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호

신석호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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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석호 전무입니다.

kyle@donga.com

취재분야

2024-03-31~2024-04-30
남북한 관계48%
문학/출판30%
인사일반7%
정치일반3%
사회일반3%
문화 일반3%
언론3%
교육3%
  • 한미클럽 “스가 취임 계기, 한일 갈등 더이상 방치해선 안돼”

    임채정 김형오 정의화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신임 일본 총리 취임으로 변화의 계기를 맞이하고 있는 한일관계에 대해 “양국의 갈등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임 전 의장(2006년 6월~2008년 5월 재임) 등은 주미 특파원 출신 전·현직 언론인 모임인 사단법인 한미클럽(회장 이강덕)이 17일 발행한 한미저널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같이 답했다.임 전 의장은 “일본이 그동안 한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과정에서 한국이 갖는 정치 경제적 약한 고리를 적당히 이용해 식민지 지배를 호도하려는 태도는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며 “일본의 민간 부분을 통한 각 분야의 대화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김형오 전 의장(2008년 7월~2010년 5월)은 “한일관계가 불협화음이 지속될수록 외교·안보·경제·산업·과학·기술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우리가 입는 피해는 막대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가 피해를 훨씬 더 많이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도 알량한 반일감정을 부추겨 국내정치용으로 이용하고 있고, 일본도 마찬가지”라며 “이는 정치권에 엄청난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우려했다.정의화 전 의장(2014년 5월~2016년 5월)은 “우리 주장도 중요하지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일본을 이해하려는 자세도 필요하다”며 “우리가 모든 면에서 일본보다 나은 국가가 되는 것이 일본에 대한 아름다운 복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문희상 전 의장(2018년 7월~2020년 5월)은 재임 시절 ‘한일청구권협정과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재차 확인하고 양국 정상 간 재합의 선언’을 골자로 내놓은 ‘문희상안’이 해법이 될 있다며 “화이트리스트, 지소미아 회복을 선언하고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를 양국 의회에서 입법적으로 해결하자”고 제안했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2020-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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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러다 통일부도 ‘평화부’될라[오늘과 내일/신석호]

    7일부터 9일까지 통일부가 주최한 한반도국제평화포럼(KGFP)은 2010년 9월 9일과 10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처음 열린 코리아글로벌포럼(KGF)의 후신이다. 당시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 등 11개 나라 정부와 민간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모여 한반도 문제의 해법을 논의했다. 통일부 출입 기자로 “통일이 빠르게 올 수도 있다”는 윌리엄 코언 전 미 국방장관과 “성급한 통일보다 남북한 공존이 중요하다”는 게오르기 톨로라야 전 러시아 동북아국장의 설전을 중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번 11회 포럼은 10년 전과 같은 장소에서 열린 통일부의 연례 글로벌 포럼이라는 점 외엔 다른 점이 많았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청중 없이 온라인으로 생중계됐다. 코언과 톨로라야의 설전처럼 10년 전엔 ‘통일’이 화두였지만 이번엔 온통 ‘평화’ 일색이었다. 200명 가까운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여한 30여 개의 세션과 발표 제목에 ‘통일’이 들어간 건 단 하나인데 ‘평화’가 들어간 건 13개였다. 그래, 10년 전엔 통일이 유행이었다. 한반도 주변국들은 북한의 천안함 폭침 사건에 경악했고 조사와 처리 과정에서 극심한 갈등과 진통을 겪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던진 ‘통일세’를 시작으로 ‘한국에 의한 한반도 통일’이 북한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여론이 국내외에 조성됐다. 1회 포럼에 미국 민간 대표로 참여했던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다음 달 같은 장소에서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연 국제학술회의에서 “한반도 통일만이 북핵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공개 선언했다. 거기까진 좋았다. 이명박 정부가 말기에 ‘통일 항아리’를 빚어 돌리고 박근혜 정부가 ‘통일 대박’ 이벤트를 흥행시키면서 헌법 가치인 통일은 국내정치 이벤트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일부 언론은 남한 주도 통일의 환상적인 베스트 시나리오를 그리기도 했다. 그 가능성이 얼마나 되느냐는 지적을 받으면서도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민주화를 촉진해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 능력과 실천이 없는 통일 대박 구호는 황당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에 앞장선 현 정부 인사들과 지지자들은 2017년 집권하자마자 통일 대신 평화를 한반도 정책의 핵심 키워드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3·1절과 광복절 등에 내놓는 공식 담화에서, 정부의 통일정책 문서에서, 각급 학교의 통일교육 교재에서 통일이라는 단어가 빠지고 평화가 채워졌다. 지난해엔 코리아글로벌포럼도 한반도국제평화포럼으로 바뀌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통일부와 헌법이 규정한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통일’이 언제 빠지는지가 관심사일 정도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이번 포럼 개회식에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평화(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Peace)”를 강조했다. 북-미 대화 놀음이 한창이던 2018년 6월 한 유명 증권사 투자전략팀장이 미국의 북한 비핵화의 목표(CVI-Dismantlement)를 패러디해 투자자들에게 흥행시킨 것(C-Visible-I-Prosperity)의 아류인지나 알고 말한 것일까. 3일간의 포럼은 분야별로 “무엇을 어떻게 줄 것인가”가 주류였고, ‘문재인표 평화’의 철학적 이론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학술적 논의는 거의 없었다. ‘평화를 원한다면 조용히 힘을 길러 전쟁에 대비하라’는 현실주의적 평화관은 소개조차 되지 않았다. 포럼 둘째날에는 민간단체가 지원한 코로나19 진단키트를 북한 당국이 반송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상대방이 호응하지 않는 평화 논의는 청중이 없는 토론장만큼이나 공허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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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주의자들의 유전자엔 ‘경제’가 없다[오늘과 내일/신석호]

    김정은이 이끄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6차 전원회의’는 19일 결정서에서 “혹독한 대내외 정세가 지속되고 예상치 않았던 도전들이 겹쳐드는데 맞게 경제사업을 개선하지 못하여 계획되였던 국가경제의 장성목표들이 심히 미진되고 인민생활이 뚜렷하게 향상되지 못하는 결과도 빚어졌다”고 밝혔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이례적인 경제정책 실패 인정에 국내외 언론들이 한동안 큰 관심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것은 북한의 3대 세습 독재 지도자들이 경제 실정의 원인을 외부적 환경 탓으로 돌려온 틀에 박힌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여기서 ‘예상치 못했던 도전들’이란 코로나19 확산을 말하는 것 같은데 할아버지 김일성은 1993년 12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 보도’를 통해 더 구체적으로 환경 탓을 했다. “수많은 사회주의 나라들과 세계 사회주의 시장의 붕괴에 의해 (중략) 우리나라와 그들 나라 사이에서 전통적으로 행해져 온 경제협력과 무역거래가 부진하게 되었다. 이는 우리의 경제건설에 큰 피해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중략) 제3차 7개년 계획을 원래 예측한 대로 수행할 수 없게 만들었다.” 경제정책에 대한 책임 방기와 속죄양 찾기 역시 김 씨 일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전가의 보도’다. 생전 김정일은 “수령님(김일성)께서 경제사업에 말려들면 당 사업도 군대 사업도 할 수 없다고 여러 번 당부했다”고 말하며 굶어죽는 인민들을 방치했고 ‘고난의 행군’ 책임을 물어 숙청 놀음을 벌였다. 이번에도 경제정책 실행에 책임이 있는 간부들이 연일 노동신문 등을 통해 반성문을 쓴다고 하니 북-미 핵협상 타결에 실패해 국제사회의 제재를 풀지 못한 못난 독재자의 책임을 뒤집어쓸 속죄양 찾기도 시작된 모양이다. 1984년생으로 알려진 김정은은 자신의 37번째 생일인 내년 1월 제8차 노동당 대회를 열어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내놓겠다는 애드벌룬을 띄우고 권력을 유지해 보겠다는 속셈일 텐데…. 글쎄올시다. 대한민국도 앞이 안 보이는 ‘예상치 않았던 도전들’을 그렇게 감당할 수 있을까?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인데 말이다. 사회주의 경제를 ‘부족의 경제(economy of shortage)’라고 정의한 헝가리의 경제학자 야노시 코르나이는 ‘사회주의 체제―공산주의의 정치경제학’에서 공산당 독재가 사회주의 경제 피폐의 핵심 원인이라고 갈파했다. 여기서 파생되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 시장의 효율성을 앗아간 관료적 조정, 연성예산제약 등은 소련과 중국, 북한과 쿠바 등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공산당 독재라는 독립변수가 사라지지 않는 한 ‘부족의 경제’라는 종속변수 역시 변함이 없다는 말이 된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경제를 희생하는 행태는 동서고금의 사회주의 독재자들이 마찬가지다.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1924년 1월 사망한 블라디미르 레닌의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레닌의 유산인 신경제정책(NEP)을 폐기하고 농업 집단화와 급격한 산업화라는 경제정책의 좌경화를 단행했다. 그 결과 소련 전역에서 수백만 명이 굶어죽는 대기근을 초래했다. 김일성 역시 1956년 ‘8월 종파 사건’ 등을 통해 중화학공업화와 농업집단화에 반대한 우파들을 ‘종파주의’로 몰아 처단했다. 그나마 김일성에겐 스탈린이 만든 사회주의 우호경제라는 울타리라도 있었다. 핵을 들고 버텨보려는 김정은은 중국의 지원조차 제대로 받기 힘든 미증유의 고립 속에 빠져 있다. 코르나이는 “사회주의 정치와 권력, 이데올로기라는 유전적 프로그램(genetic program)에 변화가 없는 한 진정한 의미의 개혁은 어렵다”고 했다. 사회주의자들의 유전자 속에 경제란 없다는 말이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20-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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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지도자’ 조지 워싱턴을 생각한다

    얼마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우스다코다 주 러시모어산의 ‘큰 바위 얼굴’에 자신을 넣을 수 있을지 문의했다는 뉴욕타임스의 기사가 화제였다. 그가 재선에 성공하면서 외치와 내치에서 큰 성과를 이뤄낸다면 가능성이 없다 할 수는 없다. 중국의 부상을 제지하고 국제정치 무대에서 초강대국 미국의 위치를 더욱 굳건하게 하면서 코로나19의 창궐과 북핵문제를 해결한다면? 흑백 갈등과 신자유주의 양극화로 분열된 미국을 하나로 통합시킨다면? 하지만 전세계인이 위대한 정치적 지도자이자 고결한 인간적 스승으로 숭앙하는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일생을 깊이 알게 되면 그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인 저자는 “위대한(great) 지도자를 넘어 신의 영역에 한 다리 걸치는 거룩한(grand)지도자였다”며 “조국을 위한 무한한 애국주의와 아낌없는 헌신, 권력에 겸허한 거룩한 인품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워싱턴 대통령은 16세기 이탈리아가 낳은 현실주의 정치철학자 니콜로 마키아벨리도 꿈만 꿀 수밖에 없었던 “영원히, 영광스러운 새로운 창업자와 수성가”를 18세기 북아메리카 대륙의 현실에 구현해 21세기 유일 초강대국을 낳은 미국의 아버지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혁명군 최고사령관에서 개인의 자유와 재산, 생명을 강조한 존 로크의 사회계약론을 반영해 권력분립 그리고 견제와 균형을 기간으로 하는 미국 헌법을 기초한 헌법회의 의장, 초대 재선 대통령으로 봉직했다.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총사령관으로서의 그는 ‘무장한 예언자(Armed prophet)’였으며 대통령으로서의 그는 ‘비무장 예언자(Unarmed prophet)’였다. 마키아벨리는 역사상 무장한 예정자들만이 성공했으며 비무장 예언자들은 모두 실패했다고 주장했지만 워싱턴은 두 역할을 모두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저자는 이것이 가능했던 워싱턴의 능력과 덕목으로 비전과 분별력(Vision and Prudence), 천재적 군사전략(Genius Military Strategy), 용기(Courage), 장엄함(Magnanimity)을 꼽고 있다. 특히 그의 인격과 사람됨은 능력을 뛰어넘었다. 모든 공직에 오르는 과정에 후보가 되겠다고 손들지 않았으며 오로지 당대 미국 엘리트들의 만장일치로 추대됐다. 하지만 임무를 다한 뒤엔 언제나 시민이자 농부로 돌아갔다. 1783년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뒤 총사령관직을 사임하고 로마 공화정의 킨키나투스처럼 마운트버논의 자기 농장으로 미련 없이 돌아갔다. 6년 후에 신생 독립국 미합중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된 뒤 8년간의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스스로 다시 농부요 일개 시민으로 돌아갔다. 누군가의 독재 가능성을 스스로 모범을 보여 막은 것이다. 막 탄생한 국가를 위해 노예제도에 반대하지 않았지만 유언을 통해 죽은 뒤 자신의 모든 노예를 해방시켰다. 그의 뜻은 16대 에이브러햄 링컨에 의해 이뤄졌다. 워싱턴은 이후의 미국과 세계를 디자인했다. 전쟁은 정치의 수단이며 민이 군을 통제해야 한다는 프로이센의 전쟁철학자 칼 폰 클라우제비츠의 사상을 구현했다. 그가 대통령 직에서 퇴임한 뒤 유럽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이 벌어졌지만 미국은 워싱턴이 퇴임 고별사에서 강조한 중립주의, 고립주의를 견지함으로써 1900년대 1, 2차 대전을 계기로 세계 초강대국으로 떠오를 때까지 은은자중하며 국력을 키울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워싱턴은 오늘날 우리가 향유하는 근대 자유 민주주의의 창업자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암울한 일제강점기를 벗어나 분단과 동족상잔의 전쟁이라는 비극을 거치면서도 오늘날과 같은 민주공화국을 창업하고 수성해온 기적에는 미국의 도움이 컸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의 창업자요 수성가인 워싱턴처럼 위대한 능력과 인품을 가진 정치 지도자들을 아직 만나지 못하고 있다. 21세기의 한국인들이 18세기의 워싱턴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한 평생 국제정치학자로서 강학하면서 철학과 역사,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저자는 2014년 퇴임 후 한국지정학연구원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 갈 지도자들에게 필요한 리더십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 후학들과 함께 2017년부터 매월 세 번째 토요일 오후 네 시에 세계적인 지도자들의 일생을 공부하는 ‘세토네’ 모임을 갖고 있다. 대학원 석박사 세미나 강의 형식으로 윈스턴 처칠과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전기를 완독했다. 2017년 ‘한국의 지정학과 링컨의 리더십(고려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년 ‘윈스턴 S. 처칠-전쟁과 평화의 위대한 리더십(박영사)’를 출간했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2020-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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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이 정말 술 주고 설탕 받자 했다면[오늘과 내일/신석호]

    세 번째 평양 방문 때인 2003년 3월 북측 민족화해협의회 고위 관계자가 “인민들이 쓸 약이 필요하다”며 일장 연설을 했다. 좀 도와 달라는 취지였지만 그 속에는 북한 물건이 왜 질이 떨어지는지, 그것이 이른바 ‘고난의 행군’ 경제난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솔직한 고백이 담겨 있었다. “과거 사회주의 나라들이 살아 있을 때에는 우리가 땅콩을 집어주면 그쪽에서 페니실린을 주었습니다. 모든 게 우호적이었고 그래서 상품의 질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솔직히 그래서 우리가 좀 게을러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회주의 나라들이 우리를 배신하고 자본주의 체제로 가버리자….” 2007년 쿠바 아바나를 방문했을 때에도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아바나대 박사 출신인 호세 아리오사 씨의 회고. “소련과 물물교환을 할 때가 쿠바 사회주의의 황금기였습니다. 쿠바는 소련이 주는 원유로 비싼 차를 굴렸고 남은 것을 국제시장에 팔기도 했어요. 우린 설탕만 공급하면 그만이었지요. 그 결과 쿠바는 설탕이나 럼주, 담배 정도만 생산할 수 있는 나라가 됐습니다. 그런데 소련이 사라지자….” 우호무역과 청산결제가 가져온 모럴해저드는 북한과 쿠바 경제가 지금도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다. 냉전 시절 사회주의 맹주였던 소련은 두 나라를 정치적 영향력 아래 두기 위해 말 그대로 ‘퍼주기’를 했다. 질 낮은 땅콩이나 설탕과 고가의 원유를 비등가적으로 맞바꾸는 우호적 물물거래와 청산결제는 북한과 쿠바를 타락시켰다. 1992년 소련이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했을 때, 북한과 쿠바는 아무런 능력 없이 시장으로 내던져졌다. 이름도 생소한 민간단체가 북한의 술과 남한의 설탕을 물물교환하는 계약을 맺었고 통일부가 승인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선 불편했다. 그동안 북한 지도부는 도대체 뭘 한 거지? 쿠바도 1990년대 초반 ‘특별한 시기’라는 혹독한 경제위기를 겪었지만 30년 동안의 개혁과 개방을 통해 조금은 살 만한데. 인민들 먹여 살리는 것보다 세습독재 체제의 대를 잇느라 바빴던 북한은 이제 그 옛날 물물교환을 다시 하자고? 한편으로 그 소식이 궁금한 이유는 과연 김정은이 계약 내용을 알고 사인했을까 하는 것이다. 김정은은 핵을 가졌다고 주장하며 남북한 경제관계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접근법을 피력해 왔다. ‘옛날처럼 구걸하는 듯한 인도적 지원은 받지 않겠다. 핵국가 북한에 걸맞은 대규모 경협계획을 그려 와라.’ 근데 겨우 1억5000만 원(약 12만6000달러) 상당의 물물교환에 사인을 했다고? 그것도 술 주고 설탕 받는? 김정은은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 나갔다가 망신을 당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말을 잘못 들었기 때문이라며 남한 것은 일절 아무것도 받지 말라고 하지 않았는가. 한기범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은 “만일 김정은이 이를 알고서도 사인했다면 경제 사정이 정말 심각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남한이 주는 설탕 167t이라도 받아 평양 특권층 아이들 단과자라도 만들어 돌려야 충성심이 유지될 정도라는 것밖에 안 된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2016년 이후 핵능력 강화 국면에서 국제사회가 켜켜이 쌓아올린 대북제재가 드디어 효과를 발휘한다는 증거일 수 있다. 통일부 내에는 북한학자도 많은데,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물물교환이 유엔의 제재 대상인지를 떠나 제재의 정신을 생각하면 답은 뻔하다. 핵 들고 버티겠다는 의도가 뻔한데 버티도록 도와주는 게 답인가? 술 받고 설탕 주어서 과거 소련처럼 북한을 컨트롤할 수 있나? 막 부임한 장관은 당장 보여줄 게 필요하겠지만 좀 더 시간을 끌면서 ‘핵을 포기하면 설탕보다 더 큰 것을 줄 수 있다’고 설득하라. 길게 보면 그게 답이지 않나.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20-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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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의 북한이 그때 북한인 줄 아나?[오늘과 내일/신석호]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2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그의 대북인식과 정책방향을 시사하는 대화가 오갔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이면합의서를 공개하기 전 “국정원장의 임무 중에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라는 임무가 있느냐? 국정원법 어느 조항에 그런 것이 있느냐”고 따졌다. 박 원장이 “대통령님께서 제게 과분한 소임을 맡기신 뜻은 경색된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라는 국민의 열망을 반영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히자 간첩도 잡고 대북 정찰도 해야 할 국정원장이 대화에만 매달리면 되느냐는 정당한 추궁이었다. 조태용 통합당 의원이 “과거에 대북 불법 송금이라는 방법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역이다 하는 이미지가 따라다닌다”고 하자 박 원장은 “반세기 만에 남북대화를 성사시킨 주역이라 이렇게도 좋게 생각한다”고 받아쳤다. 이어진 주 원내대표와의 대화에서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해서 북한은 처음부터 우리가 무슨 박테리아냐, 햇볕 비춰서 다 죽인다는 소리냐 이런 오해가 있었는데, 6·15남북정상회담 이후 이러한 것들이 많이 불식되어서…”라고 장황하게 홍보했다. 현대그룹의 5억 달러로 만든 20년 전 정상회담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듯했다. 남북대화의 주무장관인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더 노골적으로 과거를 소환했다. 23일 청문회 모두발언에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남북관계 발전과 북핵 문제 해결을 연계시키지 않고 병행함으로써 국제사회를 설득하고 북한의 협조를 이끌어 낸 경험에 주목해야 한다. 병행진전의 출발점은 남북관계의 복원”이라고 강조했다. 장관 지명 직후 “평화로 가는 오작교를 다 만들 수는 없어도 노둣돌 하나는 착실하게 놓겠다”며 자신의 대북 인식이 박 원장보다 더 오래된 것임을 드러냈다. 남과 북을 헤어진 남녀로 치환해 무조건 만나야 한다고 노래했던 1980년대 민중가요 ‘직녀에게’를 읊은 것이다. 그래, 그들에게 좋은 시절이 있었다. 전두환 노태우 군부 권위주의를 타도하기 위해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를 외쳤던 아래로부터의 통일운동이 대중의 지지를 받던 시기가 있었다. 비민주적 국가에 저항을 결집하는 정치적 도구로서 민족담론이 먹혔던 것이다. 신격화된 북한 독재자 개인의 인식을 바꿔 남북대결의 구조를 바꾸겠다는 김대중식 햇볕정책은 그것을 역이용해 ‘고난의 행군’ 경제난을 벗어나 보겠다는 김정일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졌다. 경제적 이익을 노린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이 판돈을 내고 정치적 이익은 남북의 최고지도자가 보는 거짓 평화가 진짜처럼 보였던 시절이 있긴 했다. 허나 어쩌랴, 가버린 시절인 것을. 1980년대 거리에서 남한의 대학생들이 외쳤던 ‘민족’이 순수한 민족주의의 발로였다고 치더라도 노동당 통일전선부를 통해 집요하게 개입했던 북한의 속셈은 오로지 ‘김일성 민족국가’의 영속과 확장이었음을 이제는 모두가 다 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남북대화는 햇볕정책이 먹혀서가 아니라 남한과 샅바를 잡다가 잘못되더라도 내부 동요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권력을 장악했다고 확신한 말년의 김정일이 상대방이었기에 가능했던 ‘예외적 시기’였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끝난 2008년부터 미중 패권경쟁이 시작되면서 핵보유국 지위를 향해 내달린 북한은 이제 스스로를 미국과 경쟁하는 강대국인 양 행동하고 있다. 핵을 가진 3대 세습 독재자 김정은은 핵이 없는 약소국 남한을 더 이상 민족공조의 파트너로, 경제 지원의 은인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김씨 독재자들이 측근을 대하듯 복종만을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아직 좋았던 과거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북한은 더 이상 그때 그 나라가 아니라는 말이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20-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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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들을 ‘진짜 세상’으로 끌어내는 용기[오늘과 내일/신석호]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이던 2018년 12월 초. 거실에 조립해 세운 크리스마스트리에 일찌감치 손편지가 걸렸다. “산타 할아버지! 저는 아이패드가 갖고 싶어요.” 헐,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언론사 디지털뉴스팀장이 생업이지만 아이들은 가급적 늦게 온라인 세상을 만나게 하고 싶었다. 유튜브 볼 시간에 책과 신문을 읽고, 친구들과 단톡방 채팅을 하는 대신 길거리에서 공을 차고 뛰노는 게 정신과 육체의 발육에 더 좋다고 생각했다. 아이패드를 탄생시킨 스티브 잡스도 생전에 그렇게 아이들을 키웠다지 않은가. “산타 할아버지가 애플 판촉원도 아니고, 그런 고가의 물건을 달라고 하는 것은 산타 정신에 위배되는 거란다.” 설득했지만 소용없었다. “내 친구는 이미 작년에 받았는데?” 성탄절 이브에 아내와 토론을 벌였다. 정중하게 타이르는 산타의 편지를 걸고 장난감 아이패드를 놓자고 했다. 아내는 아이 꿈을 꺾기 싫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제일 싼 구형 제품을 구하느라 성탄절 3일 뒤에야 트리 밑에 놓았다. “아빠 엄마가 걱정하지 않게 공부를 위해 꼭 필요할 때만 보렴, 산타가∼”라는 편지와 함께. 그런 충고를 따를 수 있다면 아이가 아닌 것이었다. 지난해 초 유튜브에 빠져 허우적대는 아들을 보면서 용기를 냈다. “이제 그만하자. 더 이상 산타는 없어. 아빠 돈을 써가며 내 아이를 망칠 수는 없다.” 그렇게 아들은 산타가 없는 진짜 세상으로 나왔다. 아이패드는 장롱에 감금됐고 전화만 할 수 있는 ‘공신폰’이 지급됐다. ‘온라인 세상에서 아들 구하기’는 성공하는 듯했다. 올해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 5학년이 된 아들은 온라인 수업을 듣기 위해 종일 노트북에 코를 박고 지낸다. 선생님, 친구들과 학사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 아이패드가 사면됐고 공신폰은 진짜 스마트폰으로 대체됐다. 스마트폰을 보는 문제로 엄마와 다투고 온라인 대화에 몰입하는 아들을 보면서 걱정이 컸다. ‘저러다 책을 읽고 상상하는 기쁨도 모르고, 사람과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진짜 삶의 지혜에서도 멀어지면 어쩌지?’ 과도한 온라인 관계는 고독할 자유마저 앗아간다. 미국 조지타운대 컴퓨터공학과 부교수인 칼 뉴포트는 지난해 한국어로 번역된 저서 ‘디지털 미니멀리즘’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알림음과 무한으로 연결되어 있는 온라인 세상과 정보들에 휩싸여 정작 몰입해야 하는 것에 시간을 투자할 수 없고, 늘 만성피로에 시달리고 있는” 요즘 세태를 경계했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인간은 홀로 고독할 때 사색하고 창조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취임 후 백악관으로 몰려드는 손님들을 피해 수도 워싱턴 북쪽의 별장에 가 홀로 밤을 지내며 국정을 구상했다는 일화도 나온다. 국가와 사회가 ‘집에서 조용히 있을 것’을 강요하는 요즘은 아빠들에게 강한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강요된 ‘집콕’은 역병의 확산을 막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을 진짜 세상과 멀어지게 만든다. 아빠가 모든 책임을 지고 틈날 때마다 아이와 함께 안전한 야외로 나서는 길을 택한 뒤 이른 봄부터 ‘캠핑 열풍’에 동참했다. 쉬는 날이면 아이들과 인적이 드문 산과 강, 바다에 텐트를 치고 ‘불멍’(화로대에 장작을 태우고 시간을 보내는 놀이)을 하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잠을 청하고 있다. 진짜 세상은 간단치 않다. 막 50세가 넘은 아빠는 나이를 잊고 계곡물에 뛰어들었다 고막을 다치고, 중학교 3학년 딸은 낡은 샤워장에 들어갔다 손잡이 고장으로 갇히기도 했다. 아들은 텐트 문틈으로 들어온 모기 밥이 되고 모든 것은 아내를 화나게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는 것 같다. 그게 진짜 세상이라는 것을.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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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을 대하는 경이원지의 지혜[오늘과 내일/신석호]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꽃다운 나이의 젊은 46용사가 숨을 거두기 직전인 2010년 3월 초. 북한에 다녀온 인사가 북측 당국자의 경고를 기자에게 전했다. “8일부터 시작되는 키리졸브 한미 연합 군사훈련 기간 동안 남한과 미국의 전투기가 비록 공해상일지라도 북측을 향해 기수를 돌릴 경우 이를 공격으로 간주하고 대응할 것이다.” 머지않아 군부가 할 일을 정반대로 재구성해 귀띔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3월 26일 밤 전투기가 아니라 해군 초계함인 천안함이 침몰했다. 동쪽 하늘이 아니라 서쪽 바다였고, 키리졸브 연습이 끝나고 독수리훈련이 시작된 때였다. 북한 당국자는 최고지도부가 왜 화났는지도 설명했다. “우리는 금강산과 개성 관광 재개를 위해 노력하고 개성공단 근로자나 동해상으로 월경한 ‘800연안호’를 석방하는 등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남측은 필요한 것들만 얻어 위기만 모면하려고 진정성 있는 대화를 진행하지 않았다.” ‘진정성 있는 대화’란 2009년 가을 정상회담 논의였다. 2008년 8월 뇌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죽기 전 아들 김정은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2009년 8월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하자 김양건 통전부장 등을 조문단으로 보내 ‘대남 수금 작전’에 돌입했다. 이어 당국 간 정상회담 논의가 시작됐다. 돌이켜보면 이명박 정부는 ‘북한을 끌어냈다’고 기뻐할 일이 아니라 정중히 거절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싱가포르에서 김양건을 만난 임태희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국군포로 일부의 고향 방문과 대북 인도적 지원을 골자로 한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양해각서’에 덜컥 서명했고, 보고를 받은 이 대통령이 국군포로 관련 요구는 더 키우고 인도적 지원 요구를 거절했다. 김정일에게 양해각서를 보고하고 재가를 받은 김양건은 “대기업이 중소기업 후리듯이 하느냐”며 거세게 항의했다고 한다. 북한과 대화의 샅바를 잡았다가 오히려 군사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불편한 시나리오는 10년 뒤인 지금 반복되고 있다. 애초에 비핵화 의지가 없었던 북한이 먼저 ‘미국과 대화하고 싶으니 다리를 놔 달라’고 했는지, 문재인 정부가 먼저 ‘미국과 대화하게 해 주겠다’고 공작을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모든 외교적 춤판(fandango)은 한국이 만든 것이었고, 이는 김정은이나 우리(트럼프)의 진지한 전략보다는 한국의 통일의제에 더 연관된 것’이었다며 두 번째 가설에 무게를 실었다. 볼턴의 인식이 ‘통일의제’이지 사실은 문재인 정권의 생존이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 탄핵 파동으로 준비 없이 정권을 잡은 뒤 북한과의 화해무드는 좋은 통치 카드였다. 남북관계를 국내정치에 이용한 것은 역대 정부가 모두 같지만 이번엔 부작용이 좀 심한 것 같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못한 ‘평양 연설’의 호사는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잡는 형국이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생전 북한을 대하는 태도로 강조했던 ‘경이원지(敬而遠之·겉으로 공경하는 체하면서 멀리함)의 지혜’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황 전 비서는 “진짜 공경하라는 게 아니라 외견상 국가로 대접하는 척은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상 우리 영토요 국민이지만 김씨 일가가 지배하고 있고 우리를 괴롭힐 수 있는 군사력도 보유하고 있는 점은 인정해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은 피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신격화된 김씨 일가의 시대착오적인 수령 절대주의 세습 독재 체제를 가까이하면 반드시 화를 당한다”고 경계했다. 이명박 정부는 멀리하려 했지만 자존심을 건드린 경우라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자존심까지 버리고 너무 가까이 간 ‘죗값’을 치르고 있는 것 아닐까.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20-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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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갑작스런 대남 도발 보류…김정은의 속셈은?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이달 4일부터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대남 공세의 전면에 나섰을 때, 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할 일을 김여정이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이 제기됐습니다. 당시 채널A 방송에 나가서 두 가지 측면을 이야기했습니다. 우선 김정은이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 이후 미국과 남한에 대해 화가 날 때까지 났고, 김여정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등 참모들이 이 화를 풀고 살아 남기 위해 대남 공세 카드를 집어 들었을 가능성이었습니다. 다음은 협상론의 측면입니다. 공세에는 끝이 있기 마련인데 김정은이 공세를 하고 김정은이 돌아서는 모양새는 보기에 좋지 않기 때문에 공세는 김여정이, 돌아서기는 김정은이 하기로 역할분담을 했을 것이라는 추정이었습니다.오늘 김정은이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라는 것을 열어 군이 추진하고 있는 대남 군사행동계획을 보류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보도가 나온 뒤 그럼 왜 김정은은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북한 내부의 사정을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앞에서 말씀드린 두 가지 측면에서 그 원인도 추정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우선 김정은의 화를 풀고 살아남기 위해 김여정과 김영철이 대남 도발을 진행했다면 이를 지켜보던 김정은이 ‘어, 수고했는데, 너무 나가진 마라’는 사인을 보낸 것일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김정은의 화가 어느 정도 풀렸기 때문인지, 아니면 남한에 대한 도발이 가져 올 여러 가지 비용을 생각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요.두 번째로 협상론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 또한 사전에 잘 계획된 수순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여정과 김영철은 도발을 하는 흉내를 내고 남한과 미국의 반응을 살핀 뒤 김정은이 어느 수준에서 숨을 고르는 연출을 미리 준비했을 가능성입니다.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보류’이기 때문에 아주 안할 것인지, 아니면 한국과 미국의 반응을 본 뒤 다시 사용할 것인지도 논의가 되어 있거나 논의할 것으로 보입니다. 전형적인 북한의 2중 전술(도발과 긴장완화를 번갈아 주도권을 유지하는 전술)이요 살라미 전술(수단을 잘게 쪼개 긴장을 고조시키거나 완화하는 수법)이라는 이야깁니다.오늘 노동신문 보도를 보면서 새로운 가능성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북한 지도부의 계산법 속에 대남 공세는 대미공세에 비해 한 단계 급이 낮은 것이기 때문에 대남공세는 김여정이, 대미공세는 김정은이 맡기로 역할이 분담되어 있을 경우입니다. 김여정이 주도하는 대남공세의 숨을 고르면서 김정은이 직접 나서 대미공세를 시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오늘 노동신문 보도에는 “예비회담에는 제5차 본회의에 상정시킬 주요 군사정책 토의안들을 심의하였으며 본회의에 제출할 보고, 결정서들과 나라의 전쟁억제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국가적 대책들을 반영한 여러 문건들을 연구하였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만일 이것이 미국을 자극하기 위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을 포함한 전략무기 시험이나 공개 등을 의미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북한이 대남 도발을 보류했다고 안심하거나 좋아할 것이 아니라 더 큰 싸움이 벌어질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 20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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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은 적이다… 아직도 모르는 척하나?[오늘과 내일/신석호]

    2012년 대통령선거 전 이명박 정부를 이을 새 정부의 남북관계를 전망하는 글에서 북한의 김정은이 한동안 남북관계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아직 미숙한 젊은 지도자가 남한과 샅바를 섣불리 잡았다가 잘못되면 갓 출범한 3대 세습 독재정권 자체에 위기가 올 것쯤은 알리라는 게 근거였다. 박근혜 정부 내내 남북관계가 지지부진했고 전망은 맞는 듯했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에 그의 특사 자격으로 김여정이 내려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김정은의 대남 구애는 외견상 전격적이고 파격적이었다. 김정은이 집권 6년 만에 ‘대남사업’의 샅바를 잡은 데는 여러 요인이 있었다. 2016년부터 2년 동안 최고로 끌어올린 핵능력을 대충 보유하면서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를 풀기 위해서는 한국과의 평화 코스프레가 필요했다. 출범 초기 정치도 경제도 되는 게 없었던 문재인 정부는 그런 북한을 다양한 방법으로 유인했을 것이다. 둘의 공생은 성공하는 듯했다.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내치기 전까지는. 이런 불편한 진실을 상기한다면 ‘역사상 가장 좋았던’ 남북관계가 최근 갑자기 ‘대적관계’가 된 것이 아니다. 최고지도자들의 동상이몽 속에 겉으로만 좋아 보였을 뿐이다. 김여정과 탁현민의 현란한 이미지 정치 속에 실질적인 관계는 크게 진전된 것이 없었다.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은 김정은과 문 대통령 그리고 측근 일부만이 반복해 등장하는 연속극처럼 보였다. 이산가족 상봉은 한 차례에 그쳤고 민간 교류는 거의 진전되지 않았다. 국제정치학의 신기능주의가 말하는 ‘낙수 효과’, 즉 당국 간의 좋은 관계가 민간 차원의 교류와 협력으로 확산되는 현상이 없었던 것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와의 결정적인 차이다. 북한의 핵개발과 켜켜이 쌓인 대북제재 때문에 정부도 민간도 북이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없었다. 김정은의 대남 평화 공세는 위선적이었다. 트럼프에게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며 제재를 푸는 데 남쪽을 활용했고 이젠 포기한 것 같다. 트럼프의 생각이 변할 것 같지도 않고 문 대통령에게 그럴 능력이 없다고 제 입으로 질타하지 않았는가. 김여정은 그러면서 남측을 향해 ‘적은 적이다’라고 했는데, 그걸 지금 알았나? 할아버지 김일성의 권력욕으로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을 치른 남과 북은 기본적으로 대적관계다. 하나가 죽어야 끝날 것 같은 체제 경쟁은 70년이 된 지금도 끝나지 않고 있다. 소련과 중공이라는 외세를 등에 업고 동족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김일성의 과오를 감추기 위해 전후 북한 지도자들은 미국을 제국주의로, 남한을 신식민지 파쇼 국가라 낙인찍은 뒤 주기적으로 대미, 대남 도발을 하며 체제의 정당성을 유지하려 했다. 이런 제도화된 적대관계에 기생하는 권력자들이 있었다. 정치군인으로 평생 남측을 골탕 먹이는 데 전문성을 쌓아온 김영철 당 부위원장이 대표적이다. 그런 자들의 권유와 설득 속에 김정은이 집권 10년 가까이 할아버지, 아버지 때와 같은 대형 대남 도발을 자제해온 것 자체가 오히려 비정상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에겐 남한을 잘못 건드리면 미국에 얻어맞는다는 지혜라도 있었다. 젊은 김정은과 김여정 남매에게 그럴 자제력이 있을까. 북은 적을 적이라 하며 속내를 드러내는데 문재인 정부는 여전히 친구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김여정의 한마디에 말도 안 되는 법 조항으로 대북전단을 불법화하며 국제적인 망신을 무릅쓰고 있다. 1980년대 군부 권위주의와 맞서는 과정에 대안체제로 잘못 받아들인 김일성 북한의 환상을 아직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김정은을 판문점과 싱가포르, 하노이로 끌어내는 과정에 말 못 할 약점이라도 잡혔기 때문일까?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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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김씨 일가가 핵에 집착하는 이유[오늘과 내일/신석호]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제7기 제4차 확대회의를 열어 “나라의 핵전쟁 억제력을 더 한층 강화하고 전략무력을 고도의 격동상태에서 운영하기 위한 새로운 방침들”을 제시한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당 최고 기구인 중앙위원회가 지난해 12월 28일부터 31일까지 열린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세상은 곧 머지않아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에 후속 조치는 당연히 나와야 할 터였다. 확대회의 발표문에 미국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은 지난해 12월과 다르다. 전원회의 때는 “앞으로 미국이 시간을 끌수록, 조미 관계의 결산을 주저하면 할수록 예측할 수 없이 강대해지는 위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며 미국의 양보를 요구하는 대목이 있었다. 미국과의 대화 기대를 버리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실험 등 전략 도발을 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읽히는 대목이다. 24일 조선중앙통신 보도로 회의가 알려진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이 시진핑 주석의 중국에 사실상의 신냉전을 선포하는 ‘미국의 대중국 전략보고서’를 20일 의회에 제출했다는 소식이 전 세계에 타전된 직후였다. 보고서는 중국에 대해 ‘약탈 경제’ 등의 비난을 퍼부으며 전략핵무기 3축 체계의 현대화로 힘을 통한 평화를 유지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강조했다.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북한은 10월 2일 SLBM 발사 실험을 했는데, 역시 미중이 핵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을 뽐내며 갈등하던 참이었다. 북한의 도발은 중국이 10월 1일 둥펑-41을 선보이고 미국이 2일(현지 시간) 미니트맨3 발사 실험을 한 직후에 이뤄졌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에 맞서며 ‘강대국 코스프레’를 해왔다. 이번에도 ‘당신이 핵무력을 강화하는데 우리도 가만있을 수 없다’는 명분을 들어 SLBM 발사 실험에 따르는 정치적 저항을 최소화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북한이 ‘미국에 얻어맞을 위험’을 피해 틈만 나면 핵무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북한의 김씨 일가는 왜 대를 이어 핵에 집착하는 것일까. 학자들은 세 가지 차원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최고지도자 개인의 인식과 선호(개인 차원), 수령 절대주의라는 북한 체제의 특수성(국가 차원), 세계정부가 없는 국제 체제에서의 안보 딜레마(국제정치 차원)가 그것이다. 고 케네스 왈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전쟁의 원인을 탐구해 쓴 고전 ‘인간, 국가, 그리고 전쟁(Man, the State and War)의 분석 수준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왈츠는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정부적 국제 체제라고 보았지만 김씨 일가의 핵 개발은 다른 것 같다. 모든 국가들이 아노미적인 국제 질서 속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국가 안보를 추구하지만 모든 국가들이 핵 개발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비슷한 조건의 독재정권이 모두 정권 안보를 위해 핵 개발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이보다는 ‘개인’ 나아가 ‘개인들’에 답이 있다. 김일성은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는 권력욕에 6·25전쟁을 일으킨 뒤 미국의 핵 공격 위협에 시달렸다. 전쟁 직후인 1950년대 중반부터 핵 개발을 시작했고 미국이 소련을 해체시키고 유일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1993년 1차 핵 위기라는 도박을 시작했다. 같은 경험을 한 북한의 전쟁세대들을 ‘미국은 우리를 핵으로 공격하려 한다. 좀 가난해도 핵을 가져야 너도 나도 살 수 있다’고 선동해 비정상적인 독재 체제를 구축하고 유지했다. 아들에게는 ‘핵을 들고 미국과 대치해야 권좌를 지킬 수 있다’는 진짜 유훈을 남겼을 것이다. 북한의 핵 보유 야욕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3대 세습 후계자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기대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지적하려는 것이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20-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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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19가 바꾼 ‘김정은 스타일’[오늘과 내일/신석호]

    집권 직후 김정은은 활발한 현지지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무뚝뚝했던 아버지 김정일과는 달리 청년과 여성 등 주민들을 끌어안고 웃으며 ‘애민정신’을 가진 새로운 지도자임을 홍보했다. 그렇게라도 대중의 지지를 얻어 부족한 정통성을 보완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다 얼마 후엔 군부대를 찾아 나이든 군 간부들을 옆에 불러 세우고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치는 모습을 연출했다. 주민에겐 자상하게, 권력자들에겐 엄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김정은 스타일’이었다. 두 유형의 현지지도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밀접 접촉형’이라는 것이다. 조선중앙TV를 보고 있자면 ‘김정은이 보통 사람 냄새 좀 맡았겠구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민들과 밀접하게 접촉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방송을 통해 보는 다른 주민들이 마치 최고지도자와 대면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려는 이미지 정치였다. 방송을 보는 군 간부들이 자신도 혼쭐이 나는 느낌을 주는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김여정과 같은 선전선동 전문가들은 ‘가까이 더 가까이’를 요구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이 권력을 공고화해 가면서 ‘밀접 접촉형 현지지도’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엔 완전히 사라졌다. 미국 CNN 보도로 확산된 신변 이상설을 잠재우려 급히 준비된 것으로 보이는 1일 비료공장 방문이 대표적이다. 최고지도자는 일단의 최고위 간부들의 수행을 받으며 테이프 커팅을 하고 공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지만 공장 근로자들과의 접촉은 일절 없다. 마스크를 쓴 근로자들은 단상 아래 줄지어 서 박수를 치는 구경꾼일 뿐이다. 장소가 확인된 공개 활동으로만 보자면 김정은은 벌써 한 달 이상 수도 평양을 비우고 있다. 지난달 11일 평양의 노동당 중앙위 본부청사에서 당 정치국 회의를 주재했다고 보도된 것이 마지막이다. 북한은 아직 코로나19 확진자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김정은이 코로나를 피해 원산의 집무실에서 장기 체류하고 있다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만일 정치국 회의를 평양이 아닌 원산 집무실에서 했다면 3월 17일 평양종합병원 착공식장에 나타난 뒤 두 달 가까이 평양을 비우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접촉의 정도와 지역을 막론하고 현지지도 자체가 크게 줄었다. 국가정보원은 올해 김정은의 공개 활동이 17회로 예년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고 6일 밝혔다. 14일까지 13일 동안 공개 활동 보도가 없었다. ‘수령 결사옹위’를 생명으로 하는 북한 체제에서 김정은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은 지고의 가치다. 최고지도자의 권위 때문에 마스크를 쓸 수도 없고 아예 현지지도 자체를 줄이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지지도는 김씨 3대 세습 독재가 대를 이어 구축해 온 독특한 통치행위다. 김일성 주석은 1956년 12월 11∼13일 열린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사회주의 건설에서 혁명적 대고조를 일으키기 위하여’라는 연설을 한 후 그달 28일 강선제강소(현 천리마제강기업소)를 방문했다. 최고지도자가 현장에서 지시한 내용은 당군정의 간부들에게 공유되고 노동신문 등 매체를 통해 일반 주민들에게 알려진다. 해당 사업에는 국가의 자원이 우선 배분되고 그 성과는 지도자의 국정 수행 능력으로 다시 홍보된다. 현지지도가 줄어든다고 국정이 마비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60여 년 동안 수령이 현장에 떠야 일이 돌아가도록 길들여진 북한 체제의 특성을 감안하면 최고지도자의 리더십과 국정 능력의 약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김정은 신변 이상설은 진화됐지만 북한도 코로나19가 촉발한 ‘언택트(비대면)’ 격변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20-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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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떻게 ‘평양의 봄’을 앞당길 것인가[오늘과 내일/신석호]

    “김씨 왕조 이외의 것을 생각한 이들은 대부분 죽거나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졌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이들은 대대로 현 체제의 혜택을 받아 현상 유지가 실질적인 이익이라 생각하거나 불만이 있어도 ‘공연히 나섰다가 내 목숨만 날린다’고 침묵하는 사람들이죠.”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할 때 현지 한반도 전문가들이 “북한 사람들은 왜 김씨 일가 세습 독재에 ‘역심(逆心)’을 품고 변화를 위해 행동하지 않느냐”고 질문할 때마다 이렇게 설명해줬다. 전자의 적극적인 부역자들은 소수일 것이다. 문제는 후자와 같은 다수의 소극적인 패배주의자들이다. 수령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도록 짜놓은 정교한 밀고의 시스템과 이를 통한 주기적인 숙청의 경험은 엘리트와 대중에게 ‘헛된 죽음보다는 비굴한 생존이 낫다’는 지혜를 터득하게 했다. 학자들은 이를 ‘정치적 효능감(political efficacy)’이 낮은 상태라고 말한다. ‘내가 나서면 정치가 바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우리 정치사의 4·19혁명, 6월 민주항쟁 등과 같이 혁명은 정치적 효능감을 가진 다수가 모여야 이뤄진다. 언제나 소수의 엘리트가 횃불을 들지만 침묵하던 다수가 책을 덮고 와이셔츠를 걷어 올리고 도서관과 사무실에서 거리로 뛰쳐나올 때 비로소 기존 질서가 무너지는 것이다. 평양 노동당사 앞에서도 청년들이 다양한 정치적 미래를 토론하던 때가 있었다. 이들이 김씨 독재의 철퇴를 맞아 하나둘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북한 엘리트와 대중의 정치적 효능감은 ‘0’에 수렴해 왔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이들을 ‘독재가 만들어낸 청맹과니(눈은 뜨고 있으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라고 불렀다. 그를 포함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을 떠나온 이들은 그나마 ‘생각이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3대 세습 독재자인 김정은이 지난달 11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주재한 뒤 공개 활동을 하지 않자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매스미디어에 등장해 ‘김정은 이후’를 논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를 비롯한 다수 고위급 탈북자들은 일단 김정은의 동생인 김여정이 실권을 잡겠지만 여성인 그가 권력을 공고화하지 못하면 김정일의 배다른 동생 김평일이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2014년 탈북해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리정호 씨도 김여정이 수령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김평일 세력을 탄압하고 엄청난 공포정치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한발 더 나아갔다. 김정일 김정은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노동당 39호실 간부 출신인 그는 지난달 26일 동아닷컴에 보내온 특별기고에서 “일부 사람들이 김정은 사후에 김여정과 김평일에게 (권력이) 넘어간다고 예측을 하고 있는 것은 김일성 가문의 왕조체제를 정당화해주는 매우 옳지 못한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 북한 고위층들도 김정은 체제의 잔인한 공포 통치와 억압에 증오와 분노를 느끼고 있다. 그래서 나는 북한 엘리트들이 올바른 결정과 선택을 하도록 적극 지지하고 지원해주며 고무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호소했다. 기고문에 ‘김여정·평일 후계론은 북한 주민에 대한 모독이다’라는 제목을 달면서 반성과 각성을 했다. 칼럼을 쓰고 방송에 출연하면서 북한 사람들이 ‘청맹과니’임을 전제로 한 ‘백두혈통 승계론’을 무비판적으로 전달한 것은 아닌가. 김여정이냐 김평일이냐, 김정은 후계 점치기가 아니라 김씨 세습독재를 어떻게 끝낼지 고민할 때가 아닌가. ‘평양의 봄’을 이끌 북한 엘리트들의 정치적 효능감을 높이기 위해 나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김정은 은둔 소동이 가져다준 값진 소득이었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2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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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김정일 건강 이상과 비교한 ‘김정은 중태설’[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2008년 동아일보의 통일부 출입기자로 일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건강 이상설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당해본 기억이 다시 떠오릅니다. 김 위원장은 직전까지 평양과 북한 전국을 현지지도하며 활발한 외부 활동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그 해 8월 중순 이후 외부활동을 하지 않자 마치 21일 현재처럼 다양한 추측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돌이켜보면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등의 당국자들은 비교적 일찍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 징후를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확인됐지만 프랑스의 뇌혈관계 전문의가 베이징을 통해 평양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고, 그가 찍어 나온 김 위원장의 뇌사진도 확보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내 극소수 당국자만 이 사실을 공유했지만 당국자들은 이런 저런 방법으로 기자들에게 뭔가 벌어지고 있음을 암시했습니다. 한 당국자는 기자들에게 가정하듯 “이럴 때 김정일 뇌사진이라도 입수하면 참 좋을텐데…”라고 사실상 정보노출을 했습니다.하지만 기자들은 이를 확인할 수 없었고 북한 정권 수립 기념일인 9·9절 열병식에 김 위원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 그의 건강 이상설을 기사화할 수 있었습니다. 정보 당국도 ‘뇌혈관계 질환’ 정도로 확인을 해주었습니다. 8월에 스트로크가 있었고 프랑스 의사 주도의 수술을 받았지만 왼쪽 손과 다리에 마비 증상이 있는 것으로 나중에 확인되었습니다. 북한 당국도 김 위원장이 10월 수술 후 처음으로 군부대의 축구경기장에 나타나 관람하는 사진을 보도하는 것으로 이 사실을 확인했습니다.당시와 비교할 때 20일 밤 데일리NK와 21일 오전 미국 CNN의 보도로 확산된 ‘김정은의 수술 후 중태설’은 사실과 차이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청와대가 오전부터 사실을 부인하다가 오후에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확인한 것이 2008년과 크게 다른 점입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대북 정보기능이 크게 약화되었다고는 하지만 북한의 동향을 휴민트(대인정보)와 감청 등으로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은 역시 대한민국 정부일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4월 15일 태양절에 김정은이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가벼운 스텐트 시술이나 다리 골격 수술 등을 받았을 수는 있지만 곧 회복해 지도력에 지장이 올만한 신체적 정신적 문제는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하지만 김정은의 건강 문제는 언제라도 북한 체제의 변동을 초래할 수 있는 변수입니다. 심혈관계 질환 등 가족력이 있는데다 후계자로 지명된 이후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일부러 살을 찌웠고, 정치적으로 홀로서기를 하는 가운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고모부 장성택과 이복형 김정남을 처형하고 암살한 정치적 만행의 기억, 지난해 2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협상이 깨지고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가 풀리지 않는 외부 환경에서 내부 권력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은 현재 그의 스트레스 지수를 더 높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2020-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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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여정은 김정은의 후계자가 될 수 있을까[오늘과 내일/신석호]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은 북한 노동당의 제7차 당대회 개최를 앞둔 2016년 4월 통일연구원 등 4대 안보 싱크탱크 연구위원 102명을 상대로 한 전문가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여러 문항 가운데 ‘당대회 이후 북한의 2인자로 떠오를 인물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23%가 당시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던 김여정을, 21.2%가 국가안전보위부장이던 김원홍을 꼽았다. 1면 기사의 해설과 전망은 이랬다. “김정은이 ‘백두혈통’인 여동생 김여정과 집권 전부터 자신의 체제 공고화를 도우며 이른바 ‘숙청 권력’을 행사해 온 김원홍을 전면에 내세워 친정체제 구축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김정은의 2인자가 모두 숙청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숙청하는 자’로 몸을 낮춰 온 김원홍이 향후 최대의 숙청 대상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김정은의 특사 자격으로 2018년 3월 한국을 방문해 외교무대에 얼굴을 드러낸 김여정은 11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다시 올라서며 2인자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김원홍은 2017년 초 허위보고 등의 혐의로 국가보위상에서 물러난 뒤 인민군 총정치국 1부국장으로 재기했다가 재차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처형됐다는 보도도 있다. 이승열 국회입법조사처 연구위원은 지난달 31일 발표된 보고서에서 “올해 2월 해임된 리만건 당 조직지도부장과 박태덕 당 부위원장(농업부)을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측근으로 분류할 수 있다”며 “최룡해의 정치적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인사”라고 풀이했다. 최룡해는 김여정에게 2인자 자리를 내주고 경제위기의 속죄양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덧붙였다. 김원홍도 최룡해도 제친 김여정이 북한의 2인자로 부상하고 있다면 논리적으로 이런 질문이 뒤따른다. 김원홍처럼 김여정도 언젠가는 오빠의 눈 밖에 나 숙청될 수 있는가? 아니면 이른바 백두혈통임을 근거로 김정은 유사시 권력을 물려받는 북한 4대 세습 후계자로 군림할 수도 있을 것인가? 북한 김씨 독재의 미래를 전망하느니 차라리 동전을 던지는 것이 낫다. 하지만 김정일의 후계를 전망할 때 사용했던 ‘사회주의 독재국가의 후계자 결정 이론’의 도움을 받아 학문적인 추측(academic guessing)을 할 수는 있다. 비교사회주의 정치학자 레슬리 홈스 박사의 ‘3Ps+X’이론이 대표적이다. 소련과 중국 등 사회주의 독재국가에서 최고지도자가 권력을 잃을 경우(X), 권력기반(Power base)과 인격적 자질(Personal qualification), 정책능력(Policy making ability)을 가진 인물이 후계자로서 권력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일단 김여정에게는 확실한 권력기반이 있다. 바로 오빠 김정은이다. 아버지 사후 오빠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문고리 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에 따르는 측근 그룹도 형성됐을 것이다. 정책능력에 대한 검증도 진행 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2018년 이후 북-미, 남북대화 과정에 개입해 온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에 모종의 역할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여기까진 하기 나름이다. 문제는 인격적인 자질이다. 최고지도자의 인격적 자질은 엘리트와 대중의 인정이 필수적인, 즉 상대방이 있는 영역이다. 여성의 권리는 그저 법조항일 뿐, 유교적 유산에 더해 김일성 김정일 독재를 위해 의도적으로 구축된 가부장적인 북한의 정치문화가 ‘여성 수령’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미 여성 대통령을 배출했던 우리의 양성평등 수준과 비교하면 잠정적인 대답은 ‘쉽지 않을 것’이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20-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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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경제의 질곡, 박봉주의 위기[오늘과 내일/신석호]

    북한은 지난달 10일 대남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한 경제적 손실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초특급 방역 조치를 취한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결심하고 실천에 옮길 일이 아니다”라는 대목이다. ‘인민의 생명 안전을 위한 국가적인 중대사로 내세우시고’라는 기사 제목처럼 김정은과 노동당이 이번 사태에 적극 대응하고 있음을 홍보하려는 게지만 코로나19가 불러온 글로벌 경제위기 광풍에 북한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대외경제 관계를 최소화하는 폐쇄적 북한 경제의 특성을 감안하면 코로나19의 파장은 미국과 한국 등의 개방경제보다 상대적으로 작을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수년 동안 국제사회의 고강도 경제제재를 받아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최근까지 북한 경제가 지탱하고 있는 것은 당국이 그동안 축적해 온 보유 달러를 풀어 수입을 계속한 결과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북제재로 인한 경제 동요를 막기 위해 보유 외환을 풀어 쓰던 차에 코로나19 사태가 덮친 형국인 셈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박봉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과 김재룡 내각 총리가 최근 여러 지역을 돌며 경제를 챙기는 모습이 노동신문에 자주 보도되는 것은 상황이 그만큼 좋지 않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나란히 마스크를 쓰고 평양종합병원 건설현장을 찾았다. 지난달 17일에도 마스크를 쓴 채 사리원 유기질 복합비료 공장과 남포 의료기구 공장을 방문하는 장면이 보도됐다. 현재 박봉주는 노동당의 경제정책 수장, 김재룡은 내각의 경제실무 수장으로 역할 분담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박봉주가 다시 현장에 나온 것은 상징적이다. 2019년 3월 내각 총리 자리를 김 총리에게 물려준 그는 지난해 12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 건강 이상설이 돌았다. 지난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의 경제정책을 관료정치의 관점에서 비교한 ‘북한의 경제개혁과 관료정치’를 출간한 한기범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은 “김정일 시대에 내각의 수장으로 시장화를 추진하다가 당과 부딪쳤던 박봉주가 지금은 당을 위해서 뛰고 있는 셈”이라고 평가했다. 박봉주는 김정일에서 김정은 시대로 이어지는 북한 경제위기의 정책 사령탑이다. 김정일의 제한적 경제개혁 조치인 ‘7·1 경제관리 개선’(2002년)과 종합시장 도입(2003년) 조치가 제대로 실행되지 않자 2003년 9월 내각 총리에 발탁됐다. 이후 과감한 시장화와 분권화 조치를 추진했지만 노동당 내 보수파의 역풍을 맞았다. 당 간부들은 “시장이 번지면서 김일성 주석의 항일운동 신화인 구호나무가 중국으로 밀거래되기에 이르렀다”고 공격했다. 결국 2005년 하반기를 정점으로 박봉주의 개혁조치는 막을 내렸고 김정일은 2007년 4월 그를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 지배인으로 강등시켰다. 박봉주는 김정은 체제 출범 후인 2013년 4월 다시 내각 총리로 재기했다. 김정은은 그를 앞세워 시장화와 분권화 개혁정책을 조용히 추진했지만 무모한 핵·미사일 정책을 강행해 지금의 경제봉쇄를 자초했다. 지난해 말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는 당시까지의 개혁정책에서 후퇴해 ‘위기상황의 정면돌파’를 강조하며 제한된 자원과 시장에 대한 당과 국가의 통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좌경화했다. 최근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선 “심각한 자금난으로 북한 관리들이 돈만 주면 기밀문서라도 밀수출할 판”이라는 말이 나온다. 잘못된 정책이 경제난을 악화시키고 주민들의 불만이 폭발하면 박봉주가 이번에는 시장의 이름으로 희생양이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20-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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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영호가 상기시킨 대한민국 헌법정신[오늘과 내일/신석호]

    1997년 한국으로 망명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10년 동안 이어진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의해 입과 발의 자유를 제한당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상황은 나아졌지만 ‘경계인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보수 진영 내에서도 그의 정책과 철학을 공격하거나 의심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중국식 개혁개방론’은 대표적인 시빗거리였다. ‘한국이 중국과 잘 지내면서 북한을 중국식으로 개혁개방시켜야 한다’는 황 전 비서의 주장에 ‘중국공산당처럼 조선노동당을 존치하자는 뜻이냐’는 반박이 뒤따랐다. 일부는 그가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조화를 강조하는 주체사상을 버리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이달 12일 시작된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공격도 처음에는 새로운 게 아닌 듯했다. 미래통합당의 러브콜을 받던 김 전 대표가 태 전 공사의 지역구 공천을 두고 “국가적 망신”이라고 말했을 때 첫 의문은 ‘뭐가 문제라는 것인가’였다. 태영호의 정책인가? 철학인가? 나중에 드러난 답은 ‘출신’이었다. 태영호는 이를 ‘뿌리론’이라 했다. 김 전 대표는 자신이 지핀 논란이 커지자 “태영호가 문제라는 게 아니라 그를 지역구에 공천한 것이 문제”라고 물러났다. 과거 새누리당의 조명철 의원처럼 비례대표 정도면 족하지 탈북자를 지역구에 공천한 것은 문제라는 취지였다. 이에 대해 태영호 캠프는 대한민국 헌법을 무기로 들고나와 반격에 나섰고 김 전 대표는 결국 미래통합당 선대위원장 자리를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태 전 공사는 12일 오후 첫 반박 보도자료에서 “나는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헌법과 법률에 의해 선거에 출마할 수 있고 정당의 공천을 받을 수 있다”며 헌법을 처음 언급했다. 이어 “자유와 시장경제의 고귀한 가치를 찾아 사선을 넘은 저는 자유시장경제의 상징인 강남갑을 위해 다시 한번 죽음을 각오하고 도전하고 있다”며 헌법이 담은 가치를 선거운동에 활용했다. 김 전 대표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13일 페이스북 성명에서도 “대한민국 헌법 혹은 선거법 조항을 읽어보아도 어떤 사람은 지역구 의원에 적합하고 어떤 사람은 비례대표가 적합하다는 규정도 없고 기준도 없다.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리고 통일한국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고 호소했다. 애초에 탈북자인 그를 현실 정치에 들여놓은 계기도 헌법 논쟁이었다. 그는 11일 출마 선언을 통해 “북한에서 여기에 내려왔던 청년들이 범죄자냐 아니냐에 앞서 그들을 북한에 돌려보낸 사실을 보며 큰 좌절감을 느꼈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의정 활동을 해야겠다는 뜻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 헌법에 따르면, 송환된 북한 어부나 태 후보나 이미 태어날 때부터 대한민국 국민이다. 어부를 수사나 재판도 없이 사지로 돌려보낸 것이나, 탈북자를 지역구에 공천한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은 헌법 정신과 맞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3년 동안 헌법 3조의 영토 조항과 4조의 통일 조항(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은 사문화되어 가는 분위기다. 2018년 이후 김정은의 위장 평화 공세에 ‘남과 북이 각각의 나라로 평화롭게 공존하자’는 평화공존론이 통일당위론을 압도하고 있다. ‘김종인의 뿌리론’이 일부 유권자들의 정서일 수는 있다. 그것이 얼마나 일반적인지는 선거 결과로 밝혀질 것이다. 이에 상관없이 김종인과 태영호의 이번 논쟁은 ‘분단 상황과 헌법 정신’이라는 주제를 다시 공론장에 올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20-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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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진핑 뜨끔하게 했을 북한의 도발[오늘과 내일/신석호]

    박근혜 정부가 미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에 대해 ‘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다’는 ‘3NO’ 정책으로 일관하던 2015년. 워싱턴에서 만난 한국 군 인사들은 “이 문제를 어찌 했으면 좋겠느냐”고 은밀하게 묻곤 했다. ‘미국은 하고 싶어 하는데 중국과 여론의 반발을 우려한 청와대가 주저하고 있으니 어쩌면 좋겠느냐’는 취지로 읽혔다. “북한이 기회를 주지 않겠어요? 2013년 2월 3차 핵실험 이후 3년 가까이 추가 전략도발이 없었으니 좀 기다리면 국면 전환을 할 겁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들여놓으면 중국도 한국 여론도 크게 반대하지 못할 겁니다.” 북한은 2016년 1월 4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2년 동안의 전략도발 국면을 시작했다. 한국과 미국은 그해 7월 사드 한국 배치 결정을 공식 발표했다. 중국은 지금도 이 결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을 핑계로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해 중국과의 전략적 군사경쟁에서 이점을 취하려 한다는 것은 중국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자신들이 북한이라는 동맹이 주는 ‘연루의 위험’에 노출됐다는 이야기다. 힘이 센 동맹국이 힘이 약한 동맹국 때문에 국가안보에 불이익을 받는 경우를 말한다. 북한이 2일 대남 타격용 단거리미사일(사거리 240km 추정)을 발사하며 새해 미사일 도발에 시동을 걸었다. 온 지구촌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지에 정신이 없는 틈에 이뤄진 도발의 의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내심 뜨끔했을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노동당 전원회의를 마친 뒤 2020년에 미국을 향한 새로운 전략무기를 내놓겠다고 선언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부형욱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김정은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레드라인을 넘는 도발을 하면 미국은 조만간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하려 할지 모른다. 동맹국과 미 본토와 주한미군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을 들고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쟁은 경제에서 군사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중국은 핵과 미사일 전력 개발로 미국을 상대로 한 ‘반접근·지역거부전략(A2·AD)’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아시아 지역에 중거리 지상발사 미사일을 배치해 전략적 군비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 한다. 사거리 800km가량의 미사일을 평택 미군기지에 배치하면 중국도 사정권 안에 들어오게 된다. 이에 대해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명분도 없고 논리에도 맞지 않는 이야기”라며 펄쩍 뛰었다. 중국 지한파 학자들도 한국 친구들에게 “그런 일이 벌어지면 사드 보복은 우스운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방어용 무기인 사드와 공격용 무기인 중거리미사일은 다르다. 동맹국 미국의 요구라지만 한국에 공격 의사를 밝히지 않은 중국이 위협을 느낄 수 있는 공격 무기를 배치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우리 국내 정치적으로도 어려운 일이다. 미국은 지난해 러시아와의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서 벗어났을 뿐이며 의회는 올해 예산에 중거리미사일의 아시아 지역 배치에 관한 비용을 배정하지 않았다. 부 위원은 “중국 공산당은 사드 배치 당시를 떠올리며 평양이 섣부른 결정을 하지 않도록 설득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김정은이 마음대로 추가 전략도발을 실행하기 어려운 구조적 환경”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지난해 말 러시아와 함께 대북 제재를 실질적으로 완화하자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내주기도 했다.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잠깐 숨을 돌리자마자 코로나19 진원지가 되었다. 이런 ‘맏형’의 처지를 북한도 모를 리는 없다. 2일 미사일 발사 이후 북한이 계획대로 전략도발까지 갈 것이라는 관측들이 나오고 있지만 중국 변수를 고려한다면 그리 쉽지 않은 결정이 될 것이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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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 이래도 중국에 올인 할 건가[오늘과 내일/신석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대하는 중국과 북한의 행보는 사뭇 달라 보인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이끄는 중국은 사건 초기부터 지금까지 방관과 은폐, 늑장 대응으로 일관했다는 국제사회의 지적을 받고 있다. 반면 북한은 지난달 말,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중국을 포함한 전 세계인의 입국을 막는 과감한 방역 조치에 나선 것만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한국 등 보통 나라들이 확진 및 의심 환자를 병원이나 자택에 격리하는 데 비해 북한은 나라 전체를 격리했다고나 할까. 이른바 ‘동원형 정치체제’로 분류되는 두 나라의 다른 대응은 사실 한 가지 핵심적인 공통점에서 나온다. 자유로운 언론, 그리고 약자의 목소리가 권력층에 전달될 언로의 부재 또는 빈곤이다. 초기에 사태를 직감한 의사들을 유언비어 유포자로 낙인하고 언로를 막은 것은 최고지도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무시한 원인 중의 하나다. 북한이 ‘국가 격리’라는 초강수를 둔 것도 변방에서의 바이러스 확산을 중앙이 감지하기 어려운 취약한 정치적 소통 메커니즘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도 바른말을 못할 테니 코로나19라는 글로벌 보건 이슈가 북한 체제에 미치고 있는 정치 경제적 파급효과를 최고지도부가 제대로 인식하고 있을까? 북한 당국은 거듭 부인하고 있지만 중국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는 관측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과의 공식 비공식적 물동량이 끊어지면서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아랑곳 않던 기름값이 오르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중국발 바이러스가 중국이 그토록 우려했던 ‘대북 제재 효과성’을 키우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꼭 1년 전인 지난해 2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영변 핵시설과 대북 제재를 맞바꾸자는 ‘씨도 안 먹힐’ 제안을 할 때, 김정은의 속셈은 ‘중국이 뒤를 봐줄 것’이었을 게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실제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최고 수준으로 강화된 2017년부터 북한의 대중국 무역 의존도는 90%를 넘고 있다. 중국과의 공식 무역과 밀무역, 중국인 관광 등 세 가지 축은 북한이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서 그럭저럭 핵을 들고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 왔다. 핵을 포기하고 정상 국가로서 여러 나라들과 두루 교류하는 정답을 외면한 결과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스스로 초래한 형국이다. 모두 김정은의 자업자득이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된 중국의 숨겨진 후진성과 공산당 정부의 대응 태세를 보았다면 김정은도 ‘아차’ 싶을 것이다. 정상적인 지도자라면 이런 생각에 이르지 않을까. ‘아, 미국과의 대화가 잘 안된다고, 남한에 실망했다고 중국에만 너무 의존하면 안 되겠구나. 믿을 건 동맹밖에 없다지만 지금 북조선은 중국에 너무 민감하고 또 취약하구나.’ 자신의 깨달음이 상호의존(interdependence) 이론의 핵심이라는 것까지 안다면 그야말로 스위스 유학파라 할 만하다. 국제정치학의 자유주의 계보에 속하는 이 이론은 국가 간의 관계를 민감성(sensitivity)과 취약성(vulnerability)이라는 개념으로 이야기한다. 민감성은 의존관계에 있는 한 나라의 변화가 다른 나라에 미치는 마이너스적 영향을 말한다. 취약성은 일방이 상호의존 관계를 단절할 때 발생하는 비용을 일컫는다. 상대방에 비해 민감성과 취약성이 높을수록 의존적이라는 말인데 지금 북한이 딱 그 꼴이다. 대대로 북한 김씨 일가는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양다리 외교를 하면서 어느 한쪽에 완전히 줄서는 것은 피했다. 하지만 든든한 후원국 소련의 ‘퍼주기’ 원조에 방탕하고 게을러졌고 1990년대 초 소련의 체제 전환과 함께 ‘고난의 행군’이라는 경제위기를 피하지 못했다. 혹시 생전의 아버지가 말하지 않았나?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고.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20-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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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바이러스가 소환한 대북지원 논쟁[오늘과 내일/신석호]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창궐했던 2003년 봄은 ‘김정일식 개혁개방’의 바람을 타고 남북 교류도 활발하던 때였다. 전년부터 100명 이상의 기부자를 대규모로 평양에 실어 나르던 국내 인도적 지원단체들의 방북 모니터링 활동도 한동안 중단됐다. 북한 내각(한국의 행정부) 산하 보건성이 중심이 된 방역 당국이 4월 중국 베이징을 통한 외국인 입국을 전면 차단하자, 일부 단체들은 부랴부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 들어가려 했지만 그마저 이내 막혔다. 한국 단체들을 초청한 북측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는 노동당 통일전선부 소속으로 남북관계의 활황을 타고 끗발을 날리고 있었다. 남측 인사들의 방북은 국가안전보위부 등 최고 권력기관들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이들은 러시아에서 발이 묶인 한국 단체들에 “보건성이 절대 안 된다고 한다. 들어와도 14일 동안 격리되기 때문에 활동이 불가능하다”고 우는소리를 했다. 실권이 없는 내각, ‘고난의 행군’ 경제난 당시 국가 의료 시스템이 거의 허물어져 껍데기만 남은 보건성이 최고 권력기관들 앞에서 말발을 세우는 보기 드문 순간이었다. 그해 몇 달 동안, 그리고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창궐 당시에도 보건성은 오랜만에 권력을 휘둘렀다. 하지만 힘없는 북한 주민들의 삶은 그렇지 못했다.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은 “위기 상황에서 방역과 치료라는 비싼 혜택은 정확하게 ‘권력과의 거리에 비례하여’ 배분됐다”고 말했다. 김 씨 최고지도자 일가와 특권층이 모여 사는 평양에, 지방에서도 좀 더 권력 자원을 확보한 지역과 사람들을 중심으로 바이러스를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메르스 사태로 국경이 통제된 2015년 북-중 국경 도시에 살았던 이모 씨(여·2017년 탈북)는 “당국이 ‘물 끓여 먹어라’ ‘외부인 접촉하지 마라’ ‘중국 음식 먹지 마라’라고 한 것은 기억이 나지만 거의 무방비 상태로 쏘다녔다. 방역이나 치료의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중앙에서 제대로 된 장비도 약품도 지원받지 못하고 ‘검병’(檢病·우리의 검역) 활동을 해야 하는 지방의 의료진은 노심초사였다. 자신의 담당구역에서 환자가 나오면 책임을 질까 두려워서다. 최근 조선중앙TV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철저한 방역 태세를 대내외에 홍보하고 있지만 ‘정치적 지리적 변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다르다.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주민들은 치솟는 물가와 부족한 보건 서비스로 이중고를 치르고 있다. kg당 3위안 하던 쌀값은 두 배가 넘는 7위안으로 치솟고 당국이 마스크를 안 쓰면 외출금지를 하는 바람에 가족이 마스크 하나를 돌려쓰고 있다고 전했다. 의심환자 두 명이 나왔다는 소문이 떠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나온 정부의 대북 방역 협력 추진 소식은 인도적 지원에 대한 해묵은 논쟁을 다시 불러내고 있다. 정부와 민간을 막론하고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목적과 조건이 없어야 한다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다. 과거 한국 정부가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 남북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인도적 지원을 활용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정부 또한 그럴지라도 그건 남북 관계가 단절된 현 상황에서 어쩔 수 없다고 치자. 하지만 사회적 약자도 혜택을 받아야 하고 투명한 모니터링이 가능해야 한다는 실무적인 글로벌 스탠더드는 양보하기 힘들다. 평양이 아닌 지방, 당 간부가 아닌 시장 꽃제비도 ‘검병’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충분하게 주라. 하지만 지원 물자가 제대로 쓰이는지 사후에라도 반드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라며 ‘하지 말란 말이냐’고 할 것이다. 그래도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20-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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