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이헌재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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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중요하지 않은, 하지만 누군가에겐 재미있을지도 모를 스포츠의 뒷담화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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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8~202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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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근 감독 “올해 끝으로 물러나겠다”

    창단 후 팀에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긴 감독, 그것도 최근 4년간 3번의 우승을 차지한 명장. 그의 선택은 자진 사퇴였다. SK 김성근 감독(69·사진)이 올해를 끝으로 SK 사령탑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김 감독은 17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경기를 앞두고 “올해 SK와의 계약이 끝나면 감독을 그만두겠다. 재계약과 관련해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지금이 사퇴 발표의 적기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시즌 중 사퇴 선언이다. 그것도 선두 싸움 중인 팀의 수장이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놓겠다는 뜻을 밝힌 것은 프로야구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SK에 대체 무슨 일이2007년 SK 사령탑으로 부임한 김 감독은 팀을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며 2009년부터 올해까지 3년 재계약을 했다. 지난해에도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계약 마지막 해인 올해도 시즌 중반까지 선두를 달리는 등 성적으로만 보면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김 감독과 구단의 갈등은 오래전부터 조짐을 보였다. 구단은 김 감독의 야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감추지 않았다. “재미없는 야구를 한다” “깨끗하지 못하다” “그룹 이미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들이 끊이지 않았다. 김 감독이 폭발한 직접적인 계기는 올 초 구단 최고위층이 재계약 의사를 전한 이후 계속 시기를 미뤄온 탓이 크다. 김 감독은 올 초 구단으로부터 일찌감치 재계약 의사를 통보받았다. 하지만 이후 구단은 “재계약 관련 결정은 시즌 후로 미루자”며 말을 바꿨다. 그 과정에서 김 감독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내가 더는 필요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구단은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김 감독은 “한 야구 후배의 이름을 꺼내면서 ‘그 사람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감독 선임은 구단의 권한이다. 그러나 내게 그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실례 아닌가. 5년간 고생했던 시간이 떠올랐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 야구 후배는 이만수 SK 2군 감독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SK 구단은 김 감독의 전격 사퇴 발표에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다. 당혹스럽다”는 입장만 밝혔다.○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김 감독의 시즌 후 사퇴 선언으로 지난해 4강 사령탑이 모두 물러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지난 시즌 후 삼성 선동열 감독과 롯데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경질됐고, 두산 김경문 감독은 올 시즌 도중 성적 부진의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자진 사퇴했다. 김성근 감독은 “현재 다른 계획은 없다. 내가 나가야 구단이 움직이기 좋을 것 아닌가. 시즌이 끝날 때까지는 할 생각이다. 마지막까지 잘하는 것이 팬에 대한 예의인 것 같다”고 말했다. 주변에서 사퇴 의사를 번복할 것을 요청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물음에는 “난 생각보다 고집이 세다. 안 한다면 안 한다”고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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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근 SK 감독 “올시즌 끝으로 그만두겠다”

    창단 후 팀에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긴 감독, 그것도 최근 4년 간 3번의 우승을 차지한 명장. 그의 선택은 자진 사퇴였다. SK 김성근 감독(70)이 올해를 끝으로 SK 사령탑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김 감독은 17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경기를 앞두고 "올해 SK와의 계약이 끝나면 감독을 그만두겠다. 재계약과 관련해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지금이 사퇴 발표의 적기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시즌 중 사퇴 선언이다. 그것도 선두 싸움 중인 팀의 수장이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놓겠다는 뜻을 밝힌 것은 프로야구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 SK에 대체 무슨 일이 2007년 SK 사령탑으로 부임한 김 감독은 팀을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며 2009년부터 올해까지 3년 재계약을 했다. 지난해에도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계약 마지막 해인 올해도 시즌 중반까지 선두를 달리는 등 성적으로만 보면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김 감독과 구단의 갈등은 오래 전부터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구단은 김 감독의 야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감추지 않았다. "재미없는 야구를 한다" "깨끗하지 못하다" "그룹 이미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들이 끊이질 않았다. 김 감독이 폭발한 직접적인 계기는 올 초 구단 최고위층이 재계약 의사를 전한 이후 계속 시기를 미뤄온 탓이 크다. 김 감독은 올 초 구단으로부터 일찌감치 재계약 의사를 통보받았다. 하지만 이후 구단은 "재계약 관련 결정은 시즌 후로 미루자"며 말을 바꿨다. 그 과정에서 김 감독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내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구단은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김 감독은 "한 야구 후배의 이름을 꺼내면서 '그 사람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감독 선임은 구단의 권한이다. 그러나 내게 그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실례 아닌가. 5년간 고생했던 시간이 떠올랐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 야구 후배는 이만수 SK 2군 감독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SK 구단은 김 감독의 전격 사퇴 발표에 대해 "너무 갑작스런 일이다. 당혹스럽다"는 입장만을 밝혔다. ●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김 감독의 시즌 후 사퇴 선언으로 지난해 4강 사령탑이 모두 물러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지난 시즌 후 삼성 선동열 감독과 롯데 로이스터 감독은 경질됐고, 두산 김경문 감독은 올 시즌 중 성적 부진의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자진 사퇴했다. 김 감독은 "현재 다른 계획은 없다. 내가 나가야 구단이 움직이기 좋을 것 아닌가. 시즌이 끝날 때까지는 할 생각이다. 마지막까지 잘하는 것이 팬에 대한 예의인 것 같다"고 말했다. 주변에서 사퇴 의사를 번복할 것을 요청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물음에는 "난 생각보다 고집이 세다. 안 한다면 안 한다"고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분명해 했다.이헌재기자 uni@donga.com}

    • 2011-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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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태환은 대구로, 김연아는 평창으로

    ‘마린보이’ 박태환(22·단국대)이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성공을 위해 팔을 걷어붙인다. ‘피겨 여왕’ 김연아(21·고려대)는 2013년 평창 겨울스페셜올림픽의 글로벌 명예 홍보대사를 맡는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는 열흘 앞으로 다가온 대회를 앞두고 막바지 붐 조성을 위해 수영 스타 박태환을 홍보대사로 위촉했다고 16일 밝혔다. 위촉식은 1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박태환은 지난달 중국 상하이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따 세계선수권 2연패를 달성한 수영 영웅이다. 박태환은 홍보대사 자격으로 30일 열리는 남자 육상 400m 결선을 참관할 예정이다. 조직위는 연세대 의대 외래교수인 황수관 박사도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김연아는 국제스페셜올림픽위원회(SOI)와 2013년 평창 겨울스페셜올림픽 조직위원회로부터 2013년 평창 겨울스페셜올림픽 글로벌 명예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김연아는 18일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인 서울 노원구 하계동 동천학교에서 열리는 위촉식에 참석해 글로벌 홍보대사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스페셜올림픽 글로벌 홍보대사로는 미국 수영 스타 마이클 펠프스(26)와 미국프로농구에서 은퇴한 야오밍(31), 영화배우 장쯔이(32) 등이 활약하고 있다. 스페셜올림픽은 지적발달 장애인들이 참가하는 국제 스포츠 이벤트로 평창 겨울스페셜올림픽은 2013년 1월 26일부터 2월 6일까지 강원 평창 일대에서 열린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 2011-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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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의 눈/이헌재]4위 싸움 한창인데 벌써 LG 청문회?

    광주 원정을 위해 8일 서울 잠실구장에 모인 프로야구 LG 트윈스 선수단 앞에 10여 명의 팬이 나타났다. 이들은 후반기 들어 슬럼프 조짐을 보이고 있는 선수단을 향해 분발을 촉구했다. 깜짝 시위는 몇몇 선수와의 언쟁으로 번졌고 험한 말이 오가는 감정싸움으로까지 비화됐다. 일명 ‘LG 청문회 사건’의 시작이었다. 14일엔 규모가 더욱 커졌다. 4강 경쟁 상대인 롯데와의 잠실 경기에서 1-4로 패하자 성난 LG팬 수백 명이 잠실구장 중앙 출입구를 막아섰다. ‘LG의 가을야구는 또 내년입니까’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이들은 박종훈 감독과 주장 박용택 등 주전 선수와의 면담을 요구했다. 선수들이 나오지 않자 팬들은 구호를 외치며 질타 수위를 높였다. LG 선수단은 다른 통로를 통해 겨우 야구장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팬들은 LG 구단 관계자가 사과를 한 뒤에야 자리를 떠났다. 열성적이기로 유명한 LG 팬들의 분노는 사실 이해가 된다. LG는 2002년 한국시리즈 진출을 마지막으로 지난해까지 8년간 한 번도 ‘가을 잔치’에 나가지 못했다. 8개 구단 중 가장 오랫동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올해는 시즌 초반 1위까지 올랐고 중반까지만 해도 상위권을 지키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주전 선수들의 잇단 부상 속에 최근 5위로 추락하자 팬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팬들은 무기력한 경기를 펼치는 선수들의 근성을 문제 삼고 있다. 한 LG 팬은 “승패를 떠나 이기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고 있다. 오죽했으면 팬들이 시즌 중에 나섰겠느냐”라고 했다. 열성 팬은 LG를 한국 프로야구 최고 인기 구단으로 만든 원동력이다. 그렇지만 도가 지나친 관심은 부작용으로 작용할 수 있다. 요즘 가장 힘든 사람들은 LG 감독과 선수들이다. 일부러 지려고 하는 선수는 없다. 성적에 대한 부담만으로도 이들은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아직 시즌은 40경기 가까이 남아 있다. 4위 롯데와는 2.5경기 차여서 역전 가능성도 충분하다. 청문회 같은 팬들의 단체행동은 선수들의 플레이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LG 관계자는 “안 그래도 힘든 선수들에게 이런 일까지 벌어져 안타깝다”며 “문책은 시즌 후에 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 트레이드로 LG를 떠난 뒤 맹활약하는 KIA 김상현이나 넥센 박병호는 “LG에선 큰 부담을 느꼈는데 현재 팀에선 마음 편히 경기장에 나간다”고 입을 모은다. 살얼음판 4강 싸움을 하고 있는 LG 선수단에 따끔한 질책보다 따뜻한 응원이 필요한 게 아닐까.이헌재 스포츠레저부 uni@donga.com}

    • 2011-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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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대호 3루타 쳤다… 그게 결승타 됐다

    LG와 롯데의 경기가 열린 14일 오후 1시부터 2시 사이 서울에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폭우가 쏟아졌다. 비는 경기 개시 시간인 오후 5시가 가깝도록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했다. 그렇지만 치열한 4강 다툼을 벌이고 있는 두 팀의 대결을 보려는 팬들의 발걸음을 막을 순 없었다. 오후 4시 30분에 잠실구장엔 2만7000석 전 좌석이 매진됐다.궂은 날씨에도 야구장을 찾은 보람이 있었다. 몸무게가 130kg을 넘는 거구 이대호(롯데)가 여유 있게 3루타를 치는 진기한 광경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호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발이 느린 선수로 꼽힌다. 홈런은 자주 쳐도 3루타는 언감생심이다. 올 시즌 22개를 포함해 이대호는 전날까지 통산 220개의 홈런을 쳤다. 하지만 3루타는 4개밖에 없었다. 2005년에 2번, 2007년과 2009년에 각각 1번 있었다.이날은 운이 따랐다. 이대호는 1회초 2사 2루에서 우익선상 타구를 날렸다. 그런데 LG 우익수 이진영이 이를 다이빙캐치로 잡으려다가 뒤로 빠뜨리고 말았다. 타구가 펜스까지 굴러가는 사이 이대호는 걸어서 3루에 안착했다.롯데가 4-1로 승리하면서 이대호의 3루타는 결승타가 됐다. 이대호는 3-1로 쫓기던 9회 2사 2루에서도 좌중간에 떨어지는 적시타를 날리는 등 5타수 2안타 2타점으로 승리를 이끌었다. 롯데는 5위 LG에 2.5경기 차로 앞섰다.미리 보는 한국시리즈로 관심을 모은 대구 경기에선 선두 삼성이 2위 KIA에 6-2로 역전승했다. 두 팀의 승차는 3경기로 벌어졌다.삼성이 1-2로 뒤진 4회초 2사 1, 2루에서 류중일 감독은 선발 정인욱을 빼고 승리 계투조인 안지만을 등판시켰다. 역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동시에 이 경기를 꼭 잡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안지만이 7회 1사까지 KIA 타선을 무실점으로 꽁꽁 막아내는 동안 삼성 타자들도 힘을 냈다. 4회 정형식의 적시타로 동점을 만들었고, 5회에는 조동찬의 솔로 홈런으로 3-2로 역전했다. 4-2로 앞선 7회에는 채태인이 쐐기 2점 홈런을 쏘아 올렸다.SK는 문학에서 18안타를 퍼부으며 넥센을 11-0으로 대파했다. 9일 롯데전에서 18연패의 사슬을 끊었던 넥센 투수 심수창은 4회 권용관에게 만루 홈런을 허용하는 등 3과 3분의 2이닝 7실점하며 패전 투수가 됐다. 한화는 1-2로 뒤진 6회 대거 7득점하며 두산에 8-2로 역전승했다.이날 4개 구장에는 6만608명의 관중이 입장해 시즌 누계 502만3897명이 돼 역대 최소인 382경기 만에 500만 관중을 돌파했다. 종전 기록은 지난해의 446경기였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1-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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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년 만에 1군 마스크 쓴 SK포수 허웅 “이등병 때 방출됐어요… 호프집도 해봤어요”

    포수의 전력질주를 본 적이 있는가. 요즘 SK 경기를 유심히 지켜보면 가슴보호대와 무릎보호대에 마스크까지 쓴 포수가 공수 교대 때마다 있는 힘을 다해 뛰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야생마’로 불렸던 투수 이상훈(전 LG)이 한때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마운드에 오른 적이 있다. 야수들 역시 힘차게 뛰어 자기 수비 위치로 간다. 그런데 포수의 전력질주라니. 이유는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1군 포수는 “한 번은 밟아봐야 여한 없이 야구를 그만둘 수 있을 것 같던” 자리였다. 10년 만에 꿈을 이룬 주인공은 SK의 ‘1군 포수’ 허웅(28)이다.○ 10년 기다려 핀 꽃 부산고 시절 그는 추신수(클리블랜드)와 배터리를 이룬 유망주였다. 2002년 신인 지명에선 현대로부터 2차 2순위(전체 18순위) 지명도 받았다. 그의 꿈은 박경완(SK) 같은 명포수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현대에 입단하니 당시 현대 소속이던 박경완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박경완이 SK로 팀을 옮기자 김동수(넥센 코치)라는 또 다른 산이 앞을 가로막았다. 2군에서만 몇 년을 보내다 상무에 지원을 했으나 이번엔 정상호와 박노민에게 밀려 탈락했다. 어쩔 수 없이 2006년 현역으로 군에 입대했고 서러운 이등병 시절 팀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다. 그래도 그는 운동을 떠나지 못했다. 방망이를 구해 틈날 때마다 거울을 보며 스윙을 했고 동료들과 캐치볼도 했다. “1군 무대에서 한 번이라도 공을 받고 싶다”는 꿈을 버릴 수 없었다. 2008년 제대 후에는 고향인 부산 인근 경남 김해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본 간사이 독립리그에도 진출했다. 희박한 가능성을 믿고 준비해 온 그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SK 금광옥 원정기록원의 추천으로 테스트를 받아 SK에 신고 선수로 입단한 것이다. 기약 없는 2군 생활이 이어졌지만 그는 참고 기다렸다. 박경완과 정상호 등 주전 포수들이 잇달아 부상을 당하자 김성근 감독은 지난달 29일 그를 마침내 1군에 불러올렸다. 4일 LG전에서 처음 선발 출장한 뒤 10일 두산전까지 줄곧 포수 자리를 지키고 있다. ○ 긍정의 힘을 믿었다 현재까지 평가는 긍정적이다. 타격은 그리 강하지 않지만(10일 현재 타율 0.211) 투수 리드와 경기 운영은 안정적이라는 평이다. 투수난에 한숨을 쉬던 김 감독은 “투수를 편하게 해주는 포수”라고 칭찬했다. SK 관계자는 “투수의 제구가 흔들리자 몸을 쭉 펴서 몸이 크게 보이도록 하더라. 1군에 처음 올라온 선수답지 않았다. 투수를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도 했다. 허웅은 “10년을 기다리면서 힘들 때가 참 많았는데 그럴 때일수록 일부러 더 밝게 말하고 행동하려 했다. 그러자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성격이 그렇게 되더라.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을 요즘 실감하고 있다. 긍정적인 생각이 없었다면 오늘 이 자리에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지금의 이 초심을 잃지 않을 것이다. 항상 열심히 뛰고, 파이팅 외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선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1군에서 뛰는 매 순간이 행복하다”는 허웅이 내뿜는 행복 바이러스가 SK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을까.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1-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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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야구]한 회에 12점이나 내다니…

    KIA와 LG의 경기가 열린 10일 광주구장. 전광판 내 7회초 LG의 스코어 칸에 숫자 대신 영어 대문자 ‘C’가 새겨지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전광판 스코어 칸은 한 자릿수만 기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두 자릿수 이상의 득점이 나면 숫자 대신 영어 대문자를 쓴다. 10점이면 A, 11점이면 B 하는 순서로 나간다. 이날 C가 새겨진 것은 LG가 12득점을 했다는 의미다. 9일 KIA와의 경기에서 영봉패를 당했던 LG 타선이 전날 수모를 분풀이라도 하듯 무섭게 폭발했다. 1-3으로 뒤진 7회 김태완의 좌전 안타로 포문을 연 LG는 무려 17명이 타석에 들어서면서 12점을 올렸다. 손인호의 2점 홈런을 포함해 장단 9개의 안타를 터뜨렸고, 4개의 볼넷을 골랐다. 박용택은 2차례 타석에 들어서 모두 안타를 쳐 타점을 올렸다. KIA는 손영민을 시작으로 유동훈 차정민에 이어 홍건희까지 4명의 투수를 투입했지만 한껏 달아오른 LG 방망이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한 이닝 12득점은 올 시즌 한 이닝 최다 득점이자 역대 통산 두 번째 기록이다. 종전 전광판에 D자를 새긴 한 이닝 13득점 경기는 1992년 4월 23일 LG가 OB를 상대로 기록한 것을 포함해 모두 4차례 있었다. 롯데와 치열한 4강 싸움을 벌이고 있는 5위 LG는 13-4로 승리하며 이날 넥센을 4-3으로 꺾은 4위 롯데와 1.5경기 차를 유지했다. SK는 연장 10회 접전 끝에 두산을 11-5로 꺾었고, 선두 삼성은 한화를 4-2로 이겼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1-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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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핀 포인트]LG-두산 ‘잠실 가을축제’ 들러리 되나…

    “들러리로 축제를 지켜보는 심정은 안 당해 본 사람은 몰라요.” 프로야구 LG 직원들은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해마다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렸다. LG가 8년간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하는 동안 서울 잠실구장을 함께 홈으로 쓰는 두산은 거의 매년 ‘가을 잔치’인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한 직원은 “두산의 포스트시즌 경기가 열리는 날엔 일부러 일찍 퇴근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한데 올가을에는 잠실구장이 아예 남의 잔치를 위한 무대가 될지도 모르겠다.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두산과 LG의 동반 4강 탈락이 점쳐지기 때문이다. 올 시즌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두산은 좀처럼 예전의 위력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후반기 시작과 함께 롯데에 3연패를 당한 것을 시작으로 후반기 2승 7패로 부진하다가 8일 현재 47경기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4위 롯데에 6.5경기 차로 뒤져 사실상 뒤집기가 힘들다. 5위 LG의 상황도 썩 좋지 않다. 롯데와 1.5경기 차이지만 전반기 막판부터 계속 하향세에 허덕이고 있다. 분위기 쇄신을 위해 김기태 2군 감독을 수석 코치로 데려왔고 트레이드 마감 시한인 지난달 31일 넥센에서 송신영과 김성현을 영입해 마운드를 강화했지만 아직 약효는 별로 없다. 송신영은 2일 SK전에서는 1점차 승리를 지켜냈지만 이튿날 1점차 승부에서는 이호준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았다. 고질이던 마무리 불안이 해소되지 않은 데다 타선도 예전과 같은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LG는 이번 주 KIA, 롯데와 운명을 건 6연전을 벌인다. 선두 다툼에 한창인 2위 KIA와의 싸움도 부담스럽지만 롯데와의 맞대결은 더욱 중요하다. 만약 두산과 LG가 동시에 4강에 오르지 못한다면 2006년 이후 5년 만의 일이 된다. 올해 대회요강에 따르면 2만5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구장을 가진 SK와 롯데가 맞붙는 경우를 제외하면 한국시리즈 5∼7차전은 잠실구장에서 치르도록 되어 있다. 두 구단 관계자들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1-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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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팬과 함께 춤을]기록의 사나이 양준혁과 유쾌한 수다

    《경기장 안전그물 너머나 TV 화면 등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스포츠 스타들이 바로 팬 곁으로 다가갑니다. 평소 직접 대하기 힘들었던 팬들과의 만남에 스타들의 가슴도 설렌답니다. 본보는 독자들과 쌍방향 소통하는 시리즈 ‘팬과 함께 춤을’을 새롭게 시작합니다. 스타와 팬들의 이색 데이트, 궁금증 풀이 등 맛깔스러운 메뉴를 준비했습니다. 팬들을 위한 문도 활짝 열어놓을 생각입니다. 첫 회 주인공은 ‘양신(梁神)’으로 이름을 날린 야구스타 양준혁입니다. 은퇴 후에도 현역 때 못지않게 더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양준혁과 한번 만나보시죠.》야구에서 잘나갔던 이 남자. 은퇴하더니 더 잘나간다. 몇 달 전 SBS-ESPN 야구해설위원 명함을 받았는데 이번에 만났을 땐 야구재단 이사장 명함을 건넨다. KBS 인기 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의 일곱 번째 멤버로 고정 출연하고 있고, 명강사로 전국의 대학과 기업을 누빈다. 얼마 전엔 SK텔레콤의 트윗 자키(TJ)로 변신해 팬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뛰어라! 지금이 마지막인 것처럼’이라는 책을 냈고, CF도 여러 편 찍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영남대 스포츠과학 대학원도 다닌다. 야구인 ‘양신(梁神)’에서 대학원생 ‘준혁 학생’까지. 하루가 다르게 변신을 거듭하는 그는 기록의 사나이 양준혁(42)이다. 그는 “야구 할 때 수비, 주루는 못하고 방망이만 잘 쳤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멀티플레이어가 됐네요”라고 농담을 던진다. 전화해도 한 번에 받은 적이 없을 정도로 바쁜 척(?)하던 그가 팬들이 만나자는 요청에는 순순히 응했다. 하긴 지금 하는 모든 일들이 “팬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일”이라는 그다. 팬들과 함께 그동안 궁금했던 인간 양준혁을 파헤쳐 봤다. 팍팍∼. ○ 양신과 사랑돈 많지, 몸 좋지, 미남은 아니지만 호남형 얼굴이지. 장가를 ‘못간’ 건 아닐 터였다. “TV에서 보면 참 귀여워요. 실제로 보니 피부도 생각보다 좋네요”라는 하나 님의 말에 양신은 “대체 그동안 절 어떻게 생각하셨기에…”라며 허허 웃는다. 환희 님이 거든다. “이상형이 뭔가요.” 이쯤 되면 다음 말은 보나마나다. 기자들이 물었으면 뾰로통하게 반응했을 결혼 얘기다.“좀 착하고, 대화 잘되고, 친구 같기도 하고”라고 말을 꺼내더니 “근데 유명해진 후에는 소개해주는 사람이 없네요”라며 푸념이다. 그는 결코 독신주의자가 아니다. 인연만 된다면 곧장 결혼을 향해 전력 질주하겠다는 각오다. 특히 부모에게는 죄송한 마음뿐이다. 양신은 “작년 은퇴식 때 시구자로 아버지를 모셨어요. 아버지가 ‘다른 선수들은 이런 행사에 아내와 아이들을 초청하는데 준혁이는 다 늙은 애비를 오라고 하네’라고 푸념하셨어요. 기왕 늦은 거 서두르진 않겠지만 저도 이제 아내가 생겼으면 좋겠네요”라고 했다. ○ 양신과 돈KB투자증권 압구정PB센터에서 근무하는 환희 님은 강남 큰손들의 자산관리 전문가. “주식 하세요”라는 물음에 양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예전에 한 번 해 봤는데 시기가 안 좋을 때 해서 손해를 봤습니다. 그때 느꼈죠. 주식은 내가 할 게 아니라고요.”자유계약선수(FA) 계약 등으로 번 목돈은 집과 땅에 투자했다. 또 하나 그는 미래에 대비해 독특한 부업을 한다. 바로 수산업이다. 양신은 “낚시 다니면서 알게 된 분의 소개로 전복 양식 사업을 하고 있어요. 경북 포항 구룡포에 야구장만 한 바다를 방파제로 막아 전복을 키우죠. 양식이지만 바다에 뿌려서 키우기 때문에 자연산에 가까워요. 개당 5000∼1만 원을 받습니다. 나중에 부모님하고 대구에 전복식당을 낼까 해요”라고 했다. 환희 님은 “사업도 하시고 재단도 하시잖아요. 돈을 많이 버는 분들은 세금 문제가 중요해요. 재테크와 세테크가 시급해 보여요. 지금이라도 가까운 금융기관에서 도움을 받으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라고 조언했다. ○ 양신과 예능“남자의 자격(남격)에서 보면 보기와는 달리 요리도 잘하시고 자상해 보여요. 개그맨들 사이에서도 꿀리지 않고 재치 있으세요”라는 하나 님의 칭찬. 양신은 “일단 멤버들이 좋아요. 야구할 땐 28세부터 항상 왕고참이었어요. 그런데 남격에서는 형이 3명, 동생이 3명이에요. 야구할 때 선배 모시는 기분으로 하고 있어요. 형들이 있으니까 너무 좋아요”라고 말했다. “이러다 강호동처럼 되는 것 아니냐”는 찬수 님의 질문에는 “다행히 제가 주제 파악을 잘하는 편이에요. 강호동은 20대 초반에 운동 그만두고 이 바닥에서 열심히 해 최고가 됐잖아요. 전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도전할 뿐이에요”라고 한다. 그는 또 “예전 선배들은 팬들로부터 도망 다녔어요. 이제 시대가 바뀌었죠. 팬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소통해야 해요. 배용준, 이병헌급이면 신비주의로 갈 만하죠. 근데 내가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웃음)”○ 양신과 도전양신 이전 스타 선수들은 은퇴 후 진로가 대개 정해져 있었다. 해외 연수 후 코치, 감독으로 이어지는 지도자 복귀였다. 엄마 배 속에서부터 삼성 팬인 찬수 님은 양신이 야구에서, 또 삼성에서 멀어질까 봐 걱정이다. “이만수(SK 2군 감독)처럼 프랜차이즈 스타가 삼성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 게 아쉽다”는 것이다. 양신은 “코치나 감독은 저 아니라도 할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야구 재단을 설립하고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은 많지 않죠. 몸은 고생스럽지만 솔직히 마음은 좀 더 편해요”라고 말한다. 야구를 그만두자 새로운 길이 열렸다. 은퇴 선언 다음 날 곧바로 방송 출연 섭외가 들어왔다. “은퇴 후 일이 없었으면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근데 방송과 강연 등으로 저를 찾아주는 분이 많았어요. 선수 시절에는 매일 성적이 나오니 전쟁을 치르듯이 긴장하면서 살았어요. 야구를 즐기지 못했죠. 지금은 하루에 4시간밖에 못 자도 내 의지에 따라 움직이고 있어요. 마음이 편하고 보람도 커요”라고 한다.양신은 자신이 신으로 불리는 게 부담스럽다. 단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사회 초년병으로 바라봐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열심히 뛸 겁니다. 제가 잘하는 건 그것밖에 없으니까요.”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담당기자가 본 양준혁▼선수때도 은퇴 후에도 그는 언제나 전력질주양준혁과 처음 인연을 맺은 건 2000년이었다. 당시 LG 담당 기자로서 해태(현 KIA)에서 트레이드돼 온 양준혁을 처음 만났다.첫인상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언젠가 강호동이 방송에서 “양준혁은 매를 부르는 얼굴”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당연히 그렇다. 우락부락한 얼굴에 말투는 거칠었고, 타석에서는 거만해 보였다.잘 치는 타자였지만 ‘영양가가 없다’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팀 배팅보다 자기 타율을 관리하는 이기적인 배팅을 한다는 거였다. 당시 양준혁 타격의 영양가를 알아보기 위해 매 경기가 끝날 때마다 그의 주자 상황별, 스코어별 타격 성적을 몰래 분석했다는 고백을 해야겠다. 6개월가량 분석했는데 영양가가 없다는 기사는 결국 쓰지 못했다. 의외로(?) 영양가가 나쁘지 않아서다. 양준혁을 좋아하는 사람이건, 싫어하는 사람이건 입을 모아 인정하는 게 하나 있다. 바로 땅볼을 치고 1루까지 가장 열심히 뛰는 선수였다는 것이다. 전력질주는 야구의 기본 중 기본이다. 하지만 매 타석 이 기본을 지키는 선수는 많지 않다. 그런데 양준혁은 프로에서 18년간 야구를 하면서 한 번도 이 원칙을 어긴 적이 없다.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졌다. 그가 때린 2318안타 중 내야안타는 156개였다. 이 모두가 전력질주 때문은 아니겠지만 상당수는 열심히 뛰어서 나온 안타다. 그의 통산 타율은 0.316인데 내야안타가 없었다고 가정하면 0.295가 된다. 매 타석 열심히 뛴 덕분에 그는 영원한 3할 타자가 된 것이다. 전력질주가 없었다면 기록의 사나이 양준혁은 없었을 것이다. 그랬던 그가 은퇴 후 제2의 인생에서도 전력질주를 하고 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힘닿는 대로 부딪치고 있다. 방송도, 강연도, 야구 재단도 그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을 묵묵히 가고 있다. 그런 양준혁을 어떻게 응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양준혁은… ▼△생년월일: 1969년 5월 26일 △출신지: 대구 △체격: 188cm, 95kg △가족: 2남 1녀 중 셋째, 미혼 △출신교: 남도초-경운중-대구상고-영남대 △소속팀: 1993년 삼성-1999년 해태(현 KIA)-2000년 LG-2002∼2010년 삼성 △주요 수상: 신인왕(1993년), 타격왕(1993, 1996, 1998, 2001년), 타점 1위(1994년), 최다안타 1위(1996, 1998년), 골든글러브(1996∼1998, 2001, 2003, 2004, 2006, 2007년) △주요 기록: 최다경기(2135경기), 최다홈런(351개), 최다안타(2318개), 최다타점(1389개), 최다득점(1299개), 최다타수(7332타수), 최다루타(3879루타), 최다4사구(1380개)}

    • 2011-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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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kg 거구도…팔 깁스한 선수도… 온몸 던졌다

    한여름 태양이 내리쬐는 대구는 뜨거웠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에 학생들은 치고 달렸다. 표정은 한없이 밝았다. 그들은 야구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31일 경북 경산시 영남대에서 열린 제2회 양준혁 청소년 야구 드림 페스티벌. 지난해 삼성에서 은퇴한 ‘기록의 사나이’ 양준혁(42)이 설립한 양준혁 야구재단이 주최한 이 행사에는 전국 중고교 48개 클럽 팀의 1000여 선수가 참가했다. 프로를 지망하는 선수가 아니라 취미로 야구를 하는 선수들만 모였다.하지만 열기만큼은 프로 선수 못지않았다. 100kg이 넘는 거구의 선수도, 한쪽 팔에 깁스를 한 선수도, 오른 어깨를 다쳐 왼손으로 던지는 선수도 마음껏 운동장을 내달렸다. 경기에 나가지 못하면 더그아웃에서 열심히 응원을 했다.양준혁 SBS-ESPN 해설위원은 “유소년 야구는 야구 원로들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성인들 역시 자기 힘으로 사회인 야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야구에서 소외돼 있다. 미래의 주역인 우리 청소년들이 야구를 즐기면서 공부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 대회를 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큰 보람을 느낀다. 야구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야구는 규칙의 스포츠다. 그 속에서 선수들은 질서를 지키고 사회성도 익힌다. 희생 번트도 있고 홈런도 있다. 선진국에서는 야구 같은 팀 스포츠를 통해 리더가 배출된다. 앞으로 우리 교육도 공부에만 매몰되지 않고 전인적 인간을 양성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지난해 1회 대회만 해도 양준혁은 대회 경비 전액을 자비로 부담했다. 2회째인 올해는 코오롱 등 기업들이 적잖은 후원을 했다. 하늘도 도왔다. 개막 하루 전인 지난달 29일 비가 많이 내려 새벽부터 운동장을 정비해야 했지만 행사 기간 내내 날씨가 좋았다. 양준혁 야구재단은 앞으로 야구 캠프와 방과 후 야구교실 등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갈 예정이다. 또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함께 다문화가정 자녀들로 구성된 야구팀도 창단할 계획이다. 대구=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1-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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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프]저를… 잊지 않으셨죠?… 박세리 8언더 공동2위

    브리티시여자오픈이 열리고 있는 스코틀랜드 앵거스의 커누스티 링크스는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코스 중 하나로 꼽힌다. 변화무쌍한 날씨에 강한 바람, 항아리 벙커와 개울 등 골퍼를 괴롭히는 장애물이 너무 많아 ‘야수(The Beast)’란 별명도 있다. 브리티시오픈(디 오픈)을 7번 개최했지만 여자프로대회에 문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1999년 디 오픈은 많은 세계 골퍼의 가슴에 잊지 못할 상처를 남겼다. 당시 19세의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는 1, 2라운드에서 각각 89타, 83타를 친 뒤 곧바로 집으로 달려가 엄마 품에 안겨 울었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사람은 장 방 드 벨데(프랑스)였다. 최종 라운드 18번홀까지 2위 폴 로리(스코틀랜드)에게 3타 앞선 벨데는 더블보기만 해도 우승할 수 있었다. 그런데 벨데는 트리플 보기를 했고 연장 끝에 우승컵을 로리에게 내줬다. 무려 10타 차의 열세를 극복하고 우승한 로리의 최종 스코어는 6오버파였다. 타이거 우즈(미국)는 당시 10오버파를 치고도 공동 7위를 했다. 파71에 7400야드가 넘었던 그때에 비해 올해는 여자대회이긴 하지만 파72에 6490야드밖에 되지 않는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여기가 과연 커누스티가 맞는가 싶다. 가장 어려운 코스라는 악명이 무색하게도 1라운드에서 47명이 언더파를 쳤다.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았고 약간의 비까지 내려 그린이 부드러웠기 때문이다. 29일 계속된 2라운드에서도 그랬다. 바다에 면한 링크스 코스로는 보기 드물게 연일 좋은 날씨 속에서 대회가 치러지면서 언더파가 속출했다. 한국 낭자군단의 맏언니 박세리의 선전이 눈부시다. 1라운드에서 이븐파를 쳤던 박세리는 2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 8개로 64타를 치며 합계 8언더파 136타(오후 11시 현재)로 공동 2위에 올랐다. 박세리는 대회 전 “후배들이 잘해 주고 있어 한국 선수들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100승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다. 이왕이면 내가 우승해 100승의 이정표를 직접 쓰고 싶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박세리와 같이 이날 8타를 줄인 박인비는 10언더파 134타로 단독 선두에 나섰다. 이미나(KT)는 7언더파로 공동 4위를 달리고 있고, 최나연과 김송희는 5언더파로 공동 10위에 자리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1-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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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신수, 후쿠도메와 ‘한솥밥’… 한일 메이저리거들의 다양한 인연

    미국 프로야구 클리블랜드 추신수(29)가 일본인 선수 후쿠도메 고스케(34)를 동료로 맞게 됐다. 클리블랜드는 29일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시카고 컵스로부터 후쿠도메를 받고 마이너리그 유망주 2명을 내주는 트레이드를 했다고 밝혔다.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추신수와 그래디 사이즈모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조치다.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의 간판타자로 활약했던 후쿠도메는 한국 팬들에게도 낯익다. 후쿠도메는 1999년 주니치에 입단했는데 당시 유격수였던 이종범(KIA)을 외야수로 밀어내고 주전 유격수 자리를 꿰찼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과의 4강전에서는 김병현(라쿠텐)을 상대로 결승 2점 홈런을 치기도 했다.한국과 일본 선수들은 때론 경쟁자로, 때론 친구로 다양한 인연을 맺어 왔다.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한일 양국 선수들의 인연을 살펴보자.○ 추신수와 이치로시애틀 시절 추신수와 스즈키 이치로(38)는 악연에 가까웠다. 2000년 시애틀에 입단한 추신수는 2005년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지만 그곳에는 이치로가 자리 잡고 있었다. 둘 다 발 빠른 왼손 중거리 타자에 포지션도 우익수로 똑같았다. 2006년 구단은 추신수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이치로에게 중견수로 자리를 옮길 것을 권했지만 이치로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 결국 시애틀은 유망주 추신수를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했다. 이는 전화위복이 됐다. 선수층이 얇은 클리블랜드에서 출장 기회를 자주 얻은 추신수는 물 만난 고기처럼 맹활약했고 불과 몇 년 사이에 팀을 대표하는 스타가 됐다. ○ 김선우와 오카 도모카즈메이저리그의 한일 선수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사건이 김선우(34)와 오카 도모카즈(35)가 벌인 주먹다짐이다. 보스턴 마이너리그에서 뛰던 둘은 한때 같은 방을 쓸 정도로 친했으나 1999년 어느 날 난투극을 벌였다. 종종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던 오카가 김선우의 자존심을 건드린 게 발단이었다.보스턴은 2001년 오카를 몬트리올로 트레이드했다. 이듬해에는 김선우도 몬트리올 유니폼을 입으면서 2006년까지 한솥밥을 먹어야 했다. 메이저리거가 됐기 때문인지 몬트리올에서 둘의 관계는 썩 나쁘지 않았다.○ 박찬호와 노모 히데오박찬호(38·오릭스)에게 노모 히데오(43)는 친한 동료이자 반드시 넘고 싶은 벽이었다. 박찬호는 2009년 피츠버그에서 아시아 선수 최다승인 124승을 거뒀는데 이는 123승의 노모를 넘어선 것이었다. 박찬호와 노모는 1990년대 후반 LA 다저스에서 황색 돌풍을 이끈 선발 듀오였다. 1998년 노모가 뉴욕 메츠로 이적하면서 다시 같은 유니폼을 입은 적은 없지만 친분 관계를 꾸준히 유지해왔다. 노모는 2005년 박찬호의 결혼식에도 참석했다. 이 밖에 최희섭(KIA)은 다저스에서 뛰던 2005년 나카무라 노리히로(세이부)와 1루수 주전 경쟁을 벌여 승리한 바 있다. 서재응(KIA)도 한때 메츠에서 마쓰이 가즈오(라쿠텐)와 한솥밥을 먹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1-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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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0년대 日 최고 광속구 투수 이라부 사망

    일본프로야구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로 이름을 날린 전 뉴욕 양키스 투수 이라부 히데키(42·사진)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일본 야구계가 충격에 빠졌다. AP통신과 일본 언론은 이라부가 2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의 랜초팰로스버디스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29일 보도했다.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자살로 보인다고 경찰 관계자들은 전했다. 1987년 신인 드래프트 1순위로 일본 롯데에 입단한 이라부는 특유의 강속구로 이름을 떨쳤다. 1993년 5월 3일 세이부와의 경기에서 당시로선 가장 빠른 시속 158km의 공을 스피드건에 찍어 화제를 모았다.한신 감독이던 2003년 이라부와 함께 센트럴리그 우승을 차지했던 호시노 센이치 라쿠텐 감독은 “이라부가 있었기에 이길 수 있었다. 야구에 관한 한 상당히 논리적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과연’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며 제자를 추모했다. 이라부는 1990년대 노모 히데오(전 LA 다저스)와 함께 일본 선수들의 미국행 러시를 이끈 주역이다. 1997년 양키스의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은 그는 1998년 13승(9패)을 거두며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기여했고 1999년에도 11승을 올렸다. 이후 몬트리올(2000년)에서 2년간 뛰었고 2002년에는 텍사스 불펜투수로 메이저리그에서 마지막 선수생활을 보냈다. 통산 34승 35패 16세이브에 평균자책 5.15. 이라부는 일본에 돌아와 2003∼2004년 한신에서 뛴 뒤 2005년 무릎 부상으로 은퇴했다. 일본 통산 성적은 72승 69패 11세이브에 평균자책 3.55. 이라부는 이후에도 야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2009년 6월 미국 독립리그로 복귀했고, 같은 해 8월 일본 독립리그 시코쿠-규슈 아일랜드 리그의 고치와 입단 계약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나이와 부상을 극복하지 못해 제대로 마운드에 서진 못했다. 이라부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우동 집을 열기도 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최근에는 부인과 갈라선 뒤 혼자서 생활했다고 이웃들은 전했다. 사업 실패와 외로움 등이 그의 사망 이유가 된 것으로 보인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1-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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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 빅리거들의 복잡다단한 인연들

    미국 프로야구 클리블랜드 추신수(29)가 일본인 선수 후쿠도메 고스케(34)를 동료로 맞게 됐다. 클리블랜드는 29일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시카고 컵스로부터 후쿠도메를 받고 마이너리그 유망주 2명을 내주는 트레이드를 했다고 밝혔다.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추신수와 그래디 사이즈모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조치다.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의 간판타자로 활약했던 후쿠도메는 한국 팬들에게도 낯익다. 후쿠도메는 1999년 주니치에 입단했는데 당시 유격수였던 이종범(KIA)을 외야수로 밀어내고 주전 유격수 자리를 꿰찼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과의 4강전에서는 김병현(라쿠텐)을 상대로 결승 2점 홈런을 치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 선수들은 때론 경쟁자로, 때론 친구로 다양한 인연을 맺어 왔다.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한일 양국 선수들의 인연을 살펴보자. ●추신수와 이치로 시애틀 시절 추신수와 스즈키 이치로(38)는 악연에 가까웠다. 2000년 시애틀에 입단한 추신수는 2005년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지만 그곳에는 이치로가 자리 잡고 있었다. 둘 다 발 빠른 왼손 중거리 타자에 포지션도 우익수로 똑같았다. 2006년 구단은 추신수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이치로에게 중견수로 자리를 옮길 것을 권했지만 이치로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 결국 시애틀은 유망주 추신수를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했다. 이는 전화위복이 됐다. 선수층이 얇은 클리블랜드에서 출장 기회를 자주 얻은 추신수는 물 만난 고기처럼 맹활약했고 불과 몇 년 사이에 팀을 대표하는 스타가 됐다. ●김선우와 오카 도모카즈 메이저리그의 한일 선수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사건이 김선우(34)와 오카(35)가 벌인 주먹다짐이다. 보스턴 마이너리그에서 뛰던 둘은 한 때 같은 방을 쓸 정도로 친했으나 1999년 어느 날 난투극을 벌였다. 종종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던 오카가 김선우의 자존심을 건드린 게 발단이었다. 보스턴은 2001년 오카를 몬트리올로 트레이드했다. 이듬해에는 김선우도 몬트리올 유니폼을 입으면서 2006년까지 한솥밥을 먹어야 했다. 메이저리거가 됐기 때문인지 몬트리올에서 둘의 관계는 썩 나쁘지 않았다. ●박찬호와 노모 히데오 박찬호(38·오릭스)에게 노모 히데오(43)는 친한 동료이자 반드시 넘고 싶은 벽이었다. 박찬호는 2009년 피츠버그에서 아시아 선수 최다승인 124승을 거뒀는데 이는 123승의 노모를 넘어선 것이었다. 박찬호와 노모는 1990년대 후반 LA 다저스에서 황색 돌풍을 이끈 선발 듀오였다. 1998년 노모가 뉴욕 메츠로 이적하면서 다시 같은 유니폼을 입은 적은 없지만 친분 관계를 꾸준히 유지해왔다. 노모는 2005년 박찬호의 결혼식에도 참석했다. 이 밖에 최희섭(KIA)은 다저스에서 뛰던 2005년 나카무라 노리히로(세이부)와 1루수 주전 경쟁을 벌여 승리한 바 있다. 서재응(KIA)도 한때 메츠에서 마쓰이 가즈오(라쿠텐)와 한솥밥을 먹었다.이헌재기자 uni@donga.com}

    • 2011-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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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강속구 투수’ 이라부 히데키 美서 사망

    한때 일본프로야구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로 이름을 날렸던 전 뉴욕 양키스 투수 이라부 히데키(42)가 사망했다. AP통신과 일본 언론은 이라부가 2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의 란초 팔로스 베르데스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29일 보도했다.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자살로 보인다고 경찰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웃들은 이라부가 부인과 갈라선 뒤 실의에 빠진 듯 보였다고 말했다. 1987년 신인 드래프트 1순위로 일본 롯데에 입단한 이라부는 특유의 강속구로 이름을 떨쳤다. 1993년 5월 3일 세이부와의 경기에서 당시로선 가장 빠른 시속 158km의 공을 스피드건에 찍어 화제를 모았다. 1996년 시즌 후 롯데는 미국 프로야구 샌디에이고에 교섭권을 넘겼으나 이라부는 "(뉴욕 양키스의)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의 무게는 야구를 경험한 사람만 알 수 있다"며 양키스 행을 고집해 뜻을 이뤘다. 1998년에는 13승(9패)을 거두며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기여했고 1999년에도 11승을 올렸다. 이후 몬트리올(2000년)에서 2년간 뛰었고 2002년에는 텍사스 불펜투수로 메이저리그에서 마지막 선수생활을 보냈다. 통산 34승 35패 16세이브에 평균자책 5.15. 이라부는 다시 일본에 돌아와 2003~2004년 한신에서 뛴 뒤 2005년 무릎 부상으로 은퇴했다. 일본 통산 성적은 72승 69패 11세이브에 평균자책 3.55. 이라부는 은퇴 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우동가게를 경영하기도 했지만 야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2009년 6월 미국 독립리그로 복귀했다. 같은 해 8월에는 2경기 만에 팀을 떠나긴 했지만 일본 독립리그 시코쿠-규슈 아일랜드 리그의 고치와 입단 계약을 하기도 했다. 올해는 동일본 대지진 기금 모금을 위해 9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릴 예정인 한일 교포 사회인야구의 일본 올스타팀 선발투수를 자원했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1-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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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카페]日무대 8년 이승엽, 그가 존경스러운 이유

    지난해 이맘때 김태균(29)은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에서 최고 타자 대접을 받았다. 전반기에만 18홈런에 73타점을 올렸다. 두 부문 모두 퍼시픽리그 선두였다. 퍼시픽리그 최다 득표로 올스타전에도 출전했다. 그런데 당시 일본에서 만난 김태균은 극심한 중압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난 많은 돈 받고 온 용병 아닌가. 한 경기라도 못 치면 견딜 수 없이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가끔 내가 왜 여기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후회하기도 한다”고도 했다.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이루는 날도 많았다.겉보기엔 화려해도 외국에서 야구한다는 게 보기처럼 쉬운 게 아니다. 잘해도 이처럼 스트레스를 받으니 야구가 안 될 때는 말할 나위가 없다. 27일 불거진 김태균과 롯데의 계약 파기는 이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김태균은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일본에서 뛰는 자체가 불안했다. 임신 중인 아내도 걱정됐다. 경기에 집중할 수 없으니 여기저기 부상이 생겼고 야구도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김성근 SK 감독은 “너무 나약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지만 많은 것을 포기할 각오를 했을 만큼 김태균은 절실했을 것이다. 이 장면에서 오버랩되는 인물이 오릭스에서 뛰고 있는 이승엽(35)이다. 일본에서의 마음고생으로 따지면 이승엽만 한 선수가 있을까 싶다. 조성민 정민철 이종범 이병규 이범호 등 일본에서 뛰었던 선수들은 “일본이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그 힘든 생활을 이승엽은 8년째 계속하고 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일본 진출 첫 해인 2004년 롯데에서는 후보였고 이듬해에는 플래툰 시스템(오른손 왼손 투수에 따라 엇갈려 기용하는 것)으로 뛰었다. 요미우리에서는 4번 타자로 최고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지난 2년간은 1, 2군을 오르내리며 온갖 수모를 당했다. 이승엽은 “차마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일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명예회복 하나만을 바라보고 올해 오릭스로 이적했다. 극심한 타격 부진으로 2군에 머물기도 했지만 전반기 막판부터 페이스를 회복해 팀의 주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말이 있다. 그런 점에서 진정한 강자는 이승엽이다. 잠시 잊고 있던 그의 인내가 새삼 존경스럽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1-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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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역도 비밀병기 94kg급 김민재 “큰 무대 울렁증 런던에선 없다”

    내년 런던 올림픽을 1년 앞두고 한국 역도가 새 비밀 병기를 준비하고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 77kg급에서 깜짝 금메달을 따낸 사재혁(26·강원도청)의 뒤를 이을 이 선수는 남자 94kg급의 늦깎이 김민재(28·경북개발공사)다. 김민재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고교 시절 유망주였던 그는 대학 1학년 때인 2002년 역도를 그만뒀다. 69kg급 선수였던 그는 체중 조절이 너무 힘든 데다 부상까지 겹치자 대학을 중퇴하고 현역으로 군대에 갔다.○ 세계 정상권 실력… 대회 나가면 부진 다시 바벨을 잡은 것은 2007년이 되어서였다. 쉬다 보니 부상도 나았고 다시 한번 해보면 잘될 것 같았다. 살도 많이 불어 85kg급으로 올렸다. 5개월 정도 운동을 하다가 살이 더 찌자 이번엔 94kg급으로 체급을 올렸다. 체중 스트레스 없이 실컷 먹고 열심히 운동하자는 생각이었다.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들 수 있는 무게가 늘어날수록 희열도 커졌다. 다시 역도를 시작한 지 4년째인 지난해 그는 역도계를 두 번 놀라게 했다. 연습 때 그는 인상에서 190kg을 들어올려 아카키오스 카키아슈빌리(그리스)가 보유한 세계기록(188kg)을 뛰어넘었다. 용상에서도 221kg을 들었다. 합계 411kg이면 세계 정상권 성적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 나온 ‘큰 무대 울렁증’에 역도계는 또 한번 뒤집어졌다. 인상 세 차례 시기에서 모두 실패하며 실격을 당한 것이다. 용상은 아예 해보지도 못했다. 이 대회에서 알렉산드르 이바노프(러시아)는 403kg으로 우승했다.○ 심리상담치료 후 올 亞선수권 우승 대한역도연맹은 그에게 전문 심리상담사를 붙여주는 한편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시켜 경험을 쌓게 하고 있다. 덕분에 지난해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 동메달을 땄고, 올해 아시아선수권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민재는 “지금은 자신감이 많이 붙었다. 시합 때도 연습처럼 할 수 있게 더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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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야구]불 지르는 소방수들 … 속타는 동료들

    미리 보는 한국시리즈로 불렸던 26일 KIA와 삼성의 광주 경기. KIA가 2-1로 앞선 8회초 2사 후 선발 트레비스가 안타를 허용하자 KIA 벤치는 한기주를 마운드에 올렸다. 시속 150km를 넘는 빠른 공에 두둑한 배짱, 그리고 직전 2경기 연속 3이닝 무실점 세이브를 기록한 한기주였다. KIA로선 당연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와 어긋났다. 조영훈을 시작으로 4타자 연속 안타를 내주며 2-5 역전을 허용했다. 공은 빨랐으나 모두 한가운데로 몰리면서 난타를 당했다. 9회말 5-2로 앞선 상황이 되자 삼성은 오승환을 투입했다. 오승환은 1이닝을 삼진 2개를 곁들여 퍼펙트로 막아냈다. 이처럼 삼성과 나머지 7개 구단의 뒷문에는 확실한 차이가 있다. 올 시즌 듬직한 마무리를 보유한 팀은 오승환이 버티는 삼성이 유일하다. 오승환은 28세이브로 이 부문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2위 SK 정대현(11세이브)과 17세이브 차로 구원왕은 떼어놓은 당상이다. 전문 마무리 투수가 국내 프로야구에 등장하기 시작한 1984년 이후 구원 1, 2위의 차이가 이렇게 크게 나는 건 올해가 처음이다. 1984년(윤석환 25개, 최계훈 9개)과 85년(권영호 26개, 김시진 10개)에만 16세이브 차가 났다. 오승환이 버티는 삼성은 올 시즌 9회에 한 번도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9회에 이처럼 편하게 야구하는 팀은 삼성밖에 없다. 반면 26일 경기처럼 역전승은 밥 먹듯 한다. 반대로 나머지 7개 구단은 뼈아픈 역전패를 수시로 당한다. 선두다툼을 하는 KIA만 해도 유동훈, 손영민이 뒷문을 맡았으나 블론세이브를 하기 일쑤였다. 궁여지책으로 선발 요원인 윤석민과 로페즈가 결정적인 순간 세이브 투수를 자처하기도 했다. LG는 시즌 전 마무리 후보였던 김광수가 계속 부진하자 아예 한화로 트레이드했다. 이후 신인 임찬규에게 뒷문을 맡겼으나 안정감이 떨어진다. 전반기 막판 선발 요원들을 뒤로 돌려썼다. 두산은 마무리 투수였던 임태훈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면서 구멍이 뚫렸다. SK 정대현 역시 지난 몇 년에 비해 힘이 다소 떨어진 느낌이다. 올해 마무리 투수들이 수난을 당하는 것은 타자들의 기량이 최근 몇 년간 급격히 발전했기 때문이다. 요즘 타자들은 시속 160km의 공도 가운데로 몰리면 쳐 낸다. 또 경기 막판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고, 투수들의 구위가 조금만 떨어져도 빈틈을 놓치지 않는다. 오승환은 “몇 년 전만 해도 흔히 말하는 쉬어 가는 타순이 있었다. 그렇지만 요즘은 8, 9번 타자도 펑펑 홈런을 친다. 모든 타자에게 전력투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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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LPGA 100승 깃발 브리티시오픈서 꽂는다

    1988년 구옥희가 스탠더드 레지스터에서 첫 승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이달 유소연(21·한화)의 US오픈 우승까지 한국여자골프군단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통산 99승을 거뒀다. 100승에 도전했던 지난주 에비앙마스터스에서는 김인경(하나금융)이 공동 3위, 홍란(MU스포츠)이 공동 6위에 올랐지만 우승컵은 미야자토 아이(일본)에게 내줬다.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극적인 100승 달성을 위한 준비 무대였다고 볼 수 있다. 28일부터 시작되는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여자오픈이 한국 낭자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브리티시여자오픈은 올해 스코틀랜드의 앵거스 커누스티 링크스에서 열린다. 1500년대에 만들어진 이 골프장은 남자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오픈을 7번 개최했지만 여자 선수들에게 문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자 대회는 전장이 7000야드가 훨씬 넘지만 이번 여자 대회 코스는 6490야드(파72)로 줄었다. 브리티시여자오픈은 2001년 메이저대회로 승격됐는데 그해 박세리가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2005년 장정, 2008년 신지애가 우승하는 등 한국 선수들과 인연이 깊다. 당시에는 모두 바닷가의 링크스 코스에서 경기가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커누스티 링크스는 세계에서 가장 험난한 골프 코스 중 하나로 꼽히는 데다 바람도 무척 강하다. 워낙 남성적인 코스라 경험 많고 파워 있는 선수가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선수가 거둔 승수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25승을 거둔 박세리는 에비앙마스터스가 끝난 뒤 “후배들이 잘해주고 있어 100승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다. 이왕이면 내가 우승해 100승의 이정표를 직접 쓰고 싶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박세리는 올해 드라이버를 평균 260.7야드를 날려 한국(계) 선수 가운데서는 미셸 위(268.4야드)를 제외하곤 가장 파워 넘치는 스윙을 하고 있다. 올 시즌 준우승만 4차례(LPGA투어 2회, 유럽투어 1회, 일본투어 1회) 차지하며 우승에 목마른 신지애도 시즌 첫 승에 도전한다. 신지애는 대회 조직위와 가진 인터뷰에서 “2008년 브리티시여자오픈 우승은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매년 링크스 코스에 대해 좀 더 알아가고 있는데 커누스티는 새로운 도전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최나연(SK텔레콤)과 김인경 등 총 35명의 한국계 선수가 출전해 세계랭킹 1위이자 디펜딩 챔피언인 청야니(대만), 미야자토 아이, 2009년 우승자 캐트리오나 매슈(스코틀랜드) 등과 우승을 다툰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1-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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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태환 세계수영 400m 金]1레인 ‘더블 핸디캡’ 극복

    기적 같은 반전 드라마였다. 1번 레인의 불리한 여건을 괴력과 투지로 뒤집었다. 양쪽 사이드인 1번 레인과 8번 레인은 선수들이 가장 꺼리는 레인이다. 물살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옆 선수에 의해 발생하는 물살은 물론이고 벽에서 부딪쳐 나오는 물살의 영향도 받게 된다. 조금이라도 저항을 줄여야 하는 처지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1번 레인은 페이스를 조절하는 데도 문제가 있다. 보통 선수들은 50m 간격으로 턴을 할 때 좌우를 살피며 경쟁자들의 상황을 파악한다. 하지만 사이드 레인에서는 한 쪽밖에 볼 수 없다. 박태환을 지도했던 노민상 전 수영대표팀 감독은 “내 기억에 1번 레인에서 뛰고 1등으로 들어온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400m 같은 중장거리에선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며 제자의 괴력과 천재성에 다시 한번 놀라움을 표시했다. 박태환의 이번 우승이 높이 평가 받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이번 대회는 전신수영복 규제 후 열린 첫 번째 세계선수권이다. 폴리우레탄 재질의 첨단 전신수영복은 부력을 향상시키고 물의 저항을 줄여 신기록을 양산했다. 전신수영복 도입 이후 2008년 세계신기록은 108개나 나왔다. 2009년 로마 세계선수권에서도 43개가 쏟아졌다. 인간 본연의 신체 기능을 겨루는 스포츠정신과 맞지 않는다는 논란 속에 국제수영연맹(FINA)은 지난해부터 첨단 전신수영복을 규제했다. 이후 약 1년 6개월 동안 올림픽 규격인 롱코스에서 세계신기록은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다. 박태환은 전신수영복의 도움을 받지 않은 몇 안 되는 선수다. 착용감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거부해왔다. 전신수영복 규제는 박태환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다는 평가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

    • 2011-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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