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치기 막아 보이스피싱 근절? ‘물건치기’엔 속수무책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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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범죄수익 해외유출 창구 ‘사설 환전상’ 대대적 단속
국내서 화장품-공산품 구입… 중국서 되팔아 현금으로 챙겨
보따리상-점조직 얽혀 단속 불가능

경찰이 보이스피싱 범죄 수익의 해외 유출 경로로 환치기를 지목하고 4일부터 44일 동안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하지만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과 구로구 가리봉동 등 사설 환전소 밀집 거리는 경찰의 집중단속 발표에도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4일 오후 영등포구의 한 환전소. 본보 취재팀이 중국인 사장 P 씨에게 중국에서 화장품 판매대금을 받아야 한다고 하자 “커이(可以·가능하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날 기준 환율인 1위안당 173원을 제시하며 이른바 ‘환치기’를 제안했다. 100만 원 이상이면 수수료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P 씨는 자신의 중국 쪽 계좌로 돈이 들어오면 한국에서 현찰로 찾아놓고 기다리겠다고 했다. P 씨는 경찰에 적발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월급이나 소규모 거래는 문제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최근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보이스피싱에 연루된 환전업자 6명(구속 2명, 불구속 4명)을 적발한 것을 계기로 경찰이 보이스피싱 근절을 위해 환전소 단속에 나섰다.

경찰과 금융당국은 연간 약 4조 원이 환치기를 통해 해외로 빠져나가며, 이 중 상당 금액이 보이스피싱 같은 범죄와 관련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환전소를 단속하면 보이스피싱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지만 단속 대상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다른 환전소 사장 L 씨는 “단속이 조금 심해지겠지만 한중 상거래 규모가 커져 송금 수요가 있는데 아예 없어지겠느냐”고 반문했다. 중국 동포 심모 씨는 “은행은 수수료도 있고 속도도 느려서, 돈이 급한 동포들은 계속 (환치기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환치기가 보이스피싱 범죄 수익의 유일한 해외 송금수단으로 보는 건 단순한 발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서울의 한 경찰 간부는 “환치기보다 더 골치 아픈 방법으로 ‘물건치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물건치기는 한국에서 얻은 범죄수익금으로 화장품이나 공산품 등을 구입하고, 물건을 중국에서 판매해 수익금을 직접 챙기는 수법을 일컫는 말이다. 보따리상, 중국 내 판매조직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단속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또한 불법 송금을 뿌리 뽑으려면 정식 등록된 환전소가 아닌 무등록 환전업자를 단속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과 금융당국이 파악하고 있는 사설 환전소는 전국에 600여 곳. 하지만 무등록 환전업자 수는 제대로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 L 씨는 “큰 금액을 송금하는 건 주로 무등록 환전업자”라며 “경찰 단속 때문에 허가받은 환전소가 불법으로 낙인찍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일선 경찰서 관계자도 “보이스피싱 조직이 돈을 찾아가는 방법이 다양해 환전소만 단속해선 효과가 없다”며 “대만처럼 계좌 이체한 돈은 최소 2시간 뒤에 찾을 수 있게 하는 대책이 더 실효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건혁 gun@donga.com·천호성·박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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