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지도자’ 조지 워싱턴을 생각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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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워싱턴: 창업의 거룩한 카리스마적 리더십/강성학 지음/501쪽·3만 원·박영사

얼마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우스다코다 주 러시모어산의 ‘큰 바위 얼굴’에 자신을 넣을 수 있을지 문의했다는 뉴욕타임스의 기사가 화제였다. 그가 재선에 성공하면서 외치와 내치에서 큰 성과를 이뤄낸다면 가능성이 없다 할 수는 없다. 중국의 부상을 제지하고 국제정치 무대에서 초강대국 미국의 위치를 더욱 굳건하게 하면서 코로나19의 창궐과 북핵문제를 해결한다면? 흑백 갈등과 신자유주의 양극화로 분열된 미국을 하나로 통합시킨다면?

하지만 전세계인이 위대한 정치적 지도자이자 고결한 인간적 스승으로 숭앙하는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일생을 깊이 알게 되면 그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인 저자는 “위대한(great) 지도자를 넘어 신의 영역에 한 다리 걸치는 거룩한(grand)지도자였다”며 “조국을 위한 무한한 애국주의와 아낌없는 헌신, 권력에 겸허한 거룩한 인품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워싱턴 대통령은 16세기 이탈리아가 낳은 현실주의 정치철학자 니콜로 마키아벨리도 꿈만 꿀 수밖에 없었던 “영원히, 영광스러운 새로운 창업자와 수성가”를 18세기 북아메리카 대륙의 현실에 구현해 21세기 유일 초강대국을 낳은 미국의 아버지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혁명군 최고사령관에서 개인의 자유와 재산, 생명을 강조한 존 로크의 사회계약론을 반영해 권력분립 그리고 견제와 균형을 기간으로 하는 미국 헌법을 기초한 헌법회의 의장, 초대 재선 대통령으로 봉직했다.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총사령관으로서의 그는 ‘무장한 예언자(Armed prophet)’였으며 대통령으로서의 그는 ‘비무장 예언자(Unarmed prophet)’였다. 마키아벨리는 역사상 무장한 예정자들만이 성공했으며 비무장 예언자들은 모두 실패했다고 주장했지만 워싱턴은 두 역할을 모두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저자는 이것이 가능했던 워싱턴의 능력과 덕목으로 비전과 분별력(Vision and Prudence), 천재적 군사전략(Genius Military Strategy), 용기(Courage), 장엄함(Magnanimity)을 꼽고 있다.

특히 그의 인격과 사람됨은 능력을 뛰어넘었다. 모든 공직에 오르는 과정에 후보가 되겠다고 손들지 않았으며 오로지 당대 미국 엘리트들의 만장일치로 추대됐다. 하지만 임무를 다한 뒤엔 언제나 시민이자 농부로 돌아갔다. 1783년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뒤 총사령관직을 사임하고 로마 공화정의 킨키나투스처럼 마운트버논의 자기 농장으로 미련 없이 돌아갔다. 6년 후에 신생 독립국 미합중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된 뒤 8년간의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스스로 다시 농부요 일개 시민으로 돌아갔다. 누군가의 독재 가능성을 스스로 모범을 보여 막은 것이다. 막 탄생한 국가를 위해 노예제도에 반대하지 않았지만 유언을 통해 죽은 뒤 자신의 모든 노예를 해방시켰다. 그의 뜻은 16대 에이브러햄 링컨에 의해 이뤄졌다.

워싱턴은 이후의 미국과 세계를 디자인했다. 전쟁은 정치의 수단이며 민이 군을 통제해야 한다는 프로이센의 전쟁철학자 칼 폰 클라우제비츠의 사상을 구현했다. 그가 대통령 직에서 퇴임한 뒤 유럽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이 벌어졌지만 미국은 워싱턴이 퇴임 고별사에서 강조한 중립주의, 고립주의를 견지함으로써 1900년대 1, 2차 대전을 계기로 세계 초강대국으로 떠오를 때까지 은은자중하며 국력을 키울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워싱턴은 오늘날 우리가 향유하는 근대 자유 민주주의의 창업자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암울한 일제강점기를 벗어나 분단과 동족상잔의 전쟁이라는 비극을 거치면서도 오늘날과 같은 민주공화국을 창업하고 수성해온 기적에는 미국의 도움이 컸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의 창업자요 수성가인 워싱턴처럼 위대한 능력과 인품을 가진 정치 지도자들을 아직 만나지 못하고 있다. 21세기의 한국인들이 18세기의 워싱턴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한 평생 국제정치학자로서 강학하면서 철학과 역사,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저자는 2014년 퇴임 후 한국지정학연구원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 갈 지도자들에게 필요한 리더십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 후학들과 함께 2017년부터 매월 세 번째 토요일 오후 네 시에 세계적인 지도자들의 일생을 공부하는 ‘세토네’ 모임을 갖고 있다. 대학원 석박사 세미나 강의 형식으로 윈스턴 처칠과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전기를 완독했다. 2017년 ‘한국의 지정학과 링컨의 리더십(고려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년 ‘윈스턴 S. 처칠-전쟁과 평화의 위대한 리더십(박영사)’를 출간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조지 워싱턴: 창업의 거룩한 카리스마적 리더십#강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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