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호

신석호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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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석호 전무입니다.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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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31~202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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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文정부 대북 식량지원, ‘주고도 욕 먹는’ 최악 상황 빠질 수도…[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Q. 4일과 9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에 대한 불만표출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대북 식량지원을 추진하고 있지만 북한과 미국의 반응은 탐탁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지원이 비핵화 대화 재개에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숙명여대 역사문화학과 14학번A. 정부가 대북 식량지원 계획을 밝힌 가운데 데이비드 비슬리 세계식량계획(WEF) 사무총장이 방한해 국내에서 관련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연철 통일부장관이 13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14일 각각 비슬리 총장을 접견하고 대북 인도지원에 대한 의견을 나눴습니다. 문 대통령과 김 장관은 남북협력기금을 활용한 대북지원의 최고위 결정권자이고 서울시는 대북지원을 희망하는 가장 큰 지방자치단체입니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가장 큰 손’들인 셈이지요.하지만 정부는 15일 현재까지 구체적인 대북 식량 지원 시기와 방법, 규모 등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지적하신대로 9일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로 국내 대북 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 대북지원에 대한 다양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상대방인 북한도, 북한 비핵화를 위해 제재 유지를 외치고 있는 미국도 크게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13일 브리핑에서 “식량 지원이 국민적 합의를 얻어야 하고 국회 논의도 있어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9일 발언을 전하며 공론화 필요성을 언급했습니다.그동안 북-미 비핵화 협상의 중재자요 촉진자 역할을 자임해온 정부가 2월 하노이 회담 결렬이후 국제사회에 대앙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북한을 상대로 대북 식량지원이라는 소통 카드를 꺼낸 것은 이해가 가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 점이 국내 논란의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김 장관이 비슬리 총장을 만나 “인도주의와 정치를 분리해야 한다는 WFP의 기본 입장에 공감한다”고 말했지만 식량지원을 수단으로 북한을 다시 대화의 장으로 불러내겠다는 발상 자체가 인도주의를 정치에 활용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1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문재인 정부가 인도적 지원을 순수하게 하려면 출범 직후부터 조용히 꾸준히 하면 되는 거였다. 그러나 정부는 하노이 결렬 이후 북핵협상 촉진을 위한 수단으로 즉 대북 달래기용으로 식량지원을 꺼냈고 이는 인도적 지원의 순수성 자체를 스스로 왜곡시킨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동아일보의 주성하 탈북 기자도 14일 페이스북에 “늘 대북식량 지원은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지만 이번은 때가 아니라고 본다. 북한은 지금 식량이 모자라지도 않고 북한이 (한국에는) 달란 말도 안 하고, 국제기구에 요청한 이유는 몇 년 전에 털어먹은 군량미 창고를 채우려는 의도이기 때문”이라고 일갈했습니다.실제로 올해 북한이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는 WFP의 주장(2009년 이후 최저치인 연간 생산량 490만t으로 136만t의 곡물 부족이 예상된다는 지난해 전망)에 다양한 반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북 제재를 우회한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 덕분에 시장 쌀값이 오히려 떨어졌다는 보도도 나왔고 북한 당국이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이상 정확한 수치를 국제사회가 알 수 없다는 근본적인 지적이 나옵니다. 제가 지난해 8월 31일 ‘NK노믹스’ 코너에 보도()한 것처럼 핵보유국임을 자처하는 북한은 남한에서 인도적 지원은 더 이상 받지 않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습니다. 남측 지원단체들이 마치 걸인에게 먹을 것을 주듯 거들먹거리지 말고 돈을 들고 와서 경제사업을 하라는 것입니다. 올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 이후 그것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로 구체화 되었습니다. 인도적 지원은 당연한 것이며 그보다 더 큰 무언가를 바라는 겁니다. 주 기자가 말한 세 번째 이유는 고질적인 전용(전용)의 문제입니다. 북한 당국이 인도적 지원 식량과 물품을 가로채 군인과 권력자들을 위해 쓴다는, 역사적으로 근거가 충분한 우려입니다. WFP는 투명성을 담보할 장치들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우리 정부는 아직 그럴 장치들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입니다.미국의 곱지 않은 시선도 있습니다. 청와대는 7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전화 통화 직후 서면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북한에 식량을 제공하는 것이 매우 시의적절하며 긍정적인 조치가 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지지했다”고 밝혔지만 다음날인 8일(현지 시간)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한국이 대북 인도적 지원에 앞장선다면 미국은 간섭하지 않을 것(not going to intervene)”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이 대북 식량지원을 하면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제재 레버리지가 떨어지지만 인도적 지원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는 미국 정부의 마뜩치 않은 상황 인식을 보여줍니다.이런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 정부의 대북 식량지원이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당시와 같은 남북대화의 재개로 이어진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잘못 하다가는 ‘주고도 욕을 먹는’ 최악의 상황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지요.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계승한다는 문재인 정부에게 인도적 지원은 같은 것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2006년까지는 핵실험을 하지 않았던 북한과, 지금 핵보유국이라고 주장하는 북한은 다른 상대입니다. 다른 상대에게 같은 접근을 하다보니 국내외에서 다양한 논란이 제기되는 것 아닌가 합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건 대북 식량지원 카드는 이미 신선도가 떨어진 상황인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 201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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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틀에 박힌 북한의 ‘도발 볼레로’가 또 시작됐다 [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Q. 김정은 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북한이 4일 신형 전술유도무기 발사 시험을 했습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다시 재개된 무력시위라는 점에서 관심이 높은데요, 이러한 북한의 행보가 다시 과거 무력대치로 돌아갈 수 있다는 신호인지, 단지 방공능력을 시험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차지현 연세대 경제학과 14학번(아산서원 14기)A. 지난달 22일 우아한을 통해 북한의 ‘소극적인 도발’에 대해 설명해 드렸습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기 좋게 협상 결렬을 당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화의 판을 깨지는 않으면서도 불만을 표시하는 과정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실제 발사 실험은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으로, 북한의 살라미(도발이나 대화의 수단을 조금씩 끊어서 시간을 끌며 내놓는 것) 전술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8일 저녁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규탄 성명을 보면 이번 사건의 성격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대변인은 통신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내놓은 주장의 핵심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입니다.① 우리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미국은 하노이 회담에서 응당한 상응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우리는 이를 애써 참고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중대한 전략적 결단을 요구하는 조치들을 주동적으로 취한데 대하여 그리고 그에 대한 응당한 상응조치들이 취해지지 않아 6.12조미공동성명 리행이 교착상태에 빠진 것과 관련하여 우리가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다.”② 이런 가운데 한국과 미국은 그동안의 합의를 무시하고 북한을 상대로 한 군사연습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3월과 4월에만도 남조선에서는 미국-남조선합동군사연습《동맹19-1》과 련합공중훈련이 진행되였으며 지금 이 시각에도 우리를 겨냥한 전쟁연습계획들이 끊임없이 작성되고 있다.”③ 이런 가운데 우리도 ‘전술 유도 무기’ 능력 시험을 하는 자위적 군사훈련을 단행하였고 이는 한국 등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다. “이번에 우리 군대가 진행한 훈련은 그 누구를 겨냥한 것이 아닌 정상적인 군사훈련의 일환으로서 지역정세를 격화시킨 것도 없다. 어느 나라나 국가방위를 위한 군사훈련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로서 일부 나라들이 다른 주권국가를 겨냥하여 진행하는 전쟁연습과는 명백히 구별된다.”대변인은 이런 논거를 토대로 한국과 미국 등이 자위적 군사훈련을 도발이라 비난하고 있다며 “대단히 불쾌하고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경종을 울린다”고 주장했습니다.한국과 국제사회에서는 군이 ‘발사체’라고 표현한 것이 과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금지된 탄도미사일인지 아닌지가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대변인은 문답에서 “방사포와 전술 유도 무기”라고 오리발을 내밀었지만 한미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이번 발사체는 러시아의 '이스칸데르' 단거리 탄도 미사일의 북한형으로 보입니다. 패트릭 섀너핸 미국 국방부 장관 대행이 상원 청문회에서 “미사일과 로켓”이라는 표현을 한 가운데 우리 군은 여전히 “발사체”요 “분석중”이라는 말만 하고 있어 지나치게 북한의 눈치를 보면서 안이하게 대처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하지만 우려스럽게도 어제 대변인 문답까지 이어진 북한의 무력도발 살라미 전술은 과거 북한이 대화국면에서 도발국면으로 기조를 전환하면서 사용했던 패턴과 너무 유사합니다. 꼭 10년 전인 2009년 상황을 보면, 그해 4월 5일 2년 인공위성을 빙자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을 한 북한은 이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성명(4월 13일)을 비난하면서 6자회담 거부, 핵시설 원상복구 등을 한 뒤 5월 25일 제2차 핵실험을 단행합니다. 이런 과거 패턴으로 볼 때, 북한은 조금씩 무력도발의 수위를 높여가며 미국의 인내심을 시험할 것으로 보입니다.다만, 이번 도발은 과거에 비해 규모가 작다는 점에서 아직 북한도 대화기조는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 ICBM이던 것이 지금은 단거리 미사일이고, 국제사회에 대한 반발도 대변인이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에 그쳤습니다. 문답은 한국과 미국 등에 대한 경고로 끝나지만 “우리는 이러한 세력들의 차후 언동을 지켜볼 것”이라는 정도에 그쳤습니다.이런 분위기를 읽은 한국 정부는 미국의 묵인 하에 대북 식량 지원에 나섰고 미국 내에서도 북한이 비핵화 로드맵에만 합의하면 제재 완화나 해제 조치를 조기에 단행할 수 있다는 ‘당근’들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노이에서 확인한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인식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전망이 많습니다. 영변 핵시설 해체만으로 사실상 대북제재를 와해시키겠다는 북한, 이참에 북한의 모든 대량살상무기(WMD)를 제거하겠다는 미국의 주장이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요?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올 한해도 북한의 틀에 박힌 ‘도발의 볼레로’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만든 확실해 보입니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 2019-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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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철은 나중에 숙청될 운명”…태영호 족집게 예언 화제[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베트남 하노이에서의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의 책임을 지고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통일전선부장에서 철직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족집게 예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 태 전 공사는 싱가포르에서 1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인 지난해 6월 4일 보도된 본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김영철은 지금 본인의 능력에 넘치는 일을 하고 있다. 정치군인에 불과한 그에게 북-미 외교와 남북 관계 총책이라는 지금 자리는 분에 넘친다. 물론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지만, 나중에 숙청될 운명이 될 수도 있다”고 예언했다. 그는 “대화가 잘될 때는 모르지만 어느 순간 삐걱거리면 곧바로 당 조직지도부가 검열에 들어간다. 핵문제의 기술적인 부분을 잘 모르는 김정은과 김영철이 잘못 내린 결정이 많을 텐데, 김정은 지시에 따른 것이라도 책임은 김영철이 지게 된다. 최고지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고 김정은은 뒷짐 지고 모른 체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태 전 공사는 “지금 현 상황을 외무상이자 대미협상 베테랑인 이용호가 끌고 나간다면 상당히 오래가겠지만 김영철이 운전하고 있어 언제 갑자기 멈추어설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현장에 국제 전문가들을 초대하겠다고 남측에 밝혔다가 뒤늦게 철회한 것이 대표적인 ‘삑사리’ 사례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터뷰 직전 출간한 ‘태영호 증언: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김영철과 비슷한 운명을 거친 엘리트들의 사례를 다수 제시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대남협상의 전면에 나섰던 최승철(통일전선부 부부장)과 뒷선에서 지휘했던 한시해(전 유엔 주재 대사)와 권희경(전 주러시아 대사), 이명박 정부 시절 남북 관계에 발을 들였던 류경(국가보위부 부부장)도 총살을 당했다. 김영철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한 달이 넘게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아 숙청설이 돌았지만 이달 열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이름이 올랐고 국무위원 자격으로 김정은과 찍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숙청은 면한 것처럼 보였다. 현재도 그가 장금철로 교체된 것만 정부 당국이 확인된 것이어서 당 부위원장과 국무위원직은 유지하는 것인지, 최고인민회의 이후 김정은이 마음을 바꿔 모든 직책에서 철직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그동안 북한에서는 최고지도자가 특정 엘리트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즉시 경쟁 엘리트들이 그동안 숨겨졌던 다양한 비리를 ‘상소’하고 이것이 화근이 되어 더 강한 형태의 처벌이 내려지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되었지만 김정은의 군사 교관이라는 인연으로 살아남았던 김영철이 ‘트럼프 폭탄’을 맞아 정치적 운명을 다할 것인지 주목된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 2019-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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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의 날선 발언·무력 시위 ‘소심한 도발’ 그 속내는… [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Q. 북한 고위 당국자들이 미국의 협상팀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에 앞서 김정은 위원장이 신형 전술유도무기 시험에 참관했다는 북한 조선중앙통신 보도가 나왔습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다시 재개된 비난과 무력시위라는 점에서 많은 외신이 주목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북한의 행보가 다시 과거 미국과의 대치 국면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신호인지 궁금합니다.-차지현 연세대 경제학과 14학번(아산서원 14기)A. 질문하신 대로 2월 말 하노이 북미 2차 정상회담에서 미국에 ‘회담 결렬’이라는 홀대를 당한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개최 이후 날선 말과 군사도발로 불만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어느 정도 강도이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하는 점입니다.우선 날선 말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최근인 4월 20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해 “매력이 없이 들리고 멍청해 보인다”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앞서 17일 볼턴 보좌관이 미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3차 북미정상회담의 조건에 대한 질문을 받고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을 했다는 진정한 신호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데 대해 “두 수뇌분(김정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 제3차 수뇌회담과 관련해 어떤 취지의 대화가 오가는지 정도는 파악하고 말을 해도 해야 할 것이었다”며 맞받아치고 나온 것입니다.매력이 없고 멍청해 보인다는 평가를 받은 볼턴 보좌관은 기분이 나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해야 할 실무책임자 격인 최선희와 볼턴 보좌관이기에, 이번 발언의 내용은 ‘너랑 이야기 안하고 싶다’는 뉘앙스로도 들립니다.하지만 북한을 오래 연구하다보면 그들이 내뱉는 말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형식도 잘 살펴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어떤 형식으로 했는지에 따라 평양 내부의 기류를 다르게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결론적으로 이번 발언은 북한 측도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상당히 노력한 흔적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최선희라는 중요한 인물의 발언이지만 그 형식이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기 때문입니다. 북한 당국자들의 발언은 다양한 형식으로 외부에 공개되는데,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은 그다지 비중이 높지 않은 부류입니다. 우선 주체가 최선희가 아니고 기자입니다. 나중에 미국 측이 문제를 제기하면 ‘기자가 물어보니 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기자가 잘못 보도했다.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으로서는 안전장치를 마련한 셈입니다. 만약 최선희 부상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직접 발언했다면 더 강한 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위에는 외무성 성명, 공화국 성명 등이 있겠습니다.이런 관점으로 이전의 발언들을 살펴봅시다. 미국의 또 다른 회담 실무 책임자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 대해 “폼페이오가 회담에 또 관여하면 판이 지저분해지고 일이 꼬일 수 있다”고 한 18일 발언 역시 이름마저 생소한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국장이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에서 한 것입니다. 같은 논리로 강도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오히려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실세중의 실세로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무위원에 올라선 최선희가 아니라 권정동 국장이 발언한 것에 대해 ‘나를 볼턴보다 낮게 보는 것이냐’며 항의해야 할 판입니다.결론적으로 북한의 날선 말의 공세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청중인 것으로 보이고, 하고 싶은 말은 ‘측근들의 말을 듣지 말고 우리 위원장과 잘 좀 대화해 보라’는 취지로 들립니다.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에도 상대방에 대한 공격은 하지 않고 ‘좋은 관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 트럼프 대통령과 마음대로 하고 싶은데 옆에서 말리는 볼턴과 폼페이오가 불만이고 그래서 이 둘을 향해 ‘소극적인 빈정거림’을 퍼붓고 있는 셈입니다. 즉, ‘너랑 말 안 해’가 아니라 ‘말 좀 잘해보고 싶으니 선수 바꿔’ 정도의 뉘앙스가 깔린 것입니다.북한의 무력도발도 마찬가지입니다. 20일(현지 시간) 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잘 지적한대로, 북한의 최근 군사움직임은 북미대화의 판을 깨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불만을 표시하는 수준입니다. 김 위원장이 16일 평남 순천 군부대를 시찰하고 17일 신형 전술 유도무기 사격 실험을 참관한 것을 ‘수동적 공격성’이라고 진단했습니다. 하노이 이후 국제사회는 북한이 태양절(4월 15일 김일성 주석의 생일)을 전후해 인공위성을 가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을 할 것으로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을 그 길을 현재까지는 포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감행할 경우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금지한 유엔 제재를 위반하게 되도 유엔은 2013년 1월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안 2087호에 넣은 자동개입 조항(트리거)에 따라 또 다른 대북제재 결의안을 내놓게 됩니다.이에 따라 탄도미사일이 아닌 신형 전술 유도 무기(한국 정부는 전차나 장갑차 같은 지상표지 파괴용 유도무기로 추정)를 시험발사 하는 선에서 ‘소심한 형식으로’ 하노이에서 최고지도자 김정은이 당한 수모에 대한 불만 표시를 했다는 설명이 가능합니다. 패트릭 섀너헌 미 국방장관 대행도 18일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탄도미사일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은 것을 보면 미국도 북한의 속마음을 잘 읽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전문가들의 관심은 멀리 내년으로 가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 볼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대화의 판을 깰 만한 극한 말이나 무력도발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연말이 온다고 해도 미국은 핵과 미사일, 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 전체를 포기해야 한다는 강대국적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 같고 이 점을 김정은도 모를 리 없을 것 같습니다. 현재의 평행선이 계속되거나, 아니면 상황이 악화된 채 내년을 맞게 될 때, 김정은이 또 어떤 국면전환을 꾀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입니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 2019-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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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엘리트와 인민을 향한 맹종과 내핍 명령서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12일 평양에서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우리의 국회) 14기 1차 회의에 참석한 북한 엘리트들은 국무위원장에 재추대 된 김정은의 시정연설을 듣고 차오르는 한숨을 참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과 국제사회는 김 위원장의 발언 가운데 북미 3차 정상회담 전망이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요구 정도에 관심을 가졌지만 사실 김 위원장은 연설의 대부분을 엘리트와 주민을 상대로 강력한 내핍과 맹목적인 복종을 요구하는데 할애했기 때문입니다.A4용지 16장에 이르는 긴 연설문의 논지는 간단합니다. ‘공화국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가 장기화 될 것 같으니 자력과 자강으로 이겨나가자’는 것입니다. 말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북미정상회담의 결렬이라는 외교적 실패의 책임을 미국과 국제사회에 전가하는 동시에 이에 따른 경제난 극복의 책임을 엘리트와 인민들에게 덮어씌우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이른바 ‘비핵화 협상의 국내정치’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특히 어떤 부분이 엘리트들의 한숨을 자아냈을까요? 우선 김 위원장은 연설 초반에 엘리트들의 특권의식과 부정부패 행위에 대해 일침을 가했습니다.“인민 위에 군림하여 인민이 부여한 권한을 악용하는 특권행위는 사회주의의 영상과 인민적 성격을 흐리게 하고 당과 국가에 대한 인민들의 지지와 신뢰를 약화시켜 사회주의제도의 존재 자체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인민의 이익을 침해하는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를 반대하는 투쟁을 국가존망과 관련되는 운명적인 문제로 내세우고 그와의 단호한 전쟁을 선포하였으며 강도 높은 투쟁을 벌이도록 하겠습니다.”권력을 가진 엘리트들이 인민 위에 군림하지 말라는 말은 정당한 듯 보이지만 부패가 만연된 북한 사회에서 이 말은 ‘누구든 걸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위협에 다름 아닙니다. 마치 과거 한국 권위주의 군사정권하 정풍운동처럼, 지도자에 대해 불만을 품는 세력이 있다면 누구든 부패와 파당형성, 반국가사범으로 몰아 단속하겠다는 말이지요. 실제로 북한 사정당국은 최근 부패한 관료들을 잇달아 처벌하며 부족한 달러를 흡혈하고 있습니다.일선 공무원들에 대한 군기잡기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각급 인민정권기관(내각과 산하 지방정부) 일군들의 책임성과 역할을 높여야 한다”는 대목에선 이렇게 말합니다.“일군들은 당에서 밀어주어야만 일자리를 내는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사업태도를 결정적으로 뿌리뽑아야 하며 당에서 준 과업은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해내는 강인한 혁명가적 일본새를 지녀야 합니다.”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권한과 자원이 부족한 내각과 지방정부에 핵개발과 제재로 인한 국가경제 파탄의 책임을 돌리는 전형적인 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김 위원장의 위협은 인민들에게도 향합니다. 연설 초반부터 ‘인민생활 제일주의’를 강조하며 민본정치를 홍보하더니 정작 인민들이 당과 국가의 도움 없이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몸담아야 하는 시장을 통한 자본주의 사상의 확산을 경고합니다.“사람들의 정신을 침식하고 사회를 변질 타락시키는 온갖 불건전하고 이색적인 현상들의 자그마한 요소에 대해서도 경계심을 가지고 사상교양, 사상투쟁을 강도 높이 벌리며 법적투쟁의 도수를 높여 우리 국가의 사상문화진지를 굳건히 수호하여야 합니다.”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사회주의 법치국가’라는 개념은 그동안 한국의 역대 정권들이 정권만 잡으면 전가의 보도처럼 들고 나오던 ‘사정한파’를 예고하는 듯합니다. 김 위원장은 “온 사회에 사회주의 준법기풍을 철저히 확립하여 전체 인민이 높은 준법의식을 가지고 국가의 법을 존엄 있게 대하고 자각적으로 의무적으로 준수하도록 하며…”라고 말합니다. 그동안 북한의 위정자들이 법을 자의적이고 편의적으로 사용해 온 것을 의식한 듯 “법집행에서 이중규율을 허용하지 말며 법적용에서 과학성과 객관성, 공정성과 신중성을 철저히 견지함으로써…”라고 덧붙였습니다.결론 부분에서 김 위원장은 “적대세력들의 제재해제 문제 따위에는 이제 더는 집착하지 않을 것이며 나는 우리의 힘으로 부흥의 앞길을 열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앞선 연설 곳곳에는 제재 장기화에 대한 우려와 두려움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힘으로는 우리를 어쩔 수 없는 세력들에게 있어서 제재는 마지막 궁여일책이라 할지다로 그자체가 우리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도전인 만큼 결코 그것을 용납할 수도 방관할 수도 없다”고 말합니다.하지만 스스로 ‘국가와 인민의 근본이익’이라고 정의한 핵보유를 포기하지 않으면 제재를 풀 수 없다는 사실, 핵과 미사일, 화학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WMD)의 전면적인 포기를 요구하는 미국에 대항해 다시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한다면 더 강한 제재에 직면할 것이라는 현실 인식도 드러납니다. 미국에 ‘계산법을 바꾸라’고 요구하면서도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볼 것”이라고 한반 물러섭니다.마치 시간은 자신들의 편인 양 표현하고 있지만, 글쎄요? 올해 말이 지나고 2020년 새해가 와도 뾰족한 수단이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북한의 엘리트들은 내핍과 사정정국에서 살아남을 묘안을 고민하며 앞서 나라를 등진 동료들을 부러워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3차 회담 가능성을 시사하며 김정은 달래기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속으로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김 위원장, 시간은 당신 편이 아니야!”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 2019-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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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北 최고 엘리트 사이에선 무슨 일이? [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Q.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미사일 발사 움직임을 보이면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통해 외신 기자회견을 여는 등 미국에 대한 불만을 다양한 창구를 통해 표출하고 있습니다. 현재 북한 내 정치의 최고지도부에서는 어떤 상황이 일어나고 있고 이것이 앞으로 북미 비핵화 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을까요?-노태구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13학번(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A. “대화가 잘될 때는 모르지만 어느 순간 삐걱거리면 곧바로 당 조직지도부가 검열에 들어갑니다. 핵문제의 기술적인 부분을 잘 모르는 김정은과 김영철이 잘못 내린 결정이 많을 텐데, 김정은 지시에 따른 것이라도 책임은 김영철이 지게 됩니다. 최고지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고 김정은은 뒷짐 지고 모른 체하겠죠.”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지난해 5월 27일 기자와 만나 한 이야기입니다. 당시는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1차 정상회담 직전이었고, 양국의 실무접촉이 활발하게 진행될 때였습니다. 태 전 공사를 여러 차례 만나면서 ‘정말 내공이 있고 학문적인 소양이 있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만, 이 글을 쓰기 위해 당시 발언을 돌이켜보면서 그의 내공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지난달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2차 정상회담이 결렬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일행이 평양으로 돌아온 이후 한 달이 되어가지만 협상 개최의 선봉에 섰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은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10일 북한 전역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대의원 선거 후보자 명단에는 이름을 올렸지만 그가 공개활동을 했다는 보도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의 정확한 행적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잠적 기간이 길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태 전 공사는 당시 “정치군인에 불과한 김영철이 북-미 외교와 남북 관계 총책이라는 분에 넘치는 일을 하고 있다. 물론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지만, 나중에 숙청될 운명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추정의 역사적 근거들은 지난해 4월 출간된 ‘태영호 증언: 3층 서기실의 암호’에 넘쳐납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대남협상의 전면에 나섰던 최승철(통일전선부 부부장)과 뒷선에서 지휘했던 한시해(전 유엔 주재 대사)와 권희경(전 주러시아 대사), 이명박 정부 시절 남북 관계에 발을 들였던 류경(국가보위부 부부장) 등도 숙청됐습니다. 김정은이 이번 회담 결렬의 희생양을 내세워 처벌할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북한 내부에 비핵화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최선희 부상은 15일 평양에서 열린 외신기자회견에서 군부와 군수업체들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비핵화 반대 의사를 표출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사실 우리 인민들, 특히 군부와 군수공업 부문은 우리가 절대로 핵을 포기하면 안 된다면서 우리 국무위원장 동지께 수천 통의 청원 편지를 올리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최고지도자가 내부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미국과의 협상에 나섰음을 강조하면서 미국에 책임을 돌리려는 맥락에서 평양 내부 분위기를 전한 것입니다. 김 위원장에게 청원을 올렸다는 이른바 ‘북한 보수’ 세력의 위력은 상당합니다. 2000년대 초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7·1경제관리 개선조치와 종합시장 도입이라는 제한적인 경제개혁 정책을 단행했을 때 이들은 불평등이 심화되고 북한 사회주의의 평등 가치가 무너진다며 조직적으로 반발해 결국 김 위원장이 개혁조지를 되돌리게 만들었습니다. 반면 현재 북한 주민들에게는 국제사회의 제재 유지로 인한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불만이 퍼져나가고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핵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청원과는 반대되는 것이지요. 핵을 포기하고 제재를 풀어 경제난을 덜어달라는 주민들의 청원이 비록 공개적으로 표출은 되지 않더라도 눈빛에서 눈빛으로 확산되고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해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북한 주민들의 경제난과 함께 내부 보수층의 반(反) 김정은 여론이 결합하면 통제하기 힘든 상황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객관적인 상황은 김정은과 그를 둘러싼 엘리트 지배층이 매우 힘든 선택의 과정을 거치고 있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미국이 제재 완화 등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실험 유예(모라토리엄)에 대한 상응조치를 내놓지 않을 경우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 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이나 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하는 외교적인 조치를 의미하지 않는다면 다시 ‘핵무력’을 강화하는 방향을 암시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습니다. 하지만 4월 15일 김일성 주석 생일 등 내부정치적인 일정에 맞춰 모라토리엄을 깬다면 미국과 국제사회의 더 강한 제재를 맞이하게 됩니다. 상대방인 미국은 하노이 회담 결렬을 계기로 강경한 대북정책 기조를 다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평양의 고민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신석호 동아일보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 2019-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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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합니다]북한연구학회, 29일 ’한반도 평화체제’ 주제로 춘계학술회의

    사단법인 북한연구학회는 29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삼청동 북한대학원대 정산홀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제도·담론·실천전략’을 주제로 춘계학술회의를 연다. 급락을 반복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 평화체제의 실현을 위한 제도, 담론, 실천전략을 모색하는 자리다. 회장인 양문수 북한대학원대 부총장은 “2차 북-미 회담이후 한반도 정세가 한치 앞을 바라보기 힘든 상황이지만 공론의 장을 통한 연구자들의 집단적 고민과 노력이 하나하나씩 쌓이면 밝은 미래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2019-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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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 하노이 결렬 후 첫 정상회담에 ‘러’ 택한 이유는?[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Q.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이 가장 먼저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러시아와의 회담이 이루어진다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완화에 실질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북미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줄 지 궁금합니다.-김소현 부산교대 교육학과 15학번(아산서원 14기)A.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장세호 연구위원은 21일 발간된 이슈브리프를 통해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조성된 구조적 현실 때문에 북한이 최우선 정상외교 대상으로 러시아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게 확장됐다”고 진단했습니다. 외교가에서도 정확히 언제 어디서 열릴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가 아닌 극동 지역 정도에서 만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장 위원이 말하는 구조적 현실의 핵심은 ‘미국의 비핵화 문제 접근법 변경’입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지난해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단계적 동시적’ 접근법에 미국과 공감을 이뤘는데, 이번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다시 ‘일괄타결식’ 접근으로 회귀한 셈이 된 것이 사실입니다. 북한은 다음 회담에서 이 문제에 대한 교섭에 우위를 점하기 위해 자신을 지지할 우군을 확보하고 국제여론을 형성하는 것이 필수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러시아일까요. 우선 중국과 한국과의 관계개선 상황이 여의치 않은 점이 꼽힙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대한 국제여론이 빗발치자 중국이 북한을 배후 조종하고 있다는 ‘중국 배후론’을 들고 나온 바 있습니다. 다시 김정은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여 이런 의혹을 키운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중 무역협상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중국이 할 수 있습니다. 북미협상 중재자를 자처했다가 촉진자로 물러선 한국 역시 북한에게 뾰족한 수가 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이에 비해 러시아는 북한을 포용해 얻을 수 있는 이점들이 있습니다. 옛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북한 핵문제 진행 과정에 개입하는 것으로 자신의 동북아시야 영향력 확대를 꾀해 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도왔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러시아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경제제재에서 풀려나기는커녕 정치 경제 안보적으로 더 큰 압박을 당하고 있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러시아는 북핵 문제에 대해 중국이상으로 북한과 인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한-러 대화에 참석한 한 언론인은 참석한 러시아 측 인사들의 주장이 최근 북한의 그것과 너무나 유사하다는 점에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전언을 토대로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국제 사회의 많은 전문가들은 이미 북한을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과 같은 반열로 놓는다. … 국제사회 제재에도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개발했다. 제재는 핵개발을 지연시켰을지 몰라도 막지는 못했다. 평양 시내에 금수 사치품인 렉서스와 도요타자동차 등이 굴러다니지 않는가(국책연구소 소장).” “핵 폐기 검증 사찰단은 북한뿐만이 아니라 주한 미군에도 보내야 한다. 미국의 핵 폭격기가 북한 주변에 비행하지 않는다는 것도 한반도 비핵화에 포함되어야 한다(전 주한대사).” “유엔 대북 제재 결의안에 따라 올해 말까지 러시아에 있는 북한 근로자는 모두 돌아가야 한다. 많을 때는 7만 명까지 됐으나 지금은 1만5000명가량인데 이것이 ‘0’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유엔 결의안에서 근로자를 제외하지 못한 것은 ‘외교적 실책’이었다(전 주북한대사).” 유엔 대북제재를 승인했고 이행을 책임져야 할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 인사들이 제재를 비난하는 것은 충격적입니다. 특히 국책연구소 소장은 “북한은 미국이 이란과의 핵협상 파기처럼 합의를 쉽게 뒤집는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북미 양국만의 합의가 아니라 여러 국가가 참여한 가운데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6자회담 프로세스 같은 다자협의체를 다시 가동하자는 것으로 북미 양자회담 국면에서 붉어진 ‘러시아 패싱’ 논란을 잠재우고 자신들의 존재감을 높여야 한다는 지극히 러시아 국익위주의 발언으로 풀이됩니다. 이런 정황들은 러시아의 개입이 북미 비핵화 협상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장애가 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비핵화 협상의 주체는 미국과 북한이며, 러시아 역시 한국이 자처했던 중재자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북-러 밀월 속에서 북핵문제는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는 꼴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개입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레짐을 흔드는 상황까지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 또한 일반적인 관측입니다. 러시아 역시 공식적으로는 북한 핵·미사일 개발에 반대하고 있으며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제재 이행의 책임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우크라이나 침공 등의 이유로 러시아에 대해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는 미국은 러시아의 경솔한 행동에 반격을 가할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러시아가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격으로 대북 제재의 완화가 필요하다고 선언해 주거나 기존 제재의 예외조항으로 빼놓은 나진하산 경제협력 사업 추진 필요성 언급 등의 선언적인 조치들은 나올 수 있습니다. 장 위원은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등장을 꼭 부정적으로 볼일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북한이 현재의 대화와 협상 트랙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기대입니다. 북-러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북한의 그릇된 상황 판단과 이에 따른 군사적 도발이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 명확히 지적되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신석호 동아일보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 201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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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위원장, 세계 여론은 당신 편이 아니야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북한 이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부상이 지난달 28일 심야에 베트남 하노이에 있던 외신 기자들을 멜리아호텔로 불러 들였을 때, 저는 하노이에서의 마지막 밤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역사적인’ 현장에는 가지 못했지만, 뒤늦게 연락을 받은 한국 기자들이 달려갔을 때, 미국과 일본 등 외국 기자들이 일찌감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한밤 기자회견’의 타깃 오디언스는 ‘세계 여론’이라는 점을 직감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모든 핵무기와 미사일, 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 전체를 포기하라는 말도 안 되는 조건으로 협상의 판을 깼다, 우리 위원장님은 피해자다’라는 식의 세계 여론 선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15일 평양에서 북한 주재 외교관과 외신 기자를 대상으로 긴급 기자회견을 연 것이 가장 최근의 사례입니다. 러시아 타스통신의 1보로 알려지기 시작한 기자회견은 AP통신 등 순전히 평양에 지국을 두고 있는 외신들에 의해 알려졌습니다. 북한의 대내용인 노동신문은 관련 보도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이번 기자회견 역시 ‘세계 여론’에 호소하기 위한 국제용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북한은 지난 30여 년의 핵·미사일 개발 과정에 자신들에게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갈 때마다 세계 언론과 외교가를 상대로 선전전을 벌여 왔습니다. 중국과 러시아 등 우호국을 설득하고 상대국의 유력 인사들을 평양으로 불러들여 나팔수 역할을 맡기는 ‘초청외교’를 반복해 왔습니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르게이 키슬랴크 등 러시아 상원의원들이 16일 평양에 도착해 21일까지 북한 측과 양국 관심사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타스 통신이 17일 보도했습니다. 키슬랴크 의원은 전 미국 주재 러시아 대사 출신으로 2016년 미국 대선에 러시아가 개입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지목돼 2017년 본국으로 소환된 인물이기도 합니다. 북한에서는 임천일 외무성 부상이 14일 모스크바에서 이고리 모르굴로프 아시아담당 외무부 차관과 세르게이 베르쉬닌 외무 차관을 잇달아 만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앞서 리길성 북한 외무성 부상은 2차 북미회담이 결렬되던 지난달 28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 부장을 만났습니다. 강대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최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비핵화 흥정을 하다 한 방 맞고 온 옛 사회주의 동생국가 북한을 싸고도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미국에게 버림받은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동정의 전문을 보낸 것도 일면 이해가 갑니다(15일 북한 노동신문). 하지만 북한의 노력이 진정 세계 여론을 변화시켜 미국의 대북정책을 돌려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습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국가 진영과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전현 사회주의 국가 진영이 편을 가를 때 캐스팅 보트 역할을 했던 서유럽의 여론은 여전히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대해 싸늘한 반응입니다. 영국과 프랑스,독일 등의 언론과 외교가에서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에 대한 동정심은 ‘1도 없는’ 상태라고 합니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불신만 여전한데, 북미 회담 전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대충 합의하는 ‘나쁜 거래(Bad Deal)’ 가능성을 우려했고 회담이 깨지자 저러다 또 북한과 전쟁을 한다고 할까봐 걱정이라고 합니다. 유럽 주요국들의 싸늘한 반응은 북한이 자초한 것이기도 합니다. 영국과 프랑스 등은 미국보다는 조금 더 북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었지만, 2017년 북한이 사거리 1만km이상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에 성공하면서 완전히 돌아섰습니다. 그 미사일을 평양에서 동쪽으로 쏘면 미국이 사정거리지만, 왼쪽으로 쏘면 런던과 파리, 베를린이 사정거리에 든다는 사실이 널리 퍼진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 서유럽 국가들은 트럼프가 밉고 못미덥긴 하지만 북한이 핵·미사일과 생화학무기 등 자신들의 국가이익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는 WMD 전체를 포기한다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기 전까지는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에서는 세계 여론이라는 것을 실체가 없는 신기루 정도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세계 여론은 자신의 생각을 전세계의 것으로 포장하고 싶은 개별 국가들의 헛된 망상으로 보는 것입니다. 각국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신의 국가이익 관점에서 저마다 달리 해석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태두로 추앙받는 고 한스 J 모겐소 전 시카고대 교수는 그의 대표작인 ‘국가간의 정치’에서 세계 여론의 허망함을 이렇게 지적합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북한 당국자들의 필사적인 세계 여론 선전전은 그 자체의 효과를 믿기 때문으로 보기 힘들어 집니다. 오히려 북미 2차 정상회담 결렬로 빈손으로 돌아온 뒤 최고지도자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상황에, 죽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독재의 하수인’들의 처절한 몸부림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선희 부상은 김 위원장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유예(모라토리엄) 재개와 관련해 조만간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재재를 풀기 위한 협상이 또 다른 제재를 부르는 우를 범하길 바라지 않지만 북한 체제의 특성상 그 길을 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빈센트 부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이 말한 ‘김정은 체면 살리기(face saving)’가 가뜩이나 북한 편이 아닌 세계 여론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 말입니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 2019-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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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힘의 중심부’ 제대로 건드린 트럼프…김정은의 선택은?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예로부터 국제정치 무대에서 일어난 외교참사는 국내정치적 분란을 일으켰습니다. 심한 경우 정권의 존망을 좌우하기도 하지요. 나치 정권의 팽창주의 야욕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네빌 체임벌린 영국 수상이 1938년 9월 히틀러와 체결한 뮌헨 협정이 대표적입니다. 약소국인 체코슬로바키아를 나치의 입에 넣어주고 영국의 안위를 도모한 비겁한 외교였습니다. 내부에선 윈스턴 처칠 등이 강력하게 반발했습니다. 1년 뒤 독일이 협정을 어기고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자 체임벌린 정권은 무너지게 됩니다. 훗날 ‘유화정책’의 대명사가 된 이 조약에 대해 체임벌린은 제대로 변명도 못한 채 1940년 죽음을 맞이하지요. 2월 28일 북미 2차 정상회담의 결렬은 북한에게 외교참사가 분명합니다. 내부에서 수령이라는 이름으로 신격화 된 최고지도자가 친히 해외에 나가서 외국 최고지도자를 만나는 노고를 했음에도 빈손으로 돌아온 것은 북한 건국 71년사에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선대인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우방국인 소련이나 중국과의 협상도 아래 실무자 선에서 잘 조율된 문서에 서명을 하는 정도였습니다. 미국과의 1994년 제네바 합의나 주변 5개국과의 2005년 9·19공동성명도 실무자가 이룬 합의를 최고지도자가 승인하는 ‘바텀 업(Bottom-Up)’ 방식이었습니다. 이른바 ‘탑 다운(Top-Down)’ 방식이라는 미명 하에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그것도 ‘협상의 달인’이라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샅바 잡이를 한 김정은 위원장은 보기 좋게 업어치기 한 판을 당한 형국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일성 주석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위대한 지도자(Great Leader)라는 호칭으로 김정은을 하늘높이 띄웠다가 핵과 미사일, 생화학무기까지 모든 대량살상무기(WMD)의 포기라는 빅딜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회담이 결렬된 뒤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김정은의 메시지를 들고 쫓아갔지만 허사였다고 합니다. ‘모든 외교참사는 국내정치적 분란을 부른다’, ‘북미협상의 결렬은 김정은에게 외교참사다’라는 명제가 맞는다면 삼단논법에 따라 ‘북한 국내정치에 분란이 온다’는 결론이 이어질까요? 분란이 있다면 어느 정도이고 어디까지 영향이 미칠까요? 하노이 북미 2차 정상회담 결렬 이후 우리가 평양의 내부 정치에 안테나를 세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현재까지 감지된 변화는 세 가지입니다. 회담 결렬 다음날인 1일 새벽 전세계 기자들을 모아놓고 김정은의 속마음을 전한 것은 하노이 직전까지 북미접촉을 주도한 김영철이 아니라 이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부상이었습니다. 북한 노동신문은 하노이 회담 결렬 8일만에 처음으로 대중에게 알렸습니다. 김정은은 6~7일 평양에서 열린 제2차 전국 당 초급선전일꾼대회에 보낸 서한 형식으로 귀국 후 첫 대 국민 메시지를 보내며 “수령의 혁명 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우게 된다”고 언급했다고 노동신문이 9일 보도했습니다. 공작과 협상 전문가인 김영철이 뒤로 물러서고 핵문제 전문가인 이용호 최선희가 나서는 것은 미국 측에서 협상을 담당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스티브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사라지고 북핵 전문가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전면에 나선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주민들 사이에 외부 정보유통이 빨라지고 있음을 아는 최고지도부는 8일 만에 고민을 끝내고 협상을 깬 미국보다는 그것에 기뻐한 일본을 비난하는 형식으로 공식 보도를 내놓았습니다. 김정은은 ‘수령도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예방주사 같은 한마디로 수령이 나서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메시지를 내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으로 분란이 끝날까요. 알 수 없습니다. 일각에서 말하는 대규모 숙청 같은 것이 있을 수도 있고, 북미 대화에 대한 노동당 내부의 정책갈등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결과가 김정은 체제에 균열을 가져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김정은과 ‘이번에는 뭔가에 합의하지 않기로 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결과적으로 북한 체제의 아주 특별하고 민감한 급소를 찔렀다는 것입니다. 바로 ‘수령의 권위’라는 북한 수령 절대주의 독제체제의 핵심입니다. 프로이센의 전쟁 철학자 칼 폰 클라우제비츠가 말한 ‘힘의 중심부(Center of Gravity)’의 북한 판이라고나 할까요? 북한 체제의 힘은 김정은이 들고 있는 핵미사일이나 중국과의 동맹관계에서도 나오지만 신처럼 신성시되는 수령의 권위가 시원인 것입니다. 전쟁의 철학으로 불리는 ‘전쟁론(On War)’에서 클라우제비츠는 ‘힘의 중심부’란 적의 에너지가 집중된 곳. 그곳을 공격해 무너뜨렸을 때 전쟁의 목적인 평화를 달성할 수 있는 그런 지점이라고 말합니다.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김정은의 권위를 깎아 내리는 상황 만들어 냈다고 해석합니다. 폼페이오 장관과 비건 대표를 통해 적당한 수준에서 협상해줄 것처럼 김정은을 하노이로 끌어낸 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빅딜 카드를 꺼내 결렬을 유도했다는 것입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미국이 정말 계획적으로 그렇게 했다면 정보기관의 수준이 높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미국의 수준을 그렇게까지 높게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테이블을 박차고 나가야 할 때가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기술이 의외의 효과를 거둔 것이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트럼프 행정부는 향후 평양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변화를 예의주시 할 것으로 보입니다. 평양도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오랜 장고에 들어갈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가 당분간 계속될 수도 있고, 과거의 패턴대로 누군가 수령의 잘못을 대신 책임지는 피의 바람이 불 수 도 있습니다. 반대로 수령도 인간이고 실수할 수도 있다는 새로운 방식의 선전선동이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바야흐로 ‘비핵화 협상과 북미의 국내정치’가 한반도 주변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 201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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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사훈련이 협상 칩인가? 클라우제비츠의 경고[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채널A의 베트남 하노이 특설 스튜디오가 마련된 곳은 시내 중심가에 있는 호안끼엠 호수 인근 렉스 호텔의 13층 옥상이었습니다. 지난달 26일부터 28일까지 현지 특보 해설위원으로 초빙돼 아침에 출근해서 특보들에 출연하고 저녁에 종합뉴스 해설을 마친 뒤 땅으로 내려오는 특이한 생활을 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태운 비스트 1호 승용차가 숙소인 메리엇 호텔에서 나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담 장소였던 메트로폴 호텔로 가고 오는 장면을 여러 차례 목격하며 해설할 수 있었습니다.그 높이가 몇 십 미터나 될까. 옥상 스튜디오에 올라 있으면 호수를 둘러싼 하노이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뿌연 매연 속의 도시, 촘촘히 들어선 프랑스풍의 건물들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베트남전쟁 당시 1965년부터 시작된 하노이 북폭에 참여한 미군 조종사들과 이에 맞선 베트남 조종사들의 시야가 조금이나마 상상이 되었습니다. 소련제 미그기를 타고 미군 폭격기에 맞선 이들 가운데엔 북한에서 파병된 공군 조종사들도 있었습니다. 북한의 베트남 파병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신재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위원은 “조종사 수 백 명을 비롯해 북한 군 5000~1만 명 미만(연인원)이 파견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파병 당시 김일성 주석의 유명한 발언들도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1965년 파병 여부를 결정하면서 김 주석은 “젊은 조종사들이 실제 전쟁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6·25전쟁 당시 맞섰던 미군 전투기들과 다시 대결해 봄으로써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제2의 남침에 대비하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평화 시에 전쟁 대비를 하기 위해 장교들을 외국에 보내 경험하게 하라”는 프로이센의 전쟁 철학자 칼 폰 클라우제비츠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기도 했습니다. 김 주석은 또 “베트남이 제공하는 전투기를 잘 몰고 승리한 뒤 그 비행기를 타고 북으로 돌아오라”고 말했다고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가 기자의 하노이 출장 전인 19일 귀띔했습니다. 실제로 북한은 1975년 베트남이 공산화 되자 1978년 말 인민무력부장 백학림 단장을 비롯한 군사대표단을 베트남에 보내 “이제 우리가 한반도 통일을 할 차례”라며 베트남 정부에 F-4 팬텀기 4대 등 미군 장비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태 전 공사는 “이 사실을 안 소련 측이 ‘절대 안 된다. 저걸 주면 북한이 남한과 전쟁을 시작할 것”이라고 반대했다고 전했습니다. 베트남이 거부하자 북-베트남 관계는 다시 악화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태 전 공사가 “베트남이 한반도 문제와 엮이면 결과는 한국에 유리했다”고 한 대목은 결과적으로 앞을 내다 본 선견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베트남전쟁 패전 이후 미국은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해 깊은 고민과 연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은 자만에 빠져 결국 붕괴하게 되었다. 북한도 1968년 무장공비 파견 등 무모한 대남 무력도발과 중화학 군수공업 편중 경제정책을 펴다 경제의 균형을 스스로 무너뜨렸다”고 지적하면서 하노이 회담이 잘 되지 않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실제로 하노이 담판을 폼 나게 노렸던 김정은 위원장은 ’때로는 테이블을 박차고 나가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의 기술‘에 제대로 걸려 빈손으로 평양행 기차를 타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1호 열차를 타고 중국을 관통해 북향하던 그는 뜻밖의 귀향 선물을 받은 듯합니다. 한국과 미국이 바로 이달로 다가온 키 리졸브 연합군사연습과 독수리 훈련을 아예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입니다. 합동 군사연습과 훈련의 중단 또는 축소는 북한이 영변핵시설 동결에 합의했을 경우를 상정하고 논의되었던 ’상응조치‘의 하나였습니다. 일각에서는 “북한 비핵화를 이끌기 위한 유인책”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이번 결정은 지난달 28일 김정은과의 협상이 결렬된 뒤 기자회견을 가진 트럼프 대통령이 “훈련에 수억 달러가 들어간다. 워 게임(war game)을 할 수 있는데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자 나온 조치입니다. ’있을지도 모를 북한의 전쟁 도발을 막는데 돈 쓰기 싫다‘는 순전히 경제적 이유라는 이야기지요. 만일의 가능성을 대비하는 것이 안보요 그 핵심은 훈련입니다. 이미 지난해 6월 12일 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연합훈련 중단을 선언했을 때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 나오는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전쟁의 마찰(friction)과 훈련의 필요성“우리는 위험, 육체적 노고, 정보, 마찰을 서로 연합해 전쟁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요소들이라고 정의하였다. 행동을 방해하는 매개물이 된다는 제한성 때문에 일반적인 마찰이라는 단일 개념으로 묶을 수 있다. 마모를 줄일 수 있는 윤활제가 있을까? 단 하나가 있지만 장군이나 군대가 항상 즉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전투 경험이다. (중략) 평화 시의 기동작전은 진짜 전투 경험의 약한 대체제이지만 일상적이고 기계적인 훈련보다는 부대에 이점을 줄 수 있다. 기동작전을 계획하는 것은 경험 없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장점이 더 많다. 작전에 포함된 마찰의 요소들은 장교들의 판단력과 상식과 결단력을 단련한다. (중략) 평화 시에 전쟁에 대한 익숙함을 얻는 다른 매우 유용한-비록 제한적이지만-방법은 실제 복무해본 외국의 장교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다른 대안은 장교들 일부를 전투장에 보내 전쟁이 어떤 것인지 배우게 하는 것이다.”Clausewitz, Carl von, On War, ed. and trans. by Michael Howard and Peter Paret,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6), p. 122.비록 북한과 미국이 여전히 비핵화 대화를 이어나가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이번 합의 결렬에서 드러난 것처럼 양측의 인식과 이해관계 차이는 너무나 큰 상황입니다. 자칫 북한은 핵과 미사일 능력을 보유한 채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고난의 행군‘을 선택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 멀고 먼 길에 일어날지 모르는 불확실성과 다양한 상황에 대비해야 할 때, 미국의 일방적인 결정에 따라 가장 중요한 양국의 연합훈련이 중단되는 상황에 다양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전쟁은 한 사람의 일생을 통해 어쩌면 한번 직접 체험할까 말까 할 정도로 드문 사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신(神)은 마치 죽음처럼 늘 살아있는 우리와 함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인간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 전쟁의 신에 대처할 올바른 전쟁 방법, 즉 올바른 군사전략을 준비하는 것이 될 것이다(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전쟁신과 군사전략‘ 리북, 2012).” 협상의 달인이라고 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 신을 알고 있는 걸까요.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 201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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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년 이후 완전히 달라진 북한의 핵정책…이유는?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미국과의 관계정상화 없이는 살아갈 수 있어도 핵 억제력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조선의 현실이다. 관계정상화와 핵문제는 철두철미 별개의 문제이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이 있다면 조미관계 정상화가 아니라 민족의 안전을 더욱 믿음직하게 지키기 위한 핵억제력을 백방으로 강화하는 것이다.”북한은 2009년 1월 17일 외무성 대변인 기자문답을 통해 북미관계의 개선보다 핵억제력의 강화를 우선시 하겠다고 처음으로 발표했습니다. 1993년 1차 핵위기 발발 이후 국제사회의 문제로 등장한 자신들의 핵·미사일 개발이 미국과의 대화와 관계개선을 위한 것이라는 ‘대화용’ 가설을 스스로 기각하고 핵보유국으로서 안보를 추구하기위한 것이라는 ‘보유용’ 가설을 확인한 것입니다. 꼭 1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실제로 북한은 이후 미국과의 관계개선 보다는 핵 보유를 위해 두 눈을 꼭 감고 달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 결과 2017년 11월 29일 미국 수도 워싱턴과 경제중심 뉴욕을 핵탄두로 공격할 수 있는 사거리 1만3000km급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시험발사에 성공한 뒤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 1월 1일 김정은의 신년사 이후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현재까지 핵을 가진 채로 제재를 벗어나기 위해 국제사회를 상대로 전방위 매력공세(charming offensive)를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그럼 그 시원이 된 10년 전, 2009년의 북한 핵정책 변화는 왜 일어났으며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요. 이종주 박사는 지난해 1월 북한대학원대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 ‘북한 핵정책의 변동성 연구 1991~2017’에서 “‘북미관계 정상화를 통한 체제 안전보장’이라는 기존 생존전략의 한계를 인정하고, 더 이상 핵억제력 등 다른 핵심이익을 양보하면서까지 북미관계 개선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해석했습니다. 논문을 통해 1991년부터 2008년까지 북한의 핵정책과 2009년 이후의 그것을 확실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국제정치학적 용어로 말하면 2009년을 기점으로 북한의 대미 핵정책이 ‘제한적 편승’에서 ‘전면적 내부균형’으로 전환했다는 것입니다.다소 어려운 국제정치학 용어를 설명하기 전에 2008년과 2009년 당시 한반도 주변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볼까요? 2008년 2월 한국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해 10년 만에 진보에서 보수로 정권이 교체되었습니다. 그해 11월 미국 대선에선 사상 처음으로 흑인인 버락 오마바 민주당 상원의원이 당선되어 2009년 1월 취임했습니다. 역시 8년 만에 공화당에서 민주당의로의 정권교체였습니다. 북한에서는 2008년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졌다 일어난 뒤 그해 말 3남인 김정은(당시 이름은 김정운)을 3세 세습 지도자로 책봉했습니다.그래서 당시 전문가들은 2009년 오바마 정부의 취임을 앞두고 나온 북한 외무성의 강경발언 배경을 △오바마 행정부와의 핵 담판 대결을 앞둔 실력행사 △이명박 정부의 보수적인 대북정책에 대한 경고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의 세습독재자 교체에 따른 내부동요 무마를 위한 대외적 긴장 조성 등으로 해석했습니다.그러나 이 박사는 앞에 거론되지 않은 다른 흐름에서 답을 찾습니다. 바로 미국 단극체제에서 미중 양극체제로의 변화, 즉 국제체제의 가장 높은 층위인 강대국간의 힘의 비율 변화에서 답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1990년대 초반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체제전환 이후 세상은 미국이라는 유일 초강대국이 이끌어 왔습니다. 그러나 2008년 미국이 세계 경제의 중심인 월가에서 비롯된 경제위기에 빠지고 베이징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중국의 위상이 주요 2개국(G2)으로 높아지면서 미국 단극체제가 미중 양극체제로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그래서 1차 핵위기 이후 미국과의 제네바 합의(1994년 10월 21일), 2003년 10월 시작된 2차 핵위기 이후 미국 중국 러시아 한국 일본 등 5개국과의 9·19공동성명(2005년 9월 19일)등에 응하며 미국 단극체제 하에서 핵을 내세우면서도 북미관계 개선을 추구했던 북한이 2009년 이후 북미, 북중관계 악화를 감수하는 핵보유국 지위 추구라는 초강수를 던지고 매진했다고 보는 것이 논문의 주장입니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가 중국의 후진타오 및 시진핑 정부와 경쟁과 협력관계를 형성하는 와중에 ‘북핵공동관리체제’를 굳혀가려 하자 북미중 3각관계 속에서 전략적 중요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핵보유라는 목표를 정하고 밀어 붙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미중 양극체제의 형성은 북한에게는 ‘기회의 얼굴을 한 위협’이었다. 북한에게 불리한 생존조건을 부여한 미국의 단극체제가 약화되고 동맹국인 중국이 부상하는 우호적인 세력균형의 변화이면서, 미중관계의 변동에 따라 북한문제가 좌우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위험한 변화이기도 했다. 북한의 미·중 사이에 전략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회와 미·중 모두에게 방기될 수 있는 위협에 동시에 직면하였다. 이러한 국제체제의 변동에 대응하여 북한은 미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핵정책에서 벗어나 중국의 부상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한편, 북핵 문제에 대한 미·중의 공동관리체제가 고착되는 것을 저지하는 핵정책을 추구해야 했다. 북한은 중국의 부상이 G-2로 인식되기 시작한 2009년을 기점으로 유효성이 낮아진 미국에 대한 ‘제한적 편승’을 중단하고, 핵억제력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는 ‘전면적 내부균형’을 선택하였다. 핵억제력을 추구는 국제비확산체제 유지라는 미국의 핵심이익과 한반도 안정이라는 중국의 핵심이익을 동시에 침해함으로써 미·중간 우선순위의 충돌을 일으켜 북핵문제에 대한 미·중 공동 관리체제의 균열을 가져오고, 북한의 대미, 대중 레버리지를 강화한다.”여기서 편승(bandwagoning)과 균형(balancing)은 국제정치학에서의 신현실주의 주장자인 케네스 월츠 등이 제기한 강대국 국제정치의 양태입니다. 편승은 쉽게 말해 한 국가가 더 강한 국가에 순응함으로써 제기되는 위협을 피하는 것을 말하고 균형은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맞서서 위협에 대응하는 것을 일컫습니다. 국내정치에서는 강한 후보자에게 다른 후보들이 모여들어 자리를 얻는 편승이 일반적이지만 세계정부가 부재한 국제정치에서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강대국들이 상대국에 대해 균형을 취하려 노력하는 것이 일반적인 행동양태가 됩니다.논문에서는 전면적/제한적, 내부/외부 등의 구분에 따라 아래와 같이 여섯 가지 형태가 소개됩니다.①전면적 편승-위협국의 요구를 전면적으로 수용하고 위협국에 동조·순응하는 전략②제한적 편승-위협국의 요구를 일부만 수용하고 위협국과의 관계에서 의도적으로 갈등을 야기함으로써 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편승하고자 하는 전략③전면적 내부균형-위협국에 대항하여 힘의 균형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군비를 증강하는 전략④제한적 내부균형-위협국에 대항하여 군비를 증강하되, 힘의 균형이 아니라 위협국과의 협상 등 제한적 목적을 추구하는 전략⑤전면적 외부균형-위협국에 대항하여 다른 국가와 동맹/협력관계를 구축하고, 냉전기의 미·소 진영 외교와 같이 동맹에 국가의 생존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전략⑥제한적 외부균형-위협국에 대항하여 다른 국가와 동맹/협력관계를 구축하되, 협력의 범위를 제한하는 전략북한이 미국 단극체제 하인 1991년부터 2008년까지는 미국에 대해 ‘②제한적 편승’ 전략을 썼지만 미중 양극체제가 출발한 2009년부터 2017년까지는 ‘③전면적 내부균형’ 전략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2018년부터 전면적 관여(대화) 전략으로 선회한 것은 미중관계의 불확실성이 계속 높아지는 상황에서 비핵화가 핵보유보다 더나은 생존전략이 될 수 있는지 모색하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입니다. 북한이 핵을 가진 평화(nuclear peace)를 추구하고 있다는 시각보다는 현 상황을 다소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이런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중요한 것은, 강대국인 미국에 대해 강대국이나 추구할 수 있는 균형 전략, 그것도 전면적 내부 균형 전략을 약소국인 북한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논문은 그래서 북한을 ‘강대국 정체성을 추구하는 약소국가’ ‘정상국가 인정을 위해 투쟁하는 불량국가’라는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과연 북한의 전략이 성공했는지 아닌지는 이번 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우선해 태평양 건너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제거와 기타 핵·미사일 전력의 동결 수준에서 대북 제재를 해제하는 이른바 ‘나쁜 거래(Bad Deal)’를 할 경우 세계사는 그것을 북한의 승리로 기록할 것이요, 미국의 북한 핵개발 저지 외교의 치욕적인 실패로 기록할 것입니다. 미국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라는 목표를 잃지 않고, 세계 비확산 체제와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의 안보 등을 두루 추구하는 협상에 임하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겠습니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 2019-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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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북한은 미중관계 속에서 자국이익 철저히 챙겼는데…우리는?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북한이 주요 2개국(G2)인 미국과 중국을 쥐락펴락 하며 자칭 ‘핵·미사일 개발을 완성’을 선언하자 약소국인 북한이 핵을 매개로 양 강대국을 다루는 국제정치적 배경에 대한 연구 논문들이 잇따라 나왔습니다. 1년 터울로 나온 논문 두 편은 모두 외교부와 통일부에서 현장을 누빈 당국자들의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를 끕니다. 2008년 서훈 현 국정원장이 동국대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이 ‘선군외교’라는 개념으로 북한과 미국 양국관계만 다룬 반면 오늘부터 2주에 걸쳐 소개할 두 논문은 중국을 포함해 북-미-중 3국 관계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오늘 소개할 논문은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이 지난달 북한대학원대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정치통일전공) ‘북한-미국-중국의 전략적 삼각관계 형성과정 - 1989~1994년간 북한의 대중 및 대미정책 변화를 중심으로’입니다. 6·25전쟁 휴전 이후 미국과 이렇다 할 관계를 맺지 못한 상황에서 한-중 수교로 중국과의 동맹관계마저 잃을 위기에 처한 북한이 1993년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라는 초강수로 1차 핵위기를 일으키고 결과적으로 미국과 대화에 성공해 제네바 합의를 체결하고 덩달아 중국과의 동맹관계도 강화하는 과정을 이론적인 틀과 역사적 사실로 고증했습니다.조 대사의 논문은 북한이 미국과의 비핵화협상과, 중국과의 관계복원을 병행하면서 미·중의 전략적 이해차이를 활용해 국익을 극대화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해 직접적인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논문은 1970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이후 미-소-중 3국관계의 상호작용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1981년 로웰 디트머가 만들어 체계화한 ‘전략적 삼각관계(strategic triangle)’ 모델을 이론적 자원으로 활용했습니다.논문에서 북한은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중추’로 그려집니다. (디트머는 ‘전략적 삼각관계’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행위자를 중추라고 부른다. 중략) 결국 현상을 변경하고 변화를 만들어냄으로서 삼각관계의 역동성을 부여하는 주도자(initiator)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합니다. ”주도자가 반드시 물리력이나 자산을 기준으로 정해지지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며 ”제1차 핵위기 과정에서 북한은 변화를 만들어 내는 주도자 역할을 했다. 그 변화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졌는가, 그 반대였는가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논의할 문제“라고 설명합니다.논문의 본문에 해당하는 역사적 사실은 다음과 같은 짧은 가설을 검증하는데 할애됩니다. ”냉전 종식의 전환기에서 북한은 NPT 탈퇴라는 위기를 조성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중국과 미국이 북한 및 한반도에 대해 갖고 있는 전략적 이해 차이를 부각시키고 북·미·중 전략적 삼각관계를 성립시켜 중국의 동맹 방기 위험을 피하는 동시에 미국의 압박에 대응하는데 성공했다.“좀 더 쉽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북한이 탈냉전기의 절대적인 열세를 넘어서 미국 및 중국과 전략적인 삼각관계를 구축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위상을 극적으로 개선할 수 있었던 것은 첫째, 냉전 후 미국이 주창하는 신국제질서의 주요 의제인 핵확산 문제를 야기함으로써 미국이 직접 대화에 나서지 않을 수 없도록 했다는 점과 둘째, 그 과정에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면서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가 부각되고 이에 따라 중국이 북중동맹을 재확인하도록 만들었던 덕분이다. 미국은 핵확산을 방치할 수 없어 북한에 대해 직접 관여하지 않을 수 없었고 중국은 북한이 갖는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북한을 감싸고 보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 중소간의 삼각외교가 북한에게 정치적 자율과 군사 경제적 실리를 준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미중관계의 맥락이 탈냉전기 북한 대외전략의 핵심이 된 것이다.“물론 조 대사가 1차 핵위기의 결과인 제네바 합의를 만들어낸 북한의 외교에 우호적인 것은 아닙니다. 결론 부분에서 이렇게 비판적으로 이야기합니다.”그 때 개혁개방의 길을 포기했기 때문에 북한은 동아시아의 역동적인 경제발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고, 지금까지도 그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 때 핵옵션을 남겼기 때문에(제네바 합의는 기본적으로 핵능력의 동결이었고 불능화나 폐기는 2005년 9·19공동선언의 후속조치인 2·13합의나 10·3합의에서 논의되지만 역시 실패하게 됩니다) 미국과 신뢰관계를 구축하지 못했고, 지금도 그 불신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 때 핵옵션을 남겼기 때문에 핵무장의 길을 가게 되었고, 그 결과 북한의 고립은 지금까지 심화되어 왔다. 1993-1994년 위기 당시 북한은 “제제는 곧 전쟁”이라 했지만, 지금 북한에게 제재는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다. 북한의 대외활동은 지금도 제재에 막혀 있고, 남북교류와 경제협력도 제재 때문에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그렇다면 북한을 상대한 미국과 한국에는 잘못이 없을까요? 북한이 여섯 차례나 핵실험을 하고 핵무기를 갖고 있는 지금에 와서 1990년 초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여전히 북한의 비핵화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이상 과거의 경험에서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이에 대해 조 대사는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 보면 한미 양국의 대응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며 ”우선 미국은 이 문제를 비확산의 문제로만 본 나머지 ‘강제적인 상호사찰제도’ 등의 도입에만 매달려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인 해결을 도외시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당시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북미관계의 진전을 의도적으로 제한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1992년 1월 뉴욕에서 열린 북한 김용순 노동당 비서와 아놀드 켄터 미 국무차관의 제1차 북미 고위급 회담 이후 이어진 대선 정국에서 노태우 정부는 이른바 ‘통미봉남’을 우려한 나머지 북미대화의 진전에 제동을 거는 우를 범했다는 것입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계속됩니다)신석호기자 kyle@donga.com}

    • 2019-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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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양건이 김정일 앞에서 “금강산 안돼” 목소리 높인 까닭은…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우아한이 런칭 100일을 맞는 이 기사를 기획하던 중 김정안 채널A·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이 요즘 미 행정부 내에서 유행하고 있는 재미난 이야기를 전해왔습니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중심으로 비핵화 라인에 포진한 김혁철 전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 박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 부위원장을 함께 ‘쓰리 철’(Three chol)‘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번역 하면 ’3철‘인데 세 사람 이름 공통자인 ’철‘에 착안한 단어입니다. 애칭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김정은의 새 대미라인에 대한 미 행정부 한반도 관계자들의 관심과 기대를 반영하는 듯 합니다. 워싱턴에서는 또 최근 북한이 김혁철의 새직함, 대미특별대표직을 비건 특별대표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것에 대해서도 평가하는 분위깁니다. 올해 48세, 능통한 영어에 협상경험이 풍부하다고 알려진 김혁철을 ’특별대표 대 특별대표‘란 틀에 맞춰 모양새를 갖출 만큼 북한은 적극적 협상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겁니다. 김 전 대사는 김일성종합대를 졸업하고 외무성에서 일해온 전략통으로 분류됩니다. 박 부위원장은 대남 사업을 하는 통일전선부 출신이지만 유엔 북한대표부 참사 출신으로 미국 사정에 밝은 편입니다. 김혁철의 등장을 북한 국내정치적 시각으로 보면 좀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우선 북한이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아니라 김혁철을 내세운 것은 ’최선희는 차관급이니 1급인 비건과 회담하기에는 격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회담의 내용보다 격식을 중요시하는 고루한 북한 관료주의의 발현인 셈이지요. 하지만 더 본질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북한 외부성의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가 협상의 전면에 등장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정치군인 출신으로 주로 대남 도발 공세에 전공을 가지고 있는 대남·정보기관장 김영철에서 핵협상 전문 외교 일꾼 김혁철에게 바통이 전달된 것입니다. 나이 든 김정은의 군사 가정교사 출신에서 젊은 엘리트 관료로의 변화기이도 합니다. 김혁철의 뒤에는 최선희와 이용호 외무상, 리수용 노동당 부위원장 등 외교부 전문엘리트 관료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북한 외무성, 특히 대미라인은 1993년 빌 클린턴 행정부 출범 직후 시작된 1차 북핵 위기 이후 무려 26년 동안 북한 지도부가 초강대국 미국을 도발과 대화라는 2중 전술로 우롱하며 핵·미사일 개발을 강행할 수 있도록 실무적으로 뒷받침해 왔습니다. 이들은 그동안 축적된 북미회담의 역사와 핵·미사일 개발의 기술적 지식들로 무장한 채 이번 협상에서 미국이 들고 나올 수 있는 모든 선택지를 염두에 두고 다양한 대응방안을 준비해 왔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김혁철 등 외무성 테크노크라트들은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에 대해서도 ’지적인 해게모니‘를 행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김정은이 어느 정도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치적 타협을 보고 싶더라도 테크노크라트들은 조목조목 그렇게 하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며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최고지도자의 권위가 하늘과 같은 북한에서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지금까지 남북 회담의 역사 속에서 증명되는 것은 이들 테크노크라트들은 일상 생활과 의전에서는 김일성 김정일 등 최고지도자에게 깍듯하게 충성을 보이지만 자신의 직무와 관련해서는 ’할 말은 하라‘고 교육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관광객 박왕자 씨 피살 사건으로 중단된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2009년 8월 묘향산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을 때, 배석했던 김양건 당시 통전부장은 김 위원장 앞에서 얼굴을 붉히며 남측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를 조목조목 반박했다고 훗날 한 당국자가 전했습니다. 결국 김 위원장은 금강산 관광 재개에 관한 조치들에 합의해줬지만 남측과 대화가 통하는 협상파로 알려진 김양건도 테크노크라트로서 할 말은 했던 거지요. 이처럼 독재국가인 북한에서 최고지도자, 즉 주인인 김정일이나 김정은이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이 될 것 같지만 사실은 실제로 일을 하는 테크노크라트, 즉 대리인(속하게는 머슴)들의 목소리도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국제정치학 교과서에서도 이론적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외부에서는 아직도 김정은이 말하는 ’비핵화와 경제재건‘이라는 국가전략이 진짜인지 아닌지 논의가 분분합니다만, 그것이 진짜라고 하더라도 평양 내부의 국내정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입니다. 30년 가까이 월급을 챙겨준 핵문제가 끝나면 안 된다고 본 외무성의 조직적인 이해관계가 실무적인 협상을 방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비핵화와 북미관계 진전에 따라 점차 기득권을 잃게 될 군부가 방해를 놓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김정은이 정주년(5년 10년 단위로 꺾어지는 해)이 아닌 8일 제71회 건군절(인민군 창건일) 행사에 직접 등장해 ’엄지척‘을 연발하며 군부 달래기에 나선 것도 그런 우려에 따른 정치적인 행보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올 한 해 워싱턴의 국내정치와 더불어 평양의 국내정치를 잘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김정안 채널A·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jkim@donga.com}

    • 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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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 “북한과 합의 가능성 크다” 그러나 비핵화 목표에 대해서는…[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의 설 연휴 기간 중인 3일(현지 시간) 방송된 CBS방송의 ‘페이스 더 네이션’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나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핵화에) 합의할 가능성도 매우 크다. 김정은은 북한을 엄청난 경제 대국으로 만들 기회를 가졌다”고 이달 말로 예고된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습니다. 그는 ‘미군을 한국에 계속 주둔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 다른 이야기는 한 번도 안했다”며 주한미군 철수 논의가 없었음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소리 방송(VOA) 방송이 과거 발언을 날카롭게 분석한대로 그는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과 성과를 강조하는 것에 비해 자신이 원하는 북한 비핵화의 내용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습니다.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 역시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직전인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미국 스탠퍼드대 강연 이후 한국 전문가와 특파원들을 만나 대화하면서 ‘북한 비핵화’의 목표에 대해 중요한 언급을 했습니다.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라는 단어의 의미를 공유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엇이 비핵화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나 상호 합의는 없다. 우리의 관점에서는 국제법이 요구하는 바에 부합하도록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전체를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대량살상무기의 생산 수단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같은 운송수단의 제거도 포함된다. 그러나 무엇이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이고, 무엇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인가에 대한 구체적이고 합의된 정의는 없다(연합뉴스 1일자 보도).” 이에 대해 북핵 문제 전문가인 전성훈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정상회담이라는 열차가 종착역도 합의가 안 된 채 달린다는 얘기”라며 “이달 말로 거론되고 있는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어설픈 합의가 된다고 해도 최종 목적지(비핵화의 목표)가 명시되지 않으면 북한의 핵 보유는 기정사실화 될 것이다. 비건의 발언이 그런 우려를 더 크게 만들었다”고 우려했습니다. 바로 비핵화 협상의 목표가 명확하지 않거나 흔들리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앞서 이보다 더 한 발언도 있었습니다. 북한 비핵화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현장 사령관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11일(현지 시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과) 어떻게 미국 국민에 대한 위협을 줄일 수 있을지를 논의하고 있다. 궁극적인 목표는 미국인의 안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비록 “완전하고 최종적인 비핵화에 도달해야 한다”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는 불가능한 것으로 단념하고 미국 본토와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 폐기 정도로 만족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에 불을 지폈습니다. 지난해 북한 비핵화를 위한 북미협상이 시작된 이후 미국이 제시하는 협상의 목표(objective)를 중요하게 보아왔습니다. 목표에 의한 경영(MBO)이라는 용어가 있는 것처럼 목표는 인간의 모든 활동의 지향점이 되는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캄캄한 밤바다에서 풍랑을 만난 배가 멀리 희미하게나마 등대를 보고 달려가면 살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난파되어 침몰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물며 북한의 비핵화라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국과 국제사회가 어떤 목표를 내걸고 추구하는지는 협상의 성과를 좌우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800년대 프로이센의 전쟁 철학자이자 전략론의 대가인 칼 폰 클라우제비츠(C. V. Clausewitz)는 전쟁 목적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쟁에서나 경영에서나 일반적으로 모든 목적이나 목표는 구체적이고 명확하고 제한적이고 실현가능해야 합니다. 이런 구체성과 더불어 중요한 것이 일관성입니다. 전쟁의 와중에 전쟁의 목표를 자주 바꾼다면 그 전쟁은 이길 수가 없다는 게 역사가 증명하는 바입니다. 미국의 치욕스러운 패전 사례이자 이후 미국 내부를 크게 변화시키는 계기가 됐던 베트남전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패전 이후 미군의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월맹군이 ‘월남 정복’이라는 단순하고 일관된 목적을 추구하는 사이 미국의 전쟁목표는 명확하지도 않았고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하며 변해갔습니다. 네브라스카대 휴 아놀드 교수가 1975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1949년부터 1967년까지 인도차이나반도에서 미국이 공표한 군사적 작전의 명분이나 목표는 모두 21가지나 되었다고 합니다. 1949년부터 1962년까지는 공산주의의 침략을 막는다는 거대하고 이념적인 목표가 제시됐다가 1962년부터 1968년까지는 반(反) 게릴라전이라는 베트남 내부 문제 차원의 목표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다 군사적 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자 1969년부터는 ‘미군의 안전한 철수’가 전쟁의 목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북한 비핵화라는 전쟁에서 미국은 다시 베트남전의 우를 범하면 안 될 것입니다. 이미 미국은 2000년대 초반 집권 공화당 의회에서 만들어 낸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 비핵화(CVID)’라는 목표를 내걸었다가 슬그머니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라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버전으로 바꾼 전력이 있습니다. 용어는 좀 다르지만 어쨌거나 김정은이 밝힌 완전한 비핵화라는 설명으로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페이오 장관이 제기한 ‘미국인의 안전’이라는 단어는 CVID나 FFVD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목표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무엇이 미국인의 안전인가? 목표가 요구하는 구체성이나 명확성, 제한성과 실현가능성을 모두 결여하고 있을뿐더러 일관성까지 훼손하는 우를 범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전개될 2차 북미협상에서 국제사회는 양국이 지향하는 비핵화의 목표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달라지고 흔들리는지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CVID나 FFVD가 과연 제한적이고 달성가능한 목표인가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작 협상을 1년 해보고 목표를 바꾼다는 것은 강대국 미국답지 않습니다. 만일 전쟁 중에 목표를 이리저리 바꾸다가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채 제재만 허무는 결과에 이른다면 그것은 아마도 베트남 전쟁 패배에 버금가는 미국 외교사의 치욕이 될 것입니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 2019-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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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정치 좌우하는 유대인들…2차 북미 정상회담의 ‘변수’?[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최근 한 모임에서 미국과 대북제제에 대한 재미난 분석을 들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대북 제재를 조금 완화해주고 내년 대선 때까지 북한 문제를 관리하고 싶어 하는데, 재무부를 중심으로 한 미국 내 유대인 그룹이 이를 강력히 반대하기 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핵을 가진 채로 제재를 풀고 싶어 하는 북한은 ‘유대인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미국 국내정치’라는 아주 어려운 암초를 만난 셈입니다. 북한이 핵을 가진 채 제재망을 빠져나가는 것을 우려하는 측에서는 ‘미국 정치를 좌우하는 유대인들’이라는 엄청난 우군을 만난 것이구요. 분석의 논리구조는 이렇습니다.①미국 정치와 경제는 유대인들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워싱턴 정치와 뉴욕의 경제를 주무르고 있죠. 미국·이스라엘공공정책위원회(AIPAC)라는 로비단체는 규모와 결집력 면에서 미국 내 어떤 이민족을 능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철저히 이스라엘의 국가이익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보고 미국 정치과 경제가 이스라엘의 국가이익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②그런데 최근 이스라엘의 국가이익을 위협하는 최고의 지역 강대국은 이란입니다. 핵을 개발하려는 이란을 제재해 왔지만 평소 이스라엘의 자국 이기주의를 마땅치 않게 생각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유엔 안보리 이사국 및 독일(이른바 5P+1)과 함께 이란이 장기적으로 핵개발을 포기하는 대가로 제재를 완화하는 협상에 2015년 최종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인 사위 제러드 쿠슈너를 둔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협상을 파기했습니다.③지난해 11월 마침내 이란을 다시 미국의 제재국가로 묶는데 승리한 미국 내 유대인 집단은 다음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기술이 이란에 확산되는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기술 모두에 있어 이란을 앞서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북한이 다시 살아나 이란에 핵미사일 기술을 확산할 우려가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제재를 일부라도 풀어주는 것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④여기에 대북 제재를 직접 실행하고 있는 재무부는 전통적으로 유대인 출신이 장악하고 있으며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의사와는 상관없이 대북 제재 완화에 부정적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스티븐 므누신 장관이 유대인 출신입니다. 이런 논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역사적 근거도 많습니다. 2015년 9월 19일 미국 국무부가 북한 등 6자회담 당사국들과 공동성명을 채택하자마자 미국 재무부는 마카오에 있는 방코델타아시아(BDA)를 북한과의 불법 자금 거래 의심 금융기관으로 지정했습니다. 이 때문에 은행 내 북한 자금이 동결되자 1년 이상 북미관계가 경색됐습니다. 이처럼 역대 미국 행정부가 북한과 대화를 강조할 때에도 재무부만은 ‘김 씨 일가의 해외 은닉 비자금을 샅샅이 찾아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런 미 재무부의 역대 장관은 유대인들이 독차지 해 왔습니다. 빌 크린턴 행정부 때에도 로버트 루빈과 로런스 서머스가 대를 이어 재무장관 자리를 지켰습니다. 조지 W 부시 말기의 헨리 폴슨에 이어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인 중에는 티머시 가이트너와 제이컵 루가 연이어 재무장관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역시 모두 유대인들입니다. 가이트너 재무장관(2009~2013년) 시절을 분석한 ‘누가 미국을 지배하는가’라는 사이트에 따르면, 재무부 고위 관료 26명 가운데 18명이 유대인이거나 유대인 배우자를 두고 있습니다. 전체의 69%로 미국 내 유대인 인구 2%대비 34.5배 과잉 대표되고 있습니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은 “미국 내 유대인 그룹은 친 공화 파와 친 민주 파로 나눌 수 있는데 친 공화 보수파 유대계는 북한 문제와 이란 문제를 같은 선상에서 본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원장이 말하는 보수파 유대인들은 북한 핵개발에 근본적인 반대를 하면서 선제타격론에 압장 서 왔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북한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핵미사일을 가지게 되면 이 기술은 언젠가 이란으로 수출될 것이며 이는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할 것이라는 논리 때문이었습니다. 국내 미국 정치 전문가들을 상대로 실제 워싱턴에서 유대인들의 움직임이 포착되는지 물었지만 아쉽게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유대인들이 그런 의사를 노출하기도 쉽지 않고 심증은 가는데 물증은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유대인들만이 대북 제재 해제나 완화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칼럼이 나간 뒤 보다 구체적인 제보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만일 이런 분석이 사실이라면 국제정치학적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응하는 존 케네디 미 행정부의 정책결정 절차를 분석해 외교정책결정과정의 3가지 모델을 제시한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가 제시한 제3모델인 ‘정부정치(government politics)’ 모델을 정확히 보여주는 사례가 되기 때문입니다. 제1모델이 국가를 하나의 합리적인 단일체로 보는 ‘합리적 행위자(rational actor)’ 모델, 제2모델이 국가 결정은 일정한 정부 조직의 목표와 논리에 따른 것으로 보는 ‘조직 행태(organizational behavior)’ 모델이라고 할 때, 정부정치 모델은 이렇게 정의됩니다.“외교정책이란 (때로 다른 수단으로 하는) 정치의 연장이다. 하나의 집단이 다른 집단에 대해 승리를 거두고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시킬 때도 있다. 서로 당기는 힘이 균형을 이루어 어느 집단의 입장과 무관한 결과가 도출될 때도 있다. 장기판의 말은 (제1모델에서 말하는 것처럼) 어느 한 경기자가 심사숙고한 결과에 따라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제2모델에서 말하는 것처럼) 조직의 일상절차가 반자동적으로 작동한 결과에 따라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게임에 참여한 여러 사람이 서로 다툰 결과에 따라 움직인다.”그레이엄 앨리슨·필립 젤리코(김태현 역), 『결정의 엣센스: 쿠바 미사일 사태와 세계핵전쟁의 위기』(모음북스, 2005), 318~319쪽.실제로 워싱턴 정가에 월가에 유대인들이 추동하는 대북 제재 반대 정치가 작동하고 있다면 이것은 2월 말로 논의되고 있는 북미 2차 정상회담의 결과를 낙관할 수 없게 하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입니다. 북한 문제가 단순한 세계 비핵화 레짐의 유지와 북미관계를 넘어 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뿌리깊은 적대감에 얽혀 있다는 이야기이고, 북한도 나아가 북미 협상의 진전을 바라는 한국 문재인 정부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차원의 문제입니다. 전세계 유대인들을 찾아가 ‘이란은 몰라도, 북한은 이제 나쁜 나라가 아닙니다’라고 설득하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신석호기자 kyle@donga.com}

    • 2019-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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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은 대외 정체성을 바꿀 수 있을까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워싱턴 특파원 3년 임기를 마치고 귀임하기 직전인 2015년 10월 3일. 현지 대학 동문회 선배들의 요청을 받아 북한의 미래를 주제로 특강을 했습니다. 북한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일곱 가지 범주를 설명 하고 미래의 관찰과 판단은 개인의 몫으로 맡긴 뒤 우아하게 끝맺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북한이 끝까지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데?”라는 질문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북한은 그해 여름 휴전선 목함지뢰 사건으로 빚어진 남북 군사 충돌 위기를 대화국면으로 전환시켜 남한, 중국 그리고 미국을 상대로 한 대대적 평화공세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지금 보면 다음해부터 핵무력 완성국면을 시작하기 위한 ‘위장평화공세’였습니다. 미국 교민이 대부분인 동문들도 종국에는 북한이 핵을 가지려 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지금 보면 매우 현실적인 판단었던 셈입니다. “북한은 이미 세 차례(2006, 2009, 2013년) 핵실험을 하고 수차례 미국 본토를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을 했습니다. 북한은 체제수호의 보루라며 대를 이어 개발해 온 핵능력을 쉽사리 포기하지 못할 것입니다. 미국도 이미 가져버린 핵능력을 어찌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남한과 국제사회의 비핵화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지만 만의 하나, 그 경우 세상은 어떻게 되느냐. 그건 핵을 든 북한이 앞으로 주변국들에게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핵을 들고 주변국을 위협하는 악당 짓을 계속 할 것이냐, 아니면 핵을 들었지만 착한 정상국가로 살아갈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북한이 핵을 들고 한국에 핵공격 위협을 하고, 미국과 군사대결 국면을 조성하면 북미관계나 남북관계 진전은커녕, 한반도에 큰 불행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핵을 든 북한이 남한과 국제사회에 해코지를 하지 않고, 완전히 달라진 선한 국가로 이미지를 정착시킨다면 먼 훗날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남북관계가 진전될 지도 모릅니다. 물론 남한도 북한의 핵에 대비를 한 상태이겠고, 그런 상태로 많은 시간이 흘러야 결과를 알 수 있겠지요.” 우려했던 대로 북한은 2016년 1월 6일 4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2년 동안의 핵무력 완성국면을 연출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국제사회를 상대로 전방위적인 평화공세를 벌였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세 차례 정상회담을 발판 삼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세 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국제적인 고립에서 탈피하고 핵무기를 내려놓은 정상국가의 길을 가는 체 했습니다. 하지만 1일 신년사에 나타난 김정은의 이중적인 발언과 8일 북중 정상회담에서 울려퍼진 양국 밀월 강화의 세레나데를 보면 불행하게도 3년 3개월 전 워싱턴 동문들에게 말했던 대로 문제가 흘러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특히 양국은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정세 관리와 비핵화 협상 과정을 공동으로 연구·조종해 나가는 문제와 관련해 심도 있고 솔직한 의사소통을 진행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양국이 한 몸처럼 머리를 모으고 입을 맞추겠다는 것을 선언한 것으로 지난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기한 ‘중국 배후론’이 사실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한 꼴입니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밝힌 ‘새로운 길’에 대해 시 주석과 논의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국 내에서 북한이 미국 본토를 겨냥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린다는 희망 섞인 관측이 지난해에 이어 다시 나오고 있지만, 단거리 중거리 핵미사일의 조준경 하에 놓인 한국과 일본에게는 미국이 ICBM 폐기를 받고 대북 제재를 완화시켜주는, 그래서 북한이 주변국을 볼모로 잡은 어정쩡한 핵보유국이 되는 경우가 오히려 최악의 시나리오입니다. 최근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북한이 ‘핵을 가진 평화(nuclear peace)’를 명분으로 핵 보유 굳히기에 노골적으로 나선 것이라는 우려에 힘이 실리는 것은 무리가 아닙니다. 북한은 핵을 들고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을 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꿈이 현실화 될 동안은 중국이 제공하는 생명선에 의존해 낡은 수령 절대주의 체제를 지키려고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북한이 과연 핵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악당화 되어있는 자신의 대외적인 정체성을 바꿀 수 있느냐 입니다. 언제까지일지 모르는 오랜 시간을 곰처럼 인내하며 지금까지 보여준 악당 행태를 참아내느냐 아니면 핵을 가진 악당의 본성을 드러내느냐에 따라 동북아 정세는 물론 북미관계와 남북관계 진전의 실마리가 생기느냐 아니냐가 판가름 날 것입니다. 북한이 종국적으로 비핵화의 길을 가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짧아도 30년은 될 것으로 보이는 그 지난한 과정에 악당의 이미지를 벗고 정상국가로의 이미지를 심느냐, 마느냐가 비핵화 이후 북한의 미래를 결정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국제정치학 이론에 대입해 말하면 구성주의 학파가 중요시하는 ‘정체성과 무정부상태의 사회적 맥락과 의미’의 문제에 해당합니다. ‘국제정치의 사회적 이론(Social 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이라는 책으로 구성주의의 대표적 학자가 된 알렉산더 웬트 교수는 국제체제가 무정부적이며 안보딜레마에 빠진 국가들이 생존을 위해 권력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주의의 가정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무정부적인 국제체제에서도 국가들은 동일한 정체성을 갖지 않으며 체제를 구성하는 국가들의 정체성에 따라서 국제적 무정부 상태의 사회적 맥락과 의미가 달라진다고 보았습니다. 국제체제를 구성하는 국가들의 정체성에 따라 국제체제의 의미가 결정되며, 동시에 국체체제의 의미는 개별 국가의 정체성에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국제정치학에 사회학을 접목한 이 주장은 영국과 북한의 핵을 비교한 다음과 같은 설명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상대 국가와의 관계에 따라 동일한 무정부적 국제체제라고 해도 의미가 달라진다. 웬트가 자주 사용하는 사례는 바로 영국과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의 대조적인 의미이다. 영국의 핵무기가 북한의 핵무기보다 보유 숫자나 파괴력의 측면에서 더욱 강력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영국의 핵무기보다 북한의 핵무기를 더욱 위험하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차이는 영국과 북한 핵무기의 물질적인 측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으며, 오직 영국과 북한이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만들어낸 사회적인 맥락과 더불어 영국과 북한 핵무기의 의미에서 비롯된다.”이근욱, 『왈츠 이후: 국제정치이론의 변화와 발전』(서울: 한울, 2009), 241쪽. 북한이 미국의 제제와 압박 속에서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안으로부터 바꿔낼 수 있을까요? 구체적으로 김 씨 일가의 신정화 된 독재정치. 즉 수령 절대주의 독제체제의 내적 긴장과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대외 도발을 하고 불법적인 방식으로 외화조달을 하는 나쁜 버릇을 고칠 수 있을까요? 그 결과 영국처럼 핵을 가졌지만 국제사회의 지도국이자 건전한 일원으로 이미지를 탈색하기까지 과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요? 냉정한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에서는 ‘그것은 알 수 없는 일’로 치부합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에야 ‘그렇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그래서 그렇게 될 때까지 우리는 북한이 들고 있는 핵능력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고 그에 맞게 능력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북한의 말만 믿고 마치 북한이 핵은 들었지만 정상국가가 된 양 대응하다간 미래 세대가 큰 화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을 기성세대는 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 2019-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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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중 밀월과 사슴몰이의 비극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미국이 북한 비핵화를 위해 최대의 압박을 하려면 중국과 잘 지내야 한다. 그런데 미국은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다. 북핵은 중국에도 위협이지만 이젠 이차적인 것이 되었다. 미국의 위협이 주요 문제가 되었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베이징에 와서 우리를 봉쇄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느끼고 있다. 중국 정부는 북한 제재에 과거와 같이 많은 자원을 쓰지 않을 것이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북미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던 지난해 10월. 서울에서 열린 한 비공개 국제회의에 참가한 중국의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가 이렇게 이야기하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채텀하우스 룰(누가 말했는지를 대외에 공개할 수 없음)’에 따라 진행된 이날 회의에서 그는 사실상 ‘북한 비핵화는 물 건너갔다. 왜? 중국이 돕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당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역문제로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며 양국 간에 관세장벽을 세우는 무역전쟁이 정점에 이를 때였습니다. 이 전문가는 중국이 사실상 북한 비핵화 문제를 미중 경제전쟁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공개한 것입니다. 그는 이런 이유도 덧붙였습니다. “비핵화에는 시간이 걸린다. 제재도 해야지만 보상도 해야 한다. 미국이 북한을 비핵화 하려면 다자적인 협력을 통한 인센티브 패키지가 필요하다. 선거에 따라 정권이 바뀌고 의회의 비준을 받아야 하는 미국은 경제지원을 크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중국이 지원하지 않으면 북한이 안심하지 못할 것이다. 트럼프는 중국은 경제전쟁에 몰아넣으면서 북한에 대해서도 보상은 없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폐쇄(CVID)만 외치고 있다. 말로는 김정은을 사랑한다고 하는데 김정은은 믿지 않을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7일 다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자 미국 내에서 다시 ‘중국 배후론’이 나오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역사적 맥락 위에 있습니다. 지난해 하반기 비핵화 협상이 교착 국면에 빠졌을 때 북한의 비핵화 협상 조건을 중국이 좌우하며 협상 타결을 어렵게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일종의 음모론입니다. 실제로 시 주석은 지난해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 전인 5월 7~8일 김 위원장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여 두 번째 북중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이어 회담 후인 6월 19~20일 다시 김 위원장을 다롄에서 만났고 이후 북미 비핵화 협상은 교착 국면으로 들어섰습니다. 북한으로서는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조건을 후견국인 중국과 사전 협의하고 만일의 경우에 협력을 다짐하는 절차가 필요했을 것으로 짐작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중국도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자신들의 국익을 벗어하는 내용들이 결정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전 스크린을 하는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실상 6개월 만에 다시 시작되는 북미 비핵화 협상 2라운드의 팡파레가 북중 정상회담으로 시작되는 것을 보면서 국제사회는 ‘중국이 과연 북한 비핵화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회의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추궈훙(邱國洪·사진) 주한 중국대사는 지난해 11월 26일 본사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 평화연구소가 주최한 국가대전략강좌에 연사로 나와 비핵화 협상에서 북한을 중국이 조종한다는 이른바 ‘중국 배후론’에 대해선 “아무런 근거가 없다. 중국은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낼 능력이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소개한 전문가의 발언이나 지난해 하반기 북중 밀월과 비핵화 교착 상태의 경험을 보면 중국은 북한 비핵화라는 국제사회 공동의 목표보다 북한 문제를 지렛대로 자신의 국익을 지키려는 행태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북한 비핵화의 주요 당사자인 북한 미국 한국의 능력(capability) 한계 때문에 완전한 비핵화가 쉽지 않다고 말해 왔습니다. 북한의 경우 비핵화에 따른 개방과 개혁을 하고도 체제를 유지할 능력(수용능력), 미국의 경우 북한이 숨겨놓은 핵 능력을 탐지해 협상을 통해 제거할 능력(탐지능력), 한국의 경우 비핵화의 대가로 대규모 경제 지원을 할 수 있는 능력(지불 능력)에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중국이 자기의 국가이익을 일부 양보하고서라도 북한 비핵화를 위해 국제사회와 협조하는 능력입니다. 이걸 양보 능력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것 역시 쉽지 않아 보입니다. 네 번째 당사자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국제정치의 본질적인 질문 하나가 나옵니다. 세계정부가 없는 무정부적 국제정치에서 한 국가가 자신의 국익을 위해 다른 국가들과의 협력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까요? 국제정치 학파 간에 차이는 있지만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에서는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비관적인 결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근대 철학자인 장 자크 루소가 유명한 저작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제시한 ‘사슴몰이의 비극’이 그 근거로 자주 인용됩니다. 여러 명의 사냥꾼(북한 비핵화의 당사국)들이 산중의 사슴(북한 비핵화)을 함께 잡기 위해 산을 포위하고 몰이를 하지만 한 사냥꾼(중국)이 옆으로 지나가는 작은 토끼(북한을 동맹국을 붙들어 놓을 때 오는 이익)를 잡으려 대오를 이탈하기 때문에 사슴은 유유히 도망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관계에서는 ‘소탐대실’하는 이 사냥꾼을 비난할 수 있겠지만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에서는 그것이 세계정부가 없는 무정부적 국제체계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일, 그러니까 행위자의 합리적 선택을 유도하는 구조의 문제로 칩니다. 하지만 세계정부가 없다고 해도 가장 큰 힘을 가진 지도국의 리더십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금 북한 비핵화 문제에 대해서는 바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능력과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말 중국을 무역협상의 테이블에 묶어 놓는 동시에 북한과는 제2차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양보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현란한 협상의 기술을 발휘할 수 있을지, 막 시작된 북한 비핵화 2라운드의 첫 번째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겠습니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 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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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17년째 北 연구한 전문기자가 본 ‘김정은 신년사’ 의미는…

    ‘나는 선대의 유훈인 한반도 비핵화를 하고 싶지만 미국이 제 값을 치르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새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다시 만나 흥정하고 싶지만 그가 만족할만한 보따리를 가지고 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난 핵능력을 진전시킬 수밖에 없다.’ 김정은이 2019년 신년사를 통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내용을 굳이 의역해주면 이런 정도일 것입니다. 그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바라는 ‘비핵화의 제값’이 무엇인지도 구체적으로 밝혔습니다. 발언 순서대로 나열해 보면 △한미 군사훈련의 중단 △미국 전략자산 등 전쟁장비 반입 중지 △현 정전체계를 평화체계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협상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남북관계에 대한 미국의 간섭과 개입 배제 △우리의 주동적이며 선제적인 노력(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등)에 대한 미국의 신뢰성 있는 조치(종전선언이나 제재 해제, 군사적 압박 해소 등) △상호 인정하고 존중하는 원칙에서 공정한 제안을 주고받는 협상 등입니다. 그러면서 “미국이 세계 앞에서 한 자기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우리 인민의 인내심을 오판하면서 일방적으로 그 모습을 강요하려 들고 의연히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으로 나간다면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이 부득불 나라의 자주권과 국가의 최고 이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위협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은 당장 나오지 않았지만 김정은이 내건 조건은 미국이 당장 들어주기 힘든 내용들이 대부분입니다. 또 “올바른 협상 자세와 문제 해결 의지를 가지고 임하라”는 등의 충고성 발언은 강대국 미국의 자존심을 건드리기에 충분합니다. 대남 메시지에서는 전반적으로 한국 문재인 정부에 대해 호의를 베푸는 듯하지만 “이미 합의한 대로 대치 지역에서의 군사적 적대관계 해소를 지상과 공중, 해상을 비롯한 조선반도 전역으로 이어놓기 위한 실천적 조치들을 적극 취해 나가야 한다”며 사실상 한반도 이남 전역의 무장해제를 추구하겠다는 속셈도 드러냈습니다. 이상의 내용들은 전체적으로 자신들이 핵을 개발하고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책임을 미국에게 전가하면서 요구사항들을 늘어놓는 식입니다. 이를 통해 남한과 미국 진보진영 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한국이 북한의 요구사항을 전향적으로 수용해 비핵화를 진전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일기를 바라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이미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하여 선포하고 여러 가지 실천적 조치들을 취해왔다”고 강조한 것도 요구의 정당성을 확산하려는 발언으로 보입니다. 최근 ‘한반도 비핵·평화의 길’이라는 공저를 펴낸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북한이 핵실험 중단을 넘어서서 핵무기 생산도 중단했다는 주장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며 “만약 이것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한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이 2020년에 가서 100개 정도의 핵무기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이상은 신년사라는 형식으로 공개된 ‘김정은의 말’을 토대로 그의 ‘의도’를 추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꼭 1년 전 2018년 신년사로 시작된 김정은의 대외 평화공세를 지켜보면서 지금도 풀리지 않는 근본적인 질문은 그의 진정한 의도와 비핵화 진정성입니다. 어떤 진영에서는 그의 말은 전혀 믿을 수 없으며 북한의 핵보유 굳히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반대 진영에서는 이른바 ‘개혁군주론’까지 들먹이며 김정은이 북한을 전혀 새로운, 국제사회가 바라는 길로 이끌고 있다고 홍보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는 오로지 김정은의 말을 토대로 한, 심지어는 ‘김정은의 말을 전해들었다는 사람들의 말’을 토대로 한 정치적 추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늘 경계해 왔습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에서는 상대방의 말보다는 행동, 의도보다는 실제로 가지고 있는 힘의 정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적대적인 국가의 의도는 아예 알 수 없다고 가정합니다. 의도는 숨길 수 있거니와 있다가도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격적 현실주의자로 불리는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세 번째 가설은 어느 나라라도 상대방의 의도를 확실하게 알 수는 없다는 것이다. 특히 어떤 나라라도 상대방 국가가 공격적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국가들은 필연적으로 상대방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국제체제 속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점잖은 나라들이다. 다만 판단을 확신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 나라의 의도를 100%의 확실성을 가지고 거룩한 것이라고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중략) 더욱이 의도란 쉽게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 국가의 의도가 하루는 점잖은 것 같아 보이지만 그 다음날 적대적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의도의 불확실성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들은 다른 나라들이 자신들이 보유한 공격적 능력에 부합하는 공격적 의도는 결코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다. (중략) 이런 세상에서 국가들은 상대방에 비해 자신이 유리해질 수 있다면 거짓말하고 사기치고 냉혹한 힘을 사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만약 평화를 조용한 상태 혹은 상호간에 조화를 이루는 상태라고 정의한다면 이 세상에 평화가 가능하다고 기대할 수 없다.” 김정은이 쏟아낸 신년사는 며칠 동안 이른바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 대상이 되고 그의 말이 어떤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지에 대해 다양한 설들이 나올 것입니다. 이제 17년째 북한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의 말이 아니라 행동, 추정되는 의도가 아니라 추정되는 핵능력을 기준으로 우리의 대책을 마련하자고 촉구합니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 201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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