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김순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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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순덕 칼럼니스트입니다.

yuri@donga.com

취재분야

2025-11-07~2025-12-07
칼럼97%
정치일반3%
  • [사설]SNS가 선거 民意를 왜곡하게 해선 안 된다

    인터넷 게시판, 손수제작물(UCC), 트위터 등 뉴미디어를 이용한 사전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조항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어제 헌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사실상 전면 허용함으로써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뉴미디어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행 선거법 93조 1항은 ‘선거일 180일 전부터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해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추천 또는 반대하는 내용을 포함한 광고, 인사장, 벽보, 사진, 문서 등은 물론이고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것을 금지한다’고 명시했다. 헌재 결정의 핵심은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것’에 SNS가 포함되느냐 여부였다. 헌재는 “정치적 표현과 선거운동에 대해서는 자유를 원칙으로, 금지를 예외로 해야 한다”며 인터넷이나 트위터 같은 뉴미디어가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것’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이 조항의 입법 취지가 후보자들 간의 경제력 차이에 따른 불균형을 막기 위한 것인데, 인터넷은 이용비용이 거의 안 들어가기 때문에 입법 취지에 충실한 도구라는 설명이다. 공직선거법의 대원칙은 ‘돈은 묶고 입은 푼다’는 것이다. SNS가 이 정신을 구현할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헌재가 ‘돈 안 드는 뉴미디어 선거운동’을 허용한 것은 원칙적으로 환영할 만하다. 뉴미디어를 현명하게 활용하면 과도한 선거운동 비용을 줄이고, 선거비 충당을 위한 부패의 소지를 없앨 수 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대중성 있는 교수 연예인 작가들이 트위터를 통해 박원순 무소속 후보를 적극 지원함으로써 당선에 기여했다. 내년 총선과 대선 때는 SNS 선거운동 합법화로 정치인들이 팔로어를 많이 거느린 유명인사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경쟁이 치열할 것 같다. 그러나 SNS를 이용한 방식의 선거운동이 무제한 허용되는 건 아니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을 공표하거나 후보자를 비방하는 행위가 금지돼 있다. 이는 SNS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온라인을 통해 이런 불법 선거운동을 할 경우 고스란히 족적이 남기 때문에 법망을 빠져나가기 어렵다. 정부 당국은 선거 민의(民意)를 왜곡하는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온라인에서도 단속의 끈을 늦춰서는 안 된다.}

    • 201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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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순덕]사랑의 화신

    “인민들의 건강까지 헤아리시어 이런 사랑의 조치를 취해 주시니….” 북한 매체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의식장 주변에 더운물 매대, 의료초소 같은 편의시설이 새 지도자 김정은의 지시로 차려졌다며 ‘인민적 지도자 띄우기’에 나섰다. 엄동설한임에도 하루 세 번씩 조문을 다녀오지 않으면 사상을 의심받는 곳이 북한이다. 그런데도 조선중앙방송은 “조의식장을 찾은 주민들이 사탕가루 물을 받아들고 커다란 격정에 휩싸여 눈물을 금치 못하고 있다”며 “진정 그이(김정은)는 사랑의 화신이시라고 시민들은 격정을 토했다”고 전했다. ▷북에서는 지도자의 사랑도 대를 잇는다고 믿는 모양이다. 김정일 역시 북한 매체에 따르면 사랑의 화신이었다. 2005년 노동신문은 불난 집에서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화를 먼저 꺼낸 뒤 아내를 구하려다가 숨진 남자를 소개하면서 “김 위원장이 이 소식을 보고받고 온 나라가 알도록 해주시는 은정 깊은 사랑을 베풀었다”고 전했다. 이런 ‘사랑’ 속에 생겨난 북한사람의 ‘충성심’은 우리도 목격한 바 있다.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때 북한에서 온 ‘미녀 응원단’은 김정일 사진이 담긴 플래카드가 빗속에 방치돼 있다며 끌어안고 통곡했다. ▷당시 북한 출신 배우 겸 가수 김혜영 씨는 어릴 때부터 받은 이념교육 때문에 그런 반응이 나온다고 했다. 미국 뉴욕타임스의 니컬러스 크리스토퍼는 “북한에선 집집마다 벽에 붙어있는 스피커에서 종일 선전이 나온다”며 더욱 놀라운 점은 여기엔 켜고 끌 수 있는 스위치가 없다는 사실이라고 전했다. 정치적 반대만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까지 지배한다는 점에서 “북한은 세상에서 제일가는 전체주의 국가”라며 크리스토퍼는 북한 주민들의 애도가 진정일 수 있고, 북한은 금방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태어나면서부터 김일성 집안의 ‘사랑 교육’을 받고 산 북한 동포들은 어쩌면 우리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1994년 10월 김일성의 100일 추모제를 마친 뒤 김정일은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는 김일성이므로 조선민족은 김일성민족이라고 선언했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감정도 연인의 거짓에서 비롯됐음을 깨닫는 순간, 환상에서 깨어날 수 있다. 북한의 한민족(韓民族)도 그랬으면 좋겠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 2011-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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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대통령의 결혼기념일

    19일은 이명박(MB) 대통령 부부의 41번째 결혼기념일이다. 대통령의 만 70세 생일이기도 하다. 기념일을 한꺼번에 치르는 게 좋겠다 싶어 생일날 결혼식을 올렸다니 MB는 타고난 실용주의자인 것 같다. 4년 전 오늘 김윤옥 여사는 MB를 찍은 1150만 명의 유권자와 함께 ‘대통령 당선’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해마다 이날이면 남편에게 나이 수만큼의 장미꽃을 받는다는 영부인이 오늘 아침에도 그 함박웃음을 지었을까.처가의 비리는 더 치명적일 수도 김 여사의 사촌오빠인 김재홍 KT&G복지재단 이사장이 제일저축은행에서 4억여 원의 금품 로비를 받은 혐의로 최근 구속됐다. 그는 대통령 부인의 남동생 김재정 씨가 작년에 작고한 뒤 사실상 집안을 대표했던 사람이다. 둘째 언니의 남편인 황태섭 씨도 2008년 제일저축은행 고문으로 위촉돼 고문료로 수억 원대를 받은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수사 결과에 따라선 더 큰 권력형 비리로 번질 수도 있는 사안이다. 셋째 언니의 남편은 2008년 말 당시 한상률 국세청장이 지역유지들과 골프를 친 뒤 저녁을 먹는 자리에 동석해 연임 로비 의혹을 사기도 했다. 취임 1년도 안 됐던 2008년 여름 사촌언니 김옥희 씨가 30억 원대 공천청탁 사기혐의로 구속됐을 때만 해도 청와대는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이 먼저 포착해 검찰에 이첩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올 5월 은진수 전 감사위원의 비리가 터졌을 때는 “그럼에도 친인척 비리가 나오지 않는 것은 ‘해도 너무한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민정에서 철저했기 때문”이라고 자부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는 얘기다. 오히려 역대 정부에선 집권 5년차쯤 터지던 친인척 비리가 현 정부에서 더 빨리 터져 ‘레임덕’을 재촉할 판이다. 대통령 친인척의 비리 소지를 미리 차단하는 게 바로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민정수석비서관실의 핵심 기능이자 존재 이유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말대로 ‘친인척 챙기기’가 인간본성이라면, 왜 우리나라는 정권마다 이 모양인지 절망스러워도 엄격한 제도와 법치로 끊임없이 고칠 수밖에 없다. 민정수석을 지낸 정동기 전 감사원장 후보, 권재진 법무장관, 그리고 민정1비서관을 지낸 장다사로 총무기획관은 당시 무얼 하고 있었는지, 그런데도 승진을 거듭한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친인척 비리에 경중이 있을 리 없지만 ‘처가 비리’는 더 아프다. 막기는 더 힘든 반면 후폭풍은 대통령의 인기와 권위를 떨어뜨릴 만큼 크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부인 사랑이 지극하거나 처가에 신세를 진 적이 있을 경우 사정기관에서 “아니 되옵니다” 하기 어렵다는 건 능히 짐작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 시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스리 허(許)’ 중 두 사람이 밀려난 건 이철희 장영자 어음사기사건에 강력한 대처를 주장했기 때문이라는 비화는 유명하다. 장영자 씨의 형부가 전 전 대통령 부인의 삼촌이었다.영부인이 할 수 있는 일 아직 많다 우리는 존경하는 대통령을 많이 갖지 못했어도 존경하는 대통령 부인은 많이 두었던 나라다. 4년 전 김 여사는 후덕한 이미지와 활달하고 소탈한 웃음으로 MB의 다소 날카로운 인상을 보완해줬다. 어떤 인상학 전문가는 “복을 타고난 얼굴이어서 MB가 대통령이 된 것도 부인 덕분”이라고 했을 정도다. MB는 박근혜 전 대표와 치열한 경선을 치를 때 이미 “아내가 낙천적이라 그 옆에 있으면 나도 걱정이 없어진다”며 부인이 ‘힘의 원천’임을 고백했다. 요즘은 그 후덕함이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한국 패션과 미용의 우수성을 알리는 건 좋지만 너무 세련되게 변신한 나머지 어려운 국민을 보듬는 ‘어머니’ 이미지가 덜하다는 얘기가 나돈다. 대통령 부인의 힘을 활용해 여성문제나 소외된 계층문제에 적극 나서주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김 여사는 얼마 전 전방의 한 부대를 방문해 아들같은 군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이 하고자 하는 일이 국민에게 도움이 되고, 나라에 도움 되는 일이면 밀고 나가는 것이지 누가 욕한다고 신경 쓰면 아무 일도 못한다”고 했다. 옳은 말이되 “인터넷에서 뭐라 그러면 저는 무조건 패스(통과)다. 그거 들으면 괜히 병 날 텐데…”라고 한 건 지나쳤다. “인터넷에서 뭐라 그러면 마음이 아프다. 일은 하더라도 국민의 마음을 살펴가며 하라고 전달한다”고 말하는 ‘연기’뿐 아니라 실제로도 그런 역할이 필요하다. 그래서 미국의 사례를 연구한 케이티 마턴은 ‘숨은 권력자’라는 책에서 “대통령의 보완재 역할을 한 퍼스트레이디가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고 했다. 김 여사는 1년만 지나면 자유인이 된다. 그러나 MB의 유산은 오래 간다. 공직 없이도 대통령과 가장 내밀하고 고독한 시간을 함께하면서 역사에 직간접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대통령 부인이다. 누구도 못하지만 김 여사는 할 수 있는 일이 아직도 많다. 1년이면 아이도 잉태해 낳아 기를 만큼 긴 시간이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 2011-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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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鐵의 영웅 박태준 지다

    1973년 6월 9일 오전 7시 반 포항제철소 용광로에서 황금빛 쇳물이 흘러나오자 건설일꾼들이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다. 오렌지색 섬광이 사람 키보다 높이 치솟는 순간 박태준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국 역사상 최초로 대형 고로에서 ‘산업의 쌀’이라는 쇳물이 터져 나온 순간이었다. 우리 손으로 자체 생산한 값싸고 품질 좋은 철강은 오늘날 한국이 조선 자동차 가전 등에서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박태준은 1967년 종합제철소 건설추진위원장을 맡아 “실패하면 오른쪽에 있는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겠다”는 ‘우향우 정신’으로 포항제철소를 탄생시켰다. 포항 모래벌판에서 오늘날 조업능력 4위의 세계적 철강기업을 키워낸 ‘철(鐵)의 영웅’ 청암 박태준 포스코(옛 포항제철) 명예회장이 어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한국경제의 압축성장을 상징하는 인물이자 불굴의 기업가정신의 화신이었다. 1970년 1인당 국민소득 254달러였던 가난한 농업국가가 선진 산업국가로 나아가자면 철강의 생산이 무엇보다 절실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과업을 받은 박태준은 뜨거운 애국심과 군인정신으로 맨땅에서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시대적 소명을 이뤄냈다. 작가 조정래는 ‘한강’이라는 대하소설에서 박태준을 한국 경제 발전을 상징하는 인물로 그려냈다. 조정래는 한 인터뷰에서 “포항제철이 생기면서 우리 경제가 중화학공업으로 체질을 바꾸었다. 국산 철강의 가격은 수입 철강에 비해 3분의 1이나 싸 산업경쟁력을 키웠다”고 박태준과 포항제철의 공로를 평가했다. 조정래는 “한국의 경제발전사에서 가장 크고 밝게 빛나는 인물 중 하나가 박태준”이라는 헌사를 바쳤다. 포스코는 1971년 포스코교육재단(옛 제철학원)을 세우고 이후 포스텍 등 12개 학교를 설립해 전국 최고 수준의 공교육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지방 작은 도시에 우수한 인력을 유치하려면 직원 자녀의 교육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박태준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은 지역 균형발전과 해외기업 투자 유치에도 유용한 답이 될 수 있다. 1981년 11대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민정당 대표와 자민련 총재, 국무총리를 지내는 동안 정치인으로서 박태준은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지닌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시대는 다를지언정 그와 같은 헌신적 열정과 비전을 갖춘 기업가가 많이 나와야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 한국경제의 태동기를 이끈 거목이 세상을 떠났다. 삼가 명복을 빈다.}

    • 201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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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이상득 의원 떠밀리기 전에 은퇴했어야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이 어제 “당의 쇄신과 화합에 작은 밑거름이 되고자 한다”며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사실상 정계 은퇴다. 이 의원은 최근까지 지역구(포항남-울릉)를 찾아 표밭을 다졌다. 몇몇 지인에게는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면 무소속으로라도 출마하겠다”고 밝힐 만큼 의원직에 집착했다. 그러나 최근 이 의원의 보좌관 박모 씨가 SLS그룹과 제일저축은행 구명 로비에 관련돼 7억여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이 의원 보좌관 출신으로 ‘왕차관’으로 불려온 박영준 전 차관도 SLS그룹과 관련돼 소환을 앞두고 있다. 이 의원의 은퇴 선언은 측근 비리 의혹 등으로 막다른 골목까지 몰린 끝에 나온 것이어서 씁쓸하다. ‘만사형통(萬事兄通)’ 소리를 듣던 이 의원은 2008년 18대 총선 때 한나라당 공천자 55명으로부터 불출마 요구를 받고도 출마를 강행해 65세 이상 고령 의원 ‘물갈이 원칙’을 무너뜨렸다. 이 대통령 당선 이후 “동생이 대통령이 됐는데 형으로서 뭘 더 바라겠느냐”며 훌훌 털고 떠났더라면 이번처럼 떠밀리듯 불출마 선언을 하는 국면으로 몰리진 않았을 것이다. 그의 은퇴 의사 표명과 관계없이 측근 비리에 대해서는 관련 여부를 철저히 수사해 범법 사실이 드러나면 누구든 엄정하게 처리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사촌처남인 김재홍 세방학원 이사도 제일저축은행 구명 로비와 관련해 4억 원을 받은 혐의로 어제 소환조사를 받았다. ‘도덕적으로 완벽하다’고 자신했던 이 대통령이 임기 말 친인척 비리로 궁지에 빠진 역대 정권의 전철을 밟는다면 우리 정치의 비극이다. 이 대통령은 9월 말 국무회의에서 “(친인척·측근 비리를) 철저히 예방하고 대처하는 방안을 관계부처가 모여 협의해 달라”고 지시한 바 있다. 사법당국이 티끌 하나도 의혹이 없게 수사해야만 또 다른 정권 비리를 예방할 수 있다. 정권을 봐주기 위해 적당히 축소 수사를 하면 의혹이 증폭돼 특별검사를 도입하자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어제 초선인 홍정욱 한나라당 의원도 “정당과 국회를 바로 세우기에는 내 역량과 지혜가 턱없이 모자랐다”며 내년 총선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지금까지 정치 공간에서 ‘국민을 위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 한나라당 의원들은 불출마 이후에라도 사회봉사에 적극 참여하기 바란다. 불출마 의원들이 낮은 자리에서 춥고 아픈 사람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그들의 진심과 한나라당의 환골탈태 노력을 믿어주는 국민이 늘어날 것이다.}

    • 2011-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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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순덕]부자나라들의 빈부격차

    우리나라에서 ‘양극화’가 정치 이슈로 떠오른 때는 2005년이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신년연설에서 “한국 경제의 문제점이 양극화”라며 해결방안으로 ‘동반성장’을 제시했다. 그러나 세계적인 호황기였음에도 우리는 과거사 청산 같은 ‘개혁 과제’에 매달리느라 경제성장은 세계 평균성장률을 밑돌았다. 이듬해 노 대통령은 또 “우리 사회 최대의 장애가 양극화”라고 일갈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눠 선거를 치르려는 정치공학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우리는 한국을 세계 최악(最惡)의 양극화 국가로 알고 살았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야권은 “부자 내각, 부자 감세로 빈부격차가 커졌다”고 공격했다. 정부는 동반성장 반값아파트 반값등록금 무상보육 같은 민주노동당 뺨치는 복지정책을 쏟아냈다. 지난해 나는 우리의 양극화가 극심한 게 아니라는 의미로 ‘한국의 지니계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 일치하는 0.31(17위)’이라고 썼다가, 경쟁지로부터 “이런 분위기에서 유식한 척 지니계수를 들먹이는 건 미련하고 눈치 없는 짓”이란 소리를 들었다. ▷부자 나라들의 클럽으로 꼽히는 OECD가 “지난 30년간 OECD 내의 모든 국가의 빈부차가 심해졌다”고 발표했다. 2008년 기준으로 34개 회원국 평균 상위 10%의 소득이 하위 10%의 9배다. 우리나라는 일본 이탈리아와 함께 10 대 1 격차로 평균치에 근접해 있다. 평등국가로 이름난 독일과 덴마크 스웨덴은 6 대 1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양극화는 우리보다 훨씬 심해 14 대 1의 격차를 보였다. 칠레와 멕시코는 25 대 1, 브라질 같은 신흥국가는 50 대 1로 어마어마하다. ▷행복해지려면 ‘아래’와 비교하고, 좀 더 나아지려면 ‘위’와 비교하라고 했다. 모두가 평등해서 한 치 격차도 없는 사회라면 행복하지도, 발전하지도 못하는 삶을 살지 모른다. 어떻게 태어나는지는 각자의 운이지만 노력과 능력에 따라 계층이동을 할 수 있기만 하면 공정한 사회다. OECD는 취약계층 사람들이 테크놀로지의 발달에 따른 숙련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정부가 교육과 훈련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고소득자가 세금을 더 내도 질 높은 교육훈련 없이는 밑 빠진 독에 물붓기일 수 있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 2011-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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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민주당 市의원조차 반대하는 서울시 ‘과잉 복지’

    2012년도 서울시(市) 예산안은 올해보다 5.9% 증가한 21조7973억 원이다. 서울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문위원은 검토보고서에서 “서울시 예산안 중 사회복지 부문이 지난해보다 13.3% 증가한 5조1646억 원으로 가장 비중이 높다”며 “지난해에 비해 시민생활과 밀접한 도로 건설(680억7400만 원), 도로교통체계 및 소통개선(140억7300만 원), 하수시설관리(17억1700만 원) 예산이 줄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예결위 의원의 상당수가 “복지예산도 적절히 나눠줘야 한다” “무차별적 복지를 위해 시민생활과 밀접한 기반시설을 소홀히 한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이행자 의원은 “박원순 시장이 새롭게 추가하는 복지사업의 실제 수혜자는 전체 시민의 20% 정도”라며 “교통사업처럼 100% 시민이 혜택받는 복지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시민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회기반시설 투자를 ‘토목사업’이라는 이유로 싸잡아 등한시하는 것은 잘못이다. 전면 무상급식 예산을 빼내느라 다른 교육부문 예산이 삭감된 폐해도 심각하다. 교육예산은 총 1855억 원으로 올해보다 592억 원 늘었으나 내년부터 실시되는 초등학교 전 학년과 중학교 1학년 무상급식 예산을 빼면 오히려 38억 원가량 줄었다. 무상급식 예산은 올해 393억 원에서 내년 1028억 원으로 급증한 데 비해 학교지원 및 우수인재 양성 부문 예산은 703억2800만 원으로 지난해 1207억6300만 원에 비해 504억 원이나 대폭 깎였다. 지자체가 일부 부담해야 하는 내년 무상급식 예산 22억 원을 확보하기 위해 서울 중랑구에선 저소득층 고교생들이 저녁을 굶게 생겼다. 이 지역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2009년부터 ‘중고교생 방과후 석식비 지원사업’을 통해 저소득층 학생 1780명에게 학교식당에서 무료로 따뜻한 밥을 먹도록 배려했다. 여유 있는 학생들에게까지 공짜 점심을 주기 위해 저소득층 석식비 지원사업(6억 원)과 학력신장 프로그램(16억 원)을 없앤 것이다. 결국 서민층 학생에게 고통을 주는 정책이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전면 무상급식 같은 보편적 복지를 가장 이상적인 제도처럼 떠받들고 있다. 그러나 보편적 복지에 앞장섰던 영국 같은 선진국조차 수혜자의 형편에 따라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추세임을 알아야 한다.}

    • 2011-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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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한나라당은 더 살 수 있는가

    나는 북한 소행인 줄 알았다. 천안함을 폭침시켜 나라의 안보를 위협하더니, 10·26 서울시장 선거 때는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를 테러해 선거 무력화 공작을 벌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북도 아니고, 정신이상자나 초등학생도 아니고,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 9급 비서의 ‘범행 가능성이 인정’됐다니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사이버테러 터져도 책임회피만 국가기관에 대한 사이버테러를,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제도를 뿌리째 흔드는 행위를 집권여당의 의원 비서가 자행한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다. 본인은 부인한다. 한나라당도 당에선 누구도 연루되지 않았다며 선을 긋는다. 하지만 이런 불 끄기가 안 먹힌다는 건 본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철저한 수사로 사실을 밝혀내야 한다는 말은 밥 먹으면 배부르다는 것처럼 당연하다. 그러나 어떤 수사결과가 발표된들 국민이 다 믿어줄지 의문이다. 정부여당은 물론이고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거의 바닥이어서다. 오히려 “출근길 젊은층 투표를 방해하려 한 치밀한 작전”이라고 주장한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를 더 믿는 사람만 늘어날 판이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당 차원에서 개입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당이 문 닫을 만한 사건”이라고 했다. 개입이 없었대도 한나라당은 고개를 들기 어렵다. 내 집 강아지가 사람을 물어도 주인이 책임을 지는 게 상식이다. 물린 사람은 아파 죽겠는데 나는 몰랐고, 물라고 시키지 않았으니 상관없다는 건 주인의 자세도, 사람의 도리도 아니다. 지금 한나라당은 오물이 튈까 봐 어떻게든 피하려는 지극히 ‘한나라당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대로 가면 한나라당 공천이 월계관 아닌 낙인이 될 판국인데 그들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렸고 최구식만 당직 사퇴에 그쳤다. 자신이 공천과 선거에서 살아남아 다시 금배지를 다는 걸 세상 어떤 일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웰빙주의자들의 집단이니, 상식을 중시한다는 안철수 같은 사람이 뜨는 거다. 옛 소련과 핵전쟁 위기까지 갔던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역사란 이성적인 행위자뿐 아니라 비이성적인 ‘개새끼’에 의해서도 결정된다”고 했다. 우연과 잘못이 돌출해도 여기에 리더가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나라의 운명도 바꿔놓을 수 있다. 1980년대 이란-콘트라 사건으로 국민의 지지를 크게 잃었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위기를 통해 지지도와 미국의 국운, 국민의 자부심을 되살린 인물이었다. 그는 무기 거래가 잘못됐음을 인정했고 백악관에 특별조사기구를 설치했으며 조사보고서가 나오자 관련자 문책과 인사쇄신을 단행했다. ‘돌려막기 회전문 인사’가 아니라 대통령실장까지도 친분은 없되 유능하고 현명한 인물을 등용한 진짜 물갈이였다. ‘죽음의 의식’부터 치를 때다 악재 대응에서 ‘데미지 컨트롤’의 교본으로 꼽히는 레이건의 경우처럼, 사람이든 조직이든 위기 때는 죽음과도 같은 과정을 거쳐야만 다시 살 수 있다. 사즉생(死則生), 죽을 각오로 살아나려면 아비를 죽이는 살부(殺父)의식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고대 수메르의 왕은 1년에 한 번씩 종교지도자에게 뺨을 때리게 해서 권력의 오만에서 깨어나는 의식을 치렀다. “집권당도 새로 태어난다는 정치적 의지와 강한 도덕성을 보여야만 재집권이 가능하다”고 ‘좋은 권력, 나쁜 권력’을 쓴 제프 멀건은 진즉 말했다. 한나라당 밥을 먹던 직원의 사이버테러 혐의가 불거진 날 홍준표 대표는 “당이 직접 관계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공식 대응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공당(公黨)을 책임진 집권당 대표로서, 국민에게 심려를 끼친 것만으로도 사과부터 해야 할 판에 최구식에게 “책임지고 당에 피해가 없도록 잘 수습하라”고 떠넘겼다. 어제서야 뒤늦게 국민께 죄송하다고 밝혔으나 리더십의 바닥은 이미 드러났다. 리더가 조직의 문제를 자신의 책임으로 여기지 않고, 죽기 살기로 해결할 의지도 보이지 않는 조직엔 희망이 없다. 대표는 자기조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원로도, 중진도, 소장파도, 심지어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박근혜 의원도 수사가 끝날 때까지 그냥 바라만 보고 있는 당이 살아 있는 정당이라 보기 어렵다. 한나라당 소속 한 의원은 “연찬회를 보면서 ‘아, 드디어 한나라당은 끝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라고 동료의원에게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당이 절벽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는데도 제 살 궁리에만 골몰한 ‘정치 사업자’들이 모인 수준이라면, 한나라당의 수명은 끝났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켜내는 정당이 하나는 있어야겠기에, 헤어지기 전에 한 번만 더 돌아보는 심정으로 제안한다. 홍준표가 대표답지도, 남자답지도 못한 모습이고 한나라당도 제 힘으론 바뀔 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명됐으면 박근혜가 국민 앞에 나서서 ‘죽음의 의식’을 치르기 바란다. 부활 여부는 그 다음 문제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 2011-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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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순덕]나쁜 환경, 좋은 학교

    저소득층 흑인이 많이 사는 미국 뉴욕 시 할렘 지역의 118번가엔 ‘한 지붕 두 학교’가 있다. 건물 한쪽엔 PS149라는 공립학교가, 방화문으로 분리된 다른 쪽엔 ‘할렘 성공 아카데미’라는 차터스쿨(자율형 학교)이 자리 잡았다. PS149는 ‘교원노조-관료적 시스템-낮은 기대수준’이라는 공립학교 3대 요소를 지니고 있어 분위기부터 느슨하다. 반면 ‘성공 아카데미’는 교사부터 학생까지 빠릿빠릿하다. 학생들 환경이 불우하니 공부를 못하더라도 좀 봐주자는 관대함도 없다. ▷차터스쿨은 민간 운영주체가 교사 채용과 수업의 자율권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자율형 사립고와 비슷하다. 차터스쿨의 예산은 국고에서 지원되고 성적 제한 없이 추첨으로 학생을 뽑는다. 추첨 때문에 한 아이는 이쪽 학교, 한 아이는 저쪽 학교에 보낸 이곳 학부모들은 “비교가 안 된다”며 차터스쿨에 찬사를 보낸다. 공부를 안 해도 그냥 두는 학교와 열심히 하면 미래가 달라진다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태도부터 다르다. 학생들의 학력(學力)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나 환경뿐 아니라 학교 및 교사의 열과 성임을 이처럼 잘 보여주는 사례도 드물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어제 ‘학교 향상도’를 처음 발표했다. 현재의 고2 학생이 중3 때 본 학업성취도 평가 성적을 추적해서 어떤 고교가 얼마나 잘 가르쳐 성적을 끌어올렸는지 분석했다. 좋은 학교로 뽑힌 100대 학교에는 자율형 공립고와 자율형 사립고가 많았다. 미국의 차터스쿨처럼 학교 자율에 맡긴 교육이 학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그러나 일부 교사는 이미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뽑아 가르친 ‘선발 효과’가 크다며 깎아내리는 눈치다. ▷수학 향상도 전국 1위인 충남 보령시 대천여고나 2위 대전여고는 일반계 학교지만 교사들의 힘으로 좋은 학교를 만들었다. 특히 대전여고는 주변 환경이 취약한 편인데도 ‘사제동행 상담 프로그램 운영’ 같은 노력으로 학생들의 마음과 성적을 함께 잡았다.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일수록 교사가 큰 힘이 된다. 아무리 돈을 퍼붓고, 첨단 교재를 갖춘다 해도 ‘잘 가르쳐보자’는 교사들의 의지보다 훌륭한 교육은 없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 201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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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순덕]통계의 죄

    그리스 통계청인 엘스타트(ELSTAT)의 안드레아스 게오르기우 청장이 재정위기를 부풀렸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그리스 ‘통계 조작’의 오랜 과거를 아는 사람이라면, 지난해 폐지된 국가통계국 대신 새로 독립기구로 설치된 ELSTAT도 마찬가지라고 절망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막은 정반대다. 게오르기우 청장은 논란의 핵심이던 2009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를 애초의 13.4%에서 15.8%로 고쳐 발표했다. “‘통계 조작’을 하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국익을 해쳤다는 이유로 고발된 것”이라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2006년 그리스 정부는 “성매매 종사자들의 밤낮 없는 노고로 경제 규모가 25%나 커졌다”고 자화자찬했다. 매매춘이나 도박 밀수 같은 암시장의 기여도를 고려해 GDP 산정에 포함하기로 했다는 거다. 그 덕분에 그리스 경제규모는 2005년 1800억 유로에서 2006년 1940억 유로로 커졌다. 알고 보니 이 모든 통계는 거짓이었다. 2009년 10월 새로 출범한 그리스 사회당 정부는 “전임 정부가 심각한 재정적자를 국민에게 감췄다”고 폭로했다. ▷통계에 속아 나라가 망하는데도 정신 못 차린 그리스를 보면, 통계가 곧 정책이고 자유민주주의의 관건임을 알 수 있다. 2010년 5월 그리스가 1차 구제금융을 받을 때 유럽연합(EU) 기준에 맞는 통계를 통한 국가재정 관리가 지원 조건에 포함됐다. 최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통계청의 10월 고용자 수 50만 명 증가 발표를 놓고 ‘고용 대박’이라고 표현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국민에게 체감되지 않는 숫자만 보고 ‘대박’이라니, 숫자놀음 아니면 말장난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통계청이 요구한 예산 가운데 ‘통계품질 진단 및 개선사업 예산’을 요구안 17억9300억 원에서 3억 원을 삭감하는 ‘본때’를 보였다고 한다. 2009년 결산 때 “다양한 실업지표를 마련하라”고 지시하고 국정감사와 결산 때마다 촉구했는데 번번이 외면했다는 이유다. 박 장관은 취업애로계층 통계를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답했지만 국회의 주문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통계 자체엔 죄가 없다. 정부와 통계에 대한 신뢰가 같이 간다는 게 죄라면 죄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 2011-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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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순덕]호주 총리의 키스

    1년 반 전 호주의 첫 여성 내각수반으로 선출됐을 때만 해도 줄리아 길라드 총리는 “외교는 나의 ‘열정’이 아니거든요”라고 했다. 그랬던 그가 이젠 외교에 자신감을 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키스를 보면 알 수 있다. 취임 초기엔 외국 정상들과 회담할 때 긴장하는 빛이 역력하더니 요즘은 상대방 정상들의 볼에다 키스를 너무 많이 해주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지난주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장에서 길라드 총리가 이 대통령의 뺨에 립스틱을 묻혔다 닦아주는 장면도 화제에 올랐다. ▷길라드 총리는 “외교란 국익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니 개인적으로 통하는 사이가 되면 더 좋다”면서 이 대통령을 예로 들었다고 호주 신문 디에이지가 전했다. 길라드 총리는 16일엔 역시 호주를 방문 중이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뺨에 키스를 했다. 중국의 부상(浮上)으로 호주의 전략적 위치가 재평가되면서 내년부터 호주 해군기지에 미 해병대가 주둔하게 됐다. 호주는 유럽과 너무 떨어져 있어 유럽으로부터 소외됐고, 아시아 나라들과도 역시 지리적으로 멀어 이방처럼 느껴졌던 나라였다. 그러나 지금 호주는 오바마 대통령이 선언한 “21세기 아시아태평양 시대”의 중심국가로 떠올랐다. ▷호주는 1992년부터 지금까지 20년간 중단 없는 성장(연평균 경제성장률 3.4%)을 지속하고 있다. 1997년 아시아를 휩쓴 외환위기에도, 2001년 미국을 흔든 경기침체에도, 최근 수년간의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끄떡없다. 풍부한 광물자원 덕이 크지만 더 큰 힘은 1983년부터 20년간 계속한 ‘개방화 유연화 개혁’에서 나왔다. ▷노조 간부 출신으로 1983년부터 1991년까지 노동당 정부를 이끈 로버트 호크 총리가 시작한 규제 철폐와 금융개방 개혁은 정권이 바뀌어도 후퇴하지 않았다. 다른 나라에선 하다 말다 하는 개혁을 꾸준하게 추진했다. 호주의 걱정거리라곤 기후변화 대처와 대학 경쟁력, 안보 정도다. 미 해군의 주둔을 허용하면서 중국에는 ‘위성추적 지상국’의 설치를 허가할 만큼 길라드 정부의 외교는 유연하다. 경제력과 외교력, 길라드 총리의 자신감 어린 키스가 호주 전성시대를 열고 있는 느낌이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 2011-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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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안철수 공부하고 나오라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야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뛰었던 대학생들이 돌아섰다. 여당 후보에 비해 2배나 많은 표를 몰아줬는데 취업은 더 어려워졌다. “대통령이 우리를 위해 해준 게 뭐가 있느냐”는 젊은층의 비판이 뜨겁다. 우리나라 얘기 같지만 일주일 전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미국 얘기다. 3년 전 ‘정치적 메시아’로 떠올랐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실업난에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부자들 편만 든 정부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중국을 제외하곤 어느 나라를 봐도 지도자는 무능하고, 정치인들은 제 잇속만 차리느라 국민은 안중에 없는 것 같다.미국의 정치홍보기업인 에델만 부회장 토니 블랭클리는 “재선이 당연시됐던 서구사회에 글로벌 위기 이후 반(反)정부 반정치인 반기득권 열병이 불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영국 네덜란드에 이어 올 초 아일랜드에서 정권이 갈렸다. 어제 스페인 총선에서도 우파야당인 국민당의 승리가 확실시된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대통령감으로 떠오른 것도 이변이랄 수 없다.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이 “과학자는 정치에 관여하면 안 된다”고 했지만 세상은 바뀌었다. 기성 정치인에게 신물이 난 탓에 새 리더의 ‘정치 경험 없음’은 되레 순결한 장점이 됐다. 반칙과 편법, MB의 내곡동 사저이탈리아와 그리스에선 최근 선거 없이 비(非)정치인 출신의 경제 테크노크라트를 과도정부 수반으로 앉히는 시장(市場)의 반란이 일어났다. 부패한 여권이 개혁에 미적대느라 시장의 신뢰를 잃었는데 야권 역시 지리멸렬한 탓이다. 민주당 대통령 지지도가 1970년대 이래 최하인 미국에선 공화당에도 신통한 대통령감이 안 보이자 ‘미국인이 선택한다’란 단체가 제3 후보 찾기에 나섰다. 만일 자선사업가로 변신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나온다면 미국판 안철수 돌풍이 불지 모를 일이다. 이런 상황에선 안철수 아니라 배우 안성기나 소설보다 트위터로 뜬 이외수가 출마 선언을 해도 열광적 반응을 얻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안철수가 희망으로 떠오른 데는 이명박(MB) 대통령의 책임이 없지 않다. 이탈리아의 새 총리 마리오 몬티 전 유럽연합(EU) 집행위원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해독제’라는 평이 나오듯이 안철수는 MB와 정반대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서 ‘업적은 좋은데 국내 평가가 안 좋다’는 평을 들은 MB로선 납득하기 힘들겠지만 요즘 대통령은 반칙과 특권으로 살아온 기득권 세력처럼 인식되고 있다. 내곡동 사저(私邸)가 그 물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산절감이라는 실용주의에서든, 증여세나 실정법 위반을 피하기 위해서든, 아들의 이름으로 땅을 사는 것은 대통령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BBK 의혹사건에도, 숱한 위장전입에도 “일만 잘하면 됐지 도덕성이 대수냐” 하며 MB를 뽑았던 사람들은 그 변하지 않는 구태에 절망하고 있다.어려운 시기일수록 감정은 예민해진다. 정치심리학자 드루 웨스턴은 “정서를 읽고, 그 정서에 대고 말을 하며, 정책 아닌 비전을 또렷이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정치적 성패에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로 시작되는 MB의 화법은 국민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 같아 억장이 무너진다. 반면 “힘드시죠?” 하고 공감하듯 말하는 안철수는 ‘내 아픔 아시는 당신’ 같다. 반칙과 특권 없이도 성공할 수 있음을 바른생활 교과서처럼 보여준 그가 제 발로 정치무대에 오를 듯하다 사라졌으니 국민은 더 감질이 나는 것이다.재산의 절반을 기부하는 정치적 행위를 하고도 아직은 침묵하고 있지만 안철수는 결국 정치를 할 것이라는 데 나는 베팅하겠다. “원하든 원치 않든 파워가 생기면 사회를 위해 써야 한다”는 ‘스파이더맨’의 대사를 되뇌는 그가 사회적 책임을 모르는 척할 리 없다. 늦어도 내년 첫 학기까지 원장 역할을 마쳐 서울대에 대한 도리를 한 뒤가 되지 않을까 싶다.從北세력 불쏘시개 되지 말아야그동안 우리나라에 대해 보다 폭넓게, 치열하게 공부하기를 권한다. ‘경제는 진보, 안보엔 보수’라면서도 안철수는 북핵문제는 물론이고 북의 연평도 포격이나 천안함 폭침에 대해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 서울시장 선거 때 박원순 후보의 손을 들어준 행위가 그와 함께하는 종북(從北)세력까지 다 알고도 한 일이었는지 너무나 궁금하다. 극단적 비극을 그린 영화 ‘도가니’가 한국사회의 축소판이라고 보는 시각도 광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젊은 날 ‘운동권 386’에 동참하지 못했다는 착한 소년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무지(無知)는 자발적 불행이라고 했다. 진보를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만든다는 좋은 가치로 믿는 건 본인의 선택이다. 그러나 모처럼 등장한 정치재목 안철수가 또 한 번 진보를 참칭하는 세력의 불쏘시개 노릇을 한다면 역사의 죄인이 될 수도 있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 201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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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순덕]파란만장 대한민국

    “코리아는 부패한 관료주의에 의해 완전히 젓갈 담가진 상황이에요. 개혁될 희망이 없지요.” 100여 년 전 이렇게 말했던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의 저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오늘의 우리나라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 ‘운동권 386’이었던 최홍재 (사)시대정신 이사가 각종 문헌에 남겨진 기록을 바탕으로 상상의 인터뷰를 해봤다. “뭐라고요? 코리아가 독립국으로 존재하는 것도 신기한데, 무역량 세계 10위? 어떻게 그런 기적이 가능했지요?” ▷그런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을 우습게, 심지어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최 이사처럼 대학시절 주체사상에 빠져 ‘대한민국은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해온 나라’로 폄훼했던 대학 총학생회 간부 출신들이 새로운 시각에서 우리 역사를 독하게 공부하고는 ‘파란만장 코리아 오매불망 대한민국’이라는 책을 냈다. 역사 속 인물과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어서 상상력이 동원된다. 하지만 소설적 상상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객관적 역사서술에도 힘썼다. 비숍의 저작물을 근거로 ‘한국인의 명민함과 교육에 대한 열정이 대한민국 기적의 저력’임을 규명했다. ▷책에서 전북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허현준 남북청년행동 협동사무처장은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꼭 유신체제를 할 수밖에 없었느냐”고 물어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하기 위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대답을 듣는다. 박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이 강도를 더해 가는데 미국은 한국에서 발을 빼려 하고 있었다고 안보상황도 거론한다. 2000년 북송된 비전향 장기수 이두균은 북한 인권 운동을 막는 남한 내 종북(從北)세력에 대해 “부디 그들에게 전해주게. 인생을 죄악으로 밀어 넣지 말라고. 나 하나로 족하다고”라고 말한다. ▷진보(進步)가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말하는 것이라면, 단순하게 말해 물질적으로는 배를 곯지 않고 정신적으로는 남에게 압제당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면, 대한민국이 바로 그런 발전을 이룬 나라라고 이주영 건국대 명예교수는 강조했다. 386은 잘못 배운 이념과 역사 때문에 운동권은 감옥에서, 비(非)운동권은 죄책감 속에서 20대를 보낸 파란만장한 세대이다. 저자들은 소중한 아이들이 자랑스러운 조국에서 살도록 하기 위해 책을 썼다며 “오늘의 근대국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생명과 재산, 열정과 노력을 바친 분들에게 감사한다”고 밝혔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 201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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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야권통합 ‘정략’을 위한 FTA 반대 용서받을 수 없다

    민주당은 어제 의원총회를 열고 이명박 대통령이 내놓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선(先)발효, 후(後)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재협상’ 제안을 거부했다. 민주당은 “ISD 폐기 또는 유보를 위한 재협상을 즉시 시작하겠다는 양국 장관급 이상의 서면 합의서를 받아오라”고 요구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한미 FTA가 발효되면 한국 측이 제기하는 어떤 이슈에 대해서도 한국과 협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는데도 민주당이 서면합의서까지 요구하는 것은 반대명분을 쌓기 위한 구실일 뿐이다. 양국 장관이 서면합의서를 내놓으면 민주당은 아마 또 다른 핑계를 내놓을 것이다. 자기들이 자꾸 거짓말을 하다 보니까 대통령의 약속도 거짓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민주당 협상파의 대표 격인 김성곤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한미 FTA 처리를 차기 국회로 넘기지 말고 의총에서 당론을 결정하는 무기명 투표를 하자”고 제안했으나 강경파에 밀리는 분위기였다. 소속 의원 87명 가운데 FTA 비준부터 하자는 협상파 의원이 절반을 넘지만 목소리 큰 의원들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이날 “대통령이 국회에 온 것은 야당의 반대를 돌파하겠다는 뜻으로 보이지만 돌파당하면 민주당이 죽는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범야권과 약속한 ‘한미 FTA 반대’ 전선이 깨져선 야권통합이 안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한미 FTA 반대는 야권 연대의 새로운 원동력”이라는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의 발언과 맥이 닿는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한미 FTA를 체결했던 민주당이 한미 FTA 반대를 내년 총선과 대선의 불쏘시개로 이용하려는 듯하다. 한국이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무역대국으로 갈 것인지, 일본과 중국의 틈에 낀 외톨이로 남을 것인지 결단을 내릴 때가 됐다. 민주당이 말 바꾸기로 발목을 잡는 행태에 한미 FTA의 성공을 바라는 국민이 지쳐가고 있다. 야권 통합을 위해 국익을 외면하는 정략적인 반대는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

    • 201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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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중국 쿤밍 화장실 옆 한국홍보관

    여행사 광고에 ‘봄의 도시 곤명(昆明)’으로 홍보되는 중국 쿤밍에서 지난달 말 아시아 최대 규모의 관광박람회가 열렸다. 우리로 치면 정부 관광부처라고 할 수 있는 중국 국가여유국이 1998년부터 상하이와 쿤밍에서 매년 번갈아 여는 중국국제여유교역회(CITM)다. 외국인이 찾는 관광국으로 세계 3위, 해외관광지출 역시 세계 3위로 떠오른 대국의 행사답게 중국의 도시와 성(省)은 물론이고 미국과 일본, 민주화 혁명 후폭풍 와중의 이집트까지 90여 개 나라를 한자리에 모았다. 관계자들은 장관 모시기만 바빠 거대하고 화려한 행사장에서 한국관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규모가 작아서가 아니다. 한국관은 스페인이나 태국관보다 컸지만 3호관 구석 여자화장실 옆에 자리 잡은 데다 개막식이 열린 10월 27일 오전까지도 전시물이 제대로 걸리지 않아 무허가 판자촌 같았기 때문이다. 너무나 황당한 풍경이어서 짐 푸는 사람들을 붙잡고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우리도 묻고 싶다. 그런데 답해 줄 사람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행사를 책임진 한국관광공사 측은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방문했다는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접대하는지 현장에 없었다. 다음 날 다시 찾은 한국관은 더 혼돈스러웠다. 무대에선 경기도의 한 피부관리업체가 피부측정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는데 바로 옆 대형 그림판엔 ‘제50회 진해군항제’가 생뚱맞게 걸려 있다. 한 장짜리 팸플릿에 ‘이순신 해군제독의 동상이 1952년 제막됐고 1963년부터 벚꽃행사가 열리고 있다’는 내용이 영어와 중국어로 실렸지만 이순신이 누군지는 설명이 없다. 바로 앞, 의자 빛깔까지 빨간색으로 통일하고 민속의상 차림으로 안내하는 ‘원더풀 인도네시아’관과 비교하면 창피할 정도였다. 함께 한국관을 찾은 의료관광협회 김혜영 대외협력이사가 한숨을 쉬었다. “왜 한국에 가봐야 하는지 통일된 메시지가 없다. 중국 부자들은 한국 미용성형에 관심이 많은데, 송혜교 이영애 같은 한류스타 사진을 걸고 관람객을 대상으로 성형 전후 시뮬레이션도 해줬다면 인기 폭발이었을 거다. 소중한 홍보 기회를 이렇게 놓쳐버리다니 너무 안타깝다.” 국민 세금으로 행사에 참가한 정부당국 사람들은 이런 문제조차 모르는 듯했다. 문화부 관계자는 “실은 한중 관광장관회담 준비를 하느라 시간도 예산도 부족했다”고 말했다. 열두 가지 코스의 중국요리가 나오는 고급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예산타령을 한 문화부는 그날 “장관의 중국 방문으로 공정(公正)관광을 통한 여행품질 향상방안 공조체제가 구축돼 중국 관광객 유치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는 보도 자료를 냈다. 관광 빼놓곤 ‘청년일자리’ 공염불 쿤밍 관광박람회장에서 한국 관광의 민얼굴을 본 뒤 나는 대통령부터 장차관들이 숱하게 대책회의를 하고 새벽부터 밤늦도록 일한다는데도 왜 좋은 소리를 못 듣는지 알 것 같았다. 아무리 비단 같은 정책을 내놓고 그럴듯한 보고서를 발표한다 해도 현장에서 이를 실천하지 않는 당국자들이 감동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서민경제 어렵다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정부는 자동응답기처럼 ‘내수 진작과 서비스산업 활성화’ 정책을 내놓곤 했다. 돈 있는 사람들이 국내에서 소비를 많이 하도록 서비스업을 키우면 서민층에까지 온기가 돌 수 있다. 특히 외국사람들을 국내에 불러들여 먹고 자고 쓰고 즐기고 병 고치고 얼굴까지 예쁘게 해주는 관광 의료서비스산업은 일자리 창출 효과가 철강업의 4배나 되는 울트라 성장산업으로 꼽힌다. 풍문여고 옆에 7성급 전통호텔을 허용하는 건 대기업 특혜가 아니라 다양한 일자리 창출 조치로 봐야 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일자리, 특히 청년층 고용 창출 효과가 큰 관광은 경제위기 해소와 빈곤 퇴치에 가장 공헌하는 산업”이라고 했다. 그러나 어떤 정책도 관료들의 서비스마인드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서비스산업 중요하다고 예산부터 늘렸다간 장관부터 공기업 실무자까지 세금만 펑펑 쓸까 겁난다. 의료관광객 유치를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해선 영리병원 허용 같은 규제완화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관광박람회에 한 번 참가해도 완벽하게 준비해서 실질적 성과를 내는 ‘기본’이 중요하다. 쓰촨 성 관광위원회 리티안 마케팅과장은 “관광산업 개발은 낙후지역 경제를 키우고 가장 빠르고 고르게 혜택을 나누어 주는 길”이라며 “먹고 자고 즐길 수 있는 관광업체부터 키우면 나머지 부문은 저절로 따라오기 때문에 정부가 지원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고 했다. “중국을 찾는 관광객을 가장 많이 보내는 나라가 한국인데 한국홍보관 위치가 너무 외진 것 아니냐”며 중국 측에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문화부 공무원도, 관광공사 임직원도 아닌 민간인 남상만 한국관광협회중앙회장이었다. 그리고 여유국 부국장에게 “다음부터 한국을 최우선으로 배려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중국 쿤밍에서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 2011-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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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대학 비리와 반값 등록금은 별개로 다뤄야

    8월부터 전국 대학의 등록금 비리를 감사한 감사원이 어제 ‘대학재정 운용실태’를 발표했다. 표본으로 선정된 35개 대학이 연구비 관리운영비 등 지출을 늘려 잡고, 등록금 이외의 수입은 낮춰서 생긴 예산과 결산 차액이 전체 대학 평균 연 187억 원이라고 감사원은 밝혔다. 감사 대상 113개 대학 중 50여 개 대학에서는 이사장 총장 직원 94명이 교비(校費) 횡령 또는 배임으로 학교에 손해를 끼쳤다고 한다. 교비 횡령 같은 범죄에 대해서는 형사고발을 통해 단호하게 다스려야 한다. 등록금 비리와 부정이 드러난 대학은 과감한 구조조정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감사원 발표에 대해 억울해하는 대학도 많다. 예·결산 차액 중 상당 부분은 미래투자를 위한 적립금이라고 대학들은 해명하고 있다. 이 돈 모두가 대학이 등록금을 과도하게 인상해 부당하게 올린 수입이라고 보기 어렵다. 등록금 비리를 대학 전체의 문제로 단정할 수도 없다. 감사원이 비리를 저지른 대학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음으로써 다른 대학의 명예를 훼손한 측면이 있다. 정부가 이번 감사 결과를 대학들에 반값 등록금을 강요하는 근거로 몰아가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정부나 정치세력이 대학에 등록금 인하를 획일적으로 압박하는 것은 교육의 자율성을 해치는 일이다. 부유층 학생에게까지 반값 등록금 혜택을 주는 것은 전면 무상급식처럼 사회 정의에도 배치된다. 그보다는 가난한 학생들에게 주는 장학금을 늘리는 것이 좋다. 반값 등록금을 몰아붙이다 보면 대학교육의 질이 떨어져 세계 수준의 대학경쟁력을 갖추는 일은 요원해질 수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선거 때 공약한 서울시립대의 반값 등록금을 내년부터 시행하기 위해 국민 세금인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서울시립대의 반값 등록금 예산 182억 원은 전국에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총선과 대선 때 반값 등록금 이슈를 이용하겠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최문순 강원지사가 강원도립대 등록금을 2012년부터 연차적으로 줄이겠다고 올해 6월 발표했지만 강원도립대는 학생 수가 954명인 작은 대학이다. 서울시립대는 8343명인 데다 지방 출신 학생이 60%가량 된다. 서울 시민의 세금으로 등록금을 일률적으로 지원해야 하는지도 논란거리다.}

    • 2011-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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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무너지는 그리스에 펄럭이는 赤旗

    1997년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까지 벌였던 우리로선 그리스의 긴축반대 시위를 이해하기 힘들다. 유로존·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지 못하면 당장 나라가 거덜 날 판인데도 지난주 수요일과 목요일 아테네 시민들은 국회의사당 밖 신타그마 광장에서 붉은 깃발을 펄럭이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왜 평일이냐면 주말엔 쉬어야 하기 때문이란다.한국에는 붉은 머리띠가 있다 그리스 쪽에서 본다면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도 아닌 우리나라에서 주말마다 시위가 벌어지는 게 더 이상할지 모른다. 붉은 머리띠나 깃발에 적힌 구호를 보면 대한민국을 부도 문턱의 그리스처럼 끌고 가고야 말겠다는 결기가 펄떡이는 것 같다. 그리스 시위의 단골 주역은 그리스 공산당(KKE) 산하조직 전노동자투쟁전선((PAME)이다. 이름부터 강경해서 젊은 피가 들끓을 것 같지만 실은 젊어서부터 투쟁만 해온 중년 시위꾼들이 많다. 우리나라 단골 시위주역이 민주노동당과 긴밀한 관계인 민주노총이고, 머리띠 두르고 나서는 이들도 전문 시위꾼인 점과 닮았다. 비슷한 건 붉은 색깔만이 아니다. 1944년 그리스가 나치독일에서 해방된 뒤 우파 중심의 망명정부가 돌아오고, 국내에서 독립투쟁 하던 공산당이 내란(1946~49)을 일으킨 역사도 비슷하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미국이 보호한다’는 트루먼 독트린에 따라 공산당 조직은 패퇴했다. 폐허가 된 경제도 미국의 마셜플랜 덕택에 살아났다. 그러나 치열한 좌우갈등의 후폭풍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공산당 멘탈리티’는 사회 구석구석 파고들었고, 미국이 그리스 군사독재(1967~74)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반미감정이 커진 점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 특히 공산당과의 ‘화해 조치’가 공공부문 방만화와 도덕적 해이를 불러온 점은 남의 일 같지 않다. 81년 첫 집권한 사회당(PASOK)정부는 과거사 치유라는 명분으로 수천 명의 내전 유발자들에게 연금을 주고, 자손들에게는 공공부문 취업을 보장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당시 총리가 게오르게 파판드레우 현 총리의 아버지이자 젊은 날 트로츠키에 심취했던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다. “지금 그리스 정부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차지하고 그 중 75%가 공공부문 월급과 연금 등 혜택으로 나가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지적했다. 겉으론 “구제금융 관둬라” “됐다(Enough is enough)” 같은 구호를 외치지만 이들의 주장은 여기서도 많이 들어본 소리다. 핵심은 반미 반외세 반정부로 요약된다. 정부의 부패와 규제도 문제지만 부자든 서민이든 탈세와 위법으로 맞서는 것도 심각하다.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좌파는 미국의 개입 때문에 공산화에 실패했다고 여전히 믿고 있어 국민이 뽑은 정부마저 정당성이 없다고 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차라리 대놓고 공산주의를 하라” 결과의 평등을 원하는 그리스에선 당연히 반자본주의 불길도 거세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다루는 것이 정의라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잊혀진지 오래다. 조선소를 확장할라치면 임금인상부터 요구하는 노동자들 때문에 선박업이 고국을 떠나는 건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다. 무엇보다 대학생들마저 비슷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더 절망스럽다. 아버지 파판드레우 총리는 집권 후 포퓰리즘으로도 모자라 대학생들에게 교수 학장 선출권까지 줬다. 사립대학은 아예 없고, 몇 년이든 공짜로 다닐 수 있는 국립대학들은 극좌 운동권의 산실이 됐다. 늙은 운동권은 정치판이나 노동계로 가서 직업적으로 투쟁을 한다. 최근 부도 위기에 다급해진 정부가 학기연장은 4번만 가능하게 하고, 교수평가와 대학평가를 하겠다고 발표하자 당연히 대학생들은 시위에 나섰다. 방만한 공공분야와 노조이기주의가 자신들의 일자리를 앗아가는 데는 눈 감은 채 ‘반기업’만 외치는 천치(idiot의 어원도 ‘민간인’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나왔다)들은 우리나라에도 많다. 미국의 개입으로 적화통일에 실패했다고 통탄하는 세력이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스의 방만한 공공조직처럼 만들어 재정을 파탄내고 싶은지, 서울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후보도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일자리를 만들어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반대니 앞뒤가 안 맞는다. ‘천치 대학생’들은 지금의 ‘반값 등록금’이 미래 자신들의 연금을 당겨쓰는 건 줄도 모르고 트위터나 날리면서 청춘을 보내고 있다. 미국의 포브스지는 “남의 돈(유럽연합의 지원)으로 부자나라들과 똑같은 풍요를 누리겠다면 그리스는 차라리 공산주의를 하라”고 썼다. 그래도 그리스에는 공산당이 ‘공산당’이라고 정체성을 밝히고 있고 결국은 도와줄 수밖에 없는 이웃국가들이 있다. 핵무기를 움켜쥔 동족의 광신집단이 없는 그리스가 차라리 우리보다 낫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 2011-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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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송민순 안희정 문재인의 FTA 찬성이 順理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양국 간 무역장벽을 제거해 한국으로서는 대미 수출 경쟁력 강화, 수출산업 활성화, 투자 증진, 일자리 창출, 구매력 증대, 내수 기반 강화, 성장 촉진 등 복합적 선순환 효과가 기대된다. 일본 중국 등이 한미 FTA 발효를 부러워하고 두려워하는 이유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부 시절 장관과 여당 대표, 그리고 대통령 후보를 지낸 민주당 정동영 의원은 20일 국회에서 “한미 FTA는 한국을 작은 미국,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겠다는 것”이라는 해괴한 말을 했다. 여당 대표 시절 “한미 FTA는 한미관계를 지탱시켜 줄 기둥”이라고 했던 사람의 표변을 이해할 수 없다. 정 의원의 그제 발언은 우리 국민의 자신감과 자존심마저 짓밟는 언동이다. 정 의원은 지금의 대한민국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될 정도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고 진정으로 믿고 있단 말인가. 민주당 내에도 “국가 미래를 위해 한미 FTA가 필요하다”는 소신을 펴는 의원이 늘고 있다. 이날 토론에서 한미 FTA 필요론을 편 송민순 의원은 정 의원의 발언을 듣다못해 “실체를 갖고 말씀하시라”며 제동을 걸었다. 안희정 충남지사 역시 5일 국정감사에서 “FTA는 찬성하되 문제점을 보완하자는 얘기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8월에도 “노무현 정부의 FTA 협상은 잘됐지만 이명박 정부의 재협상으로 나빠졌으니 민주당이 비준에 반대한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FTA를 찬성하면 보수고, 반대하면 진보라는 구분에 동의할 수 없다”며 찬성 의사를 분명히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실장을 지낸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FTA 자체를 반대한다’는 근본주의적 반대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통상 국가이기 때문에 개방이 불가피하고, 국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FTA는 적극적으로 해야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도 집권 당시 “앞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4만 달러를 가면 그건 참여정부의 공로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연 0.6%의 성장효과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미 FTA는 세계 최대 시장에 막강한 접근권을 제공한다. 민주당이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면서 10년간 33만6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한미 FTA를 걷어차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민주당이 집권 시절에 추진한 한미 FTA를 근본주의적으로 반대하다 보면 어떤 의무도 책임도 지지 않는 ‘반대 특권세력’이라는 비판을 듣게 될 것이다. 최근 동아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 국회 처리에 찬성하는 서울시민(58.8%)이 반대(27.7%)보다 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송 의원 같은 사람이 국익을 위해 바른 소리를 하고, 그것이 당내에서 수용되는 풍토라야 민주당이 신뢰받는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다.}

    • 2011-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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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순덕]가학증의 나라

    중국의 마오쩌둥, 몽골의 칭기즈칸은 각각 대략 4000만 명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희생자를 양산한 것으로 치면 난형난제(難兄難弟)의 지도자다. 마오쩌둥 시대에 세계 인구는 25억 명 정도였던 반면에 칭기즈칸이 활약한 13세기 때는 4억 명에 불과했다. 인구 대비로 보면 칭기즈칸의 살육이 훨씬 심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스티븐 핑커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근대성과 계몽의 힘에 따라 세계적으로 폭력이 줄어드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마르크시즘이나 나치즘 같은 유토피아적인 이데올로기보다 자유민주주의가 도덕적으로 우월한 이유도 인권 존중에 있다. ▷“대답한다고 때리고, 대답하지 않는다고 찼다.” 이달 16일 병영 내 학대에 시달리다가 자살한 육군 김모 이병의 사연을 보면 우리 사회에는 근대성과 계몽의 세례를 받지 못한 구석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지난달 국방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부하에게 음식찌꺼기 먹이기, 군화 냄새 맡게 하기 같은 가혹행위로 처벌받은 간부가 2009년 64명에서 지난해 71명으로 늘어났다. 국가인권위원회의 해병대 조사에서는 방향제에 불을 붙여 부하의 아랫도리에 뿌리는 가학 행위까지 드러났다. ▷백번 양보해 군에서야 군기를 잡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서울 구립 어린이집 교사들이 누운 아이를 발로 밟거나, 두 아이 머리채를 잡고 박치기시키는 폐쇄회로(CC)TV의 녹화 장면을 보고 울컥하지 않을 부모는 없을 것 같다. 젊고 예쁜 여교사가 제 자식 아니라고 남의 아이에게 함부로 하는 걸 보면 가학증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핑커 교수는 “사회 문화적 변화와 테크놀로지, 이데올로기에 따라 또 다른 폭력이 출몰할 수 있다”고 최근 저서 ‘인간본성의 더 나은 천사: 왜 폭력은 줄어드는가’에서 지적했다. 바이마르공화국도 당시 유럽에서 앞선 나라였지만 근대성보다는 군과 애국을 이상화한 ‘하위문화’가 있어 히틀러 같은 괴물이 등장했다. 가혹 행위가 남을 모질고 혹독하게 대하는 것이라면 가학 행위는 거기서 쾌감까지 느끼는 행위다. 어린이집부터 군대까지, 가혹을 넘어 가학까지 자행돼서야 힘없고 착한 사람들은 뭘 믿고 살아야 할지 겁난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 201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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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박원순 후보가 벌였던 낙천낙선운동의 추억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박원순 야권무소속 후보가 한나라당이 제기한 각종 의혹에 대해 어제 “한나라당은 병역비리 본당이고 투기 위장전입 탈세 부패로 얼룩져 있는 정당인데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느냐”며 역공에 나섰다. 그는 그제 방송연설에서도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공격은 낡은 시대의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주장했다. 박 후보는 자신에 대한 검증을 ‘잘못된 네거티브’로 몰기에 앞서 그가 2000년 16대 총선 때 총선시민연대 공동집행위원장 자격으로 앞장섰던 낙천낙선운동을 되돌아봐야 한다. 총선시민연대는 그해 1월 ‘공천 반대 정치인’ 명단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참여연대 사무처장이었던 그는 “철저한 검증을 거쳐 선정했다”고 주장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런 낙천낙선운동을 불법이라며 금지했으나 그는 “악법은 법이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그 후 이종찬 민주당 상임고문은 “총선시민연대가 낙선운동을 벌이며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1000만 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지난날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정치인을 검증하고 불법 낙천낙선운동을 벌였던 주역이 이번에 서울시장 후보가 되자 검증도, 답변도 거부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네거티브’란 2002년 대선 때 김대업 씨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아들에 대해 제기한 병역비리 의혹(이른바 병풍·兵風)처럼 허무맹랑한 거짓주장을 하는 것을 일컫는다. 최근 주요 언론이 보도한 박 후보의 병역이나 학력에 대한 문제 제기는 상당한 근거가 있는 것들이다. 유권자는 공직후보자에 관한 진실을 알아야 올바른 투표를 할 수 있다. 후보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함으로써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것은 언론의 중요한 역할이다. 박 후보는 자신의 양손자 입적에 따른 병역기피 논란에 대해 “작은할아버지는 1941년 사할린으로 징용을 갔다”고 말했지만 작은할아버지의 딸이 1937년 사할린에서 태어났고 1943년 한국에서 출생신고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해 1학년 때 제적됐음에도 후보 등록일인 7일 출간된 저서에까지 ‘서울대 법대 입학’으로 소개한 것도 그의 진실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박 후보가 끝까지 잘못과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강조해온 정직성과 신뢰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내가 하면 검증이고 남이 하면 네거티브’라는 태도로 검증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를 방해하는 행위요, 언론에 대한 명예훼손이다.}

    • 2011-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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