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호

신석호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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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석호 전무입니다.

kyle@donga.com

취재분야

2024-03-31~2024-04-30
남북한 관계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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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일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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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일반3%
언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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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바로 지금이 ‘분단저널리즘’ 경계해야 할 때”

    Q. 최근 한반도 평화 국면을 맞이하여 저널리즘의 방식이 ‘분단 저널리즘’에서 ‘통일 저널리즘’으로 변화되어 가는 인상을 받습니다. 언론의 입장에서는 ‘통일 저널리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시민의 입장으로서는 어떤 자세로 각종 저널리즘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함양해야 할까요? 또한, 현재의 한반도 정세를 다루는 언론의 역할과 고민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A. 2018년 1월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를 시작으로 북한이 과감한 전방위 대화국면을 조성하면서 이를 보도하는 한국 언론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표면적이지만 가장 상징적인 것이 북한 최고지도자에 대한 호칭이지요. 2016년부터 2년 동안의 대외 전략도발 국면에서 이름만 불러 지탄의 뜻을 전했던 김정은에게는 ‘북한 노동당 국무위원장’이라는 정식 칭호가 붙었습니다. 그의 아내 이설주에게도 ‘여사’라는 존칭이 붙었구요. 북한과 대화에 나선 정부가 이를 원했고 대화와 협상이라는 외교적인 방법으로 북한 비핵화가 이뤄지길 바라는 대부분의 언론들이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북한도 과거 ‘남한 괴뢰패당의 수괴’라고 하던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문재인 대통령이란 존칭을 사용했습니다. 신문 지면과 방송 보도 등에서 전년까지 제2의 한반도 전쟁위기를 조성하는 주범처럼 취급됐던 김정은 위원장은 이젠 한반도 평화를 주도하는 핵심 인물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20여년 된 이 문제가 군사적 충돌이 아닌 외교적인 대화와 협상으로 풀릴 가능성을 일단 존중하는 분위기입니다. 4월 27일 판문점에서의 첫 문재인 대통령-김정은 위원장 정상회담을 비롯해 6월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역사적인 첫 미북 정상회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위원장의 세 차례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과정에 한국 언론들은 새로운 팩트를 전하면서 북핵 위기의 평화적 해결 가능성을 차단하지 않는 자세를 견지해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언론사나 기사들이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믿을 수 없다는 전제 하에 한국과 국제사회가 또 한번의 북한 기만극에 현혹되고 있다는 의심을 강하게 내포한 기사나 칼럼도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실제로 비핵화와 같은 중대한 외교적 성과물은 상대방의 행동과 가시적인 조치로 확인되는 것이지, 말과 제스처를 통한 의지표현만으로는 그것의 진위를 알 수 없는 것이 국제정치학의 기본입니다. 하지만 이런 우려와 의심보다 북한의 진정성을 믿어주고 싶은 호의적인 분위기가 전년에 비해 많아졌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올해 한국 언론의 보도 태도를 ‘통일 저널리즘’이라고 개념화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통일 이라는 개념 속에는 북한이 싫어하는 독일식 흡수통일이 내포되어 있고, 북한의 비핵화가 곧바로 어떤 식의 통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현 정부는 북한의 급속한 붕괴에 따른 독일식 흡수통일의 가능성을 낮게 보고 오히려 북한을 정상국가로 만들어 국제사회의 건전한 일원이 되게 함으로써 우선 평화와 공동 번영을 이뤄보자는 정책기조가 강합니다. 한국 언론들이 모두 정부의 정책기조를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평화적인 비핵화를 바라는 언론들의 보도 태도가 곧바로 통일에 대한 기원을 깔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2014년 ‘분단저널리즘 뛰어넘기’라는 책을 통해 처음으로 ‘분단 저널리즘’이라는 용어를 제안했던 저로서는, 오히려 지금도 ‘분단 저널리즘’의 폐해를 경계해야 할 상황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제기한 분단저널리즘이란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남한에서 생산되는 북한 및 남북관계 보도가 서구 저널리즘 원칙을 일탈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북한과 남북관계를 다루는 남한 기자들이 공정성과 정확성, 객관성, 취재원 공개, 전문가 인용의 적정성 등 서구 저널리즘이 구축한 원칙을 지키기가 쉽지 않아 나타나는 언론보도의 부정적 측면을 지적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각 언론사들이 북한 문제에 대해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 위에 서 있는 상황에서, 전문성이 부족한 기자들이 짧은 시간에 많은 기사를 써 내야 하는 상황에서, 이른바 전문가들이 특정한 이념적 스펙트럼이나 경제적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상황에서 언론이 정치적으로 편향되거나 사실과 다른 잘못된 북한 기사를 쓸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북한 관련 정보를 사실상 정부가 독점하는 구조와 만나 상황을 악화시킵니다. 당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반영된 북한 기사들이 현실을 호도할 가능성입니다. 그래서 보수 정부 하에서는 북한의 나쁜 점을 부각하는 기사들이 더 많고, 진보 정부 하에서는 북한의 좋은 점을 홍보하기 위한 기사들이 더 많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한국 기자들이 취재하는 많은 영역, 즉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등 모든 분야가 시대에 따라 변화를 겪기 마련이지만, 북한 영역만큼 정부 교체에 따라 모든 것이 바뀌는 영역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보수 정부는 북한과 갈등을 필요 이상으로 키우고 진보 정부는 북한과 관계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분단국가 한국의 태생적인 정치 지형의 필연적인 결과로도 보입니다. 하지만 언론은 그 변화에 너무 휩쓸리지 말자, 최대한 공정성과 객관성 등 서구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킬 필요가 있다는 의미에서 ‘분단 저널리즘’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한국 언론은 이러한 ‘분단 저널리즘’의 구조와 위험성을 인정하고 가급적 정치와 이념에 오염되지 않은 사실을 전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언론인들도 스스로 전문성을 키워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사실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퀴어야 하겠습니다. 또 사실을 말하는 전문가와 희망을 사실처럼 이야기하는 이들을 구별해 인용해 정치적으로 왜곡된 정보가 사실을 흐리는 일을 막아야 하겠습니다. 그런 노력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지혜로운 독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정환 학생과 같은 언론 사용자들이 그러한 노력을 하는 언론과 기자들의 기사를 골라 받아들일 줄 아는 지혜를 발휘해 준다면 분단 저널리즘의 폐해가 크게 사라질 것으로 봅니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 2018-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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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미국은 왜 아테네인들처럼 북한에 약자의 도리를 강요하지 못할까

    미국은 비핵화 문제를 놓고 북한과 한 해 동안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6월 12일에는 사상 최초로 미국 현직 대통령과 북한 최고 지도자가 싱가포르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그 과정에 남북 정상이 세 차례나 만났고 북중 정상도 역시 세 차례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실무자들이 아닌 정상 간 회담을 통한 비핵화 이른바 ‘탑-다운(Top-Dowm)’ 접근법을 통한 북한 비핵화 가능성에 대해 부풀었던 기대와 달리 북핵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핵심 당사자인 미국과 한국, 북한의 능력(capability)의 문제를 들어 미국이 원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 그리고 북한이 원하는 체제안전보장과 경제개발의 맞교환이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올해 초부터 주장해 왔습니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북미 정상 간 대타협을 통한 북한 비핵화가 왜 어려운지에 대해 더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미국에 선거가 없는 내년엔 올해처럼 긴박하고 현란한 외교전이 벌어지기보다는 핵심 당사국 내부에서 ‘왜 북한 비핵화가 이리도 어려운가’에 대한 숙의와 고민이 진행될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강대국인 미국과 약소국인 북한이 서로 토론을 길게 하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북한이 ‘미국이라는 최강대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도 국가들이 하지 말라는 핵개발을 했다’는 점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현재-미래-과거 핵프로그램에 대한 신고 및 폐기 스케줄을 약속하고 미국과 국제사회가 이에 상응하는 대가(미국과의 관계정상화와 경제적 지원 등)를 지원하는 빅딜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강대국 미국은 약소국 미국과 정상회담을 해주는 가장 중요한 카드를 쓰고도 이 문제에 대한 ‘빅딜’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지루한 토론에 응하는 우를 범했습니다. 토론으로 따지만 북한이 최고수입니다. 현재는 이 토론조차 답보상태인 듯 보입니다. 북한은 미국이 ‘상응조치’를 하면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겠다며 한동안 상응조치로 종전선언을 요구하다가 이것이 먹히지 않자 경제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신고 및 검증) 전에는 종전선언도, 대북제재도 완화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특히 북한은 미국에 대해 ‘신뢰’를 강조하면서, 강대국 미국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약소국인 자신들은 미국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없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1년 내내 미국과 북한의 지루한 대화를 지켜보면서 기원전 5세기 펠로폰네소스전쟁과정에 있었던 강대국 아테네 군인들과 약소국 밀로스섬 사람들의 대화를 머릿속에 되뇌었습니다. 현실주의 정치학의 시작으로 불리는 역사학자 투키디데스가 쓴 ‘펠로폰네소스전쟁사’의 핵심으로 꼽히는 이 대화의 내용과 의미를 대학시절 학부 수업에서 처음 들었지만 지난달 우아한 런칭을 준비하면서야 비로소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습니다. 우선 제가 발췌한 대화의 핵심 내용은 이렇습니다.핵심한 추렸음에도 다소 긴 아테네인과 밀로스인의 대화를 지금 현재 미국과 북한의 대화에 짧게 대입해 보면 이럴 것 같습니다.미국: 인간관계에서 정의란 힘이 대등할 때나 통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강자인 우리는 당신들의 비핵화를 요구할 수 있고, 당신들은 거기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쯤은 아실텐데요.북한: 우리가 보기에는 개별 국가의 자주권이라는 보편적인 선이라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미국에 이익이 될 것입니다.미국: 우리는 힘들이지 않고 당신들을 비핵화 시키고 싶소. 우리 둘의 이익을 위해서 비핵화 하길 바라오.북한: 아무런 보장 없이 비핵화를 하고 자위능력을 잃는 것이 어떻게 우리의 이익이란 말인가요.미국: 당신들은 비핵화 해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고 경제제재에서 면할 것입니다.북한: 체제보장과 경제발전을 담보 받지 못하고 비핵화 한다면 비겁한 짓이겠지요.미국: 살아남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강자에게 저항해선 안 됩니다.북한: 우리에겐 희망이 있고 김일성 주석님과 김정일 위원장님이 보살펴 줄 겁니다.미국: 당신들도 우리와 같은 권력을 잡게 되면 우리처럼 행동할 것이요.북한: 우리의 힘은 미약하지만 중국이라는 동맹이 보충해 주리라 믿습니다.미국: 중국이 우리와의 세계대전을 감수할 것 같소?북한: 중국은 바로 우리 옆 나라고 같은 동양인들이요.미국: 우리가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는 한 중국은 개입하지 못할 것이요.북한: 그렇다면 다른 지원세력을 구해 줄 겁니다.미국: 여러 분의 조국은 하나뿐이며 여러분의 존망은 한 번의 결정에 달려 있다는 점을 명심하도록 하시오.펠로폰네소스전쟁사에 따르면 최후통첩을 하고 떠난 아테네인들은 중립을 요구하는 밀로스 섬을 공격해 복속합니다. 힘의 논리에 정의의 논리로 맞섰던 밀로스는 처절하게 파괴되어 현재는 역사 속에만 남아있는 나라가 되고 맙니다. 하지만 북한은 1993년 제1차 핵위기 이후 최강대국 미국을 대화와 도발로 맞상대하며 생존하고 있습니다. 2016년 이후 2년 동안 핵무력 완성을 외치며 도발을 하다가 올해는 ‘완전한 비핵화’를 내걸고 대화국면을 조성했습니다. 이렇게 약소국 북한이 강대국 미국을 때리고 어르며 핵무력을 강화해 나가는 것을 전문가들은 ‘선군외교’라고 불러왔습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나 지금이나 국제사회는 강대국들이 주도하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은 핵개발을 통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의 비핵화 및 비확산 레짐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북한의 핵무장을 방치할 경우 제2, 제3의 핵개발 국가를 막을 명분이 없어지고 결과적으로 헤게모니 국가로서의 전략적 도덕적 리더십에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아테네인들이 밀로스인들에게 했던 것처럼 미국이 북한에 약자의 도리를 강요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펠로폰네소스전쟁사로 대학원 한 학기 수업을 진행했던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는 “스파르타와는 달리 중국은 북한의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사실상의 동맹국이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북한의 후견국인 중국의 힘 역시 과거 밀로스의 동맹국인 스파르타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년에 수교 70주년을 맞는 중국과 북한은 우호협력조약으로 묶여 있고 서로를 6·25전쟁에서 피를 흘린 ‘혈맹’이라고 합니다. 특히 중국은 미국을 위시한 해양세역이 자신들의 국경까지 오지 못하도록 하는 전략적 완충지대로 북한에 지정학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개발이 미국의 적대정책 때문이라고 한목소리를 냅니다. 미국이 북한을 압박하지 않을 수 없는 핵개발 자체도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테네 군사들은 말을 듣지 않는 밀로스 섬으로 진격해 점령하면 그만이었지만, 핵무기를 들고 있는 북한을 상대로 미국이 무모한 무력 사용을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규모는 미국보다 적지만 중국도 다량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서울에 몰려있는 돈과 사람들 때문에 핵이 아닌 재래식 무기끼리의 작은 충돌도 엄청난 피해를 가져 올 수 있다는 점이 미국에게는 전략적인 취약성이 되고 있습니다. 동맹과 핵을 믿고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시험하고 있는 북한. 이를 방치할 수 없는 미국. 둘 간의 게임이 어떻게 진행될지 내년에도 계속 지켜보겠습니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kyle@donga.com}

    • 2018-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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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미국이 중국을 끝까지 몰아붙일 수 없는 이유

    시리즈 1~3회에서 살펴본 미중관계의 미래에 대한 현실주의적 논의는 세계정부가 없는 국제정치의 무정부상태와 이에 따른 개별 국가들의 안보딜레마, 국가이익과 권력 등의 개념을 강조하는 ‘국가 및 군사력 중심적’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상업적 자유주의의 한 흐름에서 나온 복합적 상호의존(Complex-Interdependence) 이론은 우선 국가이외의 국제정치적 행위자 즉, 국제기구나 기업 노조 등 사회단체 등의 역할을 강조하고 나섰습니다. 또 국가간의 관계를 논할 때 현실주의가 강조하는 군사력 외에 경제적 힘과 경제적 관계도 중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이들은 현실주의가 강조하는 권력관계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권력을 구성하는 요소가 군사력에서 비군사적 흥정의 기술로 옮겨가고 있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세계는 군사력을 앞세운 강대국의 투쟁장이기도 하지만 여타 다양한 조직체들이 상대방 국가와 비국가 단체 등과의 그물망을 형성하며 거래하고 흥정하는 네트워크라는 설명 입니다(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무지개와 부엉이: 국제정치의 이론과 실천에 관한 논문 선집』(서울: 박영사, 2010), 91쪽 참조). 이 이론은 특히 국제사회에서 강대국들이 다뤄야 할 이슈가 증가하고 복잡해짐에 따라서 강대국간 협력 필요성이 커졌다는 점을 강조한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배려하면서 경쟁도 하고 협력도 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버락 오바마 행정부 8년의 대중 정책은 바로 이런 철학적 이론적 배경을 깔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는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인근에서 항행의 자유를 강조하며 중국의 일방적 영토주권 확대를 저지했습니다. 2기에는 아시아태평양 12개 국가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체결해 사실상 중국을 자유무역시장의 띠로 포위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이슬람 국가(IS)의 퇴치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저지, 이란 핵문제 해결, 지구온난화 공동대응 등에서 중국과 협력하며 대중관계를 관리해 나갔습니다. 상업적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위의 주장에서 좀 더 나아가면, 핵무기가 주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에서 경제관계의 긴밀성이 깨질 경우의 참극을 들어 양국 안정성의 기반을 찾는 시도도 나옵니다. 이언 브레머 미 유라시아그룹 회장과 존 헌츠먼 전 주중대사는 2013년 6월 2일 뉴욕타임스(NYT)에 게재한 공동기고문에서 상호확증경제파괴(MAED·Mutually Assured Economic Destruction)라는 개념을 소개했습니다. 냉전시절 미국과 소련의 핵 공포 균형의 논리적 기반이 되었던 상호확증파괴(MAD·Mutually Assured Destruction)에 ‘경제(Economic)’라는 단어를 넣어 만든 신조어로, 미중 양국이 국제 상품 및 자본 시장에서 긴밀한 상호 의존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한쪽이 일방적으로 경제적 단절을 선언하면 공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과 어떻게 잘 지낼 것인가’라는 제목의 기고문은 2013년 6월 7일과 8일 캘리포니아 주 휴양지 랜초미라지에서 열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첫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제언을 하는 형식입니다. 이들은 “좋건 싫건 미중 양국은 MAED의 형태로 묶여 있다”며 양국이 이해하고 양보하면서 갈등보다는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기고문은 과거 미소 양극체제를 이끈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 ‘커플’과 오바마-시진핑 시대를 대비시켰습니다. 경제 관계없이 핵 대결에 치중했던 미소 관계와는 달리 미중 관계는 ‘차이메리카(차이나+아메리카)’로 표현될 만큼 무역과 투자 등의 경제 분야에서 ‘비자발적 협력’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은 대량의 공산품을 미국에 수출해 달러를 벌고 미국은 중국 덕분에 낮은 물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다량의 미 국채를 사들이고 미국은 이 유동성으로 중국 상품을 사들일 여력을 확보하는 순환구조를 갖고 있다고 기고문은 강조했습니다. 지금까지 이 시리즈를 통해 향후 미중관계를 전망하는 여섯 가지 개념을 그림과 함께 소개했습니다. 이들을 국제정치의 대립하는 양대 패러다임인 현실주의와 자유주의의 스펙트럼 위에 표시하면 아래 그패를 얻을 수 있습니다. 왼쪽부터 현실주의에서 자유주의로 여섯 개념을 배열하고 그것이 노정하는 결과를 갈등과 협력으로 놓아 ‘2×2 매트릭스’를 만들면 아래와 같이 우하향하는 직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 어떠십니까? 미국과 중국간의 미래가 저 그래프 위에 있을까요? 꼭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역사는 언제나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 넘으니까요. 예를 들어 미국의 국력은 더욱 커지고 중국은 지금 정도에서 성장을 멈추거나 더 약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어디까지나 ‘중국이 경제성장을 계속 한다면’이라는 전제 위의 전망일 뿐입니다. 역사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요?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1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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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중국은 평화롭게 부상할 수 있을까?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인 이동선 고려대 교수는 냉전 종식 이후 유일 초강대국이라는 지위가 점차 약해지는 미국이 ‘해외 지도력(offshore leadership)’을 구축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바다 건너 아시아 대륙에서 중국이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미국은 강한 군사력과 세계를 지도하려는 의지(will to lead)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군력과 공군력 등 군사력의 우위와 중국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 대만 등 강한 동맹체재를 바탕으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며 글로벌 리더십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스승이면서 이른바 ‘공격적 현실주의자’로 분류되는 존 미어샤이머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해외 균형(offshore balancing) 개념을 사용해 미중관계의 미래를 아주 비관적으로 전망합니다. 그가 쓴 최근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미중 패권경쟁의 시대(이춘근 번역, 김앤김북스, 2017)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적 경쟁은 지역 패권국가(regional hegemon)인 미국이 아시아 지역의 잠재적 패권국가인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패권국가를 세계 패권국(global hegemon)과 지역 패권국으로 구분합니다. 세계 패권국은 말 그대로 세계 전체를 지배하는 국가입니다. 그런데 5대양을 가로질러 상대방 강대국의 영토에 자신의 군사력을 투입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어느 강대국이 분명한 핵 우위를 확보하는 비현실적인 상황이 도래하기 전에 세계 패권국이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도 세계패권국이 아니며 남북아메리카 지역 패권국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근대 역사상 강대국들이 지역 패권국가가 되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진정한 지역 패권국의 지위에 오른 것은 오로지 미국 밖에 없다고 미어샤이머 교수는 지적합니다. 지역 패권국이 된 미국은 다른 지역에 있는 강대국이 자신의 전철을 밟아 다른 지역의 패권국이 되는 일을 방해하고자 노력하는데 해당 지역에 잠재적 패권국의 출연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다른 강대국이 있다면 미국은 안전한 상태에서 개입하지 않고 또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경우 미국은 군사적 개입을 하게 되는데 그런 경우가 역사상 네 번 있었다는 것입니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제국,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빌헬름 황제의 독일,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치 독일, 냉전의 상대방인 소련을 상대로 한 전쟁이나 봉쇄정책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논리를 차용하면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다섯 번째 해외 균형 역할에 나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과 공세적 무역전쟁 등이 대표적인 정책입니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책에서 미국이 중국을 억제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정책으로 과거 소련에 했던 것과 같은 봉쇄정책을 들면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세 가지 대안의 하나로 ’중국의 경제발전을 둔화시키는 것‘ 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미어샤이며 교수는 이 정책이 실현가능하지 않다고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혹자는 중국 경제는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이며, 그럼으로써 중국에 대한 미국의 상대적인 힘의 지위가 개선될 것이며 동시에 중국의 성장은 약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은 미국이 새로운 무역 상대방을 찾을 수 있는 반면 중국은 그렇지 못할 겨우에만 가능한 일이다. 두 가지 조건이 모두 필요하다. 불행한 일이지만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을 축소하고 투자를 줄이는 경우라도 세계 여러 나라들이 중국과의 경제거래를 확대하고자 하기 때문에 미국의 노력으로 인해 생성된 공백을 메울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으로부터 심각한 위협을 당하지 않는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자리를 이어받아 중국의 경제성장이 지속될 수 있도록 기름을 부어주는 역할을 담당하려 할 것이다. 요약하자면 중국은 경제적으로 고립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미국은 중국의 경제성장을 의미 있는 수준으로 둔화시킬 수 없을 것이다.”존 J. 미어샤이머(이춘근 역),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미중 패권경쟁의 시대』, 513~514쪽. 미어샤이머 교수는 결론 부분에서 “중국의 부상이 조용하게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단언합니다. 경제력이 커진 중국은 과거 미국이 한 것처럼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판 먼로 독트린을 선언할 것이며, 미국은 중국 주변국들을 규합해 균형연합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과거 냉전시대 미소 양국관계보다 더 높다는 게 미어샤이머 교수의 주장입니다. 하지만 모든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들이 다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현실주의의 계보에 있지만 미어샤이머 교수가 ’방어적 현실주의‘로 분류한 고 케네스 월츠 버클리 & 콜럼비아대 교수는 미소 냉전과정에서 약소국가간의 국지전은 있었지만 양 강대국간의 전쟁은 없었다며 양극체제가 다극체제보다 오히려 안정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미소 냉전에서 얻어진 경험적인 근거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양극체제에서는 동맹국으로 인한 ’불필요한 전쟁‘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 양극체제하에서는 다극체제보다 서로의 의도에 대한 불확실성이 낮아 강대국 관계에서 혼선이 빚어질 가능성이 적다는 것입니다. 셋째, 냉전기간 미국과 소련은 핵무기를 이용해 서로를 억지(deterrence)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2013년 사망한 월츠는 생전에 미중관계의 안정성에 대해서 언급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후학들은 그가 살아서 발언한다면 미중관계 역시 미소관계처럼 안정적이라고 말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현실세계의 변화는 국제체제의 구조 측면에서 또 다른 양극체제를 가져온다. 즉,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가 아니라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개의 강대국이 존재하는 양극체제가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중국의 부상에 대해 많은 학자들과 정책분석가들은 불안정성을 예측하지만, 월츠는 자신의 이론적 결론에 따라서 미국과 중국의 양극체제가 미국과 소련의 양극체제와 마찬가지로 안정적이라고 볼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모두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국제체제의 구조는 더욱 안정적일 것이라는 낙관적인 결론을 개진할 것이다. 이러한 결론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은 반론을 제기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월츠 이론은 국제정치이론 논쟁뿐 아니라 정책논쟁에서도 핵심사항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이근욱, 『왈츠 이후: 국제정치이론의 변화와 발전』(서울: 한울, 2009), 43-45쪽.미어샤이머 교수는 물론 자신의 전망이 틀릴 수도 있다며 그것은 사회과학의 한계 때문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전망이 예언처럼 실제가 될 것인지, 아니면 미소 냉전처럼 미중 냉전도 안정적일 것인지, 아니면 미국 유일 초강대국 체제가 오래 유지될 것인지 지켜볼 일입니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북한학 박사)kyle@donga.com}

    • 2018-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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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국제사회가 우려하는 미중 파국의 두 가지 시나리오

    올해 10월 4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허드슨연구소 연설에서 ‘도둑질(theft)’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중국을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그는 미중 무역갈등은 물론 중국의 미국 선거 개입 의혹, 남중국해 영토 주장, 신장 위구르자치구 인권문제 등 모든 분야를 거론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더글러스 딜런 교수는 열흘 뒤인 13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고한 글을 통해 펜스 부통령이 사실상 중국과의 신냉전(a new cold war)을 선언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중국의 전략가들에게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투키디데스 함정은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미중관계를 논하는 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대부분 ‘킨들버거 함정(Kindleberger Trap)’과 같이 비교되면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두 비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3월 20일 국무원 산하 발전연구중심 주관으로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발전고위급포럼 연설에서 “중국과 미국은 협력을 통해 ‘투키디데스함정’과 ‘킨들버거 함정’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투키디데스 함정이 국제정치적 현실주의의 관점에서 기존 강대국 미국과 떠오르는 강대국 중국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라면, 킨들버거 함정은 국제정치적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회귀를 우려하면서 경제강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국제경제질서의 유지에 적극적으로 나설 의지를 비춘 것입니다. 먼저 투키디데스 함정은 소크라테스와 동시대인인 기원전 5세기의 투키디데스가 27년 동안의 펠레폰네소스 전쟁의 원인과 전개를 기록한 ‘펠레폰네소스 전쟁사’에서 따온 것입니다. 당시 전쟁은 고대 그리스 최강의 해양국가였던 아테네 제국을 대륙국가인 스파르타가 먼저 공격해 시작되어 27년 동안이나 계속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누가 보아도 아테네가 최강대국이었고, 스파르타의 국력은 그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투키디데스는 전쟁의 원인을 설명하면서 양극체제 하에서 힘이 덜한 스파르타가 아테네의 힘이 더 세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현재는 힘이 월등한 미국이 2인자로 떠오른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와는 차이가 있지만 ‘투키디데스 함정’은 일반적으로 양극체제의 불안정성을 이야기하기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반대로 ‘킨들버거의 함정’은 중국의 국력이 커질수록 자신이 혜택을 입은 국제질서에 공헌하기 보다는 무임승차를 할 경우 나타나는 파국적인 결과를 말합니다. 마셜 플랜의 지적 설계자이자 메사추세츠공대 교수로 재직했던 찰스 킨들버거가 1930년대라는 재난적 시대의 원인을 떠오르는 강대국 미국과 저무는 강대국 영국의 역할 대체 실패에서 찾은 것에서 나온 설명입니다. 세계 최강의 글로벌 파워의 자리를 놓고 미국이 영국을 대체했지만 미국이 글로벌 공공재를 제공하는 영국의 역할을 떠맡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글로벌 시스템이 붕괴되고 불황과 대학살, 그리고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킨들버거는 이런 주장을 토대로 당대의 패권국가가 적절한 국제정치경제 질서에 필요한 공공재를 제시해야 평화가 유지된다고 보는 ‘패권안정이론’의 창시자로 꼽힙니다. 역시 현실주의 계보입니다. 이른바 연성 권력(Soft Power)의 주창자인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지난해 1월 한국일보 인터넷판에 소개된 칼럼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너무 강하게 볼 경우 빠질 수 있는 것으로, ‘킨들버거 함정’이 트럼프 대통령이 반대로 중국을 너무 약하게 볼 때 빠질 수 있는 함정이라고 동시에 지적했습니다. 1930년대 영국과 미국의 상황에 맞춘다면, ‘킨들버거 함정’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미국은 지금보다 더 쇠퇴하고 중국은 더 부상해 그동안 국제정치경제 제도를 만들고 운영해온 미국이 그 역할을 중국에 넘겨야 할 시점이 되었을 때 적용될 수 있는 논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지적한대로, 중국은 이 비유를 앞세워 자신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현재의 국제정치경제 질서에 파국이 올 수 있다며 미국을 암묵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kyle@donga.com}

    • 2018-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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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트럼프의 비자유적 패권주의 광풍

    이번 주말인 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의를 갖습니다. 한 해 동안 계속된 미중 무역전쟁이 누구의 승리로 끝날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죠. 국제 금융시장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중국이 미국의 요구를 일부 들어주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미중관계는 무역전쟁보다 더 큰 차원의 전략적 경쟁국면에 들어섰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떠오르는 중국과 그것을 막으려는 미국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국제정치학에 귀를 대고 시리즈 진단을 시작해 보기로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트럼프 행정부 이후 달라진 미국의 대외정책부터 검토해 보려고 합니다. 실제로 2017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이 제45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국제사회는 냉전 종식 이후 유일 초강대국으로 군림해 온 미국의 대외정책 대전략(Grand Strategy)이 변화하는 과정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메사추세츠공대(MIT) 베리 포센 교수는 올해 2월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에서 그것이 ‘자유주의적 헤게모니(liberal hegemony)’에서 ‘비자유주의적 헤게모니(illiberal hegemony)’로의 전환이라고 갈파했습니다. 그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로서 미국 대외정책의 전형인 ‘패권-동맹주의’에 반대하는 대표적인 자제론자로 분류됩니다. 그는 기고에서 “2016년 대선에서 많은 이들이 트럼프 후보의 대외정책을 고립주의적이라고 우려했지만 실제 취임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운 개입주의를 확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패권주의적(hegemonic)이며 이는 이전 행정부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국제정치의 패권국가를 일컫는 헤제몬(hegemon)의 성격은 본질적으로 변화하였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입니다. 버락 오바마까지 이전 미국 행정부들이 군사력과 외교력 등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활용해 미국의 자유주의적 가치를 전세계에 투사하기 위해 다자주의적 접근방식을 취해왔다면 트럼프는 자유주의적 가치에 집착하지 않고 때로는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훼손하면서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를 위해 일방주의적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유엔과 파리기후협약,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전임 행정부들이 주도한 다자기구에 의존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면서 기존 자유무역 협정을 대신해 일방적인 무역협상을 강요합니다. 취임 이후 다양한 분쟁에 무력으로 개입하면서 군사력을 증강하면서도 동맹들에게 비용분담을 요구하고 있지요. 특히 중국에 대해서는 수입품에 일방적으로 관세를 부과하면서 시장개방을 요구하고, 대만과의 관계를 키워 중국이 신성시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남중국해 등에서 자유의 항행 작전을 계속하는 것은 물론이고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서 한발 더 나아가 중국을 포위하는 듯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사하는 것 등이 대표적입니다. 역시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인 이동선 고려대 교수도 냉전 종식 이후 유일 초강대국이라는 지위가 점차 약해지는 미국이 ‘해외 지도력(offshore leadership)’을 구축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중국에 대한 상대적인 경제력 약화에도 미국은 강한 군사력과 세계를 지도하려는 의지(will to lead)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군력과 공군력 등 군사력의 우위와 강한 동맹체재를 바탕으로 글로벌 리더십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 교수도 마찬가지로 과연 이 정책이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미래에 맡기고 있습니다. 포센 교수는 일단 버락 오바마 행정부까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 행정부가 유지해 온 자유주의적 헤게모니가 실패했다고 진단합니다. 즉, 다양한 측면에서 미국의 자유주의적 가치를 전세계에 이식한다는 목표에 미달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비자유주의적 헤게모니가 성공할지, 즉 성격의 차이를 넘어 미국이 계속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있을지 역시 미지수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전임 행정부에 비해 자신의 힘을 자제(restraint)하는데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실제 정책에서의 자제 사례로 중국을 상대로 한 아시아에서의 세력균형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제해권을 통제해 중국이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워싱턴의 접근을 막는 것을 방지하고 중국의 공포를 인정해 그것을 미국의 군사력으로 봉쇄하는 대신, 역내 동맹들이 지금보다 더 스스로를 방어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패권을 지속시켜 나갈 수 있을까요? 상대방인 중국은 어떻게 나올까요. 이어지는 시리즈 글에서는 포센 교수의 자제론과 유사한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는 존 미어샤이머 미국 시카고대 교수의 해외 균형(offshore balancing) 개념을 포함해 미중관계의 미래를 읽는데 유용한 여섯 가지 국제정치학의 개념을 소개하려 합니다. 결론을 대신하여 미중관계의 미래가 한반도의 현안인 북한 핵문제 해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한국과 중국 학자들과의 인터뷰 결과도 소개할 예정입니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그래픽 디자인 채한솔 인턴}

    • 2018-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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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다자안보협력? 스스로 지킬 한 방 가지고 있어야!

    “우리 안보를 확실하게 지킬 수 있는 뭔가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인 힘이 약한 나라라면 물리력이 하나 있던지, 아니면 외교를 정말 잘 해나가야 합니다.” 엄태암 한국국방안보연구소 책임연구위원(정치학 박사)은 지난달 10일 우아한 런칭 기념 인터뷰에서 “우리 안보를 소홀히 여기는 일은 절대 없었으면 좋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태두로 불리는 고 한스 J 모겐소 시카고대 교수의 ‘국가 간의 정치’를 한국어판으로 두 번이나 번역한 전문가다. 모겐소 교수는 저서를 통해 세계 정부가 없는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 속에서 국가들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스스로를 지킬 힘과 그것을 통한 외교라고 설파했다. 국가들이 힘을 추구하는 것은 국가에 내재한 본능이라고 본다는 점에서 ‘인간본능 현실주의’라고도 불린다.‘모겐소 교수가 살아있다면 한국인들에게 어떤 조언을 했을까’라는 질문에 엄 박사도 ‘강한 국방력’과 ‘굳건한 한미동맹’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인터뷰 당시 남북은 오히려 휴전선 인근에서 양측의 국방력을 감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9·19남북군사합의서)’를 이행해 나가는 문제로 미국을 불편하게 하고 있었다. “통일한국을 생각해도, 당장 북한을 생각해서도, 우리 안보에 위해가 닥칠 때 스스로 기댈 수 있는 뭔가 하나, (그것을 만드는) 노력은 분명히 있어야 되겠다는 겁니다. 중국, 러시아가 지금 맹렬하게 개발하고 미국이 두려워하는 초음속 순항 미사일 같은 것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고 보고요, 쉽지는 않겠지만 뭔가 창의적인, (북한의 핵·미사일과 같은) 비대칭적인 뭔가 하나를 찾는 노력은 있어야 되겠다는 것이죠.” 그는 모겐소 교수의 책을 인용하며 한미동맹도 영원한 것이 아닐 수 있다고 경고했다. “모겐소 교수가 한미동맹이 막 출범한 직후인 당시 책에서 말씀하셨어요. 미국 정부가 지금은 한미동맹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 정부에 부담을 주는 언동은 자제하면서 상당히 조심하고 있지만, 미국 국민이 언제까지 한미동맹을 지지할 거라고 생각하느냐. 그런 부담도 생각을 해야 된다고요. 반면에 우리로서는 그런 생각을 했어야죠. 한미동맹이 언제까지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보루가 될 거냐.” 그는 모겐소 교수의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에 입각해 북한의 핵개발이 남한과의 국력이 크게 뒤쳐진 상태에서 체제와 정권의 생존을 지키기 위한 국가이익 추구 행위라고 인정했다. 한국이 가지지 못한 핵·미사일이라는 비대칭적 무기의 완성단계에 이른 점은 모겐소 교수가 지적한 전형적인 ‘현상타파 정책’이며 성공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북한이 비핵화를 대가로 체제안전보장을 요구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평가와 전망은 밝지 않았다. ―북한이 비핵화 대신에 요구하는 체제보장에 대해 한국의 일부 학자들은 다자안보체제를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그것이 정치적으로 가능한 것으로 보십니까? “모겐소 교수도 ‘대화를 통한 신뢰가 평화로 이어진다고? 어림없는 얘기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같은 곳에 참여하지만 우리 안보의 근본이 그런 곳에서 결정이 될 수 있을 것이냐? 어림도 없는 얘기죠. 의장성명 등에 우리 입장을 반영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그것이 우리 안보의 보루는 될 수 없는 것이죠.” ―비핵화를 위한 북-미 협상이 교착상태인데, 앞으로 전망을 어떻게 보십니까.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서 핵을 포기하겠다고 국제사회에 떠들었으니, 아마 쉽게 번복하지는 못할 거예요. 그러나 뭔가를 자꾸 요구하고 그게 안 되니 우리도 핵을 포기할 수 없지 않느냐고 버티면서 시간을 벌자고 치면 어떻게 될까요.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겠지만 30대 초반의 김정은은 ‘너희들이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핵을 가지고 있다’며 엄연한 핵보유국가가 되어 갈 겁니다. 핵을 머리 위에 이고 살아야 되는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 정신 줄 놓고 있다가는 큰 일 나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2차 북-미 회담이 추진되고 있습니다만, 모겐소 교수가 훈수를 둔다면?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이 참 잘한다고 칭찬을 하는 한편으로는 한국에 대해서는 ‘한미동맹을 좀 더 정교하게 관리해서 그 엔드 스테이트(비핵화의 최종 상태)에 분명히 합의하고 추진에 힘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6자회담의 실패 역사가 되풀이될 거다. 아마 그렇게 얘기하셨을 겁니다.” ―문재인 정부가 장밋빛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만. “국가를 책임지는 지도자는 일반 국민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국가의 존망, 미래, 그 모든 것들을 같이 생각한 뒤에 판단을 하고 결정을 내려야 되기 때문에 사리분별이 일반인과 같아서는 안 되는 것이죠. 통일을 향해 가는 과정을 어떻게 내실 있게 다져나가야 되느냐 그 문제를 좀 고민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지금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서두르는 모습은 분명히 좀 걱정스럽습니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kyle@donga.com}

    • 2018-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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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20년의 위기’와 문재인 대북정책

    “지금 상황은 오히려 현실의 암담함에 이상이 불을 비춰줬다고 생각해요.” 최근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현실을 직시하기보다는 이상주의에 빠져있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를 전하자 김태현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그의 연구실을 찾아간 것은 10월 2일 오후. 우아한(우리 아이들의 & 아름다운 한반도) 런칭을 준비하면서 그를 맨 처음 인터뷰한 것은 그가 영국 역사학자 E. H. 카의 ‘20년의 위기’ 역자였기 때문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9년부터 2차 대전이 발발한 1939년까지의 20년 역사를 다루면서 평화에 집착한 나머지 나치 독일의 현상타파정책을 간파하지 못한 당시 유럽의 이상주의를 날까롭게 비판한 카의 책은 지금까지 국제정치학의 주류 패러다임인 정치적 현실주의의 바이블이다.―카가 살아있다면 (미국은 북한 비핵화에 대해 비관론이 퍼지고 있는데) 남한 분위기는 너무 앞서가는 게 아닌가 경고하지 않을까요? “저는 좀 다르게 봐요. 카가 변증법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이상주의가 타락하면 현실주의가 일침을 가하고, 현실이 무기력하면 다시 새로운 이상이 제시되는 것이죠. 플라톤의 공화국이 너무도 이상적이지만 아직도 회자되는 이유는 바로 이상이라는 힘 때문 아닌가요?” 김 교수는 직접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10년 보수정권이 회초리를 들고 북한을 변화시키려 했지만 핵·미사일 개발과 이른바 ’완성‘을 막지 못했다. 그래서 이제는 방법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들렸다. 김 교수는 카의 이 대목을 정확히 이렇게 ‘편역’ 했다(그는 저서에서 과감한 의역을 했기 때문에 번역이 아니라 편역이라고 주장했다).―‘20년의 위기’ 편역자로서 ‘좀 걱정스럽다’ 이런 말씀을 하지 않을까 했는데, 아니군요. “지금 정부 안에는 북한이 개과천선했다고 믿는 사람이 일부 있을지 몰라요. 아니면 애초부터 북한은 착한 쪽이었다고 믿는거나요. 그런데 그건 아니라는 거죠.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는 TV프로그램도 있던데, 세상에 좋은 개도 없습니다. 사실은 상황에 따라서 배고프면 사람을 물 수도 있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본성이 사악하고 그런 게 아니라, 상황적으로 그렇다고 생각하거든요. 누구를 거짓말쟁이로 만들면, 그렇게 만든 사람들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거짓말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죠.”-그게 현실주의 아닌가요? “나는 구성주의적 현실주의라고 생각을 합니다. 북한을 착하게 행동하도록. 착한 행동을 하게 상황을 만들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거죠. 구성주의는 변환의 국제정치라고 말할 수 있어요. 책을 하나 준비하고 있는데, 국제정치이론을 소개하면서, ‘현실주의는 난세의 국제정치이론이고, 자유주의는 치세의 국제정치이론이고, 구성주의는 변환의 국제정치이론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려 합니다.”―북한이 대대로 개발해 온 핵미사일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는 견해가 많은데요? 이 질문에 대해 김 교수는 역시 자신이 번역한 그레이엄 엘리슨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결정의 엣센스: 쿠바 미사일 사태와 세계핵전쟁의 위기’를 책장에서 꺼내 들었다. 우선 2018년 1월 1일 신년사 이후 김정은의 비핵화 협상을 엘리슨의 제1모델인 ‘합리적 행위자 모델’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가가 국가이익을 추구하면서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하는 이 모델에 따르면 국가안보를 위해 완성단계까지 끌고 간 핵·미사일을 선뜻 포기한다는 게 설명이 잘 안된다는 것. 하지만 제2모델인 ‘조직행태 모델’과 제3모델인 ‘정부정치 모델’에 따르면 설명이 된다는 것이다. “북한 핵무장 프로그램은 적자예요. 군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그렇습니다. 핵이 북한을 안전하게 만들었나요? 아니면 국제적으로 위대하게 만들었나요? 아니면 투입 대비 산출이 있나요? 모두 아니거든요. 그래서 진작 그만두어야 했던 겁니다. 그런데 김정은이 왜 완성까지 갔느냐. 일종의 조직논리인 2모델과 정치적 명분의 논리인 3모델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김정은 입장에서 할아버지, 아버지를 부정할 수 없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완성까지 간 것이고 올해 들어서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주장했던 목적이 달성됐으니까 이제 내려놓자’고 하는 겁니다. 핵무기는 군사적 무기가 아니라 정치적 무기이니까 어차피 쓸 수가 없어요. 그러니 평화협정이 됐건 종전선언이 됐건 우리가 안전을 보장 받으면,내려놔도 되는 거다. 그리고 이제 경제로 가자‘ 이렇게 내부 설득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아요.”―회의론자들은 또 북한이 군사적 위기국면을 모면하고 핵은 그냥 보유한 채 제재를 약화시키려고 머리를 쓰고 있다고 의심합니다. “만약 그럴 거면 김정은이 이 정도까지 나왔을까요? UN제재를 서방 국가들은 지키고 설사 중국이 제재를 완화하더라도 중국에 대한 의존만 심화되고는 상황은 김정은이 절대 원하는 게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스리랑카니 캄보디아니, 파키스탄 등이 중국 돈 받아쓰다가 지금 중국의 식민지처럼 된 것을 빤히 보고 있는데, 김정은이 그걸 하겠어요? 그리고 북한이 살아나려면 미국이 부정적 제재(negative sanction)를 해제하는 정도가 아니라, 긍정적 제재(positive sanction)까지 풀어줘야 합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도 시켜주고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차관을 받을 수 있게 해 줘야하는 것이죠. 그래야 해외 기업들이 북한에 투자를 하고, 북한이 차관을 들이더라도 낮은 이율로 가능한 것입니다.”―김정은에게 정말 상당히 기대를 거시는군요(인터뷰 당시의 북미대화 전망은 현재보다는 조금 더 좋았다). “이번에는 할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어요. 낙관하는 이유 세 가지가 있어요. 위기가 워낙 컸고, 북-미 정상이 개입됐고, 그래서 보수진영이 발목을 잡을 여지가 더 작아졌다는 거지요. 다만 걱정하는 것은 북한이 늘 그랬듯이 마지막 끝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북한 내 보수파랄까, 어떻게 해서든 핵을 꼭 가져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일종의 사보타지(sabotage)를 할 수도 있겠죠. 조직적인 관성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그게 제일 우려스러운 거예요. 요즘 강조하는 것은 북한이 파키스탄처럼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갖는 목표를 세우면 안 된다는 겁니다. 법률적인 비핵국가의 지위를 추구해야 합니다.”―마지막으로 우리 정부에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습니까.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시절 소위 ’햇볕정책‘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의 공을 국가 정책이 아니라 정권에 돌렸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거는 국가의 공이지, 정권의 공이 아니거든요? 그 성과를 정권적 목적으로 쓰면, 반드시 야당이 발목을 잡게 돼 있습니다. 국론이 분열되기 때문에 동력을 잃어버리거든요. 문재인 대통령이 좀 참고, 민주당의 꼬임에 넘어가지 말고, ’이거는 국가 프로젝트다. 무슨 노벨 평화상 받는 데에 급급하지 않을 거다. 선거에 급급할 필요가 뭐가 있냐. 이건 국가 프로젝트로 합시다‘ 하면 좋겠어요.”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1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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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8년차 경제부 기자가 민족문제에 눈뜬 계기는?

    제가 민족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970년대 초등학교에 다니면서였습니다. 박정희 정권 마지막 무렵인 당시엔 ‘국민교육헌장’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 독립의 기반을 마련하고….” 이런 저런 기회에 아이들은 함께 그것을 복창했습니다. 1968년 2월 박 대통령이 반포한 이 헌장을 잘 외우는지는 성적표의 생활태도 등에 크게 반영되었습니다. 그러나 민족이라는 단어를 안다는 것과 민족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살면서 깨달았습니다. 특히 그 민족의 반쪽인 북한의 의미는 더욱 그랬습니다. 고교 2학년 시절인 1987년 겨울 저는 성경과목(미션스쿨) 시험 시간에 생경한 문제 하나를 받았습니다. “남북한(민족) 통일을 위해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쓰시오.”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 반항심의 발로였는지, 철이 들어서 그랬는지는 모르나 저는 처음으로 ‘민족의 반쪽’인 북한에 대해 진정으로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답안지에 이런 취지의 주장을 했습니다. “(민족) 통일을 위해 남과 북이 서로를 아는 작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그렇게 서로를 알고 이해한 뒤에 통일을 어떻게 할지를 논의해야 한다.” 그리고 어렵사리 대학의 정치학과에 입학해 졸업하고 대학원을 수료한 뒤에 지금의 직장에 입사했지만 민족의 의미를 마음속으로 느끼기 까지는 입사 후 7년 후 경제부 기자일 당시였습니다. 2002년 6월 29일 서해에서 2차 연평해전이 터지던 바로 그 시각. 저는 난생 처음으로 평양으로 가는 고려항공에 몸을 싣고 있었습니다. 5년 전 법조기자시절, 필리핀 출장길에 우연히 인연을 맺은 이일하 목사가 봉사하고 있던 대북 인도적 지원단체 이웃사랑회(현 굿네이버스)의 회원 자격을 얻어서였습니다. 3박4일 체류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여러 차례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무나 올 수 없는 금단의 땅에 처음 발을 내디딜 때가 그랬고, 북측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운영하는 봉수교회에서 예배를 볼 때 그랬습니다. 함께 간 실향민 어르신들이 북측 백두산 장군봉 위에서 흐느끼는 것을 보면서, 묘향산을 오가는 고속도로 주변의 남루한 북한 시골모습을 보면서 그랬습니다. 그리고 다시 인천공항에 내려 서울로 오는 공항버스 안에서 북한과 너무도 다른 번영한 대한민국의 모습에 새삼 감격하면서도. 요컨대 당시 방북 체험은 저에게 분단과 전쟁, 남북대결과 체제경쟁, 전혀 다른 길을 간 같은 두 민족의 현실을 머리가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이해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책으로 배우고 강의를 듣고, 신문과 방송을 보아서 북한, 갈라진 민족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저의 오만이요 무지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깨달음의 핵심은 이런 것입니다. 아 북쪽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말과 문화를 공유하는 한 민족이구나. 그러나 1945년 국제정치에 의해 갈라진 뒤 당시까지 57년 동안 다른 체제로 살아온 나머지 지금은 정치 경제적으로 너무나 달라졌구나. 당시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절정에 달했던 대화의 시대였고, 저는 북한의 문제가 머지않아 남한의 문제가 되고, 나뿐만이 아니라 내 아이의 문제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후 북한대학원 석사과정부터 북한을 다시 공부하면서 북한 취재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16년이 흘렀습니다. 류태림 씨의 짧은 질문에 이렇게 장황한 개인사를 털어놓는 것은 태림 씨의 지금 생각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임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제 경험에 따르면 분단된 민족의 경험을 젊은이들이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계기는 책도, 강의도 아닌 자기만의 어떤 특별한 경험에 의해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것은 노력해서 되는 것이라기보다 지극히 우연한 기회에 의해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것을 기다린다고 오는 것이 아닐 수도 있고,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태림 씨의 지적처럼 다문화 세상이 된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한민족 단일주의 이념은 서서히 희석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한민족의 순수성만을 강조하는 ‘닫힌 민족주의’가 아니라 갈라져 상이성이 커진 한민족과 한반도에 터전을 잡은 다문화 주민들에 세계로 퍼져나간 재외동포들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열린 민족주의’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분단과 전쟁, 남북한 체제경쟁의 과거를 경험하는 부모님 세대가 사회의 주류에서 물러나고 세상을 떠나고, 과거에 대해 경험과 감정이 없는 자녀들이 사회와 역사의 전면에 나서면서 과거와 같은 민족주의 개념은 크게 변화할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할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1945년까지 한반도에 살면서 역사와 문화, 체제와 언어를 공유했던 한민족이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과거이고 북한 핵문제나 인권문제에서 보듯이 그 과거는 지금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북정책이라는 것이 쉽게 생각하면 회초리를 들고 원칙을 가르치자는 것이 보수의 것이요, 껴안고 설득하자는 것이 진보의 것일진데, 모두 북한을 민족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민족과 통일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상의해 오는 후배들에게 늘 이렇게 대답합니다. “비록 부담스럽고 외면하고 싶겠지만 갈라진 민족의 문제를 피할 수 없다고 생각되면 그냥 뛰어들어요. 특히 그것이 우리 아이들을 미래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말이에요.”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1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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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인택 前장관 “미국이 대북정책 전략적 재평가하면 김정은 또 위기 맞을수도”

    -장관님 안녕하십니까.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자라나는 청년들이 북한 문제를 국제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십니까. “제가 통일부 장관을 할 때 관료들에게도 항상 그런 얘기를 했어요. 북한만 쳐다보고 북한만 분석해서는 이른바 북한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없다. 평생 노동신문 사설만 읽고 연구하는 사람이 잘 할 것 같지만 그게 아니다. 북한 문제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국제문제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 문제를 풀거나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 내부도 들여다봐야 되고 국제적인 측면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북한 수뇌부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만, 북한 수뇌부 스스로도 자기 문제를 100% 풀지를 못하잖아요. 자신들의 문제가 국제 문제라는 기본적인 성격이 있고, 국제적인 요소가 작동을 하기 때문이죠. 특히 북한의 핵문제는 북한의 내부 문제가 아니에요. 물론 북한 경제 문제도 국제문제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북한이 혼자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핵문제는 그것보다 더 국제문제화 돼 있어요. 그래서 국제적인 관점에서 봐야 이해도 되고 해법도 나오는 겁니다.”-북핵문제의 국제적인 측면을 무시했기 때문에 불가피했던 기성세대의 잘못이 있었다면 어떤 것일까요. “지금까지 남북한 문제를 이해를 하고, 어떤 식으로든지 답을 내려 한 사람들 중에 두 가지 큰 라인이 있습니다. 나처럼 보다 큰 지정학적인 역학 속에서 남북한 문제를 들여다보고 해법을 찾아야 된다는 일단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학자든, 정치인이든, 전문가 그룹이든 남북한 문제는 남북한이 풀어야 된다, 특히 북한 문제는 북한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풀어야 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큰 흐름이 있어왔던 거죠. 그런데 한반도의 남과 북은 국제적으로 강대국(Super Power)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한반도의 지정학(Geopolitics)이라고 하는 특수한 사정이 있어요. 한반도 분단부터, 또 그 이전부터 그런 지정학적 역학 속에서 우리 역사가 진행된 거 아니겠어요? 분단 이후 우리 대한민국 발전사라든가 한반도 안보 상황의 변화, 이 모든 것들은 바로 그 지정학적인 역학이 작동한 결과라는 본질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당연히 전자이고, 그런 관점과 접근법을 통해서 이 문제가 풀린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남북한의 특수성, 북한의 특수성을 기본적으로 이해하면서도, 보다 큰 틀에서 들여다봐야 해결이 된다.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그렇지 않은 많은 일들이 있어왔다는 거죠.”-지금의 북한 문제를 보는 데 국제정치학의 접근법이나 이론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요. “국제정치학계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큰 대 이론들이 있어요. 이것을 경쟁적인 패러다임(Competing Paradigms)이라고 얘기하죠. 70~80년 동안에 걸친 현대 국제정치학 이론의 발전과정에서 현실주의도 나왔고 자유주의라는 것도 있고, 90년대 중반 이후에 소위 구성주의라는 시각도 있고, 그 이전에 물론 사회주의 시각 같은 대 이론, 또는 대 패러다임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북한 문제뿐만 아니라 국제정치를 보는 일반적 이론들이고 그런 이론들을 가지고 구체적인 사례에 적용도 하고 이해를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90년대 후반부터 일부 현실주의자들이 자유주의적인 사고를 수용하는 노력들을 해 왔습니다. 큰 틀에서 보면 나 역시 그렇게 연구하는 사람의 하나입니다. 현실주의나 일부 자유주의에서 나오는 이론들이 북한 문제 해법에서도 상당히 유용한 이론이 될 수 있다고 봐요. 북한만을 보는 독특한 이론은 사실 찾기가 어렵습니다만 어떤 국가 또는 정권이 어떤 특정한 이슈, 예를 들어서 핵문제 같은 이슈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어떻게 해야 해법을 도출할 수 있는가 등에 대한 다양한 모델들이 나옵니다. 게임 이론(Game Theory)으로 보느냐 안보딜레마(Security Dilemmas) 개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른 해법이 나올 수가 있어요. 하지만 이론이 해답을 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일반이론들은 기본적인 이해를 돕고 접근하는 방법을 제시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만, 구체적인 행동과 전략과 접근방법을 위해서는 오랫동안 그 문제를 다뤄온 역사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덧붙여져야 된다고 생각해요.”-청년들이 그동안 북핵문제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북한 핵문제가 지난 20여 년 동안 진행되어오지 않았어요? 어떤 순간에 왜 어떤 협상이 실패로 돌아갔느냐, 왜 합의가 지켜지지 않았느냐 등에 대한 많은 사례의 연장 속에 지금이 있는 겁니다. 여기에서 경험을 찾지 못하면, 앞으로도 이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례들이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북한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청년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 있다면? “북한 문제가 국제문제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우선 북한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를 알아야 될 거예요. 결국 북한 입문서가 필요한 거죠. 북한 정치 체제를 다룬 이상우 전 서강대 교수의 ‘북한 정치 입문’에서부터 북한 사회의 역사와 경제 등을 다룬 입문서들이 있어요. 북한을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은 기본적으로 그런 입문서를 구해보고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는 지난 몇 십 년 동안 핵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져왔다는 것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분석한 책들이 필요하겠죠. 최근에는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가 쓴 ‘3층 서기실의 암호’라는 책을 재미있게 봤어요. (통일부 장관으로서) 북한 문제를 직접 다루었기 때문에, 우리가 알았던 사실, ‘정말 그럴까?’ 했던 사실들이 그 책에서 일부 확인됐고 또 우리가 다시 들여다봐야 할 부분이 제시 됐기 때문이에요. 이전에 넘어온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같은 분은 태 전 공사보다는 더 높은 직위에 있었고 그가 살아있을 때 나도 여러 번 만나 북한 체제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어요. 지금은 북한 사회가 많이 알려져 있지만 과거 몇 십 년 동안은 그야말로 완전히 베일에 싸인 채였지요. 소수의 정보 당국자들은 북한 사회를 봐 와서 잘 알았겠지만 일반 국민들은 북한 사회를 볼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지금도 북한을 우리 사회처럼 들여다 볼 수는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정책결정구조라든지, 또 이런 것들을 그런 분들이 얘기한 것은 의미와 재미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최근 상황에 대한 의견을 여쭙겠습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양국 협상의 교착 국면이 길어진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북한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놓고 지금 머뭇거리고 있는 거잖아요? 한마디로 얘기하면 지금 북한은, 너무 단정적일지 모르지만, 지난 12월 이전보다는 훨씬 좋은 상황에 있다는 것입니다. 굳이 미국에 양보하고 자신에게 손해가 될 수 있는 회담을 빨리 진척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죠. 이것은 다시 말하면 미국이 협상을 좀 잘못했다는 말도 되는 겁니다. 지난해 말의 상황과 지금을 한 번 비교해보세요. 대차대조표를 만들어보세요. 지난해 말 미국은 북한에 대해서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완전한 제재 국면을 조성하고 군사적인 위협까지 가했습니다. 북한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느낄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북한 핵문제가 풀리기 위해서는 북한 정권이 그러한 위기를 느껴야 한다고 저와 많은 사람들이 얘기했습니다. 북한이 어떤 대가를 치러서 만든 핵입니까. 그런 정도의 체제 위기를 느끼지 않는다면 포기할 수가 없죠. 지난해 12월 말의 상황은 아마도 70~80%의 위기라고 느꼈을 것 같아요. 중국도 북한에 대해서 굉장히 쌀쌀맞게 대했어요. 시진핑 주석의 방북이라든가 김정은의 방중이 거론조차 안 될 정도로 북한은 국제적 고립에 빠져 있었고, 남북한간의 문도 열리지 않았어요. 김정은이 한 차례도 정상회담을 해본 적이 없었죠. 그러니 북한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올해 대반전을 취해야 되겠다고 결심을 했겠죠. 지금 상황은 어떤가요? 북한은 국제적 고립에서 완전히 벗어났어요. 단초는 남북 정상회담이지만 실질적인 것은 북-미 정상회담이에요.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발표한 것으로 50%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실제로 만나 100% 달성한 셈이 됐어요. 미국 대통령과 같이 동렬에 서는 국제적 당당함을 얻었어요. 김정은의 엄청난 정책 승리였던 거죠. 그 사이에 시진핑 주석하고도 세 차례나 정상회담을 했잖아요? 중국과의 외교적 문제도 풀었어요. 중국에게서 인정받고, 환대를 받았어요. 굉장히 중요한 전략적 카드를 얻은 거죠. 국제제재도 유명무실해졌다고 표현하기는 지나치지만 작년 12월에 비하면 상당히 느슨해진 것이죠. 원유도 러시아나 중국에서 받을 수가 있고. 인력 송출도 제재는 받지만 완벽하게 통제하기 어렵게 되어 있잖아요? 국제적 분위기로 보면 제재도 좀 풀린 것이죠. 북한은 이제 핵실험 안 해도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소위 농축 우라늄 개발은 어디엔가 계속 하고 있을 걸로 보입니다. 남북관계도 문이 열렸다고 생각하면 답답할 게 없죠. 내가 김정은이라도 회담을 빨리 할 이유가 없어요. 종전선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봐요. 김정은으로서는 조건을 내걸고 협상을 빨리 안 하는 것이죠. 다분히 전략적인 의도가 있다고 보는 것이죠. 김정은은 미국이 상당히 양보하면 또 대화에 나가겠다고 슬쩍 몸을 움직여볼 수는 있죠. 그러나 그것도 완전한 비핵화로 가는 그런 대화일지 의문이 듭니다. 조기에 되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요.”-지금과 같은 제재 하에서는 김정은이 주민들에게 약속한 경제개발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북한은 우리하고 완전히 다른 체제잖아요. (제재 속에서도) 얼마든지 버틸 수가 있어요. 북한이 자기 국민들을 생각하는 체제예요? 아니에요. 그랬으면 90년대 중반에 소위 고난의 행군, 그런 어려움 속에서 백성들을 내버려뒀을까요? 역으로 말하면, 김정은 정권에게는 그런 부담이 없다는 겁니다. 있더라도 우리와 같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국가에서 최고지도자와 정부가 국민에 대해서 갖는 책임과 의무와 그런 정도의 무게감이 없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 북한 주민들은 장마당을 통해 스스로 먹고 살 길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냥 내버려 두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김정은에게는 체제적 압박만이 문제인데 이제 체제적 압박도 벗어났어요. 김정은은 트럼프의 날카로운 예봉이 꺾이기만을 기다리면 돼요. 시간이 우리 편이다 하고. 시간이 누구 편인지는 몰라요. 왜 모르느냐. 그것은 앞으로 (미국 등 국제사회가) 어떻게 하기에 달렸기 때문이죠. 하지만 김정은은 시간이 우리 편이다 하고 기다릴 겁니다. 여기에 미국은 중간선거다 뭐다 정신이 없어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도 준비해야 돼요. 북한은 위기의 고점에서 내려와 버렸어요. 그러니 기다리는 거예요. 기다릴 수 있는 거예요. 외부적인 압박도 거의 없고, 내부적인 압박도 없는 상황이니까 어떤 인센티브가 있겠어요. 그냥 회담에 나가서 국제적으로 한 약속을 지켜야겠다고 나서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것도 수 십 년 동안 이룬 그것을 버리는 일에? 나설 필요가 없어요.”-싱가포르 북-미 대화가 북한의 비핵화 인센티브를 떨어뜨린 셈이군요. “지난번 미-북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그렇게 서둔 것은 미국의 전략적 실패로 밖에 분석이 안 됩니다. 김정은을 만나주는 게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 그것이 미국이 가질 수 있는 굉장한 전략적 카드라는 것을 과소평가한 것일까요? 그것을 저런 방식으로 소진했다? 참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죠. 협상의 기술을 그렇게 숭상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이 조금 아마추어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미국은 북한에게서 최소한 소위 최초 신고서를 내겠다는 확답 정도는 받고 정상회담을 했어야 됐습니다. 그 다음은 서로 주고받기를 할 수도 있지만요. 2, 3차 정상회담은 사실 절반의 가치도 없어요. 정상회담 개최를 전격적으로 결정을 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이례적이었고 실제 만나는 것에 대해서는 더 심각한 전략적 고려가 필요했어요. 미국은 북한에 대해서 다시 지난해 말과 같은 정도의 압박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굉장한 동력을 다시 모아야 될 거예요. 못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게 지금의 평가예요. 내 분석이 조금 틀렸으면 좋겠어요.”-북한이 끝내 비핵화에 나서지 않으면 미국도 가만히 있을 수 있나요? “트럼프 대통령이 이 사안을 보는 시각이 바뀔 수도 있고, 미국 정부가 북한을 비핵화 시키지 않았을 때 오는 전략적인 안보상황에 대한 재평가를 할 수 있지요. 미국은 큰 나라예요. 작은 전략적 실수를 저지를 수 있고, 그것이 치명적으로 작용하지 않게 할 수도 있고, 실수를 다시 만회할 수도 있고, 가는 방향을 바꿀 수도 있어요. 만약에 김정은이 이것을 간과하면, 또 한 번의 위기가 닥칠 수 있습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정책 행보에 있어서 갈지(之)자 걸음을 걸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생각하고 원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간다고 느끼는 순간 방향 조정을 할 겁니다. 지금이 그 때인지도 몰라요. 확실한 건 ‘아, 김정은이 적극적으로 안 나오고 있구나, 뭘 얻었기 때문에 지금 뒷걸음질 치고 있구나, 첫 정상회담 때와 지금 상황이 뭔가 틀려가고 있구나’하는 것을 100% 느낀 것은 분명한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 조금 더 두고 봐야 되겠다. 최소한 1라운드는 끝난 것이지만 아직 초반의 초반을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많은 변수가 있겠죠. 너무 속단할 필요는 아직은 없어요.”-미국이 무역 문제로 중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북핵 문제 해결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인가요? “중국과의 무역갈등은 미국에겐 더 본질적이고 더 크고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두 나라가 글로벌 헤게모니를 다투는 과정에서 나오는 문제로 그야말로 아주 가장 사활적인 이해관계(vital interest)가 걸려있는 문제예요. 북한 핵문제가 미중의 공동의 관심사이고 따라서 두 나라 사이가 좋을 때 북한 핵문제가 풀린다는 일반론이 있습니다. 북한 핵문제가 나름대로 구조의 독특함이 있고 보다 독립적인 이슈이긴 하지만 미중관계라는 더 큰 구조와 완전히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체적으로 미중이 전략적 협조를 잘 할 때, 북한 핵문제가 풀리는 것이 더 유리하죠. 미중이 무역 소위 ‘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에 대해서 북한 핵문제에 적극적으로 협력을 해달라고 얘기하기가 어렵죠. 역으로 북한 핵문제에 협조하지 않으면 무역 분쟁을 더 강화할 거야라고 압박할 수 있는 성격도 아닙니다. 더구나 중국은 지난 연말까지는 북한에 대해 쌀쌀하게 대했지만 미국이 스스로 빗장을 다 풀어버린 격이 된 꼴이지 않습니까.”-이런 상황에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의 속도를 내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만. “속도라고 하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에요.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뭐냐, 그리고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에 와 있느냐, 이게 중요한 것이죠.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그냥 남북관계 개선인지, 정말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바탕으로 해서 동시에 남북관계를 개선하려고 하는 것인지, 이런 것을 이루면서 한미관계를 탄탄히 하고 안보를 더 굳건히 하는 바탕을 만들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그런 보다 합목적적이고 보다 더 근본적인 우리 목적을 위해서 가는 것이라면 속도가 빠를 수도 있고 느릴 수도 있고 상관이 없어요. 지금 많은 사람들의 우려는 (우리 정부의 행보가) 그런 신중한 고려에 따른 것인가 하는 의문에서 출발한 거잖아요. 저도 똑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어요. 지금은 돌다리도 두드려서 건널 정도로 신중해야 됩니다. 그래야 장기적으로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은 결과를 과거에 수없이 봤잖아요.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남북간의 약속? 이미 다 폐기됐잖아요? 90년대 초 남북한이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남북 기본합의서는 지금 어디로 갔나요.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불과 26~7년 전 일이에요. 북한 핵문제라고 하는 것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돼온 문제예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이것은 정권의 색깔과 접근 방법의 문제가 아니에요. 어떤 정권이든, 과연 그 정책의 결과가 한반도의 진짜 안전과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인가? 그러려면 반드시 북한의 비핵화 이루어야 되는데, 지금 과연 우리가 딛는 이 한 걸음이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것인가를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돼요. ‘과연 그런가?’ 하는 의문부호가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도 똑같이 그런 질문을 던지는 거예요. 문제는 그 결과를 알기까지 그다지 오랜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점입니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백승헌 인턴기자}

    • 2018-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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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윤영관 장관 “美, 경제제재 유지하면서도 北과 신뢰 쌓아야”

    -장관님 안녕하십니까.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청년들이 핵문제와 북미 대화 등 북한을 둘러싼 최근 한반도 움직임을 이해하는데 국제정치학의 제 접근법과 개념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관님 견해는 어떠신가요? “당연히 그렇습니다. 매일 터져 나오는 국제정치의 현상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분석 틀이 필요합니다. 그 틀을 만드는 것은 학문을 하는 전문 연구자들의 몫이지만 국제정치학을 공부하고 가르쳐온 사람으로서 항상 학생들한테 강조하는 것은, 시야를 넓혀서 국제정치의 큰 틀 안에서 한반도 문제가 어떻게 전개가 되고 있는지 생각해야 되고, 동시에 깊이 있는 분석을 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남북관계는 좀 특수하지만 같은 민족 내부 관계라는 측면과 국가 간의 관계라는 측면을 함께 봐야 하는 것이겠지요? “과거 남북 합의문들은 남한과 북한이 국가 대 국가의 관계가 아니고 잠정적인 특수관계라고 규정했지만, 실제로는 국가 대 국가의 관행을 준해서 접촉을 해온 측면이 있기 때문에, 국제정치학에서 이야기가 되고 있는 개념이나 시각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고 생각을 해야 되겠죠.” -한반도 문제, 북한 문제를 둘러싼 기성세대의 논쟁들 가운데 국제정치학적 무지로 인한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들이 있지 않습니까? “요즘에는 조금 덜한 것 같습니다만,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친미 반미 친일 반일 친중 반일과 같이 ‘친’과 ‘반’이라는 접두사를 붙여 국제관계를 파악을 하는 정서가 아주 강했습니다. 친하고 친하지 않고는 감성적인 차원입니다. 그러나 국가들간의 관계, 즉 외교라고 하는 것은, 철저하게 이익적인 관점, 국가 이익을 추구하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됩니다.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해왔습니다. 상대방 국가들이, 한반도의 주변 국가들이, 어떻게 자기 국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한국 또는 북한과 외교를 하는가. 또 그러한 나라들이 한반도에 대해서 채택하고 있는 전략이나 전술에 대응해서, 우리는 어떠한 전략 전술로 맞서야 되는 건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되는 거죠. 그래서 감성적인 접근보다도 철저하게 이지적이고 계산적이고 분석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또 하나 경계하고 지양해야 되는 것은, 외교의 문제를 국내 정치의 수단으로서 활용하려고 하는 경향들입니다. 강대국들도 외교에 대해서는 내부적인 단결, 국민적인 통합이라고 할까 여론수렴이라고 할까 그런 것들을 거치기 때문에, 우리도 국가 전체적인 차원에서 접근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1982년에 서독에 헬무트 콜 기민당 연립정부가 들어서게 됩니다. 연립정부를 구성하면서 경쟁 정당이고 정치적 경쟁자인 사민당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자기 정부의 정책으로 채택합니다. 여야를 떠나서 독일이라고 하는 나라의 미래를 보았을 때, 무엇이 바람직한가를 철저하게 냉철하게 따져서 결단을 내린 것. 우리가 상당히 참고를 해야 될 사례라고 생각합니다.”-국제정치학에는 여러 가지 접근법들이 있고 이론들도 다양한데, 최근 북한 문제를 보는데 조금 더 유용한 접근법이나 패러다임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현실주의나 자유주의, 구성주의 등 ‘주의’자 붙은 매크로 한 거대 이론들은 각기 장단점이 있고, 같은 북한 문제지만 이런 측면은 일종의 자유주의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이 더 적합할 때도 있고, 저런 문제는 현실주의적인 입장에서 보는 게 좋을 수도 있고, 구성주의에서 보면 다른 어떤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포착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거대담론보다는 특정한 개념들을 중심으로 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한반도가 지금 부딪히고 있는 딜레마를 설명을 하는 데 있어서 세 가지 정도를 꼽아볼 수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이라고 하는 개념입니다. 사실 오래전부터 주변 강대국들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세력 균형을 모색해 왔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반도 분단을 둘러싸고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간의 세력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한반도가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서 때로는 침략을 받고 점령되고 식민지가 되고 하는 몇 백 년 동안을 이 개념을 통해 조망해 볼 수도 있겠지요. 또 하나의 개념은 안보딜레마(Security Dilemma)라고 하는 것입니다. 북한처럼 약소국의 경우에, 그것도 경제적으로 약하고, 외교적으로 고립돼있고, 강대국들한테 둘러싸여 있는 그런 국가는, 주변 국가들이 공격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스스로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특히 1990년에 소련이 붕괴하고 냉전이 종결된 전환기적인 시점에서 김일성 주석은 굉장한 불안감을 느끼고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합니다. 성공하지 못하자 핵개발 전략에 집착을 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이것은 주변국들 입장에서는 공격적인 행동으로 해석됩니다. 그때부터 핵문제가 상당히 어려워지는 삼십년 가까운 경험을 우리가 봐왔습니다. 세 번째로는 상업적 자유주의(Commercial Liberalism)가 있겠는데요, 국가들 간의 상업 교류가 심화되면 그것이 평화로 연결된다라고 하는 자유주의적인 한 흐름입니다. 무역과 투자를 활성화하고 경제 관계를 심화시키면 평화가 온다, 왜냐하면 경제적인 교류로 인한 혜택을 버리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아담 스미스 이후에 내려오는 사고의 흐름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기능주의(Functionalism)와도 연결이 됩니다. 대북정책을 어떻게 할 것이냐 논쟁과 관련해 유용한 개념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남북이 군사 정치적인 대화부터 시작을 할 것이냐, 아니면 좀더 쉽고 서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지 않아도 되는 기술적이고 기능적인 분야, 특히 경제분야에서부터 협력을 쌓아나가서 신뢰를 강화하고, 마지막 단계에 정치 군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좋은가 하는 맥락에서 유용한 개념이지요.-청년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을 소개해 주십시오. ”돈 오버도퍼라는 미국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썼던 ‘두 개의 한국’을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한반도 문제, 핵개발 등 북한 문제, 냉전기와 탈냉전 이후 1990년대 남북간에 벌어진 정치와 외교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론적이거나 학문적인 분석 연구서가 아닙니다. 기자의 눈으로 그동안 일어났던 사실 위주로 냉전 이후 한반도의 역사를 아주 꼼꼼하게 정리를 해놓은 책입니다. 어떤 국제정치학적인 분석을 시작하기 전에, 개론서로서 꼭 읽어보길 권합니다.“ -현실 얘기를 좀 여쭤야 되는데요, 연내 이뤄질 것처럼 보였던 북-미 2차 정상회담을 위한 추가 협상이 늦어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비핵화의 방식을 둘러싸고 양측간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원래 전통적인 비핵화 방식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핵 프로그램을 신고하고, 검증하고, 해체하는, 신고-검증-해체라는 수순을 밟습니다. 미국이 원하는 방식입니다. 근데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과의 신뢰가 회복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는 상태에서, 모든 핵 프로그램 리스트를 내놓으라고 하는 얘기는 완전히 발가벗으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하지요. 북측의 고위급 담당자가 ‘그걸 요구하는 것은 당신들이 우리를 공격할 장소의 리스트를 내놓으라고 하는 얘기나 똑같은 얘기 아니냐’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북한은 동시행동을 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이 이런 행동을 취하고, 북한이 거기에 또 상응하는 행동을 취하고 하는 방식으로 해서 뭔가 진전을 보는 포맷을 들고 나와 미국과 갈등이 있어왔던 것 같습니다. 지금 느낌은, 어떤 일괄적인 타결방안, 즉 핵 프로그램 리스트를 내놓고, 미국은 한국과 함께 종전선언을 하고, 그런 교환 방식에서 조금 방식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영변 핵시설 단지와 동창리 미사일실험기지 등 중요한 북핵 시설을 하나씩 검증하고 폐기하고 하는 수순, 거기에 상응하는 조치를 미국과 한국이 취하는 맞교환 방식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 문제를 놓고 미국의 스티브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북한의 최선희 부상이 만나서 실무협상을 해야 되는 상황인데, 거기서 어떤 진전이 이루어지느냐가 북-미 정상회담 개최의 가장 중요한 결정 요인이 될 것으로 봅니다.“-미국에선 6일 중간선거가 있고, 내년 1월 1일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가 있을 예정입니다. 향후 북-미관계는 어떻게 흘러갈 것으로 보십니까. ”지금의 협상국면이 지속될 것이라고 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김정은 위원장도, 문재인 대통령도 대화의 국면을 지속시켜 나가야 되겠다는 강한 희망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내년 한 해도 협상국면이 지속이 될 것이다, 그렇게 예측을 하고 있습니다.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싱가포르 북미회담, 남북간 두 번의 선언을 이행해나가야 된다는 원칙을 강조해 나갈 것이라고 봅니다. 미국에 대해서는 싱가포르 회담에서 약속됐던 정치적인 관계를 개선하는 가시적인 조치를 취해 달라, 그리고 경제제재를 완화해달라는 요구를 하면서 자신들은 비핵화 노력을 지속하겠다, 이런 얘기를 하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김정은 위원장에게 비핵화 진정성 있다고 보십니까? ”북한이 (진정성이 있느냐 없느냐) 고정되어 있고 이쪽의 선택과 관계없이 모든 것을 북한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적인 작용이라고 봐야 될 겁니다. 진정성이 있다가도 미국이나 한국이 행동하는 것을 보고 마음을 바꾸거나, 결국 진정성을 포기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진정성이 없다가도 이쪽에서 하는 것을 보고서, ‘아, 정말 핵을 포기해야 되겠구나’라고 나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과 한국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북한의 태도가 바뀔 수도 있고, 거꾸로 북한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미국과 한국의 태도가 바뀔 수 있는 겁니다. 이런 상호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아마 거꾸로 생각할 겁니다. ‘우리가 정말로 트럼프를 믿을 수 있을까?’라고 의심할지 모릅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는 항상 이렇게 강조해왔습니다. 미국이 북한의 핵을 폐기하기 위해서 경제제재라고 하는 수단은 유지하면서도 미국이 북한에 대해서 취할 수 있는 정치적인 행동은 해야 된다. 북한과의 신뢰 수준을 높이고 김정은이 미국을 신뢰하게 만들고, 그래서 ‘아, 이제 우리가 핵을 가지지 않아도 레짐(regime)을 유지하고 번영할 수 있겠다’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미국이 조금 노력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종전선언 얘기가 많이 나왔습니다만, 그게 대표적인 조치가 될 수 있지만 저는 그것 이외에도 많이 있다고 봅니다. 연락사무소를 개설한다던지, 북한 스포츠 선수단이나 예술공연단을 미국으로 초빙을 한다든지, 학생이나 관료들을 미국의 대학으로 초빙해 시장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교육한다던지 이런 조치들을 미국이 선제적으로 취해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북측의 비핵화 조치를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거기에 따라 경제제재를 풀거나 유지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김정은이 어떤 조치를 하면 보통 사람도 ‘아 이제 정말 비핵화로 가겠구나’ 느낄까요? “검증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검증에 얼마만큼 성실하게 임하느냐 하는 것이죠. 필요한 시설을 얼마만큼 개방하고 모든 것을 투명하게 보여줄 것인가 하는 그런 문제. 가장 바람직한 것은 북한의 모든 핵 프로그램을 신고하고, 리스트를 제출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행동이라고 저는 봅니다. 북한은 그것이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구나 그런 조치를 취하고 거기에 따른 검증을 철저하게 받는다면 그것은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이외에도 북한 핵 프로그램의 핵심적인 부분들, 기존의 핵탄두라든지, 핵물질이라든지, 핵시설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부분적이라도 해외로 반출하거나 폐쇄하거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해체한다거나, 이런 가시적인 조치를 취하면 상당한 진정성이 보이는 것이라고 봐야 되고, 거기에 상응하는 조치를 미국이나 한국이 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경제제재 해제와 관련해서도 전향적인 조치를 취해야 된다고 보는 것이죠.”-북한이 비핵화의 대가로 요구하는 체제안전보장이라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세계정부가 없는 국제관계에서 주변국들이 어떤 나라의 체제를 보장해준다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이런 근본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저는 뭐 체제보장보다도 안전보장에 더 방점을 둡니다. 아까도 말씀드린 안보딜레마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북한이 얘기하는 것, 그리고 서방사회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안보를 어떻게 보장하느냐 일겁니다. 고난의 행군을 겪을 정도로 경제난을 겪고 외교적으로 완전히 고립되어 있고 강대국에게 둘러싸여 있는 북한의 경우에는, 주변국들이 공격할 의도가 없다고 하더라도 불안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미국이 주도적으로 정치적인 관계를 해소를 하고, 외교 관계도 풀고 하면서 북한을 포용을 할 때, 북한 입장에서는 안보보장이 이루어졌다고 얘기를 할 수 있을 겁니다. 거기에 법적인 장치로서의 평화협정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맺어져야 되겠죠. 경제제재 해소뿐만이 아니라, 미국 자본이 투자를 한다. 그렇게 되는 경우에는 북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더 이상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할 수 있을 겁니다. 일단 외부적인 위협과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중국도 중요한 행위자인데요. 심화되는 미중 무역갈등이 북핵문제 해결에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보십니까. “미중간의 전략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국 내 분위기가 많이 변했습니다. 과거에는 중국을 협력자 겸 경쟁자로 봤었다면 이제는 협력 부분이 약화되면서 경쟁자라는 인식이 전면에 부각돼 ‘어떻게 중국을 억제할 것인가’ 하는데 에너지와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중 간에 대만 문제, 남중국해문제, 동중국해문제, 무역문제 등 여러 전선에서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데요, 미중 간 현안 중에 하나가 북한문제입니다. 그런데 북한 문제에 관한 한 미국이나 중국이나 똑같이 비핵화가 바람직하다는 목표에 합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에는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 협조를 해서 유엔제재를 대폭 강화했고, 실제로 지금 이 순간에도 유엔제재를 이행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제재를 푼다면 기존의 비핵화 문제에 관한 입장을 완전히 180도 바꿔서 후퇴한다는 얘긴데, 저는 그렇게 될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중국에게도 북한 비핵화가 중요한 이슈입니다. 북한이 핵무장을 하게 되면 일본과 한국 심지어는 대만까지도 핵무장을 고려를 할 수 있고 일종의 핵도미노 현상이 벌어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압박과 봉쇄는 더욱 강화될 겁니다. 북한을 표적으로 하는 강화된 압박 전략이 중국의 안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사드 분쟁이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북한을 표적으로 한국에 도입한 무기 체계였지만 중국이 엄청나게 반발했습니다. 제반의 전략적인 환경이 중국에 불리해지기 때문에 (미중관계 악화에 따라서) 추가적인 대북제재에는 협력하지 않을지 몰라도, 기존의 여러 유엔 주도의 경제제재에서 완전히 이탈해 국제적인 제재전선에서 빠져나간다? 그건 아마 상당히 어려운 선택이라고 봐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관광객 제한 등은 유엔제재가 아니고 중국이 단독적으로 하고 있는 제재였는데, 최근 그걸 풀고 있는 경향이 보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의 속도 측면에서 너무 앞서간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난해 상황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50퍼센트 정도 된다고 미국외교협회(CFR) 회장인 리처드 하스가 말했습니다. 그 정도로 시급하고 급박한 상황이었습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난다면 핵 때문이 아니라 우발적인 사건이 전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저는 봅니다. 이쪽에서 전면공격을 의도하지 않았는데, 상대방 쪽에서는 전면공격의 시작으로 인식이 되고, 그래서 전쟁으로 확산되는 그런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봅니다. 우리 정부로서는 그럴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줄이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반도에 더 이상 남북간에 전쟁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돌이킬 수 없는 어떤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되겠다고 하는 것은 저는 당연히 추구할 목표라고 보는데, 문제는 그런 평화체제를 정착시킬 수 있는 기회의 창이 오랫동안 열려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의 클린턴 말기 때처럼 북한을 포용하기로 작정을 하고 나섰는데, 이것은 정말 20년에 한 번씩 올까말까 한 그런 기회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유야 어땠건, 싱가포르에서 북-미 관계를 우호적인 관계로 정상화시키겠다고 선언했던 것은, 한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기회의 창이 열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미국 내부의 정치 동학이라든지, 여러 가지 사건으로 언제 이 기회의 창이 닫힐지 모릅니다. 미국의 관점에서도 전쟁의 걱정이 있겠죠. 하지만 전쟁이 터지면 미국 본토가 아니라 한반도에서 터집니다. 그러한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 정부가) 너무 빨리 가는 것 아니냐고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인 우리의 입장에서는 정부의 그런 조치들이 이해가 충분히 간다고 저는 봅니다. 문제는 남북한 간에 전쟁걱정 없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려면 경제협력이 가장 본질적입니다. 남북간에 사람과 사람들의 자유로운 왕래, 인적 물적 교류, 이런 게 제대로 되려면, 경제제재가 해제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경제제재는 국제적으로 합의가 된, 유엔 주도의 국제적인 연대에 의해서 지금 집행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입장에서는 남북한 간의 본질적인 관계의 변화를 위해서도 이 국제적인 연대에 함께 참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균형을 맞춰가면서 할 것이냐, 이게 가장 중요한 이슈이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kyle@donga.com백승헌 인턴기자}

    • 2018-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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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공격 목표 리스트 내놓으라는 것이냐” 美의 핵리스트 신고 요청 거부

    북한이 미국의 핵 보유 리스트 신고 요청에 대해 “당신들이 공격할 목표물의 장소 리스트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이야기”라며 거부하고 있다고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가 전했다. 노무현 정부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윤 교수는 지난달 29일 동아미디어그룹의 청년을 위한 한반도 플랫폼 ‘우아한(우리 아이들의 & 아름다운 한반도)’ 런칭 기념 인터뷰에서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이같이 전했다. 윤 전 장관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양국 실무협상 타결이 늦어지는 근본적인 이유가 미국에 대한 북한의 불신에 있다며 “미국은 대북제재를 유지하면서도 신뢰구축에 필요한 정치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한 조치로 △연락사무소 개설 △스포츠 및 예술 교류 △학생과 관료 등 초청 교육 등을 들었다. 이어 “(이런 흐름 속에서) 핵 프로그램 신고와 종전선언을 맞바꾼다는 과거의 방식에서 북한이 영변과 동창리 등 중요 시설을 국제사회의 검증 속에 폐기하고 이에 상응하는 보상을 미국과 한국이 하는 방식으로 비핵화가 진전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통일부 장관을 지낸 현인택 고려대 교수는 지난달 30일 이어진 우아한 런칭 기념 인터뷰에서 “북한이 미국에 양보하고 자신에게 손해가 될 수 있는 회담을 빨리 진척시킬 이유가 없는 상황이 됐다”며 비관적인 견해를 나타냈다.현 전 장관은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국제적 고립과 군사적 압박에서 완전히 벗어났으며, 중국과 러시아의 제재도 느슨해지고 있다”며 “이는 최초 핵 신고서도 받지 못하고 김정은을 만나 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적인 실패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강대국인 미국은 언제든지 상황을 전략적으로 재평가하고 방향을 바꿀 수 있다”며 “김정은이 이것을 간과한다면 또 한번의 위기가 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우아한은 동아미디어그룹 석박사급 전문기자 및 전문가들이 청년·학생들과 한반도 문제를 놓고 ‘세대간 소통’을 하는 새로운 온라인 공간이다. 동아미디어그룹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쏟아 온 ‘청년과 미래’의 한반도 문제 버전이기도 하다. ‘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우아한 청년 발언대’ 등 쌍방향 코너에는 청년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사전 구성된 ‘우아한 청년 질문단 1기’에는 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와 아산정책연구원 아산서원 14기, 고려대 대학원 북한학과와 북한대학원대, 숙명여대 ‘생활 속 북한 알기’ 수업 등에 소속된 청년 30여 명이 참여했다. 첫 회에는 이태헌 경희대 국제학과 12학번(아산서원 14기) 학생이 “북한의 인권상황 규탄과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 개선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노태구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13학번(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 학생이 ‘대한민국 북핵 세대의 초상’을 주제로 발언한다.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동아미디어그룹 내 석·박사 급 전문기자 8명이 팀을 꾸렸다. 신석호 변영욱 이정은 윤완준(이상 동아일보) 하태원 김정안 강은아(이상 채널A) 송홍근(신동아) 기자는 각자 기자페이지에 ‘우아한’ 코너를 열고 청년을 향해 메시지를 발신한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 민경태 여시재 한반도미래팀장, 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북한군사실장, 이유진 한국산업은행 한반도신경제센터 연구위원 등 전문가들도 동참한다. 우아한은 5일 오전 10시 동아닷컴(m.donga.com)과 채널A(ichannela.com) 모바일 메인 페이지를 통해 첫 선을 보인다. 페이스북과 네이버 포스트 등 SNS로도 독자들을 찾아간다. 주성하 탈북 기자의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가 새 둥지를 틀고, ‘북핵 타임라인’ ‘한반도 리포트’ 등 전문가들에게도 유용한 자료실도 선보인다.신석호(북한학 박사) kyle@donga.com·유덕영 기자}

    • 2018-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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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합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2018 DMZ 평화상’ 대상 수상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소장 이관세)가 ‘2018 DMZ 평화상’ 대상 수상기관으로 선정됐다. 강원도와 강원일보사는 2005년부터 매년 남북 교류·협력 등을 통해 한반도 평화에 현저하게 기여한 개인 및 단체를 발굴해 ‘DMZ 평화상’(대상, 남북교류, 학술 등 3개 부문)을 수여하고 있으며, 2018년 대상 수상기관 선정 결과를 26일 발표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1972년 설립된 이후 한반도 평화와 북한·통일 문제를 중심으로 연구하며 국내외 담론을 선도하는 동시에 북한대학원대학교(총장 안호영)와의 긴밀한 연구·교육 협력을 통해 바람직한 한반도 미래를 구현하기 위한 정책 대안 모색에 앞장서왔다. 올해 통일부와 함께 한반도 평화·번영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키고 공고화하는 ‘한반도 국제포럼(KGF)’ 사업을 주관하며 6개국에서 7회에 걸쳐 국제학술회의를 진행했다. 시상식은 다음달 15일 오전 11시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설악썬밸리리조트에서 열린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2018-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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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동의의 정치적 이익과 손해는?

    A. 4·27 판문점 선언과 이의 국회 비준 동의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은 정부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의 정쟁 같지만 국제정치학의 오래 된 패러다임 또는 사조 간 갈등의 사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적대적인 국가들이 대화와 신뢰 구축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이상주의와, 구조적 무정부상태를 특징으로 하는 국제정치 하에서 평화란 전쟁과 전쟁 사이의 기간일 뿐이며, 상대방에 대한 힘의 우위만이 평화와 안보를 지킬 수 있다는 현실주의가 그것입니다. 질문에서 제기한 ‘대북정책의 연속성’은 전자를, ‘변화하는 국제정치 현실 속에서의 유연한 대응’은 후자를 상징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우선 정부와 여당은 4·27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 동의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비핵화를 통해 경제개발에 나설 진정성이 있으며 그 진정성을 키워가도록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전제 하에 북한 비핵화에 따라 남한 정부의 대규모 지원과 관계 개선을 약속한 판문점 선언을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비준 동의하는 것은 그만큼 북한에 비핵화 인센티브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1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통일부 대상 국정감사에서 “판문점 선언의 비준동의를 통해 북한과 협상을 촉진할 수 있고, (비준동의는)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도 더 큰 교섭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북한이 비핵화를 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구조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한국과 미국 등 민주주의 주변국의 정권교체라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선거를 통해 정권이 바뀌면 대북정책이 바뀌고, 현 정부와 나눈 대화와 합의가 종잇조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북한이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2000년 6·15공동선언과 2007년 10·4 정상선언이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지켜지지 않는 것을 본 북한이 이를 포함한 모든 남북한 합의의 이행을 선언한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동의를 원하는 이유라는 것입니다. 미국에 대해 조기 종선선언을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 논리일 수 있습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대외부총장은 “그동안 역대 정권이 정권 차원의 대북정책을 실행해 왔다고 비판을 받았다. 지금이야말로 대북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 투명성이 필요한 때”라며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재정이 투입되는 사안에 대해서 남북관계발전법에 따라 매년 들어갈 비용에 대해서 국회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꼭 필요한 민주적 절차”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더 거시적으로 보면 우리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지킨다, 남북한 평화통일의 길을 우리가 주도한다는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하지만 남북관계가 같은 민족간의 관계임과 동시에 갈등하는 두 국가간 관계임을 감안할 때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국익을 생각한다면 상대방의 말이 아니라 행동, 의도가 아니라 처한 상황을 보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신조를 따르는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지금 단계에서의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동의는 불확실한 북한 비핵화에 대해 확실한 양보와 보상을 국민의 이름으로 확약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그것이 아직 구체적인 행동으로 확인된 것은 아닙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금 비핵화의 의지가 있더라도 그 의지는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핵·미사일 개발에 몰두하느라 재래식 군비와 경제 등에서 취약한 북한이 과연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는데 요긴한 ‘보검’이라고 스스로 주장해 온 핵을 과연 포기할 수 있을지 의문이 큽니다. 이를 정치적으로 밀어붙이는 정부의 태도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습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선언이 약속한 북한 지원에 천문학적인 재정이 투입될 수도 있는데 국회 내에서 충분한 숙의 과정 없이 비준동의를 요구하는 것은 민주적 절차에 위배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5·24조치 완화 가능성 발언을 놓고 나라 안팎에서 비판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 국회 비준동의 건 역시 한미 대북제재 공조를 해치고 한국만 앞서가려한다는 미국 측의 우려를 낳을 수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구체적인 비핵화 로드맵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비핵화 진전에 따른 대규모 양보와 보상 제공하는 남북관계 진전 로드맵을 대한민국 국민의 이름으로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 센터장은 “북한이 핵·미사일 신고서를 제출하거나 포괄적인 사찰을 허용했을 때 등가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맞다”고 제안했습니다. 이같은 시각은 힘이 지배하는 국제정치의 엄연한 현실과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북한의 스스로 제시하고 있는 정상국가화로의 바람직한 미래는 한국보다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의 이해관계와 정책 등에 더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한국이 앞서가며 카드를 써버릴 것이 아니라 북한의 보다 확실한 비핵화 행동을 유도하는 인센티브로 아껴 두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이런 논쟁 속에서 바른미래당이 국회 비준동의에 부정적인 당론을 내놓으면서 여권도 국회 비준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여당은 판문점 선언의 정당성을 지지자들에게 홍보하고 야당에 대한 여론 공세에 활용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이해관계자인 김정은 위원장도 청중일 수 있습니다. 정부 여당은 최대한 노력했지만 야당의 반대로 비준에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설득을 하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최근 움직임들은 국제정치적인 패러다임 논쟁일 뿐 아니라 지극히 국내정치적인 측면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관련기사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 2018-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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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통일부가 올 ‘북한인권증진계획’ 지각 제출한 이유는?

    통일부가 이번 주 국회에 북한인권증진기본계획에 따른 올해(2018년) 집행계획을 보고했습니다. 새해가 3개월 남은 상황에 올해 계획이 제출된 것으로 지각 치고도 큰 지각인 셈입니다. 담당인 남종우 인권과장은 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올해 여러 가지 상황 변화로 늦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세계를 상대로 과감한 평화공세를 편 끝에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이 이뤄진 역사적 격변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인권 문제를 그만큼 후순위에 두기 때문이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 남 과장은 “국회 보고 첫 해인 지난해에도 여러 가지 상황 변화로 9월 말에야 국회에 보고됐다”며 “내년에는 봄에 정상적으로 집행 계획을 보고할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2016년 9월 발효된 북한인권법에 따라 통일부는 3년짜리 ‘북한인권증진기본계획’을 세우고 매년 당해연도의 집행계획을 국회에 보고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에 대한 ‘제1차 북한인권증진기본계획’은 문재인 대통령 당선(5월 9일) 직전인 지난해 4월 26일 수립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되고 황교안 총리의 대통령직 권한대행 체제에서 마련된 계획은 세 가지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첫째, 북한주민의 인간다운 삶을 실질적으로 증진시킨다. 둘째, 북한 당국의 정책 노선을 인권민생 친화적으로 전환한다. 셋째, 북한인권 증진 과정을 통해 남북 간 동질성 회복을 추진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권교체와 함께 지난해 집행계획의 국회 보고는 9월 말로 미뤄졌습니다. 지난해 1월 위촉된 임기 2년의 ‘북한인권증진자문위원회의’의 자문을 거쳐 수립된 계획은 ‘북한 주민의 자유권과 사회권을 개선해 북한 인권을 실질적으로 증진한다’는 목표 아래 대북 인도적 지원과 유엔 차원 인권 결의 채택 등 7가지 역점 추진과제가 담겼다고 통일부는 밝혔습니다. 하지만 4월 발표된 기본계획의 7대 추진과제에 포함됐던 △북한주민의 인권의식 향상 △북한 인권문제의 책임 규명 △남북인권대화 및 기술 협력 등이 빠져 새 정부의 대북기조가 반영된 계획이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실제로 북한 인권은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비핵화와 동시에 남북관계 개선을 이루겠다는 현 정부에는 민감한 이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선 상대방인 북한이 인권 문제 제기에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4월 기본계획이 마련됐을 때 북한 노동신문은 ‘대결 광신자들의 무모한 광대극’이라는 제목의 개인명의 논평(4월 30일)을 통해 맹비난 했습니다. 인권은 인류보편적인 권리로 국가를 초월해 보장되어야 한다는 상식과 달리 북한은 인권문제는 각국마다 특수한 상황이 고려되어야 하며 북한에는 인권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해왔습니다. 역대 한국의 보수정부가 정치적 자유권을 부각하며 북한 체제의 반인권성을 비난해 온 것과 달리 진보정부는 사회경제적 인권을 우선하며 대북지원을 통한 관계개선과 북한 경제의 회복이 우선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 결과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에서 모두 네 건의 남북정상선언과 합의가 나왔지만 그 어디에도 북한의 인권 증진을 위해 노력한다고 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이런 상황은 소련의 팽창을 막기 위해 중국에 대한 간여(engagement)정책을 펼친 역대 미국 정부가 민주당과 공화당을 막론하고 인권 문제를 정치적 자유화와 경제적 개혁개방 요구의 지렛대로 사용한 것과는 다른 역사입니다. 올해 북한인권 증진을 위한 집행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달 말 소집된 자문위원회 회의에는 10명의 위원 중 현재 여당 추천 위원 5명은 모두 참석하지 않았다고 통일부 관계자들이 전했습니다. 반면 자라나는 청년들은 북한 주민들의 인권 문제에 대해 다양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9월 19일 숙명여대 홍규덕 교수가 진행하는 ‘생활 속의 북한 알기’ 강의에 참여해 30분 동안 북한 변방(북한 내부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주변부)의 열악한 상황과 대책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4명의 학생이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그 가운데 “변방에 집중되어야 할 국제사회의 지원이 왜 평양과 같은 중심 지역에 집중되는 것인지?(김지혜 씨, 독일언어문화학과 16학번)”와 “북한 변방 주민들의 인권이 왜 중요한 것인지, 왜 북한 인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이지영 씨, 정치외교학과 18학번)”에 대한 저의 대답을 유튜브 영상으로 공유합니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18-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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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년 전 백두산 장군봉 등반의 추억[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평양 남북정상회담 이틀째인 19일 오전 채널A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문재인 대통령의 백두산 등정 가능성을 놓고 다른 출연자들과 즐거운 논쟁을 벌였습니다.저는 당시까지의 모든 의전이 남측 인사들에게 할 수 있는 북한의 최고 의전이라는 점을 근거로, 김정은 위원장이 마지막 특급 의전인 ‘백두산 장군봉 등정’카드를 꺼내 들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다른 출연자들은 경호 등 사전준비의 문제를 들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반론을 폈습니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였습니다.그리고 오후에 숙명여대 홍규덕 교수님의 초대로 ‘생활속의 북한 알기’ 수업에 초대돼 북한 변방 지역의 문제점과 지원방안을 논의하던 중 문 대통령의 20일 백두산 등반 결정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망이 맞은 것은 좋은 일이지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아침 돌직구쇼에서도 지적했듯이 남한 대통령의 백두산 등정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백두산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 김씨 일가 신화의 핵심에 있는 산입니다. 그들이 스스로 민족의 성산이라고 부르는 백두산은 ‘백두혈통’의 정신적 발원지이자 정통성의 근원으로 숭앙됩니다. 장군봉은 빨치산 국가의 수령을 상징하는 봉우리이고 백두산 밀영에는 김정일의 탄생지라고 북측이 주장하는(실제 탄생지는 러시아) 고향집이 있습니다. 장군봉 위에서 천지를 바라보며 두 정상이 손을 잡은 모습은 국제사회에는 남북한의 화해와 협력의 이미지로 비쳐지겠지만, 북한 주민들에게는 대대적인 체제 홍보 수단으로 활용될 듯합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헌법상 우리의 영토인 백두산을 시찰하는 것으로 보면 문제가 없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저도 백두산 등반에 얽힌 추억이 있습니다. 16년 전 처음 평양을 방문했던 2002년 7월을 비롯해 네 차례 북측 백두산을 등반했습니다. 그리고 북측 안내원들에게 “이 좋은 자연환경을 외국인들에게 개방해 외화를 벌어들이라”고 충고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북한이 외국인 관광객에게 개마고원 트레킹과 백두산 등반을 달러벌이용 관관상품으로 팔기 시작했다는 외신을 보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문재인 대통령이 오르게 될 북측 백두산 등반은 어떤 경험일까. 여기서는 16년 전 경험을 적었던 월간 <신동아> 2002년 9월호 기사를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아직 북한의 본질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7년차 젊은 기자의 다소 낭만적인 기록이라는 점을 양해해 주실 것으로 믿으면서.7월 2일 화요일 오전 11시 반 천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북한측 백두산 장군봉 정상. 1950년 고향인 함흥을 떠나 남하한 뒤 북녘 땅을 다시 밟아보지 못하고 지난해 12월 세상을 떠난 김설봉옹의 넋을 달래기 위해 작은 기도회가 열렸다.열두 살 때 아버지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온 아들 남국(64·범아보험대행 이사)씨가 아버지의 영정을 꺼내들었다. 그 옆에 남국씨의 초등학교 동창생인 최기서(63·전 한보주택 사장)씨가 섰다. 최재화(51·성남제일교회)목사의 기도가 시작됐다.“지난해 당신의 품에 안긴 어린 양이 이제 아들의 지극한 정성으로 백두산 정상에 올라 살아서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었습니다. 더 이상 이들과 같은 안타까운 이산의 한이 없도록 이 땅에 사랑과 평화를 내려주시옵소서….”남국씨는 눈을 감고 조용히 울음을 삼켰다. 기도가 끝나자 기서씨도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그는 “내 친구는 효잡니다. 저는 아버지를 위해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라며 먼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의 아버지도 북녘 땅을 그리다 세상을 버렸다.김남국씨와 최기서씨는 각기 아버지가 생전에 고향을 방문할 수 있도록 애를 썼다. 그러나 정부에 낸 이산가족 상봉 신청은 번번이 기각됐다.두 아버지가 떠난 뒤 두 아들이 북한을 방문할 기회가 우연히 찾아왔다. 북한측 민족화해협의회가 한국이웃사랑회의 대규모 방북단 입국을 허용한 것. 방북 목적은 1997년부터 이웃사랑회가 지원하고 있는 목장 5곳, 육아원 14곳, 병원 한 곳 가운데 목장과 병원을 방문해 지원한 물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두 친구는 이웃사랑회와 함께 북한을 지원하고 있는 한국복지재단 후원회원 자격으로 이웃사랑회와 함께 고향 땅을 밟았다. 기도를 마친 남국씨는 백두산 장군봉 어딘가에 아버지의 유품 하나를 묻었다. 그것을 통해 백두산 천지의 기운을 받아 하늘에서도 늘 건강하시라고.북한을 방문한다는 사실에 대표단은 북한에 입국하기 전부터 몹시 흥분했다. 남국씨와 기서씨와 같은 실향민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남국씨는 6월28일 인천국제공항에서부터 “이웃사랑회 같은 민간단체도 실향민들이 고향을 방문할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안북도 철산이 고향인 김용상(62) 원주제일교회 목사도 “그저 실향민들에게 고향에 다녀오시라고 하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말했다. 물론 이산가족 상봉은 현재로서는 민간단체들이 할 수 없는 일임을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북한에 들어가기 전 실향민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기자에게 털어놓았다. 우세근(48) 의정부신촌교회 목사는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을 기억한다.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나신 할아버지가 장손인 자신을 불러 두 시간 동안이나 고향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향 마을 어귀에는 밤나무가 있고 우리 집 옆에는 언제나 맑은 물이 흘러나오는 샘이 있었단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지 모르지만….”그렇게 장손의 기억에 고향을 심어준 할아버지는 다음날 아침 아무도 모르게 하늘나라로 떠났다. (중략)대표단 방북 일정의 절정은 7월2일 백두산 등정. 북한에서의 마지막 공식 일정이다. 오전 8시50분경 비행기가 삼지연공항을 향해 고도를 낮추자 운해를 뚫고 장백의 거봉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행은 원시림이 빼곡히 들어찬 백두고원의 웅장함에 매료됐다.9시 정각. 비행기가 해발 1400m인 삼지연공항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기다리고 있던 버스 3대가 일행을 나눠 태우고 달리기 시작했다. 키가 1m 남짓한 침엽수가 길 양옆에 들어차 마치 끝없는 잔디밭 위를 달리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9시46분. 해설원과 관리인이라며 인민군복 차림을 한 20대 여성과 30대 남성이 선도차에 올랐다. 여성 해설원은 “참 좋은 날씨에 오셨습니다. 아침에는 비가 왔는데”라며 일행을 반겼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해설원의 백두산 자랑이 이어졌다.“백두산은 정확히 해발 2750m입니다. 북한주민과 해외동포 등을 합해 한해 10만명이 다녀갑니다.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려서 눈 위를 걷다가 신발을 잊어버리면 봄에 신발이 나무 위에 걸려있습니다.”10시7분. 나무가 자랄 수 있는 마지막 고도인 해발 2000m를 넘으면서 비로봉과 장군봉이 지척에 나타났다. 자동차가 장군봉 바로 아래까지 오를 수 있도록 길이 나 있었다.10시35분. 장군봉 바로 아래에서 차에서 내린 일행의 입에서 “와” 하는 함성이 터져나왔다. 천지가 한눈에 들어온 것이다. 일행은 허겁지겁 짝을 찾아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10분이 흘렀을까. 어디선가 구름이 몰려오더니 천지를 삼켜버렸다.막간을 이용한다며 해설원이 백두산과 천지를 소개하기 시작했다.“백두산에 화산이 분출한 것은 100만년 전인데 마지막 분출은 1898년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1116~67년 사이의 분출이 지금의 분화구를 형성했습니다.”1930년대에 일본인들이 탐사를 왔다가 겁만 먹고 돌아갔다는 이야기, 1981년 무게가 500kg이나 되는 곰이 내려와 괴물소동이 빚어진 이야기, 1984년에 산천어가 방류돼 살기 시작한 이야기, 하루에 열두 번이나 변해 시집 못간 노처녀에 비유된다는 날씨 이야기 등이 이어졌다.11시반이 되도록 해설원의 구성진 백두산 자랑이 이어졌지만 천지를 삼킨 구름은 걷히지 않았다. 일행은 그래도 즐거운 듯 입가에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남국씨의 ‘작은 기도회’가 끝나자 자연스럽게 대표단 전체의 기도회가 시작됐다.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을 기원하는 모두의 마음이 모아졌다. 기도가 끝나자 누가 선창했다고 할 것도 없이 모두의 입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노래가 흘러나왔다. 여기에 화답해 북한 안내원과 여성 해설원들이 ‘우리는 하나’를 부르면서 일행은 서로 어깨를 결어 하나가 되었다.흥분을 가라앉힌 일행은 12시반경 장군봉에서 내려와 백두고원 위에 자리를 폈다. 가까이 백두산 고봉들을 바라보며 끝없이 넓게 펼쳐진 풀밭에 앉아서 먹는 김밥 도시락의 맛은 그 어떤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가 없을 듯하다.기자는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이 즐거움이 머지않아 우리 민족 모두의 것이 되기를.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 2018-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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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中 · 러시아 선박 나진-속초 운항은 유엔 제재 위반 아니다”[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러시아가 자국 물품을 나진항을 통해 제3국에 운송하는 경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에 저촉되지 않는 점을 활용해 북한 비핵화 전이라도 러시아와 중국, 한국과 북한이 참여하는 나진항 중심 복합물류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항만물류연구본부장은 11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 남·북·러 세션 발표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중국과 러시아, 한국이 참여하는 나진항 개발사업을 통해 북한을 개방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세션에는 북한 측도 참가했다. 이 본부장은 발표문에서 “지난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 경제제재 결의안을 심의하는 과정에 러시아가 ‘우리나라 상품을 나진항을 경유해 제3국에 실어 나르는 경우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관철시켰다”고 설명했다. 결의안 부칙에 포함된 이런 내용은 중국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러시아나 중국 배가 나진항을 통해 자국 물건을 한국으로 실어 나르는 것은 현 유엔 제재를 위반하지 않고도 가능한 사업이라는 것이다. 이 본부장은 “나진항 중심 복합물류 프로젝트는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한국과 북한 등 참여국 모두에 이익이 되므로 지속가능한 사업이 될 것”이라며 “개발에 필요한 재원은 한국 정부가 세계은행에 제공하는 녹색펀드에서 조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문제에 정통한 당국자는 “러시아가 유엔 제재 결의안 부칙을 통해 양해를 받았고 그것이 중국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그러나 다른 제재 조항에 따라 북한의 항구에 정박한 배는 다른 나라에 정박할 수 없기 때문에 사업에 참여할 선사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 선박이 러시아 물건을 싣고 나진항에서 속초항까지를 오갈 수는 있지만 일본이나 중국 등 다른 나라로 가는 경우 제재를 받게 된다는 뜻이다. 선박의 운항 자체는 유엔 제재를 피하더라도 나진항 개발사업은 제재 대상이라는 점도 문제다. 또 다른 관계자는 “나진항과 속초항을 오가는 러시아나 중국 선박의 운항은 현재도 가능하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라며 “제재에 걸리는 나진항 개발사업 등은 북한 비핵화의 진전에 따라 추가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kyle@donga.com}

    • 2018-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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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북 인도적 지원의 종언?[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정권 바뀌고 평양엔 우리가 제일 먼저 갈 줄 알았지.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 심지어 기자들까지 줄줄이 방북하는데 우리만 뒤로 밀릴 줄은 몰랐어요. 하하.” 과거 백여 차례 북한에 다녀왔던 베테랑 대북지원 단체 관계자 A는 30일 근황을 묻는 질문에 “손 빨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남한 민간 대북지원 단체들의 평양 방문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유진벨 재단이 올해 5월 방북했지만 해외단체 자격이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홍걸 씨가 지난달 방북했지만 남측 민족화해협의회 대표상임의장 자격이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교류의 첨병 역할을 했던 우리민족서로돕기, 굿네이버스, 겨레의 숲, 연탄나눔 등 단체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중국 등 제3국에서 북측 관계자들을 만나 인도적 지원사업 재개와 방북 문제 등을 논의하고 있지만 아직 가시적인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각계각층의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 왕래와 접촉을 활성화하기로 하였다”고 한 뒤 문화와 스포츠, 언론교류가 물꼬를 튼 상황에 가장 앞서가리라고 예상됐던 인도적 지원의 분야의 ‘뒤쳐짐’ 현상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관계자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원인은 북측에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북측이 10년 전과 같은 형식의 인도적 지원을 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관계자 B는 “전처럼 밀가루나 약품 등을 들고 방북해 사진 찍고 오는 식의 방식은 이제 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라고 전했습니다. 그 대신 북측은 몇 개의 단체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글로벌 공적개발원조(ODA)와 같은 ‘규모가 크고 돈 되는 사업’을 하자고 역제안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측 관계자들은 “공부를 좀 다시 해오라”고 하며 배짱을 부린다고 합니다. 북측의 태도 변화의 핵심 원인은 아버지 김정일과 다른 ‘김정은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말 자칭 ‘핵 무력 완성’을 했고 올해 4월에는 국방경제 병진노선에서 경제총력 노선으로 전환한 상황에 과거와 같은 식량과 생필품 등의 대한 인도적 지원을 받아들이는 것은 체면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한 당국자는 “과거와 같은 남한의 일방적인 지원에서 나아가 남북이 윈-윈 할 수 있는 ‘상호이익사업’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북한이 해외 단체나 국제기구의 지원사업은 계속하고 있는 점에 비춰 남한에 대한 자존심 세우기로 보이기도 합니다. 미국 대통령과 비핵화 협상을 하고 있고 경제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자칭 ‘핵보유국’이 된 상황에 1990년대 초 ‘고난의 행군’ 경제위기를 탈피하기 위해 우선 먹을 것과 입을 것, 상비약을 받는 것에 고마워했던 ‘흑역사’를 잊어달라는 소리로도 들립니다. 관계자 C는 “앞으로 한국 상표가 붙은 것은 물론이고 한국에서 만든 어떤 것도 받지 않겠다”는 말도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북측의 이런 태도에 남측 관계자들은 당황스러운 표정입니다. 비교적 규모가 큰 단체들은 북측이 원하는 형태의 사업을 하고 싶어도 한국과 미국, 유엔 등의 제재에 저촉되기 때문에 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이들은 북측의 요구사항을 만족하면서도 제재에 걸리지 않는 사업 아이템이 무얼까 고민하고 있다고 합니다. 규모가 작은 단체들은 제재가 풀려도 돈과 노하우가 없어 북측이 원하는 방식의 사업을 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관계자 A는 “가장 비정치적인 인도적 지원이 정치적인 논리에 묶여 갈 길을 잃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단체들은 북-미간 비핵화 협상이 교착상태를 지속하면서 국제사회의 제재가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에 북한 내 영유아·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인도적 위기가 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김정은의 시장 허용 정책과 중국 러시아의 물밑 지원으로 굶어죽는 이들은 없다고 하지만 한국은행이 추산한 북한경제 성장률은 지난해 -3.5%로 국제사회 경제제재의 영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의 민간단체들의 대북지원은 1990년대 중반 긴급 식량 및 의료 지원 등에서 시작돼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을 거치면서 대규모 민간 방북과 농업 생산 지원, 제약공장과 병원 건설, 교육시절 지원 등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북 퍼주기’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금강산 박왕자 씨 피살 사건(2008년) 천안함 피격 및 연평도 포격 사건(2010년)에도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2014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에 대한 북한의 반발과 함께 사실상 중단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 2018-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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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청년을 향한 ‘통일 대박론’ 대 ‘평화 대박론’

    “청년 세대에게 ‘민족’ 통일이라는 표어가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 통일주역세대가 될 청년들에게 설득력이 있는 통일의 담론은 무엇이 있을까요?” 23일 화정국가대전략강좌에 참석한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정치학 전공 4학년 박기범 학생이 서면 질의서 두 번째 질문으로 이렇게 물었습니다.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주최한 이날 강좌의 연사는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노무현 정부 당시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장과 통일부 장관을 지낸 그는 통일과 정치(민족)에 대한 물음에 평화와 경제(협력)이라는 키워드로 답했습니다. 그가 자문하고 있는 현 정부의 대북관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우선 전문을 소개합니다.“저도 제 아이들에게 민족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이 들어서 젊은 대학생들을 위해서 못쓰는 글이지만 쉽게 한번 ‘통일을 보는 눈’이라는 책도 써 봤습니다. 저는 민족이 굉장히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남들에게나 다 강요하거나 강조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한테요.그러나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오로지 3면 바다만을 가지고 대한민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들어간 경제발전을 했습니다. 명색이 반도국가고 명색이 기마민족이고 북방민족인데, 북방을 가로막힌 채로 이정도의 성장과 경제적인 발전을 했다면 바로 우리의 본원의 고향인 북방을 향해서 우리가 이 막혀진 철조망을 뚫고 나아가서 경제협력을 하고 문화협력으로 미래 유라시아 대륙으로 나간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이건 경제학자가 아니라도 감이 오는 것 아닙니까. 저는 통일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통일은 어차피 후대가 결정하고 남북간에 전쟁 안하고 협력하며 사는 세상, 이게 일단 목표입니다. 평화와 경제가 목표입니다. 남북간에 평화와 협력은 바로 여러분, 지금 말한 서울대 정치학과 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주역이 되고 주역되기 위해서 취직하러 앞으로 4년 뒤에 나갈 때 여러분의 취직자리가 생기는 먹거리다, 남북협력과 남북관계 뚫는 것이 우리의 먹거리고 우리 경제의 미래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북한하고 협력하고 북한 사람들과 대화해 보고 어떨 땐 가르쳐야 하고 어떨 땐 그들에게 배울 것도 있겠지요. 그러다 보면 아 우리가 하나의 민족이구나. 그때 가서 느끼셔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도 ‘북한의 변화가 청년들에게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공식적으로는 합의에 의한 평화통일을 이야기했지만 암묵적으로는 ‘그래서 (남한이 북한을 흡수하는) 통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이른바 ‘통일 대박론’에는 지금의 북한 정부가 소멸되고 남한이 한반도의 정치적 경제적 결정권을 모두 장악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습니다. 반면 현 정부는 흡수통일론이 북한을 자극하고 긴장을 유발해 통일을 더디게 한다고 주장합니다. 휴전선 이북 지역의 정치와 경제를 지금처럼 북한 김정은 정권이 장악하며 핵을 포기한다는 것을 전제로, 정상국가 북한 정부와 교류하고 협력한다는 구상입니다. 그래서 현 정부는 이 전 장관의 말대로 통일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은 비유하자면 ‘평화 대박론’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이전 정부와 현 정부는 청년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질문을 한 박기범 학생의 생각은 어떨까요. “무력충돌의 가능성을 수반하는 보수진영의 흡수통일론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현 정부의 남북한 평화론 접근법은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의 전제가 되는 북한의 핵 포기 가능성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여섯 차례의 핵실험 가운데 네 번을 김정일 사후, 김정은 치하에 했는데, 본인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핵무력 완성을 과연 쉽게, 또 완전히 포기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 박기범 학생은 두 번째 질문에 앞서 “김정은 체제/정권의 기반이자 김일성 3대 부자의 목표이던 핵무기를 과연 북한이 포기할 수 있는가”라는 첫 번째 질문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 전 장관은 “김정은은 경제를 위해서 비핵화 하려는 것이지만 자기가 원하는 정도의 수준으로 협상이 진행되지 않으면 핵을 가지려고 할 것이다. 둘을 계속 저울질을 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이날 청중석에서도 “북한은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인데 우리 정부가 너무 빨리 많은 것을 양보하려고 한다”는 의견성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 2018-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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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 언론교류 이전에 고민해야 할 세 가지[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북한 안내원들이 기자에게 평양 도심 속 판자촌을 보여준 것은 마지막 일곱 번째 방문 때인 2007년 11월이었다. 세상에나…. 1960년대 동독이 지어주었다는 도심 지역 고층 건물들도 늘 낡고 위험해 보였지만 아파트와 건물 숲 속에 아직 재개발되지 않은, 걸인들이나 살 법한 판자촌 단지가 숨어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난생 처음 보는 처참한 광경은 사진에서나 본 듯한 6·25전쟁 직후를 연상시켰다. 안내원이 말했다. “신 선생. 그냥 보기만 하고 찍지는 마시라우요. 물론 쓰지 않을 것으로 압니다. 당이 부지런히 노력했지만 아직 이런 곳들이 조금 남아있는 거요.” 2002년부터 한 해 한두 번 평양을 방문해 취재하는 동안 이런 당부는 일상이었다. 한 번 두 번, 방북 횟수가 늘어날수록 조금 조금 더 북한의 속살을 볼 수 있었지만 본 것을 모두 쓸 수는 없었다. 아마 그랬다면 2002년 6월 첫 방북이 마지막 방북이 되었을 것이다.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남루한 행색의 북한 주민들, 위대한 지도자 동지의 얼굴을 가슴에 차고 인민들에게 군림하는 권력자들, 그들이 힘겹게 공존하는 ‘공산당과 노동자의 천국’을 서구 언론의 저널리즘 원칙에 따라 본 대로, 들은 대로 글로 옮겼다면, 주제는 ‘이 체제는 이러이러 하니 하루 빨리 저러저러 해야 한다’로 귀결되었을 것이다. 쉬운 그것이 답은 아니었다. 아무나 올 수 없는 곳으로 초대해 준 남북의 초청자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지만 갈수록 사명감이 커졌다. ‘지금 기사 한두 건 화끈하게 쓰는 게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 가능한 많이 와서 봐야지. 그래서 먼 훗날에라도 내가 본 것을 세상에 알려야지. 그렇게라도 이 닫힌 공간에 바깥세상을 알리고 작은 권력에 집착하는 권력자들을 변화시켜야지…. 그래서 ’7·1경제관리 개선조치와 종합시장 도입 이후의 북한 경제 개혁현장 르포‘라는 실용적인 주제에 집중했다. 그들이 나의 방북을 허락한 이유이기도 했다. 언제나 그들이 보여주기로 한 것만 볼 수 있었지만, 주기적인 방문을 통해 북한 경제의 미세한 변화를 잡아내려고 노력했다. ’묘향산 입구 텃밭에 포전(개인 텃밭) 푯말이 작년엔 하나에서 올해는 열개로 늘었네. 평양 개선문 앞 매대(거리 간이상점)에 작년에는 없던 이동식 냉장고가 들어왔네.‘ 등등 정치적으로 민감하지 않으면서도 전달할 사실들이 많았다. 2012년 1월부터 2년 가까이 AP통신 평양지국장을 지낸 한국계 미국인 진 리 씨(우드로윌슨센터 한국센터장)도 비슷한 고민과 노력을 했던 것 같다. 기자가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하던 2014년 현지에서 만난 그는 취재를 위해 북한 당국자들과 협상하는 일이 매우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무엇을 취재해 어떤 보도를 하는지 자유세계에서 허용되는 기본적인 언론 자유가 제한되고 보고 들은 것을 모두 쓸 수 없는 상황은 오해와 비난을 부르기도 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미국 언론계에서는 ’AP통신이 북한 당국과의 관계를 의식해 정치범 수용소로 상징되는 열악한 인권 상황 등 북한 체제의 부정적인 측면을 눈감거나 호도하고 있다‘는 제기되기도 했다. 장황하게 과거사를 늘어놓는 이유는 최근 한국 매체들이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남북한 언론교류가 근본적으로 ’북한 당국과 관계를 맺는 일‘이라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교류의 상대방인 ’북한과 평양의 당국‘은 자유세계의 국가와 민주적인 정부와는 다르다. 결론적으로 북한과의 언론교류는 보통 국가간 언론교류의 일반성보다는 특수성이 더 많다는 것이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북한은 현재 김정은이라는 최고지도자가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독재국가다. 형식적으로는 조선노동당이 지배하는 현실사회주의 국가이고 모든 매체는 관영이다. 노동당 선전선동부의 지휘를 받는 모든 매체는 당과 최고지도자와 당의 권위를 위해 일한다. 그들의 저널리즘은 오로지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는 우리가 아는 열린 세상의 저널리즘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이야기다. 물론 김정은에게 진정성이 있다면, 향후 전개될 비핵화 과정에서 북한의 민주화와 개혁 개방이 진전되기를 기대한다. 북한이 인권 문제를 해결하고 ’정상국가‘로 변모해가는 과정에 북한의 언론관도 정상화될 되기를 바란다. 최고지도자와 당의 권위를 해치더라도 진실이라면 보도하는 민영 매체가 나오고 남한을 포함한 외부 매체들의 자유로운 접근과 취재도 허용되는 상황 말이다. 하지만 우선 당장 북한 당국은 남한 언론들의 제안과 요구를 모두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것 같다. 북한학계에서는 이를 ’북한 체제의 수용능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언론교류는 정보의 소통을 의미한다. 독재체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다. 남한 언론과의 교류는 자칫 독재 체제의 이완을 가져올 수 있다. 남한 기자를 받아들이는 것도, 북한 기자를 남한에 보내는 것도 그렇다. 그것이 체제에 줄 다양한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조직을 투자해 통제와 감시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남한 기자를 받아들인다면 도대체 어디까지 접근과 취재, 보도를 허용할 것인지, 북한 기자를 남한에 보낸다면 그들을 어떻게 선발하고 감시할 것인지에 대한 내부적인 기준 마련도 필요할 것이다. 우리 언론계도 준비를 하고 능력을 키워야 한다. 북한 당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최대한 사실과 진실에 접근하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어떤 주제에 집중하고 어떤 주제는 피해야 하는지를 가릴 줄 알고 북한 당국자들을 설득해 사실과 진실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전문기자 육성과 취재 시스템 구축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평양 발 보도들이 서구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잠정적인 기간 동안 생길 문제에 대한 공론화와 사회적인 합의도 필요하다. 대한민국 언론의 평양 발 기사와,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등 탈북자들의 증언이 다르다면, 매체의 신뢰도 자체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평양 현지 발 기사의 특수성을 이해해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런 저런 상황들을 감안하면 남북언론교류는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충분한 고민과 준비의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취재 하듯 경쟁적으로 북측의 문을 두드리기보다 개인과 조직, 국가적 차원에서 충분한 성찰을 통해 장기 플랜을 마련하는 지혜와 안목이 필요할 때다.신석호 동아일보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이 발행하는 월간 ’신문과 방송‘ 7월호에 실렸습니다>}

    • 2018-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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