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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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6-01-10~2026-02-09
칼럼97%
교육3%
  • [휴지통]“5개월만에 파경… 남편은 예단비 돌려줘야”

    2009년 9월 A 씨(31)와 결혼한 B 씨(30·여)의 부모는 결혼과정에서 신랑 A 씨 부모에게 예단비 10억 원을 건넸고 신혼집을 꾸미는 데 4000만 원을 썼다. A 씨 부모도 B 씨 부모에게 봉채비(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보내는 예물비용)로 2억 원을 줬고 결혼 직후 B 씨에게 6000여만 원짜리 스포츠클럽 회원권을 선물로 사줬다. 그러나 A 씨 부부는 가족 간 선물 규모와 종교 갈등, 성격차이 등으로 불화를 겪다 5개월 만에 파경을 맞았고 별거에 들어간 뒤 서로 이혼 소송을 냈다. B 씨는 “A 씨에게 책임이 있다”며 위자료 2억 원과 함께 예단비를 돌려달라고 청구했고 A 씨 역시 B 씨에게 책임을 돌리며 “위자료 5000만 원을 지급하고 스포츠클럽 회원권을 돌려 달라”고 맞소송을 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4부(부장판사 정승원)는 B 씨의 청구를 받아들여 “두 사람이 서로 이혼하고 남편 A 씨는 B 씨가 청구한 예단비 8억 원과 신혼집 인테리어 비용 4000만 원, 위자료 3000만 원 등 8억7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6일 밝혔다. 재판부는 “결혼 전후에 주고받은 예단은 혼인이 성립하지 않으면 반환하기로 조건이 붙은 증여와 유사한 것”이라며 “혼인이 단기간에 끝났다면 혼인이 성립하지 않은 것과 같아 예단을 돌려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이혼의 책임이 A 씨에게 있고 혼인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예단 반환 청구권이 없다”며 A 씨의 청구를 기각했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1-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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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혼 5개월만에 파탄…예단비 돌려줘야”

    2009년 9월 A 씨(31)와 결혼한 B 씨(30·여)의 부모는 결혼과정에서 신랑 A 씨 부모에게 예단비 10억 원을 건넸고 신혼집을 꾸미는데 4000만 원을 썼다. A 씨 부모도 B 씨 부모에게 봉채비(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보내는 예물비용)로 2억 원을 줬고 결혼 직후 B 씨에게 6000여만 원짜리 스포츠클럽 회원권을 선물로 사줬다. 그러나 A 씨 부부는 가족간 선물규모와 종교 갈등, 성격차이 등으로 불화를 겪다 5개월 만에 파경을 맞았고 별거에 들어간 뒤 서로 이혼 소송을 냈다. B 씨는 "A 씨에게 책임이 있다"며 위자료 2억 원과 함께 예단비를 돌려달라고 청구했고 A 씨 역시 B 씨에게 책임을 돌리며 "위자료 5000만 원을 지급하고 스포츠클럽 회원권을 돌려 달라"고 맞소송을 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4부(부장판사 정승원)는 B 씨의 청구를 받아들여 "두 사람이 서로 이혼하고 남편 A 씨는 B 씨가 청구한 예단비 8억 원과 신혼집 인테리어 비용 4000만 원, 위자료 3000만 원 등 8억 7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6일 밝혔다. 재판부는 "결혼 전후에 주고받은 예단은 혼인이 성립하지 않으면 반환하기로 조건이 붙은 증여와 유사한 것"이라며 "혼인이 단기간에 끝났다면 혼인이 성립하지 않은 것과 같아 예단을 돌려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이혼의 책임이 A 씨에게 있고 혼인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예단 반환 청구권이 없다"며 A 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혼인예물과 예단은 당사자 또는 양가의 도리를 위해 주고받는 것으로 반환해야 할 경우에는 혼인 당사자에게 1차적인 (반환)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유성열기자 ryu@donga.com}

    • 2011-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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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손잡기’, 범죄피해 남매 마음 열다

    “민경이 남매에게 설 선물이 생겨 뿌듯합니다.” 지난해 2월부터 최민경(가명·21·여) 씨와 동생 민수(가명·14) 군의 ‘멘터’ 역할을 해온 법무부 ‘사랑의 손잡기’ 봉사단원들은 5일 “이달 말 대학졸업 예정인 민경이가 무역회사에 취직했다”며 뿌듯해했다. 민경 씨 남매는 어머니가 2009년 8월 살해된 ‘범죄피해자 가정’. 이때부터 민경 씨는 어린 나이에도 중학생인 동생의 뒷바라지를 맡았다. 아버지는 살아있지만 연락이 안 되는 처지. 범죄피해자 가정을 상대로 봉사활동을 해온 법무부 ‘사랑의 손잡기’ 봉사단원들은 생계가 막막한 남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지난해 초부터 ‘멘터’로서 이들 남매를 도와왔다. 물질적 도움도 필요했지만 엄마를 잃은 충격에 휩싸인 남매에게는 무엇보다 정신적인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봉사단원들은 서로 돌아가며 매달 한 번씩 남매를 만나 식사를 하고 영화나 공연 등도 같이 봤다. 또 단원들은 취업을 앞둔 민경 씨에게는 사회생활의 노하우와 면접 방법 등을 알려주며 취업 준비도 도왔다. 이 같은 노력이 아이들에게도 전해졌는지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는 민수 군이 먼저 “고기가 먹고 싶다”고 말해 함께 고기를 구워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단원들은 전했다. 단원들은 “멘터 역할을 단기간으로 끝내지 않고 민수가 대학을 졸업하고 자리를 잡을 때까지 계속할 것”이라며 “사랑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처럼 아이들이 자라서 또 다른 이웃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1-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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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식왕’ 고교생이 허위사실 유포 주가조작

    고교생 김모 군(18)은 지난해 2월 증권가에서 널리 쓰이는 미쓰리(Mi3) 메신저를 통해 허위 사실을 퍼뜨리는 수법으로 주가를 조작해 돈을 버는 증권사 직원 이모 씨(27)를 인터넷 카페에서 알게 됐다.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이 씨의 말에 김 군은 주가 조작에 가담했다. 김 군은 주가를 끌어올리기로 점찍은 기업의 공시 내용을 입수한 뒤 일부 데이터를 투자자를 현혹하는 내용으로 고쳐 진짜 보도자료처럼 만들었다. 그러면 이 씨 등은 해당 기업이 보도자료를 낸 것처럼 가짜 보도자료를 메신저를 통해 널리 퍼뜨렸다. 김 군과 이 씨 등 5명은 이런 수법으로 7개월 만에 1인당 최고 1억7000만 원까지 챙겼다. 특히 김 군은 지난해 한 증권사의 실전투자대회에서 종잣돈 77만 원을 6개월 만에 1억 원으로 불려 우승을 차지하며 ‘주식왕’에 오르기도 했다. 김 군 등이 유명세를 타자 주가 조작 브로커로 활동하던 전남 목포 조직폭력배 최모 씨(30) 등은 이들을 스카우트해 조직적인 주가 조작에 나섰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이천세)는 1일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전 증권사 직원 이 씨 등 3명을 구속 기소하고 달아난 최 씨를 기소 중지했다. 검찰은 김 군에 대해선 범죄 수익을 장학재단에 전액 기부하고 반성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보호관찰소 선도교육 이수 조건으로 기소유예 처분했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1-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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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의 눈/유성열]서울변회 기대 모았던 젊은 후보도 ‘밥그릇 챙기기’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는 제91대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을 뽑는 선거가 치러졌다. 7명이나 난립한 후보 가운데 ‘젊은 변호사’의 대표를 자임하는 나승철 변호사(34·사법시험 45회)가 단연 눈길을 끌었다. 변호사 경력이 3년에 불과한 30대의 나 변호사는 투표에 앞서 열린 정견발표에서 “젊은 변호사답게 ‘타는 목마름’으로 서울변호사회를 바꿔나가겠다”고 말했고 변호사들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현장에서는 “나 변호사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당선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돌았다. 개표가 시작되자 나 변호사는 오욱환 변호사(51·24회)와 시소게임을 벌였고 1052표를 득표해 2위를 기록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오 변호사와의 표차는 불과 26표였다. 현재 서울변호사회에 소속된 변호사 8000여 명 가운데 50% 이상이 2000년 이후 사법연수원을 수료(30기 이후)한 젊은 변호사들이다. 젊은 변호사들의 표심이 최대 변수였다는 얘기다. 7명의 후보가 모두 ‘청년 변호사 일자리 확충’을 공약으로 내놓은 것도 이를 의식한 것이었다. 이날 참석자들은 “나 변호사가 젊은 변호사들을 사로잡는 ‘생계형 공약’을 내세웠던 게 표심을 흔들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들의 바람이 올바른 변화를 지향하는 것인지 생각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많다. 당장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생들도 이들을 향해 “자기 밥그릇만 챙긴다”고 비난한다. 나 변호사가 “젊은 변호사들의 생계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며 △로스쿨 전면 재검토 △로스쿨 졸업생 변호사시험 합격률 30%대 축소 △사법시험제도 존치 △복지확대를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이 같은 공약이 변화가 아니라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현재 국내 법률시장이 처한 상황은 냉혹하다. 로스쿨생들의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지금(75%)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면 변호사는 내년에만 2500여 명이 배출되는 등 크게 늘어난다. 자유무역협정(FTA)의 체결로 외국 로펌도 호시탐탐 국내 시장을 노리고 있다. 일부 변호사는 일자리를 구하는 것조차 힘들다고 호소한다. 그러나 글로벌 시대에 변화 개혁 개방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법률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도입된 로스쿨과 FTA 역시 법률시장의 성장과 법률서비스 개선을 위해서는 필연적인 선택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의 주체는 당연히 젊은 법조인들이 돼야 한다. 젊음이 가진 최대 무기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감’ 아니었던가.유성열 사회부 ryu@donga.com}

    • 2011-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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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파일]김기문 中企회장 공금유용 혐의 조사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부장 이명순)는 1일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56·사진)이 공금을 빼돌려 로비자금과 선거자금 등으로 썼다는 혐의가 있다는 고발장이 접수돼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발인 김모 씨는 최근 김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며 “중소기업 전용 홈쇼핑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컨소시엄 준비금 명목으로 출자된 3억 원을 김 회장이 빼돌려 정관계 로비자금과 중소기업중앙회장 선거자금으로 썼다”고 주장했다. 김 씨에 따르면 김 회장은 협동조합기능 활성화를 위한 특별회계 자금을 다른 용도로 쓰고 빼돌린 공금으로 특정 업체의 제품을 집중적으로 구매해 특혜를 제공한 의혹도 받고 있다.}

    • 2011-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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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스쿨 비정상적… 재검토해야”

    서울지방변호사회는 31일 서울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정기총회를 열고 제46대 대한변호사협회장 후보로 국내 대형 로펌인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를 지낸 신영무 변호사(67·사법시험 9회)를 추천했다. 신 변호사는 2601표를 얻어 2434표를 얻은 하창우 변호사(56·25회)를 167표의 근소한 표차로 제쳤다. 신임 변협 회장은 28일로 예정된 변협 정기총회에서 선출되며 전체 변호사의 70%가 소속된 서울변호사회의 대의원이 가장 많기 때문에 신 변호사의 당선이 확실시된다. 신 변호사는 총회 직후 “생존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국내 법률시장에서 청년 변호사의 생계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라며 “청년 변호사의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 그는 “연간 2500명이나 되는 변호사가 쏟아져 나오는 시장은 비정상적”이라며 “로스쿨제도를 재검토하고 변협에서 변호사자격시험을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신임 서울변호사회장으로는 오욱환 변호사(51·24회)가 선출됐다. 개업 경력이 2년에 불과한 30대 변호사로 돌풍을 일으켰던 나승철 변호사(34·45회)는 26표 차로 2위에 그쳤다. 오 변호사는 “변호사들이 공기업 대기업에 취업하도록 적극 지원하고 장차 행정고시가 사라지면 공무원으로 채용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말했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1-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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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영무 변호사 인터뷰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를 재검토하고 청년변호사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겠다." 31일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추천하는 제46대 대한변호사협회장 후보에 당선된 신영무 변호사(66·사법시험 9회)는 당선 직후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생존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국내 법률시장에서 특히 청년 변호사들의 생계는 심각한 상황"이라며 이 같이 밝혔다. 그는 "연간 2500명이나 되는 변호사가 쏟아져 나오는 시장은 분명 비정상적"이라며 "합격률을 조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변협에서 직접 시험관리를 하는 방안을 포함해 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 후보자는 변협의 사회적 역할이 과거보다 많이 떨어졌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후보자가 되니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각종 이슈와 선고로 갈라졌던 변호사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화합해 중요한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바른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로스쿨생들은 우리 법조계의 미래이자 희망이기 때문에 변협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꼭 만들어 드리겠다"며 "지금 당장은 불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를 믿고 사회 각 분야에서 법치주의와 국가발전을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대비를 잘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는 국내 법률시장 발전을 위한 정책 개발을 담당할 연구원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신 후보자는 "변협 내에 젊고 연구능력이 뛰어난 변호사 3, 4명이 배치된 정책개발연구원을 만들 것이라며 "위기의 법률시장을 발전시킬 방안을 주로 연구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1-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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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새 변협회장 신영무 변호사 당선 확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31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정기총회를 열고 서울변호사회가 추천하는 제46대 대한변호사협회장 후보로 신영무 전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67·사법시험 9회)를 선출했다.신임 대한변협 회장은 2월로 예정된 변협 정기총회에서 전국 14개 지방변호사회에서 추천한 후보들을 대상으로 한 대의원 투표로 선출되며, 전체 변호사의 약 70%가 회원으로 있는 서울변호사회의 대의원이 가장 많기 때문에 신 변호사의 당선이 확실시된다.신 변호사는 미국 뉴욕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 1980년 변호사로 개업해 이듬해부터 지금까지 30년간 세종의 대표변호사로 일해 왔으며, 이번 변협회장 선거 출마를 위해 법무법인 세종의 대표변호사직을 사임했다.한편 서울변호사회는 차기 서울변호사회장으로는 오욱환 변호사(51·사법시험 24회)를 선출했다. 30대의 젊은 변호사로 출마해 돌풍을 일으켰던 나승철 변호사(34·사법시험 45회)는 근소한 차로 2위에 그쳤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1-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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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연차 게이트 선고]‘16승 1무 2패’ 朴의 입 위력… 추징금 - 벌금만 471억원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27일 오후 2시 10분경. 대법원이 이광재 강원도지사에게 유죄 확정판결을 선고한 직후 황급히 법정을 빠져나와 차에 오르려던 이 지사의 부인 이정숙 씨는 심경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베이지색 코트 차림의 이 씨는 법정을 나서자마자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고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연방 눈물을 닦아냈다.차한성 대법관이 “피고인 이광재와 검사의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고 주문을 읽은 직후 일말의 희망을 품고 법정 안팎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 지사의 지지자들도 “유죄가 확실하냐”고 서로 물으며 당혹스러워했다.○ 이광재 서갑원 울고 박진 이상철 웃어이 지사를 포함해 ‘박연차 게이트’ 관련자 7명에 대한 대법원의 상고심 선고가 열린 이날의 최대 관심사는 이 지사와 서갑원, 박진 두 현직 국회의원이 자리를 지킬 수 있는가였다.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진술의 신빙성을 놓고 대법원 소부(小部)마다 판단이 엇갈린 것처럼 세 정치인의 운명도 희비가 엇갈렸다. 이 지사는 2006년 4월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의 한 식당에서 박 전 회장에게서 5만 달러를 받는 등 모두 9만5000달러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판단돼 지사직을 상실했다. 서 의원도 2006년 7월 미국 뉴욕의 한 식당에서 2만 달러를 받은 혐의는 무죄가 났지만 같은 해 5월 박 전 회장 소유의 골프장에서 5000만 원을 받은 사실이 유죄로 인정돼 의원직을 잃게 됐다.반면 박 의원은 2008년 3월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박 전 회장에게서 편지봉투에 든 2만 달러를 받은 혐의를 재판부가 “박 전 회장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며 무죄로 판단하고 1000만 원의 차명 정치후원금을 받은 부분만 벌금 80만 원을 선고하면서 가까스로 의원직을 유지하게 됐다. 박 전 회장에게서 2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기소됐던 이상철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박 전 회장 진술의 신빙성을 문제 삼아 무죄를 확정했다.○ 박연차의 ‘입’ 16승 1무 2패이로써 박연차 게이트는 재판에 회부된 21명 중 박 전 회장 본인과 대법원 상고심이 진행 중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을 제외한 19명이 모두 확정판결을 받으며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수사 착수 2년 2개월여 만에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2008년 11월 19일 대검찰청 중수부가 세종증권을 압수수색한 이후 27일까지 정확히 800일이 걸렸다. 유죄가 확정된 17명의 추징금과 벌금은 총 100억3438만 원. 박 전 회장(300억 원)과 천 회장(71억 원)의 항소심 벌금까지 합치면 무려 471억 원에 이른다.박 전 회장의 진술이 가장 중요한 증거였던 이들의 재판에서 박 전 회장의 ‘돈을 줬다’는 진술이 인정되지 않은 것은 박 의원과 이 전 부시장 2명뿐이다. 김정권 한나라당 의원은 이에 앞서 무죄가 확정됐지만 법원이 검찰의 법률 적용이 잘못됐다며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은 경우였다. 박 전 회장의 ‘입’은 이날 박 의원과 이 전 부시장의 무죄 확정판결로 ‘불패(不敗) 신화’는 깨졌지만 ‘16승 1무(김정권) 2패(박진 이상철)’로 사실상 완승을 거뒀다. 박연차 게이트는 연루된 인물들의 무게를 놓고 볼 때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권력형 부패사건이었다. 이 도지사와 서 의원을 비롯해 정상문 전 대통령총무비서관, 박정규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등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이 걸려들었다. 전직 국회의장 2명은 물론이고 이명박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천 회장,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을 지낸 추부길 씨 등 현 정권 인사들도 줄줄이 법정에 서야 했다.수사 도중 터진 노 전 대통령 서거로 거센 후폭풍을 맞긴 했지만, 전·현 정권의 실력자들이 재판 과정에서 대부분 유죄판결을 받으면서 검찰 안팎에서는 박연차 게이트 수사는 성공한 수사라는 평가가 주류를 이뤘다.전성철 기자 dawn@donga.com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1-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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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연차 게이트 선고]‘147일 도지사’ 이광재의 눈물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재판을 받아온 이광재 강원도지사와 서갑원 민주당 국회의원(전남 순천)이 27일 대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로 각각 도지사직과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에 따라 4월 27일 치러지는 재·보궐선거 지역은 국회의원 지역구 3곳(경기 성남분당을, 경남 김해을, 전남 순천)과 자치단체장 3곳(강원도지사, 울산 중·동구청장)으로 늘어났다. 대법원 3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이날 이 지사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추징금 1억1417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지사는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공직을 박탈하도록 한 정치자금법 규정에 따라 도지사직 수행 147일 만에 중도하차했으며 앞으로 10년간 피선거권도 박탈돼 공직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이 지사는 지난해 6·2지방선거에 출마해 당선됐지만 당선 직후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으면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직무를 정지시키는 지방자치법에 따라 7월 취임과 동시에 직무가 정지됐다. 하지만 같은 해 9월 헌법재판소가 지방자치법의 해당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도지사 업무에 복귀했다. 서 의원과 박진 한나라당 의원은 희비가 엇갈렸다. 대법원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박 전 회장에게서 불법 정치자금 5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서 의원에게 벌금 12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박 전 회장에게서 2만 달러와 차명후원금 1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박 의원도 같은 재판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로부터 벌금 8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이 확정됐다. 그러나 공직 박탈의 기준을 벌금 100만 원으로 삼고 있는 정치자금법 규정에 따라 서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한 반면 박 의원은 의원직을 유지하게 됐다.전성철 기자 dawn@donga.com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1-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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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연차 게이트 선고]‘노무현 640만달러’ 영구미제로 남나

    ‘박연차 게이트’ 사건의 핵심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640만 달러 수수 의혹은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영구미제사건으로 남았다. 그러나 조현오 경찰청장의 ‘차명계좌 발언’으로 논란이 재점화돼 검찰이 현재 수사 중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2009년 6월 12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박연차 게이트’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공소권 없음’ 처분을 하고 내사 종결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돼 진술한 피의자신문조서를 비롯한 관련 수사기록은 훗날 역사의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영구 보존했다. 당시 검찰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노 전 대통령의 혐의 요지와 돈이 건네진 단서를 포착한 경위 등을 설명하기도 했다. 수사는 끝났지만 노 전 대통령의 혐의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조 청장이 지난해 3월 말 서울지방경찰청장 시절 경찰 간부들에게 특강을 하는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이 차명계좌가 발견돼 자살했다’고 발언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파문이 일었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의 유족과 ‘노무현재단’은 조 청장을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이 사건은 현재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신유철)가 수사하고 있다. 곧이어 이인규 당시 대검 중수부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조 청장의 노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라고 밝혀 파문은 더욱 커졌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1-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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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당 후원금’교사·공무원 유죄]전교조-전공노 민노 당비 유죄

    민주노동당(민노당)에 가입해 후원금을 낸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기소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 소속 전현직 교사와 공무원 260명에게 법원이 유죄를 인정해 벌금 30만 원과 50만 원을 선고했다. 정당에 후원금을 낼 수 없는 교사와 공무원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러나 법원은 민노당에 가입해 당원이나 후원당원으로 활동한 혐의(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에 대해서는 공소시효(3년)가 지났다는 이유로 기소자의 대부분인 237명에게 면소(免訴) 판결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우진)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홍승면)는 26일 공무원과 교사의 정당 가입을 금지하고 있는 국가공무원법 및 정당법을 어기고 민노당에 가입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정진후 전 전교조 위원장 등 교사와 공무원 267명에 대한 1심 판결에서 이같이 선고했다. 검찰은 모두 273명을 기소했으나 이날 선고공판에 6명은 출석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후원금 납부 혐의에 대해 263명을 유죄로 판단했다. 이 가운데 260명에게는 벌금 30만 원과 50만 원을 선고하고 기부금액이 10만 원에 미치지 못한 3명에게는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착오로 후원금이 이체되는 등 혐의가 인정되지 않은 3명에겐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현행 정치자금법은 법이 정한 방법 이외에 일체의 정치자금 기부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며 “다만 이들이 정기적으로 납부한 돈이 소액이고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으로 잘못 알고 기부한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이들은 2005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매달 5000∼1만 원씩 민노당에 당비나 후원금을 낸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민노당 가입 혐의에 대해선 237명에게 면소 판결을, 23명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당법에 공무원과 교사의 정당 가입행위만 처벌규정이 있기 때문에 정당에 가입한 시점을 기준으로 공소시효를 따져야 하는데, 대부분이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밝혔다. 무죄가 난 23명의 경우 후원당원 또는 당우(黨友)로 가입했는데 이는 정식 당원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편 재판부는 교사의 정당 가입을 금지한 정당법 22조가 위헌이라는 피고인들의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초중고교 선생님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학생에게 인생의 좌표와 모범이 되는 존재”라며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교사의 정당 가입을 금지한 것이 교사의 정치적 자유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1-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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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만복 前국정원장 ‘비밀 누설’ 수사착수

    서울중앙지검은 26일 국가정보원이 김만복 전 원장을 국가정보원직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공안1부(부장 이진한)에 배당하고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김 전 원장은 최근 일본 월간지 ‘세카이(世界)’ 2월호에 ‘분쟁의 바다 서해를 평화와 번영의 바다로 만들기 위해’라는 글을 기고해 파문을 일으켰다. 김 전 원장은 이 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때 한국은 1, 2차 연평해전을 모두 이겼고 노무현 전 대통령 때에는 서해에서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다”며 “현 정부 들어 서해가 ‘전쟁의 바다’로 변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은 김 전 원장이 국정원에 재직할 때 알게 된 직무상 비밀을 누설한 혐의로 그를 검찰에 고발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1-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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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당 후원금’교사·공무원 유죄]법원 “교사는 학생 인생의 좌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 소속 전현직 교사와 공무원들의 민주노동당 가입사건에 대해 1심 법원은 당원 가입은 면소(免訴) 또는 무죄, 후원금 납부는 유죄 판결을 내렸다. 외견상으로는 교사와 공무원들에게 가벼운 벌금형에다 면소 판결이라는 면죄부가 주어진 듯하지만 판결 내용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교사 정당가입 금지는 합헌” 26일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판결 선고에 앞서 정진후 전 전교조 위원장 등 피고인 3명이 교사의 정당 가입을 금지한 정당법 22조가 헌법에 어긋난다며 낸 위헌법률제청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국민의 정치적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지만 동시에 헌법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다”면서 “교육의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교사의 정당 가입을 금지한 것이 교사의 정치적 자유권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검찰이 민노당 가입 교사 등을 기소하면서 그 명분으로 내세운 ‘교육과 공무원들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을 법원도 명확하게 인정한 셈. 재판부는 헌법재판소가 2004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정당법 22조가 위헌이 아니라고 결정한 점도 근거로 들었다. 교사나 공무원의 정당 가입 자체가 근본적으로 헌법에 어긋나는 행위라는 대전제를 먼저 밝힌 셈이다.○ ‘정당 가입 면소’는 공소시효 때문 재판부가 민노당 가입 행위에 대해 대부분의 피고인에게 ‘죄를 물을 수 없다’는 면소 판결을 내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교사나 공무원의 정당 가입이 정당성을 얻은 것은 아니다. 재판부가 면소 판결을 내린 것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법리적 이유 때문이었다. 그동안의 재판과정에서 검찰 측과 피고인 측은 정당가입금지 조항 위반이 ‘계속범’이냐, 아니면 ‘즉시범’이냐를 놓고 다퉈왔다. 검찰은 정당에 가입한 이후 가입 상태가 지속됐기 때문에 민노당에 가입한 뒤 탈당을 하지 않는 한 공소시효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피고인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법원은 ‘단체 가입’ 행위에 관한 대법원 판례가 1960년 ‘계속범’에서 ‘즉시범’으로 변경된 것에 근거해 교사 등의 민노당 가입도 ‘가입 행위’가 있었던 시점을 기준으로 공소시효(3년)를 따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민노당 가입 즉시 공소시효가 진행되기 때문에 검찰이 기소한 2010년 5월 6일을 기준으로 역산할 때에 2007년 5월 6일 이전에 가입한 사람들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정당법에 법적 미비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당법과 국가공무원법의 정당가입금지 조항이 ‘가입한 행위’에만 처벌 규정을 두고 ‘가입한 이후 당원으로서 활동한 행위’에 대해선 처벌 규정이 없어 맹점이 생긴다는 것. 다만, 적극적인 정당활동 행위는 국가공무원법의 정치활동금지 조항에 어긋나기 때문에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당비 납부는 대부분 유죄 인정 기소된 교사와 공무원들은 민노당을 후원하기 위해 돈을 냈다고 재판에서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현행 정치자금법은 법이 정한 방법 외에 일체의 정치자금 기부를 처벌하고 있기 때문에 피고인들의 주장에 따르더라도 법 위반은 당연히 성립한다”고 강조했다. “민노당에 직접 후원금을 내는 행위가 적법한 것으로 알았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에 대해선 “정치적 중립 의무가 있는 교사나 공무원으로서 정당에 후원금을 내는 것이 적법한지에 대해 충분히 의문이 들 수도 있었던 상황인데 선거관리위원회 등에 문의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 면소(免訴) 판결 ::공소시효가 지났거나 사면이 내려진 경우, 재판하는 시점에 해당 범죄와 관련된 처벌규정이 폐지됐거나 새 법령이 제정됐을 때에 재판부가 소송절차를 종결시키는 판결.:: 계속범(繼續犯) ::범죄가 발생한 시점 이후에도 지속되는 범죄. 공소시효는 범죄행위가 종료된 시점부터 시작된다. 예를 들어 감금죄는 피해자가 풀려난 이후부터 공소시효가 시작된다.:: 즉시범(卽時犯) ::살인, 강간 등과 같이 범죄행위가 시작하는 동시에 종료되는 범죄. 범죄행위가 성립되는 동시에 종료되기 때문에 범죄 발생 시점부터 즉시 공소시효가 시작된다.}

    • 2011-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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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당 후원금’교사·공무원 유죄]“피고인 출석 부르겠습니다” 진풍경

    “원래 한 분, 한 분 인적사항을 확인해야 하지만 시간 관계상 출석을 부르겠습니다.” 26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는 ‘민주노동당 가입 및 당비 납부사건’ 피고인 134명이 법정을 가득 메우고 앉아 있었다. 전현직 교사, 공무원인 이들은 법원 직원이 이름을 부를 때마다 손을 들고 “예”라고 대답했다. 이들의 자리에는 피고인별로 일일이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1986년 건국대 점거농성 사건(359명 기소) 이후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인 267명의 피고인에게 한꺼번에 선고가 이뤄지다 보니 2개 재판부는 495m²(약 150평) 규모로 법원 내에서 가장 큰 417호와 466호 대법정 두 곳에서 동시에 선고 공판을 열었다. 대법정 두 곳으로 피고인들을 나눴는데도 자리가 모자라 방청석의 3분의 2를 피고인들이 차지했다. 법정 입구에는 피고인들이 자기 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공연장이나 극장처럼 좌석 배치표가 붙어 있었다. 양쪽 법정의 두 재판장은 공소사실이 비슷한 피고인끼리 모아서 유형별로 판결을 선고했지만 이름을 일일이 읽어 내려가는 데에도 한참 걸려 판결 선고에 30분 넘게 소요됐다. 지난해 5월 검찰이 ‘전교조, 전공노 시국선언’ 사건처럼 법원별로 유무죄 판단이 엇갈리는 것을 막기 위해 273명 전원을 서울중앙지법에 한꺼번에 기소하자 법원은 피고인을 절반으로 나눠 두 재판부에서 심리를 진행해왔다. 300명에 가까운 피고인이 매번 법정에 나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한 법원은 정 전 위원장 등 일부 피고인이 대표로 법정에 나오게 해 재판을 진행했다. 결심공판 때에는 피고인의 최후 진술을 개별적으로 모두 듣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희망자에 한해 10∼20분씩 진술 기회를 줬다.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1-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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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법무부, 신정아 구치소 생활 인터뷰 반박

    예일대 박사 학위를 위조한 혐의 등으로 복역했던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38·여)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소개한 자신의 수감 생활에 대해 법무부가 홈페이지에 조목조목 반박하는 글을 올렸다. 신 씨는 이달 15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너무 추워 견디기 힘들었다"는 등 자신이 경험했던 구치소 생활을 소개한 바 있다. 인터뷰에서 신 씨는 "영등포 구치소에서 겨울을 두 번 났다. 담요 두 장으로 버텼는데 이가 딱딱 부딪쳐 잠을 못 이룬 날도 많았다"고 말을 꺼냈다. 법무부에 따르면 영등포 구치소 여자 사동은 겨울에 바닥 난방을 하며 매트리스와 솜이불을 추가로 지급한다. 법무부는 "아무리 구치소라도 냉방으로 방치하지는 않는다"고 반박했다. 신 씨는 유통기한이 2개월이나 되는 묽은 우유만 먹어 진한 우유가 그리웠다고 했다. 이에 대해서도 법무부는 "묽은 우유가 공급되는 것은 맞다"면서도 "시중에 판매되는 살균 우유는 유통기한이 짧다"고 해명했다. 이어 "구치소에는 냉장고가 없어 상온 보존이 가능하고 유통기한이 긴 멸균 우유를 공급하고 있다. 절대 이상한 우유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알몸으로 받는 신체검사에 대해서도 신 씨는 불만을 털어놨다. 그는 "신체검사를 받을 때 직원들이 수군대는 것 같아 수치스러웠다"고 했다. 또 다른 방에 있던 수감자 한 명이 한밤중에 자신에 대해 욕을 퍼붓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반입금지물품을 숨겨 들어오는 경우를 막기 위해 신체검사는 필수"라며 "여성 수용자는 여자교도관과 1대1로 신체검사를 받게 돼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누가 신 씨에게 욕을 했는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당시 같은 사동에 정신질환 수용자가 있어 소란을 피운 사실이 있었다고 한다"고 해명했다. 신 씨는 인터뷰에서 구치소에서 경험했던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어느 날 호송버스에 오르는데 담벼락 너머 남자구치소 쪽에서 '정아 누나 힘내'라고 적힌 종이를 흔들어대는 것을 봤다는 것. 그러나 법무부는 "영등포 구치소의 남자 사동과 여자 사동은 벽으로 차단돼 있고 거실창문도 펜스로 가려져 있다"며 "여자 수용자가 호송버스를 탈 때 남자 사동은 보이지 않고 거리도 15m 정도 떨어져 있기 때문에 종이에 적은 글씨까지 식별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법무부는 "구치소 생활이 내 집 안방처럼 따뜻하고 아늑하기도 힘들지만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해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꼭 알아 주셨으면 좋겠다"며 "큰 용기를 내 세상 밖으로 목소리를 낸 신 씨의 행보를 응원하며 관심 있게 바라봐 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글을 마쳤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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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가 외국인에 좀더 개방적 사회 됐으면”

    “꽃이 피면 벌이 모입니다. 그러나 벌이 들어오지 않으면 열매도 맺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외국인에게 좀 더 개방적인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63년 만에 10만 번째 귀화인으로 등록된 로이 알록 꾸마르 부산외국어대 교수(55·인도어과)는 24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귀화증서를 받은 뒤 이렇게 말했다. 로이 교수는 1979년 인도 델리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1980년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한국을 찾았다. 한국인과 결혼해 두 딸을 두었으며 1985년 서울대에서 외교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89년 부산외국어대 교수로 부임한 그가 31년 만에 한국인이 된 것이다. 한국은 그에게 제2의 조국이지만 섣불리 귀화를 결정하지 못했다. 인도 국적을 포기해야 하는 데다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문화 때문이었다. 그는 부산발전연구원 자문위원, 부산일보 독자위원 등으로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지만 외국인이란 이유로 연구 프로젝트를 주도할 수 없었고 지원금을 받기 어려웠다. 그는 “한국의 담을 넘어 마당까지는 들어왔는데 ‘안방 열쇠’를 차지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제가 귀화에 성공한 것은 한국 사회가 선진화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그는 최인훈의 ‘광장’을 힌디어로 번역해 2005년 출간하는 등 한국을 인도에 알리는 데 힘써 왔다. 앞으로는 인도를 한국에 널리 알리는 데 주력할 생각이다. 과천=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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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만번째 귀화인, 로이 알록 꾸마르 교수

    "꽃이 피면 벌이 모입니다. 그러나 벌이 들어오지 않으면 열매도 맺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외국인에게 좀 더 개방적인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63년 만에 10만 번째 귀화인으로 등록된 로이 알록 꾸마르 부산외국어대 교수(55·인도어과)는 24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귀화증서를 받은 뒤 이렇게 말했다.로이 교수는 1979년 인도 델리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1980년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한국을 찾았다. 한국인과 결혼해 두 딸을 낳으며 1985년 서울대 외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989년 부산외국어대 교수로 부임한 그가 31년 만에 한국인이 된 것이다.한국은 그에게 제2의 조국이지만 섣불리 귀화를 결정하지 못했다. 인도 국적을 포기해야 하는데다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문화 때문이었다. 그는 부산발전연구원 자문위원, 부산일보 독자위원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지만 외국인이란 이유로 연구 프로젝트를 주도할 수 없었고 지원금을 받기 어려웠다. 심지어 인터넷 사이트 하나 가입하는 것조차 외국인 신분으로는 어려웠다. 이미 한국 국적을 취득한 두 딸도 그에게 "우리는 한국 100%, 인도 100%를 합치면 200%의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사람들은 우리보고 50%만 한국인이라고 말한다"고 토로할 때가 많았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의 가슴은 미어졌지만 그렇다고 딸들을 위해 딱히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그러나 그는 그래도 한국이 좋았다. 주변에서는 동북아정치를 공부하려면 중국이나 일본으로 유학을 가라고 권유했다. "남들이 다 하는 것보다 새로운 것을 해보자는 생각이 컸고 무엇보다 한국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었어요," 그는 이 선택을 한 번도 후회해 본적이 없다. 당시 인도인들에게도 낯설었던 한국은 그에게 '블루 오션'이기도 했다.로이 교수가 귀화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외국인으로서 살아야 하는 불편을 덜고자 하는 목적도 있지만 무엇보다 한국인들의 문화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의 유입이 늘고 다문화사회로 접어들면서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문화도 많이 사라지게 된 것. 한국 사회의 이런 변화는 로이 교수의 생각도 바꿨다. 그는 이제 "국적 자체가 어디 있는 게 중요하지 않고 내가 밟고 있는 땅에 대한 고마움만 있으면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그는 "한국의 담을 넘어 마당까지는 들어왔는데 '안방 열쇠'를 차지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제가 귀화에 성공한 것은 한국 사회가 선진화된 결과이고 소외 받는 사람들의 자존심을 살려준 일이라 생각한다"고 지난 31년을 회고했다. 그러나 그의 소망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국제화는 대단한 게 아니라 '마음의 다문화주의'라고 생각해요.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유럽의 부국 룩셈부르크가 외국인들의 활약 없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요? 한국 사회는 좀 더 열려야 할 부분이 여전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로이 교수는 해외 우수인재 등에게 복수국적을 허용한 개정 국적법이 올해부터 시행됨에 따라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다. 복수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인도 국적법에 따라 곧 인도 국적을 포기해야 하지만 그는 그동안 최인훈의 '광장'을 부산외국어대 노영자 교수와 함께 힌디어로 번역해 2005년 출간하는 등 인도에 한국을 널리 알리는데 힘써왔다.앞으로는 한국에 인도를 널리 알려볼 생각이다. 한국인이 된 그의 꿈은 인도 관련 연구소를 세워 인도를 제대로 연구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 "타고르는 벵골어로 시를 썼지만 한국에 들어온 타고르의 시는 일본어나 영어를 번역한 것이 대부분이에요. 타고르와 인도를 제대로 알려면 벵골어로 된 타고르의 시를 직접 한국어로 번역해야 하지 않을까요? 타고르의 문학이 언어의 차이 때문에 정신이 퇴색되는 것도 있거든요. 연구소를 세운다면 이런 일들을 해보고 싶어요.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더 재미있고 알차게 연구할 수 있겠죠?"한국인으로서 살아가게 될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는 그의 눈은 희망으로 가득했다.과천=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1-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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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대석]3년 연속 우수법관에 뽑힌 ‘황적화’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대한민국 법관의 전형은 명문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20대 후반에 임관한 엘리트다. 시대가 바뀌며 법관의 출신학교와 전공이 다양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현직 법관의 절반 이상은 서울대 출신이다. 그러나 최근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들은 덕수상고를 졸업하고 한국은행에 다니며 주경야독으로 성균관대 야간대학을 나와 33세에 늦깎이로 임관한 서울중앙지법 황적화 부장판사(55·사법시험 27회)를 ‘최고 법관’으로 꼽았다. 변호사들은 2010년의 우수 법관으로 15명을 선정했는데 황 부장판사는 유일하게 3년 연속 우수 법관의 기록을 세웠다. 법원 내에서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이력만 보면 의외의 일로 볼 수 있다.○ 강자에겐 엄격하게, 약자에겐 관대하게 왜 변호사들은 황 부장판사를 계속해서 우수 법관으로 꼽았을까. 이들이 쓴 법관 평가서에는 “당사자에게 재판 진행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구하고 증거를 채택할 때도 심사숙고한다”(A 변호사), “궁금한 점이나 부족한 점도 충분히 심리해 당사자들의 불만이 없다”(B 변호사)고 적혀 있었다. 황 부장판사가 재판장이었던 소송을 맡았던 한 변호사는 “처리해야 할 사건이 많으면 재판장도 마음이 급해 대리인이나 당사자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끊기 마련인데 황 부장판사는 늘 양쪽의 말을 충분히 들어줬다”고 기억했다. 그는 “한번은 소송 당사자와 함께 법정에 간 적이 있는데 당사자가 ‘저 재판장님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잘 들어주신 것 같아 참 다행이다’라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특히 황 부장판사는 돈이 없어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해 직접 소송에 임하는 당사자나 사법연수원을 갓 수료한 신출내기 변호사들이 법정에 나올 때에는 법리나 소송 절차를 몰라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청’과 ‘배려’, 이것이 그의 재판 진행 핵심코드인 셈이다. 그의 판결 성향은 어떨까. 2004년 12월 군산지원장으로 있을 때 그는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여당 국회의원에게 검찰이 300만 원을 구형했지만, 그 3배가 넘는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하는 등 정치인과 공직자들에겐 가혹하리만치 엄한 형을 내렸다. 그가 2008년 10월 법률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털어놓은 또 다른 일화. “가난한 집안의 어떤 소년이 술에 취해 사는 아버지에게 항의하며 다투던 중 뜻밖에 아버지가 뒤로 넘어지는 바람에 뇌진탕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소년 피고인이 법정에서 오열하며 장시간 최후진술을 했다. 죄에 대한 벌을 면할 수는 없겠으나, 그 삶이 슬프지 아니한가.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멍에를 짊어진 채 죄책감으로 몸부림치는 피고인의 정상이 너무나 안쓰러워 필자의 목울대가 아파오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의 사표(師表)는 김홍섭 판사” 우수 법관 선정 이후 그는 언론의 잇따른 인터뷰 요청을 피해 왔다. 19일 오전 어렵게 그를 사무실에서 10분가량 만날 수 있었다. 무작정 질문부터 던졌다. ―이번 법관 평가 결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기자분들한테 전화가 여러 통 왔는데 안 받았습니다. 그 발표 때문에 참 난감하게 됐습니다. 다른 훌륭한 판사님들도 많은데…그분들에게 누를 끼칠 수 없습니다.” ―다른 판사들이 훌륭하신 분이니 꼭 인터뷰하라고 추천하던데요. “정말 죄송하지만 법관이 인터뷰하는 건 곤란합니다. 이해해 주세요.” ―과거에 은행에 근무하다 판사가 됐는데…. “어릴 때 집안 형편이 많이 어려워서 상고를 나왔습니다. 당시엔 상고생들이 은행에 취업하면 최고라고 생각했어요. 운이 좋아서 합격했는데 낮에는 직장생활을 하고 야간대학을 가서 사법시험을 쳤습니다. 그때 은행에서 배운 것들이 재판할 때 도움이 많이 됩니다.” (그의 부모는 황해도에서 부산으로 피란 와 1956년 그를 낳았다. 의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가난했지만 인술을 펴다 일찍 돌아가셨다고 지인들은 전한다.) 그는 추가 질문을 정중히 사양하면서 그 대신 사법연수원 교수 시절(2005∼2007년) 법조인의 길을 막 나서려는 연수원생들을 위해 연수원 소식지인 ‘미네르바’에 썼던 글을 건네줬다. “김홍섭 판사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도 재소자에게 종교서적을 사다 주는 휴머니스트, ‘사람이 사람을 재판할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 법철학자였다. 여러분도 위대한 법관이자 법철학자가 남긴 고결한 삶의 우물에 두레박을 던져 넣고 보석 같은 영감을 건져 올렸으면 좋겠다. 훌륭한 선배들이 깨끗한 양심을 지키고 청죽(靑竹) 같은 소신을 묵묵히 실천해 왔고 후배들을 위해 오늘날의 터전을 닦아 놓았음을 잊지 말길 바란다.” ―요즘엔 그같이 청빈한 법관은 드물지 않나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법원에 김홍섭 판사와 같은 훌륭한 분들이 여럿 계십니다. 저도 그분처럼 ‘성자(聖者) 법관’의 길을 따르고 싶습니다.”○ “선비정신을 구현하는 판사” 동료 법조인들은 그를 어떻게 바라볼까. 고교 1년 후배이자 한국은행에 함께 근무하다 법조계에 입문한 박충근 변호사는 “업무에는 한없이 엄격하지만 약자를 배려하는 인간미 넘치는 법관”이라고 평가했다. 박 변호사는 “황 부장판사는 경기 군포시의 30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버스로 출퇴근할 정도로 모든 생활이 검소하다”며 “무슨 청탁이라도 있을까 봐 고교 동문은 물론이고 외부인을 일절 만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전했다. 재경 지법의 한 판사는 “공정과 청빈을 신념으로 ‘선비정신’을 재판에서 구현하는 판사”라며 “법원이 엘리트 집단으로, 일반인들과 괴리가 크다는 인식이 퍼진 상황에서 그가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법원으로서도 기쁜 일”이라고 말했다. 사법연수원 교수 시절 제자인 정병선 변호사는 “딱딱한 법리를 자신이 직접 겪은 다양한 사회 경험을 배경 삼아 쉽게 설명해 주셨다”며 “제자들에게도 높임말을 쓸 정도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늘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인품은 큰 배움이 됐다”고 기억했다.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고무신 신고 버스로 법원 출근… 법학도의 ‘영원한 스승’▼황 판사가 닮고 싶은 故김홍섭 판사는 황적화 부장판사가 존경하는 법관으로 꼽은 고 김홍섭 판사(1915∼1965·사진)는 생전에 ‘사도법관(使徒法官)’으로 불렸다. 공정한 법집행에 대한 올곧은 신념과 청빈한 생활을 끝까지 지켰던 김 판사는 지금도 법학도들의 영원한 스승으로 추앙받고 있다. 1915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 니혼(日本)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1940년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해 나중에 초대 대법원장이 된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과 함께 변호사로 활동했다. 광복 후 서울지검 검사로 일하다 서울지법 판사로 재부임해 1960년 대법원 판사를 지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자신이 판결한 사형수들의 대부(代父)를 자임하고 유가족들을 돌봐 ‘법복을 입은 성직자’로 통했다. 서울고법원장을 끝으로 법복을 벗고 1965년 폐암으로 별세하자 그의 영정사진 밑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사형수 10여 명의 사진이 함께 놓이기도 했다. 김 판사는 늘 흰 고무신을 신고 버스를 타고 출퇴근했다. 점심은 집에서 싸온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1959년 전주지방법원장에 임명됐을 때도 이런 차림으로 취임식장에 가려 하자 지인들이 외투를 사줬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처가에서 보내준 쌀조차 되돌려 보낼 정도로 그의 삶은 청빈했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1-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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