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鐵의 영웅 박태준 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14일 03시 00분


1973년 6월 9일 오전 7시 반 포항제철소 용광로에서 황금빛 쇳물이 흘러나오자 건설일꾼들이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다. 오렌지색 섬광이 사람 키보다 높이 치솟는 순간 박태준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국 역사상 최초로 대형 고로에서 ‘산업의 쌀’이라는 쇳물이 터져 나온 순간이었다. 우리 손으로 자체 생산한 값싸고 품질 좋은 철강은 오늘날 한국이 조선 자동차 가전 등에서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박태준은 1967년 종합제철소 건설추진위원장을 맡아 “실패하면 오른쪽에 있는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겠다”는 ‘우향우 정신’으로 포항제철소를 탄생시켰다. 포항 모래벌판에서 오늘날 조업능력 4위의 세계적 철강기업을 키워낸 ‘철(鐵)의 영웅’ 청암 박태준 포스코(옛 포항제철) 명예회장이 어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한국경제의 압축성장을 상징하는 인물이자 불굴의 기업가정신의 화신이었다. 1970년 1인당 국민소득 254달러였던 가난한 농업국가가 선진 산업국가로 나아가자면 철강의 생산이 무엇보다 절실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과업을 받은 박태준은 뜨거운 애국심과 군인정신으로 맨땅에서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시대적 소명을 이뤄냈다.

작가 조정래는 ‘한강’이라는 대하소설에서 박태준을 한국 경제 발전을 상징하는 인물로 그려냈다. 조정래는 한 인터뷰에서 “포항제철이 생기면서 우리 경제가 중화학공업으로 체질을 바꾸었다. 국산 철강의 가격은 수입 철강에 비해 3분의 1이나 싸 산업경쟁력을 키웠다”고 박태준과 포항제철의 공로를 평가했다. 조정래는 “한국의 경제발전사에서 가장 크고 밝게 빛나는 인물 중 하나가 박태준”이라는 헌사를 바쳤다.

포스코는 1971년 포스코교육재단(옛 제철학원)을 세우고 이후 포스텍 등 12개 학교를 설립해 전국 최고 수준의 공교육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지방 작은 도시에 우수한 인력을 유치하려면 직원 자녀의 교육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박태준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은 지역 균형발전과 해외기업 투자 유치에도 유용한 답이 될 수 있다.

1981년 11대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민정당 대표와 자민련 총재, 국무총리를 지내는 동안 정치인으로서 박태준은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지닌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시대는 다를지언정 그와 같은 헌신적 열정과 비전을 갖춘 기업가가 많이 나와야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 한국경제의 태동기를 이끈 거목이 세상을 떠났다. 삼가 명복을 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