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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나아가 누군가는 일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수 있다. ‘일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김혜진 작가(42)의 새 장편소설 ‘오직 그녀의 것’(문학동네)은 ‘업(業)’이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파고들었다. 전작 ‘딸에 대하여’에서 무연고 노인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를 그렸던 김 작가는 이번엔 출판사 편집자의 삶을 응시했다.소설은 주인공 홍석주가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 입사한 20대 시절부터, 주간(主幹)의 자리에 오르는 50대까지의 시간을 좇는다. 동아일보 서면 인터뷰에 응한 김 작가는 “홍석주라는 인물에게 책을 만드는 일이 어떤 의미가 되어 가는지를 따라가보고 싶었다”며 “20대의 일과 30대의 일, 40대의 일, 50대의 일은 분명 다르다. 한 사람이 어떤 일을 만나고, 그 일을 하는 동안 어떻게 달라지고 바뀌어 가는지를 보여주려면 긴 시간을 펼쳐놓은 형식이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소설에는 딱히 드라마틱한 사건이 펼쳐지진 않는다. 대신 긴 세월 자신에게 주어진 글을 살피고 다듬는 이의 묵묵함과 성실함에 초점이 맞춰진다. 새내기 시절 홍석주가 관찰한 선배 편집자의 모습은 이렇게 묘사된다.“하얀 와이셔츠 위에 황톳빛 가죽 토시를 낀 채 종일 뭔가를 읽고 또 읽는 사람.”“여러 권의 책을 껴안듯 들고 있는 그의 오른손엔 군데군데 펜 자국이 남아 있었고, 흑연과 잉크가 묻은 손날은 거무스름했다.”작가는 이 과정에서 노동의 가치를 섬세하게 포착해냈다. 일에 충실한 사람에 대한 잔잔한 묘사에서 묘하게 일렁이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김 작가는 “자신의 일에 대한 묵묵함과 성실함. 현실에서도 그런 태도로 일하는 사람을 만나면 참 좋다”며 “용기도 얻고 위로도 되고, 내 마음가짐이나 태도도 돌아보게 된다”고 했다.소설의 주된 배경은 1980, 90년대다. 이 시절 편집 현장이 세밀하게 복원돼 있어, 그 시대 특유의 감성을 엿볼 수 있다. 인터넷 검색 한 번이면 세계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지금과 달리, 당시엔 자료를 손수 찾아야 했다. 매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자료 요청 ‘쪽지’가 돌면, 편집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료실로 향했다. 백과사전, 연감, 도감, 전집이 빽빽하게 꽂힌 서가에서 제2차 세계대전 연표와 조선시대 복식을 기록한 책을 찾았다. 원하는 자료가 없으면 인접 단어를 더듬으며 우회적으로 접근했다.이 고된 과정은 소설 속 홍석주의 선배가 말하듯 “책에 실린 정보는 틀림이 없어야 하니까”라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한 문장, 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며칠을 매달리는 일이 당연했던 시절. 속도와 효율이 앞서는 지금과 달리, 그때의 일터에는 느리지만 단단한 정확함이 있었다.이 책을 누구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지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이제 막 일을 배우기 시작한 새내기가 읽으면 얼마간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처음 일을 시작할 땐 모두가 예외 없이 서툴고 어설프니까요. 지금 자신이 하는 일에 생각이 많아진 사람들이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일과 나 사이에 놓인 어떤 시간을 견뎌야 만나게 되는 순간도 있을 테니까요.”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16일 강원 횡성군 공근면에서 ‘금계작은도서관’이 다시 문을 열었다. 2009년 처음 개관한 이 도서관은 면 내에 유일한 문화시설이기도 하다. 새 단장을 위해 문을 닫았다가 다시 지역민들 품에 돌아온 것. 리모델링은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KB국민은행의 후원을 받아 진행했다.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과 KB국민은행은 2008년부터 전국 각지 문화 소외지역에 도서관을 세워왔다. 이번이 130번째, 올해 다섯 번째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269㎡(약 81.4평) 규모로 원목 제작 서가와 열람공간, 어린이공간, 정보검색 코너 등을 갖췄다. 1층에는 아동도서가 빼곡한 어린이자료실과 키즈존, 2층에는 종합자료실과 열람실이 자리했다. 장서는 총 1만1248권으로 늘었다. 이날 도서관 개관식에서 김영수 학담리 이장(67)은 “외손주와 친손주가 모두 이 도서관을 이용했는데, 더 편리하고 새로워져 앞으로도 가족이 함께 찾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귀촌한 심재영 도서관 명예관장(68)은 “부족했던 열람공간이 넓어져 책과 함께 머물고 싶은 공간이 됐다”고 말했다. 이날 공근초 학생 18명도 새롭게 단장한 도서관을 찾아와 책을 읽었다. 5학년 강나윤 양은 “숙제를 하거나 소설, 만화책을 읽으러 자주 왔는데, 집중하기 좋은 공간으로 바뀌었다”며 “앞으로 더 자주 오고 싶다”고 말했다. 개관식에는 김명기 횡성군수와 최위집 KB국민은행 북부지역영업그룹 대표, 김수연 목사 등 관계자와 지역 주민 50여 명이 참석했다. 김 군수는 “공근면의 새로운 문화 중심지로서 아이들과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의 장소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 대표도 “세대를 잇고 마을 이야기가 쌓이는 문화의 둥지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16일 강원 횡성군 공근면에서 ‘금계작은도서관’이 다시 문을 열었다. 2009년 처음 개관한 이 도서관은 면 내에 유일한 문화시실이기도 하다. 새단장을 위해 문을 닫았다가 다시 지역민들 품에 돌아온 것.리모델링은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KB국민은행의 후원을 받아 진행했다.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과 KB국민은행은 2008년부터 전국 각지 문화 소외지역에 도서관을 세워 왔다. 이번이 130번째, 올해 다섯 번째 도서관이다.도서관은 269㎡(약 81.4평) 규모로 원목제작 서가와 열람공간, 어린이공간, 정보검색 코너 등을 갖췄다. 1층에는 아동도서가 빼곡한 어린이 자료실과 키즈존, 2층에는 종합자료실과 열람실이 자리했다. 장서는 총 1만1248권으로 늘었다.이날 도서관 개관식에서 김영수 학담리 이장(67)은 “외손주와 친손주가 모두 이 도서관을 이용했는데, 더 편리하고 새로워져 앞으로도 가족이 함께 찾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귀촌한 심재영 도서관 명예관장(68)은 “부족했던 열람공간이 넓어져 책과 함께 머물고 싶은 공간이 됐다”고 말했다.이날 공근초 학생 18명도 새단장한 도서관을 찾아와 책을 읽었다. 5학년 강나윤 양은 “숙제를 하거나 소설, 만화책을 읽으러 자주 왔는데, 집중하기 좋은 공간으로 바뀌었다”며 “앞으로 더 자주 오고 싶다”고 말했다.개관식에는 김명기 횡성군수와 최위집 KB국민은행 북부지역영업그룹 대표, 김수연 목사 등 관계자와 지역주민 50여 명이 참석했다. 김 군수는 “공근면의 새로운 문화 중심지로서 아이들과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의 장소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 대표도 “세대를 잇고 마을 이야기가 쌓이는 문화의 둥지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김 목사는 “앞으로도 지역 곳곳에 작은도서관을 만들고, 조성 후에도 신간 도서와 독서문화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프랑스 문학 전문 출판사 ‘레모(les mots)’는 1인 출판사다. 번역가 출신인 윤석헌 대표가 프로젝트별로 외부 번역가, 디자이너, 편집자와 협업해 책을 낸다. 그는 일찌감치 작가 아니 에르노의 가치를 알아보고 ‘얼어붙은 여자’를 번역 출간했는데, 에르노는 그 뒤인 202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201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최신작 ‘기억으로 가는 길’도 지난해 윤 대표의 손에서 국내 출간됐다. 윤 대표는 “그냥 제가 좋아하는 작가니까 낸 것이고, 에르노 역시 노벨상을 받을 거라 예상한 건 아니었다”며 “이 분야 책은 잘 팔리는 일이 드물어서, 그렇게 계산하고 기획하면 힘들다”고 했다.최근 문학 출판시장에선 ‘언더독’들의 존재감이 부쩍 커지고 있다. 1인 또는 소규모 출판사들이 활발히 활동하며 생태계의 다양성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국내 출간 작품 6권이 모두 ‘4인 규모’ 알마출판사에서 나왔던 것도 그런 흐름 속에서 벌어진 일로 풀이된다. 소규모 출판사들은 특정 문화권, 작가, 감성에 초점을 맞춘 ‘니치(틈새) 문학’에서 활약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문학 출판 시장에선 다품종 소량 생산 경향이 확대되고 있다. ‘2024 한국출판연감’에 따르면 문학 분야 도서 발행 부수는 2015년 1561만 부에서 지난해 962만 부로 38.4% 감소했지만, 발행 종수는 같은 기간 1만899종에서 1만4118종으로 오히려 29.5% 증가했다. 작품 하나가 수십만 부 팔리는 일은 예전에 비해 줄어들었지만 독특한 개성을 가진 다양한 작품이 출간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대가들의 작품 가운데 덜 알려진 것을 발굴해 주목받기도 한다. 1인 출판사 ‘녹색광선’은 알베르 카뮈의 ‘결혼·여름’, F 스콧 피츠제럴드의 ‘행복의 나락’ 등을 소개했는데,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 ‘패배의 신호’(2022년)는 아이유의 가방에 있던 것이 알려지며 ‘깜짝’ 중쇄를 찍었다. 소규모 출판사들은 홍보 마케팅을 위해 소셜미디어나 유튜브, 북클럽 등 ‘취향의 커뮤니티’를 적극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레모’의 경우 마케팅 예산이 거의 없는 대신에 윤 대표가 서점에서 북토크나 독서 모임을 열며 독자와 소통한다. 해외에서도 소규모 출판사들의 약진은 두드러진다. 올해 부커상 국제부문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최종 후보 6편 모두가 독립출판사에서 나온 작품이었다. 세계적 문학상이 점차 비영어권·비주류 작가의 실험성과 다양성에 주목하는 경향과 맞물리며, 소규모 출판사들이 대형사를 능가하는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이에 따라 대형 출판사들도 산하 브랜드나 시리즈를 출범하며 몸집을 가볍게 하는 추세다. 문학동네 계열사 난다의 해외문학 전문 브랜드 ‘모호’, 국내 초역작을 주로 소개하는 을유문화사의 ‘암실문고’ 등이 대표적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1인 출판사 대부분은 오래 버티지 못하는 실정이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곳들이 한국 출판의 기반을 지탱하고 있다”며 “이들은 문화의 다양성을 떠받치는 인프라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인류가 말을 처음 길들인 건 기원전 제4천년기(기원전 4000년∼기원전 3001년)로 추정된다. 발견되는 말의 잔해가 이 시기 들어 급증했기 때문. 말은 탁월한 힘과 속력을 지녔지만 사람을 피하려는 본능이 강했다. 이에 운송에 쓰기 시작한 건 기원전 제3천년기(기원전 3000년∼기원전 2001년) 서아시아의 목축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말 등’에 올라타는 것도 오래 걸렸다. 아시아 서부에선 말을 길들인 뒤에도 한동안 말타기가 재주를 부리는 등의 특별한 경우에만 행해졌다고 한다. 기원전 제2천년기(기원전 2000년∼기원전 1001년) 중반 고대 시리아 도시 ‘마리’의 왕이 받은 편지에는 “말 말고, 잡종 동물이나 더 위엄 있는 전차를 탈 것”을 권하는 대목이 나온다. 실제 전투나 세밀한 제어가 필요한 상황에서 말타기는 위험하고 신뢰하기 어려웠음을 보여준다. 말을 문명을 재편한 주역으로 조명한 책이다. 미국 콜로라도대 조교수이자 고고학 큐레이터인 저자는 몽골 초원에서 말의 뼈와 유전자를 연구한 현장 고고학자이기도 하다. 저자는 고대 유전체 분석과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같은 과학기술을 통해 안장과 등자 같은 혁신적 도구가 언제 등장했는지, 또 길들여진 말이 어떻게 각 문명에 편입됐는지 등을 꼼꼼하게 따진다. 기원전 제2천년기에 접어들며 말 관련 기술은 급속히 발전했다. 새로운 형태의 재갈은 단순한 코걸이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말을 제어할 수 있게 했다. 금속 재갈은 중요한 기술 혁신이었다. 고삐를 당기면 재갈이 말의 입속 민감한 부위에 압력을 가해, 기수가 말과 더 세밀하게 소통할 수 있었다. 기원전 15세기∼기원전 14세기로 추정되는 이런 재갈의 흔적은 이집트, 튀르키예, 아르메니아 등지에서 발견된다. 이에 따라 말타기는 유라시아 전역에서 핵심 군사 전술로 자리 잡았다. 기원전 9세기경 아시리아의 벽화에는 처음으로 기병대가 제대로 묘사됐다. 이 부조에는 두 명이 한 조를 이뤄 움직이는 초기 기병의 모습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한 명이 두 마리의 고삐를 잡고 다른 한 명은 활을 쐈다. 아직 안장이나 등자가 없었기에 그들은 다리의 힘만으로 몸을 지탱하며 싸워야 했다. 말타기의 발전은 고대 세계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꿨다. 분쟁이나 질병, 생태적 재난에 직면했을 때 말을 탄 사람들은 누구보다 빨리 이동할 수 있었다. 말타기라는 ‘혁신’을 통해 이전까지 멀리 떨어져 있던 지역들이 긴밀히 연결됐고, 때로는 달갑지 않은 접촉도 잦아졌다. 유라시아에서 ‘세계화’의 첫 징후가 나타난 셈이다. 초원과 사막의 길이 열리며, 이후 동아시아 왕조들과 서구 문명 사이를 잇는 교역과 외교의 길이 형성됐다.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 말은 일상에서 멀어진 존재가 됐다. 일부 농사나 관광, 스포츠 외에는 보기 힘들다. 그러나 말의 흔적은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다. 산업화 이후의 운송 인프라는 말이 남긴 기술과 도로 체계, 전통 위에 세워졌다. 책을 읽다 보면 인간이 말을 길들이는 과정에서 오히려 인간 자신이 말이라는 존재에 길들여졌음을 알게 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우울증 치료 과정을 담은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쓴 백세희 작가(사진)가 사망했다. 향년 35세.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16일 경기 고양시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에서 백 작가가 뇌사 장기기증으로 심장, 폐, 간, 양쪽 신장을 기증해 5명의 생명을 살리고 떠났다고 17일 밝혔다. 뇌사에 이르게 된 경위는 알려지지 않았다.고인은 동국대 문예창작과 졸업 후 출판사에서 약 5년 동안 근무한 뒤 2018년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출간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기분부전장애(경미한 우울증이 지속되는 상태)를 겪으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나눈 대화를 담아낸 책으로 방탄소년단(BTS) RM이 추천하는 등 화제를 모았다. 2019년 내놓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2’까지 국내외에서 100만 부 이상 판매됐으며 약 25개국에 번역 수출됐다.고인은 어려운 사람을 보면 먼저 다가가 도움을 전하는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가족은 전했다. 동생 다희 씨는 “아무도 미워하지 못하는 착한 마음을 알기에, 이제는 하늘에서 편히 잘 쉬길 바란다”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잊으랴 잊을 수 없는 재작년 8월 9일 아침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덥다고 옷을 벗어 버리지 말고 방공굴에 동생 수송이를 데리고 들어가라 하셨습니다.” 1953년 출간된 소학생 작문집 ‘내가 겪은 이번 전쟁’에서 전주 풍남국민학교 2학년 학생이 쓴 글의 일부다. 해당 작문집은 아동문학가 윤석중(1911∼2003)이 주도해 6·25전쟁에 관한 어린이 글 3000여 편 중 22편을 엄선해 수록했다.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아이를 등에 업은 채 피란길에 나선 가족의 삽화 등도 담겼다. 김정은 국립중앙도서관 사서는 “당시 물자가 열악하다 보니 고문헌보다 종이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그런 상황에서도 수필 대회를 열고 끊임없이 책을 발간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국립중앙도서관이 15일 개관 80주년을 맞아 특별전 ‘나의 꿈, 우리의 기록, 한국인의 책장’을 개최했다. 서울 서초구 본관에서 선보인 이번 전시는 중앙도서관이 80년 동안 수집·보존해 온 국가 장서 중 200여 종의 자료를 23개 주제별로 구성했다. 국보나 보물, 초판본 등 희귀 자료가 상당하다. 이날 도서관 측은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동의보감’(1613년) 원본을 16년 만에 공개했다. 보물인 ‘석보상절’(1447년)과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1481년) 원본이 일반에 공개된 건 처음이다. 불교 경전인 석보상절은 최초의 한글 금속활자 인쇄본으로, 구텐베르크 성경보다도 8년 앞선다. ‘궁핍한 시대의 시인들’ 책장에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1934년), 서정주의 ‘화사’(1941년) 등 교과서로 접했던 근대 시인들의 원본 시집을 소개했다. 1936년 백석 시인이 100부 한정으로 자비 출판했던 시집 ‘사슴’의 복각본도 눈길을 끈다. 윤동주조차 이 시집을 구할 수 없어 도서관에서 빌려 필사본을 만들 정도로 당대의 애독서였다. 전시관 한편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롤) 구단인 T1 소속 선수들이 직접 선정한 애독서를 담은 ‘T1의 책장’도 마련됐다. 이상혁(페이커) 선수는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인스타 브레인’을 책장에 담았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잊으랴 잊을 수 없는 재작년 8월 9일 아침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덥다고 옷을 벗어 버리지 말고 방공굴에 동생 수송이를 데리고 들어 가라 하셨습니다.”1953년 출간된 소학생 작문집 ‘내가 겪은 이번 전쟁’에서 전주 풍남국민학교 2학년 학생이 쓴 글의 일부다. 해당 작문집은 아동문학가 윤석중(1911~2003)이 주도해 6·25전쟁에 관한 어린이 글 3000여 편 중 22편을 엄선해 수록했다.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아이를 등에 업은 채 피난길에 나선 가족의 삽화 등도 담겼다. 김정은 국립중앙도서관 사서는 “당시 물자가 열악하다 보니 고문헌보다 종이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그런 상황에서도 수필 대회를 열고 끊임없이 책을 발간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국립중앙도서관이 15일 개관 80주년을 맞아 특별전 ‘나의 꿈, 우리의 기록, 한국인의 책장’을 개최했다. 서울 서초구 본관에서 선보인 이번 전시는 중앙도서관이 80년 동안 수집·보존해온 국가장서 중 200여 종의 자료를 23개 주제 별로 구성했다. 국보나 보물, 초판본 등 희귀자료가 상당하다. 이날 도서관 측은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동의보감’(1613년) 원본을 16년 만에 공개했다. 보물인 ‘석보상절’(1447년)과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1481년) 원본이 일반에 공개된 건 처음이다. 불교 경전인 석보상절은 최초의 한글 금속활자 인쇄본으로, 구텐베르크 성경보다도 8년 앞선다.‘궁핍한 시대의 시인들’ 책장에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1934년), 서정주의 ‘화사’(1941년) 등 교과서로 접했던 근대 시인들의 원본 시집을 소개했다. 1936년 백석 시인이 100부 한정으로 자비 출판했던 시집 ‘사슴’의 복각본도 눈길을 끈다. 윤동주조차 이 시집을 구할 수 없어 도서관에서 빌려 필사본을 만들 정도로 당대의 애독서였다. 전시관 한편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롤) 구단인 T1 소속 선수들이 직접 선정한 애독서를 담은 ‘T1의 책장’도 마련됐다. 이상혁(페이커) 선수는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인스타 브레인’을 책장에 담았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착각하지 말아요. 여러분은 손흥민 팬이에요. 토트넘 팬 아니에요.” 이 한마디로 국내 축구 팬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았던 영국인이 있다. 여러 방송과 유튜브 등에서 활약하는 영국인 피터 빈트 씨(42)다. 어머니가 한국인인 그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손 선수 소속팀이던 토트넘 홋스퍼의 ‘숙적’ 아스널 팬이다. “한국엔 토트넘 팬이 많으니 말조심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가 내놓은 응수는 두고두고 회자됐다. 빈트 씨의 발언은 최근 다시 주목받았다. 손 선수가 토트넘을 떠나 미국 로스앤젤레스(LA) FC로 이적하며 ‘진실(?)’이 드러났다는 이유에서다. 2일 서울 서초구에서 만난 그는 “영국에선 워낙 라이벌 팀을 놀리는 게 일상이니까, 그렇게 화제가 될 줄 몰랐다”며 웃었다. “처음엔 진짜 살벌한 DM(다이렉트 메시지)이 많이 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피터 말이 맞았네’ 하는 반응이 더 많아졌어요.” 그런 빈트 씨가 지난달 영국에 대한 ‘사이다’ 같은 시선이 담긴 책 ‘지극히 사적인 영국’(틈새책방)을 펴냈다. 그는 자국을 포장하거나 미화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영국인의 절반 이상은 저처럼 노동자 계층이에요. 왕족이나 귀족은 우리에게도 완전히 다른 세상 이야기죠.” 영국은 모순의 나라다. ‘신사의 나라’로 불리지만 동시에 ‘훌리건의 본고장’이다. 왜 영국인들은 매너를 중시하면서도 축구장에선 난동꾼이 될까. “저도 그래요. ‘축구 보는 피터’와 ‘아빠 피터’는 다릅니다. 경기 보는 90분 동안은 다 내려놓고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이에요. 주중 내내 일한 사람들이 경기장에 가서 마음껏 욕하고 술 마시고 소리치는 거죠. 일종의 ‘매너 있는 나라의 일시적 탈출구’랄까요.” 빈트 씨는 “사람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고 어디나 앞뒤가 안 맞는 부분들이 있다”며 “영국은 그게 좀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고 했다. “버킹엄궁이 있는 나라에서 푸드뱅크를 이용하는 사람도 많아요. 불편하고 느리고 답답한 점도 많죠. 오래된 시설들도 그렇고. 그런데 그게 ‘진짜 영국’입니다. 그런 걸 경험하고도 좋아하면, 비로소 영국을 사랑하게 되는 거죠.” 한국 생활도 어느덧 17년째. 그는 한국도 “모순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당연히 힘들거나 부끄러운 면이 있는데 그걸 숨기고 긍정적인 것만 강조하면 매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봤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의 연예계와 교육이다. “K팝 스타가 되는 과정엔 엄청난 역경이 있잖아요. 우울증으로 생을 마감한 스타들도 있죠. ‘빌보드 넘버원을 이뤘지만, 누군가는 고통받는다. 이런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얘기해야 현실을 말하는 거죠. 숨긴다고 모르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인공지능(AI) 덕에 한국어 기사도 해외에서 쉽게 번역해 읽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숨기면 ‘뭔가 속이려는 건가’ 의심이 생길 수도 있죠.” 한국에서 중1, 초4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인 빈트 씨. ‘빡센’ 사교육도 “부모로서 진짜 아니다 싶을 때가 있다”고 했다. “돈도 많이 들고, 학생들 정신 건강 문제도 있잖아요. 그 역시 부끄러워하며 감추는 건 좋지 않아요. 물론 지금 한국이 좋은 이미지니까 굳이 부정적인 얘길 해야 할까 싶을 수 있어요. 그럼 언제가 ‘적기’일까요? 영화 하나 더 터지고 나면? 지금처럼 긍정적인 분위기일 때 ‘동시에’ 문제도 거론해야 진짜 한국의 모습이 보여요.” 다만 빈트 씨는 “한국이 싫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는 걸 강조했다. “저도 영국을 얼마나 사랑하는데요. 그래도 책에서 엄청 깠어요(웃음). 사랑하는 마음과 비판적인 시선은 함께 있을 수 있어요. 그걸 솔직히 드러내는 게, 개인도 편하고 나라도 좀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요?”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한 학생이 엘리베이터를 타며 문득 궁금해했다. “사람들이 한쪽으로 몰리면 엘리베이터의 무게 중심이 바뀔까?” 또 다른 학생은 점자(點字)를 보며 궁금해했다. “이 점자가 정말 제대로 되어 있을까?”작은 질문이었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직접 조사하고, 실험하고, 전문가에게 물었다. 그 결과 교내 16곳의 점자 오류를 찾아냈고, 학교는 이를 즉시 수정했다. 엘리베이터라는 일상적 공간이 물리학과 언어 탐구의 현장이 된 순간이었다.이는 최근 경기 용인외대부고에서 있었던 일이다. 박인호 교감은 신간 ‘세상을 바꾼 위대한 질문들’(글로세움)에서 이 사례를 소개하며 “이 학생들은 당연하고 친숙한 것에 용기 있게 질문을 던졌고, 세상의 한 부분을 바꿔냈다”며 “이것이 교과서 밖에서 일어나는 진짜 배움”이라고 강조했다.박 교감은 나아가 하버드부터 프린스턴까지, 미국 명문대 20곳의 캠퍼스를 찾아 입학사정관들을 인터뷰했다. 챗GPT가 1초 만에 정답을 알려주는 시대에, 이들 대학이 ‘정답을 외우는 교육’ 대신 ‘좋은 질문을 던지는 법’을 어떻게 가르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그가 만난 입학사정관들의 메시지는 놀라울 만큼 일관됐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이 원하는 인재는 정답을 외운 학생이 아니라, 남들이 생각지 못한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사람이었다. 하버드 입학사정관은 이렇게 말했다.“우리가 보고 싶은 건, 배움이 당신의 삶과 가치에 어떻게 연결되는가입니다.”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대신할 수 없는 건 바로 그 ‘연결의 힘’이다.책은 장마다 ‘The Great Question’ 코너를 두어 각 대학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던진 질문을 함께 담았다. 프린스턴의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할까?”라는 질문으로 양자역학의 문을 열었고, MIT의 노엄 촘스키는 “우리는 누구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가?”라고 되물으며 학문의 지형을 바꿨다. 시카고대의 자유 인문학, 컬럼비아의 저널리즘 정신, 다트머스의 AI 연구까지 모든 혁신의 출발점에는 기존 질서를 의심한 질문이 있었다.박 교감은 수십 년간 학생들을 지켜본 교육자로서, 공부의 본질을 이렇게 설명했다. 공부가 어떻게 즐거움으로 바뀌는지를 일깨워준다.“많은 학생이 공부를 힘들어하는 이유는 끊임없는 비교 때문이다. 비교의 독을 해독하는 특효약은 호기심이다. 진짜 궁금한 것 앞에서는 남과의 비교가 무의미해진다. 오직 알고 싶다는 욕구만이 남는다. 그때 공부는 놀이가 되고, 탐험이 되며, 모험이 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소설 ‘사탄탱고’ 속 문장들그는 요람과 관의 십자가에 결박되어 경련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런 그는 결국 냉혹한 즉결심판을 받고 어떤 계급 표시도 부여받지 못한 채, 시체를 씻는 사람들과 웃으면서 부지런히 피부를 벗겨내는 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끝내 그는 마지막 무기처럼 지녀온, 안식처로 한 번 더 돌아가고픈 희망마저 빼앗기고 말 것이다.‘우리는 이 세계라는 돼지우리 속에서 태어나 갇혀 있지. …그리고 오물 속에 뒹구는 돼지들처럼 뭐가 어찌된 건지도 모르고 눈앞에 어른거리는 젖꼭지를 향해 아우성치지. 사료 통으로 빨리 가려고, 밤이 되면 침대로 돌아가려고 허둥대는 거야.’》“하늘에선 무얼 더 기다리시는 걸까? 어째서 이 소돔과 고모라를 가만히 보고 계시기만 할까?” 1980년대 헝가리의 해체된 집단농장. 오갈 데 없는 몇몇 주민만 마을에 남아 극도의 가난을 버티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이들은 술에 진탕 취해 “오물 속에 뒹구는 돼지들처럼” 탱고를 춘다. 9일(현지 시간) 올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헝가리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대표작 ‘사탄탱고’(1985년)의 한 장면이다. 국내엔 지금까지 6권이 번역 출간된 그의 소설은 질식할 듯 말이 쏟아지고 이미지의 향연이 펼쳐진다. 이에 그의 작품이 생경한 독자라면 진입 장벽이 상당히 높을 수도 있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문학 세계의 문을 여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특징들을 전문가들과 함께 살펴봤다.● 묵시록과 카프카 스웨덴 한림원은 그를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로 “묵시록적 공포 속에서 예술의 힘을 재확인하게 만든다”고 했다. 그런데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소설에서 ‘종말’은 폭발처럼 닥치는 ‘사건’이 아니다. 이미 시작된 뒤 끝없이 이어지는 ‘상태’다. 이는 작가의 관심이 파국으로 향하는 길에 있지 않고, 이미 끝나버린 세계에서 인간이 얼마나 지리멸렬하게 버티는가에 있기 때문이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올 2월 미국 ‘예일 리뷰’와 가진 인터뷰에서 “묵시록은 신약성서의 ‘최후의 심판’처럼 단 한 번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라며 “오래전부터 계속돼 온 과정이며 …진행 중인 심판”이라고 했다. ‘사탄탱고’도 마찬가지다. 종말은 느리고 고통스러운 과정으로 그려진다. 마을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서 그 속을 배회한다.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2016년 집필) ‘서왕모의 강림’(2008년) 등 작가의 주요작을 우리말로 옮긴 노승영 번역가는 “그의 소설에서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운명 또는 신의 뜻의 작용을 받는다는 점에서 마치 대본이 이미 쓰인 연극의 등장인물 같다”고 설명했다. 크러스너호르커이에게 다가가는 또 다른 키워드는 ‘카프카’다. 작가가 “카프카를 읽지 않을 때는 카프카를 생각한다. 그러지 않을 때는 그를 그리워한다”고 말할 정도다. 조원규 번역가는 “‘사탄탱고’는 탈출의 전망이 부재하는 고통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분명 카프카적 상황을 그린 소설”이라며 “카프카가 단독자를 그린다면, 크러스너호르커이는 군상을 등장시킨다”고 했다.● 의외의 유머가 곳곳에 포진작가는 ‘만연체 문학의 대가’로 불리기도 한다. 긴 문장과 단락 없는 서술은 그를 표현하는 대표적 특징이다. 2021년 작 ‘헤르슈트 07769’는 400쪽 분량에 마침표가 단 한 번뿐이다. 작가는 미 문학잡지 ‘게르니카’와의 인터뷰에서 “일상 상황을 관찰해 보면, 사람들은 서로를 설득하려는 광적 욕망으로 항상 마침표 없이 얘기하지 않느냐”며 “내가 구사하는 이른바 장문은 어떤 사상이나 개인적 이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구어에서 나온다. 내게는 짧은 문장이 (오히려) 인위적이고 꾸민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렇다고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의 작품은 ‘반전 유머’로도 유명하다. 작중 인물들이 진지한 상황에서 방귀를 뀌거나 여드름을 터뜨리는 등 ‘피식’ 웃게 만드는 장면이 곳곳에 있다. 노 번역가는 “지레 겁을 먹으면 한없이 무거운데, 사실 유머도 많다”며 “등장인물의 말과 생각, 머리 굴리는 모습이 재미있게 표현돼서 그냥 편하게 읽어도 재미있다”고 소개했다.어떤 책부터 먼저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스웨덴 한림원의 추천을 참고할 만하다. △사탄탱고 △저항의 멜랑콜리(1989년) △서왕모의 강림 △헤르슈트 07769 순이다. 앞선 3권은 이미 국내 출간돼 있고, ‘헤르슈트 07769’는 내년에 선보일 예정이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올해 노벨 문학상은 ‘묵시록 문학의 대가’로 불리는 헝가리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71·사진)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은 9일(현지 시간) “묵시록적 공포 속에서 예술의 힘을 재확인하게 만드는, 강렬하고도 예지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헝가리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건 2002년 케르테스 임레(1929∼2016) 이후 23년 만이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노벨 문학상 발표 직후 현지 라디오를 통해 “매우 기쁘면서도 평온하고, 긴장된다”며 “오늘은 내가 노벨상 수상자가 된 첫째 날”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앞서 2월 스웨덴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선 “상을 받으면 놀라울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주목이라고? 오늘 스톡홀름의 한 약국에 갔더니 아무도 내가 누군지 몰라봤다”고 했다. 1954년 헝가리 줄러에서 태어난 작가는 부다페스트대에서 문학을 공부한 뒤 유럽 전역은 물론 미국과 일본, 중국, 몽골 등에 체류하며 작품을 썼다. 2015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으며, 2018년 ‘세상은 계속된다’로 같은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폐허와 종말이라는 주제를 특유의 기이하고 아름다운 문체와 형식으로 담아내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한림원은 “카프카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로 이어지는 중유럽 전통의 위대한 서사 작가”라며 “그의 세계는 동양으로 시선을 돌려 보다 사색적이고 정교하게 조율된 어조를 취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2018년 국내에도 출간된 대표작 ‘사탄탱고’(1985년)는 헝가리 남동부의 버려진 집단농장 마을이 배경인 소설이다.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체제에 유린당하고 끝내 고통의 굴레에 갇히는 과정을 그려냈다. 1994년 헝가리 영화감독인 터르 벨러가 동명의 흑백영화를 제작했으며, 상영 시간이 7시간 반(439분)에 이른다. 2015년 맨부커상 심사위원장인 영국 작가 머리나 워너는 “크러스너호르커이는 강렬하면서도 독특한 음역을 가진 몽상가적 작가”라며 “겁나고 낯설면서 동시에 소름 끼치도록 웃긴 장면을 만들어 낸다”고 평했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당시 수상 소감에서 작품이 지닌 종말론적 성향에 대해 “아마도 나는 지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독자들을 위한 작가인 것 같다”고 했다. 국내에 그의 소설은 ‘사탄탱고’를 비롯해 ‘저항의 멜랑콜리’(1989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2016년) 등 6권이 번역 출간돼 있다.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등을 번역한 노승영 번역가는 “인류 역사를 전체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작가”라고 했다. 국내 출간된 작가의 소설을 모두 펴낸 출판사 알마의 안지미 대표는 “가장 큰 특징은 만연체 문장으로, 소설 ‘라스트 울프’는 하나의 문장으로 이뤄졌을 정도”라고 소개했다. 헝가리 문학 전문가인 김보국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수석연구원은 “서사를 철학적으로 풀어내는 무게감이 있고, 탄탄하면서도 깊게 심리를 파고드는 작가”라고 설명했다. 노벨 문학상 상금은 1100만 크로나(약 16억5000만 원)다. 관례에 따르면 노벨상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개최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올해 노벨 문학상은 ‘묵시록 문학의 대가’로 불리는 헝가리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71)에게 돌아갔다.스웨덴 한림원은 9일(현지 시간) “묵시록적 공포 속에서 예술의 힘을 재확인하게 만드는, 강렬하고도 예지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헝가리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건 2002년 케르테스 임레(1929~2016) 이후 23년 만이다.크러스너호르커이는 노벨 문학상 발표 직후 현지 라디오를 통해 “매우 기쁘면서도 평온하고, 긴장된다”며 “오늘은 내가 노벨상 수상자가 된 첫째 날”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앞서 2월 스웨덴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선 “상을 받으면 놀라울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주목이라고? 오늘 스톡홀름의 한 약국에 갔더니 아무도 내가 누군지 몰라봤다”고 했다.1954년 헝가리 줄러에서 태어난 작가는 부다페스트대에서 문학을 공부한 뒤 유럽 전역은 물론 미국과 일본, 중국, 몽골 등에 체류하며 작품을 썼다. 2015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으며, 2018년 ‘세상은 계속된다’로 같은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크러스너호르커이는 폐허와 종말이라는 주제를 특유의 기이하고 아름다운 문체와 형식으로 담아내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한림원은 “카프카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로 이어지는 중유럽 전통의 위대한 서사 작가”라며 “그의 세계는 동양으로 시선을 돌려 보다 사색적이고 정교하게 조율된 어조를 취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2018년 국내에도 출간된 대표작 ‘사탄탱고’(1985년)는 헝가리 남동부의 버려진 집단농장 마을이 배경인 소설이다.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체제에 유린당하고 끝내 고통의 굴레에 갇히는 과정을 그려냈다. 1994년 헝가리 영화감독인 터르 벨러가 동명의 흑백영화를 제작했으며, 상영 시간이 7시간 반(439분)에 이른다.2015년 맨부커상 심사위원장인 영국 작가 머리나 워너는 “크러스너호르커이는 강렬하면서도 독특한 음역을 가진 몽상가적 작가”라며 “겁나고 낯설면서 동시에 소름 끼치도록 웃긴 장면을 만들어 낸다”고 평했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당시 수상 소감에서 작품이 지닌 종말론적 성향에 대해 “아마도 나는 지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독자들을 위한 작가인 것 같다”고 했다.국내에 그의 소설은 ‘사탄탱고’를 비롯해 ‘저항의 멜랑콜리’(1989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2016년) 등 6권이 번역 출간돼 있다.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등을 번역한 노승영 번역가는 “인류 역사를 전체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작가”라고 했다. 국내 출간된 작가의 소설을 모두 펴낸 출판사 알마의 안지미 대표는 “가장 큰 특징은 만연체 문장으로, 소설 ‘라스트 울프’는 하나의 문장으로 이뤄졌을 정도”라고 소개했다.헝가리 문학 전문가인 김보국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수석연구원은 “서사를 철학적으로 풀어내는 무게감이 있고, 탄탄하면서도 깊게 심리를 파고드는 작가”라고 설명했다.노벨 문학상 상금은 1100만 크로나(약 16억5000만 원)다. 관례에 따르면 노벨상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개최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배우 이정재(53·사진)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필름 앳 링컨 센터(FLC·Film at Lincoln Center)에서 수여하는 공로상인 ‘찰리 채플린 어워드’를 수상했다. 이 배우의 소속사인 아티스트컴퍼니는 “3일(현지 시간) 싱가포르에서 열린 ‘찰리 채플린 어워드 아시아’ 시상식에서 이 배우가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찰리 채플린 어워드는 미 뉴욕에 있는 FLC가 1972년 전설적인 배우 찰리 채플린이 망명 생활을 마치고 미국에 귀국한 것을 기념해 제정한 상이다. 첫해 채플린이 받은 뒤로 세계 영화계에 공헌한 인물들에게 수여되고 있다. 이 상은 2018년부터 아시아 부문이 신설돼 해마다 수상자를 발표해 왔다. 지금까지 장이머우(張藝謨) 감독과 배우 량차오웨이(梁朝偉) 등 중화권 영화인들이 주로 받았으며, 한국인이 받은 건 처음이다. 이 배우는 “존경하는 영화인이자 예술가, 아티스트인 찰리 채플린의 이름으로 주는 상을 받으니 긴장되고 무게감 때문에 더 떨린다”며 “아시아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좋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 배우는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인 인기를 끈 뒤, 해당 작품으로 2022년 제74회 미 에미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영화 ‘스타워즈’의 스핀오프 드라마인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콜라이트(The Acolyte)’에 출연하기도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출판사 ‘에디토리알 화랑(Editorial Hwarang)’이 근래 발간한 번역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표지에 온통 한글이 가득하다. 양복을 입은 남성이 담배를 피우는 삽화를 실었는데, 담배 연기 속을 ‘거리’ ‘진통’ ‘낙조’ 같은 한글이 채우고 있다. 서예가가 쓴 한글을 스캔해서 만들었는데, 해당 출판사는 현지에서 한국 작가들의 책을 출간할 때 꼭 표지에 한글 제목을 넣는다고 한다.최근 K콘텐츠가 글로벌 히트를 치면서 한글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해외 출판사들도 한국 문학 등을 소개하며 한글을 현지 언어보다 더 크게 쓰거나 전면에 배치하는 경우가 잦다. 한국 화장품이나 음식 포장지에 한글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9일 한글날이 579돌을 맞은 가운데, 한글의 디자인적인 주목도가 글로벌 시장에서 갈수록 높아지는 모양새다.● “한글 써야 현지에서 좋아해”출판사 에디토리알 화랑의 경우엔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단어를 한글로 표지 곳곳에 넣기도 한다. 4일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 응한 니콜라스 브라에사스 대표는 이에 대해 “특히 30세 이하 현지 독자들에겐 한글의 인지도가 매우 높다”며 “서점에 진열된 수천 권의 책 가운데서도 한글은 세련된 차별성을 부여한다”고 설명했다.프랑스의 ‘드크레센조(Decrescenzo)’ 출판사도 지난해 프랑스인이 한국의 사진 작품을 해설한 에세이 ‘빛을 향한 여행’ 프랑스판에서 ‘골목’이란 글자를 표지 전면에 바둑판식으로 배치했다. 프랑크 드크레센조 대표는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유서 깊은 의미를 지닌 골목의 가치를 강조하고 싶었다”며 “표지엔 한국어의 고유한 문자 체계인 한글을 담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여겼다”고 했다.‘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등을 번역 출간한 브라질 출판사 인트린세카(Intr´inseca)의 레베카 볼리테 편집국장 역시 “브라질은 K드라마, K팝 팬층이 두꺼워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크다”며 “한국 작가들의 책이 K컬처 팬들에게 쉽게 인식될 수 있도록 원서 표지의 요소를 가급적 유지한다”고 했다.해외에서 작품의 현지화(Localization) 대신 ‘한글화(Hangeulization)’가 새로운 마케팅 전략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간 서구 출판계가 우리 책을 번역 출간할 때 ‘오리엔탈리즘’(서양이 동양을 바라보는 왜곡된 인식과 태도)에 의존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상황과는 사뭇 달라진 것이다. 이전에는 책 내용과 무관하게 여성이나 한복 차림의 인물 등을 표지에 사용하곤 했다. 브라에사스 대표는 “이제는 한글의 사용이 한국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훨씬 더 진정한 방법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한글, 트렌드와 감각의 문화적 언어”해외로 수출되는 각종 소비재에서도 한글은 강력한 브랜드 정체성(BI)을 발휘하고 있다. 농심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측과 지식재산권(IP) 사용 계약을 맺고 지난달부터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는 신라면 패키지에 캐릭터와 한글을 노출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비비고’ BI를 바꾸면서 영문 표기만 있던 로고에 한글을 추가했다. LG생활건강도 미국과 캐나다, 일본 시장에서 화장품 브랜드 ‘강남글로우(Gangnam Glow)’에 한글을 병기하고 있다.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장은 “한글은 직선과 동그라미라는 간결한 도형에서 뿜어져 나오는 예술적·디자인적 가치가 매력을 끈다”며 “한글 자체가 가진 기하학적 예술성에 K팝이나 K드라마의 인기가 합쳐지면서 한글은 ‘트렌드’와 ‘감각’을 상징하는 문화적 언어로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소설가 구병모(49)는 2009년 ‘위저드 베이커리’로 데뷔할 때부터 매일 10∼20쪽씩 사전 읽기가 취미였다. 27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라, 들고 다니기도 벅찬 두꺼운 탁상용 사전이었다. ‘파과’ 같은 낯선 단어 제목의 작품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그의 힘이 어쩌면 이런 사전 탐독에서 나온 건 아닐까. 지난달 펴낸 신작 장편소설 ‘절창’(문학동네)도 마찬가지다. 예령(豫鈴·시각을 알리는 종), 오언(烏焉·모양이 비슷해 틀리기 쉬운 글자), ‘분요(紛擾·요란스럽다)’ 등 낯선 단어의 향연이다. 독자 후기를 보면 “사전을 찾아가며 읽었다”는 반응들이 나온다. 지난달 29일 동아일보 전화 인터뷰에 응한 구 작가는 “독자들께서 계속 사전을 찾게 만든다는 점에서 죄송하기도 하다”면서도 “이번에 조금 고생해서 사전을 찾다 보면 다른 책을 읽을 때는 걸림돌이 전혀 없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소설은 ‘상처를 만지면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을 다뤘다. 사이코메트리(Psychometry·초감각능력)의 매개가 ‘상처’라는 발상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사이코메트리라는 장르적 장치를 통해 ‘타인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 나아가 ‘타인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 내고자 한다. 구 작가는 “우리는 타인이란 텍스트를 늘 오독하지만, 계속 실패할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읽어내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며 “아마 그건 인간의 본능일 것”이라고 했다. 보통 이런 장르에서 주인공은 경찰 수사를 돕거나 사회적으로 유용한 방향으로 능력을 활용한다. 하지만 구 작가는 이런 설정을 거꾸로 뒤집는다. 만약 초능력이 철저히 나쁜 일에만 쓰인다면? 그 능력을 가진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소설가들이 글을 쓰며 답을 찾는 경우는 드물어요. 오히려 함께 고민하고 싶어 계속 질문을 소설로 던지는 것 같아요. 만약 제가 ‘답을 찾았다, 유레카!’ 한다면, 그 순간 이후로는 오히려 글을 쓸 동력을 잃지 않을까요? 하하.” 실은 제목인 ‘절창(切創)’도 낯선 단어다. ‘예리한 날에 베인 상처’라는 뜻이다. 역시 일상에선 잘 쓰이지 않는다. 그는 “처음 출판사에 제목을 가져갔을 때, 절창(絕唱)인 줄 알고 ‘명창’이나 ‘서편제’가 먼저 떠오른다는 반응이 있었다”고 떠올렸다. 마침 원고를 넘길 당시는 그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 ‘파과’가 개봉한 직후였다. 구 작가는 “파과라는 단어 역시 일상에서 흔히 쓰이지 않지만 대중적으로 알릴 수 있었던 경험이 있으니, 절창도 충분히 자리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탁상용 사전이 2000쪽이라고 하면, 우리가 평생 존재조차 알지 못한 채 지나치는 낱말이 훨씬 더 많잖아요. 아예 쓰이지도 못하고 덮이는 말들이 너무 아까워요.” 낯선 단어가 독서의 장벽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구 작가의 팬들은 사전을 찾아가며 소설을 읽는다. 어떤 독자는 단어장을 따로 만들어 정리해 가며 읽는다고 한다. 구 작가는 “제 방식이 마음에 드는 독자들이 꾸준히 모이고 있는 것 같다”며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계속 피리를 불고 있고, 그 소리가 마음에 드는 분들이 따라오는 느낌”이라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제39회 인촌상 시상식이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30일 열렸다. 인촌상은 일제강점기에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경성방직과 고려대를 설립한 민족 지도자 인촌 선생의 유지를 이어 나가기 위해 1987년 제정됐다.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이사장 이진강)와 동아일보사는 인촌 선생의 탄생일인 10월 11일에 맞춰 매년 시상식을 진행해 왔으나, 올해는 한가위 연휴를 고려해 일정을 앞당겨 30일 진행됐다. 이날 수상자는 △해밀학교(교육) △신달자 시인(언론·문화)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인문·사회) △김범준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과학·기술)로 각각 상장과 메달, 상금 1억 원을 받았다. ▶수상자 공적은 본보 9월 8일자 A8면 참조 이진강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인촌상 수상자들은 인촌 선생께서 민족의 독립과 산업 발전을 위해 토대를 쌓은 교육, 언론·문화, 인문·사회, 과학·기술 분야에서 남다른 노력으로 탁월한 공적을 쌓았다”며 “올해 수상자들은 감당하기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뛰어난 공적을 이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울림을 준다”고 밝혔다. 김도연 인촌상 운영위원장은 수상자 선정 경위를 보고했다. 운영위원회는 외부 심사위원 16명을 위촉하고 후보군을 추린 뒤 6∼8월 수차례 회의를 열고 최종 수상자를 확정했다. 가수 인순이로 널리 알려진 김인순 이사장(68)이 2013년 강원 홍천군에 설립한 해밀학교는 ‘흐린 하늘이 갠 뒤 밝게 빛나는 배움터’라는 이름이 말해 주듯 다문화 학생들의 미래를 위한 학교다. 다양한 이주 배경의 학생들이 같은 교실에서 학습하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교사들이 다국어 자동 번역 시스템을 개발하는 등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혁신적 교육도 선도하고 있다. 2023년 강원도 최초로 구글 레퍼런스 스쿨에 선정됐다. 김 이사장은 시상식에서 감격에 겨워 눈시울을 붉히며 “제 사춘기가 힘들고 길었는데,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 옆에서 열심히 살면 아이들도 자기가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살다 보니 인촌상을 받게 됐다”고 했다. 이어 “앞으로도 사회에서 늘어나는 다문화 아이들 생각하면서 봉사하겠다. 이런 길이 제가 받은 사랑을 갚고 나라를 위한 길이라 생각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신달자 시인(82)은 1964년 여성지 ‘여상’에 시 ‘환상의 방’이 당선됐고, 박목월 시인의 추천을 받아 문단 활동에 나섰다. 여성 특유의 심미감을 감각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삶의 고뇌를 섬세한 감성으로 표현하며 여성성을 바탕으로 시 세계를 확장했다. 어려운 삶의 모습을 따뜻한 온기로 표현하며 공감을 얻었고, 한국의 대표적 여성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신 시인은 “제가 상상도 못한 인촌상을 받는다는 비현실적인 소식에 눈이 젖어왔다”며 “나이가 들더라도 감수성과 통찰력을 더욱 연마하면서 ‘이 빠진 연장’이 되지 않기 위해 맡은 일에 대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병연 교수(63)는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시기에 일어나는 경제 변화 등을 연구하는 ‘이행기 경제학’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북한으로 연구 영역을 확장해 북한 경제와 국가 간 경제 제도의 비교연구라는 비주류 분야를 소신 있게 연구했다. 비교경제 분야 최고학술지에 8편 등 총 50편에 가까운 논문을 게재했다. 2017년 영문 서적 ‘Unveiling the North Korean Economy’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김 교수는 “민족의 큰 스승이자 선각자셨던 인촌 선생을 기리는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게 된다”며 “현재 한반도 상황을 보면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부끄러운 마음도 들지만 어려운 문제를 풀려는 노력 자체를 인정해 주시는 위로와 격려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범준 교수(49)는 2008년 최고 권위 학술지인 ‘Physical Review Letters’에 이리듐 산화물에서의 새로운 부도체 상태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 전자 사이의 강한 상호작용으로 인해 일반적 물리 법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강상관 물질 중 이리듐 산화물에 대한 연구 분야를 개척했다. 최근 세계 최초로 스핀 액정 상을 관측해 양자컴퓨팅과 초전도체 등 미래 혁신기술 분야 경쟁력 향상에 기대감도 낳고 있다. 또 비탄성 공명산란 연구 기법을 최초로 도입한 대형 장비를 포항 가속기연구소에 구축했다. 김 교수는 “교육과 문화의 힘으로 미래를 열고자 했던 인촌 김성수 선생님의 뜻이 인재를 길러 나라의 미래를 밝히는 데 있었다는 점을 떠올리니 수상이 무겁고 따뜻한 당부로 느껴진다”며 “앞으로도 연구실, 강의실 그리고 국가 연구시설을 잇는 든든한 다리를 놓겠다”고 밝혔다. 이날 시상식엔 수상자들과 가족 등 250여 명이 참석했다. 축하 공연은 동아국악콩쿠르 입상자 위주로 구성된 퓨전 국악공연팀이 펼쳤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2025년도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가 스웨덴 한림원에서 9일 오후 1시(한국 시간 오후 8시)경 발표된다. 지난해 한강 작가가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상을 받은 뒤 발표되는 만큼 올해 수상자에 대한 관심도 적지 않다. 올해 노벨 문학상 관련 주요 정보와 논점을 문답(Q&A)으로 정리했다. ―올해 수상자는 정해졌나. “전례에 따르면 여름에 선정한 최종 후보 5명 가운데 수상자 1명으로 압축하는 과정이 현재 진행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노벨 문학위원회는 6∼8월 최종 후보자 5명의 작품을 낭독하고 평가한다. 9월엔 각 후보자의 문학적 기여와 강점을 두고 토론을 벌인다. 일반적으로 10월 초에 최종 투표를 실시하고, 여기서 과반을 득표한 인물이 수상자로 확정된다.” ―최종 후보 5명은 어떻게 뽑나.“보통 노벨 수상자가 발표되고 다음 달인 11월에 차기 노벨 문학상 후보 추천을 요청하는 공식 서한을 세계에 발송한다. 지난해 한 작가가 수상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추천은 역대 노벨 문학상 수상자와 문학·언어학 교수, 각국 작가협회장 등 수백 명이 맡는다. 한 작가 역시 참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추천을 바탕으로 5명의 후보를 추린다. 자기 추천은 허용되지 않으며, 후보 명단은 50년 동안 기밀로 유지된다.” ―올해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들은 누구인가. “해마다 해외 베팅 사이트들은 노벨 문학상 잠재적 수상자를 대상으로 시장을 연다. 현재 ‘나이서오즈’에서 호주 작가 제럴드 머네인(1위), 헝가리 소설가인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2위), 일본 문학의 상징적 존재 무라카미 하루키(4위)가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수상한 한 작가는 당시 베팅 상위권에 없었던 만큼, 어디까지나 참고 지표일 뿐이다.” ―최근 노벨 문학상의 경향이나 특징이 있나.“2017년 스웨덴 한림원의 내부 성추문으로 2018년 시상이 취소된 적이 있다. 이후 한림원은 여성 위원 비율을 높이고 투명성을 강화해왔다. 현재 ‘문학위원회’도 남성 2명, 여성 3명으로 여성이 더 많다. 2019∼2024년 수상자 6명 가운데 여성은 3명으로 정확히 절반이란 점도 눈길을 끈다. 성별 순서도 남-여-남-여-남-여로 이어졌다.” ―선정에 국적이나 정치적 고려도 작용할까. “알프레드 노벨은 유언에서 ‘수상자의 국적과 상관없이 가장 가치 있는 인물에게 상을 수여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실제 심사 과정에서 국가적·정치적 요소가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고 하긴 어렵다. 50년 비밀 유지가 해제된 보고서에 따르면 특정 국가가 특혜 받는 듯한 인상을 피하기 위해 상을 조정하기도 했다. 1901년 쉴리프뤼돔(프랑스)이 수상한 뒤, 이듬해 바로 프레데리크 미스트랄(프랑스)에게 상을 주는 데 주저했다. 1948년엔 윈스턴 처칠의 후보 지명이 ‘문학적 의미가 아닌 정치적 의미를 띨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됐다.” ―노벨 문학상은 성취에 대한 ‘보상’일까, 덜 알려진 작가에 대한 ‘격려’일까. “위원회 내부에서도 자주 제기되는 문제라고 한다. 1947년 위원회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두고 망설인 것도 같은 이유였다. 한 위원은 ‘그의 성공을 고려하면 상금이 무의미한 제스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헤밍웨이가 마침내 노벨 문학상을 받은 건 ‘노인과 바다’(1952년)를 발표한 뒤인 1954년이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2005년까지 100년 이상 운영됐던 ‘예천 삼강나루 주막’(사진)이 국가민속문화유산이 된다. 국가유산청은 “경북 예천군에 있는 예천 삼강나루 주막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 예고했다”고 29일 밝혔다. 삼강나루 주막은 1900년경부터 2005년까지 100년 이상 운영돼 온 주막이다.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의 초가집으로, 주막 주인이 거처하는 주모방과 접객을 위한 방, 부엌과 마루로 구성돼 있다. 낙동강과 금천, 내성천이 만나는 나루터에 지어졌으며, 1934년 갑술년 대홍수를 겪었지만 크게 바뀌지 않고 본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나루와 주막의 역사와 민속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1944년 연인을 모델로 그린 ‘여인의 흉상’(사진)이 26일(현지 시간) 홍콩 크리스티 가을 경매에서 약 301억 원에 낙찰됐다. 아시아 경매 시장에서 팔린 피카소 작품 가운데 최고가다. 이날 경매의 하이라이트였던 ‘여인의 흉상’은 17분 가까이 경합을 벌인 끝에 추정가(8600만∼1억600만 홍콩달러)를 훌쩍 넘어서 1억6700만 홍콩달러(약 301억 원)에 낙찰됐다. 크리스티 홍콩 측은 “수수료를 포함한 최종가는 1억9675만 홍콩달러에 이른다”며 “아시아에서 팔린 피카소 작품 중 최고가 기록”이라고 밝혔다. ‘여인의 흉상’은 피카소의 다섯 번째 연인이자 대표적 모델이었던 도라 마르를 그린 작품이다. 피카소와 마르는 1936년부터 약 9년간 교제했으며, 이 시기 피카소는 마르를 모델로 한 작품을 60점 이상 남겼다.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1937년 작 ‘우는 여인’이다. 이번에 낙찰된 ‘여인의 흉상’은 두 사람의 교제 말기인 1944년 3월 5일에 제작됐다. 눈을 크게 뜬 마르의 진홍색 드레스와 칠흑 같은 머리카락이 대조를 이룬다. 가로 65cm, 세로 80.8cm 크기의 유화로 그림 왼쪽 하단에 ‘Picasso’라는 서명이 새겨져 있다.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그려진 이 작품은 전쟁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피카소의 창작 정신을 보여준다. 개인이 25년 넘게 소장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낙찰자 역시 공개되지 않았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