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호

윤상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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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윤상호 전문기자입니다.

ysh1005@donga.com

취재분야

2026-03-18~202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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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문기자 칼럼/윤상호]피와 죽음으로 지킨 NLL

    “조천형 하사와 황도현 하사는 기관포 방아쇠를 두 손으로 꼭 붙잡고 가슴에 안은 채 숨져….” 2002년 6월 30일 경기 평택시 해군2함대 사령부 기자회견장. 전날 북한군과 지옥 같은 교전을 치른 장병들은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슬픔과 울분이 뒤범벅된 흐느낌도 들려왔다. 장병들은 북한의 도발이 얼마나 악랄했고,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를 생생히 증언했다. 북한 경비정은 아군 고속정 357호의 조타실을 기습 포격해 발을 묶은 뒤 끝까지 쫓아와 무차별 사격했다. 수백 발의 적탄 세례에 357호의 선체는 처참하게 부서졌고, 내부는 사상자가 뒤엉켜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고막을 찢는 폭음과 외마디 비명, 다급한 신음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선체 바닥은 사상자들이 흘린 핏물이 강을 이뤘다. 화염과 시커먼 연기로 뒤덮인 함교에선 의무병인 박동혁 상병이 정장(艇長)인 윤영하 대위에게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하지만 적 포탄을 맞고 절명한 윤 대위의 몸은 싸늘히 식어 있었다. 그 옆엔 부장(副長·부지휘관)인 이희완 중위가 쓰러진 채 승조원들을 지휘했다. 그의 왼쪽 다리뼈는 포탄 파편을 맞아 으스러졌고, 오른쪽 다리는 파편이 관통해 살이 터져 나갔다. 빗발치는 적탄 속에서 부상자를 돌보던 박 상병도 등과 복부 등 온몸에 100여 개의 파편상을 입고 쓰러졌다. 357호 장병들은 적탄에 손가락이 잘려 나가고, 온몸이 찢기면서도 미친 듯이 응사했다. 그날 윤 대위 등 4명이 전사하고 한상국 하사가 실종됐으며 19명이 다쳤다. 이후 박 상병이 교전 83일 만에 숨지고, 한 하사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전사자는 6명으로 늘었다. 박 상병의 뜨거운 심장이 마지막 박동을 끝낸 순간 그를 치료했던 한 군의관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구멍이 났다”고 일기에 적었다. 전사자 6명에겐 1계급 특진과 함께 무공훈장이 추서됐다. 제2연평해전은 그렇게 끝났다. NLL 사수는 젊은 영웅들의 피와 죽음의 대가였다. 하지만 김대중정부는 그들을 철저히 외면했다. 교전 이틀 뒤에 열린 합동영결식에 군 통수권자는 오지 않았다. 국무총리와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도 불참했다. NLL을 지킨 영웅들을 홀대한다는 비난이 빗발쳤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었다. 한 달 뒤 북한이 쌍방 책임 운운하며 “우발적 무력충돌 사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전통문을 보내자 정부는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노무현정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매년 추모식이 열렸지만 대통령은 끝내 불참했다. 3주기 추모식부터 국방장관이, 5주기 추모식에 총리가 참석한 게 전부였다. 유족과 생존자들은 제2연평해전이 ‘잊혀진 전투’라며 피눈물을 삼켰다. 노무현정부는 왜 NLL을 지킨 영웅들에게 그토록 냉담했을까. 최근 공개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보고 그 궁금증이 풀렸다. 노 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NLL을 ‘골칫거리’라고 하면서 “무슨 괴물처럼”, “(건드리면) 시끄럽긴 시끄럽다”고 폄훼했다. 김 위원장과 인식을 같이한다며 NLL을 바꿔야 한다고도 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전번에 서해사건 때도 실제로 흔적 남은 게 뭐야”, “바다에 종잇장 그려놓은 지도와 같이 북방한계선은 뭐고, 군사경계선은 뭐고”라며 거들었다. 그들에게 NLL은 남북 화해평화의 걸림돌이자 애물단지였다. 평화를 가장한 북한의 NLL 무력화 계략에 홀린 대한민국의 군 통수권자에게 NLL을 사수한 영웅들은 안중에 없었다. 문재인 민주당 의원은 최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피와 죽음으로 NLL을 지켜온 역사를 끝내자. 더이상 피와 죽음이 없는 평화를 이루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NLL과 서해를 피와 죽음의 바다로 만든 북한의 도발 책임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제2연평해전의 전사자들은 좌파 성향 정부가 대북 퍼주기로 얻은 ‘헛된 평화’의 제물이었다. 두 번 다시는 거짓 평화의 희생자가 나와선 안 된다. 북한의 진정한 사과와 NLL 무력화 포기 없이는 피와 죽음으로 쓰인 NLL의 역사는 잊혀질 수도 없고, 잊혀져서도 안 된다고 나는 본다. 그것이 NLL의 비극적 역사를 단절하고 진정한 평화를 이루는 요체가 아닐까. 11년 전 서해를 핏빛으로 물들이며 NLL을 지켜낸 여섯 영웅들의 영전에 국화 한 송이를 바친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 2013-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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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전방 방사포 240mm 개량형으로 교체

    북한군이 최전방 포병 부대에 배치된 방사포(다연장로켓포) 중 일부를 240mm 개량형 방사포로 교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30일 군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군은 최근 서부와 동부전선 등 최전방 포병부대에 배치된 방사포를 240mm 개량형 방사포로 바꾸고 있다. 북한이 새로 배치한 240mm 개량형 방사포는 기존의 240mm 방사포보다 사거리가 5∼10km 정도 늘어난 것으로 군 당국은 보고 있다. 다른 소식통은 “북한이 사거리가 짧고 연속 사격이 힘든 107mm 방사포를 교체해 서울과 수도권 이남에 대한 기습포격 위협을 증대시키려는 의도가 짙다”고 말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 201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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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남아로 인정 받고 싶다” 이역만리서 늦깎이 자원입대

    “국방의 의무를 다해 대한남아로 떳떳하게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해외 영주권을 취득해 병역의무를 피할 수 있는 형제가 현역으로 자원입대했다. 그 주인공은 육군 53사단과 육군훈련소에서 각각 근무하는 방형석(30) 방태현(25) 이병이다. 이들은 1998년 부모와 함께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가 현지에서 중고교를 마치고 대학에 진학했다. 형인 방형석 이병은 음악 전문대학에 재학 중이던 2006년 병환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대신해 작은 의류 가공공장을 운영하는 등 한때 가장 역할을 했다. 동생인 방태현 이병은 부에노스아이레스대 경영학과를 다니다 연기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2008년 단국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해 지난해 말 졸업했다. 해외 영주권을 취득한 이들은 병역법에 따라 35세까지 병역을 연기하면 군 복무를 면제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형제는 올 3월 충남 논산의 육군 훈련소에 동반 입대해 신병교육을 마치고 4월 말 자대배치를 받았다. 방 이병 형제는 자신들의 선택에 대해 “오랜 외국생활을 통해 모국의 소중함과 내 몸 속에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긍지와 자부심을 절감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특히 “대한민국 남자라면 (병역의무 이행은) 당연한 일”이라며 어깨를 두드려 준 아버지의 격려가 큰 힘이 됐다. 부친인 방종석 씨(57)는 현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남미서부협의회장을 맡고 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입대했지만 두 형제는 빠르게 군 생활에 적응하며 모범병사로 인정받고 있다고 군 당국은 전했다. 자신들보다 나이가 어린 동료 병사들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인생 선배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53사단에서 인사행정병으로 근무하는 방형석 이병은 “군 생활을 통해 어떤 어려운 일도 부닥쳐 보자는 용기를 얻었고, 실패와 실수도 인생에 큰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육군훈련소에서 분대장을 맡고 있는 방태현 이병은 “이달부터 훈련병들을 직접 가르치게 돼 무척 설렌다”며 “조국을 위해 봉사하는 하루하루가 뿌듯하고 보람 있다”고 말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 201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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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사의 상처 치유’ 먼저 손내밀어

    중국을 국빈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군 유해 송환을 중국 정부에 전격 제안함에 따라 군 당국이 유해의 송환 방식과 절차 등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 작업에 즉각 착수했다. 군 고위 관계자는 30일 “중국이 유해 송환을 공식 요청할 경우 양국 외교안보 채널 간 실무협의를 거쳐 유해 송환 등에 대한 후속 절차가 본격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의 중국군 유해 송환 의사 표명이 중국의 상당히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2010년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6·25전쟁)은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인도주의적 측면뿐 아니라 북-중 혈맹관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중국 관영언론이 박 대통령의 제안을 거의 보도하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949년 중국 건국 이후 해외 참전 중 전사해 현지에 묻힌 중공군 유해는 대략 11만5217구 중 99% 이상인 11만4000구(추정)가 한반도에 묻혀 있다. 북한은 200여 곳에 중국군 기념지와 묘지를 조성했다고 한다. 1973년 김일성 주석의 지시로 평안남도 회창군 등 8곳에 ‘중국 인민지원군 열사묘’를 조성 관리하고 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도 회창군 열사묘에 묻혀 있다. 이 묘역엔 2009년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2010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인 3남 정은을 데리고 참배했다. 통상 한국에서 발굴된 중국군의 유해 송환은 군사정전위원회를 거쳐 북한을 통해 중국에 전달되는 절차를 밟아 왔다. 1980년대부터 1997년까지 중국군 유해 43구도 이런 과정을 거쳐 육로를 통해 판문점을 거쳐 중국에 송환됐다. 하지만 북한은 1997년 이후 군정위나 판문점 대표부를 통한 협의를 계속 거부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유해 송환은 한중 간 외교채널을 통해 직접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국방부는 중국군 유해 360구를 항공편으로 중국 정부에 곧바로 전달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아울러 경기 파주시의 적군(敵軍)묘지에 매장된 중국군 유해들의 수습 작업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맡게 된다. 2000년 창설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지금까지 7300여 구의 국군 유해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북한군과 중국군 유해 1000여 구도 발굴해 경기 파주시의 적군묘지에 임시 매장해 왔다. 적군묘지는 ‘자기 측 지역에서 발견된 적군 유해에 대해 인도·인수에 대한 조치를 취한다’는 내용의 제네바협정 120조에 따라 1996년에 파주시 적석면 답곡리에 조성됐다. 총면적은 6099m²로 축구장의 약 2배 크기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북한군과 중공군을 비롯해 1968년 김신조와 함께 청와대를 기습하다 사살된 공비 30명 등 1100여 구의 유해가 매장돼 있다. 지난해까지 적군묘지의 외관은 상당히 초라했다. 작은 봉분 앞에 세워진 약 50cm 높이의 흰색 말뚝에 묘지 주인의 이름과 계급이 적혀 있는데 유해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 ‘무명인’이라고 적힌 묘역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해마다 중국인 관광객의 참배가 늘어나고 관리 문제가 공론화되자 국방부와 경기도는 지난해 8월부터 4개월간 5억 원을 들여 낡은 시설을 교체했다. 향로 제단과 대리석 묘비를 세우는 등 묘역 정비 작업도 벌였다. 국방부 관계자는 “지금도 중국군 유해가 계속 나오고 있는 만큼 이번에 유해 송환이 실현되면 앞으로 정례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베이징=이헌진 특파원 ysh1005@donga.com}

    • 201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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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장수 실장 “문재인, 경직된 내 태도 때문에 회담 결렬됐다고 말해”

    제2차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에 나타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논란을 둘러싼 여야 공방이 치열해질수록 김장수 대통령국가안보실장의 입이 주목받고 있다. 2007년 10월 국방부 장관으로 노 전 대통령의 방북을 수행한 김 실장은 같은 해 11월 평양에서 열린 제2차 남북국방장관회담에도 참가했다. 당시 북한 군부는 남북정상회담을 빌미로 NLL 포기를 집요하게 요구했지만 김 전 장관은 ‘NLL 양보 불가’를 고수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회담이 결렬되자 청와대와 정부 내에서 ‘국방장관이 너무 뻣뻣하다, 분위기 파악을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고 말했다. 남북 정상이 합의한 공동어로구역 설정 방안이 김 전 장관의 ‘NLL 고집’으로 물거품이 됐다는 불만이 팽배했다는 것이다. 다른 관계자는 “당시 김 전 장관이 유무형의 압력으로 고충이 심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실장은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21일 국회 운영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정상회담 회의록의 공개가 적절한지를 묻는 질문에 “진실을 밝히는 게 옳다고 본다”는 지극히 원론적인 답변만 했다. 하지만 김 실장은 그동안 여러 차례 노무현 정부의 NLL 포기나 양보 태도를 비판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새누리당이 주최한 ‘NLL 수호를 위한 국민대토론회’에 참석해 “(대통령비서실장이던) 문재인 대선후보가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 공동어로수역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에 대해 ‘김장수의 경직된 태도 때문에 회담이 결렬됐다’고 표현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럼 내가 유연한 태도로 NLL을 양보했어야 했느냐고 반론하자 아직 답이 없다. NLL 관련사항이 모두 결렬된 게 천만다행”이라고 털어놓았다. 노무현 정부에서 NLL을 양보하라는 압력을 받았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는 또 “당시 북한은 NLL과 북이 주장해온 해상경계선 사이를 몽땅 공동어로수역으로 설정하자고 했다”며 “내가 반대하자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은 ‘남북정상회담 합의가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김 실장은 2011년 2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NLL 문제로 통일부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청와대 참모들과 자주 부딪치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해 “노 대통령에게 ‘NLL은 우리가 무조건 지켜야 할 해상경계선’이라고 했다”고 대답했다. 이어 “나중에 그 문제 때문에 ‘(장관) 그만두겠다’고 하자 (노 전 대통령이) 그냥 계속 하라고 했다”고 전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 2013-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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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방부, 연예병사 제도 폐지 검토

    연예병사(국방부 홍보지원대원)의 복무규정 위반과 일탈행위가 계속되자 국방부가 연예병사제도 폐지를 포함한 근본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군 당국은 연예병사인 가수 상추(본명 이상철) 일병과 세븐(본명 최동욱) 이병이 강원 춘천시에서 6·25전쟁 관련 외부행사에 참석한 뒤 심야에 안마시술소를 출입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26일 밝혔다. 군 관계자는 “두 병사의 안마시술소 출입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군 형법 등 규정에 따라 엄중 조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한 방송사 시사프로그램은 연예병사로 복무 중인 두 사람이 21일 지방공연에 참여한 뒤 심야에 숙소를 이탈해 안마시술소를 찾았다고 25일 보도했다. 성매매를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업소에 현금을 지불했다가 다시 돌려받았다는 증언까지 방송에 나왔다. 국방부는 다른 연예병사들의 일탈 행동 여부에 대해서도 특별감사를 실시해 문제가 드러날 경우 관련자 문책과 함께 제도 폐지 등을 검토할 방침이라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연예병사제도는 군 사기를 높이고 병역 이행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도입했지만 과도한 휴가와 외박 등 특혜 논란이 계속 불거졌다. 군 복무 중인 가수 비(본명 정지훈)가 배우 김태희와 만나는 과정에서 복무규정을 어긴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자 국방부는 1월 연예병사들의 과도한 휴가를 제한하고 혼자 공무 외출을 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연예병사 특별관리지침’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런 지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다시 나오고 있다. 이날 김관진 국방부 장관의 트위터에는 연예병사제도를 비판하는 글이 쏟아졌다. 한 누리꾼은 “누구는 시기를 놓쳐 뇌졸중으로 사망하고 누구는 치료를 위해 안마방에 간다. 연예병사가 벼슬인가. 연예병사 혜택이 왜 군에서 필요한가”라며 제도 폐지를 주장했다. 국방부는 국군방송의 위문열차 프로그램 등의 진행을 위해 연예인 입대자들을 대상으로 연예병사를 뽑고 있으며 현재 복무 중인 연예병사는 16명이다. 한편 김 장관은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연예병사와 관련 사건이 일어난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문제가 있다면 폐지하는가’라는 질의에는 “필요에 의해 생긴 제도이기 때문에 전반적인 분위기를 보고 재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 2013-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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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 “南 자주성 없다” 비위 건드리며 시작

    제2차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이 공개됨에 따라 노무현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회담 스타일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김 위원장은 남북경협특구 확대 등 한국 측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총리회담 등에서 논의하자”며 딴청을 피우면서도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평화협정 등 북측의 핵심 이해가 걸린 이슈는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은둔의 독재자’ 김 위원장은 국민의 손으로 뽑힌 남한 대통령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 김정일은 밀당(밀고 당기기)의 달인? 김 위원장은 상대의 비위를 건드리며 회담 분위기를 시작부터 주도했다. “지금 상급(장관급)회담도 제대로 되지 않고 정세에 따라 했다 말았다 한다. 남쪽 사람들이 자주성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자주성이 없다고 하면 인격 모욕하는 것 같은데 좀 눈치 보는 데가 많지 않은가.” 정상회담 합의문에 대해서도 “(1972년) 7·4공동선언 때 기대를 걸었는데 정권 교체와 정세변화로 빈 종이짝이 되고 말았다. 우리가 이번에 합의본 문제를 다시 문서화하면 또 빈 종이짝이 되지 않겠나”고 비꼬았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김정일은 후계자 시절부터 30년 넘게 한국 대통령들의 성향을 파악해 왔을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의 승부사 기질을 미리 알고 자극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노 전 대통령이 여러 남북경협방안을 제안했지만 김 위원장은 그때마다 “총리급, 경제장관회담에서 다루면 되지요”라며 답변을 피해갔다. 또 “우리가 군대 칼은 쥐고 있지, 경제 돈은 못 가지고 있다”며 마치 자신의 권한이 아닌 듯 설명하기도 했다. 전영선 건국대 교수는 “김정일 자신이 답하기에는 의제의 수준이 낮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북한의 핵심 관심사안인 북-미 관계개선과 평화협정 체결에는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자세로 큰 관심을 보였다. 김 위원장은 “부시 대통령이 노 대통령에게 종전선언 문제를 언급했다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아주 의미가 있다. 평화문제를 논의할 기초가 마련될 수 있다”며 노 전 대통령의 노력을 주문하듯 발언했다. 개성공단이 1단계 시험단지에서 분양을 멈춘 것에 대해서도 “남측이 의지가 있었으면 더 빨리 나가는데, 남쪽 사람들에게 (괜히) 땅만 빌려준 거 아니냐고 인민들은 생각한다”고 압박했다. 그는 “군대가 우선 반대할 테고 경제 행위꾼들도 ‘아직 개성에서 맛도 못 본 주제에 뭣 때문에 해주를 또 내라고 (하나)’. 아마 안 할 겁니다”라며 단호히 배격했다. 마치 민주국가의 대통령이 ‘국내 여론 때문에 쉽지 않다’는 식으로 말하며 노 전 대통령을 농락한 셈이라고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 선심 쓰듯, 내 잘못을 공동책임인 듯 말 포장 노 전 대통령이 추가 단독회담을 요구했을 때는 “내 회의도 저녁시간으로 다 돌려라. 노 대통령님의 끈질긴 제의에 내가 양보해서…”라며 선심 쓰듯 말했다. 이튿날 일정을 잡을 때도 “내일 국방위 일정이, 과업들 때문에 시간이 얼마 없는데 대통령께서 오셨기 때문에…”라며 양보하는 자세를 보였다. 이는 정상회담의 핵심 쟁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배석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정상회담 결과 발표 형식에 대해 ‘아직 합의를 못했다’며 제지했지만 “6·15 때처럼 선언으로 하라”고 지시했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중국 베이징(北京)올림픽 남북공동 응원단 파견안을 건의하자 “의미는 무슨, 인기나 끌어서 뭐하게…”라며 면박을 주면서도 “그것도 정상이 합의했다 하지요, 뭐”라며 즉흥적으로 수용했다. 남북정상회담 정례화와 관련해서는 “수시로 협의한다(고 씁시다). 정례화라고 하면 우리 사람 다 이해 안 됩니다”라며 단어 하나까지 따졌다. NLL을 서해상에서 지워버리겠다는 속내는 능수능란한 화술로 포장했다. 김 위원장은 “바다에 종잇장 그려놓은 지도와 같이 북방한계선은 뭐고, 군사경계선은 뭐고, 침범했다 침범하지 않았다, 그저 물 위의 무슨 흔적이 남습니까”라고 말했다. 이어 “전번에 서해사건 때도 실제로 흔적 남은 게 뭐야, 흔적 남은 게 뭐 있는가”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저 생억지, 앙탈질하는 게 체질화되다 보니까 50년 동안 자기 주의, 주장만 강조하고…”라고 비판했다. 1, 2차 연평해전 등을 북한이 일으켜놓고 마치 남북 모두에 그 책임이 있는 양 오도하는 특유의 말속임이다. 조숭호 기자·윤상호 군사전문기자 shcho@donga.com}

    • 2013-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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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동어로구역 설정, NLL 사실상 무력화”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했나, 안 했나.’ 국가정보원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까지 공개했는데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해 NLL 포기 발언을 했는지를 놓고 여야 공방이 거세다. 여당은 “NLL 포기 발언이 사실로 드러났다”고 주장하지만 야당은 “어디에도 NLL 포기 발언은 없다”며 맞서고 있다. 회의록에선 “NLL을 포기한다”는 직접적인 언급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회담 내용을 뜯어보면 NLL 포기로 해석될 소지는 충분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김 위원장은 남측의 NLL과 북측의 해상분계선 사이의 수역을 ‘평화수역’ ‘공동어로구역’으로 설정하자고 제안했고, 노 대통령은 이에 공감했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북측 해상분계선은 제1차 연평해전 석 달 뒤인 1999년 9월 초 북한이 경기도와 황해도 중간기선을 내세워 NLL 이남에 일방적으로 그은 불법적 경계선이다. 김 위원장의 주장대로라면 한국은 NLL 남쪽 아래의 광활한 서해바다를 공동어로구역으로 제공해야 한다. 군 관계자는 “이 경우 어선을 가장한 북한 해군이 활개를 치면서 NLL은 사실상 폐기되거나 무력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야권 일각에선 NLL 문제는 추후 협의하자는 게 노 전 대통령의 취지였던 것 같다는 주장도 나온다. 회의록 전문을 보면 노 전 대통령은 “NLL 가지고 이걸 바꾼다 어쩐다가 아니고…, 그건 옛날 기본 합의의 연장선상에서 앞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하고…” 등의 언급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언급한 기본 합의는 1992년 북한이 NLL을 사실상 인정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말한다. 남북정상회담 한 달 뒤인 2007년 11월 평양에서 열린 제2차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 북한은 남측이 NLL 유지를 고수하는 것은 남북 정상 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행위라고 강력 비난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김 위원장의 NLL 무력화 속내를 북한 군부가 그대로 대변한 셈”이라며 “따라서 ‘김 위원장이 NLL을 인정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 2013-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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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 정전 60년]“6·25는 끝나지 않은 전쟁… 자유와 평화엔 공짜가 없다”

    “6·25전쟁 때 적이 두려워 피했다면 어느 누가 도와줬겠나. 목숨 바쳐 제 나라 지키는 한국군을 보고 미군 등 유엔군도 전폭 지원했던 것이다.”정전 60주년과 6·25전쟁 63주년을 맞아 백선엽 예비역 대장(93)은 24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동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오늘의 자유와 풍요가 얼마나 많은 피와 고귀한 희생의 대가인지 잊어선 안 된다”며 이렇게 강조했다.6·25전쟁 발발부터 정전협정 체결 때까지 1128일간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전선을 지키며 공산군과 사투를 벌였다. 전쟁 기간 1사단장과 군단장, 육군참모총장 등을 맡아 군을 지휘했다. 휴전회담의 유엔군 측 초대 한국군 대표도 맡았다.1시간 남짓한 인터뷰 내내 꼿꼿한 자세로 60년 전의 전투 상황과 지명, 인명 등을 어제 일처럼 회고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그때나 지금이나 전혀 변하지 않았다, 전후세대가 북한의 실체를 직시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정전 60년, 6·25 발발 63주년을 맞은 소감은…. “참 만감이 교차한다. 정전이 이렇게 오래갈지 누가 예상했겠나.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세계 최빈국(남한)에 북한의 기습남침은 재앙이었다.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온 국토를 폐허로 만든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적을 일궈낸 것은 국민의 피땀이다. 항상 감사한다.”―선두에서 부하를 지휘하며 위태로운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전투는….“1950년 8월 중순 국군 1사단과 미군이 함께 낙동강 전선에서 북한군 3개 사단을 무찌른 다부동전투다. 병력과 무기 모두 열세였지만 무너지면 끝장이라는 각오로 싸웠다. 하루에 700명의 사상자가 속출했지만 적의 총공세를 막고 방어선을 지켜냈다. 6·25전쟁의 첫 한미 연합작전인 이 전투를 계기로 양국군은 피보다 진한 신뢰를 쌓게 됐다.”―1군단장 시절 유엔군이 주도한 휴전회담에 초대 한국군 대표로 참석했는데….“지금도 생생하다. 1951년 7월 10일 개성의 내봉장(來鳳莊)에서 열린 유엔군과 공산군 측 첫 휴전회담에 100여 명의 외신 취재진이 몰렸다. 이승만 대통령이 ‘통일 없는 휴전은 없다’며 반대하는 상황에서 나라를 짓밟은 적군과 협상을 해야 하는 상황이 착잡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회담이 2년여를 끌지 누구도 예상 못했다.”―회담 분위기는 어땠나.“첫날 회담 때 양측은 악수나 인사도 하지 않았다. 의자 높이와 좌석 배치 등을 놓고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져 1시간 동안 침묵 속에 서로 쏘아보기도 했다. 한번은 맞은편의 이상조 북한군 소장이 빨간 색연필로 ‘제국주의자의 주구(走狗)는 상갓집 개만도 못하다’고 쓴 것을 보여주며 날 자극했지만 일절 대응하지 않았다.”―최근 남북당국회담이 수석대표의 격(格) 문제로 무산됐다.“북한이 진정성을 갖고 회담을 제의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들의 목표는 대남 적화이고 이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북한이 정전협정 체결 이후 일으킨 숱한 대남 도발 사례가 그 증거 아닌가. 북한의 대남 유화책에 절대 현혹돼선 안 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정전체제를 조속히 평화체제로 전환하자는 주장을 어떻게 보나. “먼저 상대의 실체부터 똑바로 봐야 한다. 북한의 현 지도부가 바뀌고, 핵을 포기해 대남 위협이 사라져야 평화체제든 협정이든 논의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를 무시하고 평화체제 운운하는 건 부적절하다. 북한에 대해 쓸데없는 환상을 가져선 안 된다.”그는 ‘전후 세대에게 남길 메시지’를 묻자 “지금의 자유와 평화, 풍요를 공기처럼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선 안 된다. 자유와 평화는 절대 공짜가 없다. 아울러 북한의 실상을 꿰뚫어보고 안보의 중요성도 간과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뒤 다시 입을 열었다.“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 2013-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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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정원 ‘NLL 대화록’ 공개]“NLL 괴물같아… 확 해결해버리면 좋겠는데”

    《 국가정보원이 24일 전격 공개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발췌본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특유의 화법이 군데군데 묻어나 당시 회담의 분위기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개혁 개방을 유도하기 위해 온 것이 결코 아니다”라며 “북측 체제를 존중하는 것이 약속일 뿐만 아니라, 도리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이익이 된다”고 강조했다.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모르니까, 뒷걸음치지 않게, 쐐기를 좀 박아 놓자”고도 했다. 또 “남측은 데모가 너무 자유로운 나라라서 모시기도 그렇게…우리도 좀 어려움이 있습니다”, “임기 마치고 난 다음에 위원장께 꼭 와서 뵙자는 소리는 못 하겠습니다만, 평양 좀 자주 들락날락할 수 있게 좀, 특별한 대접은 안 받아도…”, “내가 받은 보고서인데 위원장님께서 심심할 때 보시도록 드리고 가면 안 되겠습니까” 등의 언급도 나온다. 》 ■ NLL-서해평화협력지대국가정보원이 24일 공개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발췌본에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인식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노 전 대통령은 NLL을 ‘이상하게 생긴 괴물’에 비유하며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거듭 강조했다. “NLL은 이상하게 생겨서 무슨 괴물처럼 함부로 못 건드린다” “NLL 말만 나오면 전부 다 벌떼처럼 들고일어난다”는 말도 했다. 발췌본 어디에도 1, 2차 연평해전 등 북한의 NLL 기습도발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나 사과 요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제안한 NLL과 북측 주장 해상경계선 사이의 서해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에 관심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남북 공동어로와 한강 하구 공동개발, 자유로운 통항 등을 위한 ‘서해평화협력지대’ 설치 문제를 협의하면 임기 내 NLL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남측의 반대 여론을 우려하자 “이에 반대하는 사람은 하루아침에 인터넷에서 바보가 될 것” “얼마든지 내가 맞서 나갈 수 있다” “남쪽에서도 군부가 뭘 자꾸 안 하려고 한다. 뒤로 빼고 하는데 이번에 군부가 개편이 돼서 사고방식이 달라지고 평화협력에 대한 전향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등의 언급을 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인식은 남북 간 경제협력만 잘되면 저절로 평화가 찾아오는데 NLL 문제로 발목이 잡혀선 안 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보기에 따라선 NLL 포기 발언으로 해석될 소지도 있는 대목이다. 당시에도 국내에선 북측 주장대로 NLL을 양보하거나 무력화할 경우 북한 특작부대 침공 시 수도권과 서북도서 방어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그래서 당시 군 당국은 해주항 직항과 공동어로구역의 선결조건은 북한의 NLL 인정이라고 못을 박았다. 노 전 대통령을 수행한 김장수 국방부 장관이 방북 직후 기자회견에서 “서해 NLL을 끝까지 지킨 것이 이번 회담의 군사 분야 성과”라고 밝힌 것도 NLL의 민감성 때문이다. 군사적 신뢰 조치가 전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할 경우 북한군의 작전해역이 넓어져 남북 간 충돌 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이는 NLL 무력화를 초래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었다. 군 관계자는 “NLL 인근에서 조업하는 북한 어선은 모두 북한 해군 소속”이라며 “노 전 대통령이 NLL 무력화를 노린 북한의 속셈을 간파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NLL이 국제법적 근거도 없고 논리적 근거도 불확실하다며 북한 인민에게도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 김 위원장에게 설명했다. 이는 유엔군사령관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만큼 ‘NLL은 무효’라는 북한의 주장과 맥이 통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국방부는 2007년 초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펴낸 ‘NLL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란 책자에서 NLL이 정전협정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설정된 이래 우리가 실효적으로 관할해 왔고 해상 군사분계선의 기능과 역할을 해왔다고 밝힌 바 있다. 아울러 북한은 2002년 6월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항로 착오로 NLL을 월선한 북한 선박 1척을 NLL상에서 인계받는 등 여러 차례 사실상 NLL을 인정한 바 있다. 이에 앞서 1992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의 부속합의서에 ‘해상불가침 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해온 구역으로 한다’고 규정한 것도 북한이 NLL을 인정한 증거로 꼽힌다. 국방부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북한의 NLL 도발에 ‘면죄부’를 주고 NLL의 안보적 가치를 스스로 훼손시켰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은 “우리는 (김정일) 위원장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하고 6·15 때 악수 한 번 했는데, 그게 우리 남쪽 경제에 수조 원, 수십조 원 번 거다. 어제 내가 (군사)분계선을 넘어선 사진으로 남측이 아마 수조 원 벌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 2013-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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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나먼 남아共서 날아온 감사편지

    “제 인생의 소중한 첫걸음을 잘 내디딜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공군사관학교 32기 동기생회는 최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살고 있는 한 여대생에게서 이런 감사 편지를 받았다. 올해 남아공 프리토리아대에 입학해 교육학을 전공 중인 레베카 주베르 씨(19·여)가 그 편지의 주인공. 공사 32기 동기생회와 레베카 씨의 인연은 2010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공사 32기 동기생회는 공사 입학 30주년을 맞아 뭔가 의미 있는 일을 찾고 있었다. 170여 명의 동기생은 6·25전쟁 당시 전투병을 파병한 16개 참전국 가운데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던 남아공과 터키 참전용사의 후손들에게 장학금을 주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후 남아공의 한국전쟁 참전용사회와 터키 주재 한국 무관에게서 각각 2명의 고교생을 추천받았다.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한 조 주베르 씨(87)의 손녀인 레베카 씨가 포함됐다. 32기 동기생회는 레베카 씨 등 남아공 참전용사 후손 2명이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3년간 매년 1600달러(약 185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터키 참전용사 후손 2명에게도 4년간 매년 1200달러의 장학금을 후원했다. 레베카 씨는 자필 편지와 e메일 등에서 “여러분의 도움과 축복으로 학업을 잘 마치고 훌륭한 대학에 진학했다”며 “역사와 영어를 전공해 교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녀는 고교에서 도자기를 제작하는 클럽 회장을 맡아 열심히 활동해 상을 받은 내용 등 보람찬 학교생활에 대해서도 편지에 소개했다. 주베르 씨는 남아공 주재 한국 무관에게 “한국 공군의 장교들이 나에게 (6·25전쟁 참전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길 희망한다는 얘길 전해 듣고 정말 고마웠다”며 “6·25전쟁 참전은 최고의 명예이자 자부심”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어 “60년 전 목숨 걸고 지켜 낸 한국이 훌륭한 민주주의를 이뤄 내고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룬 것이 정말 자랑스럽고 가슴 벅차다”고 덧붙였다. 6·25전쟁 때 1950년 9월∼1951년 5월, 1952년 5∼6월 두 차례에 걸쳐 참전한 주베르 씨는 175회나 출격한 베테랑 전투기 조종사였다. 1951년 5월 F-51D 머스탱 4기 편대를 이끌고 한강 이북 지역에서 미국 지상군과 교전하던 중공군을 격퇴하는 등 많은 전공을 세워 남아공 공군의 최고 영예인 ‘수훈비행십자훈장’도 두 번이나 받았다. 남아공은 6·25전쟁에 공군 843명(연인원)이 참전해 34명이 전사하고, 9명이 포로가 됐다.윤상호 군사전문 기자 ysh1005@donga.com}

    • 2013-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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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신형전차 900대 최전방에 집중 배치

    북한이 2005년부터 신형 전차 900여 대를 개발해 휴전선과 가까운 전방지역에 집중 배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19일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군은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선군호’라는 이름을 붙인 신형 전차 900여 대를 개발해 그 대부분을 휴전선에서 100km 이내인 평양과 원산 이남의 전방부대에 배치했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강조했던 ‘선군(先軍)정치’의 의미를 실천한다는 의미에서 신형 전차를 선군호로 명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형 전차는 기존의 주력 전차인 ‘폭풍호’보다 주포의 사거리가 늘어났고, 최대속력도 시속 70km 이상으로 기동력이 뛰어난 것으로 군 당국은 보고 있다. 군 소식통은 “선군호는 신형 사격통제장비와 포탑을 갖춰 이동 간 사격이나 야간 사격 능력이 우수한 3세대급 전차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한국군은 2400여 대, 북한군은 4200여 대의 전차를 각각 보유 중이다. 군 관계자는 “관련 첩보를 분석한 결과 선군호는 우리 군의 주력전차(K1A1)보다 방호력과 파괴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됐다”며 “한미 연합군이 보유한 공격헬기와 다연장로켓포 등 대(對)기갑전력으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군 당국은 북한 전역의 핵시설과 미사일 기지를 정밀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공대지미사일로 독일제 타우루스(TAURUS)를 도입하기로 19일 결정했다. 군은 기당 20억 원인 이 미사일을 140여 기 도입할 계획이다. 타우루스는 최대 사거리가 500km이다. 대전 상공에 있는 공군 전투기에서 발사하면 평양의 지휘부를 비롯해 북한 전역의 핵과 미사일 기지를 몇 m 오차 범위 이내로 타격할 수 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 2013-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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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탕자쉬안 “한반도 비핵화 최우선”… 中, 대북압박 동참하나

    ‘매달리는 북한, 그러나 뿌리치는 중국.’ 최근 북-중 관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미묘한 기류가 잇달아 감지되고 있다. 한국과 미국, 중국의 ‘북핵 삼각공조’가 현실화되자 북한은 전통적 조중(朝中)친선을 강조하며 ‘중국 매달리기’에 정성을 쏟는 형국이다. 하지만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와 북핵 불용(不容)’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한국 미국 및 국제사회의 대북(對北) 압박에 동참하는 양상이다. 북한이 핵을 고집하면 북-중 관계의 근본적 변화를 각오해야 한다는 중국의 대북 경고라는 분석마저 나온다. 16일 한중 군사외교 사정에 밝은 여권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달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특사로 중국을 방문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에게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에 역행하는 북의 핵 보유를 용납할 수 없다는 부정적 견해를 분명히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내비쳤다. 탕자쉬안(唐家璇) 전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16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만나 “중국의 한반도 정책의 3요소인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와 안정 유지,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 가운데 (중국이) 비핵화를 가장 우선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중국이 과거 3원칙 가운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유지를 가장 우선시했음을 감안하면 중국의 대(對)한반도 정책에 중요한 변화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탕 전 위원은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이 중국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중국은 (박근혜정부가 강조하는) ‘한-미-중 (전략)대화’에 대해서도 적극적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탕 전 위원은 15일 21세기 한중교류협회(회장 김한규) 회원들과 만나서도 “지난달 시 주석이 최룡해를 만났을 때 ‘북한의 핵무기를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점에 쐐기를 박았다”며 “그것이 과거와 달라진 점”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결국 북한이 6자회담 복귀 의사를 밝히고 남한에 대화를 제의한 것도 그런 분위기(중국의 강경 기조)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분석했다고 한다. 다만 탕 전 위원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군과 당을 장악했기 때문에 섣불리 붕괴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한국에선 김정은 체제가 곧 붕괴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은데 내 판단은 그렇지 않다. 김정일이 생전에 (김정은 체제를) 이미 다 구축해 놓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의 대북 압박과 거리두기가 가시화되자 북한은 우호친선을 강조하며 ‘중국 달래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5일 김정은이 60세 생일을 맞은 시 주석에게 축전을 보냈다고 전했다. 김정은은 축전에서 “전통적인 북-중 친선을 복잡다단한 국제정세 속에서도 장기적이며 전략적인 견지에서 대를 이어 더욱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우리의 확고부동한 의지”라고 말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윤완준 기자 ysh1005@donga.com}

    • 2013-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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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문기자 칼럼/윤상호]군(軍)과 폭탄주

    “군인은 역시 폭탄주 아니냐, 한잔씩 하자.” 2000년 9월 말 제주에서 열린 첫 남북 국방장관회담 전날 만찬장. 조성태 국방부 장관 등 남측 대표단이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등 북측 대표단에 ‘폭탄주 대결’을 제안했다. 이미 허벅술(제주의 특산주)로 1인당 30잔 가까운 술을 주고받으며 팽팽한 기싸움을 벌인 직후였다. 이에 북측 대표단은 다음 날 회담을 의식한 듯 “폭탄주는 싫습네다”라며 제의를 거절해 양측의 폭탄주 승부는 무산됐다. 맥주에 양주나 소주를 섞은 폭탄주가 군(軍) 음주문화의 상징처럼 회자된 에피소드는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군과 폭탄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다. 우선 한국 사회에 폭탄주를 처음 전파한 것은 군이라는 게 정설처럼 돼 있다. 포털 사이트도 1960, 70년대 미국 유학을 다녀온 군인들이 폭탄주를 최초로 들여왔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후 1980년대 초 정치에 입문한 군 인사들이 정치권과 법조계, 언론계 인사들과 술자리를 가지면서 ‘폭탄주 문화’가 사회 각계에 확산됐다고 한다. 당시 5공 신군부 세력이 정권 창출과 유지 차원에서 민간인들과 ‘동반자적 관계’를 맺기 위해 폭탄주를 활용했다는 분석도 곁들여진다. 실제로 몇 년 전까지 군내에선 폭탄주 문화가 대세였다. 군 수뇌부를 비롯해 일선 지휘관들이 주관하는 회식 자리에서 폭탄주가 ‘충성주’, ‘단합주’라는 이름으로 몇 순배씩 돌았다. 상명하복이 생명인 군 조직에서 상급자가 건네는 폭탄주는 개인의 주량을 떠나 거역하기 힘든 ‘주령(酒令)’이자 ‘우리는 하나’라는 일체감을 확인하게 해주는 ‘묘약’이었다. 더욱이 ‘술을 잘하면 용장(勇將), 못하면 졸장부’라는 다소 과격하면서도 너그러운 군 음주문화에 힘입어 폭탄주는 군에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군납 양주는 면세 혜택을 받아 일반 가게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데다 가짜가 없어 군내 폭탄주 확산에 일조했다는 우스개까지 회자됐다. 폭탄주는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역대 정권에서 정부 고위직과 권력기관의 수장에 오르거나 하마평에 오르는 인사들의 프로필엔 폭탄주 주량이 단골로 소개됐다. 수십 잔의 폭탄주를 들이킬 수 있는 두주불사(斗酒不辭) 능력을 가진 인사는 그만큼 호탕하고 그릇이 큰 인물로 평가됐다. 일각에선 폭탄주가 계급 고하에 상관없이 공평하게 마시고, 회식 자리를 일찍 끝내게 만드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는 ‘폭탄주 예찬론’이 나오기도 했다. 반면 폭탄주의 폐해가 국민적 관심을 끌게 된 것도 군과 인연이 깊다. 1986년 3월 국회 국방위원회 의원들과 군 고위 장성들이 회식 자리에서 폭탄주를 주고받다 시비가 붙어 취중에 주먹과 발길질이 오가는 ‘국회 국방위 회식 사건’이 터졌다. ‘금배지’와 ‘별’ 사이에 벌어진 희대의 난투극을 촉발하게 만든 폭탄주는 그해 말 올해의 단어가 됐다. 문민정권 출범 후 폭탄주는 된서리를 맞았다. 군사문화의 잔재인 폭탄주를 근절하자는 캠페인이 대대적으로 전개됐고 군도 건전한 음주문화 정착을 내걸고 ‘폭탄주 추방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폭탄주는 지금까지 진화를 거듭하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엔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폭주’가 대중적 음주문화로 자리 잡는 추세다.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청 조사에서 30∼50대보다 20대가 맥주에 양주나 고카페인 에너지음료를 섞은 폭탄주를 더 즐긴다는 결과가 나왔을 정도다. 폭음은 대개 사건사고로 직결되기 마련이다. 지난달 육군사관학교에서 발생한 교내 성폭행 사건의 발단도 과도한 폭탄주 회식이었다. 일각에선 육사가 사회적 추세를 반영한다는 이유로 생도의 음주 규정을 잇달아 완화한 것이 화를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2001년부터 학교장과 생도대장의 승인 아래 생도들이 소량의 음주를 할 수 있게 됐고, 2003년엔 음주 승인권자가 훈육관과 지도교수, 학부모로 하향 조정됐다. 군 당국은 사건 조사 결과 교내에서 과도한 음주행위가 벌어졌지만 교수들이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생도 보호조치 등 사후 관리를 소홀히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육군은 생도의 음주 규정을 강화하는 등 대책 마련을 공언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군이 폭탄주와의 아름답지 못한 인연을 끊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 2013-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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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전협정 60주년과 한반도 평화’ 국제 심포지엄

    《 “북한의 핵무장은 한반도 정전체제의 성격과 틀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유사시 북한의 핵사용을 저지할 확고한 핵 억지력을 갖춰야 한반도 평화와 신뢰 프로세스가 순조롭게 이행될 수 있다.” 올해로 60주년을 맞는 정전체제의 핵심 화두는 역시 북한 핵문제였다. 한국전략문제연구소(소장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와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이사장 이채주)은 11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정전협정 60주년과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을 공동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한국과 미국, 중국의 외교 안보 전문가들은 북한 핵문제의 해결 없이는 현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물론이고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 등 평화통일의 길이 요원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북한이 핵개발과 정전체제 무력화 전략을 포기하고 남북 화해와 평화 구축에 참여토록 할 수 있는 방안을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이날 행사의 1부(정전체제와 북한 핵문제)는 정종욱 동아대 석좌교수가, 2부(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평화체제)는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이 각각 사회를 맡아 진행했다.○ 북한의 ‘위험한 게임’ 김창수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북한은 (앞에선)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과 통일을 표방하면서 (뒤로는) 핵실험과 국지 도발로 정전 무력화를 시도해 왔다”며 “김씨 세습 독재정권의 유지를 위한 분단 지속과 한국에 의한 통일 반대가 북한의 속내이자 진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센터장은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북의 도발과 전쟁을 억지하는 한편 신뢰 구축으로 정전체제를 관리하고 평화체제 전환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토론에 나선 손경호 국방대 교수는 “한반도 정전체제는 전쟁 재발 방지와 한미동맹을 활용한 한국의 성장과 번영에 기여했다”며 “하지만 탈냉전 이후 국제질서의 변화로 정전체제의 불안정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북한은 오히려 핵과 미사일로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의 ‘한반도 현상 유지’ 정책 북핵 6자회담과 중국의 대북 레버리지(지렛대)의 현실적 한계와 그 원인에 대한 냉철한 비판도 제기됐다. 선딩리(沈丁立) 중국 푸단(復旦)대 국제학부 교수는 “북한이 3차례의 핵실험 등 핵개발에 상당한 진척을 거둔 점에서 6자회담은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6자회담 과정에서 자국의 대북 영향력을 과대평가했거나 북한을 과소평가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성과 동북아 질서의 혼란 등을 이유로 대북 제재의 영향력 발휘를 꺼리는 게 중국의 속내라고 분석했다. 진찬룽(金燦榮) 중국 런민(人民)대 교수는 진카이(金凱) 연세대 국제학연구소 연구원이 대리 발표한 발제문에서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을 계기로 중국의 북핵 정책이 ‘적극적 개입’을 통한 비핵화에서 한반도 안정 유지라는 소극적 태도로 급변했다고 진단했다. 중국이 대북 영향력의 현실적 한계를 인식한 데다 미국과의 북핵 공조도 삐걱대자 ‘한반도 비핵화’라는 전략적 목표를 ‘한반도 현상 유지’로 하향 조정했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이 상당 기간 선군정책을 고수하면서 핵개발을 계속할 것”이라며 “북한의 세계관으로 보면 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라고 주장했다. 윤정원 육군사관학교 교수는 관련 토론에서 “주변국들이 북한의 핵개발을 ‘협상용’으로 여기고, 궁극적인 핵무장 의도를 간과한 측면이 크다”며 “북한의 핵능력이 강화될수록 한국과 일본에서 핵무장론이 부상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석희 연세대 교수는 “중국의 대북 정책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북한의 핵 포기 등 근본적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이 북한의 붕괴 위험을 무릅쓰고, 강경한 대북 핵 정책을 구사하기 힘들 것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남북 간 신뢰 구축 쉽지 않아 현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청사진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남북관계에 신뢰의 가치를 적용하고, 한반도의 범위를 넘어선 ‘신뢰 외교(Trustpolitics)’를 확산시켜 북한 문제 해결의 국제화를 추구하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의지는 긍정적인 노력”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키어 리버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북핵 위협이 존재하는 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순조롭게 추진되기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굳건한 억제력에 기초한 대화 재개와 대북 지원이 핵심인 신뢰 외교는 고무적이지만 북한과의 전쟁을 염두에 둔 한미 군사전략의 속성상 남북 간 신뢰 구축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유사시 북한의 대남 핵 공격 등 핵 위기 고조 가능성은 한반도의 신뢰와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북한 핵 사용 가능성 대비해야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북한은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미국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데릴 프레스 미국 다트머스대 교수는 “핵무기는 약자의 궁극적인 무기”라며 “북한과 같은 약소국이 한미연합군처럼 강한 상대와 맞설 경우 핵무기 사용의 강력한 유혹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리버 교수도 “북한 지도부를 신속히 공격해 지휘통제를 무력화하는 한미 군 당국의 전쟁 방식은 북한 정권이 ‘핵카드’를 선택하도록 강하게 압박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전시 북한의 핵 사용에 대응할 재래식 전력은 물론이고 핵 보복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리버 교수는 미국이 전시 북한의 핵무기 사용을 억지하고, 한국 방위공약을 유지하려면 북한이 핵우산 등 미국의 핵 능력을 위협으로 인식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위해 미국은 북한의 핵이나 재래식 도발 시 다양한 위력의 핵무기로 즉각적이고 정확한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보복 옵션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손영일 기자 ysh1005@donga.com}

    • 2013-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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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한미중 3각 공조에 압박 느꼈을것”

    이번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한 한국과 미국, 중국 전문가들은 12일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었다가 막판 남북 간 이견으로 일단 무산된 남북당국회담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전격적인 대화 제의가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처한 북의 대외적 상황을 잘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말부터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와 3차 핵실험, 전쟁 위기 고조 등 대남·대미 강공책을 펼쳤지만 한미중의 대북정책 공조로 효과를 보지 못하자 대화 테이블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이병구 국방대 교수는 “지난 몇 개월간 한반도 긴장 고조에 ‘다걸기’한 북한은 약간의 유화적 태도만 보여도 큰 변화인 것처럼 대외에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카이(金凱) 연세대 국제학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미중 정상회담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의 비핵화와 핵보유국 불용 원칙을 천명한 데 대해 북한이 상당한 압박과 고립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회담이 재개된다고 하더라도 핵 포기 등 북한의 근본적인 태도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많았다. 김창수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한두 차례 회담만으론 북한의 근본적 태도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북한의 대화 제의는 ‘화전양면(和戰兩面)’ 차원의 대남 협상전술일 뿐 ‘핵과 경제’ 병진 노선을 포기할 개연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데릴 프레스 미국 다트머스대 교수도 “북한이 핵 포기를 선언하지 않는 한 어떤 유화적 제스처도 근본적 변화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비록 12일 회담은 무산됐지만 대화 노력 자체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문도 적지 않았다.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은 “남북 당국회담이 한반도 평화와 남북 화해의 전기가 되길 기대하고, 그런 차원에서 이번 국제심포지엄은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말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손영일 기자 ysh1005@donga.com}

    • 2013-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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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대화 급물살]천안함-연평포격-탈북청소년 북송… 北 어물쩍? 南 따질건 따진다?

    정부 안팎에서는 ‘북한의 파격적인 제의와 우리 정부의 호응으로 남북 대화가 성사된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그래도 북측에 따질 건 따져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 대표적 사안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 탈북 청소년 9명의 강제 북송 문제 등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전방위적 대화 공세로 인해 과거 도발 책임과 탈북 청소년의 인권문제가 희석돼선 안 된다”며 “이 문제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이번 남북 회담의 진정성을 가늠하는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본궤도에 안착하려면 과거 도발에 대한 북한의 사과와 추가도발 방지 약속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12일 서울에서 열릴 것으로 보이는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한국 정부가 북측의 책임 있는 조치를 어떤 식으로든 촉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된다. 그러나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천안함, 연평도 문제를 꺼낼 경우 북한이 반발할 수 있는 만큼 그런 민감한 이슈는 남북 군사실무회담으로 넘길 가능성도 있다. 남북은 2011년 2월 군사실무회담(대령급)을 열어 천안함과 연평도 도발 문제 등을 논의할 고위급회담 개최를 조율했지만 끝내 합의를 보지 못했다.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국제사회의 핫이슈로 떠오른 탈북 청소년 북송 문제가 다뤄질지도 관심사항이다. 박 대통령은 최근 강제 북송된 탈북 청소년들의 생명과 안전 보장을 강조한 바 있다. 한편 이날 김관진 국방부 장관 주관으로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정진섭 해군 2함대사령관(소장)은 “최근 들어 북한의 상선과 어선, 단속선박(어업지도선)의 NLL 침범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김 장관에게 보고했다. 군은 꽃게잡이철 조업 과정에서 빚어진 일시적 현상으로 보고 있으나 북한의 관련 동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서는 북한이 도발할 경우 도발원점과 지원, 지휘세력을 즉각 보복 응징한다는 대응 원칙을 재확인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 2013-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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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일 현충일]“유해발굴 전사자 7221명 가족 찾습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유해발굴단)은 6일 제58회 현충일을 맞아 6·25전쟁 전사자 유족 찾기 행사를 개최한다고 5일 밝혔다. 이 행사의 핵심은 유해발굴단이 이미 발굴했거나 향후 발굴할 국군 전사자 유해의 신원 확인 등 감식 작업에 필요한 유전자(DNA) 시료를 유족들로부터 채취하는 것이다. 2008년부터 시작돼 올해로 6회째다. 올해는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뿐만 아니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도 행사를 연다. 유전자 시료 채취와 함께 유족을 대상으로 유해 발굴사업에 대한 홍보와 병적 관련 상담, 무료 건강검진도 실시할 계획이다. 국군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 사진전과 유품 전시행사도 마련된다. 유전자 채취는 2003년부터 시작됐다. 그동안 참여한 유족은 5월 말 현재 2만4915명. 앞으로 찾아야 할 전사자가 13만여 명에 이르는 것에 비하면 갈 길이 먼 실정이다. 더욱이 6·25전쟁 50주년인 2000년부터 시작된 유해발굴 사업으로 지금까지 수습된 국군 전사자 7303명 중 유전자 감식을 통해 신원이 확인돼 유족 품으로 돌아간 사례는 82건에 그친다. 그나마 2009년부터 유해발굴단이 시료 채취 방식을 혈액뿐만 아니라 구강 내 분비물 등으로 확대한 이후 연간 수백 명에 불과하던 유족들의 유전자 샘플 채취 건수가 3000∼4000건으로 늘어났다. 유해발굴단 관계자는 “힘들게 전사자 유해를 발굴해 유전자 검사를 해도 일치하는 샘플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조국을 지키다 산화한 영웅들을 확인하고 이들을 속히 가족들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선 더 많은 유전자 시료 확보가 급선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유해발굴단은 직계가족 생존 시 최대한의 유전자 시료를 확보하기 위해 유족을 직접 찾아가는 현장기동팀을 운용하는 한편으로 전국 보건소 250여 곳에서 시료 채취 및 건강검진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 2013-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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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사교장 박삼득 내정

    5월 교내에서 발생한 여생도 성폭행 사건의 책임을 지고 자진 전역 의사를 밝힌 박남수 전 육군사관학교 교장(중장·육사 35기)의 후임으로 박삼득 국방대 총장(중장·육사 36기)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4일 군 소식통에 따르면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이날 박근혜 대통령에게 신임 육사 교장으로 박 총장을 추천했다. 군 관계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박 대통령은 금명간 박 총장을 공식 임명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 총장은 육군본부 작전처장과 5사단장, 육본 개혁실장 등을 지냈다. 육사는 7일 교장 이·취임식을 개최할 계획이다. 육군은 박 총장이 신임 육사 교장에 임명되면 예비역, 민간 전문가들이 참가하는 ‘육사 혁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향후 유사 사건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생도 인성교육 등 육사 교육 전반에 대한 개선 방안을 강구할 방침이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 201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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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중 軍수뇌부, 北도발 대응 핫라인 가동

    한국과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의 평화 안정을 정착시키기 위해 군 수뇌부 간 정례적인 전화 통화 등 군사 분야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2008년 전략적 협력동반자로 격상된 한중 관계에 걸맞은 군사적 신뢰 구축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북-중 간 전통적 우방 관계에 미칠 영향에 귀추가 주목된다. 정승조 합참의장(육군 대장)과 팡펑후이(房峰輝) 중국군 총참모장은 4일 베이징 ‘8·1청사’에서 한중 군사회담을 개최하고 이런 내용에 합의했다고 합참이 밝혔다. 이번 회담은 한국 합참의장이 2007년 이후 6년 만에 중국을 방문해 이뤄졌다. 합참은 회담 후 발표한 보도문에서 “양국 대표는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에 부응하도록 군사 분야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양측은 전략적 협력 강화의 첫 번째 조치로 군 수뇌부의 정기적 전화 통화를 통해 한반도 안보 현안을 논의하고 공조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북한의 기습 도발 등 한반도 위기 상황 시 한중 군 수뇌부 간에 즉각적인 ‘핫라인(직통전화)’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양국은 군 수뇌부 간의 정례적인 통화 채널로 기존 군 당국 간 전화 회선을 이용할지, 양국 국방부 장관이나 합참의장과 총참모장을 잇는 별도의 ‘핫라인’을 개설할지는 후속 협의를 진행해 결정하기로 했다. 양측은 또 한국군과 중국군의 대(對)테러 및 화력시범 훈련을 상호 참관하는 방안을 계속 협의하는 한편 서해상에서 실시해 온 인도적 차원의 수색 구조훈련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2001년 이후 중단된 한국 합참과 중국 총참모부 간 소장급 회의(전략협의체)를 정례화하고 아덴 만 해역 등에서 활동 중인 양국군 파병부대 간 공조와 유엔평화유지활동(PKO) 등에도 협조하기로 했다. 정 의장은 회담에서 “북한이 우리 정부와의 대화를 거부한 채 최근 동해상으로 단거리 발사체를 발사하는 등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면서 “한국은 북한이 도발할 시 단호히 응징할 것”이라는 뜻을 팡 총참모장에게 전달했다. 또 정 의장은 현재의 한반도 안보 상황에서 북한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중국의 역할을 강조했다고 군 관계자는 전했다. 팡 총참모장은 이에 공감을 표명하고 “동북아 평화 안정을 위해 한반도 비핵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향후 ‘북한의 핵 포기를 압박하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동참하겠다’는 중국 군부의 의사가 공식 확인된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 군 관계자는 “(중국 군 수뇌부의 비핵화 의지 확인은) 이번 회담의 핵심 성과 중 하나”라고 말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 201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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