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가학증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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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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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마오쩌둥, 몽골의 칭기즈칸은 각각 대략 4000만 명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희생자를 양산한 것으로 치면 난형난제(難兄難弟)의 지도자다. 마오쩌둥 시대에 세계 인구는 25억 명 정도였던 반면에 칭기즈칸이 활약한 13세기 때는 4억 명에 불과했다. 인구 대비로 보면 칭기즈칸의 살육이 훨씬 심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스티븐 핑커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근대성과 계몽의 힘에 따라 세계적으로 폭력이 줄어드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마르크시즘이나 나치즘 같은 유토피아적인 이데올로기보다 자유민주주의가 도덕적으로 우월한 이유도 인권 존중에 있다.

▷“대답한다고 때리고, 대답하지 않는다고 찼다.” 이달 16일 병영 내 학대에 시달리다가 자살한 육군 김모 이병의 사연을 보면 우리 사회에는 근대성과 계몽의 세례를 받지 못한 구석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지난달 국방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부하에게 음식찌꺼기 먹이기, 군화 냄새 맡게 하기 같은 가혹행위로 처벌받은 간부가 2009년 64명에서 지난해 71명으로 늘어났다. 국가인권위원회의 해병대 조사에서는 방향제에 불을 붙여 부하의 아랫도리에 뿌리는 가학 행위까지 드러났다.

▷백번 양보해 군에서야 군기를 잡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서울 구립 어린이집 교사들이 누운 아이를 발로 밟거나, 두 아이 머리채를 잡고 박치기시키는 폐쇄회로(CC)TV의 녹화 장면을 보고 울컥하지 않을 부모는 없을 것 같다. 젊고 예쁜 여교사가 제 자식 아니라고 남의 아이에게 함부로 하는 걸 보면 가학증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핑커 교수는 “사회 문화적 변화와 테크놀로지, 이데올로기에 따라 또 다른 폭력이 출몰할 수 있다”고 최근 저서 ‘인간본성의 더 나은 천사: 왜 폭력은 줄어드는가’에서 지적했다. 바이마르공화국도 당시 유럽에서 앞선 나라였지만 근대성보다는 군과 애국을 이상화한 ‘하위문화’가 있어 히틀러 같은 괴물이 등장했다. 가혹 행위가 남을 모질고 혹독하게 대하는 것이라면 가학 행위는 거기서 쾌감까지 느끼는 행위다. 어린이집부터 군대까지, 가혹을 넘어 가학까지 자행돼서야 힘없고 착한 사람들은 뭘 믿고 살아야 할지 겁난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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