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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이 대규모 집회로 또다시 마비됐다. 지난달 16일 세월호 참사 1주년 추모식 이후 1일 근로자의 날까지 보름 동안 일주일 간격으로 3번째다. 이날 오후 3시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주최한 ‘2015 세계노동절대회’ 참석자 약 2만 명(경찰 추산) 가운데 일부가 행진을 하던 중 신고 된 경로를 벗어나 도로를 점거했다. 당초 을지로와 종로2가를 거쳐 서울광장으로 돌아가기로 돼 있었지만 시위대는 낙원상가와 인사동 방면으로 진입해 청와대 방면으로 진출을 시도했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사거리를 비롯해 인사동 북쪽 출구, 종각 사거리 등지에서 경찰과 대치한 시위대는 경찰버스 타이어에 구멍을 내고 버스를 밧줄로 묶어 끌어내려했다. 오후 7시가 지나면서 서울 안국동 사거리에서 세월호 유가족 등 약 2000명(경찰 추산)이 경찰과 충돌했다.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단체가 만든 ‘4·16연대’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를 주장하며 1박 2일 철야집회를 예고한 상태였다. 시위대는 지속적으로 광화문 방향으로 진출을 시도했고, 경찰은 물대포와 캡사이신 최루액으로 대응했다. 오후 9시경 경찰 1명이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서 흥분한 시위대에 끌려가 폭행을 당할 뻔했지만 다른 참석자들이 막아서기도 했다. 이날 시위로 금요일 오후 도심 교통은 극심한 혼잡을 빚었다. 종로 전 차선을 비롯해 율곡로, 우정국로 등이 통제돼 징검다리 연휴 첫날 창덕궁, 창경궁 및 인사동을 찾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4·16연대가 집회를 마무리하는 2일 오전 11시까지 안국동 사거리 통제가 계속될 전망이다. 경찰은 집회 도중 교통 혼잡을 유발한 2명을 비롯해 오후 8시까지 총 12명을 입건했다. 서울광장 집회 참석자들은 최저임금 인상, 세월호 진상규명 등을 요구하며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박근혜 정권을 타도하자”는 구호도 나왔다. 세월호 유가족들도 집회에 참여해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에 힘을 실어달라”고 했다. 도심 집회 과정에서 모든 차로를 시위대가 점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 1주년인 지난달 16일에도 오후 9시 서울광장 집회가 종료된 후 시위대 전원이 “분향소를 가겠다”며 광화문 방향으로 이동해 왕복 10차로인 세종대로를 모두 점거했다.이건혁 기자 gun@donga.com천호성 기자 thousand@donga.com김기정 기자 skj@donga.com}
1일 근로자의 날을 맞아 서울 도심에서는 대규모 집회가 연이어 열린다. 오후 3시부터 서울광장에서는 민주노총 주최로 ‘2015 세계 노동자 대회’가 열리며 약 2만 명이 집회에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참가자들은 을지로2가와 종로2가를 거쳐 다시 서울광장까지 약 2.4km 구간을 행진할 계획이다.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단체로 이루어진 4·16연대는 1일 오후 3시부터 1박 2일에 걸쳐 ‘범국민 철야행동’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청와대 방면 행진도 예고하고 있어 도로 통제도 예상된다. 서울지방경찰청은 “교통 혼잡이 예상되는 만큼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해 달라”고 당부했다.이건혁 기자 gun@donga.com}

미국을 방문 중인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을 앞둔 29일 낮 12시.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제1176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는 진행됐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89), 길원옥 할머니(87)를 비롯해 약 150명의 시민이 모였다. 이들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는 아베 총리의 태도를 비판하고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촉구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28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발표된 ‘미일 비전 공동성명’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한다고 우려했다. 정현백 참여연대 공동대표는 “과거사 반성 없이 패전국의 위치를 벗어나려는 일본의 모습에 슬픔을 느낀다”며 “반성과 사과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베 총리가 위안부 문제를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라 표현하고, ‘깊은 고통을 느낀다(deeply pained)’는 말로 사죄를 회피하려 하는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시위를 주최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윤미향 대표는 “위안부 문제를 정부 입장이 아닌 개인 감상 따위로 치부한 발언”이라며 “두 할머니를 비롯한 증인들이 살아있을 때 반드시 사과를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시위에는 중국인과 일본인들도 참석했다. 중국계 미국인 스용 씨(54)는 “중국에도 수많은 위안부 피해자가 있는데 일본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이를 알리기 위해 소녀상 옆에 중국인 소녀상도 설치하고 싶다”고 말했다. 시위에 참석한 나카무라 유코 씨(21·여)는 “총리 때문에 부끄럽다. 역사를 조금만 공부하면 알 수 있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아베 총리가 미 의회 연설에서 어떤 식으로든 ‘사죄’ 표현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시민단체는 주한 미국대사관에 “아베 총리의 의회 연설을 허락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피해자를 모욕하고 있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이건혁 기자 gun@donga.com}
다음달 2일 예정된 동국대학교 총장 선임을 둘러싸고 긴장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29일 오후 1시 동국대 만해광장에서 서울대, 중앙대, 인하대, 수원대 등 12개 대학 교수협의회와 시민단체는 기자회견을 열고 동국대 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촉구했다. 서울대학교 우희종 교수는 “대학 구성원들의 의사에 반하고 이사회가 총장 선임을 강행하려 한다”며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총장을 선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사립학교법이 있다며 이의 개정을 정부에 요구했다. 동국대 교수 및 학생들은 조계종단 수뇌부가 보광스님(한태식 교수)을 총장으로 선임하려고 외압을 행사했다고 비판해왔다. 최근에는 보광 스님의 논문 표절이 논란이 됐다. 동국대 소속 교수들이 20일부터 단식 농성을 하고, 21일부터는 대학원 총학생회장이 학교 조명탑에서 고공농성을 하는 등 총장 선임을 둘러싼 갈등은 점차 깊어지고 있다. 이에 학교 측은 25일 법인 이사회를 열고 보광 스님 문제를 논의하려 했으나 무산됐으며, 다음달 2일 재단 산하 은석초등학교에서 다시 이사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동국대 교수협의회 한만수 교수는 “표절 문제는 도덕적 문제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총장이 된다고 해도 인정할 수 없다”며 “이사회 당일 비대위를 열고 구체적 방식을 논의하고 대응하겠다”고 밝혔다.이건혁기자 gun@donga.com}
비가 내렸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는 이어졌다. 미국을 방문중인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을 앞둔 29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모인 김복동(89) 길원옥 할머니(87)와 약 150명은 아베 총리의 태도를 비판하고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촉구했다. 이날 집회 참석자들은 28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발표된 ‘미일 비전 공동성명’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한다고 우려했다. 정현백 참여연대 공동대표는 “과거사 반성 없이 패전국의 위치를 벗어나려는 일본의 모습에 슬픔을 느낀다”며 “반성과 사과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베 총리가 위안부 문제를 ‘인신매매’라 표현하고, ‘슬픔을 느낀다’는 말로 사죄를 회피하는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시위를 주최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윤미향 대표는 “두 할머니를 비롯한 증인들이 살아있을 때 반드시 사과를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시위에는 중국인과 일본인들도 참석했다. 중국계 미국인 스용 씨(54)는 “중국에도 수많은 위안부 피해자가 있는데 일본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이를 알리기 위해 소녀상 옆에 중국인 소녀상도 설치하고 싶다”고 말했다. 수요시위에 참석한 나카무라 유코 씨(21·여)는 “총리 때문에 부끄럽다. 역사를 조금만 공부하면 알 수 있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아베 총리가 미 의회 연설에서 어떤 식으로든 ‘사죄’ 표현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부 시민단체는 미국대사관에 “아베 총리의 의회 연설은 2차 세계대전 피해자를 모욕하는 일”이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이건혁 기자 gun@donga.com}

네팔 대지진 현장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한국인 생존자들은 고국 땅을 밟고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네팔을 떠난 뒤 예정보다 두 시간 지연된 28일 오전 1시경 인천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승객 104명의 얼굴에는 안도감과 공포감이 뒤섞여 있었다. 대지진 발생 후 출국할 때까지 네팔에서의 50시간은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여진이 우려돼 숙소에 머물 수 없어 노숙도 감내해야 했다. 올 1월 네팔 토목공사 현장에 일하러 갔다가 지진으로 팔과 목을 다친 박종권 씨(40)는 “병원 대다수가 무너지고 생사를 오가는 환자가 많아 경상자는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병원이라지만 자가발전기가 없는 곳에서는 물과 전기도 공급이 안 돼 고통은 더욱 심했다. 일부는 참사 충격에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관광을 갔던 허미경 씨(53)는 “함께 있던 중국 소녀의 오빠가 매몰됐다는 소식을 듣고 같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고 했다. 이진희 씨(25)는 “맞은편 호텔이 무너져 내가 묵던 호텔을 덮쳤다. 건물 밖에 있어 천만다행이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나마 참사 후 첫 귀국 비행기에 오른 이들의 사정은 나은 편이다. 하루빨리 현장을 탈출하려는 생존자와 구호물자 수송이 몰리면서 카트만두 트리부반 국제공항은 아수라장이라고 이들은 전했다. 당초 5월 말에 귀국할 예정이었던 김정식 씨(67)는 “공항에서 7시간을 기다려 비행기표를 구했다. 사고로 다친 사람들 대신 얻은 자리라 마음이 불편하다”며 안타까워했다. 고국의 대지진 소식을 들은 국내 거주 네팔인들 역시 큰 충격에 빠졌다. 이들은 고국을 돕기 위해 모금활동에 나서는 한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분향소를 설치했다. 한국 거주 네팔인들의 모임인 재한 네팔인협회가 추산한 국내 네팔인은 약 2만9000명. 네팔인협회장 비너트 쿤와 씨(43)는 “지진 소식이 전해진 뒤 전국 각지의 네팔인이 자체적으로 모금활동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서울에서 네팔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대부분 일용직이나 공장에서 일하고 있어 직접 얼굴을 보고 의논하기 힘들지만 각자 거주지를 중심으로 모금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서울 종로구 협회 사무실에 네팔 대지진 참사 희생자를 위한 분향소를 설치하는 등 모국의 아픔을 나누기 위한 행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한국에 머무는 네팔인들은 현지 전화나 인터넷 연결이 어려운 게 가장 답답하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쿤와 씨는 “성금을 송금해도 현지에서 제대로 받았는지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네팔인들은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겨우 가족과 친구 소식을 주고받고 있다. 네팔인협회 관계자는 “네팔과 인연을 맺은 한국인들이 관심을 보여줘 큰 힘이 되고 있다”며 “네팔의 엄청난 상처가 빨리 아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인천=박성민 min@donga.com·황성호 / 이건혁 기자}

서울 영등포역 근처 영중로는 대표적인 혼잡도로다. 서울과 인천, 경기 서부권을 운행하는 버스노선 40여 개가 이곳을 지난다. 금요일 퇴근시간인 24일 오후 6시 반경.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시민들이 하나둘 차도로 발을 내디뎠다. 보행자와 노점으로 복잡한 인도를 피해 아예 차도로 걷는 시민도 적지 않았다. 버스 한 대가 나타나자 20여 명이 우르르 차도로 내려가 버스로 달려갔다. 버스는 아예 정류장 가까이 오지 못한 채 두 개 차로에 걸쳐 멈춰섰다. 버스 운전사 이종원 씨(56)는 “차가 서기도 전에 몸으로 막아서다시피 오는 사람들을 보면 무섭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비슷한 시각 인근 횡단보도에는 시민 약 50명 가운데 7, 8명이 차도까지 내려와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 고개 숙인 채 스마트폰을 보고 있거나 일행과 대화 중이었다. 차량이 경적을 울려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현장의 김모 씨(26·여)는 “인도가 복잡하거나 횡단보도에 서 있는 사람이 많으면 차도로 내려오는 편”이라며 멋쩍어했다. 시민 A 씨(56)는 “횡단보도 근처니까 자동차가 알아서 속도를 줄이지 않겠냐”고 반문하며 “사고 날 확률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보행자 보호구역인 인도에서 보행자가 사고를 당하면 자동차가 100% 책임을 진다. 하지만 차도에 발을 디딘 채 사고가 나면 보행자도 사고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옆에 인도가 있는 차도에서 보행자와 자동차가 부딪치면 보행자의 기본 과실률은 20%. 택시나 버스 승차를 위해 차도로 달려들다가 접촉 사고가 나면 과실률이 5∼10% 가산되기도 한다. 특히 차량이 모든 교통법규를 준수해 진행하거나, 비나 눈이 와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받을 때 차도에서 사고가 나면 보행자 과실률은 50%를 넘을 수 있다. 스마트폰 사용이나 자동차 블랙박스 보급 증가 등으로 차도에서 교통사고가 났을 때 보행자 과실이 0%로 판명나는 일은 드물다. 손해보험업계 관계자는 “과실률도 문제지만 차량과 부딪치면 보행자는 부상과 이에 따른 후유증을 겪는 등 건강상 손해가 더 크다”고 지적했다. 보행자 교통사고는 크게 줄지 않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간 보행자 사고자 중 사망자는 연평균 약 2000명, 부상자는 5만1000명 정도다. 경찰 관계자는 “무단횡단, 차도 보행 등 잘못된 습관을 고치지 않고서는 보행자 교통사고가 획기적으로 줄어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세월호 국민대책회의는 유가족을 포함한 피해자 가족들이 물대포와 캡사이신 최루액을 맞으며 아들 같은 의경들과 악에 받쳐 싸우게 하는 걸 멈춰 주십시오. 국민들에게 자식 잃고 생기를 잃어가는 부모들을 폭도로 매도하게 하는 빌미를 제공하지 마십시오.” 단원고 실종자 조은화 양의 어머니 이금희 씨(46)는 결국 대성통곡했다. 옆에서 기자회견문을 낭독한 아버지 조남성 씨(53)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세월호 피해자 가족 가운데 처음으로 “더이상 폭력은 안 된다”고 한 호소였다. 사랑하는 딸을 품에 안지 못한 단원고 실종자의 부모들이다. 23일 오후 2시 경기 안산시 한사랑병원. 이 씨가 입원 중인 병실에서 조 양의 부모와 또 다른 단원고 실종자 허다윤 양의 부모 등 4명은 기자회견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정부의 선체 인양 결정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인양작업에 함께 하겠다”는 말도 했다. 이어 조 씨는 “과격한 투쟁의 현장에서 세월호 가족들이 다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며 “경찰과 싸우지 않고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말했다. 유가족을 지원하는 시민·사회단체 모임인 세월호 국민대책회의를 향한 호소였다. 4·16가족협의회는 이날 두 가족의 기자회견 진행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안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던 4·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오후 2시 반경 병원에 모습을 나타내 “가족협의회와 회견 내용을 사전에 협의하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다. 유 위원장은 “인양 작업을 앞두고 계속된 시위로 정부 심기를 건드리면 인양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한 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실종자 가족들은 기자회견 후 “1, 2년 지나야 찾을 수 있는 우리 딸을, 시민들이 돌아서고 (가족들이) 폭도라고 욕먹으면 찾을 수나 있겠느냐”며 여론을 걱정했다. 유 위원장이 전체 유가족 의견이 아니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유가족마다 집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차이가 있다. 18일 열린 세월호 1주년 집회에 참여하지 않은 한 유가족은 “우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반대한다”며 “광화문 대신에 가족끼리 안산이나 팽목항에서 진상 규명을 주장했다면 국민의 지지를 더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가족은 여전히 ‘강경 투쟁’을 외치고 있다. 본보 취재진과 만난 단원고 유가족 대부분은 “민주노총이든 시민단체든 설령 우리를 이용한다고 해도 상관없다”며 “아이들이 제때 구조되지 못한 이유와 과정을 상세하게 알고 싶은 마음을 같이한다면 새누리당이 와도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당수 유가족이 강경 투쟁에 매달리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는 트라우마 영향으로 보인다. 가족들은 “사람들은 지겹다고 하지만 우리는 아이를 못 본 시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그리움이 커진다”고 토로했다. 가족들 사이에는 “이 싸움이라도 하지 않으면 슬픔을 못 견딜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또 다른 유가족은 “투쟁이라도 해야 정부가 유가족의 말에 귀 기울인다”고 항변했다.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단체가 연합해 만든 ‘4·16연대’는 이번 주말에도 대규모 집회를 연다. 25일 오후 3시 서울 청량리역, 홍익대 정문 앞, 용산역 광장, CGV성신여대입구 앞 등 4곳에서 광화문광장까지 ‘썩은 정권 시행령 폐기, 진실을 향한 국민 행진’을 진행한다. 광장 도착 후 분향을 하고 ‘범국민 추모문화제’를 열 예정이다. 경찰은 추모제가 ‘불법 시위’로 변질되면 이를 제지할 방침이지만 시위대는 “문화제는 집회 신고 대상이 아니다”라며 반발하고 있어 또다시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안산=이건혁 gun@donga.com·최혜령·이샘물 기자}
정부가 세월호 선체 인양을 공식화하자 세월호 유가족들은 대체로 환영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해 수중수색 종료 후 지금까지 인양 결정을 미뤄온 만큼 신속하게 작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4·16가족협의회는 22일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이제라도 인양을 공식 선언해 환영한다. 앞으로 가족들과 긴밀히 소통하고 인양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달라”고 밝혔다. 이들은 “다만 인양은 당연한 결정이며 정부가 큰 시혜나 결단을 내린 것처럼 포장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아직 가족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실종자 가족은 인양 작업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 안산 단원고 실종자 허다윤 양의 부친 허흥환 씨(51)는 “10월 시작도 늦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인양을 시작해 최단 시간에 마무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측도 “신속하게 인양 작업이 완료돼야 진상 규명을 위한 조사가 가능하다”며 빠른 선체 인양을 촉구했다. 세월호 인양 결정과는 별개로 세월호 관련 추모문화제는 예정대로 진행된다. 시민단체와 유가족들이 만든 4·16연대 측은 22일 오후 1시 서울 광화문광장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이 폐기될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며 “24일에는 ‘전국 광역 동시다발 총파업대회’에, 25일에는 ‘4·25 추모행진과 추모문화제’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한편 세월호 참사 생존자가 20일 처음으로 배·보상금 지급 신청서를 제출하는 등 배·보상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22일까지 사망자 3명, 생존자 1명 등 총 4명의 배·보상금 신청이 접수됐고, 차량과 화물 배상 신청이 각각 48건 접수되는 등 총 100건이 접수됐다고 밝혔다.이건혁 gun@donga.com·이샘물 기자}
평소 수많은 관광객이 오가던 서울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이 17일 하루 종일 굳게 닫혔다. 광화문 앞이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단체 회원들의 노숙 농성장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1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주년 추모식 ‘4·16 약속의 밤’ 참석자 가운데 일부다. 유가족 70여 명과 시민단체 회원 20여 명은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17일 0시경 광화문 앞에 도착했다. 이들은 경찰과 대치하며 밤새 노숙 농성을 벌였다. 이날 오전 농성 중이던 일부 유가족이 세종대로 방면으로 진출을 시도했고 경찰이 제지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낮 12시에는 기자회견을 열어 “노숙 농성의 책임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며 박 대통령과 정부를 맹비난했다. 단원고 사망자 고 최성호 군의 아버지 최경덕 씨는 “대통령이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폐기와 선체 인양 공식 선언 요구에 답하지 않은 채 해외로 도망갔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대통령 퇴진, 입국 금지, 시민권 박탈” 등을 외치며 “18일에 반드시 청와대 정문까지 올라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불법 시위는 17일 오전 3시경까지 이어졌다. 행사 참가자들은 서울 종로와 청계천, 인사동 등지에서 산발적으로 경찰과 충돌했다. 인사동에서는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고 경찰은 캡사이신 최루액을 수차례 발사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기동대원 1명이 시위대에 잡혀 넘어지면서 다쳤고 유가족 권모 씨(43·여)도 갈비뼈 4대에 금이 가 수술을 받았다. 경찰은 시위 참가자 10명을 연행했다. 4·16가족협의회와 시민단체들은 18일 오후 3시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인양과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범국민대회를 열 예정이어서 큰 불편이 예상된다.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세월호 참사 발생 1주년인 16일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 내 정부합동분향소에는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추모객들은 우산을 들고 우의를 입은 채 차례를 기다렸다. 시민들은 목숨을 잃은 단원고 학생과 교사, 일반인 등의 영정을 바라보면서 1년 전 참사를 떠올리며 슬픔과 고통에 빠져드는 듯했다. 단원고 재학생 800여 명은 오전 10시경 분향소를 찾아 합동참배를 하며 눈물을 쏟아냈다. 오후부터 몰려든 시민들은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차분히 차례를 기다렸다. 분향소를 찾은 유가예 씨(32·여)는 “아이들의 영정을 보니 가슴이 아직도 아프다. 유가족을 응원해주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이날 안산 분향소를 찾은 추모객은 8000여 명에 이른다. 이날 오후 2시 분향소 앞 광장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던 ‘세월호 1주기 추모행사’는 취소됐다. 유가족 측은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폐기하고 세월호 선체 인양을 공식 선언하지 않으면 추모식을 하지 않겠다는 주장을 펴왔다. 4·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박 대통령은 팽목항에서 하나 마나 한 이야기만 했다. 이 상태에서 추모식은 무의미하다”고 취소 배경을 설명했다. 자리에 참석한 다른 유가족들은 “시행령 폐기, 선체 인양 약속은 못해줄망정 최소한 안산 분향소에서 분향이라도 해주면 좋지 않았겠느냐”며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안산=이건혁 gun@donga.com·최혜령 / 박은서 기자}

《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다 됐지만 유가족은 지금도 진상 규명을 외치고 있다. 유가족은 “세월호는 왜 침몰했고 자신의 가족이 왜 죽어야 했는지 밝혀달라”고 주장한다. 정부는 검찰 수사와 정부 조사를 통해 의혹이 대부분 밝혀졌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유가족은 정부의 설명을 믿지 않는다. 1년 동안 양측의 주장을 들어온 사람들은 혼란스럽다. “도대체 어떤 진상을 규명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조사가 진행됐는지 헛갈린다”는 반응이다. 세월호 유가족이 제기하는 5대 의혹과 정부의 설명을 비교 정리했다. 》1. 침몰 원인“세월호 하부에 충돌 흔적” vs “무리한 증축-과적-변침 탓” 지난해 10월 검찰은 세월호 침몰 사고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침몰 원인으로 △2012년 일본에서 수입된 뒤 증축에 따른 총톤수 증가와 좌우 불균형 △최대 적재량 초과 과적(2142t) △평형수 감축에 따른 복원력 감소 △이준석 선장 등 승무원의 근무지 이탈과 조타수의 조타 과실 등을 제시했다. 유가족은 일각에서 제기된 ‘암초설’ ‘잠수함 충돌설’ 등의 사실 여부를 아직도 궁금해한다. 이들은 “세월호 하부에 충돌 흔적이 발견됐다” “생존자 가운데 큰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선체 하부 도색부분이 탈색하면서 보인 착시이며, 폐쇄회로(CC)TV에 흔들림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결과를 내놨다. 유가족은 또 “사고 원인이 무리한 변침(變針)이라면 왜 해당 해역에서 급격히 방향을 바꿨는지 설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검찰은 승무원의 조타 실수로 봤지만 재판 과정에서 해당 승무원들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2. 선박 주인“국정원 지적사항 문건 발견” vs “국가보호장비 점검한 것” 세월호는 청해진해운 소속이다. 하지만 유가족 측은 침몰한 세월호에서 발견된 업무용 노트북의 ‘국정원 지적사항’이라는 문건을 근거로 “국가정보원이 세월호의 실소유주”라고 주장하고 있다. 해당 문건에는 도색작업, 자판기 위치, 해양안전수칙 CD 준비 등 점검사항이 적혀 있다. 실소유주가 아니면 필요 없는 사소한 것까지 챙겼다는 건 국정원이 세월호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라고 주장한다. 국정원과 검찰은 세월호를 국가보호장비로 지정하기 위한 업무 수행의 증거라고 발표했다. 국정원 보안업무규정에 따라 국가 재난 발생 시 수송업무를 맡도록 지정된 선박이라는 것. 하지만 유가족들은 정부기관의 발표를 믿지 않고 있다. 세월호 침몰 책임을 피하기 위한 변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3. 초기 대응“해경, 왜 퇴선명령 안했나” vs “구조능력 부족… 형사재판 중” 지난해 4월 16일 오전 8시 52분 고 최덕하 군(당시 17세)이 해양경찰에 “배가 침몰하고 있다”며 최초 신고를 한 뒤 목포해경 소속 123정(100t급)이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30분. 그러나 배는 5분간 세월호 주변을 맴돌다가 조타실로 이동해 선장과 승무원을 가장 먼저 구조했다. 승객을 향한 퇴선 명령은 없었다. 김경일 전 해경 123정장은 “퇴선명령 했다”고 말했다가 거짓으로 밝혀져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퇴선 방송과 탈출 유도명령을 했더라면 4층 선미 객실 승객 56명은 생존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해경의 과실을 인정했다. 유가족들은 승객 다수를 구할 수 있었던 골든타임을 허비한 것이 해경의 과실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현장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구조 시스템의 문제, 그리고 이를 지휘한 지휘체계의 문제점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4. 구조 실패“민간잠수사 투입 막았다” vs “안전위해 한때 접근 통제” 세월호가 침몰한 16일부터 18일까지 잠수사 투입이 지연됐다. 소방방재청 산하 잠수사, 해군 해난구조대(SSU), 민간잠수사 등이 잠수를 하고자 했으나 해경은 이들의 잠수를 허락하지 않았다. 유가족 측은 “해경이 해군, 민간잠수사 등의 구조 작업을 막았으며, 심지어 미군이나 민간 어선의 접근도 통제했다는 증언이 있다”고 말한다. 해양수색업체 ‘언딘’이 해경 특혜를 받고 우선 잠수하기 위해 이런 조치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해경이 잠수사 안전을 위해 일시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게 한 것이며, 언딘에 특혜를 주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놨다. 언딘 소속 잠수사도 제대로 된 수중 수색활동을 할 수 없었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사고 초기 유가족들은 사고해역 접근을 하지 못했다. 또 구조활동이 지연되고 있음에도 해경이 ‘구조작업 진행 중’이라고 거짓말한 것은 무엇인가를 숨기기 위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5. 정부 대응“보고체계 제때 가동됐나” vs “감사원 특감서 책임 밝혀” 사고 당시 정부가 세월호 침몰 사고의 심각성을 제대로 보고받고 조치했는지도 유가족들이 확인하고 싶은 부분이다. 유가족들은 정부의 보고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작동했다면 누구에게까지 보고됐으며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확인해야 참사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감사원은 세월호 특별감사를 벌여 지난해 10월 ‘세월호 침몰 사고 대응 및 연안여객선 안전관리·감독실태’를 발표했다. 해경, 안전행정부, 해양수산부 등 10개 기관이 구조 실패 책임을 지적받았으나 청와대는 책임 없음, 국방부는 감사 대상에서 제외돼 유가족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해당 의혹을 밝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이 세월호 특조위 활동을 제약하고, 공무원이 공무원을 감사하는 ‘셀프 감사’를 하게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이건혁 기자 gun@donga.com}

《 세월호 유가족은 물론이고 생존자, 자원봉사자, 민간잠수사, 진도 어민 등은 세월호 1주년을 맞아 편지를 썼다. 누군가는 밤새 고민해 간신히 썼다며 쑥스러워했다. 글쓰기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기에 내용은 소박하고 단순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보고 싶은 사람을 향한 그리움, 살아남은 생존자와 유가족을 향한 위로와 격려, 그리고 감사함. 그들의 진심을 기사로 조심스레 옮긴다. 편지 전문은 동아닷컴(www.donga.com)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엄마 아빠 형 잃은 8세 요셉이가 하늘나라 가족에게“내가 기도해줄게… 걱정하지마 사랑해♥” “엄마 아빠 형… 나 요셉이 없어서 많이 힘들지. 조금만 기달려 내가 오래오래 살아 가서 천국 빨리 갈게.”(오래 살아 천국 가겠다는 의미) 조요셉 군(8)은 세월호 침몰 사고로 가족 모두를 잃었다. 제주도로 출장 가는 아버지를 따라 가족 여행을 가던 중 참변을 당했다. 1년이 지난 지금 조 군은 또래 아이들처럼 피아노, 미술, 태권도 등을 배우며 씩씩하게 지낸다. 하지만 가끔 멍하니 앉아 있을 때가 있다. 식사를 마친 후 또는 세월호 뉴스가 TV에 나올 때. 맛있는 반찬을 앞에 두고 “형이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부모 이야기에 눈물짓는 외할머니 때문인지 조 군은 ‘엄마, 아빠’라는 말을 평소 입에 잘 담지 않는다. 편지를 쓰자는 말에 조 군은 다른 종이에 연습까지 한 뒤 정성스레 옮겨 썼다. 활짝 웃고 있는 부모와 형의 얼굴을 그려 넣고, 짧은 편지 안에 사랑한다는 말을 3번 썼다. “내가 기도도 많이 해 줄게. 그러니까 걱정 하지마♡ 사랑해♥” ○ 진도에서 항찬이가 단원고 친구들에게 “친구 빈자리를 느낄 너희들은 어떨지…”“나도 안산에서 태어나서 중3 때까지는 안산에서 살다가 고1 때 진도로 이사 와서 너희 학교(단원고)에 아는 친구들이 몇 명 있었어.” 진도고등학교 3학년 조항찬 군(18)은 세월호 침몰 사고로 안산 단원고 친구 5명 가운데 4명을 잃었다. 괜찮으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조 군은 “안산에 있는 친구들이 더 힘들겠죠”라고 답했다. 세월호 참사 직후 실종자 가족들이 머무르던 진도실내체육관을 바라보고, 하루에도 수십 번 구급차와 헬기 소리를 들었던 진도고 학생들도 우울 반응을 보였다. 조 군은 특히 힘들어했다. “내가 아는 친구는 구조됐을까?” 사망자와 실종자 명단을 확인하기 두려웠다고 적었다. 조 군은 참사 1년이 다 되도록 살아남은 친구에게 제대로 연락하지 못했다며 “친구가 이 편지를 꼭 읽어주고, 위로를 건네고 싶은 저의 마음이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디서 무얼 하든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길 바랄게.” ○ 서거차도에서 섬마을 이장이 생존 학생들에게 “아저씨가 오래오래 많이 사랑할게”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지점으로부터 약 5km 떨어진 전남 진도군 조도면 서거차도 방파제에 헬기가 착륙해 아이들을 내려줬다. 주민들은 추위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단원고 생존 학생들을 씻기고 옷을 갈아 입혔다. 마을 이장인 지체장애인 박권삼 씨(65)는 그날 아이들 표정을 잊지 못한다. “라면 80개 정도 끓여 나눠줬어요. 더 많은 생존자가 와서 라면 먹기를 기다렸는데….” 지난달 18일 안산시를 방문한 조도면 주민들은 생존 학생들이 쓴 감사 편지를 전달받았다. 비록 일 때문에 단원고에 가지 못했지만, 박 씨는 답장을 하고 싶다며 “아저씨가 많이 오래오래 사랑할게, 섬마을 절대 잊지 마라”고 응원의 편지를 썼다. 또 다른 서거차도 주민 정해석 씨(48)도 함께 편지를 썼다. “더 잘해서 보내지 못한 우리가 더 미안할 따름이지… 훗날 훌륭한 ○○, ○○이가 되어서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지.” ○ ‘파란 바지 구조영웅’ 김동수 씨가 생존 학생들에게 “내 자식과 같이 소중한 친구들아”“우리가 슬픈 인연을 맺은 지도 일 년이 되어 가는구나. 우리는 죽음을 거슬러 살아왔지만 산 것 같지 않은 일 년의 세월이었던 것 같다.” 김동수 씨(50·당시 화물차 기사)는 세월호 침몰 당시 학생 10여 명을 구조해 ‘파란 바지의 구조영웅’으로 불리지만, 오히려 구조하지 못한 학생들 생각에 괴로워했다. 지난달 19일에는 자택에서 자신의 왼쪽 손목을 자해하기도 했다. “트라우마라는 높은 장벽을 넘지 못해 고전하고 있는데, 아직 여리디여린 너희들은 오죽하랴.” 김 씨는 트라우마 때문에 의도치 않은 언행이 불쑥 튀어나오는 등 일상생활이 버거운 상태다. 단원고 생존 학생들은 김 씨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김 씨는 “그 친구들도 힘들 텐데 나까지 챙겨줬다”며 미안해했다. 김 씨는 학생들에게 감사와 함께 이겨내자는 응원을 전하겠다며 편지를 썼다. 심리치료 등으로 힘겨운 김 씨 대신 부인 김형숙 씨가 편지를 작성했다. ○ 실종자 허다윤 양 아버지가 자원봉사자들에게 “유가족이 되면 다시 감사인사 할게요”지난해 11월 세월호 수중수색 종료 후 실종자 허다윤 양 아버지 허흥환 씨(51)는 서울로 향했다. 못 본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둘째 딸을 찾아달라는 호소를 들어줄 사람들을 찾아서. 허 씨는 “그냥 말로 하는 게 편한데…”라며 멋쩍어했다. 서울 광화문광장도 찾고, 국회와 청와대 인근 분수광장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그는 1년간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힘든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다. 딸을 찾으면 고맙다고 한 명, 한 명 제대로 인사하고 싶었지만, 아직 딸 다윤이는 바닷속에 있다. “그분들께는 너무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뿐이다. 보고 있을 때면 가슴이 뭉클해져 눈을 못 맞춘다.” 그는 실종자를 돌려보내 주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라는 절규를 편지에 담았다. ‘유가족’이 되면 도움을 준 자원봉사자와 국민들에게 다시 감사인사를 하겠다고 했다. “지금도 묵묵히 봉사하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글을 올립니다.” ○ 고 임세희 양 어머니가 둘째 아들에게 “네가 웃어야 하늘나라 누나도 웃을 거야”단원고 2학년 9반 16번 고 임세희 양(당시 17세)의 동생 경원 군(16)은 올해 3월 누나가 다니던 단원고에 입학했다. 경원 군이 1학년 9반 16번이라는 걸 어머니 배미선 씨가 알게 된 건 한참이 지난 다음이었다. 이달 7일은 경원이의 생일이었다. “미안하구나. 누나 없이 맞이하는 생일. 케이크는 샀지만 차마 노래가 나오질 않아 눈물만 뚝뚝 흘렸지. 행복하고 즐거워야 할 생일을 눈물로 보내는구나.” 어머니는 아들의 생일을 마음껏 축하해줄 수 없었던 게 내내 걸렸다. “미역국도 먹기 싫다는 아들, 축복받아야 할 생일을 그냥그냥 평범한 날로 보내게 해서 가슴이 저려온다.” 가족들 마음 아플까봐 누나를 화장할 때 외에는 눈물을 보이지 않던 아들이 더 가슴 아프다. “사랑하는 아들아, 우리 파이팅 하면서 살자. 흐드러지게 피어 화사한 벚꽃처럼 오늘 하루도 한번 웃어 보면서 하루를 살아 보자. 그래야 누나가 좋아할 거야. 따라쟁이 동생이 오늘은 웃는다고 누나도 따라 웃을 거야.”○ 청주에서 고 남윤철 교사 어머니가 아들에게 “여기 걱정 말고, 제자들 잘 보살펴줘”“며칠 전에는 길을 가다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냥 눈물이 쏟아지더구나. 왜일까 생각하니 너와 함께했던 마지막 봄을 내 몸이 먼저 기억하고 있었던 거야.” 8일 국민대 북악관 708호에서 열린 ‘남윤철 강의실’ 명명식에 참석한 단원고 영어교사 고 남윤철 씨(당시 35세)의 모친 송경옥 씨(62)는 눈물을 흘렸다. 아들과 함께 ‘남윤철 강의실’에 들어와 봤다는 송 씨는 “아들이랑 이 교실에도 왔었다”며 창밖을 바라봤다. 사람들은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구명조끼를 던져주고 학생들을 더 구하기 위해 객실로 들어간 남 씨를 의인이라고 불렀다. ‘남윤철 장학금’도 생겼다. 하지만 송 씨에게는 의로운 교사보다 자상하고 수다스러운 아들이 익숙할 뿐이고, 그저 보고 싶을 뿐이다. “여기 남아 있는 학부모들도 선생님인 너와 함께 있어 많은 위로가 되실 거야. 제자들 잘 보살펴 주거라. 이제 여기 걱정은 하지 말고 편안하게 지내. 또 편지할게.” ○ 안산에서 동생 다슬이가 오빠 다운에게 “오빠 방에 놓인 기타 보면 눈물이…” 자작곡 ‘사랑하는 그대여’를 남기고 떠난 단원고 2학년 고 이다운 군(당시 17세). 그룹 포맨의 신용재 씨(26)가 이 노래를 완성하고 발표함으로써 가수가 목표였던 이 군의 꿈은 조금이나마 이루어졌다. 이 군의 부친 이기홍 씨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너진다고 했다. 이 씨는 지난 1년간 몸무게가 15kg 이상 줄어들고 시력도 급격하게 나빠져 일을 그만뒀다. 아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으나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고, 돋보기 안경을 써야할 만큼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 포기했다. 이 군의 동생 다슬 양(16)이 아버지 대신 펜을 들었다. “오빠가 노래 작사 작곡할 때 가사나 멜로디 수정할 부분 있으면 같이 하고 둘이서 비밀 얘기도 많이 했었는데….” 다운 군이 기타 치며 노래 부를 때 함께 듣곤 했던 동생과 아버지는 다운 군 방에 놓인 기타를 보면 눈물이 흐른다고 했다. 동생은 다운 군이 돌아와 기타 가르쳐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 잠수사 전광근 씨가 유가족 박용우 씨에게 “잘 이겨내시길… 저희가 응원할게요”민간 잠수사 전광근 씨(39)는 세월호 내부 수색을 위해 약 80일간 침몰 지점에 정박한 바지선에 머물렀다. 그리고 수차례 바닷속을 드나들며 실종자 수색 작업을 했다. 전 씨는 세월호 1주년을 얼마 앞두고 단원고 고 김수빈 군의 이모부 박용우 씨의 전화를 받았다. 바지선에서는 자주 봤지만, 경기 안산시로 올라간 뒤 처음 온 연락이었다. 전 씨는 “내가 먼저 연락했어야 했는데, 아이들을 구조하지 못했단 마음에 선뜻 나서지 못했다. 고마운 마음과 응원을 꼭 전하고 싶다”며 편지를 작성했다. 전 씨는 일부러 노란 편지지를 고르고, 편지 위쪽에는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을 붙였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단 말 전합니다. 저희에게 고맙다고 부탁한다고 하셨던 것 지금도 생생합니다. 제대로 (고마움을) 표한 적이 있나 싶네요. 이제 저희가 응원해 드립니다. 잘 이겨내시고 힘내시고요. 항상 건강부터 챙기시고요.” ○ 계약직 승무원 고 안현영 씨 어머니가 잠수사들에게 “살신성인 있었기에 恨 풀었네요”지난해 4월 28일 전남 진도군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수색 상황을 브리핑하고 다시 바다로 돌아가던 잠수사들에게 한 부모가 다급하게 뛰어왔다. 고개가 땅에 닿을 듯 숙인 채 “승무원복 입은 아이 있으면 같이 구조해 주세요”라며 울음과 함께 ‘쪽지편지’를 잠수사에게 전했다(). 편지를 받은 잠수사들은 바다를 뒤졌고, 5월 5일 계약직으로 세월호 매점과 식당에서 일했던 이벤트 업체 대표 안현영 씨(당시 28세)를 부모의 품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다. “그 당시 나 자신 또한 그 누구도 아들을 직접 건질 수 없었기에 절실히 (도움이) 필요했고, 또 의지했고 믿었던 잠수사님들이었기에 우리 가족에겐 너무도 중요했습니다.” 경기 부천시에서 만난 안 씨의 모친 황정애 씨(56)는 세월호 1주년을 앞두고 잠수사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황 씨는 “이들의 살신성인이 없었다면 저는 평생 한을 안고 살아갔겠죠”라고 말했다. ○ 자원봉사자 김수옥 씨가 유가족들에게 “힘들겠지만… 받아들이려는 연습을”“새벽 2시 즈음에 어김없이 뛰어 나와서 아들한테 전화 왔다고, 아빠 빨리 오라고 했다고 바다로 뛰어들려던 ○○아빠. 내 속 썩인 것 알지요?” 대한민국 일등봉사대라는 봉사단체를 이끌고 있는 김수옥 씨(56·여)는 세월호 침몰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전남 진도군으로 향했다. 김 씨는 “8년 전 교통사고로 17세 아들을 잃었기 때문에 유가족들의 상황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약 다섯 달 동안 팽목항에서 바라본 유가족들의 모습을 노란 편지지에 담았다. “쓰러져 주사 맞고 다시 울던 엄마, 아이 이름을 목 놓아 부르며 기도하는 아빠, 멍하니 바다만 바라보던 가족들….” 김 씨는 그때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김 씨는 편지로 유가족들에게 위로와 당부를 전했다. 지금은 힘들어도 받아들이려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했다. “현실은 현실대로 받아들이고…, 아이들이 하늘나라에서 부모님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자고 말하고 싶어요.”이건혁 gun@donga.com·최혜령·김도형 기자}

4월이 찾아왔다. 따스한 봄바람과 흩날리는 벚꽃은 지난해 4월 16일 476명을 태우고 제주로 가던 중 침몰해 사망자 295명과 실종자 9명을 발생시킨 세월호 참사 1주년이 다가왔음을 알린다. 동아일보는 세월호 1주년을 맞아 기획 시리즈를 게재한다. 첫 번째로 세월호 유가족, 생존자, 자원봉사자, 민간잠수사 등 지난해 전남 진도군에 있었던 사람들이 1주년을 맞아 작성한 편지를 소개한다. 세월호를 침몰로 몰고 간 정부의 결정적 실책 10가지와 개선 상황을 점검한다. 이어 1주년 당일인 16일까지 △실종자 가족들의 목소리 △각계 저명인사가 말하는 ‘나와 세월호’ △세월호 책임자 처벌 진행 상황 △유가족이 말하는 진상 규명 △팽목항과 안산 르포 등을 내보낸다.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세월호 침몰 사고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박근혜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를 반드시 만들겠다”고 했다. 그 약속이 지켜질 때까지 아무도 세월호를 잊지 못할 것이다.이건혁 gun@donga.com·최혜령·권오혁 기자}

국민대는 지난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제자들을 구하다 숨진 단원고 교사 남윤철 씨를 기리기 위해 남 씨가 공부했던 북악관 708호를 ‘남윤철 강의실’로 명명했다. 8일 기념식에 참석한 남 씨의 아버지 남수현 씨와 어머니 송경옥 씨가 현판을 어루만지고 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힙합가수 이센스(본명 강민호·28)가 또 다시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구속됐다. 서울서부지검은 8일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대마초 흡입)로 그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이센스는 총 3차례 대마초를 흡입했다. 지난해 9월 14일 서울 마포구의 한 주차장에서 친구 이모 씨와 함께 대마초를 흡입했고 지난달 15일 자택에서 혼자,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이 씨와 함께 흡입한 혐의다. 앞서 검찰은 6일 서울 마포구 자택에서 이센스를 긴급체포했고 8일 오전 서울서부지법에서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열렸다. 법원은 “이미 동종 범죄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전력이 있고, 현재 수사가 진행 중임에도 또 다시 대마초를 흡입했다”며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힙합그룹 슈프림팀 출신 이센스는 2011년 대마초 흡연 혐의로 체포돼 2012년 4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1년2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또한 지난해 11월 5일에는 대마초 500g을 밀수입했다가 경기지방경찰청에 적발됐다.이건혁기자 gun@donga.com}

힙합가수 이센스(본명 강민호·28)가 또 다시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체포됐다. 서울서부지검은 6일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대마초 흡입)로 서울 마포구 자택에서 그를 긴급체포했다고 8일 밝혔다. 이센스는 8일 오전 서울서부지법에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았으며, 구속 여부는 오후 늦게 결정될 예정이다. 이센스는 총 3차례 대마초를 흡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해 9월 14일 친구 이모 씨와 서울 마포구 소재 주차장에서, 지난달 15일에는 자택에서 혼자, 지난달 30일에는 이 씨와 자택에서 대마초를 흡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힙합그룹 슈프림팀 출신 이센스는 2011년 대마초 흡연 혐의로 체포돼 2012년 4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1년2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또한 지난해 11월 5일에는 대마초 500g을 밀수입했다가 경기지방경찰청에 적발됐다.이건혁 기자 gun@donga.com}

“혹시 불이 나면 누가 안내하나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어디로 나가야 합니까?” “저희는 그런 교육을 안 받아서…, 그냥 비상구 따라 나가시면 됩니다.” 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진행된 한 대중가수의 콘서트 공연. 약 1만5000명의 관객이 공연장에 몰렸다. 입구의 진행요원들은 검표와 좌석 안내를 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그러나 출입문 근처 어디에서도 ‘화재 등 비상시 대피요령’이나 ‘대피 동선 안내’는 잘 보이지 않았다.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니 비상구 안내표시등이 보였다. 그러나 관객들이 흔들어대는 휴대전화 불빛 등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진행요원 2, 3명에게 대피 요령이나 화재 때 통제요원, 대피계획을 알고 싶다고 물었다. 그러나 모두 “잘 모르겠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시작을 앞두고 안내방송이 나왔지만 “사진 촬영이나 녹음을 하면 안 된다”는 내용만 흘러나왔다. 비상구와 대피로를 가리키는 내용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연장이나 백화점, 대형마트, 영화관 등 다중이용시설에서 화재 등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대피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핵심은 비상구. 모든 건물은 소방법에 따라 비상구 안내 및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 재난이 발생하면 당황해서 허둥댈 수 있기 때문에 평소 비상구를 직접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시민들은 다중이용시설을 찾았을 때 비상구의 위치나 대피방법을 잘 모르고 있었다. 2일 경기 광명시 대형 가구매장 ‘이케아’를 이용하던 손님 10명에게 비상구 위치를 알고 쇼핑 중인지 묻자 단 2명만 “확인했다”고 답했다. 이상철 씨(33)는 “두 살짜리 아들이 있기 때문에 늘 확인하는 편”이라며 “비상구를 인지하면 확실히 안심하고 돌아다니게 된다”고 말했다. 반면 주부 장모 씨(47·여)는 “평소에 비상구를 확인하고 쇼핑하지 않는다”며 “질문을 받고 둘러보니 비상구 안내표지가 매장 넓이에 비해 작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손님뿐 아니라 다중이용시설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비상구 위치나 대피동선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 용산구 전자상가에서 30년간 컴퓨터 조립업체를 운영한 이모 씨(64)는 “불이 나면 지하로 대피하면 된다”고 짤막하게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 평화시장 상인들 상당수도 “복도 따라 그냥 가면 된다”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겠다”고 답했다. 지난해 11월 본보 설문조사에서 ‘영화관 등 다중이용시설 이용 때 비상구를 확인하는가’라는 질문에 ‘확인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은 67.1%. 비상구 확인을 번거롭게 여기는 인식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다중이용시설의 비상구 및 대피 안내 수준이 비록 소방법 위반까지는 아니어도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다”며 “비상구를 확인하는 작은 습관 하나로도 긴급 상황 때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세월호 유가족들이 배상 및 보상 절차 전면중단을 요구하며 단체 삭발을 감행했다. 세월호 피해자모임인 416가족협의회는 2일 오후 1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배상·보상안에 반대하며 머리를 깎는 삭발식을 진행했다. 유경근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하고 세월호 선체 인양 공식 선언할 때까지 배상·보상 절차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삭발식에는 광화문광장에서 48명,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4명이 참여했다. 유가족을 비롯해 실종자 가족, 일반인 피해자 가족, 생존학생 학부모 대표 및 제주화물기사 대표 등 피해자 대부분 삭발식에 동참했다. 머리를 깎는 동안 유가족들은 자녀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유가족 측은 4일 경기 안산시에서 도보행진 시작 전에도 삭발식을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정부가 1일 발표한 피해자 배상 및 보상안에 대해 유가족들이 반발하고 있다. 세월호 피해자 모임인 4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선체 인양, 진상 규명,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안 폐기 없이 어떠한 배상·보상도 의미 없다”고 적었다. 416가족협의회 박주민 변호사는 “배상이나 보상은 과실 여부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법적 판단이 다 끝난 뒤 이뤄져야 한다”며 “진상 규명은 시작도 안 했고 해경과 선원의 재판은 진행 중인데 배상과 보상을 논하는 건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단원고 유가족 임모 씨는 “유가족과 협의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며 “반대하면 ‘돈 더 받으려고 한다’는 오해를 받게끔 정부가 몰아가고 있다”고 반발했다. 또 다른 단원고 유가족 김모 씨도 “참사 1년을 앞두고 추모 분위기가 조성돼야 하는데 배상·보상금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돈에 쏠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성식 일반인대책위 부위원장은 “피해자들의 죽음을 단순 교통사고로 취급하고 있다”며 “참사 책임은 해경과 정부에 있는 만큼 배상·보상 논의는 책임을 명확히 하고 출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직 배상·보상안이 확정된 것이 아닌 만큼 진행 상황을 지켜보자는 의견도 있었다. 단원고 유가족 김모 씨는 “앞으로 4개월 동안 협상을 해야 하는데 그 사이 가족들의 입장이 반영된 보상안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사고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견디지 못하고 자해를 했던 생존자 김동수 씨(50·당시 화물차 기사)는 “구체적으로 정해진 게 없어 이야기하기 어렵다. 설명회에 참석해본 뒤 입장을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2010년 천안함 폭침으로 전사한 46용사 유가족들은 전사자 1명당 7억∼8억 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유족들은 국가보상금으로 일시불 2억 원을 받았다. 여기에 대표유족은 배우자, 미성년 자녀, 부모 순으로 1명만 등록이 가능한데, 국가유공자 유족연금 규정에 따라 배우자는 매달 122만7000원, 미성년 자녀는 142만3000원, 부모는 120만6000원의 연금을 받고 있다. 2만470명이 낸 성금 395억 원은 46용사와 실종자 수색 과정에서 순직한 고 한주호 준위 가족에게 5억 원씩 지급됐다.이건혁 gun@donga.com·최혜령·황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