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나쁜 환경, 좋은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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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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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층 흑인이 많이 사는 미국 뉴욕 시 할렘 지역의 118번가엔 ‘한 지붕 두 학교’가 있다. 건물 한쪽엔 PS149라는 공립학교가, 방화문으로 분리된 다른 쪽엔 ‘할렘 성공 아카데미’라는 차터스쿨(자율형 학교)이 자리 잡았다. PS149는 ‘교원노조-관료적 시스템-낮은 기대수준’이라는 공립학교 3대 요소를 지니고 있어 분위기부터 느슨하다. 반면 ‘성공 아카데미’는 교사부터 학생까지 빠릿빠릿하다. 학생들 환경이 불우하니 공부를 못하더라도 좀 봐주자는 관대함도 없다.

▷차터스쿨은 민간 운영주체가 교사 채용과 수업의 자율권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자율형 사립고와 비슷하다. 차터스쿨의 예산은 국고에서 지원되고 성적 제한 없이 추첨으로 학생을 뽑는다. 추첨 때문에 한 아이는 이쪽 학교, 한 아이는 저쪽 학교에 보낸 이곳 학부모들은 “비교가 안 된다”며 차터스쿨에 찬사를 보낸다. 공부를 안 해도 그냥 두는 학교와 열심히 하면 미래가 달라진다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태도부터 다르다. 학생들의 학력(學力)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나 환경뿐 아니라 학교 및 교사의 열과 성임을 이처럼 잘 보여주는 사례도 드물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어제 ‘학교 향상도’를 처음 발표했다. 현재의 고2 학생이 중3 때 본 학업성취도 평가 성적을 추적해서 어떤 고교가 얼마나 잘 가르쳐 성적을 끌어올렸는지 분석했다. 좋은 학교로 뽑힌 100대 학교에는 자율형 공립고와 자율형 사립고가 많았다. 미국의 차터스쿨처럼 학교 자율에 맡긴 교육이 학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그러나 일부 교사는 이미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뽑아 가르친 ‘선발 효과’가 크다며 깎아내리는 눈치다.

▷수학 향상도 전국 1위인 충남 보령시 대천여고나 2위 대전여고는 일반계 학교지만 교사들의 힘으로 좋은 학교를 만들었다. 특히 대전여고는 주변 환경이 취약한 편인데도 ‘사제동행 상담 프로그램 운영’ 같은 노력으로 학생들의 마음과 성적을 함께 잡았다.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일수록 교사가 큰 힘이 된다. 아무리 돈을 퍼붓고, 첨단 교재를 갖춘다 해도 ‘잘 가르쳐보자’는 교사들의 의지보다 훌륭한 교육은 없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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