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민

김소민 기자

동아일보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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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소민 기자입니다.

somin@donga.com

취재분야

2024-03-31~202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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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돌 이미지 표절”vs“저작권 있나”… ‘뉴진스 맘’이 불붙인 논쟁

    “아일릿은 뉴진스의 카피다.” 아이돌 그룹 뉴진스의 총괄 프로듀서인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이런 주장이 연일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뉴진스와 같은 음반 기획사 하이브 산하의 신인 아이돌 그룹 아일릿이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 의상, 안무 등 모든 영역에서 뉴진스를 카피했다”고 주장했다. 단순 노래 표절을 넘어 이른바 ‘이미지 카피’ 문제를 공식 제기한 것이어서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많다. 일각에선 민 대표가 경영권 분쟁 의혹을 무마하기 위해 이런 주장을 했다고 보지만, 창작의 고유성을 어디까지 존중할지 논쟁에 불을 댕겼다는 평가도 나온다.● 법조계 “‘이미지 카피’, 법적 처분은 어려워” 그간 국내 문화예술계 카피 논란은 법정까지 가기보단 대중의 판단에 맡기는 사례가 많았다. 저작권 침해는 정량적 기준이 없어서 손해배상이나 형사 처벌 등으로 법적 시비를 가리기 어려워서다. 트렌드나 흥행 공식을 좇았다면 관대하게 넘어가는 분위기도 있었다. 최근 충남 아산시는 ‘성웅 이순신 축제’ 현수막에 이순신 장군의 한쪽 얼굴을 확대한 공모전 수상작을 사용했는데, 영화 ‘명량’의 포스터와 비슷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다만 수익 목적의 행사가 아닌 만큼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았다. 법조계에선 특히 민 대표가 제기한 ‘이미지 카피’가 아이돌 그룹의 콘셉트 자체를 따라 했다는 주장이기 때문에 시비를 따지기 더 어렵다고 보고 있다. 뉴진스와 아일릿은 △긴 생머리와 1990년대 말 패션 △허리를 돌린 뒤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안무 △멤버 배치와 시선 처리 등이 비슷하다. 하지만 이는 계량하기 어려운 부분이어서 표절이나 저작권 침해를 적용하기 까다롭다. 저작권 전문가인 김기태 세명대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교수는 “이미지 메이킹 자체를 창작 행위로 볼 수 있는지 모호하다. 사진은 피사체를 선택하고 배치하는 방식에 따라 권리관계를 다툴 수 있지만, 인물의 표정이나 화장이 비슷하다는 건 법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법무법인 화우 홍경호 변호사는 “헤어스타일 등은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받는다고 보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안무 악보’ 등에 저작권 인정해야” 이 기회에 창작자의 권리를 좀 더 폭넓게 인정하는 방안을 논의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최근 한 댄서가 댄스 경연 프로그램에서 인기곡에 새로운 춤을 입혀 ‘챌린지’ 열풍을 일으키는 등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아이돌 그룹 에이티즈의 댄스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안무의 독창성이 보호받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에는 ‘안무 저작권’ 도입을 위한 한국안무저작권학회가 정식 출범하기도 했다. K팝의 세계적 영향력이 커지고 있지만 노래의 악보나 바둑의 기보와 달리 안무는 저작권 보호의 사각에 놓였다는 인식에서다. 안무 동선을 지시하는 ‘무보(舞譜)’를 저작물로 인정하고, 이를 따라 했다면 안무 저작권에 저촉됐다고 보자는 것이다. 법적 책임 이전에 표절이나 저작권에 대한 교육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인공지능(AI)이 기존 예술작품을 학습해 새로운 결과물을 무한대에 가깝게 생산해내는 시대엔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더 중요해졌다는 지적이다.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만큼 ‘내가 베끼면 다른 사람도 내 걸 베낄 수 있다’는 인식을 나눠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했다. 김기태 교수는 “대중문화 콘텐츠를 생산할 때 윤리장전에 서명하게 하는 등 최소한의 장치라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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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긴 머리 휘날린 아일릿, 뉴진스 카피인가? 불붙은 표절 논쟁, 그 끝은

    “아일릿은 뉴진스의 카피다.” 아이돌 그룹 뉴진스의 총괄 프로듀서인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이런 주장이 연일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뉴진스와 같은 음반 기획사 하이브 산하의 신인 아이돌 그룹 아일릿이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 의상, 안무 등 모든 영역에서 뉴진스를 카피했다”고 주장했다. 단순 노래 표절을 넘어 이른바 ‘이미지 카피’ 문제를 공식 제기한 것이어서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많다. 일각에선 민 대표가 경영권 분쟁 의혹을 무마하기 위해 이런 주장을 했다고 보지만, 창작의 고유성을 어디까지 존중할지 논쟁에 불을 댕겼다는 평가도 나온다.● 법조계 “‘이미지 카피’, 법적 처분은 어려워”그간 국내 문화예술계 카피 논란은 법정까지 가기보단 대중의 판단에 맡기는 사례가 많았다. 저작권 침해는 정량적 기준이 없어서 손해배상이나 형사 처벌 등으로 법적 시비를 가리기 어려워서다. 트렌드나 흥행 공식을 쫓았다면 관대하게 넘어가는 분위기도 있었다. 최근 충남 아산시는 ‘성웅 이순신 축제’ 현수막에 이순신 장군의 한쪽 얼굴을 확대한 공모전 수상작을 사용했는데, 영화 ‘명량’의 포스터와 비슷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다만 수익 목적의 행사가 아닌 만큼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았다. 법조계에선 특히 민 대표가 제기한 ‘이미지 카피’가 아이돌 그룹의 콘셉트 자체를 따라 했다는 주장이기 때문에 시비를 따지기 더 어렵다고 보고 있다. 뉴진스와 아일릿은 △긴 생머리와 1990년대 말 패션 △허리를 돌린 뒤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안무 △멤버 배치와 시선 처리 등이 비슷하다. 하지만 이는 계량하기 어려운 부분인 탓에 표절이나 저작권 침해를 적용하기 까다롭다. 저작권 전문가인 김기태 세명대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교수는 “이미지 메이킹 자체를 창작 행위로 볼 수 있는지 모호하다. 사진은 피사체를 선택하고 배치하는 방식에 따라 권리관계를 다툴 수 있지만, 인물의 표정이나 화장이 비슷하다는 건 법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법무법인 화우 홍경호 변호사는 “헤어스타일 등은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받는다고 보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안무 악보’ 등에 저작권 인정해야”이 기회에 창작자의 권리를 좀 더 폭넓게 인정하는 방안을 논의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최근 한 댄서가 댄스 경연 프로그램에서 인기곡에 새로운 춤을 입혀 ‘챌린지’ 열풍을 일으키는 등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아이돌 그룹 에이티즈의 댄스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안무의 독창성이 보호받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지난해에는 ‘안무 저작권’ 도입을 위한 한국안무저작권학회가 정식 출범하기도 했다. K-팝의 세계적 영향력이 커지고 있지만 노래의 악보나 바둑의 기보와 달리 안무는 저작권 보호의 사각에 놓였다는 인식에서다. 안무 동선을 지시하는 ‘무보(舞譜)’를 저작물로 인정하고, 이를 따라했다면 안무 저작권에 저촉됐다고 보자는 것이다.법적 책임 이전에 표절이나 저작권에 대한 교육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인공지능(AI)이 기존 예술작품을 학습해 새로운 결과물을 무한대에 가깝게 생산해내는 시대엔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더 중요해졌다는 지적이다.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만큼 ‘내가 베끼면 다른 사람도 내 걸 베낄 수 있다’는 인식을 나눠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했다. 김기태 교수는 “대중문화 콘텐츠를 생산할 때 윤리장전에 서명하게 하는 등 최소한의 장치라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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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獨, 수량 많고 값싼 ‘목재 연료’ 각광… EU도 “재생 에너지” 보조금

    “최악의 에너지난이 닥치면 ‘장작’이 대안이다.” 독일 인터넷매체 ‘복스’는 원자재 가격 급등과 수급 차질로 에너지난이 불거졌던 2022년 ‘독일에서 갑자기 장작 수요가 급증한 이유’란 제목의 기사에서 이같이 밝혔다. 당시 독일은 유럽 여러 국가 중에서도 유독 에너지 위기가 극심했다. 그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유럽 국가들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2021년 기준 60%로, 유럽 국가 중 유독 높아 ‘가스 부족’ 사태가 심각했다. 이에 외국에서 수입하지 않아도 독일에 워낙 풍부하고 가격도 저렴한 목재가 대체 에너지원으로 떠올랐다. 실제 독일 대형마트에서는 가정용 연료로 쓰이는 장작들이 대용량으로 판매된다. 독일 산림연구소에 따르면 러시아발(發) 가스 위기가 닥치기 전인 2020년에도 독일에선 전체 가구의 약 13%인 550만 가구가 난방용 장작을 사용했다. 독일 가정에서 연료용 목재는 연평균 200만 m³가량씩 소비되고 있다. 목재 연료는 가스의 ‘대체 에너지원’이자 ‘친환경적’이란 점에서 선호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원의 경우 보통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목재도 바이오매스 연료로 분류된다. 식물, 유기물질 등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바이오매스 연료는 EU 신재생에너지의 60%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독일 정부는 건축 자재로 시멘트나 철근보다 목재를 권장하고 있다. 다만 2022년 가스 수급난으로 장작 수요가 급증하면서 가격도 이례적으로 올랐다. 독일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8월 장작과 목재 펠릿 가격이 전년 대비 86% 상승했다. 주변에 흔히 보이던 나무가 ‘금(金)나무’가 돼 버린 셈이다. 목재 연료는 EU에서 논쟁의 화두로 떠오르기도 했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에 따르면 EU 집행위는 신재생 전력 관련 법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장작의 미래’를 두고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장작은 EU 관련법에 따라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인정받아 보조금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 장작 공급을 위해 나무를 잘라내도 그 자리에서 다른 나무가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목재 생산 단체들은 이러한 이유를 들며 목재가 EU의 탄소저감 정책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산림보호 단체들은 장작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문제 삼고 있다. 장작 생산을 위해 나무를 마구잡이로 잘라내면 기후변화와 생물 다양성 위기가 심각해진다는 이유에서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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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자리 100만개, 숲에서 미래 찾는 청년들

    “산림관리 전문 자격증을 준비 중이에요. 숲 전문가가 되고 싶습니다.” 지난달 25일(현지 시간)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뮌헨시 외곽 지역에 있는 프라이징 숲에서 만난 20대 루카 카파운 씨는 “산림 자격증을 따면 산림 대기업에서도 일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체코와 인접한 국경도시 노인부르크포름발트의 산림 직업학교에 다니면서 틈틈이 숲에서 3년간의 실습 과정을 밟고 있다. 하루 8시간씩 통나무의 잔가지를 쳐내고 병충해나 강풍으로 파손된 나무를 정리하는 등 숲을 관리한다. 카파운 씨 등 10, 20대 세 명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하게 들어선 울창한 나무 2, 3m 높이에 각각 로빈후드처럼 매달려 있었다. 안전 장비를 찬 채 팔뚝만 한 칼로 나무의 잔가지를 잘라내면 잔가지들이 비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1주간의 직업탐색 실습 과정에 참여하고 있던 15세 마르쿠스 마이어 군은 “숲은 항상 꼭 필요하고 기후변화가 중시되니 숲 전문가는 전망 있는 직업”이라고 했다. 이들에게 숲은 광활한 ‘미래 일터’다. 독일 연방식품농업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임업 일자리는 100만 개를 넘었다. 관련 기업은 11만5000곳, 기업들의 매출은 1830억 유로(약 267조 원)다. 독일은 산림 관리를 위해 2021년 ‘숲 전략 2050’ 정책을 마련해 일자리뿐 아니라 다양한 목재 등 임산물을 생산하는 등 ‘숲 이코노미’를 키우고 있다.獨, 온난화에 나무 79% 훼손… 2050년 ‘기후 스마트숲’으로 전환 ‘그린스완’ 시대, 숲이 경쟁력이다〈5〉독일의 ‘숲 이코노미’獨영토 32%가 숲, 식물 2892종 서식… 각종 임산물에 수출용 통나무 생산가공-제지 등 관련 일자리 100만개고온-가뭄 등에 나무 고사비율 최고… ‘숲 전략 2050’ 세워 수종 세대교체 “올해 봄이 유독 일찍 시작됐어요. 기후변화로 봄이 더 더워졌습니다.” 지난달 25일(현지 시간)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뮌헨시에서 약 40km 떨어진 곳에 있는 프라이징 숲. 친구들과 산책하던 슈테판 츠바크 씨는 3월 말인데도 더워진 날씨에 그늘에서 잠시 휴식하며 이같이 말했다. 방문객들은 두꺼운 점퍼 대신 얇은 외투만 입은 채 숲속을 거닐었다. 따사로워진 햇볕을 피해 주차장 차량이나 안내소 그늘에 멈춘 방문객들이 보였다. 츠바크 씨는 “숲은 탄소를 빨아들이고 그늘을 만들어 기후변화 문제를 완화해주는데, 요즘 온난화와 가뭄 등으로 많이 훼손돼서 더욱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거의 매일 이 숲을 찾는 요제프 마이어 씨는 벌써부터 올여름 무더위를 걱정하며 “날씨가 아주 더울 때도 숲은 시원하고 공기의 질이 좋다”며 “요즘 온난화로 벌레가 늘어 나무가 피해를 보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숲에서 만난 대부분의 시민은 기후변화 시대에 숲의 소중함을 체감하고 있었다. 숲 덕에 공기의 질이 개선되고 더위를 덜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바이에른주는 전체 면적의 37%인 260만 ha가 숲이다. 독일 16개 주 가운데 산림 면적이 가장 넓어 ‘독일의 허파’ 역할을 한다. ● 숲은 탄소 흡수망이자 자원 독일 영토에서 약 32%를 차지하는 숲에는 다양한 식물 2892종이 서식한다. 숲에 뿌리내린 다양한 식물들은 대기의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는 ‘탄소 흡수망’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 연방식품농업부 산하 신재생연료전문기관에 따르면 숲은 이산화탄소를 연평균 5200만 t씩 흡수하고 있다. 프라이징 숲을 관리하고 있는 헤르베르트 보어헤르트 바이에른주 산림연구소(LWF) 박사는 “숲은 홍수를 방지하고 이상고온을 완화해주는 등 기후변화 시대에 역할이 크다”고 설명했다. 독일에서 숲은 탄소 저감뿐 아니라 임산물 생산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독일 연방식품농업부 통계를 보면 독일 목재 재고량은 2017년에 ha당 358m³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다. 독일에서 숲은 자원의 보고인 셈이다. 특히 건축 및 가구 자재 등에 쓰이는 통나무는 독일의 주요 자원이다. 이날 프라이징 숲속 곳곳엔 단면이 대형 트럭 바퀴만 한 통나무들이 잘린 채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독일 연방정부에 따르면 2022년 독일이 수출한 통나무는 수입량보다 400만 m³ 더 많았다. 통나무 대부분은 중국으로 수출된다. 공공 기관인 LWF는 물론이고 민간 주거 지역에서도 목재 건축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목재 산업은 친환경 산업으로 분류돼 정부의 지원 속에 성장하고 있다. 건물 자재로 쓰이는 시멘트나 철강은 제작 과정에서 탄소가 많이 배출된다. 반면 목재는 자연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데다, 탄소를 30년가량 저장한다. 바이에른주 주택의 21%가 목재로 건설된다. 독일 연방정부는 “가공, 제지, 인쇄 및 출판을 포함한 산림 및 목재 산업 일자리는 100만 개를 넘는다”고 밝혔다. 숲에서 직접 일하는 직업(4%)을 포함해 인쇄 및 출판(30%), 목재 건설(24%) 등 다양한 관련 산업을 창출하고 있다. 임업 관련 기업 매출만 1830억 유로(약 267조 원)에 달할 정도로 ‘숲 이코노미’가 뿌리내렸다.● 기후변화 위기, ‘숲 전략 2050’으로 대응 다만 독일의 숲도 최근 기후변화에 따른 고온과 가뭄, 병충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독일 연방정부 조사 결과 2022년 기준 독일 전역의 나무 79%가 손상되거나 죽고 있다. 환경 전문 저널인 ‘글로벌 변화생물학’은 1953∼2020년 68년간 독일 숲을 연구해 보니 나무의 고사 비율이 140년 만에 최고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 저널은 “건조하고 더운 기후가 광합성, 호흡 등 나무의 생리적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곤충, 곰팡이와 서리 및 가뭄 등 외부 요인에 더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독일 연방정부는 2011년 산림을 관리하기 위한 ‘숲 전략 2020’을 세웠다. 기후변화 대응, 숲과 생물다양성 보호, 목재 활용, 스포츠 및 여가 장소 활용 방안 등을 총망라한 대책이다. 10년 뒤인 2021년엔 이를 발전시킨 ‘숲 전략 2050’을 마련했다. 비영리단체 괴테연구소에 따르면 정부는 이 정책을 바탕으로 전국 산림 중 270만 ha를 기후변화에 강한 나무로 바꿔 심고 관리하는 ‘기후 스마트 숲’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 정책에 참여하는 산림 관리자들에게는 15억 유로(약 2조2000억 원)를 지급한다. 전문가들은 숲의 수종 교체에 더 속도를 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보어헤르트 박사는 “정부는 기후변화에 맞춰 숲을 세대교체해야 한다”며 “나무 종을 요즘 환경에 맞도록 서둘러 바꾸지 않으면 숲이 위험해 처한다”고 조언했다. 이런 숲의 위기는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유럽연합(EU) 공동연구센터와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분석 결과 세계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 1년 치를 줄이려면 독일, 프랑스, 스페인 영토를 합한 면적 이상의 숲을 재건해야 한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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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의 미래, ‘숲 학교’에서 자란다

    “안전을 위한 규칙만 잘 지키면 아이들은 이곳에서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9일(현지 시간) 영국 중동부 링컨셔주 링컨시에 있는 한 숲속. 아들을 이곳에 있는 ‘숲 학교’에 6년째 보내고 있는 타미 돌링 씨는 “숲 학교의 장점은 자유로운 교육”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돌링 씨의 아들 이든 군(12)은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나무를 타고 있었다. 교사 캣 수터 씨가 “나무를 오를 때 어떻게 해야 안전하다고 했는지 기억하느냐”고 묻자, 이든은 “나뭇가지가 팔목보다 굵은지 확인하면 된다”며 “양손과 양발 4개 중 3개는 나무에 딛고 있으면 안전하다”고 답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나무를 타고 얼굴엔 진흙을 묻히며 노는 이곳은 영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숲 학교 풍경이다. 1950년대 북유럽 등에서 시작된 숲 학교는 자연에서 직접 체험하면서 배우는 데 방점을 두고 있는 교육 방식이다. 영국에선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이 주로 참여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엔 16세 학생까지 대상이 확대됐다. 런던에서 숲 학교를 운영하는 엘라나 노세다 씨는 “숲 교육은 건강뿐 아니라 감정 표현과 소통 능력, 나아가 상상력을 길러준다”고 했다.나무-흙과 교감하며 ADHD 떨쳐… 英 ‘숲학교’서 삶의 지혜 배워 ‘그린스완’ 시대, 숲이 경쟁력이다〈4〉숲, 상상력 펼치는 치유의 캔버스어린이 교육 목적으로 1994년 시작방과후 수업 형식, 英전역에 수백곳장작으로 악기 만들고 진흙 부엌도… “자연과 교감속 공동체 의식 키워” 영국 링컨셔주 링컨시에서 차량으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올드 우드 오가닉’ 숲. 9일(현지 시간) 찾은 이곳에서는 축구장 2개 크기만 한 약 1만2140m²에 달하는 부지 곳곳에 숲 학교 ‘랜드 앤드 리프 컬렉티브’ 학생들이 만들어 놓은 놀이기구가 눈에 띄었다. 숲 학교 교사 캣 수터 씨가 나무 장작으로 만든 악기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도끼로 나무 자르는 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쳤을 뿐인데 이런 악기가 만들어질 거라곤 아무도 상상을 못했어요.” 나무와 나무 사이에 가로로 줄을 걸어 길이와 두께가 다른 장작 7개를 매달아 놓은 이 ‘천연 장작 악기’를 나무 막대기로 두드리니 마치 실로폰 소리와 같은 나무음이 울려퍼졌다. 수터 씨는 “한 학생이 장작을 패서 바구니에 던져넣다가 서로 다른 소리가 난다는 사실에 착안해 만든 악기”라며 “학생의 관심을 따라갔을 뿐인데 생각지도 못한 결과물이 나왔다”고 말했다. 숲 학교 곳곳에는 ‘진흙 부엌’ ‘나뭇가지 동굴’ ‘물길’ 등 학생들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놀잇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 대인기피증 떨쳐낸 숲 학교 아이들 영상 10도의 숲속은 한국의 초겨울 날씨처럼 쌀쌀했다. 전날 비가 내려 진흙탕이 된 바닥은 갯벌처럼 발이 푹푹 빠졌지만 아이들은 개의치 않고 놀았다. 한 아이는 얼굴에 숯검정을 칠하고 모닥불 위에서 빵을 굽는 데 한창이었다. 또 다른 아이는 대형 고무 타이어 위를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균형잡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영국 내 첫 번째 숲 학교는 1994년 브리지워터대에 설립됐다. 교육 전공자들이 자연과의 교감, 친구 간 소통, 상상력 증대 등을 통해 어린이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서 시작했다. 2000년대부터는 영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대학과 연계해 관할 내 숲 학교를 적극 도입했다. 현재 영국 내 숲 학교는 종류와 방식이 다양하지만 주로 방과후 수업 같은 개념으로, 일주일에 주기적으로 참여하는 보조 수업 형태가 많다. 영국에서 가장 큰 숲 학교 교사 민간단체인 숲학교협회(FSA)가 공인한 숲 교육 제공기관은 66곳이다. 등록된 교사 수만 지난해 기준 1400여 명에 달한다. 숲 학교 관계자들은 부분적으로 숲 교육을 제공하는 곳까지 포함하면 영국 전역에 숲 학교가 수백 곳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숲 학교에서 만난 영국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기존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3년 전 숲 학교에 처음 온 덩컨 레이시 군(16)은 대인기피가 심해 후드티 모자를 뒤집어쓰고 마스크와 장갑을 낀 채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숲 학교에 온 뒤로 달라졌다. 그는 각종 도구에 관심을 가지더니 나무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닭 횃대, 새 모이함, 의자까지. 스스로 만든 작품이 쌓일수록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었다. 지금은 숲 학교의 모든 구성원과 대화하고 다른 아이들을 도울 정도로 성장했다. 농부가 되겠다는 장래 희망도 생겼다. 덩컨의 어머니 멜리사 레이시 씨는 “숲 학교에서 배운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곳 학생 중에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치료한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 영국에 녹아든 숲의 ‘소프트웨어’숲 학교의 효능은 도심 지역에서 더 주목받고 있다. 최근 런던에선 5세 이하 아이들에게 전일 야외 교육을 실시하는 숲 학교도 생기기 시작했다. 런던에서 주 5일, 풀타임으로 숲 학교 ‘포리스트 그로브 해크니’를 운영하는 리지 해세이 씨는 “아이들이 자연과 교감하고 자연을 이해하길 원하는 부모가 늘고 있어 도시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숲 학교 ‘킨다 에듀케이션’을 운영하는 멜 해리슨 씨는 “숲 학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지역사회와 자연과의 재연결”이라며 “소속감과 공동체 의식을 키우는 출발점이 숲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산림위원회 산하 포리스트 리서치의 설문조사(2023년)에 따르면 영국인의 74%가 “최근 몇 년간 숲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중 51%는 “숲에 있을 때 느끼는 행복감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보다 늘었다”고 답변했다. 응답자의 22%는 지난 1년 새 숲 방문 빈도가 더 늘었다고 답했다. 영국건강보험(NHS)은 정신적, 육체적 처방의 하나로 숲 교육, 원예 등을 포함한 각종 녹색활동을 장려하고 있다. 녹색활동의 경제적 혜택을 분석한 결과 참가자 82명이 1년 동안 의료비용을 3만8646파운드(약 6673만 원) 절감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보고서에 따르면 조경 원예 등 녹색산업이 영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30년 418억 파운드(약 71조5820억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관련된 일자리 수는 76만3400개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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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런던 20%가 공용녹지… “年1.6조 건강비용 절감”

    “동네 거리마다 모두 신비한 공동 정원을 품고 있어요.”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한 1999년 영화 ‘노팅힐’에서 주인공 휴 그랜트와 줄리아 로버츠가 저녁식사를 마치고 담장을 넘어 들어간 정원. 런던에는 이 같은 ‘도심 속 숲’인 공용 녹지 공간이 전체 도시 면적의 20%에 달한다. 이곳에서 시민들은 운동하고 사교하며 휴식을 취한다. 나아가 지역사회의 일부가 된다. 런던시에 따르면 공용 녹지 덕분에 시민들이 매년 9억5000만 파운드(약 1조6406억 원)의 건강 비용을 절약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신체 건강에 5억8000만 파운드(약 1조16억 원), 정신 건강에 3억7000만 파운드(약 6389억 원)의 비용이 절감된 것으로 추산했다. 지역사회가 주도하는 ‘녹색 활동’도 다양하다. 런던시는 2020년부터 2023년 사이 135개 지역사회 프로젝트에 400만 파운드(약 69억 원)를 지원해 테니스 코트 1250개 면적에 달하는 33ha(헥타르)에 새로운 녹지 공간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2050년까지 공용 녹지 면적을 전체 면적의 50%까지 넓힌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공용 녹지 조성에 1파운드를 투자하면 런던 시민에게 27파운드(약 4만6627원) 가치의 경제적 효과가 돌아간다고 보고 있다. 영국에서 원예는 명실상부한 산업 분야로 자리 잡았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에는 전문 및 아마추어 원예가가 3000만 명이 있다고 추산한다. 영국 인구(6697만 명)의 절반 가까이 원예가로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교과 외 활동으로 원예를 가르치는 초등학교 비율도 75%에 달한다. 원예·조경 산업 관련 현황을 보면 영국의 국내총생산(GDP)에 기여한 비중은 2019년 48조2820억 원으로, 2030년에는 71조5820억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대학에서도 원예 활동을 장려한다. 영국 요크셔주에 있는 리즈대는 캠퍼스 중심부에 ‘지속가능한 정원’을 조성해 교직원과 학생, 방문자들이 조용한 명상을 즐기며 함께 가꾸는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씨앗과 식물, 농산물을 교환할 수 있는 ‘채소 도서관’도 정원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영국 엑서터대는 식량 재배 방식을 가르치는 ‘가드닝, 웰빙과 지역사회’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직접 영국 남서부의 재배 현장을 방문하도록 한다. 정원을 가꾸는 활동 역시 일상 속에 자리잡고 있다. 특히 노년층을 중심으로 정원 돌봄 봉사를 하는 ‘가든 볼런티어’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영국 왕립원예협회(RHS)가 직접 운영하는 정원에서 봉사자들은 가지를 잘라내거나, 식물을 심고 기르는 모든 일을 맡아서 한다. 연간 24만 명이 방문하는 로즈모어 정원에선 봉사자들이 방문자의 안내를 돕고 있다. 로스 캐머런 셰필드대 조경건축학과 교수는 “지속가능한 정원을 가꾸는 가정에 대해서는 지방세, 수도요금을 감면해 주는 파격적인 지원도 고려해 볼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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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등록 치매환자 38만명… 90대 노모-60대 두 딸 ‘老老간병’ 비극

    서울 강동구에서 90대 치매 환자와 60대 두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치매를 앓던 A 씨가 사망하자 그를 돌보던 자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세 모녀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치매 지원사업에 등록되지 않은 상태였다. 전국 미등록 치매 환자가 약 38만 명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老老) 간병’ 가족의 사회적 고립을 막을 안전망이 초고령사회에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숨진 세 모녀, 지자체 치매 서비스 안 받아” 7일 경찰에 따르면 전날 0시 10분경 강동구의 한 아파트에서 ‘화단에 사람 2명이 쓰러져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숨진 60대 자매였다. 경찰이 자택을 확인해보니 90대 A 씨도 몇 시간 전에 사망한 상태였다. 한 목격자에 따르면 집 안에서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잘 부탁드린다’는 취지의 메모가 발견됐다. 두 자매가 쓴 것으로 추정된다. 오랜 기간 치매를 앓던 어머니의 사망을 비관한 문구도 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A 씨의 시신에 외상 등 타살로 의심할 정황이 없어 일단 자연사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파악하기 위해 부검을 의뢰하기로 했다. 인근 주민에 따르면 숨진 A 씨는 약 10년간 치매를 앓아왔고, 그의 두 딸이 돌봄을 도맡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 이웃 주민은 “두 딸이 어머니를 돌보며 오래전부터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A 씨 가족은 지자체의 치매 지원 서비스를 받은 적이 없었고, 관할 치매안심센터에도 등록되지 않은 상태였다. 전국 256개 시군구에 구축된 치매안심센터는 치매 환자의 가족이 오랜 기간 돌봄 스트레스로 인해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것을 막기 위해 상담사 연결 등 다양한 심리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환자 측이 직접 센터를 방문해야 관리 대상에 포함된다. 강동구 치매안심센터 관계자는 “A 씨 가족은 우리 센터에 방문한 적이 없고, 기초생활 수급자가 아니기 때문에 관할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연계되지도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강동구 관계자도 “치매 투병은 개인정보에 해당하기 때문에 보호자가 별도로 지원사업을 신청하기 전엔 선제적으로 위기가구를 발굴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했다.● 치매안심센터 미등록 환자 38만 명 간병 부담에 시달리던 치매 환자 가족이 함께 비극을 맞는 사례는 자주 일어나고 있다. 올해 1월 대구 달서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치매를 앓는 80대 아버지를 50대 아들이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중앙치매센터가 지난해 5월 발간한 ‘대한민국 치매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65세 이상 치매 환자는 88만6173명으로 추산된다. 같은 해 전국 치매안심센터에 등록된 치매 환자는 50만2933명이었다. 약 38만 명이 미등록 상태라는 뜻이다. 이 중엔 A 씨 가족처럼 돌봄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도움을 청할 곳을 찾지 못한 이들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이 잠시라도 쉴 수 있도록 환자를 단기보호기관에 잠시 맡기거나 종일 방문요양 서비스 이용권을 주는 ‘치매가족휴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홍보 부족 탓에 이용자가 연평균 1000명에 못 미친다. 지난해 12월 강원광역치매센터가 관내 치매 환자를 설문한 결과 상당수가 “그런 제도가 있는 줄도 몰랐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돌봄 부담을 덜기 위한 제도의 존재를 몰라서 환자의 보호자가 벼랑 끝에 내몰리는 일만큼은 없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기원 전 중앙치매센터 부센터장(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임상교수)는 “돌봄 부담에만 매여 지내는 치매 환자의 보호자 같은 경우 바우처나 여행지원 제도 등 보호자 지원 사업이 있는 줄도 모르는 경우가 흔하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고 했다.임재혁 기자 heok@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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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벼처럼 키우고 수확하고 다시 심고 ‘숲의 선순환’

    “건강한 나무를 얻으려면 곡식을 키우는 것처럼 좋은 묘목을 길러내는 게 중요하죠.”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뉴질랜드 북섬에 있는 로토루아시 양묘장에서 만난 직원 로런 앤더슨 씨(34)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논밭처럼 평지에 펼쳐진 양묘장에는 라디에타 소나무 묘목 1800만 그루가 자라고 있다. 마치 벼 모내기를 위해 모판을 짜듯, 나무를 숲에 옮겨 심기 위한 ‘묘목판’이 25ha(헥타르) 넓이의 양묘장에 빽빽하게 심어져 있었다. 톱날 장비가 달린 트랙터가 축구장(0.714ha) 35개에 달하는 양묘장 일대를 누볐다. 고르게 키우기 위해 일정한 크기로 묘목을 자르고 있었다. 지난해 10월에 심은 묘목은 반년 만에 40cm 가까이 자랐다. 양묘장에서 나온 묘목은 조림지에서 두 번째 목생(木生)을 시작한다. 조림지는 나무를 수확하기 위해 만든 숲이다. 이날 일부 묘목은 양묘장에서 4.7km 떨어진 레드우드숲으로 옮겨졌다. 이 숲은 보존해야 할 천연림과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조림지가 공존하는 곳으로, 영화 ‘반지의 제왕’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뉴질랜드 산림 면적은 전 국토(2670만 ha)의 36% 수준인 950만 ha. 이 중에서 조림지는 180만 ha(2022년 기준)다. 뉴질랜드는 연간 목재를 4조9000억 원 가량 수출하는 등 국내총생산(GDP)의 약 5%가 숲에서 나오는 ‘임업 강국’이다. 뉴질랜드 산림과학원(SCION) 팀 페인 수석연구원은 “숲은 보호와 이용이라는 양쪽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잘 심는 만큼 잘 활용해야 지속 가능한 자연이 유지된다”고 말했다.28년 주기로 나무 年 200만그루 수확… GDP 5%가 숲에서 나와 [창간 104주년]‘그린스완’ 시대, 숲이 경쟁력이다〈3〉 ‘木맥경화’ 뚫은 뉴질랜드상품성 좋은 품종 주력으로 키워… 숲 기능 포함 안정적 목재 공급 역할조림지내 자전거길 年 60만명 찾아‘숲환생’ 벌채, 연간 5조 원대 수출… “환경-자원 넘어 안보영역으로 확장” “숲 한가운데 길게 비어 있는 공간이 ‘완전한 순환’이 이뤄지는 경계선입니다.” 뉴질랜드 산림과학원 팀 페인 수석연구원은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로토루아시 인근 레드우드숲 산등성이 중간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그가 집어낸 공간은 빽빽한 초록 숲 사이에 난 빈틈이다. 이곳에는 양묘장에서 키운 라디에타 소나무 묘목이 심어져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텅 빈 곳처럼 보이는 묘목 식재 공간은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이 경계선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처럼 레드우드숲 곳곳에선 15년 넘게 자란 나무들로 이뤄진 조림지와 나무를 베어낸 곳에 새로 묘목을 심은 공간이 맞닿아 있는 경계선이 얽히고설켜 있었다. 심고 가꾸고 수확하는 과정이 수십 년에 걸쳐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이른바 ‘목(木)맥경화’를 뚫어냈다. 조림지엔 1ha(헥타르)당 묘목 약 1000그루를 심는다고 한다. 평평한 땅에 바로 심지 않고 약간의 흙을 쌓아 올린 뒤 심는다. 밤에 기온이 떨어지면 묘목이 상할 수 있어 흙을 보온재처럼 쓰는 것이다.● ‘보호와 이용’ 선순환 만드는 숲 뉴질랜드 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조림지에 심은 나무는 평균 28년 키워내 상품성이 가장 좋은 시기에 수확한다. 조림지 조성 초기엔 다양한 수종을 키웠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 캘리포니아산인 라디에타 소나무가 뉴질랜드 기후와 잘 맞아 본토보다 빨리 자라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최근엔 조림지의 91%를 채우고 있다. 페인 수석연구원은 “천연림에서는 다양한 나무가 어울릴 수 있도록 보존하고, 활용해야 할 조림지에는 다양한 수종보다는 상품성 좋은 품종을 주력으로 키운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솔송나무가 조림지의 약 5%를 차지하는데 수확하려면 평균 40년을 키워야 한다. 조림지는 천연림처럼 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하는 환경적 측면뿐만 아니라, 안정적으로 목재를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숲을 활용한 각종 레저산업을 파생시켜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기도 한다. 페인 수석연구원은 “숲은 자라면서 물과 공기를 정화하고 탄소를 저장한다”며 “시간이 지나 울창해지면 이런 공익적 가치 외에도 숲을 활용한 여가 생활이나 스포츠 등 다른 부가가치도 창출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레드우드숲은 산악자전거의 성지로 불릴 정도로 활용 가치가 높다. 조림지 사이로 자전거길 160km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국제산악자전거협회(IMBA)는 2015년 이 길을 3등급 중 가장 높은 골드 등급으로 지정했다. 협회로부터 최고 등급을 받은 곳은 세계에서 6곳뿐이다. 뉴질랜드 전역에 있는 자전거길은 매년 60만 명이 방문해 약 3.9일간 머물며 하루 평균 292뉴질랜드달러(약 23만 원)를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레드우드숲 자전거길에서 만난 니콜 테일러 씨(32)는 “아들 네 명과 숲에 자주 온다. 광활한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숲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자연 살리려 나무 벤다” 환생 위한 벌채 뉴질랜드에선 숲을 키우고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계획적인 벌채로 선순환 고리를 이어간다. 벌채된 나무는 숲에서의 목생을 마치고 가공돼 다양한 목재로 환생한다. 레드우드숲에서 33km 떨어진 텍트 공원 주변 벌채지. 30ha에 달하는 광활한 벌판에선 최근 나무를 수확한 후 땅을 헤집어 놔 흙냄새가 가득했다. 벌채를 끝낸 민둥산 너머에는 푸른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조림지가 있어 경계선이 뚜렷하게 갈렸다. 뉴질랜드 산림과학원 더글러스 건트 책임연구원은 “이곳은 자연을 파괴하는 공간이 아니라 자연을 다시 살리는 공간”이라며 “나무를 벤 자리는 20년 뒤에 다시 풍성한 숲이 될 것”이라고 했다. 뉴질랜드는 연간 4000∼4500ha 규모의 숲을 벌채한다. 28년 주기로 벌채해 1ha당 약 500그루를 거둬들인다. 매년 200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베어내는 셈이다. 수확한 나무의 40%는 자국에서 쓰고 나머지 60%는 수출한다. 산림과학원 통계를 보면 2022년 기준 뉴질랜드에서 수출한 원목, 펄프, 합판 등 목재는 60억7300만 뉴질랜드달러(약 4조8937억 원)가 넘는다. 올해는 5조원 이상으로 예상된다. 뉴질랜드산 목재 수입 상위 5개국은 중국 36억2400만 뉴질랜드달러(약 2조9202억 원), 호주 6억3800만 뉴질랜드달러(약 5141억 원)에 이어 한국 5억700만 뉴질랜드달러(약 4085억 원), 일본 4억7000만 뉴질랜드달러(약 3787억 원), 미국 3억8600만 뉴질랜드달러(약 3110억 원) 순으로 집계됐다. 산림 안보에도 숲의 활용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재난, 전쟁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 대비해 국가가 식량을 확보해야 하는 것처럼 목재 역시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일정량을 스스로 생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트 책임연구원은 “그린스완 시대가 시작되면서 산림과 목재 사용 자립도는 환경이나 자원의 문제를 넘어 안보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며 “나무를 어떻게 가꾸고 쓸 것인가에 대한 전략이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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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진 잦은 뉴질랜드, 유연한 ‘목재건축’ 선호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뉴질랜드 로토루아시에 있는 산림과학원(SCION)에 들어서자 10m에 달하는 높은 층고가 한눈에 들어오는 1층 로비에선 알싸한 숲 향이 느껴졌다. 뉴질랜드 정부 국가조사연구소인 산림과학원 건물은 목재로 지어졌다. 건물 뼈대와 바닥, 계단 등 눈길이 닿는 곳곳 모두 나무로 만들어졌다. 로토루아 지역 산봉우리 모양을 따 삼각형으로 만든 입구 문을 열자마자 건물 안에서 참새 두 마리가 날아들었다. 새들도 자유롭게 드나드는 이곳은 로토루아에서 심고 키워서 수확한 나무(550㎥)를 이용해 2020년 12월 건립됐다. 약 2000m² 넓이의 3층짜리 건물에는 350여 명이 일하고 있다. 산림과학원 관계자는 “이 건물의 탄소저장 효과는 418t”이라며 “승객 160명을 태운 비행기가 뉴질랜드 오클랜드와 영국 런던을 왕복하며 배출하는 탄소량과 같다”고 했다. 건물 내부에 사용한 목재는 나무 성질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화학약품 처리를 최소화했다. 목재가 비나 바람에 노출되면 쉽게 부식될 수 있기 때문에 건물 외관은 유리 등으로 마감했다. 유리에는 나무 이파리 색과 비슷하게 녹색과 노란색 등 마름모 문양을 채워 넣었다. 이처럼 뉴질랜드 땅에서 키우고 수확한 나무는 건축 재료로 많이 쓰인다. 탄소 중립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철근, 콘크리트보다 지진에 유연하게 반응한다. 과학원 관계자는 건물 중앙 마름모 모양의 나무 기둥을 가리키며 “뉴질랜드는 지진이 잦은데, 건물이 뒤틀려도 목재는 유연하게 대응해 붕괴를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로토루아시 곳곳에선 나무로 집을 짓는 공사 현장을 쉽게 볼 수 있었다. 2층 주택을 새로 만드는 공사 현장에선 인부들이 작업하려고 설치한 임시가설물(비계)만 철제를 사용했고 주재료는 촘촘하게 끼워 맞춘 목재였다. 주민 아라타키 펜더 씨(25)는 “햇빛이 들면 나무 기둥에서 ‘쩍’ 하는 소리가 나는데, 주민들은 ‘건물이 숨을 쉬는 소리’라고 부른다”며 “나무로 된 건물은 자연의 숲처럼 살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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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녹슨 제철소, 숲으로 재탄생… 도시가 다시 푸른 숨을 쉰다

    “제철소 용광로를 구석구석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신기하네요.”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독일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뒤스부르크시의 란트샤프트 공원. 중앙에 우뚝 선 7m 높이 용광로 꼭대기에서 만난 주민 클라우스 페테르존 씨는 40여 년 전인 어렸을 때부터 제철소를 보고 자랐다며 이같이 말했다. 당시 제철소는 안전 조명만 드리워진 어두컴컴한 ‘접근금지 구역’이었다. 보안 직원들이 막고 있는 데다 너무 위험해 근처에 다가갈 상상도 못 했던 이곳이 가동을 멈춘 뒤 이제 전망대로 변했다. 이날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축구장 약 250개 크기(180ha·헥타르)의 터엔 용광로, 파이프 등 녹슨 제철소 시설과 푸른 녹음이 한데 어우러진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울타리 없이 개방된 공간에 방문객들이 유모차를 끌고 카메라를 멘 채 모여들었다. 이들은 푸드트럭에서 음식을 사 먹거나 곳곳에 설치된 벤치에서 여유롭게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라인강 지류 엠셔강 유역에 있는 뒤스부르크 란트샤프트 공원은 1985년 가동을 멈춘 티센그룹의 마이데리히 제철소가 ‘도시숲’으로 재탄생한 공간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서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낸 제철소를 살아있는 역사로 보존하면서 시민들에게 삭막한 도시의 쉼터를 제공했다. 거대한 흉물로 남을 뻔한 제철소에 숲이 생명을 불어넣어 준 셈이다.숲이 된 ‘녹색 제철소’ 年100만명 발길… 줄던 인구도 다시 늘어[‘그린스완’ 시대, 숲이 경쟁력이다] 〈2〉 獨 뒤스부르크 ‘도시숲’ 제철소 폐쇄 9년만에 공원 탈바꿈자전거 씽씽, 암벽등반… 콘서트까지SNS ‘핫플’로 인기, 해외서도 찾아와… 정류장 신설 등 도시 인프라 확대 ‘녹슬고 거대한 제철소를 어찌할 것인가.’ 1985년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뒤스부르크시의 마이데리히 제철소가 경영 악화로 가동을 멈추자 지방 정부와 주민들은 이를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정치인들은 시설을 유지하면 재정에 부담이 된다며 “철거하자”고 주장했다. 반면 주민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때부터 가족의 일터였던 85년 역사의 랜드마크를 없앨 수 없다”며 반발했다. 주민들의 일자리를 책임지던 지역 경제의 중심이 사라지자 도시가 소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생겨났다.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던 시민들은 ‘독일 산업유산협회’를 조직했다.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낸 제철소 보존의 필요성을 알리는 보고서를 작성해 정부를 설득했고, 정부가 결국 이를 받아들였다. 정부는 국제건축전시회(IBA)를 열어 제철소와 주변 황무지를 개발할 아이디어를 공모했다. 이때 선정된 페터 라츠 건축가의 사업안으로 제철소 본연의 모습을 보존하되 숲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1994년 도시숲으로 재탄생한 뒤스부르크시의 란트샤프트 공원을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찾았다. 옛 광석 저장고 외벽에선 시민들이 암벽 등반을 하고 있었다. 석탄 수송용 기차가 달리던 철로에선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대형 탱크는 여름철 다이빙장으로 활용된다. 수시로 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행사와 전통시장도 열린다. ● 소셜미디어 시대 ‘이색 관광지’로 독일은 국토의 약 33%가 산림으로 뒤덮여 도시마다 숲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도시에서 시민들의 건강과 휴양을 위해 조성되는 도시숲은 수도 베를린, 유럽 금융허브 프랑크푸르트 등에도 조성돼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쉼터로 자리 잡고 있다. 뒤스부르크시 란트샤프트 공원은 독일에서 유일하게 산업시설을 공원으로 탈바꿈시켜 주목받았다. 독일 산업화의 역사를 품은 ‘살아 있는 박물관’으로 만든 셈이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들은 “이런 이색적인 공원을 보기 힘들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학생 10여 명을 인솔해 견학을 온 사회복지사 조피 알더 씨는 “아이들에게 이 도시가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인지 직접 보여주러 왔다”며 “도시의 역사가 고스란히 보존돼 소중한 장소”라고 말했다. 이색적인 경관은 소셜미디어 시대를 맞아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독일 남부 슈투트가르트에서 딸과 함께 방문한 메시카 씨는 “소셜미디어에서 사진을 보고 독특한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고 싶어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 공원은 최근 8년간 방문객이 연평균 100만 명이나 된다. 도시숲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나온 창의적 아이디어가 해외 방문객도 불러 모으고 있다. 공원의 물 관리 노하우가 대표적이다. 공장 지붕이나 건물 표면 굴곡진 부분에서 모은 빗물은 공원 곳곳에 설치된 작은 수로를 따라 나무와 꽃으로 흐르고 있었다. 공원 개장 이후 30년간 이곳에 뿌리 내린 식물은 700종을 넘는다. 이 공원 홍보 담당 레나 시엘러 씨는 “제철소 대형 탱크는 이제 저수조로 쓰이며 가뭄 때 공원 곳곳에 물을 공급한다”며 “네덜란드 등 수자원에 관심이 많은 국가에서 찾아와 어떻게 빗물 공급 시설을 운영하는지 묻는다”고 소개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015년 이 공원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오아시스’ 10곳 중 하나로 선정한 바 있다. 개방된 도심숲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운영 노하우도 주목받고 있다.● 낙후 지역에 인구 늘고 경제 활력 공원 개발로 뒤스부르크시는 활력을 되찾았다. 지역 방문객이 늘자 지방 정부도 도시 인프라에 투자하며 거주 여건이 개선되고 있다. 공원 옆에 있는 ‘란트샤프트 공원 북부’ 정류장은 지난해 말 확장 공사를 완료했다. 내년에는 인근에 약 600만 유로(약 87억 원)를 투입해 신규 정류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인근 낙후됐던 마르스로 지역은 공원으로 수혜를 입은 곳으로 꼽힌다. 마르스로는 1990년대 이민자들이 급격히 늘며 현재 주민 중 이민자 비율이 60%를 넘어섰다. 지역 경제가 침체돼 실업과 범죄가 늘었고, 경찰이 주시하는 지역이 됐다. 하지만 가까운 도시숲이 관광지로 발전하고 주기적으로 콘서트, 맥주 페스티벌 등 행사가 열리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일자리와 휴식을 얻었다. 제철소 폐쇄 뒤 인구가 급격히 줄었던 뒤스부르크시는 이민자 유입과 함께 란트샤프트 공원 조성 등 다양한 도심 재생 노력을 기울인 덕에 인구가 늘고 있다. 뒤스부르크시에 따르면 제철소가 가동을 멈추기 전인 1983년 54만1000명이었던 인구는 계속 내리막을 걸으며 2014년엔 48만6000명까지 줄어 최저점을 찍었다. 이후 인구가 점차 늘면서 지난해 52만5000명까지 회복됐고 올해는 5000명 더 늘 것으로 추산된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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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때 방문객 급증, 숲은 보건 인프라”… 獨, 숲길 걸으며 명상 ‘마음챙김’ 앱 개발도

    “숲은 국가 공중보건의 중요한 인프라입니다.” 유럽 30개국으로 구성된 국제기구 유럽산림연구소(EFI)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봉쇄 기간 독일의 숲 이용객을 연구한 결과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코로나19 확산 시기에 개방된 장소인 숲은 전염 우려가 적고, 고립된 사람들이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는 공간으로 주목받으며 공중보건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는 설명이다. EFI에 따르면 2020년 3월 정부의 코로나19 대책이 시행되기 전 독일 서부의 본 주변 도시지역 숲 방문객은 하루 평균 290명이었다. 하지만 같은 해 3월 22일∼4월 28일 방역 대책 시행 중에는 방문객이 하루 평균 690명으로 늘었다. 코로나19 봉쇄 기간에 방문객이 약 140%가 증가한 것. 방문객 최고치는 봉쇄가 풀린 직후인 같은 해 6월 4일 1275명이었다. 숲을 찾는 사람들의 유형도 달라졌다. 기존에 보기 힘들었던 20, 30대 젊은층,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지역 외부에서 온 관광객들이 많아졌다. EFI는 “새로운 방문객들이 늘어나 숲이 사회 전반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게 됐다”며 “도시 지역의 산림 정책이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제 숲은 마음먹고 찾아야 하는 특별한 공간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다양한 시간대에 수시로 숲을 찾게 됐다. 코로나19 봉쇄 전엔 방문객들이 주로 평일 출퇴근 직전이나 직후에 숲을 방문했다. 하지만 봉쇄 기간엔 재택근무로 인해 대낮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특히 토요일은 숲이 가장 한산했던 날에서 가장 붐비는 날로 바뀌었다. 주로 쇼핑하던 인구가 숲으로 향한 것으로 분석됐다. 독일에선 전통적으로 숲이 ‘정서적 치유 공간’으로 여겨진다. 독일어에 ‘숲속에서 느끼는 편안한 고독감’을 뜻하는 발타인잠카이트(Waldeinsamkeit)란 고유한 단어가 있을 정도다. 이런 숲의 정서적 가치가 코로나19를 계기로 재조명되고 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잔 라자야 루 EFI연구원은 “방문객들이 숲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평온함 찾기’로 조사됐다”며 “숲의 영적 가치가 재평가되는 르네상스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 산림보호협회는 이런 수요를 고려해 ‘마음챙김’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했다. 방문객이 스스로 숲길을 걸으며 호흡하고 명상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앱이다. 이 앱은 구체적으로 몇 초간 걷다가 몇 초간 호흡할지, 나무 향을 어떻게 맡을지 소개하고 있다. 마음챙김 앱이 나온 뒤 독일 전역에는 ‘마음챙김 숲길’ 9곳이 추가로 조성됐다. 이 숲길에선 방문객들이 표지판에서 QR코드를 스캔해 숲과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이 서비스의 프로젝트 매니저인 토르스텐 뮐러 씨는 BBC 인터뷰에서 “앱은 숲 방문객이 호흡에 집중하도록 돕거나 숲의 색상 구조 질감 등 세부적인 모습을 관찰하도록 유도한다”며 “독일뿐 아니라 세계 어느 숲에서든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고 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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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늙은 나무’ 77%… 한국, 숲도 고령화

    “무조건 심고 키우기만 한다고 좋은 숲이 아닙니다.” 지난달 27일 강원 춘천시 가리산. 잣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숲은 멀리서 봤을 땐 풍성해 보였다. 하지만 숲속으로 들어가자 키 큰 나무들 사이에 갇혀 썩은 나무들이 보였다. 김아름 국립산림과학원 임업연구사는 “다닥다닥 붙어서 자라는 탓에 햇빛을 못 봐 광합성도 못 하고 말라 죽은 것”이라며 “나무들도 전반적으로 고령화돼 탄소 흡수율이 떨어진다”고 했다. 가리산뿐만이 아니다. 국내 숲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대한민국 국토에서 산림이 차지하는 면적은 세계 평균(31%)의 2배에 달할 정도로 양적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산림 선진국에 비해 숲을 활용하지 못해 무늬만 ‘숲의 나라’라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기후변화로 경제적 충격과 재난 위기가 일상화된 ‘그린스완(Green Swan)’ 시대에 숲 활용도를 높이는 과정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동아일보가 지난달 26∼28일 해외 산림 선진국을 취재한 결과 일본은 ‘명품 숲’을 만들어 인구 유입과 지역 소득 향상의 계기로 삼았고, 지역소멸 위기를 막을 수 있었다. 독일은 멈춰버린 제철소 위에 도시숲을 조성해 생명을 불어넣거나 숲에서 나온 목재 부산물 등 바이오매스(생물자원)로 새로운 산업을 창출했다. 뉴질랜드는 나무를 심고 가꾸고 쓰는 선순환으로 이른바 ‘목(木)맥경화’를 뚫어냈다. 한국은 1960년대부터 반세기 넘게 약 115억 그루의 나무를 심어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황폐화된 숲이 다시 푸르러졌다. 국토 대비 산림 비율(63%)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선 네 번째로 높다. 동시에 한국은 열대 목재 수입량 세계 4위로, 자급률은 15%에 그친다. 영국 프랑스 등은 자급률이 50∼80%에 달한다. 국내 숲은 탄소 저감 효과도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나무 중 77.2%가 30년생 이상이기 때문이다. 주요 수종은 심은 후 평균 25년이 지나면 탄소 흡수량이 줄어든다. 박병배 충남대 산림환경자원학과 교수는 “이제는 단순히 나무를 많이 심는 양적 성장을 넘어 탄소 저감, 산림안보, 지역경제와의 연계 등 숲을 제대로 활용하는 질적 성장을 꾀할 때”라고 강조했다. 31일 산림청 분석 결과 숲 활용도를 높일 경우 산림산업뿐만 아니라 관광 등 부가가치를 더한 전체 매출액은 현재 161조 원(2021년 기준)에서 2030년 206조 원, 2073년 606조 원까지 커진다. 지난해 현대자동차 매출액 162조 원의 4배 수준이다. 산림산업 일자리도 현재 61만 명에서 2073년 204만 명까지 증가한다.그린스완(Green Swan)기후변화가 초래할 사회 경제적 충격과 극단적 재난 위기 등을 일컫는 용어. 예기치 못한 경제 위기를 뜻하는 블랙스완을 변형한 것으로, 2020년 국제결제은행(BIS)이 제시했다. 韓 ‘목맥경화’… 115억그루 심었지만 늙은 나무 방치, 선순환 안돼[‘그린스완’ 시대, 숲이 경쟁력이다] 〈1〉 韓日 ‘숲 정책’ 살펴보니 나무 다닥다닥… 어린 나무까지 ‘골골’필요 목재 85% 수입… 年 7조 달해선진국, 청년-중년나무 고루 분포… “숲, 양적성장 넘어 이젠 질적 성장을” 성인 1명이 쉽게 지나다니기 힘들 정도로 잣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숲. 나무 직경은 평균 30cm에 불과했다. 양팔로 나무를 안고도 두 손이 포개질 만큼 얇았다. 다닥다닥 붙어 자란 탓에 생장이 억제돼서다. 나뭇가지도 뿌리에 가까운 아래쪽부터 많이 나 있었다. 나무는 가지가 뻗어 나간 자리에 생기는 옹이가 많을수록 목재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 지난달 27일 찾은 강원 춘천시 가리산의 풍경이다.● 아직까진 ‘무늬만’ 숲의 나라 반면 같은 잣나무인데도 관리를 해준 숲의 풍경은 달랐다. 산림청이 ‘숲가꾸기 시범림’으로 관리하고 있는 공간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굵고 곧게 뻗은 나무가 많았다. 2년생 묘목을 심은 뒤 건강한 나무만 남기는 솎아베기 과정을 거쳤다. 우량한 나무 주변에 있는 병든 나무, 굽은 나무, 노쇠한 나무는 잘라줬다. 그 결과 방치된 숲의 잣나무는 직경이 30cm 안팎에 불과했지만, 관리된 숲에선 잣나무 직경이 50cm 안팎까지 자랐다. 굵을 뿐만 아니라 길고 반듯하게 자라 목재로서 쓰임새도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관리를 받은 나무는 뿌리가 깊이 들어가 산사태 발생 시 말뚝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윤석범 춘천국유림관리소장은 “국내 대부분의 산이 나무를 심기만 하고 가꿔 주지 않아 적정 밀도보다 과밀한 상태”라며 “나무도 농작물처럼 제때 ‘수확’한다는 개념이 자리 잡아야 자연이 선순환한다”고 말했다. 국내엔 전국 어디에나 푸른 숲이 있고 나무도 빼곡하게 심어져 있지만, 상대적으로 숲 관리는 빈약하다는 의미다. 국내 목재 수요량의 85%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수입하는 열대 목재만 매년 7조 원 규모로 세계 4위다. 수입량이 많다 보니 인도네시아에서 원목 수출을 제한하면 국내 목재 가격이 요동치기도 한다. 윤 소장은 “목재를 해외에서 벌크선으로 수입해 오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양의 탄소가 배출된다”며 “자국에서 생산한 목재를 자국에서 소비하는 게 탄소 중립 면에서 가장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숲에는 30년생이 넘어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줄기 시작한 나무가 10그루 중 7그루(77.2%)가 넘는다. 중부지방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연간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30년생일 때는 1ha(헥타르)당 12.1t 이지만 60년생이 되면 1.8t으로 7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한다. 국내 산림면적에서 탄소 흡수량이 비교적 높은 ‘어린 나무’가 차지하는 비율은 1∼10년생 4%, 11∼20년생 3%, 21∼30년생 11%에 불과하다. ● ‘목(木)맥경화’ 뚫어 미래 성장기반으로 산림 선진국은 나이 든 나무를 수확해 목재로 활용하고 새 나무를 심는 ‘산림 선순환’이 자리 잡았다. 어린 나무, 청년 나무, 중년 나무를 고루 분포시켜 탄소를 계속 흡수하는 효과를 거두는 것. 철근, 콘크리트, 플라스틱은 한 번 사용하면 끝이지만 목재는 수확한 자리에 다시 나무를 심으면 20, 30년 뒤에 다시 목재로 쓰인다. 사실상 지속가능하게 쓸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인 셈이다. 일본 독일 등은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며 인구 유입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국내 숲은 녹화사업 이후 숲을 활용해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발전시킨 사례가 많지 않아 이른바 ‘목(木)맥경화’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2022년 기준 국내 산촌의 89.5%가 인구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된다. 65세 이상 인구 대비 2030세대 가임여성 인구 비율이 0.2 미만인 지역을 뜻한다. 전문가들은 전남 장흥군 등의 사례처럼 ‘명품 숲’을 발굴해 관광 자원화하고 산촌 주민 공동체와 연계한 소득 사업을 발굴하면 인구 절벽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장흥군은 편백숲에 치유의 숲, 숙박 및 체험시설을 조성해 연간 67만 명이 방문하는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장흥군 인구 3만6000명의 18배가 넘는 방문객을 유치하고 연계소득 1240억 원을 창출했다. 경북 울진군도 금강소나무 지역에 숲길을 조성해 인구 4만7000명의 3배가 넘는 15만 명이 매년 방문하는 관광자원으로 자리매김했다. 박병배 충남대 산림환경자원학과 교수는 “산림 선진국은 숲을 산업과 문화관광 자원이자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양적 성장을 넘어 이젠 질적 성장으로 넘어가야 할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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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업 30곳 손잡은 日시골 “숲속 오피스로 지역소멸 위기 대응”

    “나무를 올려다보시겠어요? 소리가 다르죠?” 지난달 28일 일본 가고시마(鹿兒島)현 기리시마(霧島)시 기리시마 긴코완 숲에서 만난 산림 세러피 가이드 우스자키 노키(臼崎のき·70) 씨가 웃으며 권했다. 삼나무, 붉가시나무, 후박나무 등 사전을 찾아봐도 생소한 이름의 나무들이 하늘로 쭉쭉 뻗어 있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새 소리와 어우러졌다. 고층빌딩으로 가득한 대도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다. 인구가 약 12만 명에 불과한 기리시마시는 숲을 주요 관광자원으로 내세우면서 연간 560만 명(2022년 기준)의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구 감소 위기를 겪는 지방으로서는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된다. 한국과 비슷하게 국토의 75%가량이 산인 일본은 숲을 단순히 ‘보호의 대상’이 아닌 인구 감소를 막고 지역 경제를 살리는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2000년대 이전에는 나무를 심고 보호하는 데 주력한 반면, 이후에는 숲을 활용해 경제 효과를 극대화하고 지역 활성화를 꾀하는 쪽으로 적극 나서고 있다. ● 관리 대상에서 체험 공간으로 탈바꿈 기리시마시는 2007년 4곳의 ‘산림 세러피 로드’를 지정했다. 표고 500∼700m 높이에 길이 900m∼2.5km로 체력이 약한 사람도 천천히 1∼2시간가량 걸으면서 숲을 즐길 수 있다. 4곳 모두 지역 전통 관광 명소인 천연온천 인근에 있어 ‘산책 후 온천’을 매력으로 내세운다. 이곳에서는 4∼12월 9차례의 정기 산림 세러피 투어를 운영하며 관광객들에게 숲을 체험할 기회를 준다. 지역에서 운영하는 ‘가이드 클럽’에 신청하면 개별 투어도 가능하다. 관광객 누구나 가볍게 산책하며 숲을 즐길 수 있다. 이날 숲 인근 호텔에서는 관광버스 2대로 온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밤에는 온천을 즐기고 낮에는 숲을 산책하며 자연을 즐겼다. 하마다 겐 기리시마시 관광PR과 주무관은 “숲은 온천과 더불어 지역의 가장 소중한 자원”이라며 오사카 등 대도시 고교 수학여행 팀도 찾는다고 귀띔했다. 숲을 활용한 관광 자원과 소니 등 지역 내 대기업 공장 등의 영향으로 이 지역 인구는 2000년 12만7900명에서 지난해 12만3135명으로 20년 넘게 12만 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최근 숲과 산을 활용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산림 서비스 산업이 각광받고 있다. 일본 임야청 측은 “관광, 건강,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산림을 활용해 체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이용객에게는 새로운 숲 체험 기회를 주고 해당 지역에서는 새로운 고용과 소득을 창출할 수 있다”고 밝혔다. ● 기업 제휴 맺으며 인구절벽 해결책 활용1998년 나가노 겨울올림픽으로 한국에도 익숙한 일본 나가노(長野)의 시골 마을 시나노(信濃)정은 지역의 유일한 자원인 산, 숲을 적극 활용해 지역 위기 돌파에 나서고 있다. 이곳은 1960년 1만3700명에서 최근 8000명대로 인구가 줄며 인구절벽에 직면한 곳이다. 과거 여느 다른 지역처럼 도로 확장, 쇼핑센터 유치 등에 주력했던 이곳은 2000년대 들어 발상 전환에 나섰다. 우리 지역에 ‘없는 것’을 만들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우리 지역에만 ‘있는 것’을 찾아 가꾸자는 데 지역민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렇게 시작된 사업이 2004년 ‘에코 메디컬 힐링 빌리지 사업’이었다. 이 사업을 통해 ‘치유의 숲’ 프로그램 조성에 나섰다. 적설량이 많아 겨울 스키장으로 유명한 ‘구로히메 고원’에 1.2∼7km의 숲길을 조성하고 산림욕, 맨발 진흙체험 등을 할 수 있게 했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산림 메디컬 트레이너’는 방문객에게 산림 치유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최근에는 일본 주요 기업들이 ‘치유의 숲’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30곳 넘는 기업이 이곳과 제휴를 맺어 연간 5000여 명의 각 기업 직원이 숲을 이용한다. 제휴 기업 직원들이 숲을 이용하면서 이 지역 숙박시설, 식당 수익 증가 등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고향 기부금’도 납부해 옥수수, 블루베리 등 지역 특산물 구입에도 앞장서는 ‘1석 3조’ 효과를 거둔다. 제휴 기업에 화답하기 위해 시나노정은 2019년 ‘노마드 워크 센터’라는 원격 근무 시설을 만들었다. 40명 수용이 가능한 이곳에서는 기업 단위로 사용 신청을 받아 5일간 30만 엔(약 270만 원)을 받는다. 주중에 일하면서 오후에는 카약, 등산, 요가 등을 즐길 수 있다. 기업 만족도는 높다. 일본 전기부품 업체 TDK람다는 시나노정과 협정을 맺고 2008년부터 매년 신입사원 연수를 이곳 숲에서 진행한다. 그 전까지는 3년 차 미만 직원 퇴직률이 12%에 달했지만 숲 연수를 실시하면서 1%로 떨어졌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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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은 ‘숲타디움’

    산림 면적이 2508만 ha로 국토의 68%에 달하는 일본은 고도 경제 성장기에 적극적인 산림 육성책을 펼쳤다. 이로 인해 전체 숲의 40%가 인공림이며, 일본 내 어느 산이든 키를 훌쩍 넘는 나무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일본 정부는 과거의 ‘숲 보호’에서 벗어나 다양한 활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본 임야청에 따르면 휴양림 등 정부가 지정한 숲을 이용한 인구는 자국 인구보다 많은 연간 1억4000만 명에 달했다. 숲을 쉽게 접하고 즐기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기업들의 관심도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임야청 설문조사 결과 응답 기업 392곳 중 60%가 숲, 임업, 목재와 관련한 활동을 현재 하고 있거나 실시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단순한 사회 공헌 차원을 넘어 다양한 비즈니스를 통해 숲, 임업에 기여하려는 기업들의 의지가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전체 숲의 1.5% 정도인 26만7000ha에 597곳을 ‘레크리에이션 숲’으로 지정하고 있다. 자연 휴양림, 실외 스포츠 등 목적에 따라 지정해 이런 활동을 정부가 보유한 국유림에서 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한다. 활용 방식은 다양하다. 일본 중부 야마나시현에는 ‘포레스트 어드벤처’라는 곳이 있다. 공중 걷기 등 숲 즐기기가 가능한 시설을 숲을 해치지 않고 마련했다. 이른바 ‘자연 공생 아웃도어 파크’라는 개념으로 정비한 숲 체험 시설이다. 인기를 끌면서 전국 35개 시설로 늘어났고 연간 50만 명이 이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즐기고 있다. 일본 유명 리조트 기업인 호시노그룹은 투숙객에게 산림 산책, 승마, 산악자전거, 야간 곤충 관찰 등 다양한 숲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전통 목조건축 강국인 일본은 나무를 활용한 건축도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2020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인 도쿄 국립경기장은 ‘산림 스타디움’이라는 콘셉트로 전국 47개 광역단체의 삼나무로 경기장 처마를 꾸미는 등 철골과 나무를 조합한 하이브리드 건축물을 지었다. 멀리서 보면 숲으로 덮여 있는 느낌이 나고 경기장 안에 들어가면 곳곳에서 목재를 활용한 것을 볼 수 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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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불 할퀴고 간 울진… 2년 지났지만 아직도 ‘탄내’

    지난달 28일 오후 2시. 경북 울진군 북면 한 야산의 정상. 김영훈 울진국유림관리소장이 새까맣게 그을린 소나무의 몸통을 어루만졌다. “비가 올 때면 항상 흙냄새가 향기롭게 풍기던 곳인데 아직도 희미한 탄내가 콧속을 파고드네요.” 손에는 거무튀튀한 잿물이 그대로 묻어 나왔다. 선 채로 죽어 있는 나무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시선을 돌리자 벌거숭이처럼 변한 휑한 산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린스완(Green Swan)’에 대비해 국내 숲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대형 화재 등 재난 후 신속한 복원과 사전예방이 필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가 2년 전 대형 화재를 겪은 울진-삼척의 숲이다. 2022년 3월 4일 울진에서 시작돼 강원 삼척까지 번졌던 초대형 산불은 무려 213시간 동안 서울 면적의 약 35%에 이르는 2만923ha(헥타르)를 태웠다. 동아일보 취재 결과 당시 산불 피해를 입었던 곳들에선 죽은 나무가 뿌리째 뽑인 후 경사면을 타고 흘러내렸다. 김 소장은 “죽은 나무는 벌채해야 하고, 일대는 민둥산이 된다”며 “대형 산사태 피해가 일어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집을 잃었던 주민 181가구 가운데 30가구는 아직도 임시 컨테이너 주택에 머물고 있었다. 산불이 나기 전까지만 해도 울진 인구의 약 22%인 1만여 명은 송이 등 임산물 채취로 생계를 이어왔지만 최근엔 수확을 못 하고 있다. 대를 이어 송이 농가를 운영해 온 이운영 씨(51)는 “죽어서 눈감을 때까지 울진에서 송이를 볼 수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산불 피해 범위가 워낙 방대한 탓에 복구는 여전히 더디다. 울진군에 따르면 군 전체 피해 면적 1만4140ha 중 현재까지 벌채 면적은 1800ha에 불과하다. 자연복구 지역을 제외한 인공복구 범위 6900ha를 기준으로 보면 약 26%만 벌채가 진행됐다. 울진군 관계자는 “벌채 작업이 끝난 구역도 묘목 식재가 완전히 이뤄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평균 기온이 올라 산불이 일상화되고 있어 사후 대응보다 사전 예방을 위한 대책 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립산림과학원 권춘근 연구원은 “산불 발생 시 진화 작업에 사용할 수 있는 인공 담수지를 산불 위험 지역마다 조성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며 “산불이 나면 진화 차량 등 장비가 진입할 수 있는 임도(林道)를 계획적으로 설치하는 것도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원전 주변이나 군부대 탄약고 주변처럼 초대형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것도 대비책으로 제시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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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 개성의 역사 알린다”…‘개성있는 개성학’ 온라인 개강

    남북 분단으로 인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개성의 이야기를 무료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은 한국형 온라인 공개강좌(K-MOOC) ‘개성있는 개성학(開城學)’이 15일 개강했다고 18일 밝혔다. 강좌 제작에는 이철성 건양대 교수, 윤숙자 행정안전부 이북오도위원회의 개성명예시장과 박정욱 평안도 배뱅이굿 무형문화재 명창 등 개성학 전문가 7명이 참여했다. 고려의 수도 개성이 현재 북한에 있다보니 전문 연구자들도 쉽게 가지 못하는 탓에 고려사는 조선사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이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 7명은 이번 강좌를 통해 고려 수도 개성의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조명했다. 강의는 분단 80년, 휴전 72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의 벽을 뛰어넘어 고려 수도 개성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개성의 문화가 현재로 이어져야 진정한 K-Culture가 완성된다는 하나의 주제로 목차들이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개경은 어떻게 고려의 수도가 되었고, 조선의 한양과는 어떻게 다른가? △Corea가 개방성을 가지고 세계에 알려진 이유는 무엇일까? △고려인삼은 왜 유명해졌을까? △축구·야구·정구 등 근대 스포츠의 개성 △작가 박완서로 대중에게 알려진 개성의 문학 등 13개의 강좌로 이뤄져 있다.이 교수는 “분단이 지속되며 이제는 실향민과 이산가족이란 용어도 점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개성은 우리 민족의 고유한 역사인 만큼 이 강의가 앞으로 평양·의주·함흥·원산 등 한국문화의 원형을 찾기 위한 기획강좌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강의는 K-MOOC 공식 홈페이지에서 수강 신청할 수 있다. 수강료는 무료이며, 강좌를 모두 수강할 경우 이수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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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고·여중에 흉기 테러할 것” 게시글에 경찰 수사 착수

    서울 강동구의 한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흉기를 휘둘러 최소 10명을 죽이겠다고 협박한 글이 온라인에 올라와 경찰이 작성자를 추적하고 있다. 1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동경찰서는 전날 오후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학생들을 상대로 한 협박 게시글이 잇따라 올라온 것과 관련해 수사 중이다.17일 디시인사이드 게시판에는 “내일 ○○여고에서 권총테러 한다. 19일에는 ○○여중 폭탄테러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어 “내일 이 칼로 ○○여고에서 칼부림한다. 최소 10명을 죽이겠다”는 게시글도 올라왔다. 흉기 사진도 첨부했다. 현재 해당 글들은 내용을 볼 수 없도록 삭제된 상태다. 경찰은 게시글 작성자를 추적하고 학교 측과 협의해 언급된 학교 주변에 경찰을 배치하는 등 안전 조치를 취하고 있다.최근 교내외 흉기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8일에는 송파구의 한 중학교에서 여학생이 다투던 남학생을 흉기로 찌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학교 정문에서 같은 학년 남학생의 복부를 흉기로 찔러 특수상해 혐의로 경찰에 현행범 체포됐다. 남학생은 사건 직후 병원으로 옮겨져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12일 인천에선 중학교 1학년생이 가방에서 흉기를 꺼내 동급생을 위협하는 사건도 벌어졌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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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라톤 축제, 서울의 봄을 열다

    한국 유일의 ‘플래티넘 라벨’ 대회인 2024 서울마라톤 겸 제94회 동아마라톤이 17일 10개국 141명의 엘리트 선수와 3만8000명의 마스터스 러너가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세계육상연맹(WA)은 마라톤 대회를 4개 등급(플래티넘, 골드, 엘리트, WA)으로 나눠 인증하는데, 서울마라톤은 한국에서 유일한 플래티넘 라벨(최고 등급) 대회다. 이날 국제 부문에선 남녀부 모두 에티오피아 선수들이 우승했다. 남자부의 제말 이메르 메코넨이 2시간6분8초로, 여자부의 피크르테 웨레타 아드마수가 2시간21분32초의 기록으로 1위를 했다. 남자부는 1, 2, 3위가 1초 간격을 두고 차례로 결승선을 지났을 만큼 접전이었다. 서울 광화문광장을 출발해 잠실종합운동장 동문까지 이르는 풀코스에 1만8000명, 잠실종합운동장 동문을 출발해 되돌아 오는 10km 코스에 2만 명의 마스터스 러너가 참가해 도심 레이스를 즐겼다.교통통제 협조해주신 시민께 감사드립니다 17일 열린 2024 서울마라톤 겸 제94회 동아마라톤이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대회 구간 교통 통제에 따른 불편을 감수하고 서울마라톤을 성원해 주신 시민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대회 개최와 진행에 도움을 준 서울시, 서울경찰청, 대한육상연맹 관계자와 자원봉사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필리핀 부부도 94년생 동호회도 “잊지못할 코스” 서울 질주 서울마라톤 겸 94회 동아마라톤칠레 부자 “환상 코스서 최고 추억”시각장애러너 “온 세상이 느껴져”… 15번째 참가 60대 “30번 더 뛸 것”이영표-션-박재범도 완주 환호성 산수유가 노랗게 봉오리를 터뜨린 17일 오전 서울 중구 청계천변을 따라 색색의 옷을 입은 마라토너가 달리는 장관이 펼쳐졌다. 평소 회사원으로 붐비던 무교동 거리도 이날만큼은 마라토너의 차지였다. 이날 열린 2024 서울마라톤 겸 제94회 동아마라톤은 칠레와 필리핀, 캐나다 등 각국에서 온 외국인과 국내 러닝크루들로 북적였다. 풀코스(42.195km) 약 1만8000명, 10km 코스 약 2만 명 등 총 3만8000명은 서울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전국 최대 규모 마라톤 대회에서 함께 봄을 맞이했다.● 러닝크루의 ‘성지’로 자리 잡은 도심 축제 2000년생 막내부터 1980년생 ‘큰 형님’까지 2040세대 젊은이들로 구성된 ‘보라매 트랙 러닝크루(BTRC)’는 이번 대회에 50명이 동반 참가했다. 오전 7시 40분경 출발 지점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준비운동을 하던 크루 구성원 이정윤 씨(28)는 “넉 달 동안 추운 겨울에도 땀이 뻘뻘 나게 연습했다”며 “3시간 30분 이내로 풀코스를 완주하겠다”고 힘차게 목표를 외쳤다. 1994년생 개띠 동갑내기 120명이 모인 러닝크루 ‘멍뭉런’은 이날 풀코스에 17명, 10km에 10명이 참가했다. 지난해 12월부터 토요일 오전 10시마다 한강공원에 모여 10km부터 차근차근 강도를 높이며 훈련해 왔다고 한다. 올 7월 결혼하는 강재훈 씨(30)와 신문희 씨(30)에겐 이번 대회가 ‘웨딩 동반주’가 됐다. 머리에 흰색 리본을 단 신 씨는 “사랑하는 예비 남편과 아프지 않게 재밌게 뛰고 가겠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부산마라톤클럽과 구리마라톤, 보령마라톤, 제주마라톤클럽, 천안러너스, 광주철인클럽 등이 전국 각지에서 모였다. 이날 생애 첫 풀코스를 완주한 이영표 전 축구 국가대표(47)는 “완주는 아무나 해낼 수 있는 게 아니지만, 그에 맞는 땀과 노력을 들이면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매력이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가수 션(52)도 풀코스를 완주하고 푸르메재단과 함께 5000만 원을 기부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가 311만 명에 달하는 가수 박재범(37)도 이날 자신의 SNS에 10km 완주 인증샷을 올렸다.● 외국인도 시각장애인도 “최고의 코스” 대회에 참가한 외국인도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 대회 참가를 위해 필리핀에서 온 19년차 부부 톰 씨(47)와 메일린 씨(46)는 “인터넷에서 ‘한국에서 유명한 마라톤’을 찾아보다 동아마라톤을 알게 됐다”며 “오늘이 한국 여행의 피날레”라고 말했다. 칠레인 무리엘 씨(34)는 고국에서 온 아버지와 함께 10km 코스에 참가하며 “도심 속 코스가 너무 재밌다”면서 “아버지와 좋은 추억을 남겨 행복하다”고 했다. 올해로 15번째 동아마라톤에 참가한 정재각 씨(69)는 “언덕 없이 서울 시내를 가로지르는 평탄한 코스로 짜여 20년 전부터 러너에게 최적의 무대였다”며 “앞으로도 30번 넘게 계속 참가하겠다”고 포부를 다졌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경험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VMK시각장애인마라톤동호회장 이민규 씨(40)와 회원 홍은녀 씨(45)는 비장애인 ‘가이드 러너’와 왼팔을 끈으로 묶은 채 안내를 받아 풀코스를 완주했다. 이들은 주 2, 3번 10km씩, 토요일에는 16km씩, 한 달 평균 150km를 뛰며 훈련했다고 한다. 홍 씨는 “달리다 보면 보이지 않아도 온 세상이 느껴진다. 얼굴에 스치는 바람과 관중의 응원 소리가 주는 쾌감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김영인 씨(40)는 2시간 57분 만에 풀코스를 주파해 ‘서브스리’(3시간 안에 풀코스 완주)를 달성했다. 목표를 세운 지 2년 만이다. 대학원 박사 과정을 거치며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와중에 중심을 잡아준 게 마라톤이었다고 한다. 김원용 씨(70)는 기존 개인 기록보다 2분 빠른 1시간 2분 만에 10km를 완주했다. 그는 “나이가 있다 보니 완주를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개인 최고기록을 세워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6학년 이재하 군(12)은 아버지 이진형 씨(40)와 10km를 약 56분 만에 완주했다. 아이스하키 선수가 되기 위해 훈련 중인 이 군은 “앞으로도 꾸준히 아빠와 달리기 연습을 해 최고의 지구력을 가진 아이스하키 선수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 20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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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인터뷰]“정신장애 경험, 귀 기울이면 예술이 되고 치유가 됩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 인권단체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파도손)의 대표이자 미술가인 이정하 대표(54)는 24년 전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이후 급성기와 회복기를 거듭하며 조현병과 함께 살아가는 중이다. 미술을 전공한 그는 동료 정신장애인의 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관련 전시회를 여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정신장애인 다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독특한 증상을 경험한다. 이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일은 당사자의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고 이 대표는 말한다. 이들의 작품이 사회 저변에 깔린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 인식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는 것도 성과다. 파도손은 이달에도 국립정신건강센터와 손잡고 서울 광진구 국립정신건강센터 내 갤러리에서 정신장애 예술가 2명의 작품을 소개하는 ‘마음을 그리다 Ⅱ’를 열고 있다.》4일 서울 중구 인쇄거리 깊숙한 골목에 자리한 파도손 작업실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작업실 내부는 이 대표의 키만 한 대형 캔버스와 다른 작가들의 조형물로 가득했다. 책상 곳곳엔 A4용지에 펜으로 스케치한 습작도 널려 있었다. 그와 작품에 담긴 의미와 파도손을 설립한 계기, 국내 정신건강 정책에 대한 평가 등을 이야기 나눴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표작을 소개해 달라. “‘신의 목소리’를 주제로 그린 작품들을 소개하고 싶다. 신의 목소리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겪는 환청을 의미한다. 단청, 지구와 행성들, 춤추는 무당, 동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사람들…. 이 모든 것은 내가 증상을 겪을 때 들렸거나 보였던 것들이다. 정신건강의학과적으로 보면 내 그림은 다 ‘진단명’이다. ‘이 부분은 피해망상, 저 부분은 과대망상’ 하는 식으로. 하지만 캔버스로 옮기면 예술의 영역이 된다. 이게 내가 추구할 수 있는 장점 중 하나다.” ―어떤 환청인가. “사람의 목소리이기도 하고, 생각이기도 하다. 굉장히 많이 들린다. 가끔은 너무 심해서 일상생활이 전혀 안 될 정도다. 목소리는 종류도 많고 내용도 다양하다. 옛날엔 여기에 휘둘렸다. 환청이 시키는 대로 밖에 나갔다. 다리에도 가고 산에도 갔다.” 이 대표가 처음 조현병 진단을 받은 건 서른 살 무렵.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에 다닐 때였다. 하루에 한두 시간도 제대로 못 자는 기간이 6개월간 이어지더니 상태가 나빠져 처음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이후 11차례 더 이어진 입원 생활의 시작이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투병하던 10년간 이 대표는 붓을 쥐지 못했다. ―어떻게 증상을 관리하고 있나. “꾸준한 상담 등 치료와 주변의 조력도 큰 도움이 됐다. 이제는 증상이 있지만 증상을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트레이닝(훈련)이 됐다. 환청이 들려도 무시할 수 있는 건 무시한다. ‘이건 증상이야, 현실이 아니야’라고 되뇌며 현실과 증상을 분리하는 거다. 고비를 한번 넘길 때마다 나에게 역량이 하나씩 생긴다. ‘레벨 업’ 하는 거다.” ―증상을 겪을 때 주변에서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해주면 도움이 되나. “편견 없이 얘기를 들어주는 게 도움이 된다. 특히 비슷한 어려움을 겪은 동료가 들어주면 진정이 된다. 반면 증상이 심할 때 충고나 잔소리를 하면 그건 상태를 악화시키는 지름길이다. 잠을 못 자는데 ‘약 먹고 자라’ 하면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 증상을 겪는 사람에겐 그게 실제 상황이기 때문이다. 나도 당사자 (인권) 운동을 하고 동료 지원가를 양성하면서 많이 배웠다. (급성기 환자에게) 접근하는 다양한 기술을 하나씩 습득한 거다.” ―수어처럼 배워두고 싶다. 하나만 알려 달라. “제일 필요한 것은 공감 능력인 것 같다. 보통 사람은 증상이 심한 사람을 보면 위험하다고 느끼고 두려워한다. 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보면 증상이 심한 사람은 마음이 심하게 아픈 사람이다. ‘아프다’고 얘기할 수 있게 그저 들어주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나아지는 게 겉으로도 느껴진다. ‘너와 내가 분리돼 있지 않다’는 믿음을 주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인권 운동을 어쩌다 시작했나.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나에겐 (인권 운동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다. 12차례 입원했는데 그중 8차례가 강제 입원이었다. 열악한 폐쇄병동에서 ‘치료’보다는 ‘격리’에 초점을 둔 처우를 받았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 없던 병도 생긴다. 마지막으로 강제 입원됐던 게 2014년이다. ‘내가 죽어야 이 끔찍한 일이 끝나겠구나’ 싶었다. 자살 충동도 너무 심하게 들었다. 그래서 강제 입원당하지 않을 방법을 찾기 위해 인권 운동을 시작한 거다. 강제 입원 없이도 회복하는 건 실제로 가능하다. 우리 사회가 그런 노력을 안 했을 뿐이다.” 2017년 이 대표가 설립한 파도손은 ‘마음이 파도칠 때 서로 잡는 손’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자신의 회복 경험을 바탕으로 동료를 돕는 ‘동료상담’과 상담가 양성, 입원 절차를 돕는 ‘절차보조’, 수공예·그림·운동 등 ‘자조모임’ 등을 돕고 있다. ―어떤 사람들이 파도손에 오나. “파도손에 가입한 정신장애인은 약 400명이다. 재활센터, 정신건강복지센터 등 정신건강 기관의 소개를 받아서 오는 경우가 많다. 여기저기 다 두드려보고 제일 마지막에 오는 곳이 여기다. 환자 가족도 상담하러 많이 온다. 동료 지원가는 환자의 급성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너무 잘 안다. 그때 곁을 지키면서 고비를 넘길 수 있게 돕는 거다. 고비를 넘기고 나서 (정신병원에) 입원할지 말지는 타인이 강제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환자 스스로 결정한다. 스스로 ‘필요하다’ 싶어서 하는 입원이니까 치료 과정에서 혼란을 덜 느낀다. 그래서 급성기에 누군가 곁을 지키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최근 치료를 중단한 정신질환자의 강력범죄가 우려를 사고 있는데…. “범인을 정신질환자로 지목한 순간 우리는 실패하게 된다. 환자가 범행했다면 그 환경을 봐야 한다. 이면에 사회적인 서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병 때문이야’라고 섣불리 결론 내고 다른 원인에 눈을 감으면 사회적 서사는 묻히게 된다. 경남 진주시 방화 살인 사건도 발생하기 1년 전부터 이미 예고편이 있었다. 범죄를 저지른 이들 중 일부는 돌봄을 받지 못해 증세가 심해진 경우다. 그때 지역사회가 움직이고 지원했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제때 대응할 수 있다면 많은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 ―정신장애인이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지원 시기를 놓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정신장애인이 자기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 의료적 지원이 아니라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나도 그렇고 주변 당사자 작가들은 그림을 그리면서 회복했다. 직장이 없는 당사자들은 일하면서 회복했다. 일자리만 있어도 정말 많이 회복된다. 재발률도 확 떨어진다.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주는 게 필요한 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회적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간다. 가족의 삶까지 함께 침몰한다. 당사자가 일하거나 사회적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면 지역사회가 다 좋아진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발표한 정신건강정책 혁신 방안에 대해 평가한다면…. “제일 개선됐다 싶은 건 처음으로 대통령이 정신건강 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비전을 선포했다는 거다. 그에 반해 아쉬운 점은 정신장애인 당사자에 대한 지원이 미비하고,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파도손 동료 지원가도 지난해 19명에서 올해 5명으로 줄었다. 서울시 동료 상담가 양성 사업이 없어졌고, 보건복지부의 동료 지원 예산도 줄었다. 인력이 줄면 (급성기 환자의) 위기 지원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추구하는 목표가 있다면…. “지난해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전시할 때 많은 시민이 오셨다. 전시회를 보고 ‘정신장애인에 대해 잘 몰랐는데 더 잘 알게 됐다’고 했다. 우리가 빈센트 반 고흐를 볼 땐 편견 없이 아름다운 작품을 그린 예술가로 본다. 그를 ‘중증 정신장애인’으로만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현대미술의 거장인 일본의 구사마 야요이도 조현병 당사자다. 국내에서도 정신장애 예술가가 많이 나오면 인식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정신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은 문화예술이 최고다.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예술가들을 자세히 보면 다 중환자들이었다. 레프 톨스토이와 어니스트 헤밍웨이, 살바도르 달리…. 너무 한쪽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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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공의 면허정지 속도… “주내 1만2000명에 사전통지”

    정부가 이번 주 중 병원을 떠난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약 1만2000명에 대한 면허정지 사전통지를 완료하기로 했다. 빠르면 이달 말부터 실제 면허정지 처분이 시작된다. 또 경찰은 고발에 대비해 전공의 수천 명을 동시에 수사하기 위한 채비를 갖췄다. 10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보건복지부는 이번 주에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에 대한 면허정지 사전통지서 발송을 마칠 계획이다. 8일 오전 11시 기준으로 주요 수련병원 100곳의 전공의 1만2912명 중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는 1만1994명(92.9%)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미 사전통지서 발송이 절반 이상 진행된 상황”이라고 밝혔다. 사전통지서에는 ‘의료법에 따른 업무개시명령 위반에 대해 자격정지 3개월 처분이 이뤄질 것’이란 내용이 담겼다. 또 ‘의견이 있으면 20일 내 제출하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5일부터 사전통지서가 발송된 만큼 일부 전공의는 25일까지 의견을 제출해야 한다. 송달이 확인됐음에도 의견을 안 내면 의견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직권 처분이 내려진다. 3개월 면허가 정지된 전공의들은 수련 기간을 채우지 못해 전문의 자격 취득 시기가 1년 미뤄질 수 있다. 집에 사람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송달이 안 이뤄진 경우 정부는 재차 통지서를 발송할 방침이다. 또 면허정지 처분과 별개로 형사고발도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전공의들에 대한 고발이 본격화되면 최대 수천 명을 동시에 수사해야 할 것으로 보고 분산 수사를 준비하고 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7일 지휘부 화상회의에서 “일반 전공의는 일선 경찰서에서, 주동자와 범죄 혐의가 중한 전공의는 각 시도경찰청에서 각각 맡아 수사하라”고 지시했다.박경민 기자 mean@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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