건은 심의를 거친 뒤 혐오집회 금지, 조기 해산 등의 경찰 후속 조치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경찰위는 경찰 관련 주요 정책을 비롯해 행안부 장관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회의에 부친 사항을 심의 및 의결한다. 윤호중 행안부 장관은 “경찰은 혐오 집회·시위에 적극 대응해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경찰위에 경찰이 법 집행에 나설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반중 시위를 두고 “저질적 국격 훼손”이라고 비판한 지 8일 만에 나왔다. 이 대통령은 2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특정 국가와 국민을 겨냥한 괴담과 혐오 발언이 무차별적으로 퍼지고 있으며, 인종차별적 집회도 계속되고 있다”며 “국익과 국가 이미지를 훼손하는 자해 행위를 완전히 추방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국내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한 모욕·명예훼손 사건도 급증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외국인 피해 명예훼손 사건은 2022년 5건에서 지난해 20건으로 4배로 늘었다. 올해(1∼8월)는 18건이 발생했다. 모욕 사건도 2022년 13건에서 지난해 46건으로 증가했으며, 올해에만 47건이 발생해 지난해 전체 수치를 넘어섰다. 특히 중국인이 피해자인 경우가 많았다. 경찰이 사건별 대표 피해자를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중국 국적 피해자가 73명으로 전체(193명)의 37.8%를 차지했다.송진호 기자 jino@donga.com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최근 서울 명동 등에서 극우단체 주도로 중국인을 겨냥한 ‘혐중(嫌中) 시위’가 잇따르는 가운데, 정부가 국내 체류 외국인과 관광객 불안을 해소하고 외교적 파장을 막기 위해 혐오 집회·시위에 대한 강력 대응 방침을 밝혔다.10일 행정안전부는 특정 국가나 국민을 겨냥한 혐오 시위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경찰위원회에 ‘경찰의 적극적인 법 집행 방안’ 안건을 부의했다. 해당 안건은 심의를 거친 뒤 혐오집회 금지, 조기 해산 등의 경찰 후속 조치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경찰위는 경찰 관련 주요 정책을 비롯해 행안부 장관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회의에 부친 사항을 심의 및 의결한다. 행안부 장관이 경찰위에 안건을 올린 건 2018년 김부겸 당시 장관이 대법원장 차량 인화물질 투척사건 등을 부의한 이후 두 번째다.윤호중 행안부 장관은 “경찰은 혐오 집회·시위에 적극 대응해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경찰위원회에 경찰이 법 집행에 나설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했다”고 밝혔다.이번 조치는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반중 시위를 두고 “저질적 국격 훼손”이라고 비판한 지 8일 만에 나왔다. 이 대통령은 2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특정 국가와 국민을 겨냥한 괴담과 혐오 발언이 무차별적으로 퍼지고 있으며, 인종차별적 집회도 계속되고 있다”며 “국익과 국가 이미지를 훼손하는 자해 행위를 완전히 추방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국내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한 모욕·명예훼손 사건도 급증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외국인 피해 명예훼손 사건은 2022년 5건에서 지난해 20건으로 4배로 늘었다. 올해(1~8월)는 18건이 발생했다. 모욕 사건도 2022년 13건에서 지난해 46건으로 증가했으며, 올해에만 47건이 발생해 지난해 전체 수치를 넘어섰다. 특히 중국인이 피해자인 경우가 많았다. 경찰이 사건별 대표 피해자를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중국 국적 피해자가 73명으로 전체(193명)의 37.8%를 차지했다.송진호 기자jino@donga.com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한국인이 탑승한 가자지구 구호 선박이 이스라엘군에 나포됐다. 정부는 “조속히 석방될 수 있도록 이스라엘 당국에 지속적으로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8일 팔레스타인 지지 활동가 국제 네트워크 ‘자유선단연합(FFC)’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40분경(한국 시간) 가자지구로 향하던 구호선단 11척이 이스라엘군에 나포됐다. 선단에는 한국인 김아현 씨(27)도 탑승해 있었다. 김 씨가 속한 ‘개척자들’ 등 시민단체는 이날 서울 종로구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주이스라엘 한국 대사관은 구금자를 즉시 면담하고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하라”고 요구했다. 또 “피랍 지점은 자유항행이 가능한 지역”이라며 “배를 나포하고 선원을 체포하는 건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김 씨는 분쟁 지역인 가자지구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받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외교부 관계자는 “주이스라엘 대사관을 통해 (김 씨가) 신속하고 공정한 절차를 거쳐 빠른 시일 내에 석방될 수 있도록 지속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외교부는 X(옛 트위터)를 통해 “선박과 탑승자들은 안전하게 이스라엘 항구로 이송됐으며 곧 추방될 예정”이라고 밝혔다.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고도예 기자 yea@donga.com}

한국인이 탑승한 가자지구 구호 선박이 이스라엘군에 나포됐다. 정부는 “조속히 석방될 수 있도록 이스라엘 당국에 지속해서 요청하겠다”고 밝혔다.8일 팔레스타인 지지 활동가 국제 네트워크 ‘자유선단연합(FFC)’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40분경(한국 시간) 가자지구로 향하던 구호선단 11척이 이스라엘군에 나포됐다. 선단에는 한국인 김아현 씨(27)도 탑승해 있었다.김 씨가 속한 ‘개척자들’ 등 시민단체는 이날 서울 종로구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주이스라엘 한국 대사관은 구금자를 즉시 면담하고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하라”고 요구했다. 또 “피랍 지점은 자유항행이 가능한 지역”이라며 “배를 나포하고 선원을 체포하는 건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김 씨는 분쟁 지역인 가자지구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받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외교부 관계자는 “주이스라엘 대사관을 통해 (김 씨가) 신속하고 공정한 절차를 거쳐 빠른 시일 내에 석방될 수 있도록 지속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X(옛 트위터)를 통해 “선박과 탑승자들은 안전하게 이스라엘 항구로 이송됐으며 곧 추방될 예정”이라고 밝혔다.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고도예 기자 yea@donga.com}

박정보 신임 서울경찰청장이 추석 명절을 앞두고 서울 중구 명동 관광특구 등을 방문해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에 대한 엄정 대응을 강조했다.박 청장은 1일 외국인 관광객들과 시민들로 붐비는 서울 중구 명동 관광특구를 찾아 치안 활동을 점검하며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혐오와 차별, 폭행과 폭언 등 불법행위를 엄정 대응하라고 주문했다. 그는 현장 근무자들에겐 “외국인 관광객들이 대한민국의 품격에 걸맞는 안전과 환대를 느낄 수 있도록 세심하게 살펴달라”고 강조했다. 경찰은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 모두의 안전한 추석을 위해 기동순찰대 등 경찰력을 집중배치하고, ‘허위 폭탄 테러 협박’ 등 사회적 불안을 조성하는 공중협박죄 등에 대해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경찰은 명절 전통시장을 방문하는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지난달 1일부터 이달 9일까지 주변 도로에 한시적으로 주·정차를 허용하고 있다.아울러 박 청장은 이날 3월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경비 근무 중 뇌졸중으로 쓰러진 경찰관이 입원한 병문을 방문해 가족들에게 위로를 했다. 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국가 전산망 마비 사태를 불러온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 당시, 직원들이 리튬이온 배터리에 효과가 없는 ‘할론 소화기’로 자체 진화를 시도한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결국 초기 불길을 잡지 못하면서 피해가 일파만파로 번졌다. 정부가 배터리 화재용 소화기 기준을 내놓은 지 9개월이 지났지만 이를 통과한 제품은 아직 한 건도 없어 개발 지원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터리에 무용한 소화기로 진화 시도 소방 등에 따르면 불은 지난달 26일 오후 8시 15분경 국정자원 대전 본원 5층 전산실 서버 옆 무정전 전원장치(UPS)용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재 직후 건물에 비치된 할론 소화기로 불을 끄려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원도 같은 소화기로 진압을 시도했으나, 7분 뒤 배터리에서 다시 불길이 치솟았다.할론 소화기는 분말 대신 할로겐 가스를 분사해 잔재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전산실이나 미술관 등 데이터 손상이나 문화재 훼손을 최소화해야 하는 공간에서 주로 쓰인다. 그러나 리튬 배터리 화재에는 무력하다. 배터리 내부에서 화학 반응으로 온도가 1000도까지 치솟는 ‘열폭주(thermal runaway)’가 발생하면 연소가 지속해서 이뤄져 가스나 분말의 단발적인 분사로는 끄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 열폭주를 잡으려면 액체 약제가 효과적이라고 알려졌지만, 아직 그 효과를 소방청으로부터 인증받은 소화기가 없다. 30일 소방청에 따르면 소화기는 소방시설법에 따라 한국소방산업기술원으로부터 형식 승인과 제품 검사를 거쳐야 유통할 수 있는데, 이 절차를 통과한 제품이 없다는 뜻이다. 소방청은 지난해 6월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 사고로 23명이 숨지는 등 리튬 배터리 화재가 빈발하자 같은 해 12월 소형 리튬 배터리 화재용 소화기 인증 기준을 만들었다. 하지만 9개월째 해당 기준을 만족하는 제품은 등장하지 못한 상태다. 게다가 이 기준은 가정용 전자기기나 소형 장비를 겨냥한 수준일 뿐 대형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 화재와는 거리가 있다. 소방청 관계자는 “열폭주를 막을 약제에 대한 국제 공용 기준도 없다”며 “결국 현재로선 물에 배터리를 담그는 ‘냉각’ 방식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인터넷선 ‘가짜 배터리 소화기’ 활개공백이 이어지는 사이 온라인 시장에는 ‘리튬 배터리 전용 소화기’라는 이름을 달고 검증되지 않은 제품들이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다. 본보 취재팀이 30일 주요 인터넷 쇼핑몰에서 ‘리튬 배터리 소화기’를 검색해 본 결과 가격이 10만∼200만 원에 이르는 제품이 수십 종이나 판매 중이었다.한 판매업체는 “리튬 배터리 화재에 최적화됐다”는 홍보 문구를 내걸었고, 또 다른 업체는 “학교·공공기관 납품 실적이 있다”며 신뢰를 강조했다. 네이버 검색어 트렌드에서도 지난달 26일 이전 0건에 머물던 ‘리튬 배터리 소화기’ 검색량이 화재 직후 29일에는 100건으로 급증했다. 소방청은 올해 1, 2월 온라인 판매 제품 단속에서 미인증 소화기 19건을 적발한 바 있다. 소방청 관계자는 “공식 인증이 없는 상태에서 ‘배터리 전용’이라는 문구로 판매하는 것은 과장·허위 광고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내에서도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소방청 관련 기준과 인증 제품이 부재한 상황에서 행정안전부가 한 업체의 리튬 배터리 소화기에 ‘재난안전제품 인증’을 한 것이다. 행안부는 방재 목적이 아닌 산업 진흥 촉진 과정에서 이를 인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학과 교수는 “배터리 화재 사고가 계속 늘어나는 만큼 관련 연구 공모, 외국 제품 성능 테스트 등을 통해 전용 소화기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조승연 기자 cho@donga.com}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로 인한 국가 전산망 마비 사태가 발생한 후 첫 평일을 맞은 29일 일부 시스템이 긴급 복구되면서 ‘민원 대란’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현장 곳곳에선 혼란스러운 모습이 이어졌다. 정부 내부 행정 업무 시스템도 먹통이 되면서 공무원들의 업무 처리 방식도 ‘아날로그 시대’로 돌아갔다. 이날 오전부터 전국 관공서에는 마비 상태인 전산망 대신 직접 서류를 발급받으려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유치원 교사 최모 씨(33)는 출산 전 검사비 지원을 받기 위해 점심시간을 이용해 주민등록등본을 떼러 인천 남동구청 민원실을 찾았다. 하지만 길게 늘어선 대기줄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최 씨는 “예산 소진 시 검사비 지원을 받을 수 없어 최대한 빠르게 서류를 떼야 하는데, 마음만 급해진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행정복지센터를 찾은 이모 씨(32)는 “사업 계약상 준비해야 하는 서류가 주말 내내 발급이 안 돼 (센터를) 찾았다”고 했다. 서울 동대문구청을 찾은 회사원 김모 씨(27)도 “주말에 정부24 사이트가 마비돼 관련 서류를 발급받으러 연차를 쓰고 구청을 찾았다”고 말했다. 정부 내부 행정 업무 시스템도 먹통이 되면서 공무원들은 수기(手記)로 결재를 처리하고 팩스로 문서를 보내는 방식으로 업무를 소화해야 했다. 해양경찰청에선 수기 방식 문서 결재가 이뤄지고 있다. 한 해양경찰관은 “직원이 상급자나 다른 부서 직원들을 찾아다니며 결재를 받는 모습이 2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하다”고 했다. 한 중앙 부처 공무원은 “내부 메신저랑 메일 시스템이 먹통이 되며 부서 간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이동식저장장치(USB 메모리)를 들고 다니면서 타 부서 자료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다른 정부 부처 관계자도 “결재는 물론이고 주요 민원인의 민원 내용까지 수기로 받고 있다. 혹시라도 상사가 부재중이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29일 오후 10시 기준 화재의 영향으로 마비됐던 647개 시스템 중 복구된 것은 81개(12.5%)에 그쳤다. 행정안전부는 전소 피해를 본 96개 전산 시스템을 국정자원 대구 분원으로 옮길 방침이라고 이날 밝혔다. 전소된 시스템이 재가동되려면 한 달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김민재 행안부 1차관은 “정보자원 준비에 2주, 시스템 구축에 2주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대구 센터 입주 기업의 협조하에 최대한 일정을 당기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인천=공승배 기자 ksb@donga.com세종=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갑자기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모바일신분증이 먹통이라 제때 진료받지 못할 뻔했습니다.” 울산 북구에 사는 김세형 씨(35)는 “서둘러 병원에 가다 보니 신분증을 두고 갔는데 신분 확인을 할 길이 없어서 결국 아내가 병원으로 실물 신분증을 갖다주고 나서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며 이렇게 말했다.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실물 신분증 대신 모바일로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모바일신분증 서비스 등이 ‘먹통’이 되면서 주말 동안 시민들의 불편이 이어졌다. 28일 항공업계 등에 따르면 27일 국내 항공사 1곳에서 승객 3명이 모바일신분증 오류 문제로 제주행 항공기에 탑승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포공항에선 정부 전산망 화재 여파로 항공기에 탑승하지 못할 뻔한 사례가 곳곳에서 포착됐다. 28일 오후 김포발 광주행 비행기를 탑승하려던 김창현 씨(36)는 자녀의 신분증 용도로 쓰려던 주민등록등본이 무인민원발급기에서 출력되지 않아 발을 동동 굴렀다. 2년 전 촬영해 둔 등본 사진이 예외적으로 인정돼 마감 15분 전에야 비행기에 올라탔다. 하지만 예전에 찍어둔 사진이 없던 승객들은 결국 발길을 돌려야 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28일 오후 4시 기준 제주공항에서 승객 2명이 신분증 사본 등 대체 신분 확인이 되지 않아 탑승이 거부됐다”고 말했다.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도 혼란이 벌어졌다. 인천운항관리센터 관계자는 “선박 예매, 탑승 시 휴대전화 촬영 사진 등 신분증 사본을 일시적으로 인정해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재 직후 먹통이 된 모바일신분증은 28일 오전이 되어서야 일부 복구됐다. 한국조폐공사에 따르면 재해복구(DR) 체계 전환으로 기존 화재 발생 전에 발급받은 모바일신분증은 금융서비스를 비롯한 신분 확인에 쓸 수 있다. 기존에 받은 모바일 주민등록증, 모바일 운전면허증 등은 신분증으로서의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신규 발급이나 재발급은 온라인으로 불가능하고, 모바일 국가보훈등록증도 금융거래 관련 제출 기능이 제한된 상태다.김포=조승연 기자 cho@donga.com울산=최창환 기자 oldbay77@donga.com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이호 기자 number2@donga.com}

“갑자기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모바일신분증이 먹통이라 제때 진료받지 못할 뻔했습니다.”울산 북구에 사는 김세형 씨(35)는 “서둘러 병원에 가다보니 신분증을 두고 갔는데 신분 확인을 할 길이 없어서 결국 아내가 병원으로 실물 신분증을 갖다주고 나서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며 이렇게 말했다.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실물 신분증 대신 모바일로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모바일신분증 서비스 등이 ‘먹통’이 되면서 주말 동안 시민들의 불편이 이어졌다. 28일 항공업계 등에 따르면 27일 국내 항공사 1곳에서 승객 3명이 모바일신분증 오류 문제로 제주행 항공기 탑승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항공사 관계자는 “해당 승객 3명은 수수료 없이 환불 조치했다”며 “항공사별로 이런 사례가 2, 3건은 있는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포공항에선 정부 전산망 화재 여파로 항공기를 탑승하지 못할 뻔한 사례가 곳곳에서 포착됐다. 28일 오후 김포발 광주행 비행기를 탑승하려던 김창현 씨(36)는 자녀의 신분증 용도로 쓰려던 주민등록등본이 무인민원발급기에서 출력되지 않아 발을 동동 굴렀다. 2년 전 촬영해 둔 등본 사진이 예외적으로 인정돼 마감 15분 전에야 비행기에 올라탔다. 하지만 예전에 찍어둔 사진이 없던 승객들은 결국 발길을 돌려야 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28일 오후 4시 기준 제주공항에서 승객 2명이 신분증 사본 등 대체 신분 확인이 되지 않아 탑승이 거부됐다”고 말했다.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도 혼란이 벌어졌다. 인천운항관리센터 관계자는 “선박 예매, 탑승 시 휴대전화 촬영 사진 등 신분증 사본을 일시적으로 인정해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재 직후 먹통이 된 모바일신분증은 28일 오전이 되어서야 일부 복구됐다. 한국조폐공사에 따르면 재해복구(DR) 체계 전환으로 기존 화재 발생 전에 발급받은 모바일신분증은 금융서비스를 비롯한 신분 확인에 쓸 수 있다. 기존에 받은 모바일 주민등록증, 모바일 운전면허증 등은 신분증으로서의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신규발급이나 재발급은 온라인 상으로 불가능하고, 모바일 국가보훈등록증도 금융거래 관련 제출 기능이 제한된 상태다.김포=조승연 기자 cho@donga.com울산=최창환 기자 oldbay77@donga.com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이호 기자 number2@donga.com}

“사실상 다크웹 연구가 중단됐습니다.”해킹으로 유출된 개인 정보의 ‘불법 유통지’인 다크웹을 연구하고 있는 KAIST A 교수는 요즘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다크웹에선 여전히 불법적인 정보가 넘쳐나고 있지만 관련된 국가 연구과제 예산은 줄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 올라온 불법 정보가 금방 삭제되는 다크웹 분석을 위해선 수십 TB(테라바이트) 이상의 정보를 보관할 서버 장비가 필요한데, 장비를 구매할 예산조차 없다고 한다. A 교수는 “2018년경 수십억 원 단위였던 국가 연구과제가 현재는 수천만 원대 연구 외에 사실상 사라진 수준이다. 지도 학생들이 하루에 1, 2시간가량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연구하는 실정”이라면서 “실질적인 다크웹 게시자 추적, 콘텐츠 분석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가짜 기지국 방어법 연구 교수도 “예산 줄어”24일 동아일보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올해 과기정통부, 경찰청, 국토교통부 등 범부처 합산 사이버보안 연구개발(R&D) 예산을 분석한 결과 전체 예산은 증가했지만, ‘전통 사이버 보안’에 대한 투자는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전통 사이버 보안이란 서버 내 데이터를 암호화하거나, 여러 서버가 엮여 있는 네트워크, 통신의 취약점을 진단하고 방화벽 등을 통해 막아내는 분야다. 일선 연구자들은 “신기술인 인공지능(AI) 관련 예산이 늘어나며 전체 예산은 증가했지만 여전히 골칫거리인 전통 사이버 보안 예산은 감소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KT 소액결제 사건과 롯데카드 의혹 모두 네트워크, 방화벽 등 사이버 보안 분야에서 취약점을 드러냈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발생한 해킹 사건 신고 중 85.5%가 서버 해킹, 디도스(DDoS), 악성코드 등 AI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해킹 유형이었다.전통 사이버 보안과 관련한 대표적 사업이 ‘정보보호 핵심 원천기술’ 개발 예산이다. 해당 사업 예산은 국가 및 공공 주요 인프라와 네트워크, 데이터 보호를 위해 2016년부터 이어져 왔다. 하지만 이 역시 지난해 1075억 원에서 올해 993억 원으로 감소했다. 중소 보안기업 등 민간 기업 육성을 위한 ‘사이버 보안 펀드’ 예산도 지난해 200억 원에서 올해 100억 원으로 반 토막이 났다.전문가들은 “창(해킹)은 갈수록 날카로워지는데 방패(사이버 보안)에 대한 투자는 줄어들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대에서 사이버 보안 연구를 진행 중인 B 교수는 “정부에서 내려오는 보안 관련 연구비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체감된다”고 했다. KAIST에서 KT 소액결제 사건과 유사한 해킹 공격에 대한 방어책을 연구하는 강민석 전산학부 교수도 “지난해 우리 연구실의 사이버 보안 연구 예산이 20∼30% 줄었다. 이 추세라면 AI와 거리가 있는 연구는 없어질 수 있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 국내 기업 97% 보안 인력 부족 호소예산 부족 여파로 일선 연구 현장의 인력마저 부족해지고 있다. 해킹 관련 암호학을 연구하고 있는 국내 유명 대학 C 교수는 지난해 연구과제 예산의 80%가 삭감돼 연구 인력을 절반으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 전문성을 갖춘 인력 양성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보니 기업들도 인력난을 겪고 있다. 최근 글로벌 보안업체 시스코가 발표한 ‘2025 사이버 보안 준비지수’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97%가 보안 인력 부족을 호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안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개발 업체를 운영하는 김영랑 대표(41)는 “해킹을 방어하는 분야는 성과가 눈에 띄지 않아 승진 등 기업에서 처우가 좋지 않다는 인식이 있어 유입도 적다”고 짚었다.대전=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발각된 후 차를 버리고 달아난 유명 유튜버가 경찰에 체포됐다.23일 서울 송파경찰서는 도로교통법상 음주측정 거부 등 혐의로 30대 남성 권모 씨를 현행범 체포했다고 밝혔다. 권 씨는 21일 새벽 3시 43분경 음주 상태로 서울 강남구에서 송파구까지 약 12km를 운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출동한 경찰이 차량 정차 요구를 했지만 권 씨는 차량을 버리고 300m가량 도주했다. 그는 경찰에 붙잡힌 뒤에도 약 20분간 음주측정을 수차례 거부했다. 권 씨는 구독자 165만 명을 보유한 유명 유튜버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트로트 가수 김호중 씨(34) 역시 지난해 5월 음주 상태로 운전하다 택시와 접촉사고를 내고 달아난 혐의로 체포됐다. 올해 4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2심 재판에서 재판부는 “김 씨가 매니저에게 허위 자수를 종용하고 블랙박스 메모리칩을 제거를 시도하는 등 죄질이 불량하다”고 판단해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김 씨는 현재 경기 여주시 소재의 소망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현행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경찰의 정당한 음주 측정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500만 원 이상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측정을 거부하면 운전면허는 곧바로 취소된다.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최근 국내 한 마약수사대는 텔레그램에서 필로폰 등을 거래하는 조직의 드로퍼(전달책)를 붙잡았다. 수사대는 그를 정보원으로 삼아 윗선을 추적하고자 했다. 중간 공급책은 “신원을 확인하겠다”며 신분증과 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등본을 요구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검경이 마약 수사를 위해 위장 신분증을 발급하는 건 불법이어서 수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관은 “제도적 뒷받침 없이 마약범죄 윗선을 추적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마약 사범이 늘고 있지만, 위장 수사(언더커버)를 허용하지 않는 현행 법제 탓에 꼬리만 잡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직 마약 수사관 10명 중 9명은 언더커버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관련 법안은 국회에 1년 넘게 계류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수사관 10명 중 9명 “언더커버 필요” 22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마약류 범죄 대응 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경찰과 검찰, 관세청 소속 마약수사관 202명을 설문한 결과를 공개했다. 응답자 189명(93.5%)이 “위장 수사 제도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설문에 참여한 한 경찰관은 “현재 허용되는 수준의 위장 수사는 최말단 배달책 외엔 검거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현행 형사소송법 등에는 위장 수사와 관련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다만 2007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범죄 의사가 없는 사람에게 범죄를 저지르게 유도하는 건 ‘함정수사’로 위법하다”는 기준만 제시돼 있다. 이에 따라 설령 언더커버로 범인을 붙잡아 기소해도 공소 자체가 무효가 된다. 유일한 예외가 아동 성착취물 수사다. 2021년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으로 언더커버 허용 조항이 추가돼, 수사기관이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마약 사범은 2021년 1만626명에서 2024년 1만3512명으로 늘었다. 올해 1∼8월에는 9047명이 검거됐다. 눈여겨볼 점은 올해 검거된 이들 중 공급 사범이 3316명으로 그 비율이 36.7%에 그쳤다는 점이다. 지난해(40.0%)보다 비율이 오히려 낮아졌다. 경기 지역에서 마약을 수사하는 한 경찰관은 “마약 거래가 점조직으로 분화하면서 공급책을 잡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대구경찰청은 이례적으로 마약 조직의 총책을 포함해 57명을 일망타진했다. 조직 측이 신분증을 요구하지 않은 허술한 점 때문이었다. 수사에 참여한 한 경찰관은 “이번 경우는 위조 신분이 필요 없었지만, 오프라인 거래 등으로 들어가 경찰이 아님을 위장하려면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관련법은 국회에 1년 넘게 계류 정부와 국회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지난해 8월 국회엔 언더커버를 허용하는 마약류관리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정부도 올 3월 ‘제1차 마약류 관리 기본계획’을 통해 “연내에 가짜 신분증 등을 활용한 잠입 수사를 제도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2일 현재 관련 법안 3건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법안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에 부쳐진 이후 진전이 없는 것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발의된 법안의 차이를 조율해 단일안을 만들 예정”이라며 “위장 신분이 허용되면 공급책 검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해외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은 법무부 장관이 마련한 가이드라인을 근거로 언더커버를 폭넓게 허용한다. 독일과 프랑스 등도 형사소송법상 마약 같은 중대범죄에는 언더커버를 합법화했다. 영국과 호주 등도 판례에 따라 언더커버를 시행하고 있다. 대체로 사전 허가나 사후 감사 등 장치를 두고 인권 침해 여부를 감시한다. 법제 정비가 늦어질수록 마약이 생활 공간에 더 깊숙이 파고들 수 있는 만큼 언더커버 허용을 고려할 때가 됐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배상균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언더커버 면책 규정을 법에 명시해 실효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흥희 남서울대 국제대학원 글로벌중독재활상담학과 교수는 “말단 배달책만 잡아서는 근절이 어렵고 공급책, 생산 제조책, 총판매책 등 윗선 검거를 통해 확산 고리를 차단해야 마약 투약 나이 하락과 일상 속 침투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모두 구속돼 구치소에 수감 중인 가운데 대통령경호처가 여전히 윤 전 대통령의 사저를 경호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9일 동아일보 취재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아크로비스타 윤 전 대통령 사저를 지키는 경호처 인력은 인근 빌딩에 사무실을 두고 최소 4명 이상 근무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사저에서 도보 6분 거리에 있는 건물 1층 두 개 호실이 경호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었다. 사무실 창문에는 불투명 필름이 붙어 있어 내부가 보이지 않았지만, 인근 주민들은 상주 인원이 4명 이상이라고 전했다. 대통령경호처는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과 규정에 따라 최소 수준의 경호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며 빈 사저에 대한 경호를 인정했다. 하지만 구체적 인력 규모는 “보안 사항”이라며 공개하지 않았다. 인근 부동산 등에 따르면 해당 사무실은 두 호실을 합쳐 200m²(약 60평) 정도로 임대료는 월 300만 원 수준이다. 매달 300만 원 이상이 임차료로 쓰이는 셈이다. 현행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은 임기 중 퇴임한 대통령과 가족에게 5년간 경호를 제공하고 필요시 5년 연장도 가능하도록 규정한다. 탄핵으로 파면되거나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돼도 연금 등 예우는 제한되지만 경호·경비는 유지된다. 내란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고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경호에도 지난해 2245만 원의 세금이 쓰였다. 10년 이후에는 경찰이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에 따라 주요 인사 경호를 이어간다. 국격을 위해 최소한의 경호는 필요하다는 취지다. 하지만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모두 구속돼 경호 대상이 없는 상황에서 빈집을 지키는 것은 행정력과 세금 낭비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저 인근 한 주민은 “아무도 없는 집을 왜 지키냐”며 “결국 그 비용도 국민의 세금 아니냐”고 했다. 국회에선 파면된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경호를 제외하거나, 경호처 권한을 줄이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 잇달아 발의됐다. 윤 전 대통령 비상계엄 사태 이후 발의된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22건,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8건으로, 대부분 경호 대상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