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명

박재명 기자

동아일보 산업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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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재명 기자입니다.

jmpark@donga.com

취재분야

2026-05-16~202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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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파일]‘맷값폭행’ 최철원 M&M 前대표 구속

    서울지방경찰청은 8일 회사 앞에서 시위를 벌인 탱크로리 운전사 유모 씨(52)를 폭행한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등)로 물류업체 M&M의 전 대표 최철원 씨(41)를 구속했다. 서울중앙지법 김상환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최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최 씨는 10월 18일 유 씨를 야구방망이와 주먹으로 폭행한 후 ‘맷값’이라며 2000만 원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 2010-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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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엔 국민상조가 122억원 빼돌려

    상조업체 대표들이 잇따라 구속되고 있다.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부장 차맹기)는 거액의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횡령 등)로 국민상조 나기천 대표(41)와 설립자 이길재 영업부회장(45) 등 이 회사 임직원 3명을 구속기소했다고 6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2006년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직원 수당을 허위 지급하거나 회사 자금으로 자신들이 보유한 주식을 고가로 사들이는 수법으로 총 122억 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페이퍼 컴퍼니를 동원해 주당 액면가가 5000원인 이 부회장의 주식 9800주를 액면가의 92배인 45억 원에, 나 대표의 동생 나모 이사(35)의 보유주식 4000주를 84배인 16억7600만 원에 각각 매입하는 과정에서 상조업체 회원 납입금 63억 원을 끌어다 쓴 혐의다. 검찰은 이들의 비리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2억7000만 원을 받아 챙긴 외부감사인 김모 씨(45)를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국민상조는 자산 규모가 200여억 원에 이르는 중견 상조업체로 올 10월 한국소비자원의 상조소비자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우수상조회사로 선정됐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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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재단 ‘올해 의인’ 이득형 이미경 양시경 씨

    아름다운재단은 ‘2010 공익시상’에 온라인 정보공개시스템으로 총 9864건의 정보 공개를 청구한 이득형 씨(46) 등 3명을 선정했다고 6일 밝혔다. 이 상은 매년 우리 사회의 의인(義人)을 선정해 시상하는 것으로 올해가 7년째다. 시상식은 8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낙원동 춘원당 한방박물관 역사관에서 열린다. 일반시민부문 수상자로 꼽힌 이득형 씨는 영어회화 강사로 일하고 있으며, 2000년부터 온라인 정보공개시스템을 통해 정보 공개 청구에 나섰다. 현재까지 그가 청구한 정보는 총 9864건에 이른다. 그동안 구의원 불법주차 빼주기 관행과 서울 강남지역 자치구 지방세 탈루 등을 지적했다. 풀뿌리활동가 부문 수상자로는 마을N도서관 이미경 대표(44·여)가 선정됐다. 이 씨는 2002년부터 서울 은평구에 마을도서관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 이 경험을 살려 전국 각 마을의 작은 도서관들을 연결하는 ‘마을N도서관’ 네트워크를 설립했다. 공익제보 부문에는 2006년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감사로 재직하다 땅값 과다 책정 등으로 200억 원가량의 세금이 낭비되자 이를 고발했던 양시경 씨(47)가 선정됐다. 양 씨는 내부 기밀 유출 혐의로 감사직에서 해임됐지만 9월 대법원에서 “해임이 잘못됐다”는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았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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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인 150여명 어제 인권위 점거 농성

    장애인단체 소속 회원들이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여 인권위 직원들이 출근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들은 “현병철 인권위 위원장의 조속한 퇴진을 요구한다”며 사무실 점거에 나섰다. 3일 인권위에 따르면 장애인활동지원공동투쟁단,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 장애인단체 소속 회원들이 2일 오후 9시 반부터 서울 중구 무교동 금세기빌딩 인권위 사무실로 들어오기 시작해 1시간 만에 전동 휠체어를 탄 회원 150여 명이 전체 사무실을 점거했다. 이들은 직원들의 출근을 막다가 오후 4시경 지난달 23일부터 농성을 하고 있는 11층을 제외한 나머지 사무실에서 철수했다.}

    • 2010-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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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값 폭행’ 최철원 M&M 前대표 소환조사

    ‘매값 폭행’으로 논란이 된 물류업체 M&M 전 대표 최철원 씨(41·사진)가 2일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의 소환조사를 받았다. 이날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내자동 서울지방경찰청 입구에 들어선 최 씨는 “저로 인한 좋지 않은 일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켜 죄송하다”며 “자세한 내용은 조사받는 과정에서 모두 이야기하겠다”고 말했다. 최 씨는 10월 18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화물연대 소속 탱크로리 운전사 유모 씨(52)를 알루미늄 야구방망이와 주먹으로 13차례 때린 후 2000만 원을 ‘매값’이라며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 유 씨는 다니던 회사가 M&M에 인수합병된 후 고용승계가 거부되자 올해 2월부터 6월까지 SK그룹 본사 앞에서 탱크로리 차량을 주차시킨 채 시위를 해왔다. 이날 경찰은 최 씨를 상대로 실제 유 씨를 폭행하고 ‘매값’을 건넸는지와 폭행 정도 등을 조사했다. 최 씨는 경찰 조사에서 유 씨 폭행 부분과 돈을 건넨 사실은 인정했지만 돈을 건넨 시점이 유 씨 진술과 달랐다. 경찰 관계자는 “심각한 폭행사건은 피해자와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구속영장을 신청할 수밖에 없다”며 “3일 최 씨와 유 씨를 함께 불러 대질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 씨는 최종관 전 SKC 부회장의 장남이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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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연평도 포격 도발]연평도 주민들 하나둘씩 복귀

    “새우젓 너무 많이 넣으면 안 돼요.” “그래도 팍팍 넣어야 맛있다니까요.” 포탄 맞은 이웃집이 담벼락 너머로 보이는 마당에 속이 꽉 찬 배추 60포기가 나왔다. 무 생강 새우젓 고춧가루 등 갖가지 김장재료도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지난달 23일 북한의 포격 도발로 ‘유령섬’이 되다시피 했던 연평도가 포격 일주일이 지나면서 조금씩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연평도 주민 이기옥 씨(50·여)는 텃밭에서 뽑아둔 배추 60포기가 썩어간다는 이웃의 이야기를 듣고 김장 담그기에 나섰다. 전날 아들을 만나기 위해 연평도에 온 공중보건의 이성묵 씨의 어머니 손인선 씨(50)도 일손을 보탰다. 30일 인천으로 피신한 주민 일부가 여객선과 어선을 타고 다시 들어오는 등 연평도는 포격 직후의 ‘쇼크’에서 다소 벗어난 모습이다. 이날 여객선편으로 들어온 주민 17명 중 12명이 섬에 남았다. 섬에 머무르는 주민은 지난달 28일 31명에서 29일 36명으로, 30일에는 54명으로 늘었다. 섬에 돌아온 한 주민은 “꽃게를 잡으려고 미리 설치한 어망을 걷기 위해 들어왔다”며 “다른 꽃게잡이 어민들도 어망 수거를 위해 섬을 찾을 것”이라고 전했다. 연평면사무소 관계자는 “한미 연합훈련이 끝나면 섬으로 돌아오는 주민이 좀 더 늘 것 같다”고 했다. 연평도산 꽃게가 포격 이후 처음 섬 밖으로 출하되기도 했다. 꽃게 판매업자인 김정희 씨(45)는 이날 인천의 거래처에 11박스 90kg 분량의 꽃게를 여객선편으로 보냈다. 연평도 당섬나루에서 만난 김 씨는 “원래 우체국 택배를 이용하지만 거래처에서 소량이라도 보내달라고 요청해 보냈다”며 “이 꽃게가 ‘연평도 꽃게’의 이름을 달고 전국 각지로 나갈 생각을 하면 뿌듯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의 추가 도발을 우려하는 주민도 적지 않아 연평도가 예전의 모습을 찾기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섬에 머물고 있는 최고령 주민인 이유성 씨(83)는 “30일 예정됐다가 취소된 우리 군의 사격훈련이 조만간 다시 실시된다고 하는데, 북한이 오판하지 않을지 걱정된다”며 “남북 간 대치상황이 풀려야 주민들도 안심하고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한적십자사 봉사단원들은 군과 행정 당국이 섬을 떠나 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여 이날 오전 마지막 급식봉사를 마치고 인천으로 떠났다. 적십자사와 함께 임시 주택 15동을 짓던 전국재해구호협회 관계자 12명도 이날 함께 인천으로 향했다. 연평도=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장관석 기자 jks@donga.com}

    • 201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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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연평도 포격 도발]연평도 軍통제구역 설정… 백령도 주민도 피란길

    인천 옹진군은 북한군의 포격을 받은 연평도를 해병대 연평부대의 통제구역 설정 요청에 따라 29일 낮 12시를 기해 통합방위법에 근거한 통제구역으로 설정했다고 옹진군이 밝혔다. 연평도에 해당 군부대 지휘관이 관할하는 통제구역이 설정돼 준계엄과 비슷한 상태에 놓이게 된 것으로 통합방위법에 따른 통제구역 설정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군 당국은 연평부대 인근 도로 통행을 전면 금지하고, 기자 출입통제도 강화했다. 이는 북한의 추가 도발 위험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군의 대응태세 등에 대한 언론의 비판 기사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지나친 언론통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미 연합훈련 이틀째인 29일에도 연평도와 백령도 등 서해 5도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이어졌다.연평도는 통제구역 설정으로 취재진의 접근과 주민 차량이 통제된 데 이어 경찰과 해경이 섬을 드나드는 승객의 짐을 금속탐지기로 정밀 검색하는 등 검문검색을 강화해 ‘전시 상황’을 방불케 했다. 이날 섬으로 들어온 주민 10명은 “집이 무사한지 확인하기 위해 들렀다”며 “다시 나가려면 서둘러야 한다”면서 황급히 마을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남형 씨(57)는 “보건의로 일하는 아들이 사고라도 당할까 봐 마음을 졸였다”며 부인과 함께 아들을 붙잡고 울었다. 전날 연평도에 들어왔던 동물사랑실천협회는 부상당한 유기견 5마리를 구출해 인천으로 떠났다. 박소연 협회 회장은 “개들은 치료 후 주인이 원한다면 다시 돌려보낼 것”이라고 했다. 한편 연평면사무소 측은 이날 방송을 통해 “군부대가 30일 오전 10시부터 사격훈련을 실시함에 따라 훈련 30분 전까지 대피소로 대피하라”고 알려 주민들 사이에 잠시 긴장감이 돌았다. 30일 사격훈련이 북한의 도발이 있었던 23일 훈련과 동일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 하지만 합참은 이날 “30일 연평도 사격훈련은 하지 않는다”며 “현지 부대에서 사격훈련 일정을 잘못 이해하고 방송한 것으로 보인다”고 부인해 해프닝으로 끝났다.이날 백령도 용기포항 부두에는 170여 명의 백령도 주민이 인천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풍랑 등으로 25일 이후 뱃길이 끊겼다가 나흘 만인 이날 여객선 운항이 재개된 때문이다. 항구에서 먼저 인천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주민들과 이날 인천으로 떠나는 주민들이 뒤섞이면서 “피란 가는 거냐” “피란 잘 갔다 오셨냐”며 서로 안부 인사를 나눴다. 줄을 서 있던 정대용 씨(61)는 “군부대에서 신축 막사 짓는 일을 하고 있는데, 한미 연합훈련으로 북한군 추가 도발이 우려돼 일단 섬을 빠져나갔다가 상황을 지켜볼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백령면사무소와 여객선사 등에 따르면 연평도 포격 이후 이날까지 백령도에 주민등록을 한 주민 5000여 명 중 13%가량인 641명이 섬을 떠났다. 며칠 전까지 바다를 가득 메우고 있던 중국 어선들도 종적을 감췄다. 주민들은 “백령도와 북한의 장산곶 사이 바다에 3일 전까지도 100∼150척이 조업을 하고 있었지만 28일 한미 연합훈련이 시작되면서 모두 사라졌다”고 했다.백령도 주민들은 천안함 사건이 잊혀 갈 때쯤 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져 관광객의 발길이 끊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객실 42개가 있는 아일랜드캐슬 호텔 관계자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매출이 전년 대비 30%를 밑돌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백령도 김정석 주민자치위원회 부위원장(56)도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군인들의 외출, 외박이 모두 금지돼 백령도 진촌리 일대 여관과 식당이 고사 직전”이라고 말했다. 백령도=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연평도=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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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연평도 포격 도발]MBC 취재진 30여 명 연평도 軍시설서 술판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연평도 현장에 들어간 MBC 취재진이 군부대가 운영하는 면회시설에서 회식을 하면서 밤늦게까지 소란스럽게 술을 마셔 군 관리병이 제지했던 것으로 29일 확인됐다.군과 연평도 주민 등에 따르면 28일 MBC 취재진 30여 명은 오후 8시경부터 해병대 연평부대가 운영하는 연평리의 ‘충민회관’에서 삼겹살과 함께 소주와 맥주 등을 곁들여 회식을 했다. 현지 부대 관계자는 “MBC 회사 이름으로 이날 35명의 저녁 식사를 예약했다”며 “예약 당시 충민회관에서는 술을 팔지 않는다고 공지했지만 이들은 육지에서 가져온 캔맥주와 플라스틱 병에 담긴 소주 등을 가져와 마셨다”고 말했다. 하지만 술자리는 회관 운영시간인 오후 10시를 넘겨 밤 12시까지 이어졌고 분위기도 매우 소란스러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지켜보던 연평부대 소속 회관 관리병들이 “숙박하는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 있으니 조용히 해 달라” “이러면 안 된다.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항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관계자는 “회관 운영시간을 훨씬 넘겨서까지 술자리가 이어져 해병대 관리병들이 시중과 뒷정리를 하는 바람에 불만이 터져 나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연평도 충민회관은 식당과 숙소, 샤워실 등을 갖춘 시설로 면회를 온 가족은 물론이고 외부인도 이용할 수 있다. 객실은 모두 9개로 군 관계자들이 투숙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진숙 MBC 홍보국장은 “보도국 기자, 카메라 기자, 중계팀 등 약 30여 명이 오후 8시 반부터 10시 반까지 회식을 했고, 반주로 한두 잔 마신 것은 맞지만 해병대 홈페이지에 오른 글처럼 폭탄주와 고성방가는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연평도=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 201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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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대통령 ‘연평도 도발’ 담화… 시민들 반응은

    29일 이명박 대통령의 북한 연평도 포격 도발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지켜본 연평도 주민들은 정부의 후속대책에 큰 기대를 하면서도 삶의 터전을 잃은 국민에 대한 위로가 조금은 부족한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연평도 주민 이기옥 씨(50·여)는 “대통령의 말씀이 실천으로 이어져 북한이 다시는 도발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마을이 복구돼 흩어진 이웃사촌들이 돌아와 얼굴을 마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업 소매업을 하는 윤선업 씨(44)는 “서해5도 관련 특별법 등 다각적인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꽃게잡이 어업을 하는 아들과 함께 연평도에 남아 있는 김상숙 할머니(75)도 “대통령 말씀은 잘 알겠지만 어떻게 해서든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며 “남쪽은 여러 가지를 생각해서 참지만 북은 이제 계속 전쟁하려고 덤빌 것이므로 도발을 못하도록 철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천 중구 신흥동에 마련된 임시숙소인 ‘인스파월드’에서 대통령의 담화를 지켜 본 연평도 피란민들은 앞으로 정부가 내놓을 구체적인 후속 대책에 큰 관심을 가졌다. 피란민 김두진 씨(64)는 “연평도 등 서해5도 주민을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으니 정부가 주민들이 만족할 만한 대책을 수립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반응은 다소 엇갈렸다. 회사원 오종국 씨(50)는 “연평도에 대한 대책이나 국방개혁 같은 건 계속 언론에서 나오던 얘기”라며 “좀 더 강력한 대응책을 내놓을 줄 알았다”며 아쉬워했다. 반면 회사원 김형민 씨(40)는 “군 통수권자로서 적절한 시점에 국민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발언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평도=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 201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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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연평도 포격 도발]‘실전 대비’ 배치됐다는 연평도 해안포 살펴봤더니…

    남북 대치의 최전선 연평도에서 북한을 직접 겨냥하고 있는 우리군 해안포에 심한 녹이 슬고 기름이 줄줄 새고 있어 실제 전투상황이 벌어질 경우 제 기능을 못할 수 있고, 내부 폭발 위험성까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전에 배치돼 북쪽을 향하고 있는 연평도 해병부대의 해안포 관리 실태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3일 연평도 해병부대가 북한의 포격을 받을 당시 해병대의 K-9 자주포 6문 중 3문이 고장 나 제때 대응 포격을 못해 피해가 컸다는 비판이 나온 데 이어 해안포까지 부실한 것으로 드러나 우리 군의 전투태세에 총체적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동아일보는 28일 해병대 연평부대의 해안가 절벽에 있는 90mm 해안포 진지를 살펴보았다. 이 해안포는 6·25전쟁 당시 사용하던 M-47 전차를 실전에서 퇴역시키면서 포만 떼어내 해안포로 배치한 것으로 사정거리는 1km 근접용이다. 이곳은 북한 영토인 무도와 12km, 북한 내륙 황해남도 강령군 평양리 수용동까지는 불과 12.7km 떨어져 있다.연평도 해병대 부대는 이날 한미 연합훈련 등으로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이곳에서는 북한 장재도 초소에서 북한군 3명이 드나드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정작 부대 안 해안가 절벽에 배치된 해안포 진지 시설은 믿기 힘들 정도로 낙후된 상태였다. 진지 안에 붉은색으로 적힌 ‘내 생명 해안포와 함께’라는 글귀가 무색할 정도로 포의 모든 부위가 녹슬어 있었다. 포가 발사되는 포신과 본체 부분을 연결해 지탱하는 접합 볼트는 심하게 부식돼 페인트 색깔인 국방색보다 붉은 녹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외부로 노출된 포신을 제외하면 포탑 등 포 전체가 붉은 페인트를 곳곳에 칠한 것처럼 녹슬어 있었다.기름도 덕지덕지 엉겨 있었다. 포의 조정 손잡이 아랫부분에는 기름기가 엉겨 말라붙은 채 떼어 내기도 힘들었다. 사격한 다음 제대로 정비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포탑 아래는 녹물과 기름이 뒤범벅되어 뚝뚝 떨어지는 바람에 바닥까지 붉은색 기름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해안포 옆에는 포의 부수기재 상자가 널려 있었다. 포신 오른쪽 부분에는 1976년 9월 국방부 장관 명의로 “이 시설은 국민의 정성 어린 방위성금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라고 적혀 있었으나 전혀 정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해병대 관계자는 90mm 해안포에 대해 “사거리가 짧지만 적이 상륙을 시도할 때 활용되는 포”라며 “유사시 부대 내에 배치된 모든 해안포가 작전에 투입된다”고 밝혔다. 다른 군 관계자는 “전차 몸체는 고철로 녹여 없앴지만 남아 있던 탄약과 포신을 활용하는 차원에서 해안포로 배치했다”며 “백령도 등 도서지역에 지금도 배치되어 있지만 사격 정확성이 낮고 사정거리가 짧아 활용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군 전문가들은 최전선의 해안포가 녹슨 상태로 방치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방산업체의 한 관계자는 “만약 비 때문에 녹물이 흘러나올 정도면 무기 역할을 할 수 없을 만큼 부식 상태가 심각한 것”이라며 “명중률은 고사하고 내부 폭발로 우리 병사의 안전도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백령도를 방문해 같은 기종의 해안포를 본 적이 있다는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한 명이 좌우로, 다른 한 명이 상하로 돌려 조준하는 방식으로, 정확도나 화력 면에서 북한군 상륙에 대비한 억제력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이철우 전 해병대 사령관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해안포 노후화와 정비 불량 문제가 심각해 상부에 해안포 교체 등 전략 증강 요청을 수차례 했으나 번번이 묵살됐다”며 “서해 5도의 전력 보강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퇴역하는 장비를 활용한 탓도 있지만 습기가 많은 해안의 특성을 고려해 포 정비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인식 전 해병대 사령관은 “정부가 해안포 장비를 현대화할 수 있도록 예산을 대폭 확대하고 군도 무기 관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연평도=장관석 기자 jks@donga.com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동영상=미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 서해상 배치}

    • 2010-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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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연평도 포격 도발]연평도 한때 대피령

    “대피해 대피! 무조건 빨리 나가!” 28일 오전 11시 20분. 조용하던 연평면사무소 1층에서 다급한 고함 소리가 터졌다. 면사무소 2층 브리핑룸에서 기사를 작성하던 취재진의 바쁜 손길이 순간 멈췄다. 기자는 취재수첩과 볼펜을 들고 1층으로 뛰어 내려갔지만, 1분도 안 된 그새 20명이 넘게 북적이던 면사무소 1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밖으로 나와 보니 사람들이 인근 연평초등학교 대피소로 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급했던 한 직원은 화단에 설치된 펜스를 넘어 정신없이 달렸다. 이날 상황은 훈련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었다.서해 한미연합훈련이 시작된 이날 오전 북한의 해안포 발사 징후가 다시 한 번 포착되면서 연평도 전역에 40분간 주민 대피령이 떨어졌다. 23일 북측의 포격 도발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주민들과 면사무소 직원은 물론 국내외 취재진, 자원봉사자, 군인들이 황급히 근처 방공호로 대피했다. 북한의 포격 훈련으로 밝혀져 대피령은 곧 해제됐지만 대피소에 피신한 주민들은 “진짜 또 포를 쏘는 것이냐”며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무조건 대피해” 다급했던 상황이날 대피령은 오전 11시 20분부터 11시 57분까지 약 37분 동안 계속됐다. 주민들과 자원봉사자, 취재진 등이 연평초교 내 방공호에 모일 때쯤 인천 소방안전본부는 마을 스피커로 “북한 해안포 기지에서 화력 도발 징후가 보이니 대피해 달라”는 안내방송을 했다. 섬 전체를 뒤덮는 굉음의 사이렌 소리도 23일 포격 이후 처음으로 울렸다. 연평초교 내 방공호에는 5분도 지나지 않아 70여 명이 모였다.주민들이 “어떻게 된 일이냐”고 상황을 묻자 면사무소 측은 “군에서 대피령을 내렸다”면서 “절대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방공호에 모인 주민들은 북측의 포격이 재연될 가능성에 치를 떨었다. 꽃게잡이 어민 박진구 씨(51)는 “방송을 듣지 못했는데, 이웃 주민이 ‘피하라’는 전화를 해서 대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대피령은 대부분의 주민들이 육지에서 보낸 물건을 찾으러 나루터로 가던 중에 내려졌다. 주민 박철훈 씨(56)는 “나루터에 아는 사람 마중을 나갔다가 방송 듣고 죽기 살기로 뛰었다”며 “스피커 상태가 좋지 못해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지만 대피령일 것 같아 무조건 내달렸다”고 했다. 박 씨는 “오늘 고비를 넘기면 다음 주쯤 어선을 띄울 수 있지 않겠느냐”며 “끝까지 연평도에 있을 것”이라고 말해 긴장된 순간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대피령은 해제됐지만 연평도 전역에는 통행금지령이 내려졌다. 해병대 연평부대는 비상령 해제 후인 낮 12시 3분경 “가급적 통행을 삼가 달라. 파편 및 포탄 잔해를 발견했을 때는 군 작전본부로 알려 달라”는 방송을 내보냈다. 해병대 연평부대는 23일 포격으로 무너진 군 통신선을 복구하고 K-9 자주포에 포탄을 공급하는 K-10 탄약보급 장갑차를 배치하는 등 하루 종일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북한의 도발에 대비했다.○ 피란민 TV 보다 “또 포탄인가” 탄식연평도에 긴급 대피령이 내려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인천 중구 신흥동의 연평도 피란민 임시 숙소인 ‘인스파월드’에도 긴장감이 흘렀다. 북한의 추가 도발을 우려해 연평도를 떠난 피란민 900여 명은 이 건물 2층 휴게공간에 설치된 TV 앞에 모여 연평도 상황에 귀를 기울였다.피란민 강유선 씨(67·여)는 “남편이 오늘 오전 여객선을 타고 연평도에 들어갔는데 북한이 또 도발하면 어떡하느냐”며 가슴을 졸였다. 피란민 박춘옥 씨(46·여)는 “연평도에서 군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남편이 걱정돼 가슴이 철렁했다”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대피령이 해제되자 피란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한 주민은 “북한의 도발로 끔찍한 공포를 체험한 피란민 대부분이 삶의 터전이었던 연평도로 돌아가는 것을 체념할 정도로 지쳤다”며 “정부가 피란민 이주 문제를 포함한 근본적인 대책을 빨리 마련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령도와 대청도 등 다른 서해 5도에서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준비에 들어갔다. 백령면과 대청면 사무소 등은 군부대와 협의해 대피소 70여 곳에 담요와 비상식량을 비치했으며, 백령병원과 각 섬의 보건소들도 전 의료진이 비상근무에 들어갔다. 연평도=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5대째 연평도 지킨 前주민자치위원장 최율씨의 하소연 ▼“다시 고향 못돌아갈 것… 뭍에서 새 직업 알아보렵니다” “뭍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새로운 직업을 알아보고 있어요. 어민으로 연평도에서 30여 년 살아왔지만 악몽 같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다시 연평도에 들어가 살지 못할 것 같아요.”28일 연평도 피란민 임시 거처인 인천 중구 인스파월드에서 만난 최율 전 연평도 주민자치위원장(53·사진)은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연평도에서 5대째 살아온 그는 평생을 어민으로 생업을 꾸려온 연평도의 산증인. 1999년과 2002년 두 차례의 연평해전을 겪으면서도 고향 연평도를 그토록 사랑했던 그가 고향을 떠날 생각까지 할 만큼 이번 북한의 포격 도발이 준 충격은 컸다.“총알 100발이 터져도 꼼짝 못하는데 폭탄 100발이 터졌다고 생각해 보세요. 북한군의 2차 포격 때 부두에서 차를 몰고 마을로 들어와 미처 피신하지 못한 주민들과 함께 대피소로 피신하고 있었죠. 그 뒤 불과 몇 초 뒤 30m 앞에서 ‘쉬익∼’ 소리와 함께 섬광이 비치면서 포탄이 터졌어요. 고막이 찢기는 고통을 느꼈죠.” 최 회장은 “인천으로 피신한 뒤 다시 짐을 챙기러 연평도에 들어갔을 때 본 내 고향은 처참한 전쟁터였다”고 말했다.그는 “현재 이곳 임시 피란처에 있는 주민 상당수는 정부에서 다시 집을 고쳐 준다고 해도 연평도에 들어갈 엄두를 못 낼 것”이라며 “평생을 바다에서 생활해 담력과 배짱이 두둑하다고 자신했던 나도 바로 눈앞에서 포탄이 터지자 2시간 동안 아무 일도 못한 채 넋을 놓고 있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이곳 피신처에 있는 주민 절반 정도가 연평도에 되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며 “3, 4년 후 꽃게잡이 배도 크게 줄고 여객선 운항 횟수도 줄 것 같다”고 전망했다그는 찜질방에 누워 있는 주민들을 가리키며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모두 그날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인천=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북, 전군 비상경계령 2호 발령”▲2010년 11월25일 동아뉴스스테이션}

    • 2010-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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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연평도 포격 도발]한미 항모훈련 28일 돌입… 서해 ‘일촉즉발’ 초긴장

    북한이 연평도 포격 도발을 한 지 나흘째인 26일 오후 연평도를 포격했던 북한 황해남도 개머리 해안포 진지 쪽에서 여러 차례 포성이 들려 군 당국이 한때 비상경계태세를 강화하고 연평도 주민들이 긴급 대피하는 긴박한 상황이 벌어졌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이날 포성이 들린 직후 국방부 기자실을 찾아와 “낮 12시 20분부터 오후 3시 조금 넘는 시간까지 북한 개머리 방향 내륙지역에서 간헐적으로 수차례 포성이 청취됐다”면서 “북한의 포탄이 우리 측 지역이나 해상으로는 떨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연평도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초병 의 보고 등을 종합한 내용”이라며 “해안지역이 아닌 내륙지역에서 실시한 일반적인 사격 훈련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군 관계자는 “북한 내륙 개머리 지역에서 6차례에 걸쳐 포성이 들렸다”며 “북한이 모두 20여 발을 발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군이 자신의 내륙지역에서 포를 발사한 것과 관련해 군 당국은 자체 사격 훈련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28일부터 실시될 서해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일종의 ‘경고 사격’이 아니겠느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연평도=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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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연평도 포격 도발]“여기를 떠난다고 뭘 더 할 수 있겠나”

    “여길 떠난다고 뭘 더 할 수 있겠어? 그냥 고향 지키고 있을 거야.” 40년 동안 연평도에서 살아온 박모 씨(76)는 25일 저녁식사를 준비하면서 주민들의 피란 행렬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말없이 파를 다듬었다. 된장국에 넣을 대파 껍질을 조용히 까는 동안 이웃들은 옷가지며 통장, 금붙이 등 귀중품들을 챙겨 연평도를 떠나는 마지막 배에 정신없이 올라탔다. 박 씨는 이곳이 더 편하다고 했다. 연평도 해경출장소 뒷벽에 남겨진 시커먼 포탄 파편 흔적을 바라보면서도 그는 태연했다. 인천에 사는 아들이 “인천으로 오시라”고 여러 번 얘기했지만 연평도를 떠날 마음이 없다고 했다. 박 씨는 그저 “연평도가 좋으니 남겠다”고만 말했다. 주민들이 빠져나가 ‘유령섬’이 되어 버린 연평도는 26일 인적을 찾기가 힘들었다. 공무원과 경찰, 복구인력을 빼고 섬에 남아 있는 민간인은 스무 명 남짓에 불과하다. 포격 전 연평도에 살고 있던 주민은 1400명을 넘었다. 그중 1380여 명이 뭍으로 탈출했으니 ‘빈 섬’이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었다. 현재 섬에 남아 있는 사람은 대부분 노인이다. 이들은 “섬에 마지막 순간이 오더라도 우리는 이곳에 있고 싶다”고 했다. 연평도에 남아 있는 주민 중 최고령자는 이유성 씨(83)다. 그는 아내 강선옥 씨(82), 딸 이기옥 씨(50)와 함께 연평도에 남았다. 이 씨는 황해남도 옹진에서 6·25전쟁 때 피란민으로 연평도에 정착한 후 60년을 여기서 살았다. 도시에서 전쟁이 나더라도 섬은 안전할 거라 믿고 무작정 왔던 것이 벌써 그만큼의 세월이 흘렀다. 그는 연평도에서 농사를 짓고, 굴을 따며 생계를 이어 왔다. 강 씨는 “내 삶의 시작이 이곳이니, 마지막도 연평도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들 부부는 “6·25 때부터 연평도에서 줄곧 살아왔지만 북한이 23일 포격할 때는 가슴이 쿵쾅거렸다”며 “무섭기도 하지만 막내(딸)가 남아 있는 한 연평도를 떠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날 북한이 훈련포를 발사했을 때 모두 방공호로 대피했다. 딸 이 씨는 “주민들이 모두 떠나버리고 군부대만 남는다면 연평도는 아마 북한 땅이 될 것”이라면서 “마지막까지 고향을 지키고 싶다”며 웃었다. 김상숙 씨(83·여)도 60년간 살아온 터전을 차마 떠나지 못하겠다고 한다. 아들이 어머니를 인천으로 데려가기 위해 연평도 당섬 선착장까지 억지로 끌고 갔지만 떠나기 싫다는 어머니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김 씨는 “굴이 제철이면 굴을 캐고, 성당에도 가고, 손자 보는 것이 내 낙”이라고 했다. 굴도 없고 바다도 없는 곳으로는 가고 싶지 않다면서 김 할머니는 몇 번이나 눈시울을 적셨다. 하지만 노인들만 섬에 남은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알 수 없다. 이날 북한의 훈련 포격이 있었다는 소식에 육지에 사는 자녀들이 “빨리 섬을 떠나라”고 재촉했기 때문이다. 또 28일 실시되는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공포도 커지고 있다. 한 할아버지는 “내일이 되면 이제 몇 명이 남을지 모른다”며 “주민들이 모두 떠나는 상황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말했다.연평도=장관석 기자 jks@donga.com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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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의 눈/박재명]연평도는 아직도 戰時상태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섬을 찾은 기자들에게 자전거는 귀중한 교통수단이다. 연평면사무소 앞에는 주민들이 미처 챙기지 못하고 떠난 자전거가 넘쳐난다. 차량이 없는 기자들은 자전거를 타고 섬 곳곳에 산재한 포격 현장을 돌아다닌다. 연평도의 밤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다. 밤에 자전거를 타고 마을 골목을 돌다 보면 전신주에 걸린 가로등 외에는 불빛을 발견할 수 없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다. 골목길에는 어김없이 타다 남은 이불과 깨진 유리창 조각이 흩어져 있다. 불이 꺼진 집 사이로 포격으로 불탄 집이 여러 채 보였다. 연평도에는 북측의 포격 도발로 파손된 집이 100여 채가 넘는다. 며칠 전만 해도 그 집에서는 손자의 재롱을 보고 즐거워하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모든 것이 무너진 연평도에는 가족이 없었다. 기자는 25일 군의 출입 통제가 풀려 연평도에 들어오기 전까지 연평도가 ‘전시(戰時)’라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다. 이곳이 사실상 전쟁터임을 식사 때가 돼서야 어렴풋하게 알 수 있었다. 연평도에 쌀이 남아있지 않았다. 대한적십자사가 구호 식량을 가져왔지만 이미 모두 동났다. 라면과 군에서 보급 받은 전투식량 두 가지를 ‘교대로’ 먹는 수밖에 없었다. 26일 기자의 하루 식단은 라면과 전투식량, 그리고 또 전투식량이었다. 민박집에서 떨며 하룻밤을 지낸 뒤 맞는 26일에는 실제 ‘대피상황’도 벌어졌다. 이날 오후 3시경 마을에는 “북한군 포탄 두 발이 또 떨어졌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돌았다. 주민과 취재진들은 ‘살기 위해’ 모두 대피소로 몰려들었다. 그 순간 아무것도 챙길 수 없었다. 살겠다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뛰었다. ‘죽음’이 바로 등 뒤까지 다가온 서늘한 감정으로 대피소에 머물렀다. 북한의 훈련포 소리를 오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지만, 그때의 떨림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언론 등을 통해 깨지고 불탄 집과 곳곳에 남은 포탄 자국이 보도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전쟁의 참상을 알렸다. 하지만 아직도 ‘장난’과 ‘선동’은 그치지 않는다. ‘예비군 소집을 명한다’고 허무맹랑한 문자를 돌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포폰 문제가 대포로 날아갔다’는 비아냥도 나와 가슴이 아팠다. 연평도 포격으로 군인과 민간인 등 4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 북한의 도발이 언제 또 있을지 연평도 사람들은 숨죽이고 있다. 육지에 사는 우리는 북과의 대치상황을 너무 쉽게 잊고, 외면하는 건 아닌지 정신이 번쩍 드는 하루였다. ―연평도에서박재명 사회부 jmpark@donga.com}

    • 2010-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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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연평도 포격 도발]포격 이틀후… 절망의 섬 연평도 가보니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이 일어난 뒤 출입이 통제됐던 연평도 뱃길이 사흘 만인 25일 다시 열리자 황망히 고향을 등졌던 주민 250여 명은 이날 고향으로 가는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낮 12시 반 인천 연안부두를 출발한 여객선에서 임경희 씨(51·여)는 오후 3시 반 연평도 당섬 선착장에 도착할 때까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멀리 섬이 보이자 임 씨는 “우리 집은 괜찮을까”라며 혼잣말을 하다 처참한 섬 모습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쌀과 밥솥, 겨울옷을 챙겼다. 신문지에 둘둘 만 밥솥과 쌀 한 포대를 조그만 손수레에 싣고 집을 나섰다. “이제 아무 미련도 없어요. 당분간은 옹진군에서 마련해 준 인천의 찜질방에 머물다가 육지에 정착할 생각입니다.” 이날 연평도를 다시 찾은 주민들은 두 시간 남짓 서둘러 옷가지 등을 챙긴 후 남아 있던 다른 150여 명의 주민과 함께 섬을 떠났다. 이들이 떠난 연평도는 ‘빈 섬’이 됐다.○ 텅 빈 연평도 연평도에서 태어난 박노근 씨(70)는 포격 첫날인 23일 어선을 타고 탈출했다. 그는 서릿장 같은 바닷바람에 부들부들 떨면서도 목숨을 건졌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박 씨는 “내일이라도 돌아오면 좋겠지만 이젠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며 “고향이 안전하다는 확신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주민들은 28일 서해에서 실시하는 한미 연합훈련과 관련해 북측의 또 다른 도발이 있을까 봐 걱정했다. 연평마트 주인 차태정 씨(39)는 “고향을 지키려고 지금껏 살았지만 곧 다가올 훈련은 너무 두렵다”며 “슈퍼마켓 물건들은 모두 군인들에게 주고 당분간 이 섬에서 떠나 있을 생각”이라고 했다. 주민 김성진 씨(45)는 “연평도 주민은 모두 북한에 볼모로 잡혀 있는 느낌”이라며 “이제 볼모 노릇도 지긋지긋하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탈출한 이틀 동안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다. 이날 남아 있던 150여 명의 주민이 떠나면서 군인과 공무원 등을 제외한 연평도 주민은 50여 명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평도 주민대책위 측은 “남겠다는 20여 명 말고는 모두 섬을 떠났다”고 밝혔다.○ 고스란히 남은 상흔…그래도 복구는 계속 포격 이틀이 지난 25일에도 연평도 골목 구석구석은 타다 남은 냄새가 진동했다. 특히 주택이 몰려 있는 연평면 167번 길에서는 10채가 넘는 집이 전소돼 숯덩이가 됐다. 지붕 위로 포탄이 떨어진 집은 앙상하게 뼈대만 남았다. 한 슈퍼마켓은 새까맣게 탄 술병들이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사람이 떠난 골목에는 주인 잃은 개들이 서너 마리씩 떼 지어 먹이를 찾아다녔다. 포격 흔적도 곳곳에 선명하게 남았다. 연평파출소 부근 포탄이 떨어진 공터 바닥은 20∼30cm 깊이의 구멍이 파여 있었다. 폭발 지점 옆에 세워져 있던 빨간색 소형승용차는 뒤집혀 전소됐고, 맞은편 건물 외벽은 수백 개의 파편 흔적으로 흉물스러운 모습이었다. 해병대 연평부대에서도 부대 뒤편 언덕 기슭에 자리 잡은 K-9 포진지 내 높이 5m가량의 콘크리트 벽이 포탄의 충격으로 가운데가 반경 1m, 깊이 30cm가량 깎여 나갔다. 주변 벽과 바닥까지도 포탄 파편으로 움푹 파인 곳이 셀 수 없이 많았고 곳곳에 그을음이 남아 있었다. 이날 연평도에는 TV 소리도,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도 사라져 저공비행하는 헬기의 굉음만이 온 섬을 뒤덮었다. 주민 유명복 씨(73)는 “이제 사람마저 떠나버리면 연평도가 정말 ‘유령섬’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쓰러진 마을을 다시 일으키려는 복구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재해구호협회 소속 자원봉사자 30여 명은 연평도 주민들을 위한 임시 가옥을 짓고 있었다. 연평초등학교에 설치될 임시 가옥은 총 15채로 이르면 주말에 완공된다. KT와 한국전력 등의 작업으로 이날 섬의 전력과 유무선 전화는 대부분 복구됐다.연평도=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장관석 기자 jks@donga.com ▼ “통장 대신 이웃들 덮을 이불 30채 챙겼어요” ▼배로 주민 63명 ‘연평도 엑소더스’ 도운 유대근씨23일은 어머니의 쉰 두 번째 생신이었다. 유대근 씨(32·사진)는 이날 오후 2시 30분 연평도 나루에 나가 여객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섬에 들어오는 지인 편에 생일 케이크를 하나 부탁해 둔 터였다. “콰콰 쾅….” 별안간 마을 쪽에서 귀를 찢는 굉음이 들려왔다. 쉴 새 없이 퍼붓던 포격을 뒤로하고 방공호에 몸을 숨겼던 유 씨는 두 차례의 포격이 그치자 서둘러 나루로 달려갔다. ‘탈출하려는’ 주민들이 탈 배를 구하려고 몰려들었다. 오후 5시 18분 유 씨는 자기 이름을 딴 배 ‘대근호’를 이끌고 예정에 없던 출항을 했다. 9.77t짜리 꽃게잡이 배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평소 선장과 다섯 명의 선원이 타던 배에 부모와 아내, 외할머니를 포함해 63명의 연평도 주민을 가득 태웠다. 대근호는 이날 연평도를 빠져나온 고깃배 중에 가장 많은 주민을 실은 배였다. 비좁은 배 안에서 주민들은 무릎을 세우고 쪼그려 앉아야 했다. 남자는 맞바람을 맞아야 하는 뱃머리에 등지고 앉았고, 여자는 바람이 약한 배 뒤쪽에 앉았다. 6, 7세 아이 서너 명은 조타실 뒤편 사방에 바람막이를 쳐놓은 공간에 앉혔다. 유 씨는 통장 하나 못 챙겨 나왔지만 뱃길이 추울 것에 대비해 친척들까지 동원해 이불 30여 채를 짊어지고 나왔다. 자박자박하게 바닷물이 스며든 배 바닥에 가져온 이불을 깔았다. 두 사람이 이불 하나로 반은 바닥에 깔고 반은 덮었다. 노인들은 머리 위로 이불을 한 채 더 뒤집어써 배 안으로 튀는 파도를 막았다. 연평도에서 인천 연안부두로 가는 내내 대근호에는 적막이 흘렀다. 북한의 포탄에 맞아 연기 자욱한 고향 섬을 뒤돌아보는 이는 없었다. 날아오는 포탄을 맞을까 봐 무서워서였다. 컴컴한 바다를 가르고 오는 동안 등대 불빛이라도 번쩍하면 배에 탄 주민들은 몸을 움찔거렸다. 배에 켜둔 불빛 때문에 표적이 될 수 있다며 불을 끄고 가자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어두운 바다에서 길을 잃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루처럼 길게 느껴진 3시간 40여 분 만에 저 멀리 인천 연안부두가 보였다. 대근호에 몸을 맡기고 ‘보트피플’처럼 섬을 떠나온 63명의 연평도 주민은 누구 할 것 없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연평도에 사는 것으로 애국하고 있다’고 자부해온 연평도 사람들은 그렇게 서로 이불을 덮어주며 ‘전쟁터’에서 생환했다.인천=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주민 1명이라도 남아있는 한 떠날순 없죠” ▼‘연평도 지킴이’ 김운한 경위-신효근 소방사-박성철 공보의“주민이 한 명이라도 남아 있는 한 우리는 끝까지 연평도를 지킵니다.” 인천해양경찰서 연평파출소장 김운한 경위(57)는 25일에도 북한 측의 기습 도발로 폐허가 된 마을을 복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공포에 질린 주민들의 탈출 행렬이 이어졌지만 연평도에서는 김 경위처럼 묵묵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연평도 지킴이’들을 만날 수 있다. 김 경위는 이틀째 한두 시간 쪽잠을 자면서 화재를 진압하고 쑥대밭이 된 마을을 복구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연평도에서 1년 6개월째 근무 중인 김 경위는 “북한의 도발로 집에 안부 전화도 못할 정도로 바빴지만 이곳에서 살아갈 주민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뿐”이라며 “내가 할 일을 하는 것일 뿐 칭찬받을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연평도에서 나고 자란 신효근 소방사(38)는 이날도 추가 사상자 수색 작업을 벌였다. 신 소방사는 인천 중부소방서 소속 연평 119지역대에서 13년째 일하고 있다. 처음 포격이 시작됐을 당시 119 상황실에 맨 먼저 상황을 알린 것도 그였다. 그는 1차 포격 직후부터 연평도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의용소방대원 30여 명과 함께 섬 곳곳에 난 산불 진화 작업에 나섰다. 이날 오후에도 강한 바닷바람에 산불이 다시 일어날 조짐이 보이자 신 소방사는 어김없이 현장으로 출동했다. 신 소방사의 가족 모두 연평도에 살고 있었지만 아내와 세 자녀는 24일 오전 인천으로 떠났다. 그는 “진화 작업 중에도 포격이 이어지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지만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계속 뛰어왔다”고 했다. 중부리 경로당에 차려진 임시 진료소에선 공중보건의 박성철 씨(30)가 환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박 씨는 23일 포격으로 연평면 보건지소가 타격을 입는 다급한 상황에서도 응급환자들을 치료했다. 박 씨는 “평소 많게는 70여 명을 진료했는데, 오늘은 주민들이 연평도를 빠져나가 환자들이 거의 없다”며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우려되는 주민들도 여럿 보여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박 씨를 포함해 보건지소에 근무하던 공중보건의 4명과 옹진군 병원선을 타고 건너온 공중보건의 3명, 인천 길병원 소속 의사 등 모두 10명의 의료진이 주민들을 돌보고 있다. 박 씨는 “솔직히 무섭기도 하지만 주민들을 치료하는 것이 임무인 만큼 연평도를 떠날 수 없다”고 담담히 말했다. 연평도=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장관석 기자 jks@donga.com}

    • 2010-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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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을때까지 남는건 머리에 담은 지식”

    “먹을 것 사줘봐야 똥밖에 더 돼? 돈으로 줘도 흥청망청 쓰는 거 금방이야. 죽을 때까지 남는 건 책 읽고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밖엔 없어.”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의 ‘기부왕’으로 잘 알려진 류양선 할머니(77)는 22일 기자에게 “기부에는 책만 한 게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는 도서 구입이 쉽지 않은 도서산간지역 초등학교에 국어사전을 1억여 원어치 보냈다고 했다. 류 할머니는 노량진수산시장에서 39년째 새우젓 가게인 ‘충남상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35년 동안 수십억 원 상당의 기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할머니는 이달 초 ‘도서 할부 구입’에 나섰다. 지난해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에서 발간한 국어사전 1억850만 원어치 201세트를 사고 5차례에 나눠 대금을 납부하기로 했다. ‘선금’ 3000만 원은 고려대 측에 전달했다. “기부는 계속 하고 싶은데 지금 수중에 돈이 없으니 나눠 내는 거야. 이제 김장철 대목이니 한창 장사해서 또 주고 또 주고 해야지”라고 했다. 민족문화연구원 이종현 팀장은 “책값을 깎아주겠다고 했는데도 할머니는 한사코 정가를 내겠다고 고집하셨다”며 “할머니의 열정에 감동해 학교에서 50세트를 추가해 전국 초등학교 및 중학교에 발송했다”고 말했다. 류 할머니는 그동안 150여 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10만 권에 가까운 책을 전국 학교에 기부했다. 1998년과 2008년에는 고향인 충남 서산에 있는 한서대에 경기 광명시 임야와 건물,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임야 등 할머니 소유 부동산을 대학발전용지로 기부하기도 했다. 한서대 관계자는 “우리 대학에 기부한 부동산만 30억 원 정도의 가치가 있다”며 “할머니의 전체 기부액은 50억 원이 넘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정확한 기부 금액을 묻는 질문에 할머니는 “안 적어 두니 몰라. 주면 그만이지 누구한테 얼마 줬는지 그걸 왜 기억해”라며 오히려 호통을 쳤다. 할머니가 기부에 나선 것은 3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 섬마을 어린이들을 자신의 가게에서 만나면서부터다. “섬에서는 책을 구하기 힘드니 내가 책을 사서 부쳐주마”고 약속했다가 실제 한권 두권 책을 보내며 기부의 기쁨을 느꼈다. “새우젓 잘 팔리는 게 내 소원이야. 요새는 김장 담그는 사람이 줄어들었는지 김장철에도 젓갈이 잘 안 나가. 이 새우젓 팔아야 애들 책이라도 계속 보내줄 텐데….”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도 아이들을 향하고 있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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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감한 시민, 유리창 깨 대규모 희생 막았다

    “앗 불이다!”22일 오후 4시 55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보광훼미리마트 본사 건물에서 근무 중이던 남기형 POS 개발팀장(41)은 맞은편 건물 3층 창문 밖으로 치솟는 불길을 목격했다. 남 팀장은 사무실에 있던 소화기를 손에 든 채 정장 차림 그대로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눈으로 확인한 맞은편 화재 현장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작은 창문 밖으로 네댓 명이 입만 내민 채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었어요. 곧 질식할 것처럼 목소리에도 힘이 없어 보이더라고요.” 이날 밤 서울 성동구 행당동 한 병원 병실에서 만난 남 팀장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당시 남 팀장에 이어 현장에 도착한 소방관들은 고가사다리를 연결한 채 화재 현장에 들어가려고 장비를 착용하고 호스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더는 기다릴 여유가 없다고 판단한 남 팀장은 그대로 맨몸으로 고가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3층 유리창 앞에 도착하자 입만 보이던 사람들이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아주머니가 살려달라며 필사적으로 손을 내밀고 있었어요. 저도 모르게 손에 들고 있던 소화기로 제 양 옆 창문을 모두 깼죠.” 유리창이 깨지자 건물 안에 갇혀 있던 검은 연기가 무섭게 밀려 나왔다. 독한 연기에 남 팀장 본인도 순간 휘청했지만 유리 파편이 튀어 손에서 피가 흐를 때까지 창문을 계속 깼다. 사람이 나올 만한 공간이 확보된 것을 확인한 뒤 남 팀장은 창문 앞에 있던 시민 4, 5명과 함께 순서대로 천천히 사다리를 내려오기 시작했다.상황을 지켜본 남 팀장의 동료들은 “평소에도 의리를 중시하고 의협심이 강한 성격”이라고 전했다. 남 팀장은 구조 과정에서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 인대가 찢어져 이날 병원에서 한 시간가량 봉합수술을 받았다. “유리 파편이 얼굴로 쏟아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제 와서 해보면 조금 아찔하네요. 그래도 저보다 더 많이 다친 분들이 걱정됩니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동영상=만삭 아내 뒤로하고 불길속으로}

    • 201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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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광대 총장에 정세현 씨

    원광대 차기 총장으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65·사진)이 선임됐다. 학교법인 원광학원(이사장 이성택)은 19일 이사회를 열어 정 전 장관을 11대 원광대 총장으로 선임했다. 정 전 장관은 다음 달 23일부터 임기 4년의 총장직을 수행하게 된다. 현재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 201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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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랑스러운 연세화공인상 김우식-허동수 씨 선정

    연세대 화공생명공학과와 동창회는 학과 창립 60주년인 올해 ‘자랑스러운 연세화공인상’ 수상자로 김우식 전 과학기술부총리(70)와 허동수 GS칼텍스 회장(67)을 선정했다. 또 고 권석명 전 동양제철화학 부회장과 고 홍윤명 명예교수의 유족에게 공로상을 수여하기로 했다. 시상은 22일 오후 6시 30분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개최되는 ‘연세대 화공생명공학과 창립 60주년 기념식’에서 있을 예정이다.}

    • 201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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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한중 연세대 총장, 고려대서 名博

    고려대는 18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백주년기념삼성관 국제원격회의실에서 김한중 연세대 총장에게 명예 교육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고려대는 “의료보건 분야 교육과 연구에 큰 업적을 남긴 공로로 김 총장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한다”며 “김 총장이 정부 주요 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며 정책 수립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밝혔다. 김 총장은 연세대 의과대 교수로 재직하며 80여 편의 논문을 비롯해 다수의 저서와 번역서를 펴낸 바 있다. 이에 앞서 연세대도 올해 9월 7일 이기수 고려대 총장에게 명예 교육학박사 학위를 수여한 바 있다. 김 총장은 이날 학위수여식에서 “고려대와 연세대 총장의 명예교육학 박사학위 교차 수여는 글로벌 인재양성과 새로운 미래 개척을 위한 양교의 진정한 다짐”이라고 말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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