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민

김소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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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소민 기자입니다.

somin@donga.com

취재분야

2025-11-24~2025-12-24
문학/출판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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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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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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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가정3%
국제사고3%
  • 퓰리처상 응우옌 “박찬욱 ‘올드보이’ 기이한 폭력미, 내 작품에 스며”

    “소설 ‘동조자’를 집필할 때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보며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베트남계 미국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54)은 4일 화상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간 북베트남 스파이를 그린 소설 ‘동조자’로 2016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은 박찬욱 감독 연출로 미국 HBO 드라마로 제작돼 지난해 방영됐다. 소설가와 감독, 두 거장이 서로의 작업에 영향을 주고받은 셈이다.응우옌은 “‘동조자’를 드라마로 각색할 때 프로듀서가 ‘어떤 감독을 생각하고 있느냐’고 묻기에 주저 없이 박찬욱 감독이라고 했다”며 “‘올드보이’의 시각적 스타일, 메시지, 창의성, 기이한 폭력, 모든 것이 ‘동조자’를 쓰는 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응우옌의 신간 에세이 ‘두 얼굴의 남자’(민음사)가 최근 국내 번역 출간됐다. 집 안에서는 베트남 이민자 부모의 삶을, 집 밖에서는 미국 사회를 관찰하며 ‘이중간첩’처럼 살아온 경험을 담은 책이다. 그는 베트남에서 태어나 1975년 사이공 함락 뒤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형은 오바마 전 대통령의 주치의를 지낸 의사이고, 본인은 미국 문학 교수로 자리 잡는 등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자리할 수 있는지를 끝없이 묻는 성장기를 보냈다고 한다. 부모의 가게에는 ‘베트남인들 때문에 또 다른 미국인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낙서가 붙기 일쑤였으며, 청소년기에 접한 영화와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모두 백인이었다. 그는 “정치적인 문학으로 좋은 문학을 만들기는 매우 어렵다”면서도 “제 목표 중 하나가 그것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했다.“요즘은 저의 12살 아들과 조지 오웰의 ‘1984’를 읽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주제에 예술성을 담았죠. 토니 모리슨(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흑인 여성)도 마찬가집니다. 이런 작품들이 제게는 영감을 줍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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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본집으로 재개봉하는 ‘봄날은 간다’ ‘8월의 크리스마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2001년 개봉한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의 각본집이 지난달 24일 출간됐다.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유지태)와 라디오 PD 은수(이영애)의 만남과 이별을 그린 작품으로, 실제 영화에 사용된 최종본 각본이 공개된 건 24년 만에 처음이다. 최근 ‘봄날은 간다’처럼 옛날 영화와 드라마를 각본집 형태로 펴내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단순히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의 언어와 감정을 책으로 간직하려는 수요가 커지며 출판으로도 이어지는 분위기다. 허 감독의 데뷔작인 ‘8월의 크리스마스’(1998년)도 같은 날 스튜디오오드리에서 각본집으로 나왔다. 지금껏 공개되지 않았던 촬영 현장 컷과 감독 인터뷰를 담았다. 앞서 4월에는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2005년)이 개봉 20주년을 맞아 마음산책에서 각본집으로 출간됐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사전 모금 당시 목표 금액의 200%를 가뿐히 넘기며 출간으로 이어졌다. 올해 초에는 ‘내 이름은 김삼순’(2005년)이 20년 만에 처음 무삭제 대본집으로 나왔다. 김선아와 현빈 배우의 인터뷰와 삭제 장면까지 포함한 완전판으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에서 모금 당시 목표치의 3719%를 달성하며 주목받았다. 마음산책 관계자는 “책을 ‘굿즈’로 생각하는 독자가 늘면서 추억의 영화와 드라마를 각본집으로 소장하려는 독자가 늘고 있다”며 “‘달콤한 인생’ 각본집을 낼 당시에는 영화 속 명대사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를 활용한 열쇠고리 굿즈를 함께 만들기도 했다”고 말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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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도 쇼츠처럼…

    크기는 48절 수첩보다 가로로 살짝 긴 정도. 두께도 겨우 마흔 장 남짓. 지난달 22일 출간된 이미상 작가의 신작 단편소설 ‘셀붕이의 도’는 얼핏 소설책이란 느낌도 들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이 정도 분량의 단편이라면 7, 8편은 모아야 소설집으로 나오지만 해당 소설은 단 한 편만 갖고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출판사 위즈덤하우스가 2022년 11월부터 시작한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이 약 3년 만인 지난달 22일 100번째 책인 ‘셀붕이의 도’를 펴냈다. 국내 출판계에서 이전에도 단편 시리즈 출간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위픽은 3년을 꾸준하게 이어 오며 단편 시리즈의 상업적 가치를 제고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위픽은 특유의 격자무늬 표지에 소설의 대표적인 문장을 실어 MZ세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위즈덤하우스의 김소연 스토리팀장은 “요즘 독자들은 책을 자기 표현의 수단으로 여긴다”며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췌해 문장 단위로 책을 소비하곤 한다. 대표 문장을 표지에 넣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위픽을 구매하는 독자들은 20대 여성 비율이 약 4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편 시리즈는 독자들의 진입 장벽은 물론이고 작가의 진입 장벽도 함께 낮췄다. 소설가가 단편을 모아 소설집을 내기 위해선 평균적으로 2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단편 하나로도 책을 내기에 부담이 덜하다. 그 때문에 논픽션 작가나 시인, 에세이스트 등도 소설 등단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실제로 지금까지 위픽을 통해 첫 소설을 발표한 이들이 10명 가까이 된다. 지난달 16일 세상을 떠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백세희 작가도 앞서 6월 위픽을 통해 단편소설 ‘바르셀로나의 유서’를 발표했다. 비교적 가벼운 행보로 책을 낼 수 있다 보니 다양성과 시의성도 갖출 수 있다. 매주 한 권꼴로 출간하며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것. 100권의 저자가 한 명도 겹치지 않을 정도로 참여 폭도 넓다. 김 팀장은 “여러 난관이 있었지만 끈질기게 오다 보니 독자들의 인정도 받은 것 같다”며 “독자의 외연이 넓어지면 문학에 대한 관심도 그만큼 커질 수 있다. 어떤 시도든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짧아도 한 권으로 완성되는 출판 포맷은 조금씩 확산되는 추세다. 지난해 6월부터 시작한 교보문고 단편문학 시리즈 ‘달달북다’도 12권째를 맞았다. 다산북스 역시 9월에 소설 중·단편 시리즈인 ‘다소’를 런칭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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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폰만 보는 가족식사… ‘무반응 금지게임’으로 말문을

    유튜브를 켠다. 뭘 검색하려고 했더라? 모르겠다. 그냥 떠 있는 영상이나 보자.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고개를 들어보니, 엄마도 똑같은 자세다. 이어폰을 꽂고 각자 스마트폰 기기 속으로 빠져든 개별 소비형 가족. 문득 묻게 된다. 우리 집 거실, 이대로 괜찮을까. 15년간 초등교사로, 이후 10년간 전국의 학교를 다니며 교육 전문가로 활동해 온 저자가 ‘도파민 가족’의 문제를 가족 시스템의 차원에서 짚어낸다. 소셜미디어, 온라인 쇼핑, 업무 메신저 알림에 길든 부모가 “폰 내려놔!”라고 말하는 모습은 아이에게 이중 신호로 다가온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10세 미만 아동의 하루 평균 스마트폰 이용 시간은 1시간 15분, 10대는 2시간 41분이었다. 반면 30, 40대는 4시간을 웃돌았다. 부모가 걱정하는 아이의 도파민 중독은 사실 ‘가족의 거울’이다. 도파민 가족의 대화는 대개 비슷하다. 아이가 “엄마, 오늘 말이야” 하고 말을 꺼내면 “잠깐만, 지금 바빠”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아빠, 나 있잖아”라고 부르지만, 아빠는 여전히 화면을 보고 있다. 이런 장면이 반복될수록 아이는 말을 줄이고 질문을 포기하며, 대신 영상 속 캐릭터에 반응하는 혼잣말을 늘려 간다. 말을 했는데 아무도 듣지 않는 경험을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가장 먼저 배워 버린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도파민이 채운다. 화면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끊임없이 반응해 주기 때문이다. 내가 누른 ‘좋아요’ 하나에 맞춰 추천 탭이 바뀌고, 다음 영상이 자동 재생된다. 거절당할 일이 없으니 안전하다. 그러나 그 반복이 뇌에 각인될수록 아이는 ‘말보다 스크롤이 안전하다’는 생각의 회로를 강화한다. 그 결과 생기는 게 ‘감정 문해력’의 저하다. 감정 문해력은 단순히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이해하고 언어로 바꾸는 힘이다. 아이가 감정을 설명하지 못한다면 감정을 표현하고 조절한 경험이 적어서다. 스마트폰은 아이에게 너무 많은 감정을 대신 경험시킨다. 영상 속 인물이 울고 웃고 사랑하고 화내는 걸 지켜보며 아이는 마치 자신도 그 감정을 통과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실험 결과, 며칠간 스크린을 완전히 차단하고 대면 상호작용만 한 아이들은 상대방의 표정을 읽고 감정을 해석하는 능력이 유의미하게 향상됐다. 감정도 언어처럼, 사용해야 자란다. 저자는 회복의 열쇠를 ‘옥시토신’에서 찾는다. 도파민이 즉각적인 쾌감의 호르몬이라면, 옥시토신은 느리고 지속적인 관계에서 분비되는 신뢰의 호르몬이다. 저자는 고등학생인 두 아이와 함께 실천한 몇 가지 회복 연습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하루를 마치며 각자 1분 정도 감상을 녹음해 공유하는 ‘가족 음성 일기’가 있다. “오늘은 좀 우울했어”처럼 짧고 솔직하게 시작한다. 저녁 식탁에서는 ‘무반응 금지 게임’을 한다. 누군가 말하면 반드시 어떤 반응이든 해야 한다. ‘아빠 말에 무조건 반응하기’ 같은 미션을 정하면 오락성이 더해진다. 이렇게 간단한 실천만으로도 가족의 공기가 달라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경청의 신호가 오갈 때, 도파민 대신 옥시토신이 흐르기 시작한다. 결국 ‘도파민 가족’의 회복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복원에서 비롯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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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박중훈 “첫 오디션때 팬티만 입고 섀도복싱에 막춤 췄죠”

    가정통신문엔 ‘주의 산만’이란 말이 따라다녔다. 선생님 흉내 내길 좋아하고, 기타 치며 노는 걸 즐기던 학생. 모범생 형과 비교돼 늘 “죄지은 마음”으로 지냈다. 하지만 아이는 연기에서 재능을 찾았고, 1980, 90년대 극장가를 휩쓴 최고의 스타가 됐다. 배우 박중훈(59)이다. 영화 인생 40년 만에 첫 에세이 ‘후회하지마’(사유와공감)를 펴낸 박 배우를 29일 만났다.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라디오 스타’ ‘우묵배미의 사랑’ 등 셀 수 없이 많은 히트작을 낸 배우지만, 책 집필은 생애 처음이다.“1985년 11월 11일 배우가 됐으니 올해로 꼭 40년이 됐네요. 돌아보니 덜컥거린 적도 많았지만 그래도 잘 살았구나 싶어요. 글 쓰며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 들어 혼자 눈물도 흘렸습니다.”책엔 1986년 데뷔작 ‘깜보’의 캐스팅 비화부터, 1989년 ‘바이오맨’을 찍다가 마취 풀린 악어에게 물릴 뻔한 일화 등 여러 후일담이 담겨 있다. 보이는 대로 글 역시 더없이 유쾌하고 솔직하다.“영화를 40년 하며 느낀 게 있어요. 대중은 이 사람이 진심인지 아닌지를 금방 알아본다는 거예요. 책 쓰면서도 진심을 다했어요. 적당히 축소하거나 과장하면 백일하에 드러나거든요.” 그의 어릴 적 별명은 ‘박극성’. 더 솔직하자면 ‘박지랄’이었다고 한다. 대학 1학년 때 충무로 영화사들을 찾아다니며 수제 명함을 돌렸다. 합동영화사엔 “배우로 안 써도 괜찮으니 영화사에 나오게만 해 달라”고 졸라 다음 날부터 출근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신문을 돌리고, 책상을 닦고, 바닥을 쓸었다. 그렇게 사환처럼 4, 5개월 보내며 얻은 오디션 기회. 그는 실베스터 스탤론을 흉내낸다며 팬티만 입고 섀도복싱을 했다. 입으로 ‘츳츳’ 소리를 내며 1시간 넘게 원맨쇼. 막춤, 노래, 성대모사까지. 이황림 감독은 웃느라 눈물이 맺힐 정도였다. 다음 날 감독은 주인공 중 하나인 ‘제비’ 역할에 만장일치로 뽑혔다고 했다. 이후 박 배우는 누구보다 화려한 행보를 이어갔다. 24세에 백상예술대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흥행 보증수표’로, 어떤 해는 출연 제안만 100편이 넘었단다. 책엔 영화계를 빛낸 이들과의 인연도 빼곡하다. 1985년 합동영화사에서 연출부로 일하던 청년 강우석은 훗날 ‘투캅스’를 함께 만든 감독이 됐다. ‘깜보’로 같이 데뷔한 중학교 3학년 김혜수, 평생의 선배 안성기에 대한 애정도 묻어난다.“안 선배님을 뵌 시간이 우리 아버지 뵌 시간보다 더 길어요. 아버지는 제가 30대 초반에 돌아가셨으니까요. 안 선배님은 40년을 가까이서 뵀잖아요. ‘라디오 스타’나 ‘투캅스’ 같은 작품을 하나 더 찍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요.”‘내 깡패 같은 애인’을 연출한 김광식 감독은 추천사에서 “그를 빼놓고는 한국 영화사의 특정 시기를 설명할 수 없다”고 썼다. 한국 영화를 ‘방화’라 부르며 폄하하던 시절을 넘어, 검열과 제약에도 경찰 비리를 풍자한 ‘투캅스’로 새 시대의 문을 열었던 그. 2001년 국내 배우 최초로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 ‘찰리의 진실’에도 출연했다. 40년 영화 인생은 이제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내년, 오랜만에 영화 촬영에 들어간다.“앞으로 ‘틈틈이’가 아니라 ‘꾸준히’ 배우로 살 거예요. 최고의 작품은 항상 ‘차기작’이니까요.”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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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박중훈, 데뷔 40년 만의 첫 에세이…“최고의 작품은 늘 다음 작품”

    가정통신문엔 늘 ‘주의가 산만하다’는 말이 따라다녔다. 선생님 흉내 내길 좋아하고, 기타 치며 노는 걸 즐기던 학생. 공부 잘하는 형과 비교돼 언제나 “죄지은 마음”으로 지냈다. 하지만 아이는 연기에서 재능을 찾았고, 1980~1990년대 극장가를 휩쓴 최고의 스타 배우가 됐다. 바로 박중훈(59)이다.영화 인생 40년 만에 첫 에세이 ‘후회하지마’(사유와공감)를 펴낸 박 배우를 29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라디오 스타’ ‘황산벌’ ‘우묵배미의 사랑’ 등 한 손에 꼽을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히트작을 낸 배우지만,  책 집필은 살면서 처음이다.박 배우는 “1985년 11월 11일에 배우가 됐으니 올해로 꼭 40년”이라며 “돌아보니 덜컥거린 적도 많았지만 그래도 잘 살았구나 싶다. 글을 쓰며 그 순간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어 혼자 눈물도 났다”고 했다. 책에는 1986년 데뷔작 ‘깜보’의 캐스팅 비화를 시작으로, 1989년 영화 ‘바이오맨’을 찍다가 마취 풀린 악어에게 물릴 뻔한 일화까지 여러 생생한 후일담이 담겨 있다. 보이는 모습대로 글 역시 더없이 유쾌하고 솔직하다.“영화를 40년 하면서 느낀 게 하나 있어요. 대중은 이 사람이 진심인지 아닌지를 금방 알아본다는 거예요. 이 책을 쓰면서도 진심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적당히 축소하거나 과장하면 오히려 백일하에 드러나거든요.” 그의 어릴 적 별명은 ‘박극성’. 더 솔직히 말하자면 ‘박지랄’이었다고 한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충무로 영화사들을 찾아다니며 집 전화번호를 적은 수제 명함을 돌렸다. 합동영화사엔 “배우로 안 써도 괜찮으니 영화사에 나올 수만 있게 해달라”고 부탁해 다음 날부터 출근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신문을 돌리고, 책상을 닦고, 바닥을 쓸었다.그렇게 사환처럼 4~5개월을 오가며 얻은 오디션 기회. 그는 실베스터 스탤론을 흉내 내겠다며 팬티 한 장만 입고 섀도복싱을 했다. 입으로 ‘츳츳’ 소리를 내며 1시간 넘게 이어간 원맨쇼. 막춤, 노래, 성대모사까지. 이황림 감독은 너무 웃느라 눈가에 눈물이 맺힐 정도였다. 다음 날 감독은 주인공 중 하나인 ‘제비’ 역할에 만장일치로 뽑혔다고 전했다.이후 그는 누구보다 화려한 성공 행보를 이어갔다. 24살에 백상예술대상 남우주연상을 받고 ‘흥행 보증수표’가 됐다. 어떤 해는 출연 제안만 100편 넘게 받았단다. 책엔 한국영화사를 빛낸 인물들과의 인연도 빼곡하다. 1985년 합동영화사에서 연출부로 일하던 청년 강우석은 훗날 ‘투캅스’를 함께 만든 감독이 됐다. ‘깜보’로 같이 데뷔한 중학교 3학년 김혜수, 평생의 선배 안성기에 대한 애정도 묻어난다.“안 선배님을 뵌 시간이 우리 아버지 뵌 시간보다 더 길어요. 아버지는 제가 30대 초반에 돌아가셨으니까요. 안 선배님은 40년을 가까이서 뵀잖아요. ‘라디오 스타’나 ‘투캅스’ 같은 작품을 하나 더 찍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요.”‘내 깡패 같은 애인’을 연출한 김광식 감독은 추천사에서 “그를 빼놓고는 한국영화사의 특정 시기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고 썼다. 한국 영화를 ‘방화’라 부르며 폄하하던 시절을 넘어, 검열과 제약을 이겨내고 경찰 비리를 풍자한 ‘투캅스’로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었다. 2001년엔 국내 배우 최초로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 ‘찰리의 진실’에도 출연했다.“첫눈을 밟는다는 건 양면성이 있죠. 밟으면 절벽일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처음 밟는 설렘. 저는 늘 설렘 쪽에 방점을 찍었던 것 같아요. 계속 설레는 일을 찾아서 해온 인생이었죠.”40년 영화 인생은 이제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내년, 꽤 오랜만에 영화 촬영에 들어간다.“앞으로 ‘틈틈이 하겠다’가 아니라, 꾸준히 배우로 살아갈 거예요. 최고의 작품은 늘 ‘다음 작품’이니까요.”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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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즈 거장 ‘키스 자렛 트리오’ 드러머 잭 디조넷 별세

    세계적인 재즈 뮤지션인 ‘키스 자렛 트리오’의 드러머 잭 디조넷이 26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주 킹스턴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3세.미 뉴욕타임스(NYT)는 유족 대표 조안 클랜시를 인용해 “고인이 병원에서 울혈성 심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27일 전했다.1942년 미 시카고에서 태어난 고인은 피아니스트로 음악을 시작했으나, 드럼으로 전향해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1966년 색소폰 연주자 찰스 로이드가 이끄는 4중주단에서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과 함께 활동하며 재즈계의 주목을 받았다. 1970년대부터 ‘뉴 디렉션스(New Directions)’ 등 실험적인 그룹을 이끌며 리더이자 작곡가로 두각을 나타냈다.디조넷은 1983년 자렛, 베이시스트 게리 피콕과 함께 ‘키스 자렛 트리오’를 결성해 수십 년간 활동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키스 자렛 트리오는 재즈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그룹 중 하나로, 어쿠스틱 재즈 트리오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인은 최근 현지 인터뷰에서 트리오의 장수 비결에 대해 “우리는 언제나 곡을 처음 연주하는 것처럼 대한다”며 “예상치 못한 것을 준비하고, 그것을 따른다”고 말했다.2012년 재즈계 최고의 영예로 여겨지는 미 국립예술기금 선정 ‘재즈 마스터’에 이름을 올렸다. 2010년과 2013년 키스 자렛 트리오로 내한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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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월드푸드 된 중화요리… 레시피는 ‘무한 변주’

    중국요리의 적응력은 실로 경이롭다. 서울은 물론이고 뉴욕과 바그다드, 스톡홀름, 나이로비, 퍼스, 리마까지. 세계 어디를 가든 중국요리를 마주치게 된다. 거의 모든 나라에는 ‘현지화된’ 중국요리가 있다. 그리고 그 음식 뒤엔 한국의 짜장면만큼 많은 뒷이야기가 숨어 있다. 서양인 최초로 중국 쓰촨고등요리학교에서 셰프 훈련을 받고, 30년간 중국과 중식을 탐구해온 영국인 저자가 쓴 중국미식인류학 책이다. 중국요리를 둘러싼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담아 음식 이상의 이야기를 전한다. 서구에서 중식은 어떤 이미지일까. 저자에 따르면 “이토록 깊이 사랑받으면서 동시에 이토록 학대받는 요리는 아마 또 없을 것”이다. 세계적 인지도를 가지고 있지만, 값싸고 품격 낮은 ‘정크푸드’란 인식 또한 널리 퍼져 있다. 중국인이 쥐, 뱀, 고양이, 도마뱀을 먹는다는 편견은 대중문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다. 저자 역시 중국요리 전문가로서 “먹어본 것 중 가장 혐오스러운 음식은 무엇이었나” 같은 질문을 자주 받았다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편견에 반기를 든다. 칼질, 요리법, 풍미, 식감 등 세세한 부분까지 정성을 들이는 중국요리의 절묘함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고 자부한다. 무엇보다 중국은 지리적·미식적 환경이 다양하며, 협소한 시선으로는 그 깊이를 알기 어렵다고 강조한다. 특히 서양과 동양의 식문화 차이를 설명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대표적인 사례가 ‘콩’이다. 서양에서는 역사적으로 콩 발효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 우유를 발효시켜 치즈를 만드는 문화는 발전했지만, 콩을 발효해 풍미를 더하는 방법은 연구되지 않았다. 17세기까지는 대두 자체를 잘 알지 못했다. 반면 중국에서는 대두를 갈아 두유를 만들고, 이를 응고시켜 두부(더우푸)를 만드는 문화가 발달했다. 두부는 단백질의 훌륭한 공급원이자 채식 위주의 식단을 맛있게 만드는 핵심 재료였다. 두유에 황금빛 유탸오(중국식 꽈배기)를 찍어 먹는 중국식 아침 식사는 콘플레이크에 우유를 넣어 먹는 영국식 아침 식사에 상응한다. 지금도 중국에는 유럽의 치즈 노점상처럼 두부 노점상이 있으며, 다양한 두부 제품을 판매한다. 일반 흰 두부뿐 아니라 하룻밤 동안 얼린 ‘둥더우푸’, 갓 내린 눈처럼 하얀 곰팡이로 덮인 ‘마오더우푸’, 얇은 두부를 돌돌 말아 부패 직전까지 숙성시켜 블루치즈 스틸턴처럼 강렬하고 거친 맛을 내는 ‘저장 두부’, 50m 밖에서도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처우더우푸(취두부)’ 등 다양하다. 저자는 두부에 익숙하지 않은 서양인들에게는 마포더우푸(마파두부)를 권한다. 두부를 ‘채식주의자가 고기 대신 어쩔 수 없이 먹는 따분한 음식’ 정도로 여긴 사람일지라도 마파두부를 맛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란다. 마파두부의 유래에 대한 설명도 빼먹지 않는다. 마파두부는 19세기 후반 ‘마맛자국이 있는 천 부인’, 줄여서 ‘천마파’라는 애칭을 가진 여성에게서 유래했다. 그는 청두 북쪽 완푸차오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면서 루비처럼 붉은 고추기름과 얼얼한 조피(제피)를 듬뿍 넣어 푸짐한 두부찜을 만들었다. 이 밖에도 중앙아시아로부터 맷돌을 들여와 국수와 면 요리를 탄생시킨 한나라, 몽골의 침략으로 수도를 남방으로 이전하며 남북 문화를 융합한 송나라 등의 이야기를 담았다. 서로 다른 문화가 접촉할 때 어떤 뜻밖의 멋진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 보여주는 문화인류학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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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묵묵히 일하는 사람 만나면, 용기도 위로도 얻죠”

    일상에서, 나아가 누군가는 일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수 있다. ‘일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김혜진 작가(42·사진)의 새 장편소설 ‘오직 그녀의 것’(문학동네)은 ‘업(業)’이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파고들었다. 전작 ‘딸에 대하여’에서 무연고 노인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를 그렸던 김 작가는 이번엔 출판사 편집자의 삶을 응시했다. 소설은 주인공 홍석주가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 입사한 20대 시절부터, 주간(主幹)의 자리에 오르는 50대까지의 시간을 좇는다. 동아일보 서면 인터뷰에 응한 김 작가는 “홍석주라는 인물에게 책을 만드는 일이 어떤 의미가 되어 가는지를 따라가 보고 싶었다”며 “20대의 일과 30대의 일, 40대의 일, 50대의 일은 분명 다르다. 한 사람이 어떤 일을 만나고, 그 일을 하는 동안 어떻게 달라지고 바뀌어 가는지를 보여주려면 긴 시간을 펼쳐놓은 형식이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소설에는 딱히 드라마틱한 사건이 펼쳐지진 않는다. 그 대신 긴 세월 자신에게 주어진 글을 살피고 다듬는 이의 묵묵함과 성실함에 초점이 맞춰진다. 새내기 시절 홍석주가 관찰한 선배 편집자의 모습은 이렇게 묘사된다.“하얀 와이셔츠 위에 황톳빛 가죽 토시를 낀 채 종일 뭔가를 읽고 또 읽는 사람.”“여러 권의 책을 껴안듯 들고 있는 그의 오른손엔 군데군데 펜 자국이 남아 있었고, 흑연과 잉크가 묻은 손날은 거무스름했다.” 작가는 이 과정에서 노동의 가치를 섬세하게 포착해 냈다. 일에 충실한 사람에 대한 잔잔한 묘사에서 묘하게 일렁이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김 작가는 “자신의 일에 대한 묵묵함과 성실함. 현실에서도 그런 태도로 일하는 사람을 만나면 참 좋다”며 “용기도 얻고 위로도 되고, 내 마음가짐이나 태도도 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소설의 주된 배경은 1980, 90년대다. 이 시절 편집 현장이 세밀하게 복원돼 있어, 그 시대 특유의 감성을 엿볼 수 있다. 인터넷 검색 한 번이면 세계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지금과 달리, 당시엔 자료를 손수 찾아야 했다. 매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자료 요청 ‘쪽지’가 돌면, 편집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료실로 향했다. 백과사전, 연감, 도감, 전집이 빽빽하게 꽂힌 서가에서 제2차 세계대전 연표와 조선시대 복식을 기록한 책을 찾았다. 원하는 자료가 없으면 인접 단어를 더듬으며 우회적으로 접근했다. 이 고된 과정은 소설 속 홍석주의 선배가 말하듯 “책에 실린 정보는 틀림이 없어야 하니까”라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한 문장, 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며칠을 매달리는 일이 당연했던 시절. 속도와 효율이 앞서는 지금과 달리, 그때의 일터에는 느리지만 단단한 정확함이 있었다. 이 책을 누구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지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이제 막 일을 배우기 시작한 새내기가 읽으면 얼마간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처음 일을 시작할 땐 모두가 예외 없이 서툴고 어설프니까요. 지금 자신이 하는 일에 생각이 많아진 사람들이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일과 나 사이에 놓인 어떤 시간을 견뎌야 만나게 되는 순간도 있을 테니까요.”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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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묵묵함과 성실함…“그런 태도로 일하는 사람 만나면 나를 돌아보게 돼”

    일상에서, 나아가 누군가는 일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수 있다. ‘일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김혜진 작가(42)의 새 장편소설 ‘오직 그녀의 것’(문학동네)은 ‘업(業)’이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파고들었다. 전작 ‘딸에 대하여’에서 무연고 노인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를 그렸던 김 작가는 이번엔 출판사 편집자의 삶을 응시했다.소설은 주인공 홍석주가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 입사한 20대 시절부터, 주간(主幹)의 자리에 오르는 50대까지의 시간을 좇는다. 동아일보 서면 인터뷰에 응한 김 작가는 “홍석주라는 인물에게 책을 만드는 일이 어떤 의미가 되어 가는지를 따라가보고 싶었다”며 “20대의 일과 30대의 일, 40대의 일, 50대의 일은 분명 다르다. 한 사람이 어떤 일을 만나고, 그 일을 하는 동안 어떻게 달라지고 바뀌어 가는지를 보여주려면 긴 시간을 펼쳐놓은 형식이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소설에는 딱히 드라마틱한 사건이 펼쳐지진 않는다. 대신 긴 세월 자신에게 주어진 글을 살피고 다듬는 이의 묵묵함과 성실함에 초점이 맞춰진다. 새내기 시절 홍석주가 관찰한 선배 편집자의 모습은 이렇게 묘사된다.“하얀 와이셔츠 위에 황톳빛 가죽 토시를 낀 채 종일 뭔가를 읽고 또 읽는 사람.”“여러 권의 책을 껴안듯 들고 있는 그의 오른손엔 군데군데 펜 자국이 남아 있었고, 흑연과 잉크가 묻은 손날은 거무스름했다.”작가는 이 과정에서 노동의 가치를 섬세하게 포착해냈다. 일에 충실한 사람에 대한 잔잔한 묘사에서 묘하게 일렁이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김 작가는 “자신의 일에 대한 묵묵함과 성실함. 현실에서도 그런 태도로 일하는 사람을 만나면 참 좋다”며 “용기도 얻고 위로도 되고, 내 마음가짐이나 태도도 돌아보게 된다”고 했다.소설의 주된 배경은 1980, 90년대다. 이 시절 편집 현장이 세밀하게 복원돼 있어, 그 시대 특유의 감성을 엿볼 수 있다. 인터넷 검색 한 번이면 세계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지금과 달리, 당시엔 자료를 손수 찾아야 했다. 매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자료 요청 ‘쪽지’가 돌면, 편집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료실로 향했다. 백과사전, 연감, 도감, 전집이 빽빽하게 꽂힌 서가에서 제2차 세계대전 연표와 조선시대 복식을 기록한 책을 찾았다. 원하는 자료가 없으면 인접 단어를 더듬으며 우회적으로 접근했다.이 고된 과정은 소설 속 홍석주의 선배가 말하듯 “책에 실린 정보는 틀림이 없어야 하니까”라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한 문장, 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며칠을 매달리는 일이 당연했던 시절. 속도와 효율이 앞서는 지금과 달리, 그때의 일터에는 느리지만 단단한 정확함이 있었다.이 책을 누구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지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이제 막 일을 배우기 시작한 새내기가 읽으면 얼마간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처음 일을 시작할 땐 모두가 예외 없이 서툴고 어설프니까요. 지금 자신이 하는 일에 생각이 많아진 사람들이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일과 나 사이에 놓인 어떤 시간을 견뎌야 만나게 되는 순간도 있을 테니까요.”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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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동도서 확 늘고 키즈존까지… 책 향기 더 깊어진 ‘금계 마을’[작은 도서관에 날개를]

    16일 강원 횡성군 공근면에서 ‘금계작은도서관’이 다시 문을 열었다. 2009년 처음 개관한 이 도서관은 면 내에 유일한 문화시설이기도 하다. 새 단장을 위해 문을 닫았다가 다시 지역민들 품에 돌아온 것. 리모델링은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KB국민은행의 후원을 받아 진행했다.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과 KB국민은행은 2008년부터 전국 각지 문화 소외지역에 도서관을 세워왔다. 이번이 130번째, 올해 다섯 번째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269㎡(약 81.4평) 규모로 원목 제작 서가와 열람공간, 어린이공간, 정보검색 코너 등을 갖췄다. 1층에는 아동도서가 빼곡한 어린이자료실과 키즈존, 2층에는 종합자료실과 열람실이 자리했다. 장서는 총 1만1248권으로 늘었다. 이날 도서관 개관식에서 김영수 학담리 이장(67)은 “외손주와 친손주가 모두 이 도서관을 이용했는데, 더 편리하고 새로워져 앞으로도 가족이 함께 찾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귀촌한 심재영 도서관 명예관장(68)은 “부족했던 열람공간이 넓어져 책과 함께 머물고 싶은 공간이 됐다”고 말했다. 이날 공근초 학생 18명도 새롭게 단장한 도서관을 찾아와 책을 읽었다. 5학년 강나윤 양은 “숙제를 하거나 소설, 만화책을 읽으러 자주 왔는데, 집중하기 좋은 공간으로 바뀌었다”며 “앞으로 더 자주 오고 싶다”고 말했다. 개관식에는 김명기 횡성군수와 최위집 KB국민은행 북부지역영업그룹 대표, 김수연 목사 등 관계자와 지역 주민 50여 명이 참석했다. 김 군수는 “공근면의 새로운 문화 중심지로서 아이들과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의 장소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 대표도 “세대를 잇고 마을 이야기가 쌓이는 문화의 둥지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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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향기로 다시 열린 문화의 둥지…횡성 ‘금계작은도서관’ 재개관

    16일 강원 횡성군 공근면에서 ‘금계작은도서관’이 다시 문을 열었다. 2009년 처음 개관한 이 도서관은 면 내에 유일한 문화시실이기도 하다. 새단장을 위해 문을 닫았다가 다시 지역민들 품에 돌아온 것.리모델링은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KB국민은행의 후원을 받아 진행했다.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과 KB국민은행은 2008년부터 전국 각지 문화 소외지역에 도서관을 세워 왔다. 이번이 130번째, 올해 다섯 번째 도서관이다.도서관은 269㎡(약 81.4평) 규모로 원목제작 서가와 열람공간, 어린이공간, 정보검색 코너 등을 갖췄다. 1층에는 아동도서가 빼곡한 어린이 자료실과 키즈존, 2층에는 종합자료실과 열람실이 자리했다. 장서는 총 1만1248권으로 늘었다.이날 도서관 개관식에서 김영수 학담리 이장(67)은 “외손주와 친손주가 모두 이 도서관을 이용했는데, 더 편리하고 새로워져 앞으로도 가족이 함께 찾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귀촌한 심재영 도서관 명예관장(68)은 “부족했던 열람공간이 넓어져 책과 함께 머물고 싶은 공간이 됐다”고 말했다.이날 공근초 학생 18명도 새단장한 도서관을 찾아와 책을 읽었다. 5학년 강나윤 양은 “숙제를 하거나 소설, 만화책을 읽으러 자주 왔는데, 집중하기 좋은 공간으로 바뀌었다”며 “앞으로 더 자주 오고 싶다”고 말했다.개관식에는 김명기 횡성군수와 최위집 KB국민은행 북부지역영업그룹 대표, 김수연 목사 등 관계자와 지역주민 50여 명이 참석했다. 김 군수는 “공근면의 새로운 문화 중심지로서 아이들과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의 장소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 대표도 “세대를 잇고 마을 이야기가 쌓이는 문화의 둥지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김 목사는 “앞으로도 지역 곳곳에 작은도서관을 만들고, 조성 후에도 신간 도서와 독서문화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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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지만 큰 울림… 언더독, 출‘판’ 뒤집다

    프랑스 문학 전문 출판사 ‘레모(les mots)’는 1인 출판사다. 번역가 출신인 윤석헌 대표가 프로젝트별로 외부 번역가, 디자이너, 편집자와 협업해 책을 낸다. 그는 일찌감치 작가 아니 에르노의 가치를 알아보고 ‘얼어붙은 여자’를 번역 출간했는데, 에르노는 그 뒤인 202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201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최신작 ‘기억으로 가는 길’도 지난해 윤 대표의 손에서 국내 출간됐다. 윤 대표는 “그냥 제가 좋아하는 작가니까 낸 것이고, 에르노 역시 노벨상을 받을 거라 예상한 건 아니었다”며 “이 분야 책은 잘 팔리는 일이 드물어서, 그렇게 계산하고 기획하면 힘들다”고 했다.최근 문학 출판시장에선 ‘언더독’들의 존재감이 부쩍 커지고 있다. 1인 또는 소규모 출판사들이 활발히 활동하며 생태계의 다양성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국내 출간 작품 6권이 모두 ‘4인 규모’ 알마출판사에서 나왔던 것도 그런 흐름 속에서 벌어진 일로 풀이된다. 소규모 출판사들은 특정 문화권, 작가, 감성에 초점을 맞춘 ‘니치(틈새) 문학’에서 활약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문학 출판 시장에선 다품종 소량 생산 경향이 확대되고 있다. ‘2024 한국출판연감’에 따르면 문학 분야 도서 발행 부수는 2015년 1561만 부에서 지난해 962만 부로 38.4% 감소했지만, 발행 종수는 같은 기간 1만899종에서 1만4118종으로 오히려 29.5% 증가했다. 작품 하나가 수십만 부 팔리는 일은 예전에 비해 줄어들었지만 독특한 개성을 가진 다양한 작품이 출간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대가들의 작품 가운데 덜 알려진 것을 발굴해 주목받기도 한다. 1인 출판사 ‘녹색광선’은 알베르 카뮈의 ‘결혼·여름’, F 스콧 피츠제럴드의 ‘행복의 나락’ 등을 소개했는데,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 ‘패배의 신호’(2022년)는 아이유의 가방에 있던 것이 알려지며 ‘깜짝’ 중쇄를 찍었다. 소규모 출판사들은 홍보 마케팅을 위해 소셜미디어나 유튜브, 북클럽 등 ‘취향의 커뮤니티’를 적극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레모’의 경우 마케팅 예산이 거의 없는 대신에 윤 대표가 서점에서 북토크나 독서 모임을 열며 독자와 소통한다. 해외에서도 소규모 출판사들의 약진은 두드러진다. 올해 부커상 국제부문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최종 후보 6편 모두가 독립출판사에서 나온 작품이었다. 세계적 문학상이 점차 비영어권·비주류 작가의 실험성과 다양성에 주목하는 경향과 맞물리며, 소규모 출판사들이 대형사를 능가하는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이에 따라 대형 출판사들도 산하 브랜드나 시리즈를 출범하며 몸집을 가볍게 하는 추세다. 문학동네 계열사 난다의 해외문학 전문 브랜드 ‘모호’, 국내 초역작을 주로 소개하는 을유문화사의 ‘암실문고’ 등이 대표적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1인 출판사 대부분은 오래 버티지 못하는 실정이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곳들이 한국 출판의 기반을 지탱하고 있다”며 “이들은 문화의 다양성을 떠받치는 인프라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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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세계화의 첫 발은 ‘말’에서 시작됐다

    인류가 말을 처음 길들인 건 기원전 제4천년기(기원전 4000년∼기원전 3001년)로 추정된다. 발견되는 말의 잔해가 이 시기 들어 급증했기 때문. 말은 탁월한 힘과 속력을 지녔지만 사람을 피하려는 본능이 강했다. 이에 운송에 쓰기 시작한 건 기원전 제3천년기(기원전 3000년∼기원전 2001년) 서아시아의 목축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말 등’에 올라타는 것도 오래 걸렸다. 아시아 서부에선 말을 길들인 뒤에도 한동안 말타기가 재주를 부리는 등의 특별한 경우에만 행해졌다고 한다. 기원전 제2천년기(기원전 2000년∼기원전 1001년) 중반 고대 시리아 도시 ‘마리’의 왕이 받은 편지에는 “말 말고, 잡종 동물이나 더 위엄 있는 전차를 탈 것”을 권하는 대목이 나온다. 실제 전투나 세밀한 제어가 필요한 상황에서 말타기는 위험하고 신뢰하기 어려웠음을 보여준다. 말을 문명을 재편한 주역으로 조명한 책이다. 미국 콜로라도대 조교수이자 고고학 큐레이터인 저자는 몽골 초원에서 말의 뼈와 유전자를 연구한 현장 고고학자이기도 하다. 저자는 고대 유전체 분석과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같은 과학기술을 통해 안장과 등자 같은 혁신적 도구가 언제 등장했는지, 또 길들여진 말이 어떻게 각 문명에 편입됐는지 등을 꼼꼼하게 따진다. 기원전 제2천년기에 접어들며 말 관련 기술은 급속히 발전했다. 새로운 형태의 재갈은 단순한 코걸이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말을 제어할 수 있게 했다. 금속 재갈은 중요한 기술 혁신이었다. 고삐를 당기면 재갈이 말의 입속 민감한 부위에 압력을 가해, 기수가 말과 더 세밀하게 소통할 수 있었다. 기원전 15세기∼기원전 14세기로 추정되는 이런 재갈의 흔적은 이집트, 튀르키예, 아르메니아 등지에서 발견된다. 이에 따라 말타기는 유라시아 전역에서 핵심 군사 전술로 자리 잡았다. 기원전 9세기경 아시리아의 벽화에는 처음으로 기병대가 제대로 묘사됐다. 이 부조에는 두 명이 한 조를 이뤄 움직이는 초기 기병의 모습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한 명이 두 마리의 고삐를 잡고 다른 한 명은 활을 쐈다. 아직 안장이나 등자가 없었기에 그들은 다리의 힘만으로 몸을 지탱하며 싸워야 했다. 말타기의 발전은 고대 세계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꿨다. 분쟁이나 질병, 생태적 재난에 직면했을 때 말을 탄 사람들은 누구보다 빨리 이동할 수 있었다. 말타기라는 ‘혁신’을 통해 이전까지 멀리 떨어져 있던 지역들이 긴밀히 연결됐고, 때로는 달갑지 않은 접촉도 잦아졌다. 유라시아에서 ‘세계화’의 첫 징후가 나타난 셈이다. 초원과 사막의 길이 열리며, 이후 동아시아 왕조들과 서구 문명 사이를 잇는 교역과 외교의 길이 형성됐다.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 말은 일상에서 멀어진 존재가 됐다. 일부 농사나 관광, 스포츠 외에는 보기 힘들다. 그러나 말의 흔적은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다. 산업화 이후의 운송 인프라는 말이 남긴 기술과 도로 체계, 전통 위에 세워졌다. 책을 읽다 보면 인간이 말을 길들이는 과정에서 오히려 인간 자신이 말이라는 존재에 길들여졌음을 알게 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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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백세희 작가, 5명에게 새 생명 나누고 떠나

    우울증 치료 과정을 담은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쓴 백세희 작가(사진)가 사망했다. 향년 35세.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16일 경기 고양시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에서 백 작가가 뇌사 장기기증으로 심장, 폐, 간, 양쪽 신장을 기증해 5명의 생명을 살리고 떠났다고 17일 밝혔다. 뇌사에 이르게 된 경위는 알려지지 않았다.고인은 동국대 문예창작과 졸업 후 출판사에서 약 5년 동안 근무한 뒤 2018년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출간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기분부전장애(경미한 우울증이 지속되는 상태)를 겪으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나눈 대화를 담아낸 책으로 방탄소년단(BTS) RM이 추천하는 등 화제를 모았다. 2019년 내놓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2’까지 국내외에서 100만 부 이상 판매됐으며 약 25개국에 번역 수출됐다.고인은 어려운 사람을 보면 먼저 다가가 도움을 전하는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가족은 전했다. 동생 다희 씨는 “아무도 미워하지 못하는 착한 마음을 알기에, 이제는 하늘에서 편히 잘 쉬길 바란다”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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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물로 보는 국보 ‘동의보감’-한용운 시집 ‘님의 침묵’ 원본

    “잊으랴 잊을 수 없는 재작년 8월 9일 아침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덥다고 옷을 벗어 버리지 말고 방공굴에 동생 수송이를 데리고 들어가라 하셨습니다.” 1953년 출간된 소학생 작문집 ‘내가 겪은 이번 전쟁’에서 전주 풍남국민학교 2학년 학생이 쓴 글의 일부다. 해당 작문집은 아동문학가 윤석중(1911∼2003)이 주도해 6·25전쟁에 관한 어린이 글 3000여 편 중 22편을 엄선해 수록했다.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아이를 등에 업은 채 피란길에 나선 가족의 삽화 등도 담겼다. 김정은 국립중앙도서관 사서는 “당시 물자가 열악하다 보니 고문헌보다 종이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그런 상황에서도 수필 대회를 열고 끊임없이 책을 발간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국립중앙도서관이 15일 개관 80주년을 맞아 특별전 ‘나의 꿈, 우리의 기록, 한국인의 책장’을 개최했다. 서울 서초구 본관에서 선보인 이번 전시는 중앙도서관이 80년 동안 수집·보존해 온 국가 장서 중 200여 종의 자료를 23개 주제별로 구성했다. 국보나 보물, 초판본 등 희귀 자료가 상당하다. 이날 도서관 측은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동의보감’(1613년) 원본을 16년 만에 공개했다. 보물인 ‘석보상절’(1447년)과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1481년) 원본이 일반에 공개된 건 처음이다. 불교 경전인 석보상절은 최초의 한글 금속활자 인쇄본으로, 구텐베르크 성경보다도 8년 앞선다. ‘궁핍한 시대의 시인들’ 책장에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1934년), 서정주의 ‘화사’(1941년) 등 교과서로 접했던 근대 시인들의 원본 시집을 소개했다. 1936년 백석 시인이 100부 한정으로 자비 출판했던 시집 ‘사슴’의 복각본도 눈길을 끈다. 윤동주조차 이 시집을 구할 수 없어 도서관에서 빌려 필사본을 만들 정도로 당대의 애독서였다. 전시관 한편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롤) 구단인 T1 소속 선수들이 직접 선정한 애독서를 담은 ‘T1의 책장’도 마련됐다. 이상혁(페이커) 선수는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인스타 브레인’을 책장에 담았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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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의보감 원본부터 페이커 애독서까지…국립중앙도서관 80주년 특별전

    “잊으랴 잊을 수 없는 재작년 8월 9일 아침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덥다고 옷을 벗어 버리지 말고 방공굴에 동생 수송이를 데리고 들어 가라 하셨습니다.”1953년 출간된 소학생 작문집 ‘내가 겪은 이번 전쟁’에서 전주 풍남국민학교 2학년 학생이 쓴 글의 일부다. 해당 작문집은 아동문학가 윤석중(1911~2003)이 주도해 6·25전쟁에 관한 어린이 글 3000여 편 중 22편을 엄선해 수록했다.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아이를 등에 업은 채 피난길에 나선 가족의 삽화 등도 담겼다. 김정은 국립중앙도서관 사서는 “당시 물자가 열악하다 보니 고문헌보다 종이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그런 상황에서도 수필 대회를 열고 끊임없이 책을 발간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국립중앙도서관이 15일 개관 80주년을 맞아 특별전 ‘나의 꿈, 우리의 기록, 한국인의 책장’을 개최했다. 서울 서초구 본관에서 선보인 이번 전시는 중앙도서관이 80년 동안 수집·보존해온 국가장서 중 200여 종의 자료를 23개 주제 별로 구성했다. 국보나 보물, 초판본 등 희귀자료가 상당하다. 이날 도서관 측은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동의보감’(1613년) 원본을 16년 만에 공개했다. 보물인 ‘석보상절’(1447년)과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1481년) 원본이 일반에 공개된 건 처음이다. 불교 경전인 석보상절은 최초의 한글 금속활자 인쇄본으로, 구텐베르크 성경보다도 8년 앞선다.‘궁핍한 시대의 시인들’ 책장에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1934년), 서정주의 ‘화사’(1941년) 등 교과서로 접했던 근대 시인들의 원본 시집을 소개했다. 1936년 백석 시인이 100부 한정으로 자비 출판했던 시집 ‘사슴’의 복각본도 눈길을 끈다. 윤동주조차 이 시집을 구할 수 없어 도서관에서 빌려 필사본을 만들 정도로 당대의 애독서였다. 전시관 한편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롤) 구단인 T1 소속 선수들이 직접 선정한 애독서를 담은 ‘T1의 책장’도 마련됐다. 이상혁(페이커) 선수는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인스타 브레인’을 책장에 담았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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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러분은 손흥민 팬이에요, 토트넘 팬 아니에요”… 영국 판타지 깨부수는 영국 남자

    “착각하지 말아요. 여러분은 손흥민 팬이에요. 토트넘 팬 아니에요.” 이 한마디로 국내 축구 팬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았던 영국인이 있다. 여러 방송과 유튜브 등에서 활약하는 영국인 피터 빈트 씨(42)다. 어머니가 한국인인 그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손 선수 소속팀이던 토트넘 홋스퍼의 ‘숙적’ 아스널 팬이다. “한국엔 토트넘 팬이 많으니 말조심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가 내놓은 응수는 두고두고 회자됐다. 빈트 씨의 발언은 최근 다시 주목받았다. 손 선수가 토트넘을 떠나 미국 로스앤젤레스(LA) FC로 이적하며 ‘진실(?)’이 드러났다는 이유에서다. 2일 서울 서초구에서 만난 그는 “영국에선 워낙 라이벌 팀을 놀리는 게 일상이니까, 그렇게 화제가 될 줄 몰랐다”며 웃었다. “처음엔 진짜 살벌한 DM(다이렉트 메시지)이 많이 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피터 말이 맞았네’ 하는 반응이 더 많아졌어요.” 그런 빈트 씨가 지난달 영국에 대한 ‘사이다’ 같은 시선이 담긴 책 ‘지극히 사적인 영국’(틈새책방)을 펴냈다. 그는 자국을 포장하거나 미화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영국인의 절반 이상은 저처럼 노동자 계층이에요. 왕족이나 귀족은 우리에게도 완전히 다른 세상 이야기죠.” 영국은 모순의 나라다. ‘신사의 나라’로 불리지만 동시에 ‘훌리건의 본고장’이다. 왜 영국인들은 매너를 중시하면서도 축구장에선 난동꾼이 될까. “저도 그래요. ‘축구 보는 피터’와 ‘아빠 피터’는 다릅니다. 경기 보는 90분 동안은 다 내려놓고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이에요. 주중 내내 일한 사람들이 경기장에 가서 마음껏 욕하고 술 마시고 소리치는 거죠. 일종의 ‘매너 있는 나라의 일시적 탈출구’랄까요.” 빈트 씨는 “사람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고 어디나 앞뒤가 안 맞는 부분들이 있다”며 “영국은 그게 좀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고 했다. “버킹엄궁이 있는 나라에서 푸드뱅크를 이용하는 사람도 많아요. 불편하고 느리고 답답한 점도 많죠. 오래된 시설들도 그렇고. 그런데 그게 ‘진짜 영국’입니다. 그런 걸 경험하고도 좋아하면, 비로소 영국을 사랑하게 되는 거죠.” 한국 생활도 어느덧 17년째. 그는 한국도 “모순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당연히 힘들거나 부끄러운 면이 있는데 그걸 숨기고 긍정적인 것만 강조하면 매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봤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의 연예계와 교육이다. “K팝 스타가 되는 과정엔 엄청난 역경이 있잖아요. 우울증으로 생을 마감한 스타들도 있죠. ‘빌보드 넘버원을 이뤘지만, 누군가는 고통받는다. 이런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얘기해야 현실을 말하는 거죠. 숨긴다고 모르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인공지능(AI) 덕에 한국어 기사도 해외에서 쉽게 번역해 읽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숨기면 ‘뭔가 속이려는 건가’ 의심이 생길 수도 있죠.” 한국에서 중1, 초4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인 빈트 씨. ‘빡센’ 사교육도 “부모로서 진짜 아니다 싶을 때가 있다”고 했다. “돈도 많이 들고, 학생들 정신 건강 문제도 있잖아요. 그 역시 부끄러워하며 감추는 건 좋지 않아요. 물론 지금 한국이 좋은 이미지니까 굳이 부정적인 얘길 해야 할까 싶을 수 있어요. 그럼 언제가 ‘적기’일까요? 영화 하나 더 터지고 나면? 지금처럼 긍정적인 분위기일 때 ‘동시에’ 문제도 거론해야 진짜 한국의 모습이 보여요.” 다만 빈트 씨는 “한국이 싫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는 걸 강조했다. “저도 영국을 얼마나 사랑하는데요. 그래도 책에서 엄청 깠어요(웃음). 사랑하는 마음과 비판적인 시선은 함께 있을 수 있어요. 그걸 솔직히 드러내는 게, 개인도 편하고 나라도 좀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요?”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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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연한 것에 질문하는 용기…교과서 밖의 진짜 배움”

    한 학생이 엘리베이터를 타며 문득 궁금해했다. “사람들이 한쪽으로 몰리면 엘리베이터의 무게 중심이 바뀔까?” 또 다른 학생은 점자(點字)를 보며 궁금해했다. “이 점자가 정말 제대로 되어 있을까?”작은 질문이었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직접 조사하고, 실험하고, 전문가에게 물었다. 그 결과 교내 16곳의 점자 오류를 찾아냈고, 학교는 이를 즉시 수정했다. 엘리베이터라는 일상적 공간이 물리학과 언어 탐구의 현장이 된 순간이었다.이는 최근 경기 용인외대부고에서 있었던 일이다. 박인호 교감은 신간 ‘세상을 바꾼 위대한 질문들’(글로세움)에서 이 사례를 소개하며 “이 학생들은 당연하고 친숙한 것에 용기 있게 질문을 던졌고, 세상의 한 부분을 바꿔냈다”며 “이것이 교과서 밖에서 일어나는 진짜 배움”이라고 강조했다.박 교감은 나아가 하버드부터 프린스턴까지, 미국 명문대 20곳의 캠퍼스를 찾아 입학사정관들을 인터뷰했다. 챗GPT가 1초 만에 정답을 알려주는 시대에, 이들 대학이 ‘정답을 외우는 교육’ 대신 ‘좋은 질문을 던지는 법’을 어떻게 가르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그가 만난 입학사정관들의 메시지는 놀라울 만큼 일관됐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이 원하는 인재는 정답을 외운 학생이 아니라, 남들이 생각지 못한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사람이었다. 하버드 입학사정관은 이렇게 말했다.“우리가 보고 싶은 건, 배움이 당신의 삶과 가치에 어떻게 연결되는가입니다.”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대신할 수 없는 건 바로 그 ‘연결의 힘’이다.책은 장마다 ‘The Great Question’ 코너를 두어 각 대학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던진 질문을 함께 담았다. 프린스턴의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할까?”라는 질문으로 양자역학의 문을 열었고, MIT의 노엄 촘스키는 “우리는 누구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가?”라고 되물으며 학문의 지형을 바꿨다. 시카고대의 자유 인문학, 컬럼비아의 저널리즘 정신, 다트머스의 AI 연구까지 모든 혁신의 출발점에는 기존 질서를 의심한 질문이 있었다.박 교감은 수십 년간 학생들을 지켜본 교육자로서, 공부의 본질을 이렇게 설명했다. 공부가 어떻게 즐거움으로 바뀌는지를 일깨워준다.“많은 학생이 공부를 힘들어하는 이유는 끊임없는 비교 때문이다. 비교의 독을 해독하는 특효약은 호기심이다. 진짜 궁금한 것 앞에서는 남과의 비교가 무의미해진다. 오직 알고 싶다는 욕구만이 남는다. 그때 공부는 놀이가 되고, 탐험이 되며, 모험이 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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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침표’ 없는 그의 펜촉, 지옥의 세밀화를 그리다

    《소설 ‘사탄탱고’ 속 문장들그는 요람과 관의 십자가에 결박되어 경련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런 그는 결국 냉혹한 즉결심판을 받고 어떤 계급 표시도 부여받지 못한 채, 시체를 씻는 사람들과 웃으면서 부지런히 피부를 벗겨내는 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끝내 그는 마지막 무기처럼 지녀온, 안식처로 한 번 더 돌아가고픈 희망마저 빼앗기고 말 것이다.‘우리는 이 세계라는 돼지우리 속에서 태어나 갇혀 있지. …그리고 오물 속에 뒹구는 돼지들처럼 뭐가 어찌된 건지도 모르고 눈앞에 어른거리는 젖꼭지를 향해 아우성치지. 사료 통으로 빨리 가려고, 밤이 되면 침대로 돌아가려고 허둥대는 거야.’》“하늘에선 무얼 더 기다리시는 걸까? 어째서 이 소돔과 고모라를 가만히 보고 계시기만 할까?” 1980년대 헝가리의 해체된 집단농장. 오갈 데 없는 몇몇 주민만 마을에 남아 극도의 가난을 버티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이들은 술에 진탕 취해 “오물 속에 뒹구는 돼지들처럼” 탱고를 춘다. 9일(현지 시간) 올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헝가리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대표작 ‘사탄탱고’(1985년)의 한 장면이다. 국내엔 지금까지 6권이 번역 출간된 그의 소설은 질식할 듯 말이 쏟아지고 이미지의 향연이 펼쳐진다. 이에 그의 작품이 생경한 독자라면 진입 장벽이 상당히 높을 수도 있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문학 세계의 문을 여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특징들을 전문가들과 함께 살펴봤다.● 묵시록과 카프카 스웨덴 한림원은 그를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로 “묵시록적 공포 속에서 예술의 힘을 재확인하게 만든다”고 했다. 그런데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소설에서 ‘종말’은 폭발처럼 닥치는 ‘사건’이 아니다. 이미 시작된 뒤 끝없이 이어지는 ‘상태’다. 이는 작가의 관심이 파국으로 향하는 길에 있지 않고, 이미 끝나버린 세계에서 인간이 얼마나 지리멸렬하게 버티는가에 있기 때문이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올 2월 미국 ‘예일 리뷰’와 가진 인터뷰에서 “묵시록은 신약성서의 ‘최후의 심판’처럼 단 한 번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라며 “오래전부터 계속돼 온 과정이며 …진행 중인 심판”이라고 했다. ‘사탄탱고’도 마찬가지다. 종말은 느리고 고통스러운 과정으로 그려진다. 마을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서 그 속을 배회한다.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2016년 집필) ‘서왕모의 강림’(2008년) 등 작가의 주요작을 우리말로 옮긴 노승영 번역가는 “그의 소설에서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운명 또는 신의 뜻의 작용을 받는다는 점에서 마치 대본이 이미 쓰인 연극의 등장인물 같다”고 설명했다. 크러스너호르커이에게 다가가는 또 다른 키워드는 ‘카프카’다. 작가가 “카프카를 읽지 않을 때는 카프카를 생각한다. 그러지 않을 때는 그를 그리워한다”고 말할 정도다. 조원규 번역가는 “‘사탄탱고’는 탈출의 전망이 부재하는 고통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분명 카프카적 상황을 그린 소설”이라며 “카프카가 단독자를 그린다면, 크러스너호르커이는 군상을 등장시킨다”고 했다.● 의외의 유머가 곳곳에 포진작가는 ‘만연체 문학의 대가’로 불리기도 한다. 긴 문장과 단락 없는 서술은 그를 표현하는 대표적 특징이다. 2021년 작 ‘헤르슈트 07769’는 400쪽 분량에 마침표가 단 한 번뿐이다. 작가는 미 문학잡지 ‘게르니카’와의 인터뷰에서 “일상 상황을 관찰해 보면, 사람들은 서로를 설득하려는 광적 욕망으로 항상 마침표 없이 얘기하지 않느냐”며 “내가 구사하는 이른바 장문은 어떤 사상이나 개인적 이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구어에서 나온다. 내게는 짧은 문장이 (오히려) 인위적이고 꾸민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렇다고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의 작품은 ‘반전 유머’로도 유명하다. 작중 인물들이 진지한 상황에서 방귀를 뀌거나 여드름을 터뜨리는 등 ‘피식’ 웃게 만드는 장면이 곳곳에 있다. 노 번역가는 “지레 겁을 먹으면 한없이 무거운데, 사실 유머도 많다”며 “등장인물의 말과 생각, 머리 굴리는 모습이 재미있게 표현돼서 그냥 편하게 읽어도 재미있다”고 소개했다.어떤 책부터 먼저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스웨덴 한림원의 추천을 참고할 만하다. △사탄탱고 △저항의 멜랑콜리(1989년) △서왕모의 강림 △헤르슈트 07769 순이다. 앞선 3권은 이미 국내 출간돼 있고, ‘헤르슈트 07769’는 내년에 선보일 예정이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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