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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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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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성-신의주 북녘 땅까지… 통일의 열차는 달리고 싶다”

    《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할 유라시아 친선특급이 14일 1만4400km의 대장정에 나섰다. 이번 행사는 통일의 초석을 쌓자는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 중 하나로 진행되는 것이다. 정·재계와 문화계 인사 등 친선특급 참가자 246명은 이날 서울역사 등에서 19박 20일간 대장정의 발대식을 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영상 메시지에서 “이번 대장정은 우리 국민의 통일에 대한 염원과 꿈을 함께 안고 달리는 여정”이라며 “그 꿈은 70년 동안 남북을 갈라놓은 분단의 역사를 마감하고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과 소통하고 연결하여 통일의 미래로, 원대한 미래로,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 황금색 열쇠를 무대 위 준비된 열쇠구멍에 집어넣자 대한민국에서 북한을 거쳐 베를린까지 이어지는 ‘꿈의 철도(Dream Rail)’ 노선에 환한 불이 들어왔다. 14일 서울역에서 열린 ‘유라시아 친선특급’ 발대식에 참가한 원정대는 환호성을 터뜨렸다. 이날 국악단 ‘소리개’의 축하 공연으로 막을 연 발대식에는 조태용 외교부 제1차관, 최연혜 코레일 사장, 정종욱 광복70년기념사업위원회 위원장, 강창희 전 국회의장, 외교사절 등이 참석했다. 한국 정부 주관으로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달리는 것은 2002년 이후 두 번째. 중국횡단철도(TCR) 구간도 포함된 이번 유라시아 친선특급은 △소통·협력의 열차 △미래·창조의 열차 △평화·화합의 열차라는 3가지 주제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국정 과제인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번 행사에는 이준 열사의 외증손자 조근송 씨(60), 안중근 의사의 재종손 안현민 씨(22·여), 손기정 선생의 외손자 이준승 씨(48)가 동참했다. 과거와 현재의 맥을 잇는다는 의미다. 조 씨는 “‘헤이그 특사’로 독립운동가들이 걸어갔던 길을 자손들이 간다는 데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일반인 참가자 송민선 씨(21·여)는 “넓은 대륙을 기차로 가로질러 간다는 것에 기대 반, 걱정 반이다. 북한까지 열차로 지나갈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한-러 수교 25주년 의미 더한 이벤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3년 10월 한국을 방문한 이래 양국 간에는 정상회담이 이어지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국제 제재로 한국 대통령의 답방이 이뤄지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5월 러시아 전승기념절 행사에 초청받았지만 불참하면서 소원해진 한-러 관계는 이번 친선특급 행사를 통해 새로운 활기를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15일 친선특급의 출발역인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해 기착지인 하바롭스크, 이르쿠츠크, 노보시비르스크, 예카테린부르크 등에서 러시아 주 정부의 환영행사가 이어진다. 모스크바에서는 한-러 수교 25주년 기념음악회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는 ‘독-폴란드 과거사 화해 경험’ 공유 세미나가 각각 열린다. 종착지인 베를린에서는 전승기념탑과 브란덴부르크문까지 통일기원 행진을 한 뒤 폐막 공연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해상 운송보다 경쟁력 높은 철도 한반도가 대륙과 철도로 연결되면 운송 기간, 운임 등에서 혜택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인수 코레일 연구원장은 “부산에서 모스크바까지 철도 운송 거리는 1만2230km, 시간은 21일이 걸려 해상 운송(2만3000km, 35일)보다 시간은 40%, 운임은 23%가 절감된다”고 밝혔다. 코레일은 열차 궤도의 폭(궤간) 차이 극복과 대량 환적 시스템, 통관 간소화 등이 이뤄지면 부산에서 모스크바까지 운송 시간을 8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내륙국가인 중앙아시아 등 유라시아 국가들로서는 철도는 경제·교역의 핵심이다. 독일철도(DB AG)는 2011년부터 독일 라이프치히∼중국 선양 컨테이너 열차 정기 운행을 시작했다.○ 북한 구간이 빠진 ‘연결고리’ 한반도가 철도로 대륙과 연결되면 자연스레 일본을 우리 경제권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도 예상된다. 러시아의 ‘2030 철도발전전략’, 중국의 ‘4종4횡(4縱4橫) 프로젝트’ 등 인접국들의 철도연결 의지도 높다. 문제는 북한 구간이 미연결로 ‘끊어진 고리’ 상태라는 점. 남북이 연결되지 못하면 한반도 철도의 대륙 연결 꿈을 실현하기 어렵다. 이번 유라시아 친선특급을 앞두고도 정부는 다각도로 북한 구간 통과를 시도했으나 불발됐다. 남북한이 철도로 연결하는 방법은 4가지. 경의선(서울∼신의주), 금강산선(서울∼금강산), 경원선(서울∼원산), 동해북부선(강릉∼원산)이다. 이 가운데 경의선은 도라산∼개성 구간이 연결돼 언제라도 열차가 지나갈 준비가 끝났다.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는 화물열차 터미널과 화물 적치장, 세관도 완비돼 있고 2008년 11월까지 실제 열차가 오갔다. 하지만 그 이후 남북 간 긴장 때문에 열차는 멈췄고 시설은 녹슬어가고 있다. 정부는 올해 한국 단독으로 공사가 가능한 경원선 백마고지∼월정 8.5km 구간에 대한 보수작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정윤철 trigger@donga.com·김민 기자}

    • 2015-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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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등생 여제자 성추행 60대 교사 구속

    제자들을 성추행한 60대 초등학교 교사가 구속됐다. 서울지방경찰청 성폭력특별수사대는 수차례 미성년자 제자들을 성추행한 혐의(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60대 박모 씨를 구속했다고 13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서울 중랑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인 박 씨는 5월 학생들을 인솔해 체험활동을 다녀오는 버스 안에서 제자인 A 양(11)에게 강제로 입을 맞추는 등 상습적으로 제자들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피해 아동으로부터 다른 학생들도 피해를 봤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박 씨는 주로 단둘이 있는 빈 교실에서 피해 아동들을 무릎에 앉히고 신체 접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의 혐의는 피해 아동의 부모의 신고로 드러났으며 경찰은 박 씨의 강제추행이 1년여에 걸쳐 상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씨는 혐의를 전면 부인했지만 법원은 박 씨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박 씨가 학교에서 여러 특별활동에 관여해온 것으로 알려지면서 경찰은 아동보호 전문기관과 함께 해당 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전수조사에 나설 예정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5-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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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례 김구, 증혼 조소앙… 붉은 증서에 새긴 광복군 부부의 결혼서약

    1970년 2월 서울 동작구 상도동. 불이 활활 타는 2층 단독주택 앞에 박천민 씨(60·여)가 서 있었다. 당시 박 씨의 나이는 17세. 그의 어머니는 아직 불길이 번지지 않은 1층에서 궤짝 두 개를 끌고 나왔다. 어머니는 다급하게 “너는 어디에도 가지 말고 이걸 지켜라. 이건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가보란다”라고 말했다. 박 씨는 불이 꺼질 때까지 꼼짝 않고 궤짝을 지켰다. 교복과 책이 불에 타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차마 움직일 수 없었다. 잠시 뒤 불은 꺼졌지만 2층은 모두 타버렸고 1층은 물바다가 됐다. 일주일 뒤 박 씨는 중학교 졸업식에 사복을 입고 갔다. 그 대신 그가 지켰던 궤짝은 무사했다. 결혼한 뒤 남편을 따라 지방을 돌아다니던 박 씨가 잊고 있던 궤짝 앞에 다시 선 것은 50대 후반 무렵. 노환으로 몸이 편찮아진 어머니가 그에게 가보를 맡긴 것이다. 6·25전쟁 때 어머니가 궤짝 속 물건들을 목숨처럼 소중히 지켰다는 사실도 이때 처음 알았다. 궤짝을 열자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중국을 누볐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의 흔적들이 한 아름 쏟아졌다. 박 씨의 아버지 남정 박영준(1915∼2000)은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를 조직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서 근무했다. 박 씨의 어머니 신순호(1922∼2009)는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인 신규식의 조카이자 광복군의 일원이었다. 그리고 박 씨의 할아버지는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남파 박찬익(1884∼1949)이다. 2009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4년 뒤 오빠마저 세상을 떠나자 박 씨는 궤짝 속 자료를 비롯해 부모의 유품을 박물관에 기증하기로 결심했다. 지난해 7월부터 현재까지 박 씨가 경기 용인시 경기도박물관에 기증한 자료는 2129점에 달한다. 기증품 가운데 눈길을 끄는 건 박영준과 신순호의 붉은색 결혼증서다. ‘우리 두 사람이 오늘에 부부를 맺고…’로 시작하는 증서에는 ‘주례 김구, 증혼 조소앙’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기록에 따르면 이 결혼식은 1943년 12월 12일 중국 충칭 우스예항 임시정부 청사 대강당에서 치러졌다. 강당은 독립운동가 가문의 경사를 축하하는 한국인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한다. 이날 신부가 입은 중국식 전통 의상 치파오도 기증됐다. 이 밖에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사진, 단군 영정, 광복군 훈련 사진 등 다양한 자료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박 씨가 기증한 자료는 23일부터 10월 25일까지 ‘어느 독립운동가 이야기’라는 주제로 전시될 예정이다. 김성환 경기도박물관 전시교육부장은 “박 씨의 가족사 자체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 그 자체”라며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국사 교사를 지냈던 박 씨는 “어머니는 과거 중국에서 학교 다닐 때 중국인들로부터 ‘망국노’라고 불린 것을 내내 가슴 아파했다”며 “그 말을 다시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역사를 가슴에 새겨야 한다”고 말했다.용인=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5-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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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원, “부러진 신용카드도 살상 가능한 ‘흉기’” 판단

    부러진 신용카드는 흉기로 볼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북부지법 형사3 단독 곽정한 판사는 옛 여자친구를 찾아가 폭력을 휘두른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김모 씨(33)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12일 밝혔다. 김 씨는 지난해 12월 22일 오전 4시 20분 경 서울 중랑구 한모 씨(34·여)의 집에 술에 취한 상태로 찾아갔다. 경찰에 신고했다는 이유로 화가 난 김 씨는 한 씨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목을 졸랐다. 그 뒤 주머니 속에 있던 신용카드를 꺼내 손으로 부러뜨리고 한 씨의 목에 겨누며 위협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 과정에서 김 씨가 사용한 신용카드가 흉기가 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변호인은 “신용카드는 부드러운 고무 재질로 되어 있어 법에 명시된 흉기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곽 판사는 “김 씨가 사용한 카드는 고무가 아닌 딱딱한 플라스틱 재질”이며 “부러진 카드의 날카로운 면이 사람의 피부를 쉽게 찢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변호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 관계자는 “다른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라도 그것이 생명이나 신체에 해를 가하는 용도로 사용되면 흉기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5-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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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박 중독으로…죽마고우 집 지붕타고 들어가 6500만원 훔친 30대

    집을 비운 시간 6분. 5월 5일 오후 7시 경 임모 씨(33)는 이 짧은 순간 현금 6500만 원을 도난당했다. 밤새 포장마차를 운영하기에 은행에 들를 시간이 없어 옷장에 보관해 둔 돈이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골목 입구 설치된 폐쇄회로(CC)TV부터 살펴봤다. 하지만 아무도 오간 흔적이 없었다. 두 달 남짓 시간이 지나 경찰이 검거한 범인은 놀랍게도 임 씨가 초등학생 때부터 알던 친구 조모 씨(33)였다. 어릴 적 이웃집 지붕을 넘어 임 씨의 집으로 놀러오곤 했던 조 씨가 같은 방법으로 침입했던 것이다. 앞 집 지붕을 타고 임 씨 집의 열린 창문을 통해 내부로 들어갔다고 조 씨는 경찰에 진술했다.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면장갑까지 착용한 상태였다. 조 씨가 친구의 돈을 훔친 이유는 부족한 도박 자금이었다. 4월 마카오 카지노를 우연히 찾은 조 씨는 8000만 원이 넘는 돈을 땄다가 모두 날렸다. 그 후 도박 중독에 빠졌고 은행 대출은 물론 친구들에게까지 손을 벌리다 여의치 않자 오랜 친구의 집까지 털게 된 것이다. 서울 혜화경찰서는 입·출국 내역과 은행거래 내역을 분석해 조 씨를 피의자로 특정하고 1일 검거했다. 친구에게 훔친 돈은 이미 도박으로 탕진한 상태였다. 경찰은 조 씨를 야간주거침입절도 혐의로 구속했다고 7일 밝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5-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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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찰 사칭해 수천만원 챙긴 보이스피싱 일당 구속

    검찰 관계자를 사칭한 보이스피싱으로 10여명에게서 수천만 원을 가로챈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강북경찰서는 중국에 보이스피싱 콜센터를 차린 뒤 피해자들에게 돈을 가로챈 혐의(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법률 위반)로 텔레마케터(TM) 김모 씨(28)와 모집책 안모 씨(33) 등 4명을 구속했다고 5일 밝혔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 지능범죄수사부 검사와 검찰수사관을 사칭해 피해자들에게 “당신 계좌가 금융사기 범행에 사용됐다”고 속여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13명에게 7200만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조선족과 한국인으로 구성된 이 일당은 각자 역할을 나눠 피해자들을 속였다. 먼저 검찰수사관을 사칭한 첫 번째 TM이 “금융사기단을 검거했는데 당신의 계좌가 입출금에 이용됐다. 계좌를 보호해야 하니 검사에게 전화를 연결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 전화를 넘겨받은 두 번째 TM이 피해자를 가짜 검찰청 사이트로 접속하게 만든 뒤 개인정보·계좌번호·비밀번호·보안카드 숫자 입력을 유도하거나 직접 계좌로 돈을 송금하라고 지시하는 식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 중 절반 이상이 20대 여성이었다”며 “대부분이 ‘협조하지 않으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피의자의 말에 놀라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보이스피싱 조직의 총책과 관리책 등을 검거하기 위해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5-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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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료 구하려 최선다했지만… 죽음 지켜봐야했다”

    지난달 29일 중국으로 역사문화탐방에 나섰던 지방행정연수원 연수단 가운데 사고 버스에 타지 않은 공무원 103명과 지방행정연수원 관계자 등 105명이 3일 귀국했다. 이날 오후 4시 50분경 대한항공 KE870편을 통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일행은 굳은 표정으로 입국장을 빠져나왔다. 티셔츠에 등산복 바지, 운동화 등 출발할 때처럼 편한 복장이었지만 모두 긴장과 피로에 지친 모습이었다. 일부는 고개를 푹 숙였다. 지친 모습에도 불구하고 담담하게 소회를 밝히던 일부 공무원들은 사고 차량에 탔던 동료들 이야기가 나오자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공무원들은 동료를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괴로워했다. 경남도 정태호 사무관(52)은 “사고 발생 후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40여 분간 동료들뿐 아니라 중국 현지인들까지 사고 버스를 들어올려 다친 사람들을 구하려고 노력했다”며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이 구조대를 기다리며 동료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다”고 말했다.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운전사의 부주의로 추정했다. 그는 “속도를 늦춰야 하는 커브길에서 감속하지 않고 가는 바람에 사고가 난 것 같다. 바로 뒤에서 봤을 때도 앞선 버스가 좀 빨리 간다는 느낌이 있었다”고 말했다. 정 사무관의 동료인 김모 사무관은 “국민께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하고 동료들을 중국에 두고 돌아오게 돼 비통하다”고 말했다. 지친 표정의 공무원들은 연수원에서 마련한 버스 2대를 나눠 타고 귀가했다. 이날 함께 귀국한 송재환 지방행정연수원 교수부장은 “생존자들의 심리치료를 지원하는 한편 일시 중단된 연수 프로그램을 12월 초까지 계속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사고로 인한 부상자 가운데 중상자가 5명에서 8명으로 늘어났다. 경상자는 11명에서 8명으로 바뀌었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모든 환자가 의식이 있고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환자는 없다”며 “부상자 16명 모두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인천=박성진 psjin@donga.com / 김민·송충현 기자}

    • 2015-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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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용직서 사무관 올랐는데… 아들 공무원합격 소식 못듣고…

    “남편이 아직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요. 그토록 기다리던 소식을 듣지 못하고 떠나선 안 돼요….” 중국 버스 추락사고로 숨진 한금택 사무관(55·인천 서구)의 부인 A 씨(51)는 2일 쏟아지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이날 한 사무관의 둘째아들(25)이 지방소방공무원 채용시험에 최종 합격했다는 통지를 받은 것이다. 공무원을 천직으로 여겼던 한 사무관은 아들의 합격을 누구보다도 절실히 바랐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 저 소방공무원 됐어요”라는 아들의 말을 듣지 못한 채 생을 달리했다. A 씨는 “애 아빠가 얼마나 힘들고 억척스럽게 살아온 분인데…. 그깟 교통사고로 우리 얼굴도 보기 전에 눈을 감을 리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동료들에 따르면 한 사무관은 글씨를 아주 잘 썼다고 한다. 공직생활도 1985년 인천시 ‘필경사’ 일용직으로 시작했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 공공기관마다 펜으로 문서를 쓰거나 그래프를 그리는 전문 일용직이 있었다. 그는 1990년 일반행정직 9급 시험에 합격해 정식 공무원이 됐다. 2012년 사무관으로 ‘늦깎이’ 승진을 한 뒤 2년간 동장을 지냈다. 한 동료는 “아주 조용한 성격이지만 복잡한 업무를 소리 소문 없이 합리적으로 잘 처리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한 사무관은 고향인 전남 여수에서 고교를 나온 뒤 공무원 재직 중 주경야독 끝에 전문대를 졸업했다. 강범석 인천 서구청장은 “사무관 승진하고 동장과 복지담당 과장을 지내며 너무 고생했다. 잠시 숨을 돌리라는 취지에서 6개월간 장기교육을 받도록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또 다른 사고 희생자인 고 김태홍 사무관(55·부산시)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공무원이 됐다. 김 사무관의 형 김장근 씨(62)는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도 재직 중 과로로 뇌출혈을 일으켜 돌아가셨다. 아버지 제삿날(6월 29일) 이틀 뒤에 동생이 사고를 당한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눈물을 흘렸다. 부인 이모 씨(48)는 “바보처럼 착하게 살다가 이렇게 허무하게 가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제발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며 오열했다. 김 사무관은 2005년 ‘청백봉사상’을 비롯해 지금까지 7번이나 표창을 받았다. 절친한 동료인 김동렬 사무관(54)은 “20년 동안 친구로 지내오면서 10년을 같은 부서에 근무했다”며 “법이 없어도 살 만큼 온화하고 성실한 친구였다”고 말했다. 두 딸을 둔 김 사무관은 매달 한 번씩 동료들과 노인복지시설을 찾아 봉사활동을 했다. 퇴직 후 ‘봉사’를 제2의 천직으로 삼기 위해 지난해 독학으로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땄다. 고 한성운 사무관(54·경기 고양시)은 불우 청소년들의 ‘등불’이었다. 고양청소년쉼터 ‘둥지’에 따르면 한 사무관은 어릴 때 부모를 잃고 방황하던 장모 씨(22)를 위해 직접 일자리를 구해줬다. 또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른 청소년들의 검정고시 응시를 돕거나 취업교육을 주선했다. 둥지의 김영광 소장은 “한 사무관은 아동청소년 업무를 보면서 정말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며 “지난달 13일 (한 사무관) 큰딸의 결혼식에도 다녀왔는데 이런 일을 당하다니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 이만석 사무관(55·강원 춘천시)은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중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방송통신고를 졸업한 뒤 21세에 공무원이 됐다. 그는 남다른 소신의 공무원으로 유명했다. 동장 시절 시의회에 출석했을 때 의원들이 질의 없이 회의를 마치려 하자 “시민들을 위해 뛰어야 할 바쁜 사람들을 불러놓고 질의조차 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하지만 직원들에게는 따뜻한 동료였다. 한 직원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었다. 성실하고 꼼꼼해서 특히 회계분야에서 탁월했다. 연수 가기 전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며 ‘잘 다녀오라’고 했는데 그게 마지막 인사가 됐다”며 안타까워했다.인천=박희제 min07@donga.com / 부산=강성명 / 김민 기자}

    • 2015-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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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게서 일해줘 고마워” 알바생을 웃게한 메모 한장

    “몇 년 동안 받은 칭찬 중에서 과분하다고 생각되는 게 하나 있어요. ‘내가 무슨 복이 있어서 진주 씨를 만났을까’라고 우리 사장님께서 제게 해주셨던 칭찬인데요, 저는 힘들 때마다 이 한마디를 떠올리면서 큰 힘을 얻어요.” 동아일보와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아르바이트 전문 취업포털 알바몬이 개최한 ‘착한 알바 수기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박진주 씨(24·여)의 수기 중 일부다. 박 씨는 지난해 3월 대학에 복학하면서 용돈을 벌기 위해 이디야커피 시흥시화점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그는 “이곳에서의 경험이 ‘고용주와 알바생의 관계는 임금을 주고받는 사이일 뿐’이라는 통념을 깨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주휴수당을 챙겨주고 식사시간을 근무시간에 포함시키며 식대를 월급에서 빼지 않는 등의 대우가 다른 알바에서는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는 얘기다.○ 나쁜 손님 막아주는 착한 알바 이번 착한 알바 수기 공모전에는 300여 편이 접수됐다. 사연에는 청년들이 생각하는 착한 알바 사업장의 기준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높은 수준의 복지나 덜 힘든 업무가 아닌 △아르바이트생을 가족같이 여기는 문화 △표준근로계약서 작성과 같은 기본적인 법령 준수 △근로자의 자기계발을 지원해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하는 직장이 바로 청년들이 생각하는 착한 알바 사업장이었다. 대상을 받은 정다희 씨(20·여)가 몸담았던 ‘제주회&감포막회’가 바로 그런 곳이다. 정 씨의 수기를 보면 이곳 사장인 김종오(51) 박은정 씨(49·여) 부부는 아침마다 알바생들이 챙겨먹을 수 있도록 수프를 준비해뒀다. 아침식사를 거르고 출근한 알바생들이 걱정돼서다. 박 씨는 설날이면 알바생에게 보너스를 챙겨주며 봉투에 일일이 덕담까지 적어주기도 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정 씨에게는 ‘우리 가게에서 일해줘서 고맙다. 학교 잘 다니고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적은 봉투를 건넸다. 만취한 남자의 음담패설에 당황한 정 씨를 보듬어준 것도 박 씨 부부였다. 정 씨는 “사모님은 울기 직전의 나를 주방으로 피신시키고는 ‘술 취해서 이런 식으로 난동을 부리면 다시는 못 올 줄 알라’며 그 손님을 내쫓고 내 편을 들어주셨다”면서 “내 안전과 인권을 자신의 이익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모습에 정말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작은 배려에 감동받는 알바생 장려상을 받은 시지선 씨(23·여)는 ‘CGV강동’에서 일할 때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팝콘 제조기에 데어 화상을 입었는데 그 모습을 본 담당 매니저가 바로 화상 연고를 바르고 방수 스티커를 붙여주며 얼음찜질을 해줬다고 한다. 시 씨는 “한창 손님이 몰려드는 시간대라 일손이 모자란데도 잠시 쉬라는 지시에 감동을 받아 7개월을 더 일하고 이후에 재입사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알바생도 표준근로계약서를 의무적으로 작성해야 하지만 이를 지키는 점주는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장려상을 받은 유지원 씨(21·여)는 파리바게뜨 한양대점에서 근무를 시작할 때 점주가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한 뒤 한 부씩 나누는 모습에 신뢰를 갖게 됐다. 유 씨는 “계약서 없이 말로만 고용하고 최저임금조차 지키지 않는 이전의 알바 업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며 “퇴근시간을 정확히 지키고 행여나 초과근무를 하게 될 땐 단 10분, 15분일지라도 더 일한 시간을 급여에 반영해줬다”고 말했다. 알바생의 처지에선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자신의 이익만 앞세우는 업주에겐 좀처럼 기대할 수 없는 일들이다. 이런 부분에서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착한 알바가 정착할 수 있다. ○ 꿈을 키워주는 착한 알바 알바는 미래의 진로를 가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최우수상을 받은 김명선 씨(23)도 알바를 통해 꿈을 현실로 만들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김 씨가 일하던 ‘팔당 시골밥상’은 음식점과 카페를 동시에 운영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일하던 그는 사장의 지원을 받아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고 진로도 레저관광경영학과로 결정했다. 김 씨는 “알바를 하면서 처음으로 무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며 “내게는 사장님이 또 한 명의 엄마인 셈”이라고 말했다. 신용한 대통령직속 청년위원장은 “접수된 수기를 보면 청년들이 알바를 하면서 거창하고 대단한 대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사람으로서 기본적인 대접을 바라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며 “착한 알바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우리 사회에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착한 알바 수기 공모전 당선자 ::대상(동아일보 사장상)정다희(20·여·제주회&감포막회 근무)최우수상(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위원장상)김명선(23·팔당 시골밥상 근무) 박진주(24·여·이디야커피 시흥시화점 〃)장려상(알바몬 사장상)유지원(21·여·파리바게뜨 한양대점 근무) 최은아(21·여·돈돈현수막 〃) 김영조(21·㈜그린파워 〃) 김진수(24·삼성에버랜드 〃) 김한슬(20·세븐스프링스 원주AK플라자점 〃) 시지선(23·여·CGV강동 〃) 이유희(23·여·현송리소스 〃) 이호권(36·GS25 대림으뜸점 〃) 장재영(24·엔제리너스 대구월배점 〃) 최희종(21·행복을나누는도시락 〃) 박창규 kyu@donga.com·김민 기자}

    • 2015-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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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이슈]95년전 콜레라 창궐땐 “들것에 타시오” “안 타겠소” 실랑이

    콜레라로 1만여 명이 사망했던 1920년 한반도. 당시 전남도의 방역 담당자는 ‘경무휘보(警務彙報)’(일제 조선통감부 경무총감부에서 발행한 월간지)에 이런 기록을 남겼다. “우리는 질병과의 전쟁 외에 (주민들의) 미신과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2015년 대한민국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와의 전쟁 외에 불신, 불안, 공포, 소문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처럼 100년 전 조선인의 모습에서 오늘날 한국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감염병의 확산, 격리 조치 대상자의 반발, 정부의 미흡한 방역 조치, 불안과 공포심의 확산까지 당시 사회상은 현재와 닮아 있다. 격리를 거부하는 두 남자 12일 오후 5시경 서울 강남구 강남세브란스병원 응급실 앞. 메르스 검사를 받은 A 씨(42)가 간이진료소의 문을 박차고 나왔다. 간호사가 붙잡으러 뛰어오자 그는 마스크를 벗어 던지며 소리쳤다. “사람이 아프면 치료를 해줘야지! 나 지금 집으로 갈 건데, 내가 확진자면 바이러스 다 전파하면서 집에 가는 거야!” A 씨는 다음 날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지난달 27일 부친의 삼성서울병원 외래진료에 동행한 게 화근이었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엔 지난달 27∼29일 메르스 14번 환자(35)가 입원하면서 감염자가 발생했다. A 씨는 현재 서울의료원에 격리돼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95년 전에도 방역작업을 놓고 비슷한 풍경이 연출됐다. 1920년 8월 16일 오후 6시경 경성(京城·서울의 옛 이름) 종로4정목(현 종로4가) 파출소 앞. 경관들과 한 남성이 실랑이를 벌였다. 그들의 옆엔 들것을 든 인부가 있었다. 경관이 말했다. “여기서 걸어가면 병균이 퍼지니 들것에 타시오.” 그러자 남성이 대꾸했다. “내 몸이 이렇게 멀쩡한데, 걸어가라면 가도 들것은 안 타겠소!” 들것에 타기를 거부한 남성은 종로구 인의동에 살던 최영택 씨(당시 47세). 일주일 전 설사병으로 고생하던 아내를 잃은 사람이었다. 아내를 검시(檢屍)한 경찰은 최 씨의 검체도 가져갔다. 최 씨의 아내가 콜레라 환자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반도는 치사율 50%에 달하는 콜레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경찰은 최 씨가 보균자라 주장하며 격리병원인 순화원에 데려가려 했지만, 말다툼은 간단히 끝나지 않았다. 파출소 앞에서 소동이 벌어지자 인근 주민 100여 명이 모여들었다. 주민들은 외쳤다. “죽어도 들것엔 타지 마라!” “조선 사람은 아무렇게나 죽어도 괜찮단 말이냐! 성한 사람을 잡아다 괴질구혈에 넣으려는 경관을 때려 죽여라! 파출소를 부숴라.” 경관은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최 씨를 돌려보내려 했다. 그러자 최 씨는 “지금 수백 명 군중이 몰려 있어 겁이 나서 보내놓고 밤이 되면 슬며시 데려가려는 것 아니오?”라고 따졌다. 군중은 맞장구를 치며 “옳다. 참 그렇다! 그러면 이 자리에서 데려가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아라”라고 소리쳤다. 경관들은 당황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 있을 뿐이었다. 동대문경찰서에서 10여 명의 경관을 추가로 파견했다. 그러자 군중은 흥분해 돌을 던져 파출소 유리창을 깨뜨렸고, 경관 한 명은 머리를 다쳤다. 경관들은 칼을 빼어 들고 군중을 진정시킨 뒤 최 씨를 돌려보냈다. 폭동은 한참 뒤에야 잦아들었다. 하지만 경관과 시민의 충돌은 그달 17일, 19일에도 계속됐다. 정부는 군중을 해산시키기 위해 기마(騎馬) 순사까지 동원해야 했다. 최 씨는 결국 순화원에 끌려 갔지만 끝내 검진을 거부했다. 그가 정말 콜레라 보균자였는지는 지금도 확인할 길이 없다.100년 전과 지금의 소문들 ‘우선 이 정보는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 제약 관련 부서에서 일을 하고 있는 지인이 알려준 겁니다. 중동 출신 전문가가 알려준 방법! 신종플루나 메르스를 피하는 가장 쉽고 싼 방법은 바로 바셀린을 콧속에 바르는 겁니다. 미국에서는 독감 감기 비염 등을 피하기 위해 아이들도 콧구멍에 바셀린을 바른다네요.’ 메르스 확진자가 속출하던 2일, 직장인 박모 씨(59)가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받은 메시지다. 박 씨는 이 밖에도 ‘양파가 바이러스 포집 능력이 뛰어나니 방마다 양파를 5개씩 놓아라. 양파를 한 포대 방에 보관한 집에만 독감 환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메시지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메시지들은 모두 의학적 근거가 없는 유언비어로 판명 났다. 100년 전에도 감염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둘러싸고 근거 없는 소문이 파다했다. 조선총독부의 ‘다이쇼 9년 호열자병 방역지’(1921년)에 따르면 많은 조선인들은 전염병이 귀신이나 악마의 저주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콜레라균이 일으키는 소화 계통의 전염병인 ‘콜레라병’을 ‘몸속에 쥐가 들어가 생기는 병’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환자가 경련을 일으킬 때 쥐를 죽인다며 바늘로 환자의 몸을 찔러 상처를 내거나, 고양이 모양의 떡을 만들어 먹이곤 했다. 환자가 발생한 집 근처 화장실에 불을 질러 병마를 쫓아내는 사람도 있었다. 경관이 감염병 환자를 발견할 때마다 돈을 받는다는 소문도 돌았다. ‘한 사람당 5원을 받는다더라’는 구체적인 액수까지 제시됐다. 이 때문에 방역 당국은 1920년 8월 20일자 동아일보에 다음과 같은 해명을 실었다. ‘경찰서에서 병자를 발견한다고 한 푼이라도 금전을 주는 일은 결코 없다. … 이러한 소문이 난 이유는 이들이 방역의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방역당국에 대한 불신은 왜 커졌나 2015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시민들은 보건당국의 방역에 협조하며 메르스를 이겨내고 있다. 하지만 1920년 조선인은 그럴 수 없었다. 방역 사업의 주체가 ‘경찰’이었고, 일제강점기 경찰의 강압적인 활동이 시민들의 불신을 키웠기 때문이다. 현재 보건소에서 담당하는 방역 작업을, 조선총독부는 ‘위생경찰제도’를 도입해 경찰에게 맡겼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이 제도는 식민지 조선에서 행해진 특수한 사례였으며, 일반 관리보다 경찰 위력을 통해 격리 조치를 손쉽게 할 수 있기에 도입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동아일보는 “경찰이 환자를 죄수 다루듯 하고 검역 조사가 중범죄자 수색보다 엄격하다”며 경찰의 강압적인 방역 활동을 비판했다. 감염병을 치료하는 시설이 열악했다는 점도 주민들 사이에 공포를 키웠다. 경성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받은 순화원은 고작 100명의 환자만 수용할 수 있었다. 하루에 발생하는 콜레라 환자만 100여 명에 이르던 때였다. 이 때문에 치료가 거의 이뤄지지 않아 순화원은 사실상 지켜만 보는 ‘격리 시설’에 가까웠다. 조선인들은 병원에 갔다 약 한 방울 얻어먹지 못하고 죽어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격리가 곧 죽음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박 교수는 “보균자인지 아닌지 애매한 상황에서 병원에 가면 죽는다는 시각 때문에 저항이 더욱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920년 전남도 방역 담당자가 ‘주민과의 전쟁’을 벌여야 했던 이유는 결국 그들 속에 있었다. ‘당국자는 조선인의 위생 사상이 발달하지 못한 것을 비판한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격리병원을 꺼리고 전염병자가 도망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이번 방역사업에서 당국이 사람들의 원망을 사게 된 것은 (조선인들의 위생 사상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당국이 적절한 소통(선전)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동아일보 1920년 8월 21일자 1면)  ▼ 감염병 격리 조치의 역사 ▼흑사병 의심 선원들 40일간 격리… 균 옮기는 쥐들은 못막아 메르스 감염을 막기 위해 격리된 사람들이 1만5134명(26일 기준)까지 치솟았다. 감염병이 발생하면 이뤄지는 격리 조치는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검역은 영어로 ‘쿼런틴(Quarantine)’이다. 이탈리아어로 숫자 40을 뜻하는 ‘콰란타(Quaranta)’가 어원이다. 14세기 베네치아 공화국은 흑사병 감염자가 배에서 내려와 병을 퍼뜨리는 것을 막기 위해 40일 동안 배에서 선원들을 내리지 못하게 했다. 예수가 광야에서 금식한 기간(40일)을 본떠 실시했던 ‘40일 격리 조치’가 곧 검역을 의미하게 됐다. 하지만 ‘쿼런틴’으로도 흑사병을 막지 못했다. 격리된 것은 배에 탄 선원들이었을 뿐, 정작 균을 옮기는 쥐들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흑사병의 원인이 쥐벼룩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탓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피를 뽑고 오줌 목욕을 하는 등 온갖 미신으로 흑사병을 이겨보려 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한센병 환자, 집시, 특히 유대인을 흑사병 원흉이라며 경멸하기도 했다.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서 전염병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전염병이 생길 때마다 인간은 큰 두려움에 휩싸였고, 환자에 대한 격리는 그 해답처럼 따라다녔다. 한때 ‘문둥병’으로 불렸던 한센병 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1910년대 당시 의술로는 이들을 치료할 수 없었기에 조선총독부는 1916년 전남 소록도에 자혜의원을 만들었다. 육지와 떨어진 섬 안, 외부와 단절된 격리시설이었다. 한센인에 대한 격리가 시작됐음에도 한센인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근거 없는 낙인 찍기는 계속됐다. ‘한센인들이 아이들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1926년 8월 18일자 동아일보엔 경북 영천군에 살고 있는 어린이 김석이(당시 12세)가 대구천으로 헤엄치러 가자는 ‘나병환자 같은 자’ 3명의 말을 거절했다가 죽음을 당할 뻔한 이야기가 실렸다. 석이가 고함을 치자 사람들이 달려왔고, 환자들은 곧 달아났다. 기사 말미에는 “문둥병에 어린애 살점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것으로 그렇게 흉행(兇行)을 하려 한 듯하다”는 분석이 덧붙었다. 설혜심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영양이 부족해서 피부병에 걸린 가난한 사람들도 때로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 격리되기도 했다”며 “격리 조치가 차별의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센인의 부부 동거를 허용하는 조건으로 정부가 낙태와 단종수술(斷種手術·유전성 환자의 생식 기능을 없애는 수술)을 자행했던 것도 일종의 차별이었다. 한센병은 유전병이 아니었음에도 1990년도까지 정부는 법률적 근거가 없는 수술을 강제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에이즈 환자에 대한 격리가 논란의 대상이 됐다. 에이즈는 수많은 음모를 만들어냈다. ‘에이즈는 마약 중독과 더불어 시작된 것으로 동성애와 매춘에 대한 신의 처벌’이란 얘기가 나돌았을 정도였다. 1992년 한 신문의 사설은 ‘새 환자의 발생을 최소화할 방법으로 에이즈 환자를 가려내 격리 수용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내용을 담기도 했다. 치명적인 에이즈의 위협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곧 인권침해란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당시 정부도 에이즈 감염자의 격리 수용 의사가 없었다. 이동모 당시 보건사회부 보건국장은 “감염자를 격리 수용할 경우 당사자들이 잠적해 오히려 에이즈가 음성적으로 더 확산되고 대부분 감염 우려자들이 에이즈 검사를 기피해 제대로 관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동아일보 1994년 7월 31일자) 2015년 대한민국엔 과거와 같은 ‘무분별한 격리 조치’는 없지만, 환자에 대한 차별과 비난은 여전히 남아 있다. 메르스 93번 환자(64·여)가 중국 옌볜 출신임이 드러나자, 인터넷에선 ‘메르스 확산의 주범은 불법체류 외국인’ ‘조선족들은 메르스 걸리면 한국인에게 퍼뜨리려고 한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일부 메르스 환자들은 감염병을 퍼뜨렸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있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감염병에 대한 공포는 문명 이전부터 있던 근본적인 것”이라며 “감염병 환자들이 안전을 위협한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이 극렬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염병의 문화사’의 저자 아노 카렌은 “새로운 풍요의 시대는 생물학적 재적응이라는 대가를 요구한다. 인간 질병의 역사는 대부분 그러한 적응의 역사이다”라고 말한다. 메르스의 여파를 겪고 있는 지금도 새로운 적응을 하기 위한 역사가 진행 중인 셈이다.김민 kimmin@donga.com·박은서 기자}

    • 2015-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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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정부, 질병관리본부에 6개 지역본부 신설 추진

    보건당국이 질병관리본부 산하에 6개 지역본부 신설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보건복지부가 방역 지침을 하달해도 일선 보건소에서 따라주지 못하는 현상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보건당국은 각 지역본부가 보건소를 나눠 관리하면서 지역 병원, 검역소 등과의 협력도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본보가 입수한 ‘공중보건 위기 대비 조직역량 강화 방안’에 따르면, 복지부는 서울 부산 경인 대구 광주 대전 등 6개 지역에 지역본부를 두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평상시에는 관할 지역 병원의 감염병 관리를 총괄하고 위기 상황에서는 의료기관 폐쇄 명령 등의 권한을 주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지역본부는 기존 공항과 항구의 국립검역소 인원을 총괄하고, 별도의 감염관리 인력과 역학조사관을 둘 것으로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신종 감염병을 연구할 수 있는 BL3 실험진단실을 갖추게 된다. 각 지역 보건환경연구원에서 실시한 환자 유전자 검사 결과를 총괄해 질병관리본부로 통보하는 역할도 하게 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역본부를 신설하면 복지부가 총괄할 때보다는 보건소에 대한 통제력이 강해질 것이고, 신종 감염병 발생 시 초기 대처를 신속하게 할 수 있다”라며 “지역본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지방청 인력까지 연계하면 강력한 통제와 일사불란한 방역이 가능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역본부 신설이 단순 자리 늘리기에 그칠 우려도 있다. 지역본부장과 지자체장이 보건소에 대한 권한을 정확하게 나누지 않는다면 결국 시군구 보건소 행정은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유근형 noel@donga.com·김민 기자}

    • 201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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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안 커지는데 “비공개” 고집… 불통 바이러스부터 퇴치를

    ‘국민을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았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과정에서 보건당국이 보인 소극적인 정보 공개 자세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신종 감염병 발생이란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보건당국이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 대신 ‘일단 숨기고 보는’ 구시대적인 대응 자세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귀옥 세종대 신문방송학과 교수(헬스커뮤니케이션)는 “감염병 관련 소통에서의 기본 원칙은 정보 공개를 한 뒤 국민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것”이라며 “국민에 대한 파트너십이 부족해 정보 제공을 통한 협력을 이끌어 내지 못했고 불신과 공포만 확산시켰다”고 지적했다.○ 정보 공개했으면 슈퍼 전파자 감염 줄였다 메르스 사태에서 정보 공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발생한 부작용 중 가장 심각한 건 ‘슈퍼 전파자’들의 양산이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중심으로 83명을 감염시킨 14번 환자(35)와 대전 대청병원과 건양대병원 입원실에서 23명을 감염시킨 16번 환자(40)의 경우 여러 병원을 거쳐 갔다. 지난달 20일 1번 환자(68)가 확인됐을 때부터 적어도 의료기관들 사이에서라도 환자와 메르스 관련 정보가 자세히 전달됐다면 호흡기질환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에 대한 병원들의 대응이 훨씬 더 적극적이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과정에서 감염자 수도 어떤 형태로든 줄어들었을 것이다. 바이러스 전문가인 양재명 서강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첫 환자 발생 뒤 메르스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됐다면 병원 현장에서의 긴장도가 높아 초기 진압이 훨씬 수월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22일까지 총 8명을 감염시키며 또 한 명의 잠재적 슈퍼 전파자로 관심을 받고 있는 76번 환자(75·10일 사망)에 대한 관리 실패도 정보 공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14번 환자에게서 메르스에 감염된 76번 환자는 5, 6일 강동경희대병원, 6일 건국대병원을 별다른 조치 없이 거치면서 8명을 감염시켰다. 메르스가 빠르게 확산되던 시기에도 병원에 대한 정보 공개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병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것. 강동경희대병원 관계자는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사태 초기부터 정보 공개와 공유가 적극적으로 이뤄졌다면 76번 환자가 도착했을 때부터 의심을 갖고 조치해 접촉자도 크게 줄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141번 환자(42)가 5∼8일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관광 산업에 비상’이 걸린 사건도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만약 지난달 말부터 삼성서울병원에서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것이 공개됐다면 제주도 여행 시점에 이미 메르스 증세를 보이던 141번 환자가 본인 스스로 의심해 제주도 여행을 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보건당국 ‘비공개 원칙’ 강조하다 신뢰 훼손 보건당국의 늑장 정보 공개가 불필요한 혼란과 오해를 초래했다는 비판도 많다. 국민 불안과 불만이 높아지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이 계속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메르스는 제약사의 음모다’, ‘황교안 국무총리 청문회에 대한 관심을 돌리기 위한 시도다’ 같은 괴담 수준의 루머까지 돌았다. 보건의료계 관계자는 “괴담 유포와 관련한 처벌 의지를 강조하던 시점에 차라리 적극적으로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공했다면 혼란이 훨씬 줄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던 과정에서 보건당국 스스로가 큰 어려움에 빠지기도 했다. 4일 밤 박원순 서울시장이 갑작스럽게 메르스 환자와 병원 정보를 공개하고 나섰고, 6일에는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이 1차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인 환자에 대한 일부 정보를 SNS에 공개했다.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갈등 움직임이 나타났고, 보건당국에 대한 신뢰는 더욱 훼손됐다. 백혜진 한양대 광고홍보학부 교수(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장)는 “소통 부재 속에서 더 큰 사회적 혼란과 불신, 나아가 패닉 현상까지 나타났다”며 “정부는 어떻게 소통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너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감염병 정보 공개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 적극적으로 병원과 환자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밝힌 뒤에도 보건당국의 조치에는 문제가 많았다. 보건당국이 운영하는 메르스 종합 정보 사이트인 ‘메르스 포털(www.mers.go.kr)’의 경우 첫 환자가 확인된 뒤 3주가 지난 10일에야 개설됐다. 메르스 포털은 정식 개설된 뒤에도 △어려운 설명 △느린 업데이트 △외국어 서비스 부재 등의 결함으로 비판을 받아 왔다. 정부의 ‘메르스 대응 지침’에도 정보 공개 절차와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다. 정보 공개를 얼마나 할 것인지, 어떤 사안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공인된 매뉴얼이 사실상 없는 것이다. 보건당국 관계자는 “감염병에 대한 정보 공개 필요성이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체적인 감염병 위기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개선할 방침”이라고 말했다.이세형 turtle@donga.com·김민·박성진 기자}

    • 2015-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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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과 다른 美의 질병정보 공개

    미국 내 첫 에볼라 환자 토머스 덩컨. 그는 45세의 라이베리아 국적 남성이었으며 수도 몬로비아의 한 운송 업체에서 근무했다. 2014년 9월 20일 친척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를 방문했고 열흘 뒤 에볼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덩컨 씨의 미국 숙소는 댈러스의 페어오크스 대로에 위치한 아이비 아파트단지 614번지. 텍사스 보건 당국은 감염 우려가 있는 10명을 격리했다. 환자의 이름, 주소, 나이부터 동선까지 모든 정보가 확진 판정 일주일 만에 공개됐다. 에볼라 환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미국 보건 당국의 정보 공개는 한국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이루어졌다. 이는 가능한 한 빨리 ‘대중이 알고 싶어 하는 모든 정보’를 정확하게 공개하라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매뉴얼에 따른 것이다. CDC는 400쪽이 넘는 분량의 ‘위기·긴급·위험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을 갖추고 있고, 센터장 직속으로 일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도 있다. 반면 한국 질병관리본부엔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전담하는 부서는 물론 정식 대변인도 없다. CDC의 매뉴얼은 위기 상황에서 지켜야 할 6가지 원칙을 가장 먼저 제시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강조되는 원칙은 바로 ‘신속(Be first)’이다. 매뉴얼은 ‘위기는 시간의 흐름에 민감하다. 빠른 정보 전달이 모든 위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하다. 가장 먼저 제공되는 정보를 사람들이 가장 신뢰하기 때문이다’라고 신속의 필요성을 설명한다. CDC의 이 같은 커뮤니케이션은 에볼라 발병 당시 힘을 발휘했다. 라이베리아에서 에볼라 환자를 치료하다 감염된 의사 켄트 브랜틀리 씨가 미국 애틀랜타 에모리대에 이송됐을 때도 시민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메르스 사태에서 보여 준 정부의 위기 대응 방식에 한목소리로 문제를 제기했다. 이병관 한양대 광고홍보학부 교수는 “감염병 유행 시 발생하는 패닉 현상은 실제 위험을 사람들이 더 과장되게 인지하는 데서 발생한다”며 “미국 CDC는 국민이 왜 두려워하고 뭘 걱정하는지 알고 있다는 인상을 준 반면, 한국은 보건 당국이 이에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재훈 ‘박재훈 PR컨설팅’ 대표는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이 있어도 그것을 관리할 전문가가 필요하다”며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를 만들 때도 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함께했으면 혼란이 더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김민 kimmin@donga.com·박은서 기자}

    • 2015-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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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염 발생 즉시 병원名 공개… 환자거주 洞까지 밝혀야”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는 한국 사회의 해외발(發) 감염병에 대한 위기의식과 대처 능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밑바닥까지 보여줬다. 보건당국과 보건의료계에서는 “메르스 정도여서 다행이었다”는 안도까지 나온다. 메르스보다 위험성이 높은 에볼라나 라사열 같은 출혈열성 감염병 확산 사태가 터졌다면 훨씬 더 상황이 심각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글로벌 시대에 해외발 감염병의 유입은 피할 수 없는 만큼 이번 사태를 ‘감염병 예방 및 대응 로드맵’을 마련하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질병관리본부와 감염병 예방 시스템 강화 시급 제2, 3의 메르스 사태를 예방하는 데 가장 필요한 조치로 꼽힌 건 ‘질병관리본부의 기능 확대’(54.3%)다. 국가 방역을 지휘하는 정부 내 감염병 담당 조직부터 권한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진석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국가 방역체계와 의료체계가 감염병에 얼마나 부실하고, 쉽게 붕괴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줬다”며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하지 않으면 제2, 3의 메르스 사태가 터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를 위해서는 꾸준히 지적되어 온 것처럼 질병관리본부의 △고급 인력과 전문성 부족 △적은 예산 △허약한 지휘권 등의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특히 질병관리본부의 역량을 키워 평소에도 해외 감염병에 대한 대책 수립과 연구를 진행하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 다인실 중심 병동 개선 필요 ‘의료진과 병원의 감염병 예방 시스템 강화’(45.7%)와 ‘다인실 중심의 병동문화 개선’(34.3%)도 메르스 사태의 재발을 막는 데 필요한 조치로 꼽혔다. 다양한 종류의 환자들이 별도의 조치 없이 방치돼 있는 응급실, 기본적인 감염 예방 조치도 지키지 않는 병원 시스템이 메르스 확산을 유발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여러 환자가 함께 머무는 다인실 역시 얼마나 감염병에 취약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세계보건기구(WHO) 메르스 조사단은 한국 대형병원에서 다인실 병동이 차지하는 높은 비중에 놀라며 보건당국에 심각성과 개선 필요성을 수차례 강조했다. 김지은 한양대 구리병원 교수(감염내과)는 “그동안 우리는 다인실 위주의 병실 운영 정책 때문에 1인실이 부족했다”며 “정부도 감염 관리에 대한 투자 측면에서 1인실 병실 시스템이 정착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전문병원협의회에선 보호자가 아닌 간호사가 환자를 돌보는 ‘포괄간호서비스제도’ 활성화를 감염 방지 대안으로 제안하기도 했다.○감염병 확산 막으려면 정보 공개가 중요 메르스 사태 과정에서 논란이 됐던 ‘병원’과 ‘환자’ 관련 정보 공개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공개’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했다. 메르스 감염자들 중 상당수가 증세를 보이는 상황에서도 자유롭게 활동한 원인 중 하나는 병원명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병원명을 즉각 공개했다면 감염자 중 많은 수는 증세를 느낄 때 ‘보건당국에 대한 신고’나 ‘자체 격리’ 등의 조치를 취했을 수 있다는 것. 이 과정에서 추가 감염자와 격리 대상자 역시 줄어들 수 있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병원명 공개’에 대해 80%가 ‘초기에 이루어졌어야 했다’고 답했다. 또 이번 사태를 키운 가장 큰 원인으로도 ‘뒤늦은 병원명 공개’(48.6%)를 꼽았다. 환자 정보의 경우 거주하는 지역의 ‘동’, 다녀간 장소의 구체적인 이름까지 밝혀야 한다는 의견이 42.9%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성별, 나이, 거주 도시 정도까지 밝혀야 한다는 의견이 22.8%로 많았다. 이번 메르스 사태 때 보건당국이 성별과 나이만 공식적으로 밝힌 것과는 큰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 메르스 사태의 핵심은 보건당국의 역량 부족 이번 메르스 사태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뒤늦은 병원명 공개(48.6%) △보건당국의 안이한 전망(42.9%) △보건당국의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뒤늦은 조사(34.3%) 순으로 답변이 나왔다. 모두 보건당국의 부실한 조치 및 역량 부족과 관련된 사항들이다. 한편, 메르스 사태와 관련한 주요 섹터(정부, 국민, 병원)의 대응 수준에 대해 전문가들은 “모두 낙제 수준이었다”고 평가했다. 10점 만점 기준으로 △정부 평균 4.6점 △국민 5점 △병원 5.6점이었다. 김성한 서울아산병원 교수(감염내과)는 “메르스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WHO 권고에 너무 의존해 대응한 것이 가장 큰 실패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ICT 활용 보건위기정보망 구축 전문가-국민 소통창구 만들어야” ▼메르스 사태에서 배울점은전문가들은 메르스 사태를 두고 보건당국의 업무 조정 능력과 소통 미흡을 가장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반면 의료진의 헌신적인 진료와 시민의 협조는 인상 깊었다고 평가했다. 전병율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질병관리본부장이 질병 통제의 핵심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한다는 느낌이 적었다. 교육부의 학교 휴업 조치로 사회 혼란이 가중됐는데도 복지부의 각 부처에 대한 업무 장악력은 부족한 듯했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도 혼선을 부추겼다. 전 교수는 “서울시장이 (긴급 브리핑을 통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협력체계가 잘 안 되고 있다는 인식을 제공했고, 이후 각 지자체가 우후죽순처럼 확인되지 않은 자료를 근거로 발표해 통제의 일관성이 결여됐고 혼란이 가중됐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는 전문가를 경시하는 세태를 드러냈다. 백순영 가톨릭대 의대 교수는 “최고 전문가가 컨트롤타워가 돼 모든 걸 판단하고 지휘해야 하는데, 질병관리본부엔 예산도 인력도 없고, 본부장이 힘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보건당국의 소통 부족도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이영성 충북대 의대 교수는 “(정부와 의료계 등) 당사자 간 정보 공유는 물론이고, 전문가 단체가 국민에게 (메르스 관련) 지침을 내놓는 것도 빨리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공중보건위기대응 긴급연구정보망시스템’을 구축해 전문가 네트워크를 만들고, 위기가 발생했을 때 이를 활용해 국민과 소통하며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메르스 사태에서 우리 사회의 희망도 발견했다. 이상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정책연구본부장은 “(전북) 순창의 마을 주민 모두가 합심해 메르스를 이겨낸 성공 사례는 지역사회의 규범이 문제 해결에 얼마나 큰 가치를 발휘하는지 보여줬다. 전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사례다”고 평가했다. 최정현 인천성모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일선 의료진의 헌신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설문에 답해주신 전문가 (가나다순)△기모란 대한예방의학회 메르스위원장 △김성한 서울아산병원 감염내과 교수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 △김윤정 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김지은 한양대 구리병원 감염내과 교수 △김홍빈 분당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 △박성학 가톨릭대 호흡기내과 명예교수 △배종면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백순영 가톨릭대 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 △백혜진 한양대 광고홍보학부 교수(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장) △서동우 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설대우 중앙대 약학대학 교수 △성백린 연세대 생명공학과 교수 △손창환 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신상도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신영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전문위원(전 국립보건원장) △양재명 서강대 생명공학과 교수 △오명돈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 △유형준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내과 교수 △이국종 아주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이상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정책연구본부장 △이영성 충북대 의대 교수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이진석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 △임현술 동국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전병율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 △정영철 광운대 법대 교수 △정용석 경희대 생물학과 교수 △조비룡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천병철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최영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 △최정현 인천성모병원 감염내과 교수 △하은희 이화여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홍두호 마음복지관 사무국장(전 가천의대 의학교육실 교수) 이세형 turtle@donga.com   이우상 동아사이언스 기자 idol@donga.com 이샘물 evey@donga.com·박은서·김민 기자}

    • 2015-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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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판 커버스토리]감염병 대응능력 떨어뜨리는 부실 제도

    “병실 내에서 밀접 접촉 할 때만 감염된다.”-평택성모병원에서 첫 환자 발생 시 “슈퍼 전파자 14번 환자는 응급실 내부에만 있었다.”-삼성서울병원 환자 발생 시 보건당국의 호언장담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평택성모병원에서는 다른 병실에 있던 환자들이 감염됐다. 삼성서울병원에서도 14번 환자가 응급실 밖을 돌아다녔다는 사실이 곧 드러났다. 모두 초기 역학조사관 인력과 전문성 부족이 원인이었다. 그렇다면 국내 역학조사관들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처럼 왜 최정예 요원이 될 수 없는 걸까. 정부는 1999년 제도 도입 직후만 해도 공보의의 자원을 받아 시험과 면접을 거쳐 역학조사관을 선발했다. 2001∼2004년 역학조사관으로 활동한 임수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45)는 “질병 치료보다는 예방이 관심이 많아 지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3년 전 세계에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유행할 때, 공항에서 방역복을 입고 환자를 맞이한 뒤 격리병원에 옮기는 역할을 했다. 3주가량은 집에도 안 들어가며 매일 환자를 돌보고 건강 상태를 체크했다. 결국 환자 4명은 합병증 없이 쾌유됐고, 감염이 확산되지도 않았다. 문제는 정부가 이처럼 열의가 있는 공보의를 역학조사관으로 ‘선발’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2007년 공보의 배치시험 오류가 발생한 뒤 (공보의) 지역 배치가 추첨 방식으로 바뀌었다. 2008년부터 역학조사관도 추첨 방식으로 뽑는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이종구 서울대 의대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 소장은 “역학조사는 본인의 열의가 가장 중요한데, 사람을 잘 뽑으면 제도가 얼마든지 잘 굴러간다.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오면 조직에 대한 충성도나 학문적 열의가 떨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역학조사관의 수도 적다. 메르스 확산 직후 국내의 역학조사관은 총 34명. 이 중 32명이 공보의였다. 역학조사관이 주로 복무기간이 1∼3년에 불과한 공보의로 채워질 경우 업무의 연속성과 전문성이 부족하고, 급박한 상황에서 일사불란한 군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이달 16일에야 역학조사관 90명을 충원했다고 밝혔다. 미국 CDC의 경우 역학조사관만 300여 명에 이른다.이샘물 evey@donga.com·김민 기자}

    • 2015-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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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네의원-보건소, 감기 어린이 ‘퇴짜 핑퐁’

    열이 나는 단순 감기 환자들이 메르스로 의심받아 진료를 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동네 병원뿐만 아니라 보건소에서도 환자를 받지 않아 환자들은 여러 곳을 전전해야 하는 상황이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김모 씨(24)는 15일 미열이 있어 동네 내과에 갔다가 진료를 거부당했다. 병원에서 “열 증상이 있는 환자는 진료를 할 수 없으니 보건소로 가라”고 했던 것이다. 김 씨는 다음 날 양천구 보건소에 갔지만 또 발길을 돌렸다. 거주 지역인 강서구 보건소로 가라고 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결국 강서구 보건소에 가서야 약을 처방받았다. 서울지역 개원의 A 씨는 “메르스 의심환자가 오면 솔직히 겁이 난다”며 “혹시 모를 격리 조치를 당하지 않기 위해 일부 병원에서 고열 환자를 아예 받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서구의 한 내과에서는 “발열 증상이 있는 환자는 진료를 하지 않는다”며 인근 국민안심병원으로 갈 것을 권했다. 진료 병원을 찾지 못하다 보건소에 들러도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주부 우모 씨(41)는 16일 39도까지 열이 오른 딸(12)을 보건소로 데려갔다. 전날 구청 메르스 종합상황실에 문의했을 때 “동네 병원은 안 받아줄 것이니 보건소로 가라”고 안내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보건소에서는 “15세 미만 어린이는 보건소에서 진료가 안 되니 근처 소아과로 가라”고 했다. 본보 취재 결과 서울 지역 25개 보건소마다 열이 있는 어린이의 진료 기준이 달라 혼선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진료가 가능하다고 응답한 곳은 강남, 강서, 관악, 광진, 구로, 동대문, 서초, 성동, 성북, 영등포, 은평, 종로, 마포, 서대문, 중구 등 15개 보건소였다. 반면 진료가 불가능하다고 응답한 곳은 강북, 강동, 도봉, 송파, 노원, 용산, 금천, 중랑, 양천, 동작구 등 10곳이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어린이가 보건소에서 진료를 못 받는다는 규정은 따로 없다”며 “자치구 실정에 맞게 보건소를 운영하므로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진료 과목을 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박은서 clue@donga.com·김민 기자}

    • 2015-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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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술 앞둔 암환자 막막…“다른 병원서도 안받아주면 큰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서 의사 한 명과 이송요원 한 명이 추가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에 따라 병원은 응급수술을 제외한 외래, 응급실, 입원 진료를 14일부터 24일까지 모두 중단한다고 밝혔다. 병원 측은 ‘부분 폐쇄’라고 했지만 사실상 전면 폐쇄나 다름없다. 국내 ‘빅5 병원’(삼성서울, 서울대, 서울아산, 서울성모, 신촌세브란스)이 일정 기간 문을 닫는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에 따른 전국적 의료 공백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전국적인 의료 공백 우려 삼성서울병원의 중증 외래진료 환자와 입원 환자들은 날벼락을 맞았다. 이 병원에서 암 수술 날짜를 받기 위해 기다리던 김의준(가명) 씨는 “지방에서 어렵게 수술 예약을 했는데, 이제 수술을 어디서 받아야 할지 앞이 막막하다”고 했다. 심장수술 뒤 이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가족을 둔 문익재(가명) 씨는 “가족이 다른 병원으로 옮기기를 원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2013년 이 병원을 찾은 응급환자는 3만8918명, 중환자는 1만3032명에 달한다. 병원 측은 병원 옮기기를 원하는 입원 환자는 적극적으로 전원을 돕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다만 입원 환자 중 450여 명은 중증이라 전원이 쉽지 않은 상태다. 병원 관계자는 “방사선 치료 등 항암치료가 꼭 필요한 분들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 단순히 처방전으로 약을 받는 분들은 해당 진료과에서 일일이 전화해 협력병원 등 다른 병원으로 안내하고 있다”고 했다. 삼성서울병원은 병상 수가 1987개(2014년 현재)에 달하는 매머드급 병원. 2013년 병원 자체 통계에 따르면 외래 환자는 연인원 194만여 명, 입원 환자는 8만9000여 명, 수술 건수는 4만5800여 건. 하루 평균 7500여 명이 외래진료를 받고, 245명이 입원하는 셈이다. 14일 현재 입원 환자는 890여 명이다.○ 다른 빅5 병원도 환자 감소 다른 빅5 병원들도 메르스의 직격탄을 맞아 환자가 감소하면서 의료 공백이 커지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에서도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거나 입원하면서 다른 환자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메르스 사태 이후 빅5 병원의 환자는 감소 추세다.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지 않은 신촌 세브란스병원도 평소보다 환자가 20∼30% 줄었다. 확진환자가 발생한 서울아산병원은 응급실 환자가 50%나 감소했다. 서울성모병원 관계자는 “만성질환 환자들이 입원을 늦추기도 해 8일을 기점으로 외래와 입원 환자가 10∼15% 줄었다”고 밝혔다. 국내 의료계에서 빅5 병원의 비중과 역할은 절대적이다. 특히 암 등 중증질환은 더 그렇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간암, 유방암, 대장암, 위암 등 주요 암 환자의 37.7%가 빅5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기준 빅5 병원의 진료비는 2조2903억 원으로 전체 의료기관 진료비의 7.8%, 상급종합병원 진료비의 35.7%를 차지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메르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일부 환자가 진료를 받아야 할 시기를 놓치는 상황이 우려된다”고 했다.○ 병원 간 협조와 당국 대책 시급 삼성서울병원의 폐쇄에 따라 생기는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다른 상급종합병원들의 협조와 당국의 대비책 마련이 시급하다. 동아일보가 14일 전화로 확인한 결과, 다른 빅5 병원 측은 삼성서울병원 측의 정보공유가 전제되고 감염 우려가 없는 선에서 삼성서울병원 대신 다른 병원을 찾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협조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부 병원에서는 삼성서울병원에 다니던 환자를 받지 않겠다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인상 대한병원협회 총무이사는 “삼성서울병원에 다니던 외래 환자들에게 진료의뢰서나 처방전을 갖고 중소 병원을 이용하라는 안내와 함께 동요하지 않아도 된다는 충분한 상황 설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일부 병원이 삼성서울병원 환자들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날 경우 이에 대비해 진료 거부 등에 대한 당국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빅5 병원 교수는 “삼성서울병원의 폐쇄는 우리나라 의료계의 큰 축 중 하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라며 “전국의 중증환자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보건의료 당국은 큰 숙제가 생겼다”고 말했다.민병선 bluedot@donga.com·김민 기자}

    • 201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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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르스와의 전쟁, 심리전부터 이기자

    ‘이제 군중심리에 따른 대응을 지양하고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와 맞서야 한다.’ 11일 휴업한 유치원, 초중고교 및 대학이 2622곳으로 전날(2704곳)보다 줄어들자 이를 메르스 대응 전략을 바꾸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메르스 발생 뒤 휴업 학교 수가 줄어든 건 처음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메르스 확산은 학교와 관련 없고, 지역사회로 전파될 가능성도 낮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단 휴업부터 들어간 조치는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두려움을 양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학생들에게 감염병 대응 조치를 교육하고, 건강 상태를 점검해야 하는 학교가 그 기능을 멈춰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학교가 휴업을 끝내고 메르스 확산 사태를 감염병 대응과 보건교육 수준을 높이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전병률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군인들이 훈련을 통해 성장하듯, 이번 사태를 감염병이 다시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를 미래 세대에 가르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지역사회 전파 가능성이 낮을 땐 학교가 휴업에 들어가지 않는다. 메르스 방역에 대한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대규모 추가 감염’ ‘높은 치사율’ 같은 치명적인 문제가 없기 때문에 현재 대책만으로도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메르스 환자 발생 1위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이슬람 신자들의 성지순례(하지) 기간 때도 감염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우선, 환자들부터 메르스는 치료 가능한 병이라는 확신을 갖고 증세, 경유 병원, 접촉자 등을 자세히 밝혀야 한다. 역학조사의 질이 높아질수록 메르스 퇴치는 빨라질 수 있다. 자가 격리 대상자들의 협조도 중요하다. 서정욱 서울대 의대 교수(병리학)는 “환자와 격리 대상자들이 보건 당국의 통제에 따르지 않을 때 대규모 감염 사태를 일으켜 해결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검증되지 않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정보 등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모습도 지양해야 한다. 이관 동국대 의대 교수(예방의학)는 “감염병과의 싸움은 심리전이기도 하다”며 “무분별한 정보에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은 사태를 더 악화시킨다”고 말했다.이세형 turtle@donga.com·김민 기자}

    • 2015-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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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기종강… 현장실습 중단… 도서관 빈자리

    조용한 대학 캠퍼스에 구급차 한 대가 들어서고 방역복을 입은 구급 대원이 차에서 내리자 지나가던 학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고열로 얼굴이 달아오른 여학생이 구급차에 실려 서울의 한 대학병원으로 이송됐고 학교 커뮤니티에는 ‘우리 학교에도 메르스가 퍼진 것 아니냐’는 걱정 섞인 글이 여러 개 올라왔다. 7일 오후 서울 강북의 유명 사립대에서 벌어진 일이다. 검진 결과 메르스 감염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면서 학교 측이 ‘안심해도 된다’고 공지했지만 학생 이모 씨(28)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믿었던 학교에도 메르스가 퍼지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상당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첫 메르스 확진자가 나온 지 20일을 넘기면서 서울의 주요 대학가도 메르스 여파가 미치고 있다. 20대 확진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크게 술렁이진 않지만 학생이 도서관과 열람실 찾기를 불안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일부 학교에서는 학사 일정을 바꾸기도 했다. 실제로 메르스 때문에 서강대 일부 강의는 계획보다 일주일가량 일찍 종강됐다. 서강대 관계자는 “메르스 확산 우려 때문에 한 주 일찍 종강해도 된다고 5일 교수들에게 알렸고 일부 교수는 수업을 조기 종강했다”고 전했다. 연세대에서는 간호학과가 현장 실습을 교내 실습으로 대체했고 일부 대학원 연구실은 이번 주 재택근무를 결정했다.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것으로 유명한 이화여대의 홍보관(웰컴센터)은 최근 방문객이 메르스 발생 직전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기말고사 준비를 위해 학교에 오긴 하지만 개인위생에 부쩍 신경을 쓰고 있다. 이화여대생 김아영 씨(23·여)는 “손을 자주 씻는 등의 기본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생 이모 씨(25)도 “부모님이 걱정한다며 집에서 공부하는 친구가 꽤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시험 기간임에도 도서관 이용자가 줄어든 흐름까지 감지된다. 성균관대 중앙도서관 관계자는 “메르스 확산 우려가 유난히 컸던 지난 주말 직후인 8일에는 이용자가 10∼20% 줄었다가 회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찌감치 홈페이지에 메르스 예방수칙을 안내했던 주요 대학들은 곳곳에 손 소독제 등을 비치하며 메르스 예방에 나선 상황이다. 서울대 중앙도서관 관계자는 “메르스 불안감이 커지고 있어 도서관 출입구마다 손 소독제를 놔두고 학생들이 쓸 수 있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김민 kimmin@donga.com·김도형 기자}

    • 201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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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임에 빠진 좀비청년을 PC밖으로”

    불 꺼진 놀이공원에 피범벅이 된 ‘좀비’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뒤쫓는다. 도망치는 사람들의 허리엔 비닐끈이 매달려 있다. 이른바 ‘생명줄’인 이 끈을 좀비에게 잡히지 않고 3km를 달리면 ‘성공’이다. 지난해 11월 1일 경기 과천시 서울랜드에서 열린 ‘좀비런’ 행사의 풍경이다. 이날 6000여 명의 참가자가 각각 좀비와 인간 역할을 하며 ‘오프라인 게임’을 벌였다. 올해는 27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이 같은 행사를 다시 열 예정이다. 행사를 기획한 건 원준호 씨(29)가 대표로 있는 소셜벤처 ‘커무브’다. 좀비런은 2013년 연세대 축제 때 처음 등장했다. 당시 티켓 판매를 시작한 지 하루 만에 준비된 1200장이 모두 매진됐다. 원 대표는 “사람들이 다쳐서 피가 나는데도 웃으면서 좋아하더라. 눈빛만 봐도 미쳐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취업과 학점 경쟁에 찌든 청년들이 현실에서 벗어날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 성공 비법이라는 게 팀원들의 평가다. 원 대표의 개인적 경험도 계기가 됐다. 2011년 11월 원 대표는 2년간 하던 사업을 그만두고 PC방에서 게임만 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점점 무기력해지는 자신이 “좀비처럼 느껴졌다”고 원 대표는 말한다. 주변에 비슷한 또래들을 보며 ‘어떻게 하면 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침 2012년 10월 사법시험에 실패해 우울증에 걸린 선배와 매일 등산을 하며 힌트를 얻었다.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산에 오르며 성취감을 느낀 선배가 취업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야외활동이 치유의 힘을 갖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원 대표는 말했다. 원 대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한국만의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5-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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